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단체&요결

삼혼칠백[三魂七魄]

醉月 2008. 8. 13. 07:27

우리는 흔히 사람의 정신(精神),
마음을 지칭할 때 혼백(魂魄)이란 말을 사용하곤 한다.
이때 혼백의 사전적 의미는 ‘넋’ 영어로 ‘soul’이다.
그런데 우리 전통 선도(仙道)사상이나 중국의 도교(道敎)사상에서는 이 혼백을 좀더 자세히 구분하여
「삼혼칠백(三魂七魄)」이란 용어로 부르고 있다.
여기서는 전통사상 속에서의 「삼혼칠백」 의미를 살펴보고 봉우선생의 언급을 비교해 볼까 한다. 
   
전통적으로 고대 도인(道人)들은 인간의 영혼이 혼(魂)과 백(魄)이라는 두 가지 기질(氣質)의 존재로 이루어져있다고 보았다.
또한 혼은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백은 일곱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운급칠첨> 54권에 보임. 
     
삼혼칠백(三魂七魄)의 용어가 제일 먼저 보이는 책은 지금부터 1600여년 전 사람인
중국 서진(西晉)시대 말엽의 갈홍(葛洪)이 지은 선서(仙書) ≪포박자(抱朴子)≫의 지진(地眞)편이다.
여기에 보면
  
  “신령스런 도를 통하려면 마땅히 수화(水火)로써 형체를 분리해야 한다.
    형체를 떠나면 곧 내 몸이 삼혼칠백으로 되어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리라”
    하며 인간이 삼혼칠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역시 중국 송대(宋代)에 편찬된 도교총서(道敎叢書)인 <운급칠첨> 54권에는

  “무릇 사람의 몸에는 세 혼이 있는데 하나는 태광(胎光)이라 하고 태청양화(太淸陽和)의 기운이다.
    또 하나는 상령(爽靈)이라 하여 음기(陰氣)의 변화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유정(幽精)이라 하며 음기의 잡다(雜多)함을 뜻한다.”
 
라고 삼혼의 이름과 성질을 언급해놓고 있다.
유명한 도교경전인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에도 여러 군데에서 삼혼칠백이 언급되어 있고,
특히 「상도장(上覩章)」에는 선도(仙道)수련을 통해
  
  “삼혼이 스스로 편안해져 상제께서 그 이름을 신선명부에 적도록 명한다.” 하고 그 주(注)에  
  “수도자에게는 섭혼(攝魂:혼을 거둬들임)의 법이 있다.
    삼혼은 영구하고 백(魄)은 쇠하여 무너짐이 없다.” 고 하였다.

또한 ≪통진태상도군원단상경(洞眞太上道君元丹上經)≫에는
  “선도수련의 하나인 생각을 보존하는 공부를 행할 때,
    내 몸의 좌측에 있는 삼혼은 나의 간(肝)속에 있고,
    우측에 있는 칠백은 나의 폐(肺)속에 있게 되며,
    백 이십 가지 형체의 그림자가 이천 가지 정광(精光)을 이어받아.
    나의 입 속에서 천교(天橋)로 들어가는데
    위로 곤륜산(昆侖山)에 있는 범양군(范陽郡)의 무위지향(無爲之鄕)으로 올라간다” 하였으며
  
  ≪통진고상옥제자일옥검오로보경(洞眞高上玉帝雌一玉檢五老寶經)≫에는
  
  “삼혼이란 것은 세 사람을 뜻하는데,
    형체는 조상(兆狀)과 같고 길이는 일척팔촌인데 황소원군(黃素元君)이 비액(鼻額) 가운데에
    바로 앉아서 밖을 향하고 있다”
    라고 하며 삼혼이 원신(元身)을 뜻한다고 비유하였다.
 
다시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과 ≪운급칠첨≫을 보면 칠백(七魄)의 이름을 명시하고 있다.
  제일백(第一魄)은 시구(尸狗)요,
  제이백(第二魄)은 복시(伏矢),
  제삼백(第三魄)은 작음(雀陰),
  제사백(第四魄)은 탄적(呑賊),
  제오백(第五魄)은 비독(非毒),
  제육백(第六魄)은 제예(除穢),
  제칠백(第七魄)은 취폐(臭肺)가 그것이다.
  
위와같은 칠백이 매달 초하루, 보름, 그믐날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귀매(鬼魅)와 교통하니 이것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으로서
환백법(還魄法)을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무튼 전통사상 특히 선도(仙道)와 도교(道敎)에서는 정신의 주체를 혼백으로 정의하고
이 혼백이 육신을 관장한다고 하는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 혼백의 개념을 다시 삼혼칠백론(三魂七魄論)으로 확장 부연하여 정신의 세밀한 작용까지 분석해놓았던 것이다. 
   
어떤 학인이 삼혼칠백에 대해 봉우선생에게 물었는데 답변은 생각보다 무척 간단한 것이었다.
질문한 사람은 이미 도교의 선서(仙書)에 드러난 삼혼칠백에 관한 많은 언급들을 머리에 두고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선생의 답변은 무척 실망스런 것이었다. 답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람은 처음 수태(受胎)될 때 혼이 들어와야 임신이 되는데 이때 들어오는 혼이 일혼(一魂)이고,
     태어나며 고고성을 외칠 때 이혼(二魂)이 들어오며,
     이것이 현생(現生)에 있어서 자아(自我)가 된다.
     이 자아가 현세에 생기면 영계(靈界)에도 똑같은 하나의 자아가 생긴다.
     이것은 우주의 삼일(三一), 일삼(一三)원리에 의한 현상으로서
     이 우주내에 어떤 하나의 존재가 생기면 이미 동시에 셋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재주(主宰主)

● 알과 알을 둘러싼 공간과 알의 부피, 이 셋이다.
     여기서 ●알의 부피만큼 저쪽 세계에 생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혼(三魂)은 시기에 무관히 들어오는데,
     전생이 좋고 정신수련이 깊은 사람일수록 이 삼혼이 빨리 들어와 정착한다.
     어릴 때 천재 소릴 듣는 사람들이 삼혼이 빨리 들어온 경우에 해당한다.
     나이 들어서도 무녀리 소리 들어가며 지각(知覺)이 어벙벙한 사람은
     대개 이 삼혼이 아주 안 들어온 경우이다.


     즉, 삼혼이 일찍 안정되어야만 정신이 온전해지고 총명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삼혼(三魂)이 자아(自我)를 주관하는 영체인데 반해,
     칠백(七魄)은 육신을 관장하는 영체로서 삼혼에 비해 유한성(有限性)을 띠고 있다.
     우리가 죽은 사람을 제사지낼 때,
     그 사람의 삼혼은 이미 영계(靈界)로 돌아가 있고 지상의 시신에 남아 있는 칠백이 제사를 받아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칠백이 영원히 지상에 남아 제사를 받아먹는 것은 아니다.
     칠백의 존재에는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신수련의 고단자일수록 혼이 백을 주도하므로 그 혼과 같이 백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중국에 들어가 관운장(關雲長)이 젊어서 공부하던 터를 찾아갔다.
     가서 뵙기를 심축(心祝)하니,
     현령하였는데 나타난 그 모습이 바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 공부한 장소를 찾아가 역시 뵙기를 청하니 이번에는 늙은이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백(魄)이란 이런 것이다.
     유동적(流動的) 존재이다.
     영혼의 분신체라 할 수도 있으며 그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사람이 벼슬할 때 관작에 따라 외양이 많이 달라지듯이 백(魄)도
     그 혼의 정황에 따라 수많은 변화상을 보이는 것이다.” 
   
대략 이같이 답변하였는데,
학인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궁금한 대목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전에도 다른 학인이 정기신(精氣神)의 정확한 의미를 질문하자 선생은
“나는 답변 못해, 그건 공자님이 다시 나오셔도 답변 못하실거야.”
하며 답변을 거절하신 적이 있었는데,
이는 이 문제가 논리 이전의 문제로서 우리의 언설(言說)로서 답변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며,
논설로 이것을 의미 규정해 본들 그 본체의 진실과는 이미 십만 팔천 리 어긋난다는
심종(心宗)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즉 마음으로 궁구(窮究)하며 정신을 집중하는 수도자(修道者)의 입장에서
투철히 깨달아(悟道覺性) 혜안(慧眼)을 얻어야
비로소 정(精)과 기(氣)와 신(神)이 활물(活物)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모두 사구(死句)요,
사문(死文)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삼혼칠백론 역시 전통적으로 다양한 견해가 있었지만 선생은
이에 일일이 대응하여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지,
대체적 서술로서 그 존재만 인정했을 뿐 세세한 부연은 회피하신 듯 하다.
하지만 짧은 언급이 담고 있는 내용은 도장경(道藏經) 수천 권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의미와 방향을 함축하고 있어 후세 학인들의 장고(長考)와 심사(深思)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