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단체&요결

국선도 수련체험기_유인학

醉月 2008. 11. 9. 20:50

 나는 지금 국선도의 도운도종사님을 스승님으로 모시며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선도와의 인연은 도운도종사님의 스승님이신 청산선사님과 먼저 닿았다. 1988년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산중에서 지내고 있었다. 수도에 뜻이 있어 산중에 들어갔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살았다.

도가 무엇인지도, 국선도라는 수행법이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산에 들어가기 전, 필자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충남의 어느 시골 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문학에 뜻이 있어 한때 시를 쓰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 민중 운동에도 동참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산을 좋아했다. 이런 일들 빼고는 평범한 교사였다. 
 나에겐 깊은 산속에서 느끼는 고요와 평화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엔 호젓한 마을 뒷산에서 많이 놀기도 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50여 리 떨어진 곳에 유명한 계룡산이 있다.

1980년도부터 나는 계룡산을 자주 찾았다. 주말마다 가는 때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등산객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계룡산에는 등산객들이 전혀 안 찾는 계곡이 있었다.

워낙 조용한 곳을 좋아했던 필자는 그곳을 주로 찾았다. 일요일엔 그 계곡에서 온종일 혼자 지내다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산에서 몇 시간 지내다 보면 일주일간 쌓인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냐가 그 계곡만을 찾게 된 이유는 거기가 어느 계곡보다 조용하다는 것 말고 또 있었다.

거기 사는 짐승들이 좀 별난 데가 있어서였다. 사람의 발길이 안 닿는 곳이라서 그런지,

그 계곡의 짐승들은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다른 곳의 다람쥐들은 사람을 보자마자 기겁을 해서 달아났는데, 거기 다람쥐들은 바짝 다가가야 슬며시 피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나무 꼭대기까지 줄달음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사람한테 안 잡힐 만큼 거리를 두고 여유자적 노닐었다.
 새들도 곤충들도 그랬다. 필자가 바위에 누워 쉬노라면 나비들, 잠자리들이 필자의 몸에 날아와 앉았다.

어떤 녀석들은 얼굴에 앉아서 쉬었다.
 새들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야트막한 가지에 앉아 지저귀었다. 필자를 무서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노닐었다.
나는 다른 생명들과 이런 평화를 누리는 게 너무 좋았다.

내가 동참한 민주화 운동, 민중 운동이 이런 평화가 가득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바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온 누리 뭇 생명이 함께 평화를 나누는 세상을 많이 상상했다. 그것이 참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 해방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1985년, 나는 어떤 정치적인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다. 직장을 그만 둔 필자의 발길은 산으로 향했다.

나는 아예 계룡산의 그 계곡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1985년도 초가을이었다.
 이 무렵 그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참선 수행하는 사람들,

단전 수련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그곳을 찾았다.
 그들은 모두들 열심히 수련했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어떤 능력을 얻기 위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목숨을 걸고 정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잠을 안 자고, 단식을 하며 용맹정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수행법에 대해서, 도에 대해서 많은 얘길 해 줬다. 나더러 수도를 해 보라고 권하는 이도 많았다.

어떤 이는 내가 그런 자질을 타고났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 있게 들었다. 그러나 수도에는 별 뜻이 없었다. 나에게 절실한 것은 세상의 평화였다.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이뤄지고 소외당한 민중이 해방되어, 평등과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 사이에선 '인간해방', '민중해방', '해방된 세상'이란 말들이 유행했다.

그 '해방'은 사람들이 모든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사람 이외의 다른 생명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말들이었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만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운동'의 목표였다. 
 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뭇 생명이 해방된 세상을 꿈꿨다. 사람들이 자기네끼리만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뭇 생명과 더불어 평화와 사랑을 나누는 길을 찾고 싶었다. 사람과 다른 생명 사이의 평화가 깨질 때,

사람 사이의 평화도 깨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비로소 사람 사이의 평화도 온전히 실현된다고 믿었다. 
 나에겐 단전수련을 하고 참선을 해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한들, 그것은 한 개인의 행복으로 보였다. 세상 사람들,

뭇 생명과는 상관이 없는 일 같았다. 지금은 다르지만, 그 당시의 필자 생각은 그랬다.


 그때 내가 만났던 수행자들은 세상의 평화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도를 이루는 것이었다.
 참선 수행하는 스님들은 득도하여 고승대덕이 되는 게 꿈이었다. 단전수련인들은 굉장한 도력을 얻는 게 유일한 소원이었다.

기도하는 사람들도 신비로운 영적 능력을 얻는 게 간절한 소망이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단전호흡법이나 참선법 등을 배웠다. 그러나 큰 흥미가 없어 어쩌다 한 번씩 해 보는 정도였다.

단전호흡의 경우는 수련인마다 수련방법이 달라서 어느 것이 옳은지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단전 수련인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수련단체의 수련법이 최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네 문파의 스승들을 교주처럼 추앙했다. 
 나는 그들처럼 열심히 수련하는 것보다 한가하게 이 산 저 산 쏘다니는 것이 더 좋았다.

각양각색의 나무와 바위와 풀들을 접하며 많은 걸 느꼈다.
호젓한 산중에서 살다 보니 그런 것들이 전혀 새롭게 보였다. 형제, 친구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들도 나한테 따스한 사랑을 보내 주는 것 같았다. 마음이 지극히 평화로울 땐 그들과 내가 한 몸이 된 기분도 들었다.
 이런 기분은 세상에서 살 때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세상에서도 이런 느낌으로 살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산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그럭저럭 2년이 흘렀다. 1987년 여름, 필자의 산중생활에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필자에겐 엄청난 변화였다.
 당시 고향에 계신 필자의 어머님께서 암으로 크게 고생하셨다. 필자는 어머님을 모실 처지도 안 되었고, 자주 찾아뵙기도 어려웠다.

불효막심한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늘에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난생 처음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를 바쳤다. 어머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십사 빌었다.


 어머님의 고통을 내게 돌려주십사 빌기도 했다. 그런데 기도를 처음 시작한 날 참으로 이상한 체험을 했다.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어떤 노인의 음성이 들려 왔다.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네 어머니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라."
 이런 말씀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헛소리를 들은 줄 알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똑같은 음성이 더 뚜렷하게 들려 왓다.
 "네 어머니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기도하거라."
 누군가 한없이 자비로운 음성으로 이런 말씀을 들려 주셨다.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벌떡 일어서서 고개를 잔뜩 빼고 샅샅이 주위를 살펴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 또 이런 말씀이 들려 왔다.
 "지금은 나를 찾으려 말거라. 훗날 만나게 된다."
 허공에서 이런 말씀이 들리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노인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생각해 보니 너무나 귀중한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누구한테서도 그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성경, 불경 같은 경서에서나 이와 비슷한 말씀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살아있는 이들한테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다. 그때까지 필자가 만난 어떤 이도 그런 얘길 해 주지 않았다.
 모든 중생의 아픔을 대신 받겠다는 기도를 하라고 이르신 말씀이 가슴 깊이 들어왔다.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가르침이었다.

 너무 신기해, 노인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그 말씀대로 고통받는 생명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도를 바쳤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 지 채 오분도 안 돼서 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멀쩡했던 내 몸이 정말 아파 왔다. 보통 아픈 게 아니었다. 고통이 매우 심했다. 온몸의 뼈마디들이 모두 아팠다.
 목, 허리,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마디마디, 무릎, 발목, 발가락 마디마디 모두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통증이 정말 대단했다. 그런 고통은 난생 처음 겪었다.
 그런데도 나는 기뻤다. 기도가 실제로 이뤄지는 것이 너무 신비롭기도 했다. 몸은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가슴에선 이상하게도 평온한 기쁨이 샘솟았다.
이 기쁨은 전에 맛봤던 그 어떤 기쁨과 달랐다. 가슴 속 아주 깊은 곳에서 솟아 나왓다.
 이날부터 삼 개월 동안 똑같은 기도를 자나깨나 하늘에 바쳤다. 육체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그와 함께 가슴의 기쁨도 더 커져갔다.
 3개월 후, 나는 꿈에서 어머님을 뵈었다. 어머님께서 내게 오시어, 나는 이제 간다 하시며 어디론가 떠나시는 꿈을 꿨다.

생시에 체험한 것처럼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꿈을 꾼 시간이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 시간 이후, 육체의 고통은 한순간에 씻은 듯 모두 사라졌다. 기도는 계속했지만, 몸은 멀쩡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깊은 허무감에 빠졌다.

세상의 어떤 일도 필자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온갖 인간사, 세상사가 부질없게만 보였다.
 몸을 움직이는 일, 먹고 마시는 일까지도 귀찮았다. 필자는 바위굴에 틀어박혀 온종일 누워지냈다.
 먹지도 않았다. 가끔 갈증이 나면 물로 목이나 축일 뿐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그대로 세상을 떠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는지 모른다.

  하루는 또 노인의 음성이 들려 왔다.

  "이제 일어나거라. 이대로 있으면 목숨을 잃는다.

 쌀을 가지고 샘에 가 봐라."

 나는 여전히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굳이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없이 자비로운 노인의 음성이 전해 주는 말씀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노인의 온화한 음성에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 서려 있었다.

  노인의 말씀에 이끌려 쌀을 들고 샘으로 갔다. 샘에 가 보니 철철 넘치던 샘물이 잔뜩 줄어 있었다.

쌀을 씻고, 밥 할 물과 마실 물을 뜨자, 샘물이 바닥이 났다.

 이날부터 샘에 자꾸 이상한 일이 생겼다. 목욕하러 가면 샘물이 목욕할 만큼 채워져 있었다. 세수하러 가면 세수할 만큼 채워져 있었다.

 산에서 돌아다니다가 목이 말라 샘을 찾아가 보명, 샘물이 목을 축일 만큼만 고여 있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며칠간 계속 그랬다. 한두 번이라면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하겠으나 계속 그러니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현상이 정체 모를 노인의 음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끝 모를 허무감에서 어느 결에 벗어나게 되었다. 노인의 음성은 그후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노인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이듬해 늦봄이엇다. 어느 날 나는 바위에 앉아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한참 자라기 시작한 새싹들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왠지 연둣빛 어린 새싹들의 모습이 아기들의 조막손처럼 느껴졌다. 참 사랑스러웠다.

 

 이때 오랜만에 노인의 말씀이 들려 왔다.

  "자 보아라. 얼마나 귀한 존재들이냐. 저들을 부처님, 예수님으로 여겨라. 하늘은 만물 중생 안에 계신다.

저들 안에 깃들인 하늘을 보아라."

  그 순간, 어쩐 일인지 나의 눈엔 어린 새싹들 하나하나가 정말 부처님, 예수님으로 보였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의 존재들 같았다.

새싹들 하나하나에 예수님, 부처님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다.

 또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필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싹들만이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게 보였다.

삼라만상이 모두 다 하늘의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들 같았다.

  산봉우리들, 바위들, 새들, 나무들, 풀잎들, 벌레들, 썩은 나뭇잎까지 예수님, 부처님으로 보였다.

만물 중생이 다 같이 성스러운 존재들로 느껴졌다.

  그러자 나의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졌다. 너무 고요하고 아늑하여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나와 삼라만상이 한 몸이 된 것처럼 평안했다. 온 누리에 평화가 무한히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찬란한 하늘 안에서 너와 나의 경계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날부터 숨이 달라졌다. 굳이 단전으로 숨을 쉬려고 애쓰지도 않았는데, 숨이 아랫배 깊은 곳으로 드나들었다.  

숨도 마음처럼 한없이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또 매우 풍부했다. 들숨 때는 시원하게 아랫배까지 쑥쑥 내려왔다.

이튿날은 아랫배에서 저절로 기운이 모여 뭉클뭉클 움직였다.

며칠 후엔 숨이 들어올 때마다 아랫배가 풍선처럼 크게 부풀었다.

저절로 그리 되었는데, 풍선이 늘어나듯 크기도 자꾸 커졌다. 뱃가죽은 더욱 부들부들 연해지고, 숨은 자꾸 더 많이 드나들었다.

숨을 많이 들이쉬려고 전혀 애쓰질 않았다. 되어지는 대로 내버려 뒀는데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숨을 따라 들어오는 기운으로 아랫배가 저절로 부풀자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기가 전보다 한결 수월했다.

다리가 사뿐사뿐 움직였다.

며칠이 지났다. 이제 아랫배만 부푸는 게 아니고, 몸 전체가 부풀었다. 몸 전체가 풍선이 된 기분이었다.

앉아 있으면 위로 둥둥 떠오를 것만 같았다.

 

이 무렵이었다. 하루는 갑자기 전에  미워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럴 일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미움이 불끈 되살아났다.

한동안 잠자고 있던 미움의 감정이 불꽃처럼 치솟아 올랐다.

이때, 노인의 자비로운 음성이 또 들려왔다.

  "얘야, 삼라만상 안에 하늘이 계시다 하지 않았느냐. 저들도 마찬가지다. 정의감 때문에 누굴 미워하지 마라.

저들까지 부처님, 예수님으로 보거라." 이런 말씀이 귓전에 들려왔다.

참으로 귀하신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이 가르침만은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생각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노인의 말씀처럼 정의감 때문이었다. 필자는 정의감 때문에, 약한 이들을 괴롭히고 해치는 존재들에게 심한 분노를 많이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한데 그런 존재들까지도 부처님, 예수님으로 보라 이르시니, 그 말씀은 따르기가 참 힘들었다.

미워하는 이들을 하느님으로 보기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후 그렇게 해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진정으로 우러나오지는 않았으나, 그들을 부처님, 예수님으로 보려고 애썼다.

온종일 그들의 얼굴과 함께 예수님, 부처님의 모습만 떠올렸다. 그들 안에 깃들인 맑고 밝은 하늘을 자꾸 상상했다.

 

 이튿날이었다. 이날도 온종일 그 생각만 하면서 지냈다. 이날 오후에 가서야 노인의 말씀을 온전히 따를 수 있었다.

미워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부처님, 예수님으로만 보이게 된 것이다.

그들 안에도 하늘이 깃들여 있다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웬지 가슴으로도 그렇게 느껴졌다.

 

 이날 저녁부터 숨이 또 달라졌다. 머리서부터 아랫배 밑바닥까지 커다란 통로 같은 게 생겼다.

윗몸 전체가 가죽만 남고 원통처럼 비워진 것 같았다.

 이 통로를 통해 숨이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왔다. 온몸이 터질 듯 더 크게 부풀었고, 걸어다닐 때도 둥둥 떠오를 것만 같았다.

수소를 넣은 풍선이 된 기분이었다.  더욱 희한한 일도 있었다.

  물건을 들려고 하면, 손이 힘을 쓰기 전에 어떤 기운이 들어 줬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랬다. 걸을 때, 발을 떼려는 순간,

어떤 기운이 다리를 옮겨 주곤 했다.

  며칠 뒤에는 하단전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게 생겼다. 엄청난 진동도 왔다. 전에도 몸이 여러 차례 크게 떨렸지만,

이번의 진동들은 더 강력했다. 그리고는 뜨거운 불덩이가 척추를 타고 올라갔다.

  먹는 양도 많이 줄었다. 전에 먹던 양의 삼분의 일도 안 먹는데 활력은 훨씬 더 넘쳤다. 밥을 몇 술만 먹어도 아랫배에 기운이 꽉 찼다. 많이 먹을 필요가 없었다.

 천목(天目)이 열려 몸 속이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먼저 알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 신비로운 체험을 여러 가지 했다.

  미워하던 사람들까지 부처님, 예수님으로 보이니, 세상에 예수님, 부처님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자 마음은 갈수록 더 평안해졌다.

 

 그로부터 며칠 더 지나서였다. 날씨가 많이 따듯해지자 산중에는 모기들이 극성을 부렸다. 

굴에는 모기가 유별나게 더 많이 몰려들었다.

  밤에는 모기들 성화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렇게 귀찮게 굴어대니 모기들만은 예수님, 부처님, 하느님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미워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제발 멀리 가 주기를 바랐다.

 하루는 모기들을 물리칠 요량으로 모기향을 구해 왔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내가 모기향에 막 불을 붙이려는데 노인의 음성이 또 들려 왔다.

 "그러지 말거라. 만물중생 안에 하늘이 계시지 않느냐. 모기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 공양 바치는 마음으로 실컷 물려 주거라.

기뻐하며 물리거라."

 나는 이 말씀을 듣고 퍼뜩 놀라 모기향을 내려놓았다.

노인의 가르침처럼 모기들을 부처님, 예수님으로 보려고 애쓰면서 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기뻐하긴 어려웠다. 단지 기뻐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부처님, 예수님으로 대하는 마음이 몸에서 저절로 우러나오지도 않았다. 그들 안에도 깃들여 있는 하늘을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필자는 앞서 미워하는 사람들의 경우처럼 몰려드는 모기들을 예수님, 부처님으로 보려고,

그들 안에 깃들인 하늘을 보려고 무척 애썼다. 하지만 이 날 저녁은 잘 안 되었다.

몸으로가 아니라 생각으로만 그럴 수 있었다. 가슴으로 그렇게 느끼기는 어려웠다.

 이튿날도 내내 이 문제에 매달렸다. 온종일 모기들을 떠올리며 부처님, 예수님의 모습과 밝디밝은 하늘을 상상했다.

그들 안의 찬란한 하늘을 자꾸만 떠올렸다.

 

 이튿날 저녁이었다.

 날이 어두어지면서 마음이 이상하게 환해졌다. 윙윙대는 모기들의 울음소리가 부처님, 예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천상의 음악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기들이 또 필자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웬일인지 가슴 깊은 곳에서 잔잔한 기쁨이 저절로 샘솟았다.

이 은은한 기쁨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어써다.

 모기들이 달려들자 필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옷을 벗었다. 그리고 모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배고플 텐데 실컷들 먹거라."

 그 순간이었다. 피부에 있는 모든 기공(氣孔)이 활짝 열렸다.

 따스한 봄바람처럼 온화한 기운이 기공을 통해 몸 안으로 솔솔 들어왔다. 몸 안에서 몸 밖으로 똑같은 기운이 솔솔 빠져나갔다.

살갗이 삼베옷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몸 밖에서 부드러운 기운이 계속 술술 들어오고,

또 한편으로는 몸 안에 있던 기운이 술술 밖으로 번져나갔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모기들이 필자를 전혀 안 무는 것이었다. 수백마리가 필자를 에워싸고 윙윙거릴 뿐이었다. 한 마리도 물지 않았다.

모두들 한 뼘쯤 떨어진 곳에서 날아다니기만 했다.  매우 신기한 일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했다. 이때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섬기고 사랑하는 네 마음이 지극해져서 그렇다. 네 몸도 변했고, 모기들은 네 몸에서 뿜어 나오는 밝은 기운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

 이때부턴 정말 몸이 없는 것 같았다. 온몸이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 때부터 몸이 없는 느낌을 자주 받았지만, 그 느낌과는 또 달랐다.

몸이 없다기보다 몸 밖의 세계와 가로놓였던 경계가 아예 사라진 느낌이었다.

 코로 드나드는 숨이 끊어진 듯했다. 숨이 온몸으로 쉬어지는 것 같았다.

 또 며칠이 지났다. 하루는 산에서 돌아다니다가 목이 말라서 샘으로 물을 마시러 갔다.

 샘에 가 보니 한창 가물 때라서 샘물은 바닥에 깔릴 정도밖에 없었다. 필자가 물을 떠서 마시려 하는데 또 노인의 말씀이 들려왔다.

 "조금 후에 몇 사람이 물을 마시러 온다. 이 물은 그들에게 줘라. 너는 저 아랫물을 마시거라."

 내가 머물던 곳에는 샘이 아래위로 두 개 있었다. 위 샘물은 식수로 썼고, 아래 샘물은 허드렛물로 썼다.

나는 아래 샘물에서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했다.

 마침 빨래한 지 두 시간도 안 되었던 터라, 아래 샘에는 비눗물과 땟국물이 흘러 들어가 있었다. 비눗물이 샘 표면에 여기저기 떠 있었다.

 노인의 말씀이 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조롱박으로 퍼올렸던 물을 샘에 도로 부었다.

그리고 노인의 말씀을 따라 아래 샘으로 내려갔다.

  한데 구정물처럼 탁해진 샘물을 떠마시려니 용기가 안 났다. 마시는 시늉을 했으나, 마신다기보다 혀로 핥는 것이었다.

  "얘야, 기쁘게 마시거라. 만물 안에 하늘이 계시지 않느냐. 그 물도 마찬가지니라.

네가 기쁜 마음으로 마시면 그것이 보약 중의 보약이 된다. 꺼리며 마시면 독이 된다. "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닫혔던 필자의 가슴이 활짝 열렸다. 그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날 그 순간부터 몸이 또 희한하게 달라졌다. 이제 더위와 추위를 거의 못 느꼈다.

  못 느끼는 정도가 아니었다. 대낮에 햇볕이 쨍쨍 내리쪼일 때는 몸이 에어컨처럼 시원하게 변했다.

더위가 한창인 여름날 뜨거운 햇빛을 쪼이며 돌아다니는데도 전혀 더위를 안 탔다.

  밤에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 때는 몸이 반대로 나로처럼 뜨거워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먹는 양은 더욱 적어졌다. 사실은 먹지 않아도 배가 충만했다. 온몸에 생동하는 기운이 꽉 찼다.

한 끼에 한두 술밖에 안 먹었다. 물을 안 마셔도 목이 안 말랐다. 입에 단침이 계속 가득히 고여 그걸 삼키면 갈증이 안 생겼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노인의 말씀이 또 들렸다.

  "이제 만날 때가 되었구나. 얘야 길을 떠나라. 우리가 기다리고 있으마."   이런 말씀이었다.

  이튿날, 설레이는 가슴으로 길을 떠났다.

 며칠 후엔 필자의 발길이 강원도 정선의 노추산으로 향했다.

노추산 발치에 구절리라는 마을이 있다. 하루는 구절리에 있는 기차역엘 갔다.

  대합실에 들어가니 웬 노인 한 분이 나무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의 행색은 아주 허름했다. 빛바랜 작업복을 입고, 헤진 신발을 신고 계셨다.

  필자는 노인과 많이 떨어져 다른 벤치에 앉았다. 대합실 안에는 그 노인과 나 둘만 있었다.

  필자가 대합실에 들어간 지 십여 분쯤 흘러서였다. 노인께서 몇 번 몸을 뒤척이더니 부시시 일어나셨다.

  노인은 나를 쳐다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갑자기 노래를 부르셨다. 그 노래는 기독교의 성가였다.

제목이 <주 여호와는 나의 목자님>이라는 노래였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성가를 처음 들어 봤다. 한 소절 한 소절이 필자의 뼛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성가를 부르신 다음에는 불교의 범패를 부르셨다. 처음 듣는 범패였다. 이  또한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아름답다기보다 신비로웠다.

노래소리가 살아서 움직이며 온 세상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필자의 몸과 마음이 그 노래 속에 녹아 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노래를 마친 후, 노인께서 비로소 나를 바라보셨다. 노인의 용모는 투박했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이 건장한 노동자의 분위기를 풍겼다.

  눈빛은 매우 그윽했다. 노인께서 필자를 향해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입을 여셨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구나."

  산중에서 들었던 노인의 음성과 똑같은 음성이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필자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노인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노인께 넙죽넙죽 큰 절을 몇 번 올렸다.

    절을 마치자, 노인께서는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셨다.

훗날 도운도종사님으로부터 이 노인의 모습이 청산선사님의 맏사형이신 비혁도인님과 비슷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비혁도인님께서는 세상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신 분이시다.

이 분을 뵌 이는 청산선사님의 수제자들이신 청원선사님과 청화선사님, 도운도종사님 세 분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그 노인과 잠시 동안 함께 지내면서 여러 말씀을 들었다. 나에겐 그저 신비롭기만 한 이야기들이었다.

얼마 후 그분과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질 때, 노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먼 훗날 다시 만나자. 앞으로 발길 닿는 대로 우리나라 명산들을 두루 순례하거라. 길을 가다가,

우리 식구들을 여럿 만나게 될 것이다."

 

노인의 말씀에 따라 필자는 혼자서 이 산 저 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청산선사님(비경선사님)을 만나 뵈었다. 그분을 처음 뵌 곳은 태백역이었다.

청산선사님(비경선사님)께서도 잠시 동안 함께 지내시면서 여러 가지 신비로운 말씀들을 들려주셨다.

비혁도인님과 용모가 비슷하신 도인님과 청산선사님(비경선사님)께서 전하신 말씀들은 아직 모두 밝힐 때가 아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하나 밝히게 될 것이다.

 나는 청산선사님의 또 한 분 사형님이신 비거도인님(용모가 아주 비슷하신 도인님) 그리고 아직도 누구인지 모르는

다섯 분의 도인님들을 더 뵈었다. 그분들께선 당신들이 모두 한 식구, 한 몸이라 하셨다.

그분들께서 필자에게 보여 주신 모습은 너무나 신비로왔다. 필자의 눈에 그분들께선 초월적인 존재들로 보였다.

상상에서나 가능한 모습들을 여러 번 보았다.

독자들이 들으면 황당무계한 소설 속의 이야기라 할 것이다.

그분들에겐 물질계와 정신계의 경계가 없었다. 나타남과 사라짐이 자유로운 분들이셨다.

 

내가 체험한 신비로운 일화 하나만 소개하겠다.

제주도 한라산엘 갔을 때였다. 한라산 중턱에서 노인 세 분을 뵈었다.

모두 머리가 학처럼 하얀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은 한결같이 남루한 모시옷을 입고 계셨다.

노인들의 용모는 매우 기이했다. 한 분께선 한쪽 눈이 왕방울처럼 큰데, 다른 한쪽 눈은 콩알만큼 작았다.

또 한 분께선 한쪽 귀는 머리 위쪽에 붙었고, 다른 쪽 귀는 아래쪽에 붙어 있었다. 또 다른 분은 콧대가 하나도 없었고,

입은 옆쪽에 붙어 있었다. 얼굴 각 부위가 그야말로 참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었다.

이분들의 얼굴처럼 균형을 잃은 얼굴을 필자는 사진으로도 못 봤다.

한데 이분들의 얼굴에는 무한한 평화, 한량없는 사랑이 깃들여 있었다.

이처럼 자비로운 사랑으로 충만한 모습을 필자는 어디서도 뵙지 못했다.

그 사랑의 빛으로 이상하게 생긴 용모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모습 또한 아직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그분들 중 한 분께서 어느 산봉우리를 손으로 가리키시며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제주도를 떠나기 전날, 우리는 저 위에 있겠다. 그날 우리의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노인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날이었다. 그날 필자는 제주도에 사는 친구 두 사람과 한라산을 넘었다.

친구들에게 그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 줬다.

한라산으로 향하는 나의 가슴은 설레일 대로 설레였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노인께서 가리키신 산봉우리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산봉우리 위에서 갑자기 이런 말씀이 필자의 귀에 들려 왔다.

"봐라. 우리가 여기 있다."

나는 퍼뜩 고개를 들어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햇빛보다 찬란한 빛이 뿜어 나왔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도 친구들도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이 신비로운 광경을 지켜 보았다.

이 때, 나의 귀에 한없이 자비로운 노인들의 음성이 들려 왔다.

"이것이 우리들의 참모습이다."

 

  이 말씀을 듣자, 필자의 온몸이 진한 감동으로 떨렸다. 빛은 십여 분쯤 뒤에 사라졌다. 그분들은 빛의 존재들이셨다.

빛의 세계에 계신 스승님들이셨다. 나는 그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몇 달 뒤에 만나 뵌 어느 도인님,

비거도인님과 매우 비슷하게 생기신 분한테서 들었다.

비거도인님과 흡사하신 도인님께서는 필자가 마지막으로 뵌 도인님이시다.

그분께서 나를 다시 세상으로 내려보내셨다. 그 당시엔 산에서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생겼지만,

그분의 말씀을 조금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 도인님께선 나를 하산시키며 많은 말씀을 전하셨다. 여덟 분의 도인님들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신 분이시다.

그 도인님의 말씀 중에도 아직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밝힐 만한 말씀들은 대략 이런 이야기들이다.

 

 "이제 산에서 내려가라, 세상으로 돌아가면 괴로운 일을 참 많이 겪게 될 것이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 터이다.

마음은 버리고 또 버리되, 몸은 절대 버리지 마라.

훗날 우리와 다시 만난다.

몸은 떨어져 있으나,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고 믿어라.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성자들은 모두 한 몸 한 식구다.

고금동서의 모든 성자들이 한 형제이며 같은 하늘 세계에 머문다.

우리에겐 종교의 벽이 없다.

네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상이 이뤄진다.

사람들이 만물중생과 형제처럼 지내게 될 때가 멀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세상 사람들이 그 시대를 맞이할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있다.

산에서 내려가면 네게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

밝힐 수 있는 만큼씩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라.

우리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네가 우리 앞으로 먼저 오려는 마음을 내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먼저 우리에게 오도록 도움을 줘라.

힘들겠지만 그 일을 해야 한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도, 우리가 보고 싶어도 참고 견디어라.

우리 대신 너를 인도해 줄 사람을 9년 후에 만난다.

그가 네게 많은 가르침을 줄 것이다."

 

  그 도인님께선 이런 말씀들을 들려 주시고 홀연히 나의 곁을 떠나셨다. 헤어지실 때,

 나타남과 사라짐이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저 신비로울 뿐이었다. 나는 그 도인님께서 이르신 대로 산을 떠났다.

  산에서 내려오자, 그 도인님의 말씀처럼 많은 어려움이 나를 기다렸다. 몸도 마음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좋았던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날부터 바로 그랬다. 웬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혁도인님과 비슷한 분의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다른 생명의 고통을 대신 받게 해 주십사 기도할 때처럼 아팠다.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 거의 계속 그렇게 지냈다.

 

  어려운 일들은 계속 닥쳐왔다. 마음도 몸처럼 어두워져 갔다. 산중에서의 그 밝고 환했던 마음을 되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비거도인님과 비슷한 도인님께서 말씀하신, 필자를 인도해 줄 그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세상살이가 참으로 힘겨웠으나 그래도 세월은 흘러 도인님들과 헤어진 지 만 8년이 지났다.

  어느덧 9년째로 접어들었다. 필자를 인도해 주실 분을 만나게 된다는 바로 그 해였다.   1997년 4월이었다.

  20년간 미국에 은둔해 계시던 청화선사님과 도운도중사님께서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셨다.

청산선사님의 명에 따라 숨겨진 도법(道法)을 전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었다.

  이때 나는 도반 세 명과 함께 그분들을 뵈었다. 수원의 어느 다방에서였다.

  두 분을 뵙는 순간, 비거도인님과 흡사하신 도인님께서 말씀해 주신 분들이 바로 이분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분과 마주 앉은 지 5분도 안 되어, 필자의 몸이 산에서 지낼 때의 그 좋았던 상태로 거의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똑같이 밝아졌다.

  나는 너무 기뻤다. 나를 하산시킨 도인님의 약속이 이뤄진 것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중에서 지낼 때 뵈었던 그 도인님들을 다시 뵙는 것 같았다.

 

 두 분께서 나에게 그 도인님들의 소식을 전해 주셨다. 지금은 어디 계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가 자세히 알려 주셨다.

 필자가 무엇보다 궁금하게 여긴 일, 그분들의 신비로운 모습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도 명쾌하게 밝혀 주셨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말해 주지 못한 이야기들이었다.

 

 청화선사님게서는 고국에 한 번 다녀가신 다음 청원선사님과 함께 또 은둔하셨다.

숨어 지내시며 눈에 안 보이게 많은 수련인들한테 큰 도움을 주신다.

 

 도운도종사님은 세상에 나와 수련인들을 위해 많은 가르침을 주신다. 나도 이분을 스승님으로 모시며 가르침을 받고 있다.

 도운도종사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비로소 필자가 산중에서 겪은 체험이 어떤 원리에 의해 이뤄졌는지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 덕으로 이 책까지 쓰게 된 것이다.

 도운스승님의 가르침이 없었으면 이 책 또한 쓰여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