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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쁜 노동속에서도 자연의 축복과 향연을 만끽

醉月 2008. 11. 5. 12:04
숨가쁜 노동속에서도 자연의 축복과 향연을 만끽   
● 도시에서는 ‘오륙도’로 명퇴 대상이지만 시골에서는 쓸모 있는 노동력
● 3년 전 歸鄕 결정, 친환경 농법으로 차밭 관리
● 노동은 힘들어도 자연과 함께 思惟할 수 있어 행복

崔暎基 보향다원 대표
⊙ 1956년 전남 보성 출생.
⊙ 보성농고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 수료. 광주대 행정학과 졸업. 전남대 행정대학원 석사.
⊙ 동아건재상사 대표, 세아개발 대표이사 역임.

전남 보성군 회천면 녹차밭. 끝없이 펼쳐진 차밭은 보성군의 주요 관광 자원이다.
 “쓰르름, 쓰르름, 매엠 매엠….”
 
  오늘은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예년 같으면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고, 한낮에는 서늘할 때인데도 계절을 잊은 온난화 때문인지 9월 중순의 날씨가 30℃가 넘어 한여름을 무색케 한다. 오늘로서 풀베기 작업이 나흘째다. 장마 끝나고 8월 초순에 두 번째 풀을 베고 이번이 세 번째인데 잡초들이 벌써 게으른 주인을 놀리듯 茶(차)나무와 키재기를 하고 있다.
 
  찻잎을 따려면 풀잎이 들어가지 않도록 풀 작업을 먼저 해야 하기에, 이랑 사이를 처외삼촌 벌초하듯 대충대충 베는데도 앞으로 네댓새는 더 해야 할 것 같다.
 
  새벽에는 시원하다고, 낮에는 일 줄인다고, 저녁때는 해지기 전에 한다고, 종일 작업을 하고 나면 허리 어깨 목 등 온몸이 뻐근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또 그런대로 일할 만한 이유는, 도시생활처럼 스트레스로 마음고생 않고, 온몸이 흙 범벅이 되어 열 달 걸려 지은 황토집에서 생활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차를 자주 마셔서인 듯싶다.
 
  刈草機(예초기·풀 베는 기계) 시동을 걸고 한참 지나면 온몸은 비를 맞은 듯 땀에 흠뻑 젖지만, 윙윙거리는 엔진 소음도 없는 듯 들리지 않고, 양 어깨에 실린 예초기의 무게와 감각도 잊은 채, 마음은 깊은 고요와 평온함에 빠져든다. 가끔씩 날아오르는 메뚜기나 사마귀를 보고는 삶터를 앗은 미안함에 멈칫거리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나만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3년 전, 자연을 사랑하고 차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향(전남 보성)으로 내려오자는데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동안 서울과 강원도에서 해오던 부동산 개발과 임대 사업 등에 비해 수입은 비교가 되지 않고, 훨씬 힘들고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극구 만류하는 가까운 분들의 애정 어린 충고도 귀에 와 닿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歸鄕 결정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보향다원’농장.

  팔순에 가까운 어머님이 계시는 古宅(고택)과 7000여평의 ‘보향다원’이라 이름 지은 차밭, 宗孫(종손)이라는 이유 말고도, 20여년 전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고 틈을 내 내려와서 先山(선산)을 돌보고, 차를 재배하고 만들며, 정원을 손질하고 정을 붙여 왔기에 더 나이 들기 전에 歸鄕(귀향)해야 한다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동안 나는 80여년 된 한옥을 수리하고, 아담한 製茶室(제다실·차를 만드는 방) 곁에 다실과 방을 황토로 짓고,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대만에서 틈틈이 차 공부를 해 왔다. 5년 전에 전남대에서 차 관련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것도 귀향을 하겠다는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보성에 이사 온 후에는, 몇 개씩 봐오던 신문과 TV 없이 지내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정성을 다해서 맛있게 만든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러한 우리 가족의 행복과 기쁨은 어머님이 지극하신 정성으로 드리는 간절한 염원과 기도에 응답하는 하늘의 축복으로 알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바로 머리 위에 손이 닿을 듯 떠있는 반짝이는 별들, 새소리, 풀벌레 소리, 철따라 피어나는 온갖 꽃들, 뾰족이 숨죽이며 올라오는 귀여운 어린 찻잎과 차 밭의 아침이슬방울까지도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하고 또 감동시킨다.
 
  5대째 물려받은 옥토를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게 보존하고자 일체의 화학비료, 농약, 제초제, 축분의 사용을 배제했다. 김을 매고 미생물 발효퇴비와 깻묵퇴비를 주어 지렁이와 유용미생물(EM)의 증식을 유도하는 등 친환경농법으로 차 밭을 관리했다. 덕분에 유기농과 품질 인증을 받은 발효차와 녹차를 상표등록할 수 있었다. 포장을 디자인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차의 재배, 생산, 제조, 가공, 판매 등 그야말로 북치고 장구치고 나팔불고 피리불면서 노래 부르는 1인 5역의 바쁘지만 신나는, 서울생활 뺨치는 바쁜 생활의 연속이다.
 
  여기서는 ‘바쁘지만 신나게 지내는 농촌생활’이 되기까지의 지난했던 일들은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苦盡甘來(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 가운데 ‘甘來’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우리 농장에서 생산되는 차에 ‘황금 명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동안 땀 흘린 노력과 정성이 헛되지 않았음인지, 영롱한 황금색 빛깔을 띠는 황금 명차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좋다. 최근에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우이산(武夷山)에서 조상 대대로 차를 만들며, 중국차의 큰 맥을 잇고 있는 천훙?(陳鴻棉) 선생도 높은 평가를 해주셨다.
 
  우리 집은 식구들이 아주 많다.
 
  아침에 일어나 西南向(서남향)의 나지막한 야산에 자리잡은 차 밭을 올려다보면, 영롱한 이슬 머금은 차밭에 은색실로 수많은 장막을 펼쳐놓은 거미들, 여기저기서 풀썩거리는 메뚜기와 사마귀, 황혼녘에는 셀 수 없이 몰려나와 춤추는 잠자리, 지렁이, 두더지, 도마뱀, 두꺼비를 비롯해 논이나 들에서 먹잇감을 구하지 못해 차 밭에 올라와 벌레를 잡는 안쓰러운 두루미, 아주 작은 매미충까지 아끼고 사랑스러운 한가족이다. 거기에 찻잎 말고도 쑥, 자운영, 민들레, 철따라 피어나는 온갖 야생화와 잡초까지도 한가족이다.
 
 
  쉰네 살의 젊은 총각(?)
 
  나는 차와 관련한 학문과 여러 분야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지도, 하지도 못한다. 그런 일천함이 코끼리의 다리, 아니 발가락조차 만지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가끔씩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쩌랴. 밤이나 낮이나 걷고 또 걷고 구르고 넘어지며 부대끼면서 가다 보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차 관련 책자나, 차 밭을 촬영한 사진들 가운데 찻잎을 따는 사진을 보면 참 여유가 있어 보인다. 시원스레 펼쳐진 초록물결 위에 한가롭게 차를 따는 예쁜 아가씨와 아주머니들….
 
  그러나 실제 차 밭에서 예쁜 아가씨는 물론 아주머니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품삯을 받기 위해 농사일을 다니시는 분들에게 비교적 인기 있는 찻잎 따기도, 같은 동작이 반복되니 물정 모르는 초보자는 한두 시간만 해도 손발에 쥐가 날 정도다.
 
  이러한 일을 종일 하고 나면 고개, 어깨, 허리, 손, 발 등 안 아픈 곳이 없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는 농촌생활이 너무 힘들고 전망이 없어 갈수록 농촌의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이다.
 
  찻잎을 따려고 모셔오는 할머니들의 연세가 대부분 60대 중반부터 80대 중반까지이고, 50대는 가뭄에 콩 나듯 하며, 그 이전 세대는 아예 맥이 끊긴 상태로, 농촌의 노령화와 離農(이농)의 심각성이 피부에 절실히 와 닿는다.
 
  올해 쉰넷인 나는 열댓 가구 사는 우리 동네의 농사짓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일하러 오는 분들 가운데서는 젊은 총각이다. 새참 심부름, 물 심부름에 출퇴근시켜 드리는 운전기사 일까지 내 몫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일명 ‘오륙도’로 명퇴 우선순위인데 시골에서는 쓸모가 있어 다행스럽다.
 
  지난 1960년대, 우리나라 인구가 3000만명일 때 2개 읍 10개 면인 보성군의 인구가 15만명으로, 전 인구의 0.5%였던데 비해 5000만명인 지금의 보성은 고작 5만명으로 전 인구의 0.1% 가량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농촌의 예상 가능한 유일한 안정적 소득원이었던 쌀농사가 어려우니, 흡사 기둥이나 대들보가 없는 집처럼 흔들리고 있다. 고정적인 소득원이나 뚜렷한 돈벌이가 없으니 돈이 되는 작목이라면 너도나도 몰려 과잉생산이 되거나, 가격이 좀 좋다 싶으면 물가안정이라며 들여오는 턱도 없이 값싼 수입농산물로 인해 빚만 지고 주저앉곤 한다. 농촌의 절박한 현실에 대해서 정치인들과 관계당국은 어떤 대책들을 강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농촌 죽이는 매스컴의 어설픈 고발 프로
 
  매스컴의 어설픈 고발 프로도 차 농가들을 힘들게 한다. 작년 여름, 한 방송국의 일부 차 재배농가 농약 살포 보도로 인해 전국의 차 재배농가들이 완전 초토화된 몇 달 뒤에 ‘茶馬古道(차마고도)’란 프로를 때맞춰 방영해서 농약 뿌린 국산차와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차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것을 보면서 제작자의 국적을 의심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일본·중국·대만의 차 주생산지는 고온다습한 아열대 지방이어서, 여름철 외에는 기온이 낮고 四季(사계)가 뚜렷하며 병충해 발생빈도나 피해가 적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민들의 충격과 파급효과를 예상한다면, 각국의 차 병충해 발생과 방제 실태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심층적으로 보도해야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지, 취재하기 손쉬운 대상 몇 군데 골라 전체인 것처럼 보도해서 엉뚱한 농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면 누가 보상을 해줄 것인가.
 
  힘없는 차 재배 농민들이 재벌회사처럼 큰 광고주가 아니기에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국산 차 제품의 영세한 매출액과는 비교할 수 없는 커피에 관한 보도는 왜 하지 않는지? 다국적 기업들의 대규모 커피 농장에 비행기로 뿌려대는 것은 농약이 아니라 영양제일까?
 
  일 년, 아니 몇 개월 기른 배추나 채소 값이 폭락했다고 몇 백평 갈아엎으면 큰 뉴스거리로 앞다투어 보도를 하면서, 매스컴의 보도로 인해 차가 아예 안 나가는 것을 비관해 몇 년씩 길러 자식과도 같은 3만여㎡를 갈아엎어도 이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듣지를 못했다.
 
  국내에서 커피만 마시는 국민들도, 중국이나 대만에 여행을 가면 차를 사온다. 어떻게 재배한 찻잎으로, 어떤 공정을 거쳐,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로지 가격 흥정만 한다. 아무리 흥정을 해도 99%가 바가지라는데 그것도 모르고, 질 낮은 차와 엉터리 보이차 등 각종 차를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오는 것을 보면 힘들게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의 낭비, 국민의 건강 우려, 우리 차 농가의 수익 감소가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이런 행태에는 국산차를 불신하게 만든 매스컴의 보도가 한몫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자연과의 조화
 
  녹차 일변도가 아니라,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계층인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차의 다양화와 품질의 향상, 친환경 재배면적의 확대 등 차 재배 농가와 차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뼈를 깎는 꾸준한 노력이 계속된다면 다시금 국민들의 따뜻한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땀과 노력으로 애써 가꾸고 만든 우리의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그러한 관심과 사랑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도시로의 행진에서 농촌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면, 많은 분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의 축복과 향연을 함께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온종일 풀을 베고 들어와 저녁 식사를 마치니 벌써 아홉시다. 땡볕 더위도 이제는 한숨을 돌리고 소쩍새, 귀뚜라미, 온갖 풀벌레 소리의 합창소리가 휘영청 올라오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 너무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자연은 늘 스스로 그러한데 우리네 인간은? 이런 思惟(사유)가 나를 농촌에 붙잡아 놓는 힘은 아닌지. 이런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인해 나의 잠자리는 달콤하다. 설령 내일 아침 호흡을 가쁘게 하는 노동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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