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봄볕이 가장 먼저 닿는곳 해남 두륜산

醉月 2020. 2. 28. 17:58

집이 있었다. 만일암은 해남의 거찰 대흥사의 모태가 된 절집이다. 만일암 터에는 1000년의 시간을 건너온 오층석탑이 덩그러니 서 있다. 1000번이 넘는 봄을 보낸 셈이다.



아홉굽이 숲길이라 ‘구림리’ 봄이 길어서 ‘장춘동’

예년보다 일찍 핀 동백꽃 모가지째 후드득

푹신한 숲길 길섶엔 개불알풀·광대나물 지천에

산길서 마주친 암자… 세속과 떨어진 담박한 정신 느껴져


대흥사앞 부도밭,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존재감 넘쳐

1000년의 비바람 이겨낸 비범한 마애여래좌상

바위에 새겨놓은 선 하나하나 뚜렷하고 입체적

1200년 된 느티나무 ‘천년수’ 웅장한 풍모에 감탄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 말이 지금처럼 딱 맞는 때가 또 있을까요. 봄 같지 않은 봄. 꽃이 피어도 봄 같지 않은, 그런 봄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봄볕이 가장 먼저 닿는 남녘의 땅끝 해남으로 갑니다. 우리 땅의 가장 먼 끝입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 달력은 새로운 시작을 1월로 치지만, ‘생체시계’로 보자면 새로운 시작은 봄이지요. 봄은 겨울의 끝에서 시작되듯이, 모든 시작도 끝에서 출발하는 법.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하루빨리 봄소식이 전해지기를…. 이런 기원 속에서 해남 두륜산의 거대한 힘줄을 딛고 올랐습니다.


# 땅끝의 절집이 세상의 중심인 이유

▲ 우리 땅 남쪽 끝인 해남에는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노란 꽃받침의 매화가 화사하다.


해남에 두륜산이 있다. 교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남도의 거찰 대흥사가 깃들여 있는 산이다. 두륜산은 대둔산으로도 불렸다. 예로부터 ‘큰 언덕’이란 뜻의 ‘대듬’이나 ‘한듬’으로 불리다가 대둔산이 됐다. 지금의 이름 ‘두륜(頭崙)’은 백두산의 ‘두(頭)’에다 중국 곤륜산의 ‘륜(崙)’자를 합한 것이다. 중국의 곤륜산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흐르다 한반도 땅끝에서 쌍봉으로 솟구쳐 일어났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힘줄이 툭툭 불거진 바위 봉우리로 이뤄진 산세도 이름에 걸맞게 거대하다.

땅끝까지 가서 두륜산을 오른다. 두륜산에 오르려면 대흥사를 거쳐야 한다. 대흥사는 구림리 장춘동에 있다. 아홉 굽이 숲길이라 ‘구림리(九林里)’일 것이고, 봄이 길어서 ‘장춘동(長春洞)’이라 했을 것이다. 이곳의 봄이 긴 까닭은 ‘봄이 늦게까지 머물러서’가 아니라, ‘이르게 봄이 와서’다. 그 이름대로 봄은 이미 그곳에 당도했다. 물소리를 끼고서 유연하게 굽은 길을 따라 걷는다. 숲길의 동백꽃은 예년보다 보름 이상 개화가 일러 지금 한창이다. 모가지째 후드득 떨어진 동백꽃으로 군데군데 붉다. 초록의 길섶에는 개불알풀꽃이며 광대나물꽃들이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피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봄. 숲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대흥사의 스님은 “여기는 진즉 봄이었으니 호들갑 떨지 말라”며 웃었다.

대흥사로 드는 2㎞ 남짓의 숲길에는 금당천의 물길을 이리저리 건너가는 8개의 다리가 있다. 순서대로 다리 이름을 펼쳐 본다. 현무교, 이원교, 운송교, 홍류교, 강화교, 피안교, 반야교, 심진교.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사바세계에서 수미산까지는 쇠로 된 산 7개와 바다 8개가 가로막고 있단다. 대흥사로 드는 8개의 다리는 쇠로 된 산을 기둥 삼아 바다를 건너는 8개의 다리를 은유한다. 다리를 건너서 당도하는 수미산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산이다. 해남은 땅끝이지만, 8개의 다리를 건너 대흥사로, 두륜산으로 가는 길은 그러므로 세상의 중심을 향하는 길인 셈이다.


# 부도와 편액에서 불법의 정신을 읽다

대흥사로 드는 길에서 인상적인 것은 부도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대흥사 일주문을 지나 사찰의 중심 영역으로 들어서는 반야교를 건너기 직전에 기도하는 고승의 그림자 같은, 부도들이 늘어선 부도밭이 있다. 담장 안에 늘어선 부도는 존재감이 넘친다. 큰 것도, 작은 것도 있고, 장엄한 것도, 투박한 것도, 세밀한 것도 있다. 크기나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당당하다. 왜 안 그럴까. 이 부도가 기리는 스님들이 지금껏 1000년이 훨씬 더 넘게 대흥사를 지탱하고 선 바탕이자 토대이니 말이다. 부도밭으로 드는 문은 아쉽게도 잠겨 있지만, 낮은 담 너머로 오랜 시간 이끼로 덮인 부도를 볼 수 있다.

대흥사 부도밭에는 눈여겨봐야 할 두 개의 부도가 있다. 하나는 서산대사의 부도. 대흥사에는 임진왜란 때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왜적에 맞서 공을 세운 승병장 서산대사의 의발(衣鉢), 즉 가사(옷)와 발우(공양 그릇)가 있다. 북한 땅인 묘향산 보현사에서 세상을 떠난 서산대사의 의발과 부도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서산대사는 생전에 해남의 대흥사를 ‘전쟁을 비롯한 삼재(三災)가 미치지 못할 곳’이라며 옷과 공양 그릇을 옮겨 보관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불가에서 입적한 스님이 의발을 전수하는 건 제자에게 법을 전해주었음을 표시한다. 한 손에는 주장자(주杖子), 한 손에는 칼을 들어야만 했던 서산대사. 그의 깨달음과 고뇌가 대흥사에 오롯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서산대사의 부도는 크지 않지만, 형태가 날렵하며 문양이 선명하고 화려하다. 부도밭에 늘어선 수많은 부도 중에서 중앙 뒤쪽에 가장 화려하게 치장된 것을 찾으면 한눈에 가려낼 수 있다.

서산대사 부도 바로 앞쪽에는 조선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의 부도가 있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찻잔을 기울이며 교유했던 그 초의선사 말이다. 초의선사는 대흥사의 암자 일지암에 머물렀다. 대흥사에 그의 부도가 있는 이유다. 대흥사에는 추사가 쓴 편액이 여럿 있는데, 추사와 초의선사와의 인연 덕분이다. 부도밭에서 생각한다. 서산대사의 칼, 그리고 초의선사의 차. 그들이 곁에 두었던 것은 250여 년의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멀다. 그렇다면 그들이 여기 머물며 닦았던 구도와 불법, 화두와 구하고자 했던 답은 과연 같은 것이었을까.

추사 얘기를 꺼낸 김에 몇 마디 덧붙이자면, 대흥사 전각에는 추사와 함께 조선 후기 서예의 양대 산맥이었던 원교 이광사, 원교의 제자이자 호남의 명필로 꼽히는 창암 이삼만, 그리고 정조 임금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 당대의 명필이 남긴 글씨를 감상하고 그들의 인연을 짚어보는 것도 두륜산과 대흥사를 여행하는 또 다른 재미다. 아, 그리고 천불전 꽃 문살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해남 대흥사 해탈문을 나오면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대흥사 남원 영역의 건물들. 파노라마 같은 절집 건물 뒤쪽으로는 두륜산의 능선과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 침계루 앞에 피어난 매화의 향기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는 문은 사천왕상을 모시는 천왕문이 아니라 보현보살과 문수동자가 지키는 해탈문이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평지에 들어선 절집의 전경이 마치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진다. 기와의 지붕 선이 뒤쪽의 두륜산 능선과 대비된다. 대흥사에서는 해탈문에서 보이는 두륜산 능선을 ‘누워 있는 부처’ 형상이라 설명한다. 대흥사를 마주 보고 오른쪽 뒤쪽의 암봉, 그러니까 두륜봉이 누워 있는 부처의 머리이고, 옆의 가련봉과 노승봉이 가지런히 모은 부처의 두 손이란 얘기다. 두륜산의 정상인 가련봉보다 훨씬 낮은, 부처의 머리 자리에 솟은 봉우리가 두륜산과 같은 이름인 ‘두륜봉’이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그렇지만 산 능선이 누운 부처 형상이라는 얘기는 ‘부처의 현신을 바라는 마음’으로만 이해될 뿐이다. 그렇다고 하니, 그래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정도다.

대흥사의 구역은 금당천의 물길을 기준으로 북원과 남원, 그리고 서산대사를 기리는 표충사가 있는 별원으로 나뉜다. 절집의 대부분은 남원에 속한다. 해탈문을 들어서 마주하는 절집의 전경도 모두 남원 구역이다. 절집에서 남원 구역의 면적이 훨씬 넓지만, 절집의 중심은 북원이다. 대흥사가 여기서 시작했으며 절집의 본당인 대웅보전도 북원 구역에 있다.

대웅보전과 무량수각이 있는 북원 구역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게 대흥사의 마지막 다리인 심진교를 건너 마주하는 이층누각 침계루다. ‘시냇물을 베개 삼아 잠자는 누각’이란 뜻이다. 침계루 누각에서 건너온 심진교 쪽을 보면 금당천 물가에 매화나무 대여섯 그루가 줄지어 서 있다. 매화 가지마다 꽃을 피웠는데 절집이 고요해서 그럴까, 만개한 매화가 뿜어내는 향기가 대단하다. 두륜산에 오르는 길은 대흥사가 거느린 산내 암자로 가는 오솔길과 자주 겹친다. 두륜산 산길에서 마주치는 암자들을 꼽아 보자. 백화암, 청신암, 관음암, 진불암, 일지암, 상원암, 북미륵암, 남암…. 여기다가 ‘토굴’이라고 부르는 눈빛 형형한 스님들의 소도와 정진의 공간도 산중 곳곳에 있다. 암자와 토굴이 보여주는 건 세상과 멀리 물러앉은 것들의 담박한 정신이다. 소박하되 손때가 반들반들한 툇마루가 있는 이런 곳에 무슨 욕심이 깃들어 있겠는가.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703m)에 오른 등산객들이 완도와 다도해 일대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가련봉에 오르면 땅끝 해남의 바다와 들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 겨울나무 사이로 비치는 초록의 기운

두륜산을 오르는 코스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륜산 암봉 능선을 시계방향으로 크게 도는 코스. 이렇게 오르면 4시간 30분쯤 소요된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좀 작게 도는 코스도 있는데, 이렇게 가면 1시간이 줄어 3시간 30분 정도면 된다. 추천하는 것은 대웅전에서 일지암과 북미륵암을 지나 가련봉, 두륜봉을 거쳐 진불암 쪽으로 내려오는 3시간 30분짜리 코스다. 산행코스가 상대적으로 짧아 오르기가 쉽기도 하거니와 이 길을 택하면 두륜산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북미륵암과 천년수를 만날 수 있어서다.

두륜산 숲은 겨울나무 사이로 초록의 기운이 있다. 동백나무를 비롯한 난대림의 두껍고 반들거리는 이파리가 햇볕에 반짝이고, 허벅지 높이를 넘긴 푸른빛이 풍성한 신우대도 그득하다. 봄이래서가 아니고, 여기는 겨울에도 그렇다. 지금이 한겨울과 다른 점은, 푹신한 숲길의 길섶에서 초록의 풀들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는 개불알풀과 광대나물이 지천이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겨울 숲에 봄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순간을 가로질러 걷는다.

대흥사 대웅전에서 출발해 두륜산을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게 북미륵암이다. 북미륵암에는 한눈에도 비범함이 느껴지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신라 말에 조성됐다는 마애여래좌상의 표정은 온화하기보다는 엄격해 보인다. 단단한 화강석을 무른 비누처럼 깎아낸 듯한 솜씨는 탄성을 자아낸다. 1000년이 넘는 시간을 비바람 속에 보냈을 텐데, 바위에 새겨놓은 선 하나하나가 어찌 저리 뚜렷하고 입체적일까.

해남이 가진 국보는 두 개다. 하나는 우리 회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강렬한 눈매와 꽉 다문 입술, 한올 한올 세밀하게 그려낸 수염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귀기까지 느껴지는 그림이다. 모사본이긴 하지만 해남 윤씨 문중 종택에 조성된 고산 윤선도 유적지의 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의 국보가 바로 여기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이다. 바위 속에 갇혀 있던 부처를 생동감 넘치게 꺼내놓은 듯한 마애불 앞에 마주 선 감흥은, 윤두서의 자화상과 비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애여래좌상을 모신 북미륵암 용화전은 공사 중이다. 본래 노천에 있던 것을 국보로 지정된 뒤, 불상이 있는 건물 한쪽을 유리로 마감한 전각을 짓고 비바람을 피하도록 해놨는데, 보존에 문제가 생겼는지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공사 중 비가 들이칠까 싶어 정면을 나무판자로 막고, 장막까지 쳐놓았다.


# 멀리 물러나서 보는 봄의 경관

북미륵암에서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이나 두륜봉을 오르려면 올라붙어야 하는 만일재 능선 좀 못미처 만일암 터가 있다. 만일암은 한때 두륜산 불법의 중심이었다. 산 아래 큰 절인 대흥사의 시작도 바로 이 암자였다. 지금은 빈터지만 만일암은 여전히 대흥사가 거느린 산내 암자를 가르는 기준이다. 북미륵암과 남암의 이름은 만일암을 기준으로 한 것. 만일암의 북쪽에 있어 북미륵암이고, 남쪽에 있어 남암이다. ‘사라진 것’이 ‘남은 것’의 이름의 중심인 것이다. 만일암 자리에는 본래 7층이었으나 5층만 남아 있는 석탑 한 기가 대숲을 두르고 서 있다. 완벽해 보이는 비례에다 날렵하게 솟아 넘치는 석탑은, 그곳에 허물어져 사라진 만일암이 있었음을 알리는 증표로서의 가치를 빼고, 그저 치솟은 암봉을 지붕으로 삼은 미적인 아름다움만으로도 나무랄 데 없다.

석탑 아래쪽에는 거침없이 활개를 치듯 가지를 뻗어 자라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 22m 둘레 9.6m의 거대한 풍모의 나무는 ‘천년수’라 불린다. 천년수는 전라도가 공식 지정한 ‘천년나무’이기도 하다. 전남도는 지난 2018년 ‘전라도’라는 지명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지 10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전라도 천년나무’를 지정했다. 전남도 전역의 보호수와 천연기념물 4100여 그루의 나무 중 전문가 의견을 물어 세 그루의 후보 나무를 선정했다. 이렇게 뽑힌 나무가 강진의 푸조나무와 진도의 비자나무, 그리고 해남 두륜산의 천년수다. 이들 후보를 대상으로 SNS로 도민 대상 설문조사를 벌인 끝에 천년수가 전라도 천년나무로 선정됐다. 이름은 천년수지만 실제 나무의 나이는 1000년에 200년쯤을 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년수에는 ‘해를 매달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천상의 세계에서 계율을 어겨 쫓겨난 천동(天童)과 천녀(天女). 이들이 하늘나라로 되돌아가려면 하루 안에 미륵불상을 조각해야만 했다. 거대한 바위에 불상을 조각하기에 하루란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고심 끝에 천동과 천녀는 해를 여기 천년수에 매달아서 지지 않도록 해놓고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시간을 붙잡아 매고 천녀가 새긴 불상이 마애여래좌상이고….

만일재에서 거대한 바위처럼 얹혀진 가련봉 정상까지는 줄곧 철계단을 딛고 오르는데, 칼날 같은 능선을 이은 철계단의 경사도가 제법 급하다. 산행에 익숙지 않다면 아슬아슬 오금이 저릴 만한 구간도 곳곳에 있다. 6년 전 철계단이 놓이기 전에는 깎아지른 벼랑을 동그란 문고리처럼 생긴 쇠 손잡이를 바꿔 잡아가며 올라야 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던 길이다. 지금 남아 있는 옛 등산코스의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두륜봉 정상에 서서 고개를 들면 장흥의 천관산 능선이 보이고 발아래로는 완도의 다도해 일대의 경관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내륙의 들에는 겨울을 지낸 마늘밭과 보리밭의 초록이 짙다. 바다도 땅도 바야흐로 봄이다. 이리 멀리 가서, 높이 올라서 보니 봄의 기미는 한결 더 뚜렷하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긴 터널도, 멀리서 본다면 곧 다가올 봄으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라 믿는다.


■ 보해매실농원 ‘무관중’ 개화

해남에는 봄이면 온통 꽃으로 뒤덮이는 보해매실농원이 있다. 40여 년 전 46만2800㎡(14만여 평)의 면적에 1만4000여 그루의 매실나무를 심은 농원이다. 해마다 3월 중순 무렵 매화축제를 여는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여파로 축제도 취소되고 개방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한 농원의 꽃이 아무도 봐주지 않은 채 피고 지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