마침내 다리로 연결된 조발도·둔병도·낭도·적금도
섬과 섬 잇는 거리 18㎞… 여수서 고흥 방면으로 가야 제맛
여수 서쪽 화양면의 ‘여자만’, 개펄 반짝이는 노을 압권
섬 전체를 문화공간으로 꾸민 ‘장도’는 산책하기 좋아
가장 매력적인 섬은 ‘낭도’… 283m 上山이 조망 포인트
갯바위 지대 수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 감탄
고흥 우각산 자락 해안도로 탁 트인 전경 백미
천등산 아래 금탑사, 편백·동백나무로 둘러싸여 봄 정취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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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시 소라면 장척마을 앞바다에 떠 있는 하트 모양의 섬. 영락없는 하트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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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에 짓눌려 힘들었던 시간이 하루하루 더해지면서, 이제 공포만큼이나 ‘무료’ 때문에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하필이면 긴 겨울을 넘기고 맞은 봄, 좁은 동선 안에서의 갑갑한 생활에 지쳐갑니다. 전 세계로 맹렬하게 확산 중인 코로나19가 하루아침에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고, 종식된다 해도 다른 나라들의 감염확산이 계속돼 재유입과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외부활동은 주의해야 할 겁니다. 어느 날 기지개와 함께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될 거란 기대는 접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일상처럼 여행을 다니게 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제 다시 여행이 일상이 된다면 ‘드라이브 여행’을 제안합니다. 언제가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지만, 내 차로 떠나는 드라이브 여행은 그나마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여행 방식입니다. 추천하는 드라이브 코스는 지금껏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한 ‘새 길’입니다. 불운하게도 코로나19 감염 폭증의 와중에 새로 열리는 바람에, 개통식도 못한 ‘남도의 바다 위를 달리는 길’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 아무도 봐주지 않은 6600억 원짜리 길
지난 2월 28일은 코로나19 확진자가 916명이 나와 감염자 발생의 정점을 찍은 날이다. 이날 전남 여수에서 네 개의 섬을 다리로 연결해 고흥으로 건너가는 도로가 개통했다. 여수와 고흥 사이에 떠 있는 4개의 섬, 그러니까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에 다리가 놓여 굴비 두름처럼 하나의 길로 엮인 것이다. 자그마치 15년 동안 668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바다를 건너는 길’을 처음 여는 날이었지만, 여수시나 고흥군은 이날 개통식조차 못했다. 개통식을 하지 못했다는 것조차 기삿거리가 안 됐다. 창궐하는 코로나19 탓이었다.
경황이 없었던 때에 열린 그 길을 이제야 찬찬히 본다. 여수 화양면에서 출발해 고흥으로 건너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다리를 순서대로 적어보자. 여수 화양면에서 첫 번째 섬 조발도로 건너가는 다리가 ‘조화대교’다. ‘조발도’와 ‘화양면’의 지명 첫 자를 따서 붙였다. 여수 화양면 주민들이 주장했던 ‘화양대교’와 조발도 주민들이 원했던 ‘조발대교’를 절충한 이름이다. 아직 지명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된 국가 지명심의위원회에서 곧 이렇게 정할 예정이다.
그다음 다리부터는 명료하다. 조발도에서 둔병도로 건너는 다리는 둔병대교, 둔병도에서 낭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낭도대교, 낭도에서 적금도로 가는 다리가 적금대교다. 모두 다 섬 이름을 붙여 다리 이름을 정했다. 여기까지가 이번에 놓은 4개의 다리다. 4개 다리를 다 건너가면 적금도인데, 적금도에는 2016년에 놓은, 고흥으로 건너가는 ‘팔영대교’란 다리가 있다. ‘팔영’이란 이름은 고흥이 자랑하는 여덟 개의 봉우리를 가진 팔영산에서 가져온 것이다.
헷갈리시는가. 자, 다시 설명해보자. 이번에 개통한 것은 여수 화양면에서 조발도, 둔병도, 낭도를 거쳐 적금도를 건너가는 4개의 다리이고, 다리로 이어진 길 끝의 적금도에서는 이미 4년 전에 놓은 5번째 다리로 고흥과 연결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여수 땅에서 고흥 땅까지 섬을 딛고 5개의 다리를 건너가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리가 18㎞가 넘는다.
여수와 고흥이 섬을 딛고 다리로 이어졌으니, 여수나 고흥 어디에서 출발해도 된다. 이쪽과 저쪽을 잇는 길이 방향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 길만큼은 방향이 있는 듯하다. 눈치가 빠르다면 이미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다리 이름이 모두 여수에서 출발해 고흥 방향으로 건너가는 ‘저쪽 섬’의 이름을 땄다는 것을 말이다. 여수에서 출발할 경우, 둔병대교를 건너면 둔병도가 나오고, 낭도대교를 넘어가면 낭도가 나온다. 반대쪽, 그러니까 고흥에서 출발했다면 낭도를 빠져나온 뒤에 낭도대교를 건너고, 둔병도를 나올 때 둔병대교를 건너게 되는데, 섬을 빠져나올 때 다리 이름에 해당 섬 이름을 붙인 건 좀 어색하다.
다리 이름뿐만이 아니다. 다리를 건너는 길의 방향이 ‘여수에서 고흥 쪽 방향’이라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여수와 고흥은 우선 인구부터가 비교 대상이 안 된다. 여수의 인구는 28만 명이 넘고, 고흥은 6만5000명이 채 안 된다. 도시 규모는 차이가 더 크다. 불러들이는 관광객 숫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여수는 고흥에 비해 이름난 관광지가 많고 교통도 편리하다. 결정적으로 여수의 숙박업소 경쟁력이 고흥을 압도한다. 그러니 여수로 들어와서 고흥을 다녀오거나, 여수를 보고 고흥으로 건너가는 게 당연해 보인다. 여수에서 고흥 방면으로…. 길에 방향이 부여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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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대교를 건너 고흥 땅으로 들어선 뒤에는 영남면 남열리의 우주발사전망대까지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추천한다. 해안 절벽을 끼고 장쾌한 바다 전망의 길이 이어진다. |
# 여자만의 노을을 건너가는 길
먼저 길의 출발지점인 여수 이야기부터. 여수에서 봐야 할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여수엔 향일암과 오동도도 있고, 돌산공원과 해상케이블카도 있다. 봄이라면 이제 곧 피기 시작할 영취산의 진달래도 빼놓을 수 없다. 여수의 명소 얘기로 지면을 다 채운다 해도, 남은 얘기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흥과 마주 보고 여자만을 끼고 있는, 여수의 서쪽 얘기만 하기로 한다. 고흥으로 건너가는 드라이브와 여정을 연결해야 하니 말이다. 드라이브의 동선을 더 늘려 여수의 명소를 속속들이 더 보겠다면, 그거야 뭐 자유다.
여수는 땅 모양이 마치 널어놓은 바지처럼 생겼다. 여수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바지의 오른쪽 다리 쪽에 몰려있다. 노래에 나오는 ‘여수 밤바다’가 있는 여수항, 돌산도, 향일암, 무슬목도 여기 있다. 그에 비하면 바지의 왼쪽 다리, 그러니까 소라면과 화양면 일대는 이렇다 할 명소가 없다. 아니 명소가 없다기보다는, 손대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이야기겠다. 여수에서 고흥을 잇는 다리는 널어놓은 바지의 왼쪽 다리, 화양면에서 출발한다.
여수와 고흥을 잇는 다리의 디딤돌이 된 다섯 개의 섬은 여수와 고흥이 항아리처럼 가둔 바다가 이룬 만인 ‘여자만(汝自灣)’의 입구에 있다. ‘여자’라는 만의 이름은 남자, 여자 할 때의 여자가 아니라 ‘너 여(汝)’에 ‘스스로 자(自)’를 쓰는 여자(汝自)다. 여자만의 이름은 만 한가운데 있는 섬, ‘여자도’에서 왔다. 여자도라는 지명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그럴 듯한 것이 여자도의 본래 이름이 ‘넘자 섬’이었다는 것. 섬 안에 산이나 높은 구릉이 없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칠 때 바닷물이 섬을 넘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는데, ‘넘자’를 한자로 옮기면서 ‘넘’과 ‘자’로 나눠 ‘넘’은 남이란 뜻의 너 여(汝)로, 자는 스스로 자(自)로 쓰게 됐다는 것이다.
제안하는 드라이브 코스는 여수와 고흥 사이의 섬과 섬을 잇는 다리로서 여자만의 바다를 건넌다. 여자만 바다의 압권은 눈부신 노을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물골이 길게 이어진 개펄이 붉게 반짝이며 장엄하게 물들어간다. 그때는 개펄 위로 끌려 나온 폐선이며 개흙이 묻은 펄배, 갯일을 위해 펄로 걸어 들어가는 아낙네도 온통 붉은 빛이다. 여자만을 건너가는 여정에 앞서서 여자만의 노을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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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숲과 동백군락으로 둘러싸인 전남 고흥의 절집 금탑사 전경. 금탑사 주지의 법명은 ‘서림(瑞林)’. ‘상서로울 서(瑞)’ 자에 ‘수풀 림(林)’ 자를 쓰는데 금탑사 주변의 숲이 그 법명의 뜻을 그대로 담은 듯하다. |
# 여행자 발길이 닿지 않은 여수의 서쪽
어디서 여자만의 노을을 봐야 할까. 여자만은 거대하다. 잘 알려진 순천만도 여자만 안에 있다. 여자만이 수영장 크기 만 하다면 순천만은 수영장에 띄운 세숫대야 크기쯤 될까. 아름답기로 이름난 순천의 와온마을도 순천만에 있다지만 크게 보면 여자만에 속한다. 여자만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순천 와온부터 여수 남단의 화양면 해안까지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낙조 풍경은 걷는 길인 ‘해넘이길’에 있다. 해넘이길 중에서도 여수 소라면 사곡리 북촌마을에서 장척마을을 지나 궁항마을까지 이르는 4㎞ 남짓한 해안 길이 최고의 낙조와 만나는 구간이다. 이 길에는 바다로 향한 시선을 막는 구조물이 단 하나도 없다. 노을이 붉게 물드는 바다를 거칠 것 없는 시야로 마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를 가려면 카페 ‘티롤 978’을 찾는 게 요령. 카페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서면 해넘이길 구간이 있다. 티롤은 오스트리아 서부 산악지대의 지명. 그래서 그런지 카페는 깊은 산중의 산장 분위기다. 좀 뜬금없긴 하지만 목재로 마감한 유럽 산장 풍의 카페 느낌과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의 붉은 기운이 생각보다 썩 잘 어울린다.
여기에다가 여수 지도의 가랑이 위치쯤에 있는 장도를 추천한다. 여수 웅천 친수공원 코앞에 떠 있는 섬 장도는 여수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기업인 GS칼텍스가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한 ‘예술의 섬’이다. 지난 2012년 황무지에 가까웠던 망마산 자락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설계로 전남 최대의 문화예술 공간인 예울마루를 지은 GS칼텍스는 바로 앞의 섬 장도를 사들여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섬 전체를 문화공간으로 단장한 뒤 지난해 5월부터 ‘예술의 섬’으로 무료 개방하고 있다.
장도는 공원과 ‘진섬다리’로 연결돼 있는데, 썰물 때만 길이 열렸던 섬의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기 위해 새로 인도교를 놓으면서 조수간만의 차이가 클 때 다리가 잠기도록 설계했다. 다리가 물에 잠기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방문 전에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출입 가능 시간을 확인하는 건 필수다. 장도에는 바다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함께 옛 우물터 등을 복원한 공간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조성한 다도해 정원이 있으며, 예술인의 작업공간인 창작스튜디오도 있다. 섬은 크지 않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남해 자생나무와 야생화초 등이 심어진 다도해 정원을 한가롭게 거니는 맛이 훌륭하다. 아쉽게도 장도의 전시장이나 예울마루의 공연은 코로나19로 모두 운영이 중단됐지만 잘 다듬은 작고 한적한 섬을 명상하며 산책하는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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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탑사 절집의 가장 깊은 곳에는 ‘청라림(靑羅林)’ 당호를 건 운치 있는 한옥이 있다. 깊은 밤에 돌배나무에 걸린 달을 바라다볼 수 있는 자리다. 한옥이 끼고 있는 울창한 동백숲에서 내려다본 금탑사의 모습. 동백숲에는 이제 막 붉은 동백꽃의 낙화가 시작됐다. |
# 차를 놓고 걸어 들어가야 하는 섬
여수를 둘러보고 섬으로 들어선다.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 이번에 완공된 다리가 닿는 4개 섬의 행정구역은 모두 여수에 속한다. 여수와 고흥 사이에 섬이 떠 있고, 고흥과 더 가까운 섬도 있지만, 일대의 섬을 죄다 여수에 몰아줬기 때문이다. 새로 놓인 다리는 고흥으로 건너가는 다리지만, 그 전에 이들 각각의 섬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니 이 길 위에 오르면 섬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얘기다.
길이 놓인 뒤에 이들 섬은, 한마디로 북새통이다. 섬 안의 길이 워낙 좁은 데다 섬마다 상수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다리 개통 이후 특별한 용무 없이 차량이 무작정 섬으로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차가 단 한 대도 없던 섬에까지 차량이 줄지어 몰려드니 주민 입장에서는 감당 불가다. 아예 보초 서듯이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섬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쇠사슬과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차량출입을 단속하는 섬도 있다.
혹시라도 차량 통행을 막는 섬 주민이 야속하다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차를 마을 밖 공터에 세워두고 들어가 보면, 왜 주민들이 차량 진입을 막았는지 금방 이해된다. 아직 섬은 육지의 차량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길은 너무 좁고 주차공간은 모자란다. 차량을 제한 없이 섬에 출입시켰다가는 금방 뒤엉켜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러니 당분간은 불평 없이 차를 놓아두고 섬으로 들어설 일이다.
다리로 이어진 4개 섬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섬은 낭도다. 섬의 모양이 여우를 닮았다고 해서 ‘이리 낭(狼)’ 자를 쓴다. 낭도는 여수와 고흥 사이의 섬 중에서 가장 크다. 섬 동쪽에는 일대에서 가장 높은 상산(上山·283m)이 있다. 빼어난 조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산이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섬 주민들은 섬 중심의 마을을 ‘여산(麗山)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상산 얘기가 나온 김에 이쯤에서 잠깐 섬 마을의 지명 얘기를 하고 가자. ‘윗 상(上)’ 자를 쓰는 낭도의 상산에서 볼 수 있듯 일대 섬의 지명 대부분이 직관적이다. 에두르거나 상징하는 이름이 거의 없다. 압권이 바로 둔병도와 연결된 섬의 지명이다. 둔병도는 5m가 될까 싶은 다리로 조그마한 섬과 연결돼 있는데, 이 섬의 지명이 글쎄 ‘작은 섬’이다. 이보다 더 간명할 수 있을까. 이 지명만으로도 섬 사람들이 얼마나 에두르지 않고 셈 없이 순박하게 살아왔는지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 차를 타고 바닷가 벼랑을 달리는 맛
다시 낭도 얘기. 낭도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공룡 발자국의 중심은 낭도 동쪽 해안에서 빤히 건너다보이는 작은 섬 사도에 있지만, 여기 낭도에도 공룡 발자국은 숫자를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낭도와 사도, 추도, 이렇게 3개 섬에 남아있는 공룡 발자국을 모두 합치면 3600여 개에 달한다. 낭도에 남은 공룡 발자국 화석에서 공룡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발자국 대부분이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다. 중요한 건 발자국의 형상보다는 그것이 공룡이 찍은 발자국이라는 ‘사실’이다. 낭도의 공룡 발자국은 썰물에 더 많이 드러나는데, 발자국을 찾다 보면 섬 남쪽의 남포 등대 주변에서 기기묘묘한 지층과 주상절리대가 어우러진 갯바위 지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사도를 마주 보고 있는 긴 백사장 해안인 장사금과 아늑한 해변의 낭도 해수욕장에서는 고즈넉한 섬의 해변이 가진 낭만의 서정이 듬뿍 느껴진다.
적금도를 딛고 고흥 땅으로 건너가면 영남면의 우각산 자락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서 우주발사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추천한다. 바다를 바짝 끼고서 시야가 탁 트이는 벼랑을 따라 달리는 길이라 정취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여덟 개의 봉우리가 또렷한 팔영산을 오르거나, 팔영산 아래 평지에 들어선 능가사의 고즈넉함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폐교된 중학교를 손봐 문을 연 남포미술관도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 말고도 고흥에는 편백과 삼나무로 그득한 숲이 펼쳐지는 나로도가 있고, 한센병 환자를 수용했던 아픈 기억의 소록도가 있다. 레슬링 박치기 왕 김일의 고향인 거금도의 해안일주 드라이브 코스도 명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봄날이라면 꼭 다녀오라고 소매를 붙들어 안내하고 싶은 곳이 바로 고흥 천등산 아래 금탑사다. 거대한 편백나무 숲과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절집의 봄 정취도 좋고, 금탑사 주지 서림 스님이 ‘청라림(靑羅林)’이라고 현판을 걸어둔 절 뒤편의 근사한 한옥과 주변에 심은 매화며 벚꽃, 복사꽃이 빚어내는 경치도 훌륭하다. 다음 주말쯤 간다면 한옥 옆의 어둑한 동백숲에 모가지째 우수수 떨어진 동백꽃들이 낭자하게 뒹구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면을 보고 올 수도 있겠다.
■ 사라진 아름다운 섬마을 학교
노을이 빼어난 여수 소라면에는 한때 섬이었으나 이제는 다리로 이어진 ‘섬달천’이 있다. 섬달천에는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빛나던 소라초등학교 달천분교가 있다. 아니, 있었다. 시제는 과거형이 됐다. 1968년에 개교한 분교는 가장 낭만적인 섬마을 학교였다. 그러나 폐교 10여 년 만에 학교는 폐자재로 가득한 어지러운 공사판이 됐다. 그대로 두기만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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