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식물 수목원 꽃잔치

醉月 2012. 3. 24. 11:33

춘분 하루 전인 지난 19일 찾은 경기 용인시 한택식물원 복수초 군락지. 활짝 피어난 개복수초 근처에서 4가지 복수초 중 가장 아름답다는 제주복수초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주말쯤 한택식물원에는 복수초가 땅을 노랗게 물들이고 싹을 틔워올린 튤립이 꽃망울을 터트릴 채비에 들어가게 된다. 나무 데크 뒤편에 가을철 빵 굽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계수나무가 있다.

봄의 전령을 찾아 남쪽으로 길을 떠났더니, 봄바람을 타고 산기슭에 ‘행복의 향기’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춘분 하루 전인 19일. 위세를 떨치던 꽃샘추위가 무색하게 복수초(福壽草) 무리가 땅을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복수초의 꽃말 ‘영원한 행복’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원주민 아이누족의 전설에서 유래합니다. 아름다운 여신 ‘크론’은 아버지가 땅의 신 용신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자 사랑하는 이와 영원한 행복을 찾아 야음을 틈타 도망칩니다. 화가 난 아버지가 크론을 끝까지 찾아내 이처럼 작고 가녀린 풀꽃으로 만들어버리지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복수초, ‘아도니스(adonis)’는 여신 아프로디테와 비너스의 사랑을 받았으나 멧돼지의 어금니에 찔려죽은 미소년을 뜻한답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비봉산 기슭 한택식물원에는 4가지 ‘영원한 행복’이 차례로 피어납니다. 이곳에는 북한·중국산 작은 복수초, 충청도 지역의 개복수초, 제주복수초(세복수초), 경기지역의 가지복수초가 차례로 피어납니다.

‘모란·작약원’ 정원에는 튤립과 수선화가 언 땅을 뚫고 비 온 뒤 죽순처럼 맹렬히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4월이 되면 이곳은 튤립꽃 천지가 될 것입니다. 튤립과 수선화에 이어 5월이면 모란과 작약으로 물들고 6월은 백합 천지, 여름은 해바라기를 닮은 루드비키아 세상으로 변합니다. 루드비키아의 꽃말도 ‘영원한 행복’입니다. 유럽의 선진 식물학자들도 부러워하는 것이, 이 모든 꽃이 함께 섞여 공생하며 심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온실 식물원이나 한두 종류 꽃나무만 심어진 식물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누군가 꽃을 사랑하게 되면서 미워하던 사람들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됐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야생화 뜰’에는 변산바람꽃 한 송이가 외롭게 피어있었습니다. 개울가에는 꽃잎이 많이 피면 풍년이 온다는 풍년화와 홍갯버들 산개구리알이 눈부십니다. 남산제비꽃에는 ‘순진한 사랑’, 모란은 ‘부귀’라는 꽃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는 신들이 또 다른 생명을 창조할 때마다 새로운 꽃이 태어납니다. 꽃이 있기에 신들이 태어나고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꽃들이 피어나는 셈이지요.

‘사람보다 아름다운 꽃이야기’(도솔)의 저자 오병훈씨는 “한 떨기의 꽃이 간직하고 있는 사연 속에는 달콤한 사랑이 있고, 쓰디쓴 배신이 있으며, 통쾌한 복수도 있다”며 “꽃에 얽힌 전설 가운데에는 사랑의 질투와 눈물 어린 이별도 있다”고 들려줍니다.

전면 주5일수업제가 실시되는 올해는 온 가족이 식물원, 수목원을 찾아 꽃과 나무의 꽃말, 이른바 사랑·순결·지혜·소망·믿음에 얽힌 사연을 들으며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꽃과 나무와 나누는 대화는 ‘성과사회’, ‘피로사회’에서 지쳐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위무해줄 것입니다.


사진 왼쪽부터 홀아비바람꽃, 남산제비꽃, 얼레지, 돌단풍.



◆한택식물원

#바오밥나무가 있는 국내 최대 종합식물원 = 1979년부터 조성돼 올해 33년째를 맞은 한택식물원은 66만㎡(20만평)의 산기슭에 36개의 테마정원과 9700여종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최대 종합식물원이다. 36개의 정원은 계절마다 식물을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기존의 계곡, 생태림 등의 지형지물을 살리면서 양지, 음지, 반음지 등의 식물의 생육조건을 고려해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농약을 사용하기보다 다양한 식물종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의 공존과 천적관계를 고려해 다양한 식물종의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조성된 친환경적 식물원이다. 특히 다양한 국내외 식물종을 보유하고, 식물연구소를 설립해 체계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외 식물원과 상호교류하는 등 정부가 해야 할 식물종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환경부로부터 ‘희귀·멸종위기식물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받아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을 보전하고 자생지를 복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자연생태원, 수생식물원, 억새원을 비롯, 모란작약원, 원추리원, 아이리스원 등에서 다양한 품종의 식물을 볼 수 있다. 온실이 아니라 대부분 야외에 조성된 점이 특징.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가 있는 호주 온실이 눈길을 끈다. 길이 7m, 둘레 3.5m의 국내 최대 크기로 호주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에 서식하는 바오밥나무는 볼거리를 더해준다.

아열대식물 컬렉션으로는 호주 온실 외에 남아프리카 온실이 있다.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희망봉 케이프식물대는 전세계 꽃이 피는 식물의 10%가 서식한다. 남아프리카 온실의 볼거리는 극락조 형상의 ‘극락조화’다. 올해 5월에는 남아메리카 온실이 개관한다. 온도를 높이기 위해 조성된 ‘지하 온실’에는 백서향(천지향) 향기가 진동하고, 몸을 마취시키는 독성식물인 마취목이 피어있다. 허브식충식물 온실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개성만점의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정원,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야외공연장도 조성돼 있다.

계절 따라 봄꽃페스티벌, 반딧불이체험전, 여름생태교실, 국화·단풍축제 등이 열린다. 아이들이 자연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및 전시 등 행사가 펼쳐진다. 주5일수업 전면시행에 맞춰 4~11월 문화관광해설사가 진행하는 가족생태체험프로 등 다양한 주제의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한다. 031-333-3558, hantaek@hantaek.co.kr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려 언 땅을 비집고 나온 가냘픈 몸매의 노루귀. 새로 나오는 잎의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노루의 귀와 그 모양이 흡사하여 노루귀라고 부른다. 오른쪽 사진 위부터 괭이눈, 깽깽이풀, 큰개불알풀꽃, 변산바람꽃, 앉은부채, 바오밥나무.



◆ 아침고요수목원, 물향기수목원

#아침고요수목원 = 경기 가평군 상면 행현리 아침고요수목원은 5월15일까지 미리 만나는 봄 ‘한반도 야생화전’이 열리고 있다. 야생화 전시실에는 300여종의 야생화들이 얼굴을 비추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야생화, 희귀식물과 수목원이 자리한 축령산 자생식물, 세계 고산식물 등이 한자리에 전시돼 있다. 점차 사라지고 있는 희귀식물을 가까이서 접해봄으로써 멸종위기 식물 보존과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교육공간이다.

각시석남, 구름국화, 두메양귀비, 좀설앵초 등의 희귀한 백두산식물 70여종과 제주도 자생식물 40여종 및 새우란 18품종, 복수초, 노루귀, 섬노루귀, 처녀치마, 광릉요강꽃, 두메부추와 같이 이름도 모양도 특이한 우리 야생화 150여종이 함께 전시돼 있다. 특히, 산림청과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보호식물 100여종 가운데 섬천남성, 대청부채, 금새우난, 개불알난(복주머니란), 설앵초 등의 50여종의 진귀한 야생화가 포함돼 있다. 1544-6703, www.morningcalm.co.kr

#물향기수목원 = 경기 오산 금암동의 경기도립 물향기수목원은 방문객들의 꽃과 나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재미있는 관람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배치, 4∼11월 수목원 해설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목원 해설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실시되며, 신청은 일주일 전에 홈페이지(mulhyanggi.gg.go.kr)를 통해 예약, 접수하면 된다. 지난해에는 하루에 한 번 실시했는데 신청자가 폭주해 올해부터는 오후에도 수목원 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참가비는 무료. 수목원 해설은 10~15명씩 소그룹별로 자원봉사 숲해설가 1명이 20개 주제원 등 관람코스를 돌며 1~2시간 동안 진행하며, 주제원별로 식재된 수목의 이름과 유래, 특성, 얽힌 사연 등 재미있는 설명을 들려준다.

2006년 문을 연 경기도립 물향기수목원은 약 33만㎡(10만평) 규모로, 총 4.5㎞의 관람코스를 따라 수생식물원·습지생태원·분재원·물방울온실 등 20개 주제원에 총 1700여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어 웰빙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 농업 경쟁력을 살릴 해법이 뭔지 아세요. 식물을 가꾸는 것이 농업인데, 우리 국민이건 정부건 식물에 너무 무관심합니다. 선진국처럼 청소년들을 상대가 제대로 된 식물 교육을 시키는 것이 우리 농업을 살릴 근본대책입니다.”

식물원에 꽃구경을 갔더니 한택식물원 이택주(71·사진) 원장은 느닷없이 우리 농업 경쟁력과 더불어 전세계에 불고 있는 ‘종자전쟁’ 얘기를 꺼냈다. 33년간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등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고 중국과 유럽, 남미까지 직접 가서 전세계 식물 품종 연구와 국내 자생지 보존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 등에 우리 꽃씨를 보급하며 청소년들이 직접 식물을 가꾸면서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한 개인이 해온 셈이다.

이 원장은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국민이 식물이 뭔지도, 식물을 가꿀 줄도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며 그런 나라의 농업에는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과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들은 국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청소년들을 상대로 식물 교육을 시키고 이들 중에서 식물분야, 농업의 미래를 짊어질 역군들이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식물원이 하는 일 중에는 전세계 식물종을 많이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영국은 국내 고유식물종이 1800종으로 우리나라의 3500여종에 비해 훨씬 적다”며 “하지만 전세계 식물유전자원 22만종 중 영국은 기본종을 4만5000여종 보유하고 있고 독일·미국은 각각 5만여종인데 우리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칠레에 갔더니 안데스산맥의 종자를 과거에는 유럽에서 다 가져갔는데 지금은 중국이 싹쓸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앞으로 1, 2년 내에 아름다운 메코노피스 군락을 이룬 고산식물원과 19세기 말 유럽 부호들이 중국에서 가져간 철쭉의 일종인 ‘로드 댄드론’ 가든을 가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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