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서출지(書出池)의 전설

醉月 2008. 9. 23. 18:03

신라 21대 임금에 소지왕이란 분이 계셨지.....
 
  신라 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은 자비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서불한 미사흔의 딸로 김씨이다.

왕비는 이벌찬 내숙(乃宿)의 딸로 선혜부인(善兮夫人)이시다.
 
  비처왕이라고도 불리는 소지왕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나고 겸공으로 처세하여 사람들이 다 그에게 굴복하였다.

479년 부왕이 돌아가자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림에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천신을 지성으로 섬기었다.
  즉위 원년 대사령을 내려 패륜의 범죄자를 제외하곤 모두 석방하였다.

모든 관원들의 벼슬을 한 계급씩 올려서 공직사회의 사기를 진작하는 정책도 썼다.

산거대제(山巨大帝)처럼 즉위를 반대하던 자들을 표적사정하거나 즉위를 도왔던 동지들을 토사구팽하거나 즉위 후에
선량한 공직자들을 싸잡아 복지부동이라고 매도하잖았던 것이다.

그는 정책을 실행함에 있어서 즉흥주의 인기주의에 따라 갈팡질팡하잖았다.
한번 더 생각하여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하늘을 받드는 일[敬天愛人]이라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시행하였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재위 4년째 되던 해부터 나라에 괴변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2월에 때 아닌 태풍이 불어 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졌다.
  3월에 가서는 금성 남문에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나서 남문을 몽땅 태웠다.
  4월에는 오랫동안 비가 끊이잖고 내려서 농부들을 근심하게 하였다.
  5월에는 강적 왜구가 해안을 침략하여 여러 날 약탈을 하다가 돌아갔다.
 
  다달이 월례행사로 좋찮은 일들이 발생하자 왕은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고 반성하는 한편 억울한 죄인이 없나를 조사하였다.

죄인 100명을 놓치는 일이 있어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며,

혹 그 억울함이 하늘에 사무쳐 천재지변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그러나 재해는 그치잖고 다음 해까지 이어졌다.
  4월에 시작된 장마가 6월까지 계속되어 이재민들이 왕창 합동으로 발생하였다.

왕은 이재민들을 가까운 관공서와 서당에 수용케 한 후 친히 찾아 위문하고 정상에 따라서 곡식을 배급하게 하였다.
  11월엔 때 늦은 천둥이 치더니 그 후로 경주일원에 질병이 만연하였다.
이러한 괴변은 다음 해까지 이어져서 3월에는 관상감의 일관(日官)이 보고하기를 상서롭지 못하게 토성이 달을 범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한여름에 우박이 심하게 내려 농사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추수 때를 타서

7월에는 고구려군이 북변을 침략하여 농산물을 약탈하려 하였으나 백제군과 합세하여 모산성에서 이를 대파하였다.
 
  연 3년간이나 나라에 재해가 심하였던고로 왕은 깊이 반성하기를 이는 신들을 섬기는 정성이 부족한 연유라 생각하여

친히 시조의 사당에 나아가 제사하고 사당지기 20호를 더 늘려서 시조신을 받드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지시하였다.
 
  9년째 되던 해 2월에는 내을(奈乙)에 신궁을 신설하였는 바, 내을은 시조가 탄생하신 곳이었다.

후로 왕은 매년 정례적으로 시조의 사당에 나아가서 제사를 올렸고 그 외에도 중대한 국사가 발생하면 보고제를 올렸다.
 
  행차가 잦다보니 오며 가며 일행이 쉴 처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당에 가는 노중에 맑고 좋은 샘이 있는 곳을 택하여 정자를 지으니

그 샘의 이름, 천천(天泉)을 따서 천천정이라 하였다. 

더군다나 천천정은 멀잖은 곳에 자그마한 연못까지 하나 있어서 경관이 매우 좋았다.

왕은 꼭 제사를 드리는 일이 아니더라도 경관이 좋은 이곳 천천정에 자주 행차하여 신하들과 풍류를 즐기고 호연지기를 기르다가

궁궐로 돌아오곤 하였다. 자연 일관들을 자주 대동함에 그들의 업무가 중대해졌고 제사를 주관할 분수승(焚修僧)들을 여럿 뽑게 되었다. 분수승들은 대궐에서 주로 번제(燔祭)를 드리는 일들을 주관하였다.
 
  즉위하여 10년 가까이 성심으로 백성을 다스림에 그 은택이 사해에 골고루 미치게 되었고, 또 신령들을 극진히 위하매

나라는 드디어 태평해지기 시작하였다. 정월에 월성으로 이거한 후 2월에 일선군을 순시하여 4궁(홀아비 홀어미 고아 외토리)을 위로하고 형편에 따라 생존보호대상자와 거택보호대상자 소년소녀가장으로 지정케 하여 국고보조를 하게 했다.
  3월에는 일선에서 돌아와 순시한 고을에서 사형죄만을 제외하고 다 사면하였다. 이렇게 투철한 애민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리자

하늘도 감복하였던지, 그 잦던 재앙이 모두 사라졌다. 경사스러운 일이 연이어 생기게 되고 상서로운 조짐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 첫째가 6월에 동양(東陽)에서 육안구(六眼龜-눈 여섯 달린 거북)를 잡았다고 진상하였는데

그 거북의 배 아래에 글자가 찍혀 있었다.
  또 하나는 참으로 괴이한 사건으로, 듣는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소지왕까지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였다. 며칠 전 천천정 가는 길의
연못 숲속인 천경림(天鏡林)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아랫 마을에 홀어미를 모시고 사는 맘씨 착한 노총각 나뭇꾼이 있었다.
 
  이름하여 정동우.
  나무를 하다가 그만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다. 나무꾼은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여 이미

생존보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있었다. 도끼를 다시 살 여유도 없을 뿐더러 당장 오늘 먹을 때거리조차 없었다.

밥벌이 연장을 잃고는 망연자실하여 연못을 들여다보고 하염없이 목을 놓고 애이주 안 걸렸다는 주연미처럼 울었다.
 
  한 시각이나 울어 눈이 퉁퉁 부어 부엉이 눈이 다 되었을 무렵,

홀연히 연못 한가운데서 머리도 수염도 옷도 모두 허연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허허, 거기 젊은이. 안면(安眠) 방해되게 시끄럽게 우는 연유가 무엇이냐? 
  나뭇꾼은 기가막혔지만 하나밖에 없는 도낄 잃은 연유로 울고 있음을 말하곤 내쳐 열심히 울었다.

노인은 암말않고 머구리 모양 물 속으로 잠수를 하더니 잠시 뒤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도끼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 도끼가 네 것이냐? 
  나뭇꾼은 가난하게 살망정 어머니로부터 정직은 최상의 정책이다
(Honest is best policy.)라는 가르침을 받아왔기에,    아니 라고 단호히 대답하였다.
  노인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은도끼를 들고 나왔다. 
   이것이냐? 
  이에 나뭇꾼은 화가 나서 노인에게 따졌다.
   어르신! 어르신은 낭구를 안 해 봉께 잘 모르시는 모양인디, 금이나 은 은 낭구보다 물러서 도끼로 못 쓰지라우.

그라지 말고 순순히 제 도끼를 퍼뜩 찾아줍서예… 
  노인은 야릇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 이번엔 쇠도끼를 들고 나왔다.

나뭇꾼이 보니까 자루에 품자 표시가 찍힌 게 틀림없는 자기 도끼였다.
   이 도끼가 그대 도끼냐? 
   오 예 맞습니다.
  그 노인은 감격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참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나무꾼이로구나. 이 도끼 세 자루를 모두 다 줄 터이니 가져 가거라.
 
  그 나뭇꾼이 세 자루의 도끼를 몽땅 왕에게 진상한다고 오늘 가져온 것이다.

소지왕은 창부(倉部)에 명하여 나뭇꾼에게 쌀 30석을 내리게 하고 또 예부(禮部)에는 즉시 고을의 처자를 하나 간택하여 장가를 들
이도록 명하였다.
 
  왕은 그 도끼들을 보았다. 쇠도끼는 여느 대장간에서 만든 평범한 도끼였으나 금도끼와 은도끼는 인간세상의 금은하고는

순도와 광채에 있어서 그 격이 현격하게 달랐다.
   어쩌면 이런 광채가 날 수 있을까?
 
  소지왕은 감탄하면서 가혜궁주(嘉惠宮主)에게 말을 걸었다.

가혜궁주는 작년에 새로 들인 후궁인데 일색이었으나 성격에 좀 문제가 있었다.

후궁 중 나이가 좀 많은 편이어서 그런지 희수태리(姬愁態裡)가 심하고 강짜가 보통이 아니었다.

심지어 왕비와 동침하고 온 날도 질투를 하며 왕의 속을 썩히는 것이었다. 그런 일로 최근에는 잠자리에서 왕과 심하게 다툰 적도 있는데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서 그렁저렁 넘어가지만 왕은 무척 피곤하였다.
  그러나 가혜궁주의 요분질이 그래도 후궁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교접욕이 제일 왕성하기에 소지왕은 그녀를 자주 찾았다.

그녀하고 야사를 치루고 나면 몸이 싹 녹는게 가뿐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한탕 더 뛰자는 걸 멋모르고 받아주었다간

담날은 아주 녹초가 되어 정사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정사(情史)가 과하면 정사(政事)를 보는데 지장이 있었다.

가혜궁주는 음욕이 너무 과한 것 같다고 왕은 생각되었다.
 
  그러한 그녀가 왕을 더 자주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하여 금년 정월에 왕을 아주 월성(月城)으로 이거케 하고

매일 밤 왕의 사랑을 갈구하였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반년 넘게 왕을 독점하면서 매일 밤 왕과 사랑을 나누었으나 기다리는 좋은 소식… 임신이 안되는 것이다. 아기배는 부르잖고 똥배만 불러오는게 일색이던 몸매도 어느덧 맛이 가고 있는 듯 했다. 가혜궁주는 초조하였다. 그래서 분수승을 불러다 애기를 어떻게 가져볼까 하여 여러 가지 비방을 써보고 하였지만 별무신통이었다.
 
   대왕마마! 그 금과 은을 녹여서 소첩의 팔찌와 목걸이를 만들어 주시와요. 그러면, 정말 우아하고 찬란할 것 같아요…
   가혜궁주! 어찌 그리 한심한 말씀을 하시오? 이 도끼가 어인 도끼요?

착한 나뭇꾼에게 신인이 선물한 물건을 그래 장신구나 만들어 찬단 말이오?

그러다가 신벌(神罰)이 내리면 어이 감당하려고 그러오?
이건 천존고(天尊庫)에다 간수하여 두고 백성 순화 교육자료로 써야 하오.

그리고 정직한 나뭇꾼의 이야기는 백성서당 덕육(德育) 교과서에 수록하여 좋은 훈육자료로 사용하여야겠소.
 
  소지왕은 가혜궁주가 얼굴은 예쁘지만 소갈머리나 얌통머리가 없는 게 한심스러웠다.

처음에 단정하고 빼어난 인물만을 보고 궁주로들였으나, 이제 나이 먹어가니 하초맛에 대하여서도 심상해지고 점점  여자란

결국 마음이 일색이어야 하누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
     얼굴 반반한 것이 얼굴값 한다
     얼굴 일색이 마음 일색만 못하다
     일색이 나라를 망훗는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아니 여봇! 그렇게 귀한 것이면 사랑하는 아내에게 패물로 해주면 어디가 덧나요?

내게 해주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단 말이어요?

 처음 날 후궁으로 들일 땐 간이라도 빼줄듯이 살살거리고 밤이면 밤마다 싫다는 사람을 천하를 다 줄듯이 어루면서 씩씩거리며 덤비더니. 이제는 단물 다 빠졌다고 흑싸리 껍데기 보듯 해!! 아이고 분해라, 엉엉엉…
 
  소지왕은 울컥 치미는 울화를 누르고 월성을 나왔다. 대궐로 환궁한 후 여러 날 동안 칩거하였다.

그리고서 모처럼 선혜왕비와 관계를 가졌다. 왕비는 확실히 가혜궁주보다는 몸맛도 기술도 떨어졌다.

그러나 부부간에 뭐 꼭 그것만 바라고 하나. 정으로 하는 거지.

그러길래 늙으면 冒도 정이라잖아, 천천정에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들은 소린데 이러더라.
 
  열 살 줄은 서로 멋모르고 살고,
  스물 줄은 서로 아기자기하게 살고,
  서른 줄은 눈코 뜰새없이 살고,
  마흔 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 줄은 서로 가여워서 살고,
  예순 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 줄은 서로 등 긁어 주는 재미로 산다.
 
  소지왕은 꼬옥 보름을 왕비 곁에 붙어 있었다. 왕비를 모시는 현상궁이 더 흐뭇해 했다.

현상궁은 전에 월성으로 왕을 모시고 간 적이 있었는데 왕에게 너무 착 달라붙는다고 가혜궁주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은 후론 감정이 안 좋은 상태였다.
 
  소지왕은 왕비와 최근에 있었던 경사스러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처럼의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선혜왕비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대왕마마! 그 나뭇꾼의 이야기가 진실일까요?
  혹시 특종을 좋아하는 언론의 조작이거나 혹은 선행상을 노린 자작극이 아닐까요?

마마께서 처음으로 시장을 개설하시고 패미(패米)를 화페로 사용케 하신 후, 상가분양권이 폭발적 인기니까요. 모범백성상
을 타면 자동으로 분양권이 나오잖아요?
  의심은 나쁜 거라지만 물속에서 신인이 나오고, 귀한 금도끼 은도끼를 상으로 주었다니 믿기기 어려워요!

그런 건 옛날 동화책에나 나오는 것 아닌가요?
 
   왕비! 의심암귀(疑心暗鬼)라고 하였소. 사람이 한번 의심하면 한이 없다라는 말이요.

남의 선행을 의심한다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요.
이제 겨우 짐이 백성을 성심으로 다스린지 10년만에 시화년풍(時和年豊)하고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조짐으로 나타난 상서로운 일인데…
   대왕마마! 황공하옵니다. 소첩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옵소서.
   아니오! 짐도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긴가민가 하였소.

사실을 확인도 할 겸 천신에 감사도 드릴 겸 해서 내일은 천천정에 행차할 참이요,

나도 연못에 가서 도끼를 빠뜨리고 울어 볼 참이요. 과연 신인이 나타나서 내게도 금도끼 은도끼를 주나 보려고요. 하하하…
   대왕마마 장난도 심하시옵니다. 호호호.
  그리하여 소지왕은 담날 천천정으로 행차를 하게 되었는데…

               
… 역사는 전파되기 마련이고
… 선도는 홍보되기 마련이다

 

  소지왕의 천천정 행차에는 배상궁이 수종하고 일관들이 뒤따랐다.
배상궁은 열 일곱에 궁궐에 들어와서 궁궐일을 본지 30년이고 재작년에 지밀상궁이 된 아주 노련한 여자였다.

그녀는 왕의 표정만 보고도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아낼 정도다. 
 
  호위대장으로는 재작년에 부장에서 장군으로 승진한 실죽(實竹)이 어가를 호위하였고, 대신으로는 이벌찬 오함(烏含)이 수행하였다.
  4년 전 관등 2위의 이찬에서 1위의 이벌찬으로 승진한 오함은 별명이 까마귀였다.

얼굴이 검은데다 이름자에조차 까마귀[烏]가 들어 있어서이다.  그를 승진시킬 때도 관리의 위계를 주관하는 위화부(位和部)
의 반대가 심하였다. 까마귀는 상서롭지 못한 불길한 짐승이온데,

하물며 일국의 최고 관등에 불길한 까마귀를 등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얼굴이 희고 훤칠하며 상서로움의 상징인 학(鶴)자가 든 학이(鶴伊)공을 승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위 학오논쟁(鶴烏論爭)이라는 것이 이때 벌어진 것이다. 이에 왕께서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논리로 그 주청을 물리치셨다.
 
  효도는 덕의 근본일쎄. 또한 효도는 백행의 근원일쎄. 모든 고금동서의 성인들이 부모를 효도로 섬기라 하였으니 효도라 하는 것은

자식된 자가 고연한 직분으로 당연히 행할 일이네. 까마귀는 먹을 것을 물고 돌아와서 어버이를 기르며 효성을 극진히 하여

망극한 어버이 은혜를 갚아서 옥황상제께서 정하신 본분을 지키어 자자손손이 천만대를 내려가도록 가법을 변치 아니하는 고로

옛적에 백낙천이 이르기를 새 중의 증자라 하였고, <본초강목>에는 자조(慈鳥)라 일컬었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어떠한가?
  노인 병원이 적자로 문을 닫자 그 앞에서 병든 수천 노인들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는데, 그 이유가 뭔가?

병든 노인들은 갈 곳이 없어 이 병원에 와서 대화를 하고 소식을 알고 병을 치료하던 바,

그들 중엔 버젓이 돈 잘 버는 아들이 노인이 오래 살아 무엇하느냐고 치료비도 의료보험증도 주잖은 일이 있다 하며, 

또한 전남 고흥에서는 72세의 김모 노인이 94세 된 노모를 처묘(妻墓) 앞에서 목졸라 살해하였으니,

원인인즉 그에겐 5남 3녀가 있으나 늙고 병든 아버지와 할머니를 모두 다 모시기 싫어하매 갈 곳이 없었다는 것 아닌가?

아아, 자식된 자로서 차마 낯을 들 수가 없구나! 이 어인 패역 무도한 일이란 말인가.
 
  또한 까마귀들이 떼지어 논밭으로 내려갈 때 곡식을 해하는 버러지를 없애려 가는 것이지

절대로 알곡을 쪼아 먹으러 감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러케국 조류학자 삐이루가 까마귀 2258마리를 잡아 해부해 본 결과 뱃속에서 벌거지만 나오고 곡식은 한 톨도 나오지 아니함으로 증명되었다네.
  또 사람들이 까마귀가 우는 소리를 불길하다고 혐오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공연히 심심풀이 땅콩으로 우는 것이 아니고,

나라에 법령이 아름답지 못하여 백성이 도탄에 침륜하여 천하에 큰 병화가 일어날 징조가 있으면 미리 울어 줌으로써

사람들이 허물을 깨닫고고쳐서 세상이 태평 무사하기를 희망하고 권고함에서이니라.
 
  이들의 투철한 보은정신을 볼짝시면…
  강소성 한산사에 달은 넘어가고 나그네 깊이 잠들어 서리친 밤에 쇠북을 주둥이로 쪼아 소리를 내서 대망에게 죽을 것을 막아

살려 준 은혜를 갚았고,   한나라 효문제가 아홉 살 되었을 때 그 부모는 왕망의 난리에 죽고 효문제 혼자 달아날새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거늘 까마귀들이 가서 인도하였고,
  연(燕) 태사 단이 진나라에 볼모잡혀 있을 때에 까마귀가 머리를 희게 하여 그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고,
  진문공이 개자추를 찾으려고 면산에 불을 놓으매 까마귀가 연기를 에워싸고 타지 못하게 하였더니,
  그 후에 진나라 사람들이 그 산에 은연대라 하는 집을 짓고 까마귀의 은덕을 기념하였고,
  당나라 이의부는 글을 짓되 상림에 나무를 심어 까마귀에게 주겠다 하였노라.
  일찌기 요순시절에도 봉황은 나왔고 왕망시절에도 봉황은 나왔으니,
요순적 봉황은 상서이고 왕망 때 봉황은 흉조로 알았도다. 무슨 소리든지 근심있을 때 들으면 흉조가 되는 것이고 좋은 일 있을 때

들으면 상서가 되는 것이라. 길하다 흉하다 하는 것은 저희에게 있는 것이고 외물인 까마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까마귀의 생태를 보면 아침에 일찍 해뜨기 전에 집을 떠나서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여 부모 공양도 하고,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집도 짓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도 잡아서 인간을 유익하게 하다가 저녁이 되면 반드시 제 집으로 돌아가되 나가고 돌아올 때에 일정한 시간을 어기잖지만, 사람들은 중천에 해뜰 때까지 늦잠자기 집나가서는 협잡질하기 술장보기 계집질하기 노름하기 그러다가 맘에 들잖는 일이라도 생기면  염병에 까마귀 소리 한다고 욕설하고 정력에 좋다고 까마귀를 마구 잡아먹고선 춘구(春具)에 힘이 뻗치니 이번엔 계집을 잡아먹으려 넘보니   

 대왕마마! 그러하오나 담과 같은 시절가조는 까마귀가 요망한 새임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이시랴
                                  ---- 박팽년
 
     까마귀 속 흰 줄 모르고 겉이 검다 뮈무여하여
     갈매기 겉 희다 속 검은 줄 몰랐더니
     이제야 표리 흑백을 깨쳐슨저 하노라
                                  ---- 안민영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올세라
     창파에 잇것 씻은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 이씨부인
 
     까마귀 참까마귀 빛이나 깨끗하던가
     소양전 일영을 제 혼자 띠어 온다
     뉘라서 강호에 잠든 학을 상림원에 날릴꼬
                                  ---- 무명씨
 
     까마귀 깍깍한들 사람마다 다 죽으랴
     비록 깍깍한들 네 죽으면 내 죽으랴
     진실로 죽기곧 죽으면 임의 임이 죽으리라
                                  ---- 실명씨
 
  어허, 그러나 담과 같은 시절가조는 까마귀가 상서로운 새임을 말하는 것 아니겠느냐?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다한들 속까정 검겠느냐
     겉 희고 속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 이직
 
     가마귀 저 가마귀 네 어디로 좇아온다
     소양진 날빛을 네 혼자 띄엿신이
     사람은 너만 못한 줄을 홀로 슬퍼하노라
                                  ---- 작자미상
 
     까마귀 검다한들 속까지 검을소냐
     자오반포라 하니 새 중에 효자로다
     사람이 그 안 같으면 까마귀엔들 비하리
                                  ---- 지덕붕
 
     뉘라서 까마귀를 검다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 박효관
 
     늙으신 어버이를 모시고 살건만
     맛진 음식을 대접 못 하네
     숲에서 먹이 찾는 까마귀를 보며 눈물 흘리노라
                                  ---- 박장원 <반포조>
 
   그러하오나 대왕마마! 까마귀가 재수없는 새라는 것은 저들 양이들도 인정하는 바이옵니다. 노아 홍수 때 노서방이 물의 양을 살펴보라
고 까마귀를 내보냈더니 표류하는 시체들을 보고선 우와 먹거리 많구나 하고서 딥다 시체를 파 먹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 벌로 까마귀의 깃이 새까매졌다 하옵니다.
   어허, 그대들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도다. 야소경에도 볼짝시면 불의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누가 믿는 신이 참신인가를 놓고 생사의 대결을 벌이지 아니하였는가?
  그때 바알신은 낮잠을 잤는지 아니면 출타를 하였는지 제물에 응감을 하잖았고 야훼신은 불로 응감하여 참신이라는 걸 백성들 앞에 입증하잖았는가?
  이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300명을 잡아 죽인고로 이세벨 왕비가 자객을 보내매 이를 피해 달아나 그릿 시냇가에 숨어 살 때에 까마귀
가 떡과 괴기를 날라 그를 연명케 하지 않았는가?
 
   그러하오나, 대왕마마!
  아무러케국을 대표한다는 포씨(包氏 E.A.Poe)는 그의 대표시 <까마귀>에서 까마귀를 우울 절망 등의 상징으로 그렸사옵고,

또한 잉구란도를 대표하는 색수피어(色秀皮語)는 <멕베드> <오셀로> <햄릿>에서 까마귀를 불길한 예언 죽음 복수를 알리는 흉조로

표현하였사옵니다.
   어허, 그대들이 나무는 보면서도 숲은 보질 못하니 심히 안타깝도다. 가리키는 달은 어이 보잖고 손가락만 응시하는고?

북구라파의 신화에서는 최고신인 오딘의 양 어깨에 두 마리의 까마귀가 앉아 있는데,

하나는 지혜요 다른 하난 기억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 까마귀들이 하루에 한번씩 공중으로 날아올라 세상을 정찰한 후 그것을 오딘에게 알려준단 말일쎄.

북아무러케국 인디언이나 켈트족 게르만족 사이에서는 까마귀가 세상의 창조자로 숭앙되고,

그래써-로마 신화에서도 까마귀가 태양의 신인 아폴로의 전신이라는 설도 있잖은가 말이다.
  고구려국 고분벽화와 관식금구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 안에 다리가 셋인 까마귀,

이를 적오(赤烏)니 삼족오(三足烏)니 하는데 이들이 그려져 있잖은가? 고구려 고분인 쌍영총, 무용총, 천왕 지신총, 각저총
등에 삼족오가 보인다네. 까마귀가 실로 불길한 새라면 어이 이들을 이대도록 많이 그렸겠는가?
  결론을 내리겠네…
  까마귀의 한 종류로 팔가조 팔팔조 또는 한고라 이름하는 새가 있네.

어미가 늙으면 모이를 물어 와 봉양하는 효금(孝禽)일쎄.

까마귀와 목련 또는 해당화를 함께 그린 그림을 옥당 제조라 하는데 이는 효행이 높은 모범 가정이 되라는 뜻이네.
  또 거기다 까마귀에 대한 좋은 성어들이 오죽 많은가?
 
    오비이락(烏飛二樂)-까마귀 날자 즐거운 일이 따불로 생긴다
    오월동주(烏越桐酒)-까마귀 지나간 곳에 오동술이 있다
    오락가락(烏落家落)-까마귀 떨어지면 집값도 떨어진다
    오도방정(烏道方正)-까마귀 가는 길이 방정맞은 길이다
    오궁도화(烏宮桃花)-까마귀 사는 궁전에 복숭아꽃이 피었다
    오동포동(烏胴胞胴)-까마귀가 살이 잘 찐 모습
    오비삼척(烏飛三陟)-까마귀가 삼척으로 날아갔다
    오비맥주(烏備麥酒)-까마귀가 맥주를 준비한다
    오체투지(烏體鬪志)-까마귀 몸에 투지가 넘친다
    오작교(烏作橋)-까마귀가 만든 다리
    오존층(烏存層)-까마귀가 있는 층
 
  잔소리 긴소리하지들 말게. 까마귀 흉들 보지 말고 까마귀나 본받게. 이번 공석이 된 이벌찬의 자리에는 오함공을 임명하겠네.

 

천천정에 도착한 왕은 정자에 올라 신하들을 좌정케 한 후 주연을 베풀었다.

정말이지 이 정자는 경관이 좋을 뿐더러 짓기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역시 건축에 관해서는 도성공(都城公)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 말이야. 왕은 찬찬히 정자에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왼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잡찬 최제로공을 보았다.
 
   최공! 최공은 오늘 처음이시지요? 여기 천천정에… 정자에 오신 소감을 한 말씀 해 보시오. 이 정자가 어떤가?
   예 대왕마마! 나이수(羅而秀-빛나고 빼어나다)올습니다.

우리 배달족의 문화란 귀족층이든 서민층이든 그 바탕이 모두 자연이옵니다. 이는 울나라가 농경을 주업으로 하기 때문이올시다. 


 맑고 깨끗하여 부정이 없는 자연을 닮으려는 심성이 바로 울 백성들의 순수한 기질이옵니다.

그래서 정자는 당연히 산 좋고 물 좋은 경관을배경으로 하여 지어지옵니다.
  그러길래 속언에 이르기를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덴 없다. 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천정은 이 세가지를 고루 갖추었으니 이는 대왕마마의 홍복인 줄 아뢰옵니다.
 
   크! 말 된다. 저 정도의 언변과 논리를 갖춘 아부라면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가 않는단 말이요, 하하하…
   대왕마마! 아부가 아니옵니다. 소신은 진리가 아니면 말을 하기가 싫은 성미이옵고요,

제 평생에 거짓말 딱 한 번만 하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사옵니다.
   하하하, 최제로공의 강직함과 박식함을 누가 당하리오. 최공! 이왕 말이 나왔으니 정자에 대한 옛 이야기를 좀 더 들려 주시오!
   전고(典故)에 대하여라면 성제훈 공이 아주 박식하오니 성공의 이야기를 들어보소서.
   하하하, 최공이 아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요, 개발의 편자이며 모기 발의 워카이옵니다만 그저 몇 마디 올리겠습니다.
 
  뙤나라 송대의 <영조법식(營造法式)>이라는 문헌에  亭은 백성이 안정하는 바이니 정에는 樓가 있다. 亭은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는 곳
이라고 했사옵고, 또 <후한서>의  백관서 에는  여행길에 숙식시설이 있고 관리가 백성의 시비를 가리는 곳 이 亭이라고 했습니다.
  한대국의 <동문선>에는  사방이 툭 트이고 텅 비고 높다랗게 만든 곳이 정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정자를 오해하여 신체의 휴식 경사스러운 잔치 여가의 놀이를 위한 것으로 생각들을 많이 하옵는데,
정자는 그보다도 더 고매한 기능이 담겨 있습니다.  오호! 그게 무엇이요?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마을 어귀 연못 옆에 산천 경개나 들이 잘 보이는 곳에 정자를 짓습니다.

그런 정자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사람이 지은 것이지만 인공을 초월하여 대자연 속에 절로 동화되고 마옵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때로는 물과 함께 억겁의 세월 속에서 함께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광활한 허공에서 거침없이 시공을 초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울나라의 정자는 자연 그 자체이며 삶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 정자에 그렇게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구료.

그러면 정자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울려야 가장 흥취가 있겠소이까?
 
   예, <사륜정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여름에 손님과 함께 동산에다 자리를 깔고 누워 자기도 하고 혹은 앉아서 술잔을 돌리기도 하고 바돌도 두고 거문고도 타며

뜻에 맞는 대로 하다가 날이 저물면 파하니 이것이 한가한 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햇빛을 피하여 그늘을 찾아 옮기느라 여러 번 그 자리를 바꾸게 되므로 그 때마다 거문고 책 베개 대자리 술병 바돌판이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지므로 잘못하면 떨어뜨리는 수가 있다.
  이른 바 여섯 사람이란 누군고 하면 거문고를 타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시에 능한 승려가 한 사람 바돌을 두는 두 사람 그리고 주인
까지 여섯이다.....
 
  대왕마마, 이 말을 잘 음미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몇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선 조개나 보리 냄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나이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는 곳이 정자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죠.
  둘째로 학문이 높은 상류계층이다 하는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들 즉 논술고사 40점 이하 짜리는 끼지 못한다 하는 겁니다.
  셋째로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雅碼推圄)들이다 하는 것입니다. 바돌도 노래도 전문직업인이 아닌 취미생활자들이다 하는 겁니다.
  넷째로 유한계층이다 하는 것입니다. 흔히 백수라고도 하지요. 하루 종일 햇빛을 피해 다닐 정도로 논다는 것을 보니 백수도 오리지날
100% 순도의 백수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허허허, 아주 재미난 분석이구료! 그러면 성공! 정자의 형태나 구조는 또 어찌되오?
   먼저 정자를 만드는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늘이 둥글고 땅이 모난 것은 사람이 모두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음양을 말하는 사람은 남녀에 비유하거나, 가로나 세로의 보(步) 척
(尺)을 말하는 건 만물이 모나고 둥근 이치를 모든 형상에 응하고자 함이지요. 바퀴를 4개로 하는 것은 사계절을 뜻한 것이요 정자를 6척으로 한 것은 6기(六氣)를 나타낸 것이며 2개의 들보와 4기둥을 세우는 것은 임금을 대신하여 정사를 도와 사방의 기둥이 되고자 하는 뜻이옵니다.
  또 정자의 지붕 형태로는 팔작지붕이 대종을 이루며, 그외에도 평면에 따라 4모 6모 8모 지붕이 있삽고, 드물게는 정자(丁字)형의 맞배 지붕도 있습니다. 지붕의 재료는 기와나 볏짚이 많이 쓰입니다.
  정자의 출입구인 개구부는 완전 개방을 원칙으로 합니다. 칸막이를 하거나 썬팅을 하거나 커텐을 치는 것은 그 안에서 야한 짓,

즉 여자 몸에 정자를 공급하려는 수작인데, 그것은 이미 정자가 아니옵니다. 따라서 정자에는 반드시 난간이 있습니다.

난간도 양식에 따라 계자난간과 평난간이 있습니다. 바닥은 대부분 마루를 깔거나 그냥 흙바닥이거나 전을 깔기도 합니다.
 
  정자는 방위를 무시하는 유일한 건축물입니다. 대부분의 건물이 남향이나 동향을 원칙으로 하지만 정자는 배경과 경관을 바라보는 방향
으로 지어야 하므로 이런 방위가 무시됩니다.
  결론적으로 정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울 겨레의 심성을 반영하는 휴식공간이자 문화공간이라고 하겠습니다.
   호 성제훈공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박식함이 넘쳐나오. 정자에대하여 환해지는 기분이요.
  자 그러면 우리 모두 술 한잔에 정자의 풍류 하나씩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먼저 이벌찬 비지(比智)공부터 시작할까요? 참, 비지공은 저번에 백
제왕 모대(牟大)가 사돈맺기를 청하여 영애를 여의었지요? 외손자를 보셨다니 축하드리오.

하하 우리나라에서는 이벌찬이시고 백제에서는 국구 이시구려. 배상궁은 무얼하는가? 어서 술 한잔 올리지 않고.
 
  배상궁이 술을 친다. 배상궁은 아직도 처녀들처럼 살결이 곱다. 그래서 대신들은 그녀를 미시상궁이라고 부른다.
   대왕마마!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모두 대왕마마의 어진 정사 덕분인가 하옵니다.
  에, 집의 원채에서 떨어져 억새나 짚으로 지붕을 인 작은 집을 초당이라 하고, 산등성 아래나 들녘에 풀이나 짚으로 엮어 인 막집을 초막
이라 하고 과수밭에 높다랗게 지어 망을 보게 엮은 띠집을 원두막이라 하옵나니, 이들이 정자의 시초인 줄로 아옵니다.
 
   다음 파진찬 이상원공이 유명한 정자를 말씀해 주세요.
   울서에는 태극정 향원정 세검정 석파정 황학정 등이 유명하고 기경도에는 산일정(수원) 연미정(강화) 화석정(파주) 봉황정(양평) 원강도에는 소양정(봄내) 경호정(강릉) 청간정(고성) 금란정(삼척) 청충도에는 망해정(부여) 취백정(대덕) 탁사정(제원) 월송정(청원) 상경도에는 임해정(경주) 학산정(안동) 와룡정(함안) 농월정(함양) 나전도에는 취향정(전주) 오리정(남원) 기옹정(장성) 청송정(광산) 등이 유명하고 그 중에서도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은 전주의 한벽당 부여의 백화정 강릉의 경포대 여주의 영월루 보칠산의 용화정이 끝내주는 정자인 줄로 아옵니다.
 
   하하하, 좋소이다. 내 그곳을 한번 다 돌아볼 참이요. 뙤나라에는 어떤 정자가 유명하오? 김택환공이 말씀해 주시겠소? 김공은 호가  밝
은이 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는 시조 혁거세대왕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에게 그리 지었다면서요?
   예! 그러하옵니다. 선도의 밝은 뜻을 널리 전하여야겠다 라는 뜻이옵니다.
  에... 뙤나라는 정자보다는 정자 내에 설치된 누대가 더 유명하옵니다.
  하걸(夏桀)이 말희(末姬)와 향락하던 경궁요대(瓊宮瑤臺),
  달기를 희롱하던 상주(商紂)의 녹대(鹿臺),
  시선 이백 시성 두보가 시상을 다듬던 봉황대(鳳凰臺),
  오왕 부차(夫差)가 서시(西施) 위해 지은 고소대(姑蘇臺),
  한무제가 대들보를 향백(香栢)으로 만들었다는 백양대(栢梁臺),   
조조가 노닐었다는 동작대(銅雀臺) 등이 유명하옵니다.
 
   다음 일길찬 지명식공이 재미난 말씀을 해주세요.
   저는 풍류쪽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가 원래 바람돌이니까요!
  진달래가 붉고 신록이 생동하는 봄, 단풍이 불타듯 염염하고 낙조가 아름다운 가을철이 모두 좋겠지마는 아무래도 찌는 듯한 더위에

매미울음이 귀청을 따갑게 하는 여름, 때는 녹음방초 승하시 나무그 늘이 그립고 옥구슬로 부서지는 시린 산골물과 건듯 부는 바람이

오간장을 녹이는 그런 염천지절.
  나시에 배노상의(배꼽노출된 상의)에 똥고빌라 치마 입은 잘 빠진 논다니년에게 술 한병 들려서 정자에 와서 권커니 자커니 하다가 술이 오르면 고년의 넓적한 허벅지를 베고 누어 살내음 맡으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는 맛이야말로 기똥찰 것입니다.
 
   아, 하하하… 대단하오다. 명식공의 풍류가 보통 아니오이다. 다음 이찬 하지용공이 말씀해 주세요.
   이거 좋은 말은 앞에 분들이 다해놔서…
  오늘같이 더운 날에 정자에 와서 똥개 한 마리를 목매어 나뭇가지에 매고 막대기로 두드려서 잡습니다.

지천으로 널린 고사목을 주어다 쌓아 불을 지펴 통째 슬슬 그을려선 털을 깎고 일변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삶고 고기를 뜯습니다.

말들이 막걸리가 두어 통 된장 고추장이 두어 대접 마늘 고추 오이가 한 소쿠리면 여기 계신 분들과 걸퍽지게 포식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요?    아, 하하하. 역시 먹는 이야기는 하공을 당할 장사가 없다니까.
 
   대왕마마! 먹기 위해 살든 살기 위해 먹든 먹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저 덕국의 철학자 포이에르 바하는 말하였습니다.
   To eat for live or to live for eat, eatting is important thing
  아,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할 항우장사 있으면 나와보라 그러세요.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나룻이 석자라도 먹어야 샌님이고 먹다 죽은 귀신
은 때깔도 곱습니다. 오죽하면 새남터를 나가도 먹어야 한다 했으며 처녀 성복전(成服奠)도 먹어야 된다고 하였겠습니까?
   하하하, 하공! 먹는 이야기에 너무 침 튀기지 마세요. 정말 말만 들어도 시장해집니다. 하하하 다음 이찬 엄재성공이 말씀해 보세요.
 
   예, 이왕 말이 나왔으니 소신도 하공처럼 먹는 걸로 이야기하오리다. 꼭 개고기여야 합니까?

세계 각국 특히 양이놈들이 개고기 먹는 걸 비난하고 있는데, 더구나 대왕마마와 조정 대신들이 야외에 나가서 보신탕 해먹었다

소문나면 이것들이 항의서찰에다 무역압력에다 별별 개소리에 개수작들 하는 꼬라지가 보기 싫으니, 천렵을 하는 겁니다.
 
  물레방아로 가는 농수로 깊은 도랑을 족대로 훑으면 메기 미꾸라지가 대소쿠리로 하납니다. 이런 멋진 그물질을 저 양이놈들이 해낼 줄
알겠습니까? 이거 우리 배달족 고유의 풍류요 아취입니다.
 
  은어 피라미 쏘가리 뱀장어 잉어 흰줄납줄개 달납줄개 각시붕어 납줄갱이 줄납자루 칼납자루 납지리 큰납지리 가시납지리 참붕어 누치
참바자 어름치 중고기 참중고기 돌고기 감돌고기 쉬리 줄몰개 참몰개 몰개 긴몰개 모래무지 갈겨니 왜몰개 눈불개 미꾸리 미꾸라지 기름종개 줄종개 점줄종개 참종개 왕종개 빙어 동자개 눈동자개 밀자개 자가사리 명태자가 배기 통사리 꺽지 동사리 밀어 가물치… 즐비하게 걸립니다.
 
  반석에 솥을 걸고 깻잎 상추 쑥갓을 씻어두면 어탕으로도 먹고 회로도 쳐서 포식을 합니다. 그리하여 다 먹고 배가 남산만 해지면 졸음이 옵니다. 그러면 강화도 화문석을 바닥에 처억 펼치고 큰대자로 널부러지는 겁니다. 해는 중천을 넘어선지 오래고 포만감에 삭신조차 노근하니 솔바람소리 대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겁니다.
 
  꿀맛이 이보다 더 하겠습니까? 이 때는 서시년이 젖싸개를 풀고 젖통을 흔들어도 양귀비년이 속곳을 벗고 애어로백(愛於爐百)을 하고 있어도 만사가 귀찮다 이겁니다. 하하하…
 
  소지왕을 비롯하여 대신들은 모두 배꼽을 잡고 포복절도하였다. 배상궁만이 얼굴을 붉히며 웃음을 참느라 돌아서 있다. 한참 질탕하게
술과 음식을 먹고 난 연후에 왕이 입을 열었다.
   경들도 아시겠지만 오늘 짐이 여기에 행차한 것은, 천천정 아래에 있는 연못에서 며칠 전 신인이 출몰하였다는 일관의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요. 오늘도 만나려나 설레이며 나왔지만 그 신인은 대머리 총각이 아니어선지 만나질 못하였구료. 그래서 말인데,

짐도 연못에 도끼를 한 자루 빠뜨려 볼까 하오이다. 혹시 건져주나 보게요.
   아니 되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신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인간이 신을 시험하는 일은 신을 능멸하는 일이기에 반드시 앙화가 뒤따르게 되옵니다. 그러니 아니되옵고 이왕 나오셨으니 돌아가기 직전에 정성스레 치성을 드리고, 가시면 훗날 반드시 영험을 보게 되올 것입니다.
 
  왕은 이찬 최제로공의 말을 좇아 연못에 가서 정성스레 치성을 드리고 나서 환궁길에 올랐다.

그러나 천천정에서 너무 질탕하게 놀다보니 날이 저물고 말았다.
  이때 수종하던 배상궁이 왕에게 권하였다. 근처에 친척집이 있으니 오늘 밤은 거기서 유하시라고. 소지왕은 그것도 괜찮다 싶어 배상궁이 인도하는 여염으로 가게 되었는데…
 
  아아, 거기서 기가 막힌 사건을 접하게 될 줄이야!

 역사를 통하여 성(性)을 밝히며  
 선도를  통하여  명(命)을  밝힌다
                                     

  배상궁이 소지왕을 모시고 간 곳은 자기의 남동생 파로(波路)의 집이었다. 파로는 이미 배상궁으로부터 기별을 받았는지 별로 당황해 하
거나 황당해 하는 일 없이 대왕의 일행을 맞아들였다.
 
  황룡등촉을 밝히고 석반을 마친 후 소지왕은 큰방으로 들었다. 피로가 아련하게 밀려왔다. 정갈하게 소제된 방안에는 12폭 병풍이 둘러쳐져 있었다. 금침을 깔고 왕이 드러누워서 어렴풋이 잠이 들려고 할 때였다. 장짓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고?
   배상궁이옵니다.
   무슨 일인고?
   주인 파로가 대왕마마께 올릴 것이 있다하옵니다.
   그러냐? 올리라 하여라.

방문이 열리고 자그마한 상보가 단정히 뒤덮인 교자상을 들고 파로가 들어왔다.
   흠! 무엇인고?
   직접 열어 보시옵소서, 소인은 물러 가옵니다.
 
  파로가 나가고 난 후 소지왕은 궁금증을 갖고 상보를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교자상 위에는 앳된 소녀가 알몸으로 함초롬히 앉아 있었다.
  소지왕은 신음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쁘고 예쁘도다. 정말 예쁘도다.
  예쁘고 예쁘며 예뻐서 예쁘니 예쁘면 예뻐라.
  일색이다 아니 국색이다.
 
  아침 안개 피어오르듯 함초롬히 앉아 있는 그녀는 함연미(涵煙眉)의 미인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미인이었던지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마립간조에조차 벽화녀는 국색(國色)이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건 너무 어리지 않은가.
 
   음! 영계로구나. 그래 몇 살인고?
   금년 열여섯이옵니다.
   이름이 무엇인고?
   벽화(碧花)라 하옵니다.
   아비가 누구인고?
   파로가 아비옵니다.
   네가 왜 여기에 왔는지 연유를 알기나 하느냐?
   대왕마마를 뫼시라는 걸로 아옵니다.
  대답을 하면서 벽화는 얼굴이 발개졌다.
  뫼시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느냐?
    ……
   이리 오너라. 내가 옷을 입혀 주겠노라.
 
  소지왕은 갈아 입으라 준비해 놓은 자신의 옷을 벽화에게 입혀 주었다. 벽화는 아무 말없이 왕이 시키는대로 순종하였다.

마치 주인에게 붙들린 어린 양처럼. 왕은 벽화에게 옷을 입히면서 그녀의 살결이 너무 곱다고 생각되었다.

슬쩍슬쩍 스치는 살결에서 감각되는 탄력 또한 대단하였다. 선혜왕비의 살결도 심지어 가혜궁주의 살결도 벽화에 비하면 코끼리

가죽 상어 껍질이라 할 것이다. 윗목에 대강 자리를 마련하여 벽화를 눕게 하고선 왕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체통을 지켜야지.

여염에 와서 군민의 영계를 건드렸다는 말을 들을 순 없잖은가.

군왕의 염문이라는 것은 또한 얼마나 말이 많고 살을 덧붙이면서 퍼져나가는가.
 
  벽화의 벗은 모습이 눈앞에 자꾸만 아른거렸다.
  아아, 남자는 누드에 약하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더니 하나도 틀리는 게 없구나! 하얀 목덜미 봉긋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젖통, 옴폭한 배꼽 밀림처럼 수초가 엉킨 하복부 대리석을 깎아놓은 듯이 쪽 뻗은 다리 오동통하게 부풀어오른 엉덩이.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가 했을 때 문득 울음소리가 들렸다. 왕은 소스라쳐 눈을 떴다. 윗목에서 자는 줄 알았던 벽화가 울고 있었다.

소지왕은 여자가 우는 걸 젤 싫어했다.   벽화야!.
   흑흑흑, 대왕마마께서는 제가 미우신거죠?
   이 녀석아! 짐이 너를 언제 보았다고 미워하겠느냐?
   흑흑, 대왕마마께서는 여자의 맘을 너무 몰라주셔요. 흑흑…
   짐이 무슨 심리학박사라고 여자의 맘을 알겠느냐? 네가 그리 서러워하니 짐이 안아줄 터이니 울지 말고 코~하고 자겠느냐?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소지왕은 벽화를 자리속으로 불러들여 팔벼개를 하여 주었다. 벽화는 울음을 그치고 왕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벽화가 내뱉는 숨결이 왕의 가슴에 와 닿았다. 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벽화야! 자느냐?
   아니옵니다.
   잠이 안 오느냐?
   예.
   그럼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나 해 보려무나.
   시정의 이야기가 무에 재미있겠습니까? 비루하기 짝이 없죠.
   그래도 해 보거라. 나는 외려 그런 이야기가 재밌니라.
   백학서방이라는 이야기 아시나요?
   전혀!
 
   옛날 어느 고을에 맘씨 착한 처녀가 있었대요. 매일같이 밭에 나가 김을 매면서 앞산을 바라보며 발원했어요 좋은 서방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웬 학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마당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어요. 처녀는 급히 약을 발라주고 치마를 찢어서 상처를 짜매었어요. 그리고 광에다 넣고 돌아나오는데 사냥꾼들이 들이닥친거예요. 화살 맞은 백학 한 마릴 못 보았느냐고요.
   그래 어떻게 됐나? 학을 구해 주었나? 사냥꾼들은 어찌됐지?
   처녀는 자다 일어난 것처럼 멀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댓돌을 내려서면서 소리쳤죠. 언놈이 처녀 자는데 와서 떠들어.
  사냥꾼들은 그 말 한 마디에 군소리없이 나갔죠. 이레 동안 학을 치료하여 완쾌시킨 후 날려 보냈죠.

학은 처녀의 집을 수차례 맴을 돌더니 멀리 날아갔어요.
   그리고 어떻게 됐나? 박씨같은 거 안 물어다 주었남?
   참! 대왕님도.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 나그네가 처녀의 집에 찾아들었죠.

처녀는 저녁밥을 짓다가 부르는 소리에 대문으로 나갔더니    첫눈에 숨이 칵 막혀 왔습니다.
  서글서글한 눈매 오똑한 코 석류속 같은 입술 백설같은 피부.   처녀는 가슴이 떨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나그네는 하룻밤 묵
어 갈 수가 없겠느냐고 했고,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부모님은 아랫마을에 큰할아버님 제사에 가고…
   그래 어찌 되었지? 처녀 혼자인데 들어오라고 했나?
   호호호 대왕마마두 야한 얘기를 꽤 좋아하시나 봐요!
   벽화야 뜸들이지 말고 어서 이야기하지 못하겠느냐?
   손님을 건넌방으로 모시고 처녀는 안방에서 잤어요. 그런데 손님은 얼마나 점잖았는지. 그날 밤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에이, 짐승만도 못한 놈. 재미 하나도 없구나. 썰렁한 이야기인데   아니에요. 이상한 건 그 손님이 담날 갈 생각을 안하는 거예요.

처녀는 속으로 무진장 좋았어요. 제사에 가셨던 부모님도 돌아오셔서 나그넬 보더니 눈이 둥그래진 거예요. 너무 귀상이었거든요…

딸에게 내막을 들어보더니 예법도 아는 집안이라고 흡족해 했어요. 그렁저렁 이야기가 진행된 결과 갈 곳이 마땅찮은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고, 그래서 드디어 손님과 처녀는 혼례를 치루게 되었지요.
   흠! 그 담은 어찌 되었지?
   그런데 남자는 아내에게 밭에 나가 힘든 일을 하지 말고 낼부터 시장에 가서 명주실을 한 꾸리씩 사다 달라는 것이었어요.
 
   무얼 하려고 그랜거지?
   아이 대왕마마께옵선 성미가 급하신가 봐요. 그러면서 자기가 광에서 비단을 짤 터이니 절대로 안을 들여다 보지 말라는 거예요.

들여다 보면 큰 일이 난다면서, 그리곤 매일같이 비단 한 필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꼭 한 필씩만을 짜서 갖고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비단은 그냥 명주실로 짠 비단하고는 영 달랐어요. 뙤나라 상인들이 보더니 열곱의 값으로 사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얼마든지 살 테니 많이 가져 오라는 것이었어요. 잠자리에서 처녀는 아니 이젠 처녀가 아니지!
  여자는 비단을 더 짜라고 졸랐죠. 남자는 안된다고 했어요. 여자는 계속 졸랐죠. 그러자 남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어요.

과욕은 금물이라고. 욕심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여자는 심술이 났죠. 담날 도대체 어떻게 비단을 짜기에 그러나 하고 옹이구멍으로 들여다 봤죠.
   그래, 들여다 봤더니??
   들여다 봤더니, 아아 백학 한 마리가 베틀 위에서 제 몸의 깃털을 뽑아서 명주실과 섞어서 비단을 짜고 있는 것이었어요.

여자는 너무 놀래서 그만 광문 앞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잠시 후 다 짠 비단 한 필을 들고 서방님이 슬픈 얼굴로 나왔어요.
말없이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 보더니.....
  여보! 우리의 인연이 드디어 다했구료! 그대가 사냥꾼에 쫓긴 나를 이레 동안 치료해 주었고,

내가 그대 집에서 일곱 달을 비단을 짜 주었으니. 보은은 다 한 셈이라 할 것이요. 여보! 이제 나는 상계로 돌아가오.

하더니 갑자기 인간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커다란 흰 날개를 펼치더니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여자의 집을 서너 번 돌더니 앞산 너머로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것이어요.
 
   아주 슬픈 사랑 이야기구만…
   너무 슬프죠? 훌쩍훌쩍…
   아니 벽화야! 남 이야기를 하다가 왜 자기가 우느냐?
   흑흑, 대왕마마. 백학서방님은 대왕마마이고 처녀는 소녀와 같사옵니다.

이제 내일 아침 대왕마마가 여길 떠나가시면 소녀같은 건 기억도 안 하시겠지만, 소녀는 대왕마마의 그림자를 부둥켜 안고 한평생을
살아가야 되옵니다. 흑흑 훌쩍훌쩍…
 
   벽화야! 너는 내가 그리도 좋으냐?
   대왕마마, 소녀는 소녀의 알몸을 숨김없이 그대로 대왕마마께 다 보여 드렸사옵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외간남자에게 알몸을 보여 준다는 것은 자기의 정절을 바친 것과 같은 것이옵니다.

소녀의 주인은 이제 대왕마마이옵니다.
   참, 이건 논리의 비약이랄 수도 없고 궤변이랄 수도 없고…
   소녀의 맘을 담은 시이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외진 독방에서
     뚝뚝 떨어져 버린 밀어를
     말없이 주어 담고
     슬픈 동공은
     그렇게 높은 곳에만 머물렀었나 보다.
 
  소지왕은 벽화의 순결한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 벽화가 얼굴을 파묻어오자 가슴의 설렘을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오직 군왕의 체통만을 생각케 해 주는 그 맑은 밤 하늘의 비호를 받아 어디까지나 성스럽고 순결함을 잃지 않았다.
 
  왕의 옷은 아담한 벽화에겐 너무 커 입히나마나였고 그녀의 속몸은 그대로 훤히 다 비쳐 보였지만 백성들에게 널리 퍼진 왕의 어진 인품
에 흠이 갈까봐 흑심을 자제하기로 하였다.
  밤하늘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양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생각이 왕의 머리를 스치곤 했다.

 -저 숱한 들꽃 중에서 가장 가냘프고 가장 청초한 꽃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품속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대궐로 돌아온 소지왕은 그로부터 벽화의 환영에 빠져버렸다. 눈만 감으면 홀랑 벗고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벽화의 환영이 팔을 벌리고
왕을 환영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달려오는 꿈을 꾸었다.
  아아!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더니 벽화의 눈부신 알몸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그러나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소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암만 생각하여도 자신이 삼불출 또는 사불상 같았다.
 
  삼불출(三不出). 가장 바보스럽다는 세 종류의 인물. 주는 뇌물 못 먹고 줏은 돈 포청에 신고하고 대주는 계집조차…
  사불상(四不像). 가장 꼴불견이라는 네 종류의 인물. 겉으로는 청빈한 체하면서 안으로는 사치하는 사람, 낙향한 체 하면서 권문에 화첩
(花妾)을 바치며 줄 찾는 사람, 사랑채에선 뇌물을 퇴하고 안채에서 받는 사람, 색자만 봐도 얼굴을 붉힌다면서 여자 엉덩이에 노상 깔려 있는 사람!
 
  그럼 나는 삼불출의 셋째인가 사불상의 넷째인가. 벽화의 황홀한 몸매와 천진한 성품. 잊혀지지가 않았다.

사흘을 갈등하던 소지왕은 드디어 결단을 내리고 배상궁을 불렀다. 벽화를 찾아갈 테니 준비하라고.

배상궁은 놀라면서도 뛸듯이 기뻤다. 급히 호위무사를 불렀다. 실죽장군의 부장 세진이 들어왔다.

벽화의 집은 날이군이므로 산길로 해서 고타군(古陀郡)쪽으로 질러가면 오십리 길밖엔 안된다.

준마를 타고 달리면 밤에 갔다가 아침 조회 전에 돌아올 수 있다.
 
  소지왕은 이삼일에 한번씩은 벽화를 찾았다. 늙은 왕은 새롭게 엄마의 바다가 아닌 애욕의 바다에 풍덩소리도 요란하게 빠지고 말았다.
오십리나 되는 먼길을 밤새 다녀오느라고 체력 소모가 큰데다 벽화와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니 정력 또한 소모가 많았다.

정력의 소모가 많았던 원인은 그녀가 명기(名器)였다는 것이다.
 
  명기(名器)!
  남정네가 한번만 맛보면 빠져 들어 실신하도록 만든다는 여성. 게다어로는 긴자꾸. 아무러케어로는 데드벌버(데드볼 아님)

질의 크기에 상관없이 속살이 많고 센 흡입력을 갖고 있으면서 양물이 그 안에 삽입되면 마치 구흡(口吸)을 하듯 나긋나긋 빨아대는 질을 가진 여성. 이러한 명기의 소유자와 관계하면 천하장사라도 삼년 안에 요절한다는 것 아닌가! 요절, 허리가 부러져 죽는 것!
  결국 소지왕도 1년여만에 요절이 나는데 이러한 명기에도 엄밀히 구분하면 세 종류가 있다는 것인 바,

더욱 자세한 것은 3부 <삼살녀 열전>에서이야기하겠지만...
 
  삼살녀(三煞女)!
  도화살(桃花煞) 청상살(靑裳煞) 역마살(驛馬煞)의 세 가지 살을 동시에 타고난 박복하고 기구한 여인.

엄숙주의와 고상주의로 가장된 사회의 인습과 윤리를 과감히 박차고 길잖은 한 생애를 불꽃처럼 뜨겁게 사루며 살다 간 여인들의

정열적인 삶의 이야기, 삼살녀 열전. 고구려 산상왕의 왕비 우씨녀에서부터 한대국 보칠산의 정인(情人) 미선랑까지

열 세명의 뜨거웠던 야녀들의 적나라한 이야기.
 
  소지왕은 처음엔 손녀딸 같아서 자괴스런 심정도 없잖았으나, 한번 살을 섞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팽팽한 살결 콱콱 조여주는 맛 넘치는 활력 싱싱한 내음새. 아! 이래서 사내들이 젊은 계집이라면 침을 질질 흘리는구나.
 
  시니걸(矢泥乞 cynical)한 것은 왕은 이 일을 아무도 모르리라 착각하고 있는 점이었다.

그러나 대왕님의 밤사랑은 이미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항간에서 아이들은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향가  벽화요(碧花謠) 인 바 실전된 것을 최근에 새롭게 발굴해냈다.
 
    炤知麻立干主隱       소지마립간니믄
    他密只嫁良置古       남그즈시 얼어 두고
    碧花娘乙                벽화랑을
    夜矣卯乙抱遣去如   밤에 몰 안고 가다
    閼裸利骨裸利         얼레꼴레 꼴꼴레
 
  향찰로 표기되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이러하다.
 
     소지마립간님은
     남모르게 은밀히
     벽화 처녀를 얻어 두고
     밤에 몰래 품으러 간다
     얼라리 꼴라리…
 
  왕이 오십리 길을 다니는 중에 심야 영업을 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다.  딱잔집 이라는 이름이 붙은 주막집이었다.

이 집은 주인이 예순 가까운 노파였는데 그 누가 와도 딱 한잔의 술만 팔고 더 이상 팔잖았다. 아무리 사정해도 막무가네였다.

나가 돈벌기 싫다는데 언놈이 말이 많냐. 술은 한잔일 때 가장 기분좋은 것 아니냐.

그러면서 자기네 주막가(酒幕歌)라면서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깊은 밤 쓸쓸히 평상에 앉아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며는
     어데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있어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며는
     반쯤 찬 술잔 속에 어리는 얼굴
     마시자 한잔의 술 마셔버리자.
 
  노파의 말은 한잔 이상을 팔면 자기네 주막가를 어기는 것이 되므로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더 먹는 방법은 있었다. 계산을 하고 나갔다 새손님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었다.

물론 안주를 새로 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날 왕은 낮에 일찍 갖다가 밤 느즈막히 돌아오던 중이었다. 호위무관 세진부장과 함께 술상을 봐오는 노파를 붙들어 앉히고,

왕은 시침을 떼고 물었다.
 
   할멈! 요즘 장사 잘 됩니까?
   잘 되긴, 경제가 침체되어 죽은 놈 콧김만도 못하니. 경기가 살아날 조짐이 당최 안 보여.

이렇게 늦도록 장사를 해도 세끼 밥 먹기조차 힘들어. 거기다 포청의 심야영업 단속에 걸리면 조지는 거지.

몇 달 애써 번 것 딴놈 입에다 톡 털어 넣는 셈여…
   할멈! 내가 포청에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단속에서 빼드릴까?
   아이구! 그만 둬. 그런 말 하는 놈이 어디 한두놈이었는 줄 아우?
잘못 그러다 변호사법 위반으로 손님까지 경칠려고?
   참! 할머니두 그렇게 사람을 못 믿으십니까?
   못 믿는 게 아니고 씰데없이 남의 신셀 지기 싫다 이겨.
 
  마침 그때 관복을 입은 포졸 둘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들이닥쳤다.
   할멈! 또 하지 말라는 심야영업 위반했구랴.
   죄송하우. 요즘 수입이 션찮아서 밤나그네를 조금 받았지라우. 미성년자들을 받거나 혼숙을 시키진 않았수.
   시끄러워요 우린 법대로 처리하는 거니까 임금이 아니라 임금 애비가 와서 뭐라 그래도 안 되는 거요.

저번에 어기고 또 어겼으니 석달간 영업정지요. 또 어기면 그땐 허가 취소될 줄 알아요!
   여보슈 다신 심야영업 안 할 테니 좀 봐 주구려. 석달간 정지면 우리 식구는 굶어 죽어.

하나뿐인 아들은 병들어 누워있고 며느리는 손님과 눈맞아 도망가고 손녀는 아직 젖먹이여!
   어허 소문 못 들었어? 높은 서당애들 송별회에 모인 것 호패 조사했더니 한달 미달된 미성년 있어서 그 주막 두 달 정지 먹은 거.

우린 법대로 한당께. 아, 법대로 한다는데야 상감 아니라 꽂감이 와서 뭐라 해도 안되는 거지. 벌금도 200냥 같이 내요.
 
  소지왕은 세진부장에게 눈짓을 했다. 세진부장은 포졸들에게 다가갔다. 포졸들은 세진의 떡대에 우선 기가 질렸다.

어림군에서도 세진부장은 별호가 고리라였다. 키가 칠척에다 몸무게가 130근 가슴둘레 3.3척 허리가 2.4척 허벅지 둘레가 2.1척

알통이 1척으로 김천 감호골 출신의 장사였다.
  세진은 암말 않고 가슴의 도포자락을 슬쩍 들춰 보였다.

포졸들은 얼핏 도포자락 속에 걸린 황금 마패에 새겨진 봉황의 문장과 별셋을 보았다.
  앗, 저건 왕실을 호위하는 어림군의 표식이 아닌가! 더구나 별셋이면 어림군의 부책임자를 뜻하는 좌장군! 으악,

그렇다면 저기 평상에 앉아있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황실의 직계 존비속이 아니면 어림군 소속의 무사를 대동할 수는 없다 라고 생각되자 두 놈은 눈앞이 노래지면서 사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두놈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순간 후다닥 튀었다.
 
  아아, 듣는데서 대왕의 욕을 하였으니 우리는 이자 뒈졌다. 모가지가 열개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이다.

두 녀석이 튀고 난 자리엔 웬 방울만이 덜렁 4쪽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랏님도 없는 데선 욕한다  

붕알이 떨어지게 토낀다 라는 속담이 전해오게 되었다고 한다.
 
  영문을 몰라 갸우뚱하는 할멈을 다시 앉히고 왕은 말을 붙였다.
   할멈! 정지는 안맞을 거요, 또 벌금도 없을 겁니다.
   이상도 혀라. 내 이 장사 40년 하지만 저 포청놈들이 불알 떼놓고 달아나긴 첨이네.

잘 내비뒀다 안주감으로 써야지. 과부들이 좋아하긋네. 참, 해가 낼은 서쪽에서 뜨것구만.
   할멈! 원인이 어디 있다고 봐요? 백성들을 위하여 왕이 굉장히  애쓰는 것 같던데.
   즉위 처음에는 그랬어. 세월이 오래 지나가니까, 다 그 식이 장식이여. 구관이 명관이더라 이겨.

그 나물에 그 밥이더라 이겨. 처음에는 부정부패 일소다 사정이다 하여 뭔가 좀 하는 것 같았어!

썩은 걸 도려내고 새로와지나부다 했쟈. 그러더니 상대등 이창대감을 왕권에 도전한다고 목을 치구서부턴 갈팡질팡에 우왕좌왕이여.

그때부터 맛이 간 거 같여.
   할멈! 요즘의 왕은 어떤 것 같소? 착하기가 여전하오?
   좋은 분이제 모두들 성인이라고 칭송이 자자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혀.
   아니 그건 왜 그러시오?
   내 듣기로는 왕이 요즈음 날이군의 군민 파론가 파톤가의 딸년을보러 밤이슬을 맞는다니,

이는 용이 고기의 복색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닌감? 만약에 어부에게 그러다 잡히면 어찌할려고 그러남?

너무나 신중하지 않는 것 같여.
   그래요? 그건 흥미로운 소문이군요! 그러면 할멈 생각으로는 왕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하오?
   당당히 후궁으로 맞아 들여야제. 그래야 옳은 게 아닌감?

왕이 대궐을 무단히 비우고 미행을 함으로써 행정조직의 동요가 얼마나 심하겠남? 사내가 계집 하나 더 들이는 게 무슨 큰 흠인감.

사내는 열 계집 데리고 놀 수도 있는거여. 계집 하나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을 성인이라고 나는 생각할 수가 없다네.
 
  소지왕은 할멈의 이야기를 듣고 등에 식은 땀이 솟았다. 소지왕은 세진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느냐고. 할멈의 말에 동감한단다.
환궁한 왕은 벽화를 정식 후궁으로 맞아드릴 차비를 하라고 예부에 명을 내렸다.
 
  왕의 이러한 명령에 가장 경악한 것은 가혜궁주였다.
   이제 내 신센 끈 떨어진 갓이로구나. 
  벌써 여러 달째 가혜궁주는 왕의 성은을 받지 못했다. 아니 왕은 그녀를 완전히 잊었는지도 모른다. 잊혀진 여자.

그녀는 불처럼 일어나는 질투도 질투려니와 밤마다 타오르는 정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배신감과 고독감에서 그녀는 궁전을 드나드는 분수승들과 간통을 하기 시작하였다.

분수승들과라는  들 이라는 복수접미사에 주목하기 바란다.

월성궁에 드나드는 분수승은 여럿이었는데 가혜궁주는 그들과 간통을 한 것이다.

이왕 기둥서방으로 세울라치면 끝내주는 사낼 고르자. 모조리 시식해 보고 고르자 여자는 모 한 남자만 경험하라는 법 있나?

또 사내와 붙었다고 거기에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닌데,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요 죽 떠먹은 흔적이라더라.
  그리하여 그녀가 여러 사낼 경험한 끝에 알아낸 것은 놀라웁게도 사내도 여러 질이 있으며 존맛에도 최하 10가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곰곰 짚어본 연 후 그것을 담과 같이 분류하였다.


  … 역사를 전파하는 자 부귀를 누리며
  … 선도를 홍보하는 자 장수를 얻으리

  
  첫째 따끄니[溫].
  구멍 안에 들어오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아아 기분이 너무 좋아.
따끈따끈하니까 절로 몸은 열리고 굳었던 샘물은 녹아서 철철 흘러 넘치지. 콧노래도 절로 나고 어깨와 엉덩이는 모르는 사이 들썩여.

아아 좋아… 너무 좋아… feeling so good. 그냥 그대로 있어줘…  호빵이나 군고구말 먹는 기분이야…
  이놈과 고구마는 너무나도 닮았어.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고 따뜻할수록 맛이 좋고 길수록 먹음직스럽고 한꺼번에 먹으려 들면 꽉 막
히고 천천히 먹을수록 맛이 우러나고. 
 
  둘째 힘드리[陽].
  힘이 뻗치는 것. 너무 팔팔해.
  저녁나절 강변에서 뛰어오르는 쏘가리같애.
  뚫어질 것 같으다니까. 뻐근해. 내가 지칠 때까지 한없이 먹여줘. 
  맘껏 아아 날아오르는 기분이야… 


  셋째 대갈거리[頭大].
  귀두가 큰것. 들락날락 할 때마다 미치겠어.
  짜릿짜릿한 자극이 300볼트로 온다니까…
  아으 아으 그만… 가만 있어줘… 
 
  넷째 넙쩌기[扁大].
  넓적한 것.
  아아 온 몸이 꽉 찬것 같아…
  뿌듯한 맛에 사지가 다 녹는 것 같아…
  숨이 다 막혀…
  으헉 으허헉 허허헉… 
 
  다섯째 꼬부랑이[小曲].
  약간 꾸부정한 것.
  아아 시원해.
  더 해 줘…
  슬근거리는 이 황홀한 쾌감.
  귀이개로 귀를 쑤시면 왜 귓구멍이 션한지 알겠어…
 
  이상 다섯 가지는 이상적(理想的)인 양물 형태이고…
 
  여섯째 긴노미[長大].
  긴놈. 자궁이 깊은 여성(소위 굴우물)에게는 아주 적격이지만 얕은 여성(소위 박우물)에게는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이런 게 속궁합인겨.   확실하게 쑤셔주는 맛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일곱째 우멍거지[包莖].
  양피가 벗겨지지 않은 것.   조루증세가 있으므로 약간의 마찰에도 콧물을 흘리면서 늘어지고 만다.
  마찰의 쾌감을 충분하게 주지 못하니 어딜 가도 천덕꾸러기이다.
 
  여덟째 곧싸리[當門破].
  조루증.
  교접을 시작하자마자 찍하고 죽어버려서 교접을 중도에서 못하게되는 것.
  계집을 갈증에 미치게 하는 원흉.
 
  아홉째 물렁이[軟].
  발기부전.
  병신졸 중의 하나.
  발기가 잘 안 되어 옥문을 열고 드가질  못하는 것.
  혼자 발버둥치며 지랄을 하다가 문전만 더럽히고 쫓겨나는 것.
 
  열번째 시들이[凋].
  발기불능.
  아예 첨부터 발기가 되잖는 병신졸.
  옥문이 그저 그림의 떡이요 강 건너 불.
 
  이상 다섯 가지가 이상적(異常的)인 양물 형태인데, 이것을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서열│  종    류            │  특     장        │ 품 질 │ 배점  │  해당인물 │
├───────────────────────────----------─┤
│  1  │ 따끄니(溫)         │ 따뜻한 맛       │ 극 상 │  20    │  도   미    │
├────────────────────────────----------┤
│  2  │ 힘드리(陽)         │ 오래하는 맛    │ 극 상 │  20   │  변 강 쇠   │
├───────────────────────----------─────┤
│  3  │ 대갈거리(頭大)   │   자극하는 맛  │ 극 상 │  20   │  장봉거사  │
├───────────────────────----------─────┤
│  4     넙쩌기(扁大)       │    뿌듯한 맛    │ 극 상 │  20   │  위   홍     │
├───────────────────────----------─────┤
│  5 │ 꼬부랑이(小曲)    │ 슬근거리는 맛 │ 극 상  │  20  │  산 상 왕   │
├───────────────────────----------─────┤
│  6 │ 긴노미(長大)       │ 쑤셔주는 맛    │  중     │  10  │  지 증 왕   │
├───────────────────────------------────┤
│  7 │ 우멍거지(包莖)    │ 자극감 부족     │ 중 하 │   5   │  김 유 신  │
├───────────────────────----------─────┤
│  8 │ 곧싸리(當門破)    │ 조루증            │  하    │   2    │  순 정 공 │
├───────────────────────----------─────┤
│  9 │ 물렁이(軟)          │ 발기 부전        │ 불 량 │   1    │  혜 공 왕 │
├───────────────────────----------─────┤
│ 10 │ 시들이(凋)         │ 발기 불능         │ 불 량│   0     │  처   용   │
└───────────────────────----------─────┘

 
  그런데 각 형태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많겠지만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인물로는…
 
  따끄니엔 아랑의 남편 도미가 있다.
  아랑이 개루왕의 후궁자리를 마다하고 목숨까지 걸고 거부한 것은그녀의 정절 이전에 도미의 양물이 따끄니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혀 없다.
 
  힘드리의 대표 인물이 변강쇠라는 사실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가 삼남지방에서 숱한 계집들을 조져먹고 마을을 쫓겨난 후,

옹녀를 만나 주야장철 불철주야 떡방아 말타기 배놀이 맷돌갈이 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독한 힘드리였기 때문이다.
 
  대갈거리의 대표 인물 장봉거사.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할 거고.
  흐흐흐 대갈거리가 여자를 어떻게 죽였다 살렸다 하느냐 하면.....

 

  넙쩌기의 대표 인물 각간 위홍.
  신라의 역대 화랑 출신 중에서 기파랑을 제외하곤 최고의 미남이며 성남(性男).

그가 국선랑 시절 사륜거를 타고 경주 시가를 지나가면 처녀들이 속곳에 오줌을 지려대면서 쫓아올 정도였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리하여 신라 최고의  진성여왕의 기둥서방이 되었으니…
 
  꼬부랑이의 대표 인물 고구려 10대 산상왕.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던 그가 서열 1위인 형님 발기를 젖히고 등극할 수 있었던 중대한 요인은 그의 양물이 꼬부랑이었다는 점…
 
  긴노미의 대표 인물 신라 22대 지증왕.
  이미 우리는 앞에서 그 절묘한 이야기를 감상하였다. 그가 홀인원하기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우멍거지의 대표 인물 김유신 장군.
  김유신 장군이 우멍거지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이 놀란다.

그러나 이 놀라운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성기님으로 그의 명작 <에덴의 불칼>에서 이를 논하였다.

유신공과 천관녀와의 이별. 그리고 조카딸인 지소부인과 결혼하게 된 내막.
 
  곧싸리의 대표 인물 순정공.
  신라 33대 성덕왕 때 강릉 태수를 지낸 인물. 그의 아내는 신라 최고의 미녀인 수로부인.

왜 그는 아내를 산신과 용신에게 빼앗기고 한탄하여야 했나? 그가 곧싸리의 성기능 장애자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의
아내 주변에서 펼쳐지는 뜨거운 염문들을 쉽게 이해하리라.
 
  물렁이의 대표 인물 신라 36대 혜공왕.
  여자로 태어나야 할 것을 어거지로 남자로 태어나서 나라를 망쳐버린 인물.

원비와 차비가 있었고 숱한 궁녀들과 가까이 하였으나 일점혈육이 없었던 것은 그가 발기부전의 성불구자였기 때문.

그의 탄생비화, 그가 저지른 기상천외한 행태, 이 역시 2부 털큰중과 강임차사의 숙명적 대결편에서 이야기 되리라.
 
  시들이의 대표 인물 처용랑.
  헌강왕 시절 동해 용신의 아들로 신라 조정에 등용되고 수로부인 이후 신라 최고의 미녀인 계림녀를 아내로 맞았으나

 불화하고 결국 아내가 간통하기까지 되는 원인은 그가 시들이였다는 사실. 허나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가혜궁주,
  그녀가 새서방으로 마지막으로 골라잡은 분수승은 장봉거사라는 자였다. 그녀가 수많은 분수승들 중에서 장봉을 고른 것은,

그가 명도(名刀)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남정네가 빠져들어 끝내는 실신하고 만다는 아녀자의 음물을 명기(名器)라고 하는데 반하여,

여자가 한번 맛보면 엉엉 울다가 졸도한다는 남정네의 양물을 명도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정네의 명도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를 보통 3가지로 구분하는데…  이 이야기는 역시 제3부 삼살녀 열전으로 넘긴다.
 
  그의 출신지가 어딘지 정확히는 아무도 모르나 일설엔 영춘의 장발리라고 전해진다.

그의 어머니는 장발리에 있는 큰 절의 사노였는데 그곳에 소금 팔러오는 염쟁이와 눈이 맞아서 사통(私通)을 하게 되었고,

예기치 않게 배가 불러 나은 게 장봉이라는 것이다.
  장봉은 갖은 구박을 받으며 절간에서 궂은 일을 하며 자랐는데 그래선지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였다.

그런데 그가 출생한 장발리 자체가 음란한 지명적 유래가 있었으니… 장발리(長髮里).
장발리라는 지명이 붙게 된 데는 담과 같은 기막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옛날 엣적으 어떤 여자가 거웃이 하도 짙고 숱허게 많이 났던게비여.

여름날 밤 열대야 현상은 계속되지 冒털은 질어서 아래는 덥고 근지럽지 그렁게 사렘이 없넌 틈얼 타서 동네 시암에 가서 암도 모르
게 멕얼 감고 물도 안 딱고 옷도 안 입은 체 기양 저그집이로 왔넌디.
거웃에 묻었던 물이 졸졸 흘름서 저그집이꺼지 떨어졌던 모양이여.

아적에 이우제 여자가 와서 시암갓에 당궈논 삼 훔처간 것 네노라고 야단첬다.

내가 원제 덱의 삼얼 훔처갔다고 네노라고 허요 힝다.

아아니 안 훔쳐갔이먼 어찌서 시암서부터 덱의 집꺼지 삼뎅이서 떨어진 물자국이 질에 게속히서 졸졸 떨어져 있것소.
 
  이 말얼 듣고 가만히 셍각히 봉께 어짓밤에 시암이서 목욕하고 물얼 딱지 않고 집이꺼지 왔넌디.

거웃에 묻은 물이 흘러 떨어져서 그런 것인디.

그리서 그렇게 된 물자국이라고 차마 그 말얼 헐 수 없어서 그만 헐 수없이 삼값을 물어주었다.

물어주고 나서 삼얼 훔처오지도 않고 삼값얼 셍으로 물어주게 된 것은

숱허고 질게 난 이것 탓이라 허고 거웃얼 다 깍아서 뒤엄자리에다 네버렸다.
 
  건너 몰 사람 하나가 저그집이서 키우넌 되야지 새끼럴 잃었다고 동네 집집마다 뒤지다가 이짝 동네까지 와서 뒤져보다가 이 여자으 집이 와서, 이 집 뒤엄 자리에 되야지 털 같은 것이 있넌 것을 보고 되야지 값얼 물어내라고 야단쳤다.

이 여자는 나 당신네 되야지 본 일도 없고, 되야지 잡아묵은 일도 없다고 헝게, 이웃 동네 사람언 당신네가 되야
지럴 안 잡아 묵었으면 워찌서 당신네 뒤엄 자리에 되야지 털얼 깍아서 네버린 것이 있겄냐고 힝다.

이 여자는 그것언 되야지 털얼 깍어서 네버린 것이 아니고, 내 긴 冒털을 깍아서 네쏘아버린 것이라고 차마
말헐 수 없어서 그만 꼼짝없이 생으로 되야지 값얼 물어주었다.
 
  되야지 잡아묵은 일도 없이 되야지 값얼 셍으로 물은 것언 다 이 거우털 뗌이다 허고 부에가 나서 이 여자넌 거우털이 난 거그럴 칼로 도
레네서 두엄에다 네쐬버렸다. 그링더니 이번에넌 이웃 동네 사람이 몰얼 잃었담서 집집마다 뒤지다가 이 여자으 집이 와각고 뒤엄 한쪽에 몰코 같은 것이 있넌 것얼 보고 내 몰 값얼 물어네라고 야단쳤다.
  무신 몰 값얼 물어 네라니 이게 무신 소리냐고 헝께 내가 몰얼 잃어서 집집마다 뒤지고 있넌디 너그집 뒤엄얼 봉께 말코 띠어버린 것이
있넌 것을 보니 니가 우리 몰얼 잡아묵은 것이 분명하다. 어서 우리 몰 값얼 물어네라고 힝다. 이 여자넌 몰코 띠여서 네쏜 거 아니고 내 그것얼 띠어 네쏜 것이라고 차마 사실데로 말헐 수가 없어서 또 몰값으로 셍돈얼 물어주었다.  


  이 여자넌 지 그것 뗌시로 셍돈만 물게 됫게 그만 화가 버럭 나서 에잇 이너럿 것 뗌시 셍돈만 문다고 주먹으로 지 그것얼 콱 쥐어박었
다. 그렀더니 거그서 허건 물이 뜸물 같은 것이 튀어나와서 벡에가 허옇게 붙었다 조금 있응게 한 사렘이 와서 우리 메 네노라고 실겡이힝
다. 나넌 당신 메럴 보지도 못힝넌디 워쩌서 메럴 네노라고 허느냐고 힝께 저 벡얼 봉께 벡에 메똥이 갈겨 붙어 잇어서 그런다고 힝다.

이 여자넌 벡에 허옇게 붙은 것은 메똥이 아니고 내가 내 그것을 주먹으로 탁 쳐서 거그서 나온 허건 冒물이 벡에가 붙은 것이라고 말헐 수가 없어서 보도 못한 메값얼 셍으로 물어주었다.
  이 여자넌 거웃이 숱이 많고 진 탓으로 삼값이며 되야지 값이며 몰값이며 메값이며 모도 셍으로 물었다고 한다.

그후로 이 마을을 거웃, 冒털이 긴 여자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장발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장봉거사의 것은 소지왕의 신물보다 힘차고 먹음직스러웠다.
  가혜궁주는 장봉의 것을 채점하여 60점을 주었다. 따끄니 15 힘드리 15 대갈거리 20 긴노미 10점.

그녀의 음물은 굴우물이면서 신전(神田-음핵 표피)에 사마귀가 달려있었는데 이럴 경우 한 남자의 양물로는 만족을 못 느끼는 것이다.
  한번 정도로는 성깔이 차잖는 것이다. 그런데 장봉거사의 것은 구슬을 박은 듯 귀두 부분이 툭 불거졌다.

그러한 장봉의 명도가 가혜의 옥문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가 순간적으로 나가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서 

흐하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나자빠졌다.
   아아 그를 왜 장봉거사라 부르는지 이제 알겠어… 

거의 매일 밤 그녀는 장봉의 명도에 죽어나자빠지면서 인생 최고의 희열을 맛보았다.
황홀감이 지나치니까 울음이 나왔다. 장봉과 사랑을 나누다 보면 그녀의 감창은 종당에는 울음이 되고 말았다.
 
  자기 없으면 난 못 살아 난 밥은 먹잖아도 젖은 먹잖곤 못 살아.

그러면 그는 더욱 능글맞게 소승 장봉 신전에 문안 드리오 하면서 장봉(長棒)을 빼닮은 양물을 꺼내어 그녀의 신전을 자극해댔다.

그럴 때면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까무라칠 것만 같았다. 죽었다가 새롭게 탄생하는 느낌이었다.

아아, 여자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더군다나 지난 달부터 몸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달거리가 없어졌다. 혹! 애가 선 것이 아닐까? 첫달이어서 확신하기가 어려웠지만 예감이 이상했다.

그런 중에 벽화를 후궁으로 들인다는 소문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날 가혜궁주는 장봉의 벌거벗은 몸뚱아리 아래서 결심을 밝혔다.
 
   우리 왕을 시해해요! 
   무엇이, 무엇이라고 했어? 
   나, 자기 아기 가졌단 말야. 어차피 우린 이대로 살 수는 없잖아 죽이잖으면 우리가 죽어요. 
  아기를 가졌다는 말에 장봉은 긴장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는 임신까지는 상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긴급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내보다 계집의 머리가 더 비상하게 돌아가는 법.
   이렇게 해요… 아마 임금인지 품삯인지가 벽화를 후궁으로 들인다
고 천신께 고제를 올리기 위해 수일 내로 천천정으로 올거고… 돌아가다가 이곳 월성에도 들릴 거예요.

 내가 아무리 한물 갔다곤 해도 새로 후궁을 들이는 일이니까 알려 주려 올 거예요. 그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왕과 낮거릴 하겠어요. 
   과연 임금이 낮거릴 할까? 따라온 일행들도 있는데… 
   걱정 말아요 그 점은 내가 무슨 수를 쓰든지 할 테니… 사내 하나 호리지 못할 줄 알아요?

임금은 안쪽 넓적다리를 살살 간지러주고 그곳, 그곳의 급소를 찔러주면 죽었다가도 금방 신물이 벌떡 서면서…
그리곤 그 다음은 말 안해도 알지요? 그 후론 발정한 수캐가 되어서… 호호호… 
   그러면 나더러 당신 낮거리하는 걸 보고 있으란 말이야? 눈깔 뒤집히게. 
   당신 왜 그리 짱구예요?

당신은 비수를 가지고 저 거문고 갑속에 숨어 있다가 왕이 싸고 나서 기운없이 축 늘어져 있을 때 등 뒤에서 알았죠? 
   흐흐흐! 당신은 천재야 천재… 박제가 돼버린 천재가 아니라 박쥐같은 천재…

그렇게 깜쪽같이 왕을 처지하고 나서 뒷문에 미리 준비해 둔 수레를 타고 고구려로 도망치는 거예요

물론 은금보화 상자는 다 꾸려 놨죠. 
  오오 가혜궁주… 두 년놈은 행복감에 전율하면서 다시 한번 서로의 몸을 탐내며 살을 격렬하게 섞었다.
  정말… 뼈와 살이 타는 밤이 계속되었다.


  … 역사를 통하여 속(俗)의 원리를 알고
  … 선도를 통하여 성(聖)의 이치를 안다
   
  소지왕은 예부에 천천정에 거동할 준비를 하라 명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월성궁으로 가혜궁주를 찾을 테니 선물도 준비하라고 창부에도 아울러 일렀다.
  거의 천천정 가까이 이르렀을 때다. 까마귀떼가 정자 지붕에 앉아서 요란스럽게 울고 있었다.

오늘 따라 2/2박자로 우는게 아주 기분 나쁘고 불길하게 들렸다. 호위하는 어림군 군장 오함장군이 민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왕은 수행한 최제로공에게 물었다.
   최공! 오늘은 어인 일로 이리 까마귀가 요란스레 울꼬?
  사람들이 까마귀 울음소리를 불길하게 여기게 된 유래는 무엇인고?
   예. 그건 이러하옵니다. 그 내력을 아시자면 차사본푸리(差使本解)를 먼저 들어 보소서... 

 오호! 그 유명한 탐라도 신가 열 여섯 마당 중 열 세번째라는?
   예. 그걸 아셔야 저승과 이승의 오고 가는 원리를 아옵니다. 자 그럼 차사본푸리로 들어가옵니다.
      동정국 범을황제 아달 구형뎨가 잇섯는데
      우흐로 삼형제가 죽고 끝으로 삼형제가 죽어서
      가온데로 삼형제가 사러 잇는데
      이 삼형뎨가 하로는 밧게 나가서 놀고 잇더니
      대사중이 기나가며 하는 말이
      그 아헤들 단명하겟고나 하니
      즉시 아방왕의 달여가서 이 말을 엿주오니
      곳 대사중을 불으라 하시고
      네가 지금 무엇이라고 말을 하엿는냐 하니
      과연 애기씨들 귀하옵기는 하오나
      열두번 죽어도 환생을 하옵서나
      은물장사 놋기장사 비단장사나 하야
      인간에 나아가서 고생이나 하오면
      장명하오려니와
      그러치 아니하오면 단명하겟슴니다 하며
      인간에 장사차로 나아가도
      과양생이 집에 드오면 자미 업사오니
      들지 아니하옴이 좃습니다 하니
      그리하리라 하옵고
      큰아달은 은물장사 셋아들은 놋기장사
      말잿아들은 비단장사하기로
      서로서로 단속하야 행상차로 인간땅
      주년국 연못가에 가서 안자 놀고 잇더니
      과양생이 기집 말 물멕이러 왓다가
      어떤 도령들임니까 무르니
      우리는 동정국 범을황제 아달인대
      인간의 장사차로 왓노라 하니
      그러면 저의 집에 머믈엇다가 가심면
      엇덧슴니가 권고하니
      그리하시요 하고 과양생이 집에 드니
      약술을 한업시 권하야 취하니
      가마니 죽여서 재물은 취하고
      죽은 몸은 연외 못속에 던저두고
      하를은 연지못에 가마니 가서 거동을 보더니
      난데 업는 고흔 꽃 셋이 피여 잇스니
      욕심만은 과생양이 계집이 그 꽃을 꺽거다가
      문전에 다라 두엇더니 문전으로 출입할 때마다
      그 꽃이 머리를 박박 글거내니
      괴연 꽃이로고나 하고 꽃을 빼 연불 붙처 바렷는데
      뒷날 아침은 청태산 늙은 할망이 불담으레 왓다가
      화로에 가고 보니 불은 업고 구슬 셋이 잇스니
      이상하다 하야 과양생이안테 이 말을 하니
      욕심만은 과양생이 계집은
      아이고 이건 나 구슬이로고나 하며
      구슬이 하도 고흐니 셋을 입에 물고 잇을 때에
      셋이 소로록이 입속으로 드러가니
      그 후에 과생양이 계집의 베가 점점 부르서
      태긔 잇스니 깁버하야 십삭 후에
      자식을 나으니 일시에 삼형제를 나아서
      고이고이 기르고 글공부를 식힌 후에
      십오세가 되니 과거 보레 가니
      삼형제가 모다 장원급제하야
      한림학사 베수하고 어룡마를 타서 귀가하니
      과양생이 집에서 무한이 깁버하야
      잔체 준비할 때에 그날 밤을 새고 보니
      삼형제 돌연이 모다 죽엇거늘
      과양생이 원통하고 슬퍼하야
      슬푼 정예 원통한 정예 김치고을 김치원임 전에
      소지를 올니고 제사를 내여줍서 하야두고
      삼형제 시체는 설이장사 지낸 뒤에
      백일을 김치원님 전에 소지 올이니
      소지가 아홉상자 반이라
      김치원님 처리할 길 망년하야 답답하는대
      과양생이 계집은 나날이 김치원님의 욕하며
      일읍 수령 요만 일을 못 처리하느냐 하니
      김치원님 욕됨을 분히 하야
      세상을 떠나서 죽은 뒤에
      세상을 떠나서 죽은 뒤에
      이 일을 처리하리라 생각하야 죽으려 하니
      지둥 통인 말유하며 하는 말이
      도사령 강임이를 명하야
      염래대왕을 잡아오라고 하야서
      염래대왕 보고 처리하라 하오면
      일이 잘 되오리니 부대 죽지 마옵소서
      김치원님 아무리 생각하되
      도사령 강임이가 제 아무리 영리한들
      엇지 염래대왕을 잡아오리요 하오며
      락망이되오나
      강임을 불너다가 추상갓치 호령하는 말이
      네가 염라대왕을 잡아오되
      만약 잡아오지 못하면 너는 죽이겟다 하니
      네 분부대로 하오리다 하고 하직한 후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하되 죽기는 쉬와도
      염래대왕 잡어올 길 바이 업스니
      차라리 자결하야 죽으리라 하고
      마구 죽기로 드니 그때 큰각시가 하는 말이
      염래대왕 잡아오기 어렵지 아니하니
      죽지 맙시요 하고 백미를 연 삼십번 곱게 능거서
      흰시리 떡을 세찍 만드러서 한찍은 조왕의 올니고
      한찍은 후원에 단을 뭇고 기도하며
      떡한 찍은 강임이 랑군을 주며 하는 말이
      이 떡을 갓고 발가는 대로 무한히 가시면
      아를 도리가 잇스리다 하니
      강임이가 행장을 둘너매고
      발가는 대로 무한히 가다가 보니
      한 로파가 길을 압서서 가고 잇거늘
      뒤흐로 암무리 좃차 가도 밋치지 못하니
      이상히 생각하야 로파를 불러도
      대답도 업고 밋츨 수 업서서
      더욱 이상히 생각하야 좃치다가 보니
      로파가 한 동산에 가서 한숨을 길이 쉬며 안즈니
      좃차가서 절하고 베이니 로파하시는 말삼이
      나는 너의 집 조왕할망 귀신이다
      너의 처의 정성이 하도 지극함으로
      너의 길을 인도코저 나왓노라 하시고
      떡을 내여 노흐시며 이 떡을 맛보라 하시니
      그 떡은 분명히 자긔 처가 만든 떡이라
      그제야 알고 재삼 재배하고
      염래국 가는 길이 어데 임니까 하니
      네가 이 길로 가다가 보면 연제못이 잇스리니
      그 못가에 가서 제계목욕하고
      정성을 다하야 행화를 피이고
      이 떡을 올녀서 기도하고 잇스면
      삼신선이 내려오리니
      그떠는 아를 도리가 잇스리라 하고 인홀불견커를
      강임이 더욱 이상히 생각하야 무한히 가다가 보니
      연제못이 과연 잇거는 제계목욕하고
      정성을 다하야 삼신전의 기도하고 잇더니
      삼신선이 옥황으로 내려오시다가
      참 인적도 교요하다 하시며 못가에 와서
      강임이 기도올이는 정성을 보고
      감복하사 제물 등을 잡수신 후
      너는 엇떤 인간이냐 무르시니
      네 저는 염래국으로 드러가는 중임니다
      그러하옵난대 길을 몰너 잇사오니
      길을 인도하야 줍시사 하니
      한참 생각하시다가 청풍체 금풍체
      홍세줄을 내여주시며 하시는 말삼이
      가다가 어려운 일이 당커든 쓰라
      그러면 염래국을 갈 도리가 잇스리라 하시니
      재배 감사하다 보니 홀불견이라
      청풍체 금붕체 홍세줄 들러매고 가다가 보니
      안개가 끼여서 동서남북을 분변 못하니
      청풍체를 내던지니
      안개가 것고 길이 분명히 보이다
      또 무한히 가다가 보니 청청한 곳이라
      어데를 지향하면 조흘지 분변 못하니
      금봉채를 내던지니 길이 분명히 보이다
      가다가 보니 저승체사 리원잡이가 왕방울을 담고
      적베지 품에 품고 관장베엽 헤차고
      체사기 손에 들고 살랑살랑 거러오고 잇거늘
      여보 체사동관 말 무릅시다 하니
      리원잡이 도라보고 그럽시다 누구요 하니
      나는 이승체사 강임이요
      나는 저승체사 리원잡이요 서로 통성명한 후에
      갓고 잇던 음식을 서로 교환하야 먹고
      저승체사 보고 당신은 어데로 가는 길이요 하니
      나는 이승의 죄지은 인간 잡으러 가오 하니
      작별시에 염래대왕을 엇더케 베임니까 하니
      여긔 잇스면 재명일은 염래대왕이 기나리라 하니
      예이하고 작별한 후 기대리고 잇더니
      재명일날 아침에는 과연 가마쏙에 안자 기나시니
      이승체사 강임이가 염래대왕을 잡으로 왓슴니다
      고함을 지르고 가마부출을 붓바으고 흔드니
      염래대왕이 노하야 하는 말이
      괴약하다 나를 잡아갈 자가 어대 잇느냐 하시며
      저 강임이를 잡으라 하시더니
      쳔지 요동하고 세상이 캄캄하야
      쳔지 분별 못하며 무섭기 한양 업거늘
      강임이가 가만이 정신을 진정하고 생각하니
      이리해도 죽고 저리해도 죽을 터이니
      에이 용맹을 다하다가 죽자고 하고
      삼신전에 어든 홍세줄을 던지며
      저승에도 관장 이승에도관장 관장은 일반이라
      암무리 저승관장이라도
      이승관장 명령도 드러야 함니다 하니
      염래대왕이 강임이 용맹을 칭찬하시고
      그러면 내가 가겟다 그런대 방금 인간세상
      유승상 딸아기가 기도를 올니며 나를 청하니
      거긔 보고 수일 후에 동행켓다 하시니
      강임체사가 저도 동행컷슴니다 하야 동행하고
      유승상집 기도하는 곳에 가고 보니
      정성을 다하야 기도하고 잇스니
      여긔서 조곰 용감하고 염래대왕 말삼이
      네가 압헤 가고 잇스면
      래일은 나도 가겟노라 하시니
      강임이가 선행하야 김치원님께 버이고
      래일로 염래대왕 데령하오리다 하니
      이놈 헛말이라 하시고 옥방에 하옥하고 잇더니
      명일에는 쳔지가 요동하고
      남쳐퀴 북쳐퀴 번계가 번적이고
      세상이 캄캄더니 염래대왕 일행이
      드러오시거늘 김치원님 깜작 놀나
      지동으로 변신하야 나아오지 아니하니
      렴래대왕 노하야 그 지동을 베이라 하니
      김치원님 할릴업시 헌신하니
      저런 졸부가 나를 불넛느냐 책하시고
      무슨 일로 나를 불럿노 무르시니
      전후 사실 죄죄 외뢰니
      그러하냐 나는 기위 알고 잇다 하시며
      연듸못의 물을금시로 푸어불고
      과양생이 처를 잡아오라 하시니
      과양생이 처를 대리고 못가에 가서
      물을 퍼두고 보니 삼형제 시체가 잇거늘
      너 죄를 지금도 모르겟느냐 하니 어는 령이라
      광양생이 처가 바로 말을 하니
      그럴 일이 다 하시고
      너 자식 무덤으로 가고 보자하야 가고 파서 보니
      사람 시체는 업고 허수아비라
      흥 네가 저 삼형제를 죽이니
      혼이 환생하야 너를 놀내이자고 한 것이라 하시며
      삼형제는 도환생케하야 부모 계신 곳으로 보내고
      과양생이 계집은 압밧에 버텅 걸나
      뒷밧에 버텅 걸나 죽여 두고
      염래대왕이 강님체사가 매우 영리하고 용맹하니
      저승체사로 다려간다 하야
      강임의 혼을 빼여가서
      렴래국의 체사로 쓰엿슴내다
 
  어느 날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인 강림도령에게 이승에 가서 여자는 70세 남자는 80세가 되거든 저승에 오도록 전하라는 명을 내리었습니
다. 저승 사자는 분부대로 적패지(赤牌紙)를 가지고 이승으로 향하다가 도중에 그것을 까마귀에게 떠맡겼습죠.

적패지를 날개에 끼고 이승을 향해 날아가던 까마귀는 도중에 사람들이 말을 잡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워낙 피를 좋아하는 까마귀라... 피 좋아하기는 드라큐라 말고도 모수기토(毛獸肌吐) 고도리꾼들도 있긴 허지만...

말피나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지친 까마귀는 적패지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뱀이 삼키고 사라졌습죠.
 
  그래서 뱀은 9번 죽었다가도 10번 살아나는 겁니다.

잃어버린 적패지를 찾던 까마귀는 마침 옆에 있던 솔개가 훔쳐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둑놈 도둑년 하면서 둘은 딥다 싸웠습니다. 그후로 까마귀와 솔개는 지금까지도 원수처럼 지냅니다.

할 수 없이 이승으로 온 까마귀는 아무 때나 저승에 가라고 사람들에게 자기 멋대로 외쳐댔죠.
 
      아이 갈 데 어른 가시오 까옥
      어른 갈 데 아이 가시오 까옥
      부모 갈 데 자식 가시오 까옥
      자식 갈 데 부모 가시오 까옥
      자손 갈 데 조상 가시오 까옥
      조상 갈 데 자손 가시오 까옥
 
  까마귀 울음소리를 잘 들어보면 이렇게 운다는 것 아닙니까. 이때부터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면 누군가가 죽을 징조라고 여기게 되었사옵니다.
   그럼 순전히 엿장사 맘대로 운다. 이런 얘긴가? 근데 오늘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은데... 
  
  … 역사를 존중하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하고
  … 선도를 존중하는 민족이 인류를 지배한다
 
왕은 보련에서 내려 천천히 정자쪽으로 올라갔다.
  그때다. 쥐떼 수십 마리가 정자쪽에서 내려오더니 천경림(天鏡林)쪽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왕은 의아했다.
   쥐들이 살던 데서 도망가는 건 급변이 있을 징조라는데…
 
  이들이 레밍도 아닐진대 떼지어 어디로 가는 것일까? 혹시 수입원목에 묻혀 들어온 북미산 레밍??

왕은 쥐떼를 쫓아갔다. 인적이 드물어지자 쥐떼 중에서 왕격으로 보이는 왕쥐가 사람의 말로 왕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대왕마마! 저 정자 위에서 우는 까마귀들 중에서 붉은 까마귀를 쫓아가 보시옵소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까마귀들이 우짖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우짖는 소리 속에 낭낭히 들리는 한 가락이 있었다.
 
      천년을 그리워한 애인이 왔다네
      인동당초문으로 수놓은 건귁을 눌러쓰고

      망치소리에 수레가 만들어지는
      제륜의 신전을 돌아
      주작을 타고
      만리 하늘을 날아왔다네
      천년을 넘게 짝사랑한 애인이 왔다네
      대수포 밑에 붉은 폐슬을 길게 늘이고
      세 발 달린 까마귀가 해를 쪼으면
      선녀가 생황을 연주하는
      달 속에서 걸어나와
      천의(天衣)를 나부끼며
      만리 하늘을 날아왔다네
                       
                                 --- 윤향기, [고두리의 신화]
 
  왕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삼족오(三足烏), 붉은 까마귀를 응시하였다.

삼족오도 왕을 한참 응시하더니 이윽고 날개를 펴고 크게 푸드득거렸다.

왕은 급히 말을 타고 있는 어림군 세진장군에게 붉은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추적하라고 명을 내렸다.

세진은 말을 몰고 쫓아갔다. 가슴의 두근거림을 달래며 왕은 다시 최제로공에게 물었다.
   최공! 까마귀란 놈은 원래 까맣기 때문에 까마귀라 하는 줄 아는데, 어찌 붉은 까마귀가 다 있소?
   예, 원래는  가마괴 였습니다.  괴 는 고이 준말이고  고이 의  고어는  고리 가 됩니다.

그러니까 꾀꼬리의 원어는  곳고리 지요.  고리 란 새라는 뜻을 갖는 우리 고어입니다.

왜가리 딱다구리 병마구리 등에서  가리   구리 는 모두 새라는 뜻입니다.
  본디 가마괴는 가마고리>가마고이>가마괴>가마귀>까마귀… 로  
  
   오호, 그런데 붉은 까마귀가 나타난 것은 길조요 흉조요?
   그 점에 대해 자상히 여쭙겠사옵니다. 고구려 3대 임금 대무신왕이 북부여와 민족해방전쟁이 아닌 통일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서로 동족간에 살륙을 하는 전쟁인데 민족해방전쟁이라는 표현은 미친 놈들이나 쓰는 표현이라 하겠지요.

그런 놈들은 주사를 맞아도 왕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주사파라 부른답니다.
 
  어느 날 북부여의 대소왕이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인 붉은 까마귀를 얻었습니다.

이를 본 신하가  까마귀는 검은색인데 붉은색으로 변하였고,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니 이것은 두 나라가 통일될 징조이므로 왕께서 고구려를 정복하겠습니다. 고 말했지요.
  이에 대소왕이 기뻐하며 내력을 적은 서찰과 함께 까마귀를 고구려로 보냈습니다.

고구려의 사기를 꺾자는 수작이었죠. 대무신왕은 긴급히 중신회의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
 
  이에 고구려 개국 3공신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挾父)중 오이의 아들인 오달(烏達)이 말했습니다.  검은 것은 북방의 빛인데 지금 변하여 남방의 빛이 되고 또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물건인데 대소왕이 얻어서 스스로 지니지 못하고 대왕에게 보내주었으니,

이는 필시 고구려가 북부여를 합병할 조짐입니다. 라고. 이 말을 전해들은 대소왕은 무진장 후회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결국 대소왕은 전쟁에 패해 북부여가 고구려에 합병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역사적 사실 아닙니까?
  결론적으로 붉은 까마귀는 고구려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 천천정 지붕의 붉은 까마귀는 따라서 신라를 상징한다고 할지니,
신라는 곧 대왕마마이시니까 까마귀를 A로 보고 신라를 B로 보고 대왕마마를 C로 볼 때 A=B 이고 B=C 이면 C=A 인고로 까마귀는 곧 대
왕마마가 되겠습니다.
   흠! 최공의 해석은 언제들어도 박식하며 조리가 있어요. 아주 논리가 명쾌하면서도 고금동서의 모든 내용들을 섭렵하고 있소.

고마운 논리가 반갑다 하며 최공과 놀고 있어요. 하하…
  세진장군이 돌아올 동안 까마귀 이야기나 좀 더 들려 주구려.
 
   예, 그러하옵지요…
  까마귀는 대개 3·4월에 알을 낳아 품는데, 이 때 새끼를 치는 상태를 보고 그 해의 풍흉을 점칠 수 있사옵니다.

즉 새끼를 하나만 치면 가뭄이 들고 둘을 치면 풍년이 되며 셋을 치면 물이 넘쳐 홍수가 납니다.
  금년에 이렇게 비가 안 오고 가무는 것은 다 까마귀 때문이지 제왕의 덕이 부족해서는 아니옵니다.

까마귀가 그래서 가족계획을 잘 해야 한다 이겁니다. 그리고 농사를 시작할 때 까마귀가 오면 농사가 잘 된다고 믿는데

이는 까마귀가 벌거지를 많이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또 까마귀에 관련된 속담들에는 담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까마귀 모른 식개(제사) 라는 말은 대를 이을 아들 없는 집에서 출가한 딸이 시집에서 친정 조상제사를 남모르게 지내는 걸 말함이고,
   까마귀 고욤을 마다 한다 는 평소에 즐기던 음식을 싫다할 때,    

 까마귀 까치집을 빼앗는다 는 모양이 비슷한 것을 빙자하여 남의 것을 늑탈함을,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 는 건망증이 심한 사람에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는 공교로운 오해를 받을 때,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이면 반갑다 는 제 고향 것이면 무엇이든 반갑다는 것이고,
   까마귀 열두 소리 다 싫다 는 미운 사람 짓은 모두 밉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하하, 정말 재미있구료.
 
  한편 이럴 즈음, 정신없이 허공만 보고 붉은 까마귀를 쫓다보니 세진은 어느덧 남산 동쪽의 양피사촌(壤避寺村)에 이르렀다.

그런데 앞에서 주둥이가 몹시 긴 돼지 두 마리가 길을 막고 치고 박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투우도 있고 투견도 있고 투계도 있다지만 투돈이 있다는 건 첨이네.

까마귀 쫓는 일을 잊고 그만 세진은 말에서 내려 넋을 놓고 돼지들의 싸움을 지켜 보았다.
 
   흔히들 돼지가 미련맞다는데, 두 놈이 기가 막히게들 잘 싸우누나.
그래 그래. 열심히 싸워라. 싸워야! 키 크지…
 
      돼지는 두부 하는 날이 생일이다
      파리한 돼지 두부 앗은 날 먹듯 한다
      돼지 팔아 한 냥 개 팔아 닷 돈이 양반이다
      일에는 굼벵이 먹는 덴 돼지
      생긴 건 미륵돼지상이다
      돼지 멱 따는 소리한다
      돼지 불알 까는 소리한다
      돼지는 목청 때문에 백정의 신명을 돋운다
      돼지가 얼굴은 박색이어도 冒구멍은 일색이다
      달린 돼지가 누운 돼지 나무란다
      그을린 돼지가 달아맨 돼지 흉본다
      똥 먹는 돼지가 겨 먹는 돼지 트집한다
      돼지가 미련해도 냄새 맡는 덴 개보다 낫다
      날 받아 둔 처녀 돼지 밥주듯 한다
 
  화전민들은 산림을 불태우고 나무뿌리를 추려낼 적에 화전 둘레에 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입주둥이가 긴 돼지를 놓아 길렀다.

그 돼지가 나무뿌릴 헤집어 여린 뿌리를 즐겨 먹기에 저절로 개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무 뿌리만 먹고 자란 돼지는 좋은 약재로 여느 돼지와 달리 가격이 따따블이었다.

이 주둥이 긴 돼지의 효용을 알아 볼짝시면, 목살은 주독 푸는데 좋고, 콩팥 사이의 기름살은 폐병에 좋고,

족발은 산모 젖 분비에 좋다더라.
  돼지 뒷다리를 보면 북두칠성처럼 검은 점이 일곱 개가 나 있다. 그 연유는 이러하니라.

돼지는 본래 하늘에 살고 있었는데 얼굴이 검다 하여 용에게 미움을 몹시 받았다. 결국 꼴보기 싫다고 상계에서 추방당해 지상에서 살게 되었는데 하늘에서 살았던 짐승이란 증명으로 칠성점이 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생사를 비롯, 만물과 만사의 흥망성쇠를 관장하는 칠성신앙에 의하여 제사지낼 때 그 소망을 신명에게 매개하는 희생 동물로서 돼지가 선택되어 임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고로 배달족에게 있어서 꿈에 돼지를 보면 재물이요 행운이다.

꿈에 돼지를 한 번 보면 음식이 생기고 두 번 보면 의복이 생기며 세 번 보면 금전이 생기는 등 돼지꿈은 재물과 관계된 길몽이다.
  배달족에 있어서 일상가계에 돼지가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은 엄청났다. 일상가계 말고 초상·탈상하는 상사,

아들딸 여의는 혼사, 회갑·회혼 같은 대사가계에서 소용되는 제비용을 집에서 기르는 돼지를 잡거나 팔아서 충당하였다.

소위 말하는  두 마리 잔치 니  세 마리 잔치 니 하는 말로 그 잔치의 규모를 나타내는 관습까지 있었다.

그러길래 시집 갈 날을 잡아 놓은 처자들은 돼지 밥을 헤프게 주었다. 자신의 혼사에 쓸 돼지이므로 살찌게 하고픈 저의에서.
 
  이런저런 전설들을 생각하며 백돼지 이겨라 흑돼지 져라 하고 돈종차별을 하며 열을 내고 응원하던 세진은, 아니 내가 모 하고 있는겨.
지금? 아차차! 하고 황당했다. 아니 당황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경주 남산 피촌 앞에 있는 고개를 아차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돼지들 때문에 까마귀를 놓쳐버린 세진은 너무 한심해서 근처의 연못가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탄식을 하였다.
 
             돼         지    - 김 세 진-
  
       모가지가 짧아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시끄러운 편 꿀꿀거리는구나
       칠성점이 뒷다리에 박힌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진열장 속의 제 대가리를 들여다 보고
       쫓겨난 상계를 생각해 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짧은 모가질 하고
       먼 데 우리를 꼬나본다
 
  그 때였다.
  갑자기 한 노인이 못 가운데서 쑤욱 나오더니 두 손으로 공손히 받들어 서찰 한 통을 올리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세진은 노인의 주소도 이름도 확인할 짬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진이 엉겹결에 얼떨결에 얼결에 얼김에 얼낌덜낌에 얼떨김에 받은 서찰을 살펴보니 겉봉에  開見二人死 不見一人死 라 씌어 있었다.
세진은 조빠지게 말을 달려 천천정으로 돌아와서 임금에게 내력을 말하고 서찰을 올렸다.
 
  소지왕은 질래마(疾來魔)에 빠졌다.
  보지 말라면 더 보고픈 게 인지상정인데, 보면 둘이 죽고 안 보면 하나가 죽는다니. 에라,

천하보다 귀한 게 목숨이라는데 이왕 죽을거면 하나 죽는게 낳으리라. 떼보지 않으리라 하고 서찰을 옆에 있는 최제로공에게 넘겼다.
  서찰을 넘겨 받은 최공은 겉봉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대왕마마 여기서 말하는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대왕마마이옵니다.

당장 떼어 보소서! 하였다. 소지왕은 그 말이 옳다 싶어 서찰의 피봉을 계집 속곳 벗기듯 북 찢어 속장을 꺼냈다.
 
  거기엔 단 세 글자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射琴匣(사금갑) .
  거문고 집을 쏴라?
  이 묜 쇼리??
  왕은 곰곰 생각해 보았다. 거문고 집이라니. 거문고 집이 어디 있나?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거문골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가혜궁주 밖에 없었다.
 
  왕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의혹들을 누르고 월성궁으로 행차하였다.
왕이 올 것을 기다리던 가혜는 정성을 다하여 오이 맛사지를 하고 짙은 화장을 하고 그리고 가장 요염하고 선정적인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방으로 인도되어 들어간 왕은 방을 살폈다. 장롱 구석배기 빈자리에 오똑 놓인 거문고 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왕은 세진장군으로부터 넘겨받은 활에 화살을 재었다.

가혜의 새파랗게 질리는 표정을 보며 왕은 끊어질듯 시위를 팽팽히 당겨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놓았다.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금갑에서 피가 튀었다.
  잠시 금갑이 흔들리더니 고대 잠잠해졌다. 호위군사들을 들게 하였다. 어림군 소속의 무사들이 뛰어들어와 금갑을 열었다.

거기에는 가슴 정면으로 구멍에서 피를 뿌리며 분수승이 절명해 있었다. 가혜궁주는 바닥에 어푸러져 흐느끼고 있었다.
  왕은 가혜궁주와 분수승 장봉거사를 즉각 거열형에 처하고 그 목을 잘라 월성궁 정문에 효시토록 어명을 내렸다.
 
  훗날 이방부(理方部)로부터 올라온 수사 결과 보고서를 읽고 나서 왕은 최제로에게 물었다.
   어이 그날 쥐떼 까마귀떼 돼지떼가 신통 방통하게도 짐을 도와 시해 음모를 미연에 방지했을꼬  하고.
  최제로는 대답하였다.
   그건 이러하옵니다. 항상 천천정에 거동하시면서 주변 숲속, 천경림(天鏡林)의 미물들에게도 궁휼하시어 먹이를 주시매

그들이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라고.  쥐들이 알려준 것은 그들은 월성궁 거주의 쥐들인데

매양 장봉거사와 가혜궁주의 쑤근거리는 음몰 들었던 것이라
고. 그러길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 인데, 여기서 새는 다름 아닌 까마귀라는 것.
  그 뒤로 왕은 해마다 정월 상해 상자 상오일에는 백사를 삼가 감히 동작을 아니하였다.

특히 15일은 오기일(烏忌日-까마귀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에 대추를 버무려 들녘에 버렸다.

이는 까마귀의 밥으로 삼게 하려 함이었으니 이를 약밥이라 한다.

 방언으로  달도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서글피 근심되어 모든 일을 꺼린다는 뜻이다.
 
  왕은 노인이 서찰을 전해준 연못을 성지(聖池)로 지정하여 서출지(書出池)라 명명하고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천경림에 나아가 의례적으
로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리하여 천천정과 주변 숲인 천경림 그리고 근처의 연못 서출지는 신라 최고의 고대신앙의 성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돼지 때문에 까마귀를 놓쳐 황당, 아니 당황하였던 세진은 얼마나 놀래었던지 갑자기 길에 나타나서 자신을 홀린 돼지가 어찌된 건지 물
었다. 최공은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게 바로  업돼지 라고 하는 겁니다.
  어느 날 주인의 눈에만 보이는 돼지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왔죠.
  10년만에 그 집안은 천석 갑부가 되고 주인의 벼슬도 높아졌지. 그러다가 어느 날 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네.

주인은 곧 망하겠구나 하고 탄식을 하는데, 돼지들은 사냥꾼들을 유인해 와 하룻밤을 묵게 한거여.

마침 그날 밤에 쳐들어온 떼강도들을 사냥꾼들이 물리쳐 그 집안의 재물을 보호했다네.
 
  우와! 나 앞으로 돼지 사랑할꺼야.
  하하하 꽃돼지가 업돼지를 사랑한대.
  하기야 동족간에 사랑하는 거니까 하하하….
 
  왕은 중들이 궁궐에 출입하는 일을 금하고 도성밖으로 내치니 불교는 불륜의 종교로 낙인 찍혀 배척을 받게 되었다.

눌지왕 때 전래된 불교는 아직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지왕은 선도를 숭상하였기에

선도의 종합 발전 차원에서 불교를 공인하려고 맘먹고 있었다.

그래서 각종 제례에 분수승들을 기용하여 대신들에게 불교의 영험함을 알리는 계기로 삼으려 했던 바,

이 사금갑 사건은 왕의 결심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었다. 불교의 공인은 아주 물 건너 가버린 것이다.
 
  결국 불교는 법흥왕대에 와서 염촉(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되지만(법흥왕15년 528년),

약 40년 가량이나 늦어지며 무고한 피를 보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의 토속신앙이 그만큼 외래종교를 받아들이는데 섣부르잖고 주체적이었음을 잘 보여 준 사건이라 하겠도다.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국시인과 용우물  (0) 2008.09.27
역동선생전  (0) 2008.09.25
왕건과 오다련의 배놀이  (0) 2008.09.22
월노의 기가막힌 적승연 이야기  (0) 2008.09.21
옥황상제의 말씀  (0) 2008.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