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역동선생전

醉月 2008. 9. 25. 09:48

  … 영웅의 방략으로 역사를 알고
  … 성인의 도략으로 선도를 알라
    
  본명은 우탁(禹倬).   자는 천장(天章) 또는 탁보(卓甫).   단양 우씨로서 진사인 천규의 아들로 1262년에 태어났다.

송나라에서 정자의 학이 처음 고려에 들어오자 한달간 연구한 끝에 해득하여 남에게 가르쳤다는 천재이다.
 
  소년시절을 몽고의 전란 속에서 자란고로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 무척 강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려서 회헌 안유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충렬왕 4년 진사에 올랐으며 다시 문과에 급제하여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었다.
 
  영해는 경상도 땅에 있으며 사록은 회계담당 관리였다. 그런데 이 고을에 팔령(八鈴)이란 요신(妖神)의 사당이 있어 민심을 현혹키로 이
를 부숴 바다에 던져버렸다. 모두들 앙화를 입어 큰일이 날거라고부들부들 떨었지만 역동은 의연하였다.

만사는 사필귀정이요 파사현정이라면서.
 
  충선왕 즉위년에 감찰규정이 되었고 그후 선도에 조예가 깊어 성균제주(成均祭酒)에 임명되었다.

정주학에 관한 서적을 처음으로 해독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내외에 신망을 받는 역동선생이 상소에 들어간다 하니 모두 긴장하였다. 그의 상소는 다름 아닌 도끼상소.

도끼상소란 상소하는 이가 흰옷을 입고 도끼와 멍석을 가지고 어전 앞에 가서 하는 상소이다.

임금이 상소를 들어주던가 아니면 도끼로 목을 치던가 양단간에 결정하라는 대단히 극렬한 상소이다.
 
  역동선생의 상소문은 충선왕의 부끄러운 곳을 여지없이 공박하는 내용이었다.
   전하, 아직 부왕의 능에 올린 흙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그 총비를 희롱하는 처사는 인륜의 도를 저버린 패륜지사옵니다.

한상이처럼 부모를 살해하는 것만이 패륜은 아니올시다. 이미 나라의 도가 개굴창에 떨어졌사오니 소신은 이 자리에서 죽고자 합니다.

소신이 도끼를 엄청 잘 들게 갈아왔으니 소신의 목을 댕강 쳐주시옵소서.
 
  자신의 목숨을 돌보잖는 칼날같은 상소였다. 만조백관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모두들 우탁이 큰 피를 볼 것이라고 수근댔다.

왕의 조치가 주목되었다. 
왕은 침묵하였다.
  견딜 수 없는 침묵의 무거움.   그 침묵을 깨고 역동선생은 재차 상소를 올렸다.
   숙창비와의 불륜을 당장에 끊으소서. 그렇잖으면 한대국 역사에 최초로 제미冒한 인물로 기록되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옵니다. 호사유피(虎死留皮)요 인사유명(人死有名)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짱돌보다 흔한 게 여자이옵니다. 햇조개도 많은데 왜 부왕의 묵은조개에 집착하시옵니까, 전하.
 
  중신들은 아연 긴장하였다.
   이렇게 심한 말을! 보나마나 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약을 받던가 최소한 귀양을 가겠구나  하였다.

더러 뜻있는 신하들은  그렇게 깊은 깡다구가!  하고 감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충선왕은 역동선생의 상소를 가납하였던 것이다.
  왜였을까?
  우선 역동선생의 상소는 잘못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를 벌 줄 명분이 없었으며,

그보다 중요한 건 이제 단물을 다 빨아먹은 숙창비에게서 벗어나고 푸아였다.

그 국에 그 나물인 숙창비를 더이상 상대하기가 싫어졌던 것이다.
 
  충선왕에게는 나름대로의 계집을 다루는 세 가지 신조가 있었다. 이를 일컬어 후세 사람들은  충선삼칙 이라 하였으니…
 
  한 계집을 석달 이상 상대하지 않는다.
이는 계집이란 석달 이상을 살 섞으면 어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 들어 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참 정말 묘한 것이여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 색깔도 없고 냄새도 안 나는디,

그것이 들면 화끈해지고 그것이 나면 오싹해지며

그것이 부풀면 사족을 못 쓰고 그것이 닳으면 사지가 풀리며

그것이 붙으면 엿처럼 끈적이고 그것이 떨어지면 세상이 캄캄하니 정말 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래 심줄보다도 철사줄보다도 질긴 것이 바로 정(情)인 거여.
  있는 정 없는 정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면 정말 떼기 어려운 것이길래 심바지 노래하길 사랑보다 더 슬픈 게 정이라 했고

속언엔 冒은 정이라는데 하면 할수록 정이 들게 아닌가.
 
  둘째 자기보다 무건 여자는 상대하지 않는다.
  그런 여자는 성감이 둔할 뿐 아니라 상대하기에 체력 소모가 심하다. 재미는 절반이고 수고는 갑절이라면 이건 도저히 수지가 맞잖는
장사 아닌가.
 
  셋째 동시에 두 여자를 상대하지 않는다.
  엄이안은 앞의 두 가지는 이해가 되었으나 마지막 건 색골답잖은 것이어서 그 연유를 충선왕에게 물었다. 왕은 흥흥 답했다.
   명 재촉할 일 있어? 내가 무슨 수왈추제내거(授曰樞制耐巨)냐? 수태론(秀泰論)이냐?
 
  충선왕은 그래서 역동선생의 상소문을 핑계로 숙창비를 차버리자는 계산이었다.

물론 나중에 왕의 속셈을 알아챈 숙창비는 너무 분하여서 심양왕고를 불러들여 하초맛을 뵈주고 그걸 줄로 엮어서 심복을 만들어

쿠테타를 기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여자에게 원한을 사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고 칠팔월에 함박눈이 오는 법.

그녀는 끈질기게 원나라 조정에 충선왕을 모함하여 결국 왕은 재위 5년만에 아들 충숙왕에게 양위하고 원나라로 압송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그러길래 여자란 붙일 때보다 뗄 때 더 주의하라는 말이 있다.

달구벌에선 관계를 끊을려는 남정네의 양물을 절단해버린 한대국판 보비트가 출현했고

물골에선 강간당했다고 뒤집어 씌워 거액의 위자료를 뜯은 사건이 있었다. 또 노들골에서는 깡패를 동원하여 반쯤 죽여논 사건도 있었으니, 바람둥이 들이여 조심하라. 여자를 뗄 적엔. 사고없이 여자를 떼는 비법? 흐흐흐 맨입으론 못 갈쳐준다. 

  
  역동선생은 썩어빠진 고려 조정이 싫었다. 아들이 에미를 붙어먹는 패륜도 보기 싫었고

더구나 원나라놈들에 빌붙어 앞잽이 노릇하는 것들이 설치는 건 더욱 보기 싫었다.

그래서 벼슬을 내어던지고 고향 단양으로 내려갔다. 충선왕은 그를 간곡하게 붙들었지만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순 없었다.
   아아, 고려의 사직이 멀지 않았도다. 오얏나무(李) 아래 새 나라가 열리는구나. 목자득국(木子得國)이로다.
 
  단양팔경 중에서도 특히 상선암(上仙岩)에 머물면서 산수와 벗하며 천문지리 역술 복서 등에 몰두하였다.

이때 유유자적하며 그가 지은 시조 두 수가  백발가 라 하여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에 지금까지 전해온다.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춘산에 눈 녹은 바람 건듯 부러 간 데 없다
      져은 덧 비러다가 불리고자 머리 우희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역동선생이 선도에 달통하여 지선(地仙)이 되시여 단양팔경 중에서도 사인암과 사벽정 샘물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노니실 때의 이야기다.
 
  신선에는 천선(天仙) 지선(地仙) 시해선(尸解仙)이 있고 이들이 거하는 곳이 각기 다르다.
  천선은 신선 중에서도 가장 상급에 속하는 신선인데, 득선하여 하늘에 올라 천상계의 여러 관직을 맡아 그곳에 거한다.

이들이 거하는 천상계는 낙원으로 인간의 상상이 미치는 모든 행복이 다 존재하는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보칠산 김신선과 그의 절친한 벗 명광선 적각대선 장각신선 등이 있다.
  지선은 중위에 속하는 신선으로서 득선하여 깊은 산이나 망망대해의 외딴 섬 또는 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동굴 같은 곳에 거한다.
  이런 곳은 인간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어 신비성이 작용하는 곳으로서 이러한 곳에 별천지를 구성하여 세상의 영욕을 잊고

불로장생하고자 하는 이상세계를 이루고 있다. 상산의 사호선생, 안기생, 광성자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시해선은 일단 인간으로 이 세상에 살다가 죽은 다음에 신선이 되는 것인데,

시해의 방법과 시간에 따라 천선이 되기도 하고 지선이 되기도 한다.
 
  일찌기 전해오는 배달족의 명절일에 담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정월 원일(元日), 입춘, 상원(上元), 이월 삭일(朔日), 삼월 삼질, 한식,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삼복, 칠월 칠석, 팔월 추석,

구월 구일 중양절, 시월 오일(午日), 십일월 동지, 십이월 납향(臘享) 제석.
 
  유두 명절을 당하여 역동(易東)선생께서 신록에 삼림욕을 하시고자 소백산을 떠나 금강산으로 가시던 길에 장안사에 이르셨더라.

장안사는 금강산의 3대 사찰(표훈사 유점사 장안사)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찰로서 신라 법흥왕 때인 515년 진표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대웅보전은 뙤나라의 불교사원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같은 고색창연하고도 운치있는 건물이다. 무거운 기와를 얹은 48척 높이의 직사각
형 지붕과 화려하게 채색된 거대한 기둥에 떠받쳐진 굴곡깊은 처마를 갖고 있다. 정교하게 얽혀진 지붕은 그 내부에서 섬세하게 조각되고
화려하게 채색된 거대한 대들보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채광창의 역할을 겸하여 법당 안에 희미한 신성의 빛을 조성하는 정문의 문틀은 대
담한 솜씨의 격자 세공품으로 화려한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장안사 객방에 묵으시매 거기에 각색 병자들이 모였는데,

애꾸 절뚝발이 곱사등이 그리고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서 개기고 있었으며 건넌방엔 소경과 앉음뱅이가 있었더라.

그들에게 어인 일이냐고 물었더니 금강산 옥녀탕에 선녀가 목욕하고 승천한 후 첫닭 울 무렵 물이 동할 때에 가장 먼저 다이빙하면

무슨 병이든지 하나는 고친다는 소문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민스러운 것은 옥녀탕 가는 산등성이에 호랑이가 벌써 여러 날째

버티고 서서 성한 사람은 그냥 내벼두고 병신들만 잡아먹고 있으니 도대체 이누무 호랑이 시끼는 장애잘 사랑하는 맘은 눈꼽만큼도 없는

나뿐 시끼가 아니냐는 성토였다. 병신도 서러라커든 호식까지 당하실까 하면서 이 호랑이 때문에 옥녀탕에 갈 대책이
없어서 이렇게 객방에서 근 열흘을 개기고 있으니 끓는다는 것이다.
 
  마침 삼십 팔년 된 병자가 누워 있기에 역동선생께서 궁휼한 맘이 일어 네가 선도를 믿겠느냐 물으셨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부귀와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걸 잃는 것입니다. 대가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라고 울먹였다.
   그대가 그럼 아침마다 뜀박질을 하느냐  고 물었더니,
   일어설 심도 없는 놈이 무슨 아침 뜀박질입니꺼.
  그런 건 공삼거사나 하는 짓거리 아입니꺼. 
   꼭 낫고자 하느냐? 
   두말하면 잔소리고 세말하면 헛소리요 네말하면 개소립니다.
   알았다. 그리하면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 졸빠지도록 절간에 쓸 불목을 한 짐 패놓고 해뜨기 전 도끼를 든 채 득달같이 용천으로 올라가
서 샘물 옆의 느티나무를 젖먹던 힘을 다하여 밑둥을 확 찍어뻔져라 그리하면 무슨 도리가 생기리라. 
  
  … 역사란 방편을 열어서 진실을 나타냄이며
  … 선도란 삼승을 모아서 일승에 돌아감이다

 
  곁에서 듣고 있던 애꾸 절뚝발이 곱사등이가 역동선생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가만 보아하니 이인(異人)이신 듯 한데 저희에게도 치병할 비방을 일러주소서 저희도 선도를 믿겠나이다. 
   산군(山君=호랑이)을 따돌리는 것은 별문제 아니려니와 그리한다 하여도 셋 중에 누가 옥녀탕에 먼저 들어 간단 말이오?

마치 계집 하나 속곳 벗겨놓고 열 사내놈들이 뽑기하는 것보다 더 어렵잖소?

그것만 백성적으로 결정한다면 내가 산군을 따돌릴 계책을 일러주겠소.
 
  세 빙신이 가만 생각하니 호랑일 피할 방도를 갈차 준다는데… 문제는 셋 중 누가 우선권을 가져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속담에 남의 심장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 남 다리 부러져도 내 손톱 밑 가시든 거만 못하다 내 눈의 티끌이 남 눈의 들보보다 더 아프다라는데 누가 양보를 할 것인가. 그래서 셋은 각자 빙신 설움을 하소연하여 젤 눈물겨운 놈이 우선권을 갖기로 하고 신세 타령을 시작하였다.

심판은 물론 역동선생이 하고 심판말엔 월두겁(月斗劫) 격구 심판처럼 절대복종을 맹세한다.
 
    느그들 애꾸의 설움을 아니?
    아 애꾸눈 윙크 하나 마나
    아 애꾸눈 활 쏠 때 눈 감으나 마나
    에헤라 데헤라 애꾸냐 깨꾸냐 에헤에헤… 
 
   애꾸나라에는 눈 둘 달린 놈이 빙신이다  라는 우스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외줄기 눈물을 남모르게 흘려야 했고 실수를 할 때
마다 눈깔이 없나 눈깔이 삐었냐 눈깔이 까졌냐 해태눈깔이냐 눈깔에 명태 껍질을 붙였냐… 하는 욕설에  눈깔 노이로제 가 걸려서 누가
 눈깔사탕  그래도  읔 하고 놀래고  낙타누깔  해도  읔  하고 놀랬던 것이여.
  이런 욕을 들을 때마다 그건 심장을 칼로 쑤시는 아픔이었어. 특히나 밥은 뜸이 들어야 먹고 남녀는 눈이 맞아야 정이 든다는데 애꾸눈
이니 눈맞힐 여자가 있어야지 변변히 연애를 할 수 있나 장갈 들 수 있나.

옛말에 이르기를 눈이 보배라고 하며 몸 중에 눈 값이 천냥이라니 내 설움이 으뜸이로다.
 
  어허 뭔 쇼리 하나. 애꾸 서러울 것 하나도 없당게. 속담에 이르기를 장모 눈엔 사위가 애꾸라도 예뻐 보이고 시아비 눈에는 며느리가 곰보
라도 예뻐 보인다 했으니 얼마든지 장가갈 수 있고…
 
  조조 장수 하후돈은 화살맞고 애꾸됐으나 더욱 용맹했고   궁예는 젖아기적 애꾸됐으나 쇠둘레(철원)에 태봉국 세워 임금 되었고
  기로사(奇蘆沙)선생은 어릴적 화살 찔려 애꾸되었으나 용단호장(龍短虎長) 글을 풀어 장안만목(長安萬目)이 불여장성일목(不如長城一目)
되었고   모세 다얀은 애꾸였으나 육일전쟁 승리하여 세계명장록에 올랐고   쟈은 애꾸 선장이나 영심이의 노래에까지 작사되었고
  태호는 시합 중 애꾸되고서도 골케타 되었도다.
 
  오죽하였으면 일목요연(一目瞭然)이란 말이 다 있을라구…
  우리 절뚝발이 설움 어데다가 이루 하소연 하리오? 절름발이니 찐따니 하는 놀림말고도 찔뚝이라고도 놀리고 속담에 이르기를 혼사가
깨진 색시는 절름발이가 된다 다리 빙신이 비렁뱅이 된다라 하여 빙신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잖은가 말이다. 
  그리하여 애들 노래에도
 
   이리 칠 저리 칠 개대가리 똥칠
   이리 팔 저리 팔 조막손에 곰배팔
   이리 구 저리 구 햇비둘기 구구구
   이리 뚝 저리 뚝 절름발이 찔뚝팔뚝
 
  어허 뭔 쇼리 하나. 절름발이 서러울 것 하나도 읍지라우.
 
  손빈은 다리 하날 잃고서도 병법의 시조되었고,
  누주배토는 소아마비를 앓고서도 아무러케국 대왕을 네 번씩 하였도다.
  바이런은 한 다리 길었어도 대시인으로 사교계에서 미녀들만 골라 시식하였고,
  가린차는 소아마비 걸렸어도 부라질 나라 대표 격구 선수되어 온누리공차기 큰모임에 나갔도다…
 
  우리 꼽사등이 설움 어찌 이루 다 말하랴.
  우리 서러운 것 일일이 다 말할짝시면 수족 끊긴 척부인(戚夫人)의 설움이요,
  장신궁(長信宮) 꽃필적 반첩여(班堞麗)의 설움이요,
  소상강 반죽(班竹)된 아황여영(娥皇女英) 설움이요,
  마외역 젊은 날 양귀비 설움이요,
  낙양 옥중 고생하던 숙낭자의 설움인들 이보다 더할까.
 
  앉아도 선 것 같고 서도 앉은 것 같고 누워도 션찮고 기대도 션찮고 운신하는데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거니와 꼽사등이 꼽새 꼽추가
다 우릴 가리키는 말 아닌가? 어떤 놈덜은 우릴 보고 단봉낙타냐 쌍봉낙타냐 하고 비꼬는 놈들이 다 있다.

그런 놈덜은 졸이나 확 꼬부라져라.
 
  우리 설움 볼짝시면 빙신 춤 중에 첫마당이 꼽새춤 아니며 일요명화 중에 첫짼 노틀담의 꼽추 아닌가? 무식한 것들이 노틀담의 꼽추라니까
가을날 담벽에 고추 말리려고 널어놓은 걸로 착각들 하는데. 암만 착각은 자유라지만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인가. 콰지모도를 보면 꼽추가
을매나 서러운 건지 긴소리 필요읍을 거여. 이래도 젤 서러운 게 꼽새 아니고 누구것어? 나가 젤 먼저 들어가야 혀, 옥녀탕엔.
 
  역동선생은 세 빙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여러분이 불구의 몸으로 겪어야 했던 쓰라림을 잘 알겠습니다.   
병신 치고 오줌 안싸는 병신 없다 병신 치고 육갑 못하는 놈 없다라는 모멸적인 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신체불구보다도 더
불쌍한 게 있으니 그게 뭔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염치불구올시다.
 
  미물들도 다 염치가 있는 법이니…
  벌은 난초의 꿀을 모아 맨 먼저 여왕벌에게 진상하니 충절염치 있고,
  염소는 어미젖을 빨 때 반드시 무릎꿇으니 효도염치 있고,
  제비는 3년 동안 한 집에서 들어와 살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반혼석(反魂石)으로 보답하니 보은염치 있고,
  수달은 물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먼저 제사를 지내고 먹는다 하니 예절염치 있고,
  원앙은 늙어 죽도록 일부종사하니 정절염치 있다 할 것이오.
 
  사람의 본성을 인, 의, 예, 지로 나누는데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단(仁之端)이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義之端)이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지단(禮之端)이요, 시비지심(是非至心)은 지지단(智之端)이라 하였소이다.
 
  염치불구자는 이러한 마음이 속에 없는 자들이랍니다. 그러길래 속담에 이르기를 염치 없기는 冒 본 졸이라느니,

冒에는 염치가 없다느니 하지 않았겠소. 내가 판정하오리다. 애꾸는 비록 눈이 하나라지만 얼마든지 세상을 다 볼 수가 있소.
 
  또 절름발이는 비록 한 다리지만 다른 다리로 얼마든지 세상을 다닐 수 있소.

다시 말하면 애꾸나 절름발인 두 개씩 갖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고장이 난 게 아니겠소?

그러나 곱추는 하나밖에 없는 등뼈가 고장이 났으니 처지가 가장 딱하다 할 수 있소.

그러니 이번엔 곱추 다음번엔 절름발이 그 다음번엔 애꾸가 들어가도록 하시오.
 
  선도에 이르기를 남을 궁휼히 여기는 자라야 하늘의 궁휼을 저도 받으리라 하였으니 먼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 주기 바라오.
이를 어려운 말로 동병상린(同病相隣)이니 환난상휼(患難相恤)이니 하는 것이오. 마음이 고와야 복을 받는다 얼굴 일색이 마음 일색만 못하
다 마음을 고쳐야 옳은 귀신이 된다는 말들이 빈말이 아니라오. 피차 상부상조(相扶相助)하고 차서양보(次序讓步)하고 삽시다. 평생을 남에
게 양보 안하고 새치기하여 앞서가던 사람이 죽음도 앞서갔다는 공익광고협의회의 이야기 잘 알지요? 
   예 그러합죠. 저희들이 도사님 말씀을 따르겠사오니 호랑이 퇴치법이나 일러 주옵소서.
 
  다음 날 새벽 병신 셋은 산고개로 올라갔다.
산군은 올라오는 사람들을 째려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빙신들을 잡아 먹어야지 하고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맨 앞에선 사내가 한 눈을 가리고,  아니야 이쪽으로 거야지. 저쪽으로 그라니까  하면서 뒷걸음질치면 그 뒤를 또한 사내가 허리굽혀 막대기로 금을 그으며 따라가고 세번째 사내가  에이 잘못 그었대두. 이렇게 그면 안된대두.  하면서 뻐쩡다리로 금을 지우며 따라가는 것이었다.

산군이 아무리 보아도 빙신은 없었다.
 
  산군은 고갤 갸우뚱하면서  이상타 애꾸와 꼽추와 찐따가 있었는디 있었는디… 
  그때 맨 뒤에서 미소를 지으며 따라가던 역동선생이 산군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약통을 올렸다고 한다.   빙신 읏다.
 
  다음 날 산군은 너무 약통이 올라  두고 보자 오늘은 꼭 빙신 잡아 먹고 만다.  벼르고서 산등성이에서 기다렸다.

건넌방에 머물던 소경과 앉음뱅이도 역동선생께 가르침을 요청하였다. 소경의 이름은 지성이고 앉음뱅이의 이름은 감천이었다.
   지그들이 빙신이지만 꼬옥 결초보은 하겠으라우.
   그럼 산군을 피할 방도도 방도라지만 누가 먼저 옥녀탕에 들어갈 것인고?
  소경이 말했다.
   앉음방이가 들어가야죠. 얼마나 세상 한번 다리펴고 살고 싶었갓어요. 세상에 나서 땅 한번 제대로 디디고 살아봐야죠. 
 
  앉음뱅이가 말했다.
   뭔소리여? 소경이 먼저 들어가야지. 배냇소경이니 세상이 어떻게 생긴 건 고사하고 부모님 얼굴 자슥 얼굴 얼매나 보고 싶것나?

당연히 소경이 먼저 들어가야지. 
 
  아, 소경과 앉음뱅이가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고 다투는 기라. 이를 지그시 바라보던 역동선생 왈, 

그대들의 의리와 궁휼 정신이 상달되었으니 옥녀탕에 이르기 전 반드시 효험을 보리라…
 
  소경이 앉음뱅이를 목마를 태우고 앉음뱅이는 소경의 두 눈을 가리었다. 그리고 옥녀탕으로 갈 방향으로 머릴 돌려 주었다.

둘은 상부상조하면서 거뜬히 산고개를 넘어갈 수 있었다.
 
  연 이틀 허탕을 친 산군은 껄껄 웃으면서,
   모두 역동의 농간이군  중얼거리면서 꼬리를 내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산고개를 병신들이 호랑이를 퇴치하였다
하여  병호곡(病虎谷)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성(소경)이와 감천(앉음뱅이)이가 산고개를 넘어 옥녀탕으로 가다가 목이 말라 물이 먹고 싶어서 고개 밑의 샘으로 가서 물을 마실려고
보니까 무엇인가 누런 것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금덩이가 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감천이는 지성이 보고,
   샘 속에 금덩이가 있다. 우리 저 금덩이 건져서 갖자. 
 
  이래서 지성인 엎드려서 금덩이를 건져서 감천이에게 주며  니가 봤으니 니꺼다. 니 가져라.  했다.

감천이는  몬 쇼리냐! 니가 건졌으니 니꺼다 니 가져라.  그만 거기서 니 가져라 내 몬 갖는다 하고 서로 사양하며 싱갱이가 난기라.

그러다 우리 싱갱이 할 것 없다 도로 샘 속에 너두자 하고 금덩일 샘 속에다 쳐넣어 버리고 장안사(長安寺)로 올라갔다.

절에 가봉께 절에선 부처에다 금을 입히고 있는데 금이 모자라 불사(佛事)를 중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성이와 감천이는 우리가 샘물 속에 두고온 금뎅이를 불사에 시주하자 합의하곤 중에게 샘물에 금뎅이가 있시니 갖다가 쓰라고
일렀다. 중은 비호같이 내달아 샘 속을 들여다 보니 금은 없고 커다란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중을 보고 물려고 대들었다. 

중은 무서워서 장도칼로 쳐서 구렁이를 두 동강이 내놓고 절로 돌아와서 지성이와 감천이를 보고 너그들이 부처님 전에 거짓말을 했시니

죽어 발설지옥(拔舌地獄)에 가리로다 하였다. 지성이와 감천이는 이상해서 샘에 다시 가보았더니 구렁이는 없고 금 두 뎅이가 있었다.

야덜은 그 금뎅이럴 하나씩 들고 절로 와서 이 금뎅이로 부처님께 입히라고 주었다.
중이 금을 녹여 금물을 부처에게 입히니 광채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그 부처를 우러러보며 지성이와 감천이가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을 하는 순간 부처로부터 나오는 휘황한 광채가 지성이의 눈을 쏘고,

감천이의 무릎을 찔렀다. 그 순간 지성이는 눈을 번쩍 뜨고 감천이는 다리가 쭉쭉 펴져서 다 성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금을 얻은 그 샘물을 지성의 지를 따고 감천의 감을 따서 지감천(至感泉)이라 부르게 되었고 

 지성이면 감천 이라는 속담도 이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이 때 대국 천자가 총애하는 장수 중에 흔도(欣道)라는 장군이 있었다.

대국이 고려를 침략하여 속국화할 때 앞장서서 용맹을 떨치던 장수로 성질이 아주 개졸같기로 유명하였다.

그의 개졸같은 성질을 잘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몽고에 저항하던 삼별초군을 김방경 장군과 함께 토벌한 후 잠시 휴식하며 정원에서 쉴 때다.

병사 하나가 마침 참새(true bird) 한 마리를 잡아 흔도에게 주었다. 흔도는 그걸 가지고 놀다 목을 졸라 죽어버렸다.

(이때부터 참새목숨이란 말이 생김) 그리고선 곁에 있던 김방경 장군에게 소감이 어떠시냐고 물었다. 김방경은 속으론 졸같았으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Good is good.) 좋게 답하였다.
   이 참새들이 몰려와 곡식을 먹어치우니 농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소. 장군이 이 참새를 죽인 것은 농민의 고생을 생각해서겠지요.
 
  그러자 흔도는 무뚝뚝하게 대답하였다.
   내가 만난 고려인들을 보니 디게 유식합디다. 그래선지 울리 몽고인들을 바보로 알고, 몽고놈들은 살인을 밥먹듯하니 필시 천벌을 받을
거라고들 말합디다. 그러나 살인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명이요. 우리는 다만 그 명을 지킬 따름이요. 천벌 따위는 있을 리 없소. 하눌님을
믿으려면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소. 그러니 당신들은 몽고인의 노예가 되게끔 되어 있소.
 
  정말 싸가지가 쥐졸만큼도 없는 작자였다. 이 흔도라는 작자는...


  … 명리(名利)를 떠난 곳에 명리(命理)가 있고
  … 선도(仙道)가 있는 곳에 선도(善道)가 있다
 
 
  뙤나라 천지는 물론이요, 회회국(回回國-아라비아)까지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고려를 속국화하여 철령 이북엔 쌍성총관부를 자비령 이북엔 동녕부를 그리고 제주도엔 탐라총관부를 설치하는 소위 <고려국 통치안>

이라는 것을 기안한 공로로 병부상서에 제수되고 천자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등 상한가 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그가 기안한 <고려국 통치안>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였다. 우선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고려의 군마를 징발한다.

그리하여 아직도 꺄불고 대항하는 게다국을 정복한다. 감찰기관으로 순마소를 두고 군관으로 다루가치를 배치하여 내정을 감독하게 한다.

다음 고려의 정치제도가 대국과 격이 대등한 것은 어불성설이므로 격을 다음과 같이 낮춘다.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하나로 합쳐 첨의부라 이름하게 하고, 그 장관은 상서라는 칭호를 못 쓰고 첨의중찬이라 하게 한다.

육부 중에서 이부와 예부를 합쳐 전리사라 하게 하고, 병부는 군부사 호부는 판도사 형부는 전법사로 개칭하고 공부는 폐지케 하여

6부를 4사로 축소시킨다.
  이밖에 중추원은 밀직사 어사대는 감찰사 한림원은 문한서로 개칭 한다. 왕실용어도 격을 낮추게 해서

각 왕의 묘호는 조(祖)나 종(宗) 대신 왕이라 하고 대국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모두 충(忠)자를 앞에 붙이게 한다.

왕이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인 짐(朕)도 고(孤)로, 폐하는 전하로, 태자는 세자로 격하하여 부르게 한다.
 
  이렇게 짱짱하게 잘 나가는고로 뙤국의 높은 벼슬아치들은 그와 사돈맺고 싶어서 매파를 넣어 세살배기 딸을 며느리 달라고 안달에 복달
이었다. 족한 줄을 알면 그칠 줄도 알라(지족원운지 知足願云止)는 것이 을지문덕 대장군의 가르침이건만 그는 안분지족(安分之足)을 몰랐
더라. 기고만장하여 고려국을 아예 직할령으로 하고 그 도독으로 임명해 달라고 천자에게 주청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한날 밤 꿈에 을지문덕 대장군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준엄히 꾸짖으셨다.
   나는 배달족의 군신(軍神) 문덕이다. 네가 감히 내가 지키는 배달국을 넘보다니… 이노옴 양제도 그 아들 문제도 내 앞에서 감히 까불지
못했거늘 네 놈이 그들보다 쎄단 말이냐…이노옴 분수를 알면 수학을 풀고, 주제를 알면 국어를 풀고 위치를 알면 지리를 푸는 것이다.

 네 놈에게 하늘 무서운 걸 뵈 주겠노라.  하더니 입에서 무엇인가를 훅! 하고 내뱉었다.
 
  쌀알같은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얼굴에 척 달라붙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온몸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기겁을 하고 놀라 잠을 깨었다. 온몸이 식은 땀에 젖어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건지손(健肢損)이 영 좋찮았지만 조회를 거를 수가 없어 등청을 하였다.

더군다나 오늘은 천자가 확실한 비답을 내려주기로 약조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조회를 하던 중 천자가 흔도 장군의 얼굴을 보더니 하문하였다.   
   아니 경은 얼굴이 왜 그 모양이오? 
   예? 얼굴이 어때서요? 밥풀이라도 붙었나요? 
   밥풀이면 내 말을 안하겠소. 보리밥이 붙었잖소. 
 
  흔도가 깜짝 놀라 얼굴을 문질러보니 과연 보리밥풀이 세개씩이나 붙어 있었다. 흔도 상서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조정 대신들은 터지
는 웃음을 참느라 여기저기서 킥킥거리고 야단이었다. 예부상서가 징글거리며 말했다.
   시장하실 때 드시려고 그런가 봅니다. 
  그러다가 예부상서가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앗! 저건 한센씨 병이다 레프라다. 
 
  한센씨병? 레프라? 이것이 뭐다냐. 보리밥풀을 뗀 자리에 허옇게 변색되어 문드러진 피부…

쉰말론 문둥병 어려운 말론 천형병(天刑病). 흔도 그는 배달국을 넘보다가 군신 을지문덕 대장군의 저줄받고 문둥병에 걸려 버린 것이다.

을지문덕 장군이 뱉은 보리밥풀 세개에 졸지에 문둥이가 된 흔도. 그래서 그때부터 얄미운 작자를  보리문둥이 라 부르게 되었다는

믿으면 복받고 말면 벌 받는 고향의 전설이 생겼더란다.
 
  대국 조정에서는 난리가 난 것이다. 병부상서 겸 삼군도행마대국충신병마절도사라는 어마어마한 직책에 있는 흔도 장군을 문둥병에 걸
렸다는 이유로 내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 것을 방관할 수도 없고    그점은 자택에 돌아온 흔도 장군도 똑같았다. 아!
화려했던 나의 인생도 이제 여기서 끝장인가? 종치고 막 내리는 것인가?
 
  천재적인 시문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하운 한림학사도 문둥병에 감염되어 사직을 하고 천하를 방랑하다가 일생을 마친 전례가 있다.

흔도는 하운학사가 지은 <보리피리>라는 시를 처량하게 읊어 보았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이 그리워
     필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청산
     어릴 때 그리워
     필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필 닐리리
 
  또 그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문둥섬으로 떠날 때 썼다는 시가 생각났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문 광장을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찌가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이제 나는 해와 하늘빛을 서러워하며 어둠 속에 숨었다가 보리밭에 달 뜨면 잡아온 애기의 생간을 빼먹으며, 피같이 붉은 울음을 밤새 울
어야 하는 신세가 되어야 하나.
 
   아아, 용왕은 토끼의 간을 빼먹고
   여우는 소의 간을 빼먹고
   얌체는 벼룩의 간을 빼먹고
   사기꾼은 새우의 간을 빼먹고
   난 아기의 간을 빼먹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깊은 시름 하는 차에…
 
  마침 고려국에서 공녀(貢女)로 데려온 계집종이 하나 있었다. 이름이 민아(敏兒)로 데려올 당시 열세 살.

흔도가 고려를 정벌하고 돌아올 때다.

영변땅을 지나올 때 어디선가 짱돌이 하나 날아오더니 흔도의 마빡을 정통으로 때린 것이다.

눈앞이 번쩍하면서 흔도는  아이쿠! 핵폭탄이 터졌나.  하고 보니 큰 나무 뒤에 누군가가 숨어있는 것이다. 
군졸들을 시켜 잡아오게 하였더니 나무 위로 다람쥐처럼 쪼로록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무 잘 타는 군졸을 올려 보내 잡으려 하였으나 발밑
에 다 가서 앞차기에 나가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맹랑하기 짝이 없는 그녀를 붙들 수 있었던 것은 칠뜨기같은 남동생 때문이었다.

자기 누나의 활약을 숨어서 보고 있던 남동생이 응원을 한답시고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동생을 붙잡고 안 내려오면 동생을 죽이겠노라 협박을 하자 내려왔다. 내려와 붙들린 그녀는 동생에게 눈을 흘기며 말하였다.
   머리가 나쁘면 평생 고생한다니까...
 
  그녀를 붙잡고 왜 짱돌을 던졌느냐고 문초하자 울 엄마 아부지를 죽인 원수라고 악을 쓰는 것이었다. 흔도는 그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본국으로 끌고 왔던 것이다. 그리고 부인의 몸종으로 선사한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반발하고 말을 잘 안 듣기에
흔도가 골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한참있다 나온 후로 아주 고분고분해지고 말을 잘 들었다. 인물도 반반한데다가 총명하여 무슨 일을 시켜
도 걸림없이 잘 해내서 흔도 부부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그녀가 충복이 된 후에 부인이 궁금하여 장군에게 물었다. 골방에서 어떻게 했
기에 빳빳하던 그녀가 나긋나긋해졌느냐고.   
   음! 별거 아니었어. 홀딱 벗겨놓고 내 빳빳한 가죽침을 쑤욱 끄내면서 이랬지, 너 왕침 한번 맞아야 말 들을겨?
 
  민아가 집안 기미를 눈치채고 부인에게 말하였다.
   대감께서 고려에만 가시면 좋을 텐데요. 고국 고려에 역동선생이란분이 계시는데 명리학 천문학 풍수지리학 인상학 육효점 등

오술(五術)에 능할 뿐만 아니라 병자들이나 병신들을 멀쩡하게 잘 고쳐서 생불이니 도사니 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많사온데

지금은 도장을 열고 제자들에게 선도를 가르치고 있지요.
 
  물에 빠진 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구렁에 빠진 년은 머리카락이라도 붙든다고 부인은 그 이야길 남편에게 하였고,

흔도는 민아를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나서 천자에게 주청하였다. 고려국에 가서 치병을 할 터이니 윤허하여 주옵시라고.
  천자는 즉시 고려국왕에게 보내는 친서를 승정원에 하명하여 썼다.
병부상서 흔도가 문둥병을 치료하고자 가노니 영접에 각별할 것이며 기필코 병을 완치시켜 보내기를 바라노라.

짐은 고려국왕의 충성심을 예의주시하겠으니 성심을 다해 주기 바란다.
 
  흔도는 수레 두대를 준비하여 젤 앞엔 자신이 타고 두번째엔 역동선생에게 줄 선물을 싣고 군사 300명을 대동하고 고려로 왔다.

흔도 장군이 올린 원나라 황제의 친서를 읽고 충혜왕은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아니 천형인 문둥이를 보내면 나는 어떡하라고, 더구나 문둥병은 법정전염병 제 1종인데 이렇게 마구 돌아다니게 나뒀다가 전염이라도 되
면 책임질 건가? 내가 허준이여 이제마여? 하다못해 울나라에 종합병원이 있어 이재룡이가 있어. 울나라에서 문둥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최 모르는구만.
 
    문둥이 지랄하네
    문둥이 같은 자슥
    으구 저 보리문둥이
    문둥이 졸같은 자슥
    경상도 문둥이 졸 잘라먹듯 한다
    문둥이 콧구멍에 박힌 마늘을 빼먹어라
    길 닦아 놓으니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
 
  속을 지글지글 끓이던 충혜왕은 엄이안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골치아픈 일은 꾀주머니 엄이안이 잘 해결할 듯 싶었다.
   흐흐흐 상감 무얼 걱정하십니까. 염려 붙들어 놓으시라니까요. 소백산에 은거해 있는 역동에게 보내시면 되는 겁니다.

만에 하나 그가 고친다면 상감께서 에헴하고 광을 내시면 되는 것이고, 못 고치면 유언비어 유포죄에다 사회불안 조성죄,

불법 의료행위 단속법 위반에다 기군망상죄(欺君妄上罪)를 적용하여 이번 기회에 못된 역동을 처단하시는 겁니다.

그를 엮어 넣을 죄목은 부지기수요 닥상이요 보꾸요 매니입니당.
 
  이거야 말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식이며,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셈이고,
  원님도 보고 환자도 타는 격이고,
  배 먹고 이 닦기며,
  떡 삶은 물에 중의 데치기이고,
  군불에 밥짓는 셈이며,
  짱돌 날려 참새잡고 떨어지며 토끼잡는 셈이고,
  과부 따먹고 재산 차지하는 판이며,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내려 땔감하고 깃털 모아 부채 만드는 격 아니겠습니까?
  이런 걸 사자성어론 일거양득이요 일석이조라카는 것이옵니다.
   오오! 역시 그대는 나의 꾀주머니요 나의 해결사로다. 주문왕에 강태공이요 유비에 제갈량이요 유방에 부라자 아니 장자방이로다.
  껄껄껄… 

  … 역사를 모르는 자 야만인이요
  … 선도를 모르는 자 미개인이다

뙤국 장수 흔도는 소백산으로 향했다.

적어도 대국의 병부령이 행차하면 역동인가 누군가가 대궐에 입시해 있다가 자신을 직접 치료해줄 줄 알았다.
 
  이렇게 험한 길 더듬어 소백산까지 가는 흔도의 심정은 울화통이 끓다 못해 부어터질 지경이었다.

씩씩거리며 소백산 초입에 도착한 흔도는 깊은 산속 어디서 역동선생을 찾을지 막막하였다.

볼이 잔뜩 부풀은 흔도는 안내하는 고려인에게 명했다. 한식경 이내로 못 찾아내면 뒤질 줄 알라고. 고려인은 막막했다.

안내, 가이도(街里導-길의 리수를 인도하는 사람) 고려인은 생각다 못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크게 소리질렀다.
  못찾겠다 꾀꼬리 못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에…  그러자 희한하게도저쪽 골짜기에서 응답이 들려왔다. 꾀꼴 꾀꼴 인꾀꼴…

흔도 일행은 소리나는 쪽으로 모두들 달음질쳤다. 거기엔 겉보기에도 창덕이처럼 꺼벙하기 짝이 없는 사내 하나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대가 역동선생이라고 하는 잔가?
   아닙니다.

소생은 역동선생의 수제비(秀第匪)되는 우돌이라 하는 사람으로 당신들을 마중하라는 스승님의 말씀을 받잡고 기다리던 중입니다.
   수제비가 뭔고?
   (무식허긴) 으뜸 제자를 수제비라 하오.
   (못 생긴 놈이 폼은) 나는 그대의 선생을 만나러 왔는데, 어이하    여 그대 선생은 콧배기도 뵈잖고 꺼죽한 그대가 왔는고?
   문둥병을 고치러 오셨지요?
   아니, 그대가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우리 스승님은 좌시천리(坐視千里)요 입시만리(立視萬里)입니다.
  이번에 오는 뙤국 장수가 더럽게 오만하여 상종할 상대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원천리하고 찾아왔고, 의술에 국경이 없으며, 또 한대국의 선도를 온 게다국과 뙤국과 아무러케국 땅끝까지 전하라는

옥황상제의 지상명령이 있으매, 당신의 문둥병을 고쳐 선도의 증험으로 삼겠다 하시더이다.
당신이 정히 문둥병을 고치겠다면 지금 즉시 양중천에 가서 일곱번 목욕하고

다시 양안천에 가서 일곱번 목욕하면 나으리라   합니다                                   
뒤돌아 보지 말고 산을 내려가 즉시 시행하시요. 뒤돌아  보지 말라는 말을 명심하시오. 만약 뒤돌아보고서 불미한 사태가  
  난다면 그건 전적으로 당신들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다.    자, 나는 갑니다. 안뇽!!!
 
  그 말을 전하고 우돌이는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흔도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잖았다. 나가 누군가? 대원제국 병부상서 흔도 아닌가?
대원제국으로 말하면 전 뙤나라를 통일하고 구라파까지 쳐들어가 발슈타트 전투에서 구라파의 수문장이라는 덕·포연합의 최정예 군사를
박살내고 전 구라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막강군대가 아니더냐? 아아,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팔뚝에 힘이 용솟음치지…
 
  징징 징기스칸의 대몽골제국.
  하늘의 별처럼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인물.
  징징 징기스칸.
  그는 아직도 내 맘 속에 별이지.
  징징 징기스칸.
 
  중앙아시아 몽골 초원에 이리저리 흩어져 살고 있던 우리 몽골족에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셨지.

이름하여 테무진. 그는 수십 개로 분열되어 있던 우리 부족민들에게  나는 테무친입네다. 우리 부족들은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들으시오.

우리 몽골족은 자원도 없고 인구도 적습니다. 우리는 뭉치면 살 것이요, 흩어지면 죽을 것입네다. 라며 부족통합운동을 전개하셨지.

우리 몽골부족은 그분의 노력 덕분에 막강한 국가로 발돋움했지.
 
  그는 전쟁의 화신이자 군신의 하강이었어. 전생애에 단 한번도 패배를 모르셨지. 그래서 그 분은 말씀하셨어.

나의 사전에 패전이란 단어는 없다고. 부족최고회의인 쿠릴타이에서 그 분은 징기스칸으로 추대되었지.

전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고 북중국까지 영토를 확대하여 세계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지.
 
  우리 몽고군의 편제는 전부가 기병이고 보병은 한명도 없다는 것.
말은 서아시아나 구라파의 중장기병과 달리 가벼운 장비만 갖춘 것이지. 군인도 간단한 가죽의 투구를 입었을 뿐. 이렇게 경쾌한 장비가 우
리 몽고군의 특징이지. 무기는 중장기병들이 가지고 다니는 칼이나 창이 아니라 활이지. 짧고 팽팽하기가 젊은 계집 허벅지보다 더한.

많은 살을 준비하고 있다가 말을 달리며 순간 속사를 하는 거야.

이렇게 말 위에서의 능숙한 활쏘기가 세계에 자랑할만한 우리들의 전투력이라네.
물론 방위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분동성과 공격력은 어떤 군대도 따를 수가 없지.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며?
  병사들은 예비로 말 대여섯 마리씩은 가지고 있지. 이것은 말을 갈아 쓰는 때도 필요했지만 식량과 무기를 운반하는데 필요하지.

식량이 부족한 때는 말을 잡아 먹기도 하고. 그밖에도 여러가지 쓸모가 있어 말은 그야말로 중요한 동물인 거야.
 
  부대 편성도 극히 단순해서 오직 십진법을 사용하지. 열 사람을 한 조로 만들고 열 조를 한 호로 하여 그중 한 사람을 장으로 삼지.

십호를 열개로 해서 백호를 만들고 백호를 열로 해서 천호를 만들었지. 그 천호가 전투의 표준단위인 거야.
 
  가을. 천고마비지절(天高馬肥之節). 말이 살찐다는 것은 우리 몽고 유목민에겐 번영을 뜻하는 거지.

이민족 정벌을 위한 군대의 막사인 빠오는 중가리아 평원의 기복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고 넓디넓은 초원은 사람과 말에 덮일 정도가 되지.

출진 준비인 거야. 밤에는 무수한 모닥불이 중앙아시아의 맑은 하늘을 물들이는 거야. 출전을 앞둔 젊은병사들은 사랑하는 여인과

마지막 밤을 보내며 뜨거움을 나누지. 이날 밤은 이들이 나누는 사랑의 열기로 후끈하지. 여인은 병사의 가슴팍에 안겨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1년치 봉사를 아예 다하지. 그래서 출전 다음날엔 여자들이 모두 드러눕는데 이는 슬픔 때문에 아니라 하초가 녹아나서인 게야.

그녀들은 떠나는 남편에게 몽골의 후예답게 용감히 싸워줄 것을 요청하지. 그러면서 새벽 에밀강의 물을 떠놓고 기원하지.
 
  에밀강은 천산산맥에서 눈이 녹아내리는 물로 가득차 있고 그 물은 우리 몽고족의 중요한 식수원으로 오염되잖게 철저히 보호되고 있지.
한대국의 팔당이나 낙동강 취수원처럼 관리도 허술하고 보호도 소홀해서 오염되어 갖고 난리법석을 피우진 않아.

물이라는 게 을매나 중요한데…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오염이 돼서 난리를 피우는 걸 보면 한심하다니까.
 
  전군의 총수 징기스칸. 인류사상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백전백승의 기병전술을 창조한 위대한 전술이론가이시며,

한족과 양이족을 항복시키는 수차례의 정복전쟁을 위대한 승리로 이끄시고,

부족의 통합을 이루시고 민족의 영예를 떨치신 불요불굴의 영장이시며,

전투와 전쟁에 세계적 모범을 창조하시어 군소민족 발흥의 역사와 세계정복사에 영원히 빛날 고귀한 업적을 쌓아올린 경애하는 군장 태원수
징기스칸 동지…
 
  그의 나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복장은 일반 사병과 다름이 없다. 길이가 긴 털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에 활집을 매다는 것이다.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머리는 앞머리와 뒤통수를 밀고 가운데만 길게 따 늘어뜨렸다. 소위 체두변발이라는 거다.

머리에는 넓적한 모자를 쓰고 떡끈을 매고 있다. 이렇게 보통 병사와 다름없는 무장을 하고 있지만 그의 용모가 출중하여 나안시력
0.1이상이면 구별이 된다 이거야.
 
  우선 키가 크다. 소위 롱다리라는 거지. 그리고 빈틈없는 몸집이 사람의 눈을 끈다. 우리 몽골족의 평균 신장은 160인데 그는 170이 넘는
다. 눈은 정기에 가득찼고 귀는 크고 복스럽다. 온 몸에 넘쳐흐르는 믿음직하고도 부드러운 성격은 몽고족 전체의 존경을 받을 만했고 이민
족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지. 그 분만큼 소싯적에 고생한 분도 없을 거야. 몽고족의 전해오는 비밀 이야기를 기록한 야율초재
(耶律楚材)의 원조비사(元朝秘史)를 보면...
 
  징기스칸은 1150년에서 1160년 사이에 탄생하신 걸로 되어 있다.

위인과 영웅들의 출생일이 애매한 것은 야소나 징기스칸이나 보칠산이나 다 똑같단 말이야. 왜냐?

출생 직후부터 신변의 위기로 도피생활을 하느라 출생 신고가 늦어져서 그런 모양이야.
 
  몽고 오농 강변 데리웅 볼라크산 근처에서  에스게이 바틀 의 장자로 태어나셨지.

어머니는 호에룽니. 출생시 오른손에 핏덩이를 쥐고 있어서 사람들을 경악시켰다는 거 아닌가.
   핏덩이가 핏덩이를 쥐고 있네.
 
  바틀이라는 이름은 용사라는 뜻으로서 몽골 귀족 계층이다. 귀족은 방목지와 노예를 가지게 되지. 이 바틀이 타탈족을 정복하고 적장 테
무진을 생포했을 때 징기스칸이 태어났기 때문에 용맹을 본받으라고 아들의 이름을 테무진이라 지었지.

그 뒤 카살, 카충, 템게의 세 남동생과 템릉이라는 누이가 태어났지. 아홉 살 때 한 살 연상의 볼테와 약혼했어.

그런데 볼테의 아버지 데이세첸은 선도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는데 테무친을 보더니 담과 같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눈에 불이 있고 얼굴에 광채가 있는 게 보통 아이가 아니다.
  기필코 세상에 천둥과 번개를 불러 일으킬 아이다.
 
  그런데 이 행복스런 약혼 뒤부터 테무친에게 말할 수 없는 불행이찾아든 거야.

소위 새며느리 들이고 삼년 넘기기 힘들다는 속담을 증명하듯. 에스게이는 채납으로 말을 주고 테무친을 데이세첸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넓은 들에서 주연을 베풀고 있는 타달족의 남자들과 만난거야.
  유목민의 습관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과객에게는 손님으로 후대를 하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법이여.

이것이 초원의 법칙이란 거지.
손님도 그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예의이고. 에스게이는 타달인들이 권하는 대로 주연에 끼여 술을 마신 거여.
 
  그런데 그들 중에 타달족의 추장 테무친의 부하가 있어서 에스게이를 알아 본 거여. 그는 술에 독약을 타서 에스게이에게 먹였어.

에스게이는 집까지 돌아와서 테무친을 불렀어. 테무친이 도착하기 전에 에스게이는 운명했어.

이 일로 테무친가는 붕괴하기 시작하였어. 타이츄트족은 테무친 일가를 외면한거야.
  추장은 이렇게 냉정하게 말했다는 거야.
   깊은 물이 말랐도다. 빛나는 돌이 부서졌도다.
  바틀의 부하들도 일가를 버리고 떠나려 했어. 어머니 호에룽은 죽은 남편의 깃발을 들고 말에 올라 도망치는 부하들을 붙들었으나 소용없
었어. 기르던 개가 죽으면 문상을 오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안 온다는 속담이 하나도 빈말이 아니었어.
 
  비참한 생활이 시작되었어. 오농강 근처에서 나무 열매를 줍고 풀잎을 따고 풀뿌리를 뽑아 집안 식량을 삼았어. 요즈음 쌀이 남아돈다고
밥 버리기를 흙 버리듯 하는 인간들은 깊이 반성해야 돼. 잠시 가물고 농작물이 죽어버리니까 대번에 쌀 재고가 바닥났다는 소리 아닌감?

먹을 것을 갖고 형제간에 살인까지 난 거야. 테무친과 카살이 벡텔을 죽여 버린거야.

자기들이 잡은 고기를 훔쳤다고. 그들은 이복형제였거든.
기가막힌 어머니는 그들을 불러 담과 같이 훈계하였단다.
   그림자 외에 친구가 없고 꼬리 외에 채찍이 없고나!
  초원의 법칙은 냉엄하다. 죽느냐 죽이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타이츄트족과의 목숨을 건 싸움이 시작되었어. 타이츄트족은 테무친의 비범함을 알고 있었기에 더 크기 전에 제거하려고 했어.
   병아리의 날개는 돋았고 양새끼는 자랐을 것이다. 이 때 그놈을 없애야 한다.
 
  병력을 이끌고 기습을 한거지. 찝찝한 일이지만 전쟁엔 왕도가 없는 거야. 승리는 모든 수단을 합리화시키게 되어 있지.

이 전투는 병력이 없는 테무친에게는 악전고투였어. 아흐레 동안 숲속에서 쫄쫄 굶다가 하도 배가 고파 기어나왔다가 붙들렸지.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실러의 도움으로 멀리 도망할 수 있었어. 그러나…
켈렌 강 부근에서 잠시 안정을 취하고 살 때 멜키트족의 습격을 받아 간신히 도망쳤으나 마누라가 인질로 잡혀가지. 졸지에 아내를 빼앗긴
사나이가 된 테무친은 태양을 향해 맹세했지. 복수를.
 
  아버지 에스게이의 맹우인 케레이족의 족장 왕항과 자기의 맹우인 쟘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 4만 병력으로 멜키트의 진영을 습격했어.
개박살을 내주었지. 불타는 적진 속을 누비며 볼테를 찾았지. 달빛 아래 달려오는 사랑하는 아내 볼테를 끌어안고, 둘은 뜨거운 사랑을 확
인했지. 아아! 그러나 아내는 너무 오랜 동안 적에게 붙들려 있었어. 볼테의 아랫배가 상당히 불룩해 있는 걸 볼 수 있었어.
 
  멜키트족과의 전투 이후로 테무친은 실력을 인정받았어. 초원의 귀족들은 테무친을 지도자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어.

한번 사양했지만 곧 부족 연합의 장이 되고 쿠릴타이에서 징기스칸으로 추대되었어. 이때 그분의 나이 28세.
 
  징기스칸이 급속히 커지자 당황한 것은 바로… 왕항과 쟘하였어.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거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도 있는 거지.
  화공국이 한대국의 적국이냐 우국이냐라는 질의에 예조판서가 명쾌한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린 것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정도의 정세판단력과 소신도 없는 것들이 고위관리라며 국가정무를 담당한다고 앉아있으니 날이 가물지.

국제사회에서는 적국과 우국의 개념이라는 게 없는 거야. 다만 상대국만이 있는 거야. 동행국과 경쟁국만이 존재하는 거야.
 
  13익의 전투.
  이 전투야말로 징기스칸의 운명을 바꾸게 한 전투지. 쟘하의 아우가 징기스칸의 부하의 말을 훔쳤지.

이로 인해 일어난 쟘하군 13익 삼만군과 징기스칸군 13익 삼만군의 회전.
 
  누가 이겼을까?
  하하 징기스칸이라고?
  하하하, 징기스칸은 참패하여 오농강의 골짜기로 퇴각했어.
 
  그런데 이 전투에서 두 대장의 인품이 여실히 드러난 거야. 부하들이 징기스칸의 인품에 매료되어 전부 투항해 왔거든.

결국 징기스칸은 지고도 이긴 거야. 여세를 몰아 징기스칸은 왕항의 협조를 얻어 타달족을 멸망시켰어.

1200년대에 들어서며 몽골초원은 2대 세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어. 징기스칸과 왕항의 연합군과 쟘하와 타이츄트족의 동맹군.

왕항군의 공격에 쟘하군은 궤멸되고 항복했어. 그래서 강자는 징기스칸과 왕항 둘만이 남았지. 물론 왕항의 실력이 더 컸지.

그래서 징기스칸은 혼인동맹을 맺으려 했어. 왕항의 딸과 장남 쥬치를 혼인시키고 왕항의 손자에게는 딸을 준다는 계획이지.

겹사돈이라고 하나? 이런 걸. 그러나 왕항의 아들 상궁이 꾀가 노당나구였어.
   아버지 호랑이는 새끼일 때 잡아야지, 기른 후에 잡으려 하다간 내가 죽습니다. 징기스칸은 호랑이예요 그것도 날개달린 호랑이.
  그래서 약혼식 때 기습을 하기로 작전을 짰다. 그러나 그 정보가 새나가서 징기스칸군이 역습을 했다.

이 전투에서 징기스칸의 3남 오고타이가 부상을 입고 완패를 했다.

징기스칸군은 참패하여 2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발쥬나 호수 근처로 도주했다. 호수의 흙탕물을 마시며 그들은 맹세를 했지.

대몽제국을 부흥시키자고. 이것이 그 유명한  발쥬나 호반의 맹세 라는 것이지.
 
       <발쥬나 호반의 맹세>
 
        내 님은 누구실까
        어디에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일까
        만나 보고 싶네
        칼날을 갈고 계실까
        화살을 쏘고 계실까
        발쥬나 호반으로 가 봐야겠네
 
  왕항은 전승으로 긴장이 풀어져 연일연야 주연 속에서 허송세월했어. 징기스칸은 드디어 그들의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서 야밤에 소수
의 정예를 이끌고 급습을 했어. 술이 곤드레만드레 되어 잠들었던 왕항은 팬티도 못 걸치고 불알을 덜렁거리며 나이밍족 영토로 도망쳐 개
울에서 목을 축이다 나이밍 병사에게 발견되어 비참하게 피살당했지.
 
  왕항의 사후 가장 강자는 나이밍족의 족장 다양칸이었어. 그런데 그는 대단한 겁장이었어. 만약 그때 그가 기회를 늦추지 않고 징기스칸
을 공격했더라면 그가 몽골의 패자가 되었을 거야. 그이 밑에 쟘하가 들어가 있었어.

억세게도 명이 긴 친구지. 아마 끝필대감 만큼 명이 긴 친굴 거야. 끝필대감이 누구냐고? 그러길래 머리가 나쁘면 평생 고생이라잖아.

희정대왕을 도와 제3왕정을 일으킨 사람 아닌가? 희정대왕의 조카사위이기도 하고. 그 양반 얼마나 명이 긴지 산거대제 때까지
삼통당 의장을 하다가 떨려나지. 명예퇴진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밀어내지만 그건 다 반어법이니 뒤집어 읽어야 할 거야.

과연 그의 지지기반이라고 하는 충청도가 멍청도가 될는지 엄청도가 될는지.
 
  쟘하의 보고는 다양칸을 더욱 움추러 들게 했어. 숫적으로 우세한데도 전투를 회피하며 물러나기만 하다가 결국 몰살을 당했지.

상대가 약할 때 잔인하게 밟으라는 전술의 기본원리를 외면한 결과지.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거야.

나아밍족의 격파 후 드디어 전 몽고의 대통일을 이루었어. 그리고 1206년 대몽황제의 지위에 오르셨어. 쟘하는…
징기스칸에게 항복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어. 징기스칸은 그의 소망을 들어 주었지.
 
  여기까지가 야율초재의 <원조비사>에 있는 징기스칸의 대몽제국 건국사야. 그는 숱한 간난신고를 무릎쓰고 대몽제국을 건설한 거야.

입지전적인 인물이지. 그는 고난이 올 때마다 단결과 기력과 계략으로 열세를 보충하며 성공해 나갔어.

대망을 가진 자들은 모름지기 징기스칸에게서 배워야 할 거야.
 
  다음편에선 잘난 척하는 저 양이들을 우리 몽고군이 박살내주는 이야기를 들려 주갔어. 그때 내가 선봉장 아니었남. 기대해도 좋아.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우리 할아버지께 어린 시절에 전해들은 거야.
옛날 옛적 아주 오랜 먼 옛날 우리 조상님은 어떻게 사셨을까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께
서 용감하고 정의롭게 살아오신 길 슬기롭고 아름답게 살아오신 길 재미있고 신나는 역사 여행 길...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동해바다로 온 가족 모두 모여 옛날 여행 떠나자. 정통 선도소설 <<신선의 아들>> 속의 조상님들을 만나자.
  
  … 역사를 모르는 자 야만인이요
  … 선도를 모르는 자 미개인이다
  
  서아시아를 평정한 후 징기스칸은 감수성 청수현에서 사냥을 하다 낙마하여 병석에 누웠다. 1227년 8월 18일 세기의 영걸은 운명했다.

당연히 후계자 문제가 떠올랐다. 화공국처럼 20년 전부터 후계를 준비하였다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징기스칸은 대비가 없었지.
 
  징기스칸에게 몇 명의 아내가 있었을까?
  그가 정복한 광대한 지역에서 여러 인종의 미희를 골랐을 것이다.
그 중 이름이 알려져 있는 여자는 볼테 이외에 쿠랑, 에스이, 예스갱의 네 명이다. 아들들도 무수히 많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쥬치, 챠카타이,
오고타이, 트루이의 넷이었다. 그런데 장남인 쥬치는 치명적인 약점을갖고 있었다.

그것은 볼테가 멜키트족에게 잡혀 있을 때 임신해서 난 것이다. 쥬치라는 이름 자체가 빈객(賓客)이란 뜻이다. 손님으로 맞아 낳은 아이라… 그럼 씨내린가. 하하 너그럽기도 하다. 징기스칸은 자기 아들로 인정했지만 동생들은 의심하였다.
 
  서아시아 원정 후 본토에 귀환하여 징기스칸은 자기가 점령한 영토를 네 아들에게 분배했다. 위일수록 몽고 본토에서 먼 곳을 주었다.
 
   쥬치 - 시베리아 서부 남러시아 왕국 - 깊챠크 한국
   챠카타이 - 터키스탄 챠카타이 왕국  - 챠카타이 한국
   오고타이 - 구 나이망령 오고타이 왕국 - 오고타이 한국
   트루이 - 몽고 본토 - 일 한국
 
  임종에 즈음하여 징기스칸은 서방 원정 직전 예스이 황후가 후계자를 결정하자던 제의를 묵살했던 것을 후회했다.

 죽음의 신은 머리맡에 있고 후계 문제는 심각하다. 징기스칸은 아들 넷을 불렀다. 장남인 쥬치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쥬치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를 막고 나선 인물이 둘째인 챠카타이였다. 그는 힘이 천하장사 백두급이었다.
   아버지! 쥬치에게 나라를 맡기시려고요?
  멜트키족의 피가 섞인 자가 우리 대몽제국을 통치할 순 없습니다.
   야, 챠카타이! 너 내 혈액형 검사하고 하는 말이야?
  아버지가 나를 차별하지 않는데 너희들이 날 의심한단 말이냐?
  내가 아버지 아들인지 아닌지 정 의심스러우면 친자확인 소송이라도 하련? 너는 힘만 세다고 힘으로 뭐든지 밀어붙일려고 하는 거야?
위 아래도 없는 거야? 이래도 되는 거야?
 
  분위기가 험악스러워졌다. 징기스칸은 호통을 쳤다.
   야이 冒쌔기들아! 대가리 컸다고 애비 앞에서 언성을 높여도 되는거야? 내가 몽골제국을 건설할 때 내세운 수로간이 뭐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아니냐?
  트루이! 나가서 화살 4대를 가져와.
  영문을 모른 채 막내 트루이가 나가서 화살 4대를 가져왔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이 화살 4대를 한꺼번에 꺾을 수 있는 자가 나의 후계자가 되기로 한다. 내 눈 앞에서 당장 꺾어봐.
  천하장사인 챠카타이도 화살 4대는 동시에 꺾질 못한다.
   거 봐라. 한 대씩은 얼마든지 꺾을 수 있으나 4대는 동시에 꺾지 못한다. 마찬가지다. 너희 넷이 단결하면 누구도 너희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너희 넷이 분열하면 너희는 다 죽는다. 막강 고구려가 패망한 과정을 잘 보란 말이야.
 
  고구려가 어떤 나라야. 수나라의 양제 문제가 꺄불다가 나라를 들어먹었고 당나라의 이세민이가 또 정신 못 차리고 대들다가 눈깔이가 빠
져서 울면서 도망쳐 온 막강 대국이 아니냐?

그런 고구려가 망한 것은 연개소문의 세 아들 남생 남건 남산의 불화와 반목 때문이 아니었느냐?

삼형제가 지지고 볶고 김치볶음밥을 만드니 나라가 망한 거 아니냐? 내 말 알긋느냐?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민주적으로 토론하여 내 앞에서 후계자를 정해라.

그러나 누구처럼 후보자 출마를 제한하는 치사한 방법은 쓰지 말고 나올 놈은 다 나오게 해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기 바란다.
 
  결국 셋째인 오고타이가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온건하고 인품이 뛰어나다고 형제간 뿐만 아니라 신하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오고타이는 황제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지만 황제의 자리는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의 인품을 잘 말해주는 일화들 중에 두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오고타이 황제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 가난한 농부가 와서 참외 세개를 바쳤다.

그때 마침 오고타이는 현찰이 없어서 곁에 있던 황후의 귀에서 진주 귀고리를 빼어 주려고 했다.

황후는 이런 사람이 진주의 가치를 알겠느냐고 내일 다시 와서 옷이나 돈을 주자고 했다.

오고타이는 정색하며 가난한 사람이 내일까지 기다린다는 건 무리다 진주 귀고리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테니

아무 염려말라며 기어이 주고서 돌아왔다.
  황후는 볼이 부어 터졌다. 참외와 진주를 바꾸다니. 원 세상에…
  농부는 진주를 팔았고 그것을 산 상인은 보물을 얻었다고 놀라워하며 그것을 담날 황제에게 바쳤다.
 
  몽고는 초원지역이므로 물이 귀했다. 그래서 취수원 보호를 위해서 봄부터 여름 사이에 걸쳐선 에밀강에서 대낮에 수영을 하지 못하도록
금령을 내렸다.
  어느 날 형 챠카타이와 사냥을 갔다 돌아오는데 이슬람교도 한사람이 강에서 기도를 드리려고 몸을 씻고 있는 걸 보았다.

고집이 센 챠카타이는 그걸 보고 그 자를 즉각 처형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고타이는 정밀조사를 한 후 내일 판결하자고 미루었다.

그리고는 심복을 몰래 보내어서 목욕하던 곳에 동전을 던지고서 그 사람에게는 돈을 찾고 있었다고 답변하라고 일렀다.
  담날 심문관은 그에게 물었다. 금령을 어기고 목욕을 한 연유를. 그는 돈을 찾고 있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챠타타이는 병사를 시켜 강을 수색했다. 거기서 동전이 발견되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제왕은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지 힘으로 다스리는 게 아니여. 총칼로 권력을 얻을 수 있지만 총칼로 백성을 다스릴 수는 없는 게야.

마상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마상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일해장군이 총칼로 상관을 체포하고 하규대왕을 협박할 수는 있었으나 빛고을 백성들의 빛나는 투쟁정신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고,

또 정의와 혈기가 왕성한 큰서당생들의 줄기찬  백성 주인되기 운동 을억압할 수는 없었잖은가?

결국 그의 시운이 다하매 하야하여야 했고 쓸쓸히 담백사로 유배의 길을 가야하잖았는가.
 
  징기즈칸의 사후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오고타이칸은 국력을 신장시켜 금나라를 칠 준비를 하였지.

금나라는 우리가 내몽고에서 작은 부족으로 있을 때부터 업수이 여기고 자주 쳐들어와 우릴 무던히도 괴롭혔었지.

오고타이칸은 그때의 원한을 기억하고 젤 먼저 금나라를 쳐서 멸망시켰지.

동방을 평정한 후 서방으로 눈길을 돌려 구라파 정벌에 나섰지. 색목인(色目人) 황발인(黃髮人)놈덜 우릴 우습게 알았었지.

생기긴 꼭 원숭이같이 생겨 먹은 것들이 우릴 곰탱이같이 생겼다고 조롱하던 놈덜 아닌가. 먼저 구라파 최대의 제국이라는

로스께를 쳐서 우리 실력을 보여주기로 하고 바투(징기스칸의 장손)를 도원수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진격했지.
 
  1237년 볼가강을 도강하여 로스께 초원으로 밀물처럼 몰려갔지. 그해 겨울은 지독하게도 추웠어.

오줌을 싸려면 졸대가리가 다 쪼그라들 정도였으니. 내 졸 길이로 기온을 측정하는데 3촌이나 쪼그라진 걸 보면 영하 25도는 되었을 거야.

로스께놈덜은 동장군만 믿고 우리를 태만히 생각했으나 천만에 말씀 우리도 그 정도 추위는 견딜 수 있고 오히려 강과 늪이 땡땡 얼어주는 통에 우리 몽골 군대의 기병이 진격하는 속도만 빨라졌다는 거 아닌가.
 
  로스께 베로네즈 시를 비롯하여 30여개의 군소도시를 점령하고 싹 때려부셨지. 소위 판쓰리라고 하나. 판쓰리는 청소비가 있다지?

조금이라도 반항한 도시민은 모조리 살해하고 도시는 불태웠지. 그때 사로잡은 수백명의 러시아 계집들을 병사들에게 맘대로 먹으라고

내주고 나도 한 년 백작인가 백정인가 하는 놈의 부인년 하나 먹었는데, 햐 로스께년 살결 정말 뽀얗데…

우리 몽골년들 살은 댈게 아니더군. 살맛 하나 정말 인타걸(引他傑-남자를 끌어들이는데 뛰어나다는 뜻)이데…
하기야 전지서 오래 굶다먹으니 허기가 들기도 해서겠지만 하여튼 아직도 그 맛은 잊지 못 하겠드라구.
 
  우리가 만행이라는 숱한 비난을 들으면서도 잔인하게 싹 다 죽이고 불싸 지른덴 나름의 두 가지 이유가 있었지.
  첫째는 우리 몽골군은 기마부대인고로 후방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어 살려두면 놈덜이 후방을 교란할 거고…

또 포로는 귀찮아. 먹일 것도 없거니와 그놈들을 끌고 다니자면 속전속결을 생명으로 하는기마부대의 기동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그래서는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지. 그러니까 대든 놈들은 썅 죽이고 항복한 놈들은 적진 공격에 선봉으로 써 먹은 거지.
  둘째는 우리가 잔인하기 짝이 없다는 소문을 널리 전파하여 적의 사기를 꺾어놓아 순순히 항복을 받으려는 것이었지.

사실 이 작전은 주효하여 양놈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쉽게 항복하곤 했지.
 
  1238년 2월, 블라디미르를 함락시키고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진격했지. 우리가 통과한 지역은 완전 폐허가 되어

30리를 전후하여 개 우는 소리 닭 짖는 소리가 일체 들리지 않는다(No dog sound, no chicken sound.)하여 로스께 전역은 공포에 떨었지. 봄이 와서 강과 늪이 녹자 우리도 진격을 멈추고 고요한 돈강 부근에 머무르면서 말을 방목하고 군대를 휴식하면서 기회를 엿보았지.
  1240년 우리 몽골군은 9세기 이후 로스께의 중심지인 키예프 공국을 총공격하여 12월 드디어 함락시켰지.

전 로스께를 점령 지배하게 된 거야. 다음 목표로 항상 배고프다는 나라 헝거리로 쳐들어 갔지.

카르파티안산맥을 넘어 부다페스트로 진격하였지.

우리의 전격적인 공격에 헝거리군은 저항다운 저항 한번 못하고 1241년 4월 최후 전투에서 개박살이 나며 우리 영토가 되었지.

얼마나 처잠한 전투였는지 헝거리 최고의 시인이라는 츈슈 대시인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이라는 시를 써서 그때의 참상을 애도했지.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몽고제 화살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그 후 우리는 신성로마제국 영내로 진격했지. 이에 놀란 덕국(德國)과 포란도(葡亂度)는 연합군을 편성하고 양국의 국경도시 발슈타트에
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지. 당시 구라파놈덜은 최강의 군대니 환상적인 군대니 하며 자신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지. 껄껄.
  하기야 육중하고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큰 말 위에 앉은 구라파 기사들의 모습이야 늠름했지. 계집들이 보고 반해서 숨을 헐떡거리며
오줌을 다 쌀 정도였다니. 그에 비해 조그마한 말을 타고 경무장을 한 우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초라하고 왜소한 게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
았지. 흐흐흐. 전술의 졸대가리도 모르고 전략의 冒구멍도 모르는 새끼들. 전투가 패션쇼냐 쨔썅들아. 그렇게 육중한 갑옷과 무기를 갖고 돌
격전이 되냐. 몇 시간 뛰고 나니 말들이 조지 다 빠져서 네 활개를 벌리고 다 자빠지지. 또 쪼다같은 자식들이 마상전술이라는 게 직선 돌
격법 밖에 모르니… 그것도 전술이라고.
 
  우리는 가벼운 전투복에 창 대신 활을 들고 놈들이 근접하기도 전에 원거리 사격으로 작살을 내고…

말들을 번개처럼 자유자재로 분산하고 밀집하면서 육화진법(六花陣法) 호접진법(胡蝶陣法) 팔괘진법(八卦陣法) 방원진법(方圓陣法)

조익진법(鳥翼陣法) 장사진법(長巳陣法) 어린진법(魚鱗陣法) 학익진법(鶴翼陣法)등의 팔진법을 펼쳐보였지.

종횡무진 적진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박살을 내버렸지.
 
  흐흐흐, 그건 전투가 아니라 파리잡이였어. 그것도 약 먹은 파리.   황혼 무렵 전투가 끝났을 때 리그니츠 교외에 있는 발슈타트 평원은
구라파 연합군의 시체로 산을 이루었고 피가 냇물을 이루었지. 죽음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 까마귀떼들이 감당할 수 없는 포식에 감격한 듯
까옥거렸지. 우리는 승전의 기념품이자 전리품으로 양놈들의 졸대가릴 잘라 가져왔지. 그 새끼것들 크긴 크데. 어떤 녀석은 그걸로 목거릴 만
들어서 지 애인에게 선사한 놈도 있다더군. 껄껄.
 
  이후 우리는 포란도를 완전 평정하고 룰라랄라 휘파람을 불면서 서구라파로 향했지. 전 구라파는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떨면서 비상사태
가 선포되고 야소당에선 원나라 대군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야훼신에게 전백성 기도운동이 펼쳐졌지.(God save us, please) 그 때문인지
어떤지 옘병할… 1242년 우리의 황제인 오고타이칸이 급사하시고 말았어. 양놈덜은 야훼신이 기도를 들어 주었다고 좋아했지만 사실은 그
게 아녀. 전날 오고타이칸께서 술을 두 통이나 과도하게 드시고 양년의 배 위에 올라가신 게 무리셨던 거여. 양년 배 위에서 그만 복상사를
하신 거 아닌감.
  더 이상 서구라파 진격을 포기하고 우리 군대는 국장을 치루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철수를 해야 했지. 그후 쿠빌라이칸이 뒤를 이어 즉위
하셨지. 그때 발슈타트전에 나가 선봉장 아니었남. 구라파 알라들도 흔도라면 울다가도 뚝이었어.
 
  그런 나가 쬐끄만 고려국에 와서 이리 박대를 받다니. 흔도상서가 왔다하면 역동인가 역똥인가가 쫓아 내려와서 안방으로 모시고 걸찍
하게 대접한 연후에 정성스레 진찰하고 최고의 처방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뭐라고라고라? 콧배기도 안 뵈고 꺼죽한 하인놈인지 제자놈
인지 쓱 보내서 양중천에 가서 씻고 양안천에 가서 씻으라?
 
   야, 가이도!
  양중천은 어디 있고 양안천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예 남경에 있는 개천이온데… 
   얌마 내가 고려 지리를 어떻게 아냐? 남경은 또 어디야? 
   고려의 행정구역은 5도와 양계, 4경 12목으로 되어 있는데 5도는 서해도 교주도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이고 양계는 북계와 동계이며, 4
경은 서경(평양) 개경(개성) 남경(서울) 동경(경주)이옵고, 12목은 황주목 해주목 양주목 광주목 청주목 충주목 공주목 상주목 전주목

나주목 승주목 진주목이옵니다.
  그런데 양중천은 생활페수로 최고 오염이 되었고 양안천은 공장폐수로 심하게 오탁되어 있는 줄 아옵니다. 
   무어? 그럼 쉰말로 똥물이라는 이야긴가? 
   아니죠. 똥물은 차라리 깨끗한 거이옵니다. 
   무엇이? 알겠다. 내가 소국에 와서 이런 개망신을 당하다니. 완죤히 날 갖고 놀았것다?

두고 보자 돌아가서 즉각 발병(發兵)을 하여 고려국을 문책하리로다.
 
  씩씩거리며 돌아가는 흔도를 그의 부장 이승준이 붙들었다.
   장군님! 진정하시옵소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더라도 정신을 차리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고려인은 현명하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막가는 행동으로 나오진 않을겁니다. 일단 역동선생이 시킨대로 합시다.
해보지도 않고 무슨 트집이냐고 저들이 물고 늘어지면 변명이 궁색해집니다. 일단 목욕해 보시라니까요.
   그려. 그대 말도 일리는 있어 좋다. 일단 하라는 대로 해본다. 졸으로 밤송일 까라면 까겠어. 만약 덧나면 그때 죽여도 늦진 않아. 가자,
양중천으로.    양중천으로 간 흔도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후히 받았으니 후히 주라
  
  양중천으로 간 흔도는 벌거벗고 일곱 번을 들락날락하면서 목욕을 하였다. 폐수의 냄새는 천지를 진동하였고 흔도는 악취에 코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폐수에 접촉된 살갗은 썩어 문드러지는 듯했고 화끈거리고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으 씨팔 조팔 목구멍까지 욕이 치민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
   장군님 참으셔야 합니다. 병자는 의원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선 송장 다리도 잘라 삶아 먹으라면 해야 되고,

여자 경수를 핥아먹으라 해도 그리해야 하며 똥물을 울거 먹으라 해도 해야 하고 태반을 구어 먹으라 해도 그리해야 하는 겁니다.

명예도 살고나서 명예이지 죽으면 만사 땡입니다.
   아이구 생목숨 부지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럼요. 사람이 살기 위해선 별놈에 치사 빤스같은 일에 찝찝한 일이라도 다 해야 합니다.
   흠, 그 말도 12는 있구나. 좋다 가자. 양안천으로...

양안천으로 간 흔도는 양중천에서와 마찬가지로 홀라당 벗고 들어가서 목욕을 하였다.

양안천 폐수는 양중천 폐수보다 더 독한듯 했다. 여섯번째 들어갈 때 흔도는 아침에 먹은 것을 모두 토할 정도였다.

창자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더 들어갈 기력이 없었다.
 
   가자. 나 포기할란다. 병이고 나발이고 못 고쳐도 좋다. 10만 대군 끌고 와서 박살내고 말 것이다.
   안됩니다. 마지막 한번만 하시면 다 끝나는 겁니다. 여기서 중단하면 여섯번 목욕 도로아미타불입니다.

일불이 살육통(一不殺六通)이란 말 모르십니까?
   시꺼! 난 무신이야. 문자 쓰지마. 해골 쑤셔.
   좋습니다. 그러면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더니 이승준 부장은 흔도를 번쩍 들었다.
   야이 새꺄! 뭔짓이야? 안내려 놔. 너 뒤질래?
   예, 저 뒤질래요. 그러나 먼저 똥물에 한번 더 목간하신 후에 죽이더라도 죽이세요. 하면서 흔도를 그대로 양안천에 쳐박았다.
 
  풍덩...
  으읔!
  거꾸로 쳐박히는 통에 똥물을 흠뻑 먹어버린 흔도.   
   넌 죽었다. 얘들아! 군졸! 저놈을 포박하라. 상관 폭행죄에 명령 불복종에 완죤 하극상이다.

이건 소대장 길들이기보다도 또 일해가 화승장군 납치한 시비시비사건보다 더한 사건이다.

그때 빙고 호태루(戶泰樓)에서 물고문하였다지만, 그 물은 깨끗하기나 했지 이거 난 완죤 똥물 아닌가?
 
  흔도는 개천에서 기어나오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뭣들하는 거야. 빨랑 새물 가져와 똥물 씻게. 
군졸이 대령한 물동이로 좍좍 끼얹으며 대충 목욕을 하는데 아아니 이건    아아 그의 문드러졌던 살점들은 어디로 가고 처녀 허벅
지보다 빛나는 새살들. 아! 보 송 보 송 하 여 라...
 
  흔도는 믿기잖아서 살점을 꼬집어 보았다.
  아~프~다. 아아 감각이 되돌아왔다.
   문둥병이 나은 거야. 흑흑흑 어어엉. 
  흔도는 목이 메어 한참을 그리 울었다.
 
   장군님! 고정하십시오. 불충한 소장을 벌 주옵소서.
   아니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병을 고치지 못했을 것이요, 내가 성질이 워낙 졸같애서 흥분을 잘 하오.
   아닙니다. 그게 바로 장군님의 강점이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저돌적인 성격,

그것이 바로 구라파까지 정벌하였던 용맹 그 자체 아닙니까?
   좋게 말해주니 고맙네. 나는 그걸 용기라 생각하지만 남들은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한다네.
   아닙니다. 소장은 용맹이라 확신합니다. 장수가 지나치게 신중하면 우유부단하기 쉽고 반대로 지나치게 용맹하면 경거망동하기
쉽사옵니다.
   우유부단이란 게 무언가?
   우유를 끊지말고 먹어라 이런 뜻인가 합니다.
   으음...좋은 뜻이구나. 우유가 원래 완전식품이니까 끊지않고 먹으면 건강에 좋겠지.
   장군님! 항상 중용지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용이란 힘만 있는 중앙과 다르오며 행동이 결여된 중간과 다르오며 눈치만 살피는
어중간하고도 다르오며 덕이 있는 중도에 가까운 것이옵니다.

장군님! 제게 감사할 것이 아니오라 역동선생에게 진실로 감사해야 하옵니다.

지금 당장 역동선생을 찾아뵙고 무례를 사과하고 치병된 것을 사례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머리검은 짐승만이 은혜를 모른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
    기르던 개에 다리 물린다
    믿는 나무에 곰이 핀다
    아는 도끼에 발등찍힌다
    아이 본 공과 새 본 공은 없다
    물에 빠진 놈 건져내니 망건 값 달라 한다
    개도 닷새되면 주인을 안다
    앞에서 꼬리치는 개가 후에 발뒤꿈치 문다
 
  이같은 속언들이 모두 인간의 배은망덕함을 풍자한 것입니다.
   이부장의 말이 백번 옳구려. 갑시다. 래지고(來地高-높은 분을찾아본다 라는 뜻)합시다. 역동선생 그는 진정한 이인이요 도사요
내가 고려에 진정 이인이 있음을 오늘 알았소.
  
  흔도가 모든 종자와 군졸을 이끌고 역동선생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무릎 꿇고 가로되,
   소장이 이제 고려에 이인이 있음을 알겠나이다. 옥황상제 외에는 온 천하에 참신이 없는 줄 알았나이다.

청컨대 소생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치병하면 드리고자 은자 10냥 금덩이 60개 비단 300필을 가져왔나이다.
   나의 섬기는 옥황상제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상제께로 거저 온 것이니 나도 거저 주겠노라.
 
  아무리 강권하여도 고사하고 듣지 아니한지라 흔도가 무진장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선생은 정말로 맘을 비우신 분이시구료. 세상에 남의 병을 고친다는 작자들을 볼짝시면 없는 병도 있다 하고 작은 병도 큰 병이라
속여 치료비를 더 타려하거나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일쑤인데 도사님께서는 전혀 그들과 다르시옵니다. 이제부터 소신은 선도를 받
들겠나이다. 소신에게 한대국의 흙을 한가마 주시옵소서. 뙤나라에 돌아가면 사당을 짓고 한대국의 흙을 모셔놓고 치성을 드리겠나이
다. 이제까지 믿던 모든 신들을 폐하고 오로지 옥황상제님만을 뫼시겠나이다.
  그러나 한가지 나의 주인, 쿠빌라이 황제께서 공자묘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공자묘에서 몸을 굽혀야
하오니 이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아무 염려 마시오. 공자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하시어 어리석은 인생을 제도하시려 애쓰신 분이매 조금도 배척하지 않노라.

그분이 말씀하신 덕을 밝혀라[明德] 백성을 새롭게 하라[新民] 선에 머물러라[止善]와 같은 말씀은 큰 가르침의 도[大學之道]가 아닌가?
  다 자기 맘을 자기가 갖고 옳바로 쓰면 되는 것이오. 공자를 모시면 어떻고 부처를 모시면 어떠하며 단군을 모시면 어떠하리요.

이들이 모두 옥황상제의 아들이요, 신선의 아들이 아닌가. 그러니누구를 믿고 모시든 제 양심 제가 지키면 되는 것이오.

이것이 선도의 요체(要諦)요, 대강(大綱)입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평안히 가시오. 흔도 장군.
 
  이에 흔도가 역동 선생을 떠나가니라.
  그때 역동 선생의 제자 우돌이의 마음 속에 걸구(乞鬼)가 들어가니라. 그 걸구는 굶어죽은 우돌이의 동생들이었더라.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 스승이 이 뙤국 사람 흔도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은 스승님이 배고픈 설움을 진정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인 것이라...
  우돌이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였다. 깡보리밥 한 그릇에 반찬이라곤 무짱아지 하나. 그것도 세끼 먹기가 힘들어서 두끼씩만 먹었다.

맏동생은 영양실조로 죽었고 둘째 동생은 부황이 들어 죽었으며,

셋째는 잔칫집에서 얻어먹은 것이 급체가 되어 죽었으니 전부다 먹는 것 때문에 죽은 셈이었다.

그만큼 먹는 것에 한이 맺혔고 그것은 곧 가난에 대한 설움이었다. 우돌이가 역동선생의 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밥을 공짜로 먹여준대서였고 또 하나는 도술을 배워 돈을 벌어 보겠다는 속셈에서였다. 밥은 그런대로 먹을 수 있었지만

그러나 돈은 벌지 못했다. 역동선생이 워낙 재물에 초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없었던 것이다.
 
  혼도가 떠나간지 얼마 안 있어 역동 선생은 참배를 드리러 칠성당으로 올라 가셨다.

우돌이는 잽싸게 흔도일행이 간 방향으로 뛰었다.

흔도가 수레를 타고 가다가 보니까 백미라(白尾螺)에 누가 헐떡이며 쫓아오는 게 보였다. 흔도가 수레에서 내려 왠일이냐고 물었다.

우돌이가 안녕하세요 하고 말하기를,   스승님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길 지금 도장의 제자들이 옷이 너무 낡아 새 옷을 지어 입히려 하니 비단 30필만 주고 그에 따른 바느질 수공비로 은 닷냥과 금덩이 열 개만 줍시라고 하더이다.
   아니오. 어차피 드리려고 가져왔던 것이니 은 10냥과 금덩이도 넉넉히 20개를 가져 가시오.
 
  우돌이는 입이 째져서 싱글벙글하면서 재물을 받아가지고 오다 중도에 산신각에 들어가 마루밑에다 숨겨 놓고 도장으로 돌아오니라.

이에 참배를 마치고 우돌이를 기다리던 역동 선생이,   우돌아, 네가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니 우돌이는
   예. 산신각에서 기도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역동 선생은,
   한번 거짓말을 하니까 거짓말이 새끼를 치는구나.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는다는데 네가 그 식이로구나. 재(財)는 재(災)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네가 결국 재앙을 부르고 마는구나.  흔도가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 네 양심이 찔리지 않았더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금을 받으며 또 비단을 받을 때란 말이냐? 그러므로 혼도에게 있던 문둥병이 네게 들어가 네 자손에게 영원히 DNA와 RNA를 통하여 유전되리라.
 
  우돌이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희게 되었더라.
 
  그 후 역동 선생은 인간 하나 만들어 보려했던 우돌이의 실패에너무 상심하시고 소백산을 떠나 구월산으로 옮겨가시며 다시는 세
상에 나오지 아니하리라 청산 속에서 그저 자연과 벗하며 종신하겠다는 결심을 하시었다. 그리고 그동안 저술하였던 일체의 문헌을
모두 불사르고 오직 <역동감결> 한 권만을 남겼으나 그마저 실전되었다.
 
  역동 선생의 자연 친화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 시가 바로 구월산으로 들어가실 때 지으신 <청산별곡>이니,

고려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며 지금까지  악장가사 와  시용향악보 에 가사가 전하여 오더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물 아애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저링공 하여 낮으란 지내와숀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밤이란 또 엇디호리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어디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믓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 드로라
    사슴이 짐대예 올아셔 해금을 혀거늘 드로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가다니 배부른 독에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룩이 매와 잡사오니 내 엇디하리잇고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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