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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명상’ 과학적으로 증명한 장현갑 영남대 교수

醉月 2008. 7. 31. 00:12

“건포도 명상으로 마음의 이두박근, 삼두박근을 키워보세요”

 

우울, 슬픔, 괴로움…. 인생의 길목에서 누구나 한번쯤 만나게 되는 불청객이다. 이럴 때 우리는 화를 다스리지 못해 터널에서 한참을 허우적대거나 심지어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간단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이가 있다. 마음을 살피고 보듬으면 마음을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현갑 교수의 ‘마음챙김 명상’을 따라 해보자.

건포도 세 알을 손바닥에 올린다. 들여다본다. 이게 뭔가? 전에 한번도 본 적 없었던 것처럼 건포도를 들여다본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한다. 마음속에 틀림없이 다른 생각이 끼어들겠지만 그걸 밀치고 계속 건포도만 본다. 건포도 한 알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촉감을 느껴본다. 뒤집어도 보고 불빛에 비쳐도 본다. 불빛이 건포도를 통과하는지도 살핀다. 손가락을 움직여 계속 건포도의 촉감을 느낀다.

 

자기 마음속에 지루하거나 시시하거나 조급한 생각이 드는지 살펴본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어도 실수하거나 잘못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건포도에 다시 모으면 된다. 다음엔 건포도를 귀에 갖다 대본다.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본다. 마음속에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거든 천천히 그 생각을 내려놓고 다시 건포도 쪽으로 의식을 집중한다. 이번에는 건포도를 코 가까이 대본다. 냄새를 맡아본다.

 

냄새가 어떻게 자신 안에 들어오는지를 살핀다. 이번엔 입 앞으로 가져온다. 입에 넣지는 말고 입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본다. 침이 고인다면 어디에서 가장 많이 고이는지를 느낀다. 혀가 움직이는지도 관찰한다. 가능한 한 주의 깊게 입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 잠시 뒤 입을 열고 입속에 건포도를 넣는다. 그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마음을 챙겨본다. 씹기 직전의 건포도의 느낌, 입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 혀끝에 닿는 건포도의 감촉, 침과 혀의 반응에 마음을 집중한다. 어떤 생각이나 판단이나 이야기가 떠오른다면 관대하게 그것을 그냥 놓아 보내준다.

 

오직 자신의 입 안, 건포도 주위에서 펼쳐지는 일에만 감각을 집중하여 계속 마음을 챙겨본다. 이제 건포도를 서서히 씹는다. 처음 깨무는 순간을 느낀다. 맛을 본다. 달콤한지, 새콤한지, 부드러운지, 딱딱한지, 쫄깃한지, 입안의 어떤 부분에서 맛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지를 집중해서 살펴본다. 되도록 천천히 씹으면서 건포도의 모든 것을 감각한다. 삼키면 어떤지, 삼킨 뒤에도 맛이 남아 있는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건포도에 집중한다. 나머지 두 알도 반복하여 그런 식으로 집중하여 마음을 챙겨가며 천천히 씹어 먹는다.

 

자, 이것이 건포도 명상이다. 읽기엔 지루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따라 해보면 전혀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행동을 꼼꼼히 따라가 보면서 지금,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 명상의 목적이다. 건포도 세 알로 20분쯤 마음을 모을 수 있다. 불가에서 행하는 참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모꼬(화두) 대신 눈에 보이고 냄새가 나고 맛도 느낄 수 있는 건포도를 들고 왔을 뿐이다. 우리 감각의 실체를, 깨어 있는 마음을 좇아가기 위한 가장 간단한 훈련이다. 추상이 아닌 건포도라는 실체, 오감을 동원할 수 있는 대상이 눈앞에 있기 때문에 마음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렇게 천천히 보고 듣고 촉감을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면서 마음을 찬찬히 살피면 우리 마음에도 근육이 생길 수 있다. 아령을 들고 내려서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키우듯 마음의 행로를 샅샅이 지켜보는 마음챙김 명상을 거듭하면 마음근력 전반이 강화된다(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는 장 교수의 설명에 나는 무릎을 친다). 마음근육은 집중력이기도 하고 포용력이기도 하고 인내력이기도 하다. 실제로 임상에서는 통증 감소, 스트레스 해소, 면역력 증강, 우울증 해소 같은 반응으로 나타나는 게 증명됐다.

 

마음챙김 명상

서초동 교육개발원 회의실 매트에 똑바로 앉아 나는 장 교수가 이끄는 대로 저 건포도 명상을 체험했다. 전에 몇 번 여름 산사에서 실시하는 참선수행에 참가했는데, 건포도를 눈앞에 들고 오감을 집중하는 것은 화두를 머릿속에 잡고 면벽하고 앉는 불교식 수행보다 훨씬 마음 모으기가 쉬웠다. 반야심경의 색·성·향·미·촉·법을 외면하지 않고 따라가며 지켜보는 방식이라 장 교수가 지시하는 대로 놓치지 않고 생각을 풀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난생 처음 내 입 안에서 나타나는 침의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봤다.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건만 입 근처에 건포도가 다가오자 내 혀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마구 분비했고 혀도 침이 분비되는 쪽으로 따라 움직였다.

 

그걸 느껴봐서 무슨 소용이냐고? 아니다.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이나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각성훈련은 우리를 놀랍게 변화시킨다.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각을 비판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고통이나 우울까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만성통증 환자가 명상수련을 반복하면 통증을 그저 바라볼 뿐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 우울이나 불안증 환자는 우울을 일으키는 생각 자체를 바라봄으로써 우울이나 불안 속에 빠져들지 않게 된다. 통증이나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한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 실체가 아닌 경우가 많다.

   

 

건포도를 관찰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가만히 제 마음에 이는 통증이나 파장을 살펴보면서 물 위에 띄워 보내듯 생각을 흘려보내고 앉아 있으면 굳이 거기서 회피하거나 도피할 필요가 없어진다. 도피나 회피하려는 심리가 바로 통증과 불안과 우울을 만들어내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반드시 위험이 다가왔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두려워하는구나’ 하고 그 생각을 관찰하고 흘려보내는 훈련으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실패했어’라는 생각은 반드시 실패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다. 화도 마찬가지다. ‘내가 화가 나는구나’ 하고 제 마음을 지켜보면 화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진다. 특히 폭식환자들이 명상을 하면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 ‘내가 지금 배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싶어하는구나’라며 자기를 들여다보는 자체가 무분별하게 폭식하는 섭식장애 환자들을 다스리는 힘으로 작용한다.

 

생각대로 느낀다

요즘 일요일 저녁 8시, KBS ‘일요스페셜’은 6부작 다큐멘터리 ‘마음’을 방송하는 중이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분석한 사례들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난 주일엔 고통 없이 수중 분만하는 산모가 나왔다. 르누아르 그림 속 여인같이 뽀얗고 고운 살결의 산모는 감동에 차서 “오 마이 갓!” 하며 방금 제 몸에서 빠져나온 아기를 받았다. ‘아기를 낳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작은 질구를 통해 아기의 커다란 머리가 빠져나오다니 아플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건 어리석은 초보 과학적 사고다. 여성의 몸은 뱃속에서 아기를 길러 제 몸을 열고 자연스럽게 세상 밖으로 밀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자연스러운 설계에는 원래 통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문명이 통증을 만들었다. 아기 낳는 고통의 묘사들은 아마도 아기를 한번도 낳아보지 않은, 과학적 사고에 길이 든 남자들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아기를 낳는 것은 죽음과 버금가는 고통이다’라는 미신이 있다. 그 말이 반복되면서 공포감이 더욱 커졌다. 공포 때문에 미리 불안에 빠진 산모는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한다. 그러니 산도도 경직된다. 그 경직된 근육을 뚫고 아기가 세상에 나오려니 아플 수밖에 없다.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하여 행복함 속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출산을 기다리는 산모에게 해산은 고통이 아니다. 출산이 아주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기만 해도 통증은 상당부분 사라진다.

 

아기 나올 통로가 열리도록 깊게 호흡하며 신화 속 여인같이 누워 있던 다큐멘터리 속 여인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감격에 겨워 제 몸을 통과한 아기를 받아 안았다. 거의 전쟁처럼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며 아이를 낳았던 나는, 엄마가 되려면 그 정도의 고통쯤은 당연히 견뎌야 하는 줄만 알았던 나는 그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저게 바로 마음의 힘이라니!

“심리학이 뭡니까?”

아이같이 천진한 눈을 가진 장현갑 교수를 만나 대뜸 물었을 때 그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심학(心學)과 리학(理學)이 모인 거지요. 리학은 논리를 밝히는 과학으로 130년이 채 안 된 신생 학문이지만 심학은 2500년 전부터 계속돼온 인류의 대명제였어요.”

명상의 효능에 관련한 책을 써서 ‘서양의학을 위기에서 구한 성웅(Saint Soldier)’이라 불리는 하버드 의대 교수 허버트 벤슨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이가 장현갑 교수다. 그는 ‘이완반응을 넘어서’ ‘나를 깨라, 그래야 산다’ 같은 벤슨의 책을 번역해 과학적 분석 없이 오랜 세월 무조건적으로 행해져온 명상의 효능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매사추세츠대 예방 및 행동의학과 교수인 존 카밧진의 책도 처음 소개했고, 그가 개발한 ‘마인드풀니스 메디테이션(Mindfulness Meditation)’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불립문자(不立文字·깨달음은 문자나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 언어도단(言語道斷·말로써 나타낼 수 없음)이라고만 표현되던 절대의 세계에 우리 식의 정교한 현미경을 들이대기 시작한 것도 장 교수였다. 명상이란 양자역학, 분자생물학, 신경과학 같은 최신 과학에서 시작해 심리학, 경영학, 종교학, 철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을 모조리 아우르는 방대한 영역이었고 온갖 학문이 망라되어 있으면서도 기존의 사고 틀을 깨어야 앞이 보였다. 거기 외롭게 매진했다.

 

끔찍한 사고

심리학자가 명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불교 집안에서 자라 절에 가서 독송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것을 봐 왔으니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생리적으로 분석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 교수에겐 그렇게만 설명되지 않는 어떤 필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여느 사람이 상상도 못할 사건을 경험한다. 그를 시험하기 위한 시련이라기엔 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일이었다.

 

1997년 그는 애리조나대 객원교수로 초청받는다. 원래는 1년간 단기 출가할 작정이었다. 평소에도 1년에 한두 차례씩 백운산 상연대선원에 가서 보름씩 수행하곤 했지만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참선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런데 절의 사정으로 그 계획이 어긋나버렸다. 실망감에 애리조나 주립대 게리 슈와르츠 박사에게 그곳에서 연구할 기회를 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내 초청장이 왔다. 슈와르츠 박사는 장 교수를 한참 바라보더니 자신의 논문을 꺼내주며 크리틱을 좀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그곳에서 카밧진의 책을 번역하고 건강심리학을 연구했다.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활동으로 심리학계를 선도하는 장현갑 교수.

 

2월에 떠났는데 6월말 여름방학을 맞아 아내와 딸이 대구에서 애리조나로 찾아왔다. 장 교수의 부인 정방자 교수는 대구 효성가톨릭대에서 화엄경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없애는 연구에 몰두하던 상담심리학자였다. 장 교수와는 서울대 심리학과 동기동창이었고 같은 공부를 함께하는 동료이고 도반이었다.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셋째딸 훈정은 조지워싱턴대 뮤지엄 스터디 석사과정에 막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 아이는 졸업 후 세계적인 큐레이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군에서 금방 제대한 아들은 버팔로에서 영어연수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각자 희망에 부푼 네 식구는 자동차를 빌려 타고 여행을 떠났다. 애리조나 투산을 떠나 로키 산맥을 거슬러 몬태나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정방자 교수는 뉴욕에서 화엄경을 전공한 학자를 만날 예정이었고, 딸과 아들은 새 세상과 새 공부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 있었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이었다. 행복하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나뭇잎은 햇볕에 반짝거렸다.

 

그런데…사고가 났다. 앞에 오던 차와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사고는 갑자기 왔다. 그 일은 아내와 딸을 먼 곳으로 데려가버렸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와 아들만 살아남았다. 차에 두 다리가 깔려버린 그는 구조대가 와서 위에서 눌러대는 쇠뭉치를 들어올릴 때까지 꼬박 1시간을 뼈가 으스러진 채 견디고 있었다. 아내와 딸의 주검을 바로 곁에 둔 채.

 

苦를 滅하다

살짝 감정이 흔들리는 게 보이긴 했지만 장 교수는 그 얘기를 피하지도 않았고 생략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최악의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되었다. 고통은 반드시 삶을 도약시킨다는 것을 믿었다. 그걸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사고 후 그가 읽었던 책은 나중 그가 번역한 보리센코의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이었다. 거기서 놀라운 힘을 얻었다.

 

“자포자기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남은 아이들은 어쩌나 싶어지자 기운을 내지 않을 수 없었어요. 평소에 공부하던 것들이 복음이 된 셈입니다. 위파사나 명상이 삶에 용해되어 절망을 견디는 자양분이 돼준 거지요. 코바사가 말한 3C(도전 Challenger, 몰입 Commitment, 컨트롤 Control)의 위력을 깊이 실감했어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부서진 다리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꼬박 4개월을 누워 있었다. 마음이 가는 곳을 골똘히 따라가며 집중하는 위파사나 명상이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지켜봤다.

 

“고통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가만히 관찰합니다. ‘내가 지금 슬퍼하고 있구나’ 그걸 순간순간 알아차리면서 그 생각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요. 화엄경의 방대한 체계를 녹여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됩니다. 고(苦)의 원인은 집(集)이고 집을 멸(滅)한 결과가 곧 도(道)거든요. 내게 고가 왜 생기는지를 알면 그걸 멸할 수 있게 돼요…. 나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최면을 걸었어요. 목표를 다단계로 세웠지요. 그러니까 긍정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두 다리를 다 못 쓰고 누워 있을 때는 휠체어만 타자는 게 목표였고 일어나 앉게 되면서는 보조기를 이용해서라도 서기만 하자 했고 서서는 한걸음만 떼어놓을 수 있기를 바랐고 떼어놓으면서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기를 염원했어요. 마침내 양쪽에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자 이젠 목발 하나만 짚을 수 있기를 바랐지요. 그런데 그게 1년 이내에 다 이뤄지더군요.”

 

세계 최초의 명상 치유서인 카밧진의 ‘온갖 삶의 역경 속에서’, 방금 번역했던 그 책이 절망을 견디는 힘과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친 것 같다. ‘마인드풀니스’라는 말은 지금 전세계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우리말도 위파사나, 염처(念處), 관(觀) 같은 전통 불교용어에서부터 주의집중, 마음집중, 알아채림, 마음챙김과 같은 용어로 바뀌다가 지금은 ‘마음챙김’으로 거의 고정됐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해 경북대 교수로 있는 둘째딸 장문선, 마인드플러스 건강심리연구소 연구원인 큰딸 장주영과 함께 어려움 속에서도 명상 책을 새로 쓰고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게 죽은 아내 정방자 교수와 어여쁜 딸 훈정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스승이 이끈 생리심리학의 길

학자로서 그의 삶엔 세 스승이 있다. 생리심리학을 공부하도록 이끈 고 성백선 교수. 고대 심리학과를 만든 분이다.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그를 큰 기대를 갖고 지켜봐준 외삼촌 최문환 교수의 친구였다. 첫해 서울대에 낙방하고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가 전공이 맘에 들지 않아 방황하는 그에게 “철학 비슷한 과학이 있다”며 심리학과로 인도했다.

    

대학에 들어가보니 심리학이 해부학에 가까운 데 놀랐다. 수학에는 원래 소질이 없었고 암기에는 자신있었다. 그는 61학번, 6·3한일회담반대운동이 일어나던 즈음이었다. 민족주의비교연구회 멤버들인 김중배·김도현이 동기였다. 그들과 어울려 거리를 헤맸다. 공부보다 운동에 열중했다. 대학원은 성백선 교수가 있던 고려대로 갔다. 석사를 마친 후엔 고대 생물학과 강사가 됐다. 가톨릭 의대 생리학 교실에서 4년 동안 흰쥐의 뇌구조를 연구했다.

 

“날마다 쥐장 앞에서 자고 먹고 했어요. 개와 쥐와 고양이의 뇌를 숱하게 해부했지요. 뇌구조를 이해하는 지도를 만들었는데 내가 보고서를 쓰면 동료들이 ‘과학이 아니라 소설 같다’고 말하곤 했어요. 과학자는 상상력을 발휘하면 안 된다면서….”

그러나 그가 포함된 가톨릭 의대 신경생리학팀이 쓴 논문이 미국 심리학회지에 실리는 경사가 있었다. 나중엔 ‘브레인 리서치’라는 권위 있는 학회지에 뇌의 기억구조를 밝혀내는 장교수의 ‘해마연구’ 두 편이 연달아 채택되기도 했다. 그 논문을 인연으로 그는 다시 서울대로 돌아왔다. 1968년에 교양학부 조교였다가 1970년, 스물여덟에 전임이 됐다. 1974년엔 조교수가 됐다.

 

서울대에선 약리학 교실에 참여해 뇌를 연구했다. 인삼이 정신작용, 즉 기억과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한약재 전반을 다 실험했다. 산조인, 창출, 가시오가피…. 역시 실험용 동물우리 곁에서 살았다. 학자로서 호기심에 넘쳤지만 그렇다고 충만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미래가 막연할 때가 있었다. 자신 안의 의존성, 화, 불안을 어쩔 수 없을 때도 많았다. 뇌를 연구한다는 심리학 교수가 이게 뭔가 싶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른다니, 내 마음을 파악할 줄도 모르다니…. 서울대병원 정신과의 이동식 선생을 찾아갔다. 그에게 2년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았다. 어릴 적의 격리경험이 성장 발달에 깊이 관여한다는 것도 알았다.

 

“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라는 주제를 주신 분이 이동식 선생이었어요.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도의 깊이, 도와 학은 어떤 관계인지를 공부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이런 목표가 확고해졌을 무렵 영남대에서 프러포즈가 온다. 윗대부터 친분 있던 이인기 총장이 심리학과를 새로 만드니 내려와달라고 간곡히 청한 것이다. 독립 필드가 이뤄질 수 있겠다 싶었다. 서울대에 사표를 내고 대구로 내려간다. 고향은 칠곡이지만 대구는 중고등학교를 다닌 정든 도시였다.

“실은 그때부터 파란이 시작됐지요. 마침 10·26이 났거든요.”

학교생활은 곡절투성이였다. 시대 자체가 그랬다. 영남대에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가 전국 최초로 생겼다. 거기 관여한 덕에 보안사령부에 끌려가기도 했고, 5공 시절 각종 시국 선언문마다 빠지지 않고 서명하는 교수로 찍히기도 했다. 과격하진 않았어도 늘 싸움대열에 끼어 있었다.

“이런 체제가 오래 안 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설령 지금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도 나중엔 그게 훈장이 될 거라는 계산도 작용했을 겁니다.”

그의 세 번째 스승은 서울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정양은 교수다. 조교인 그에게 강의를 맡기고 자신은 뒤에서 수업 내내 지켜보고 서 계셨다.

“그러니 공부를 안 할 수가 있나요? 머리는 천재적인데 덜렁거려서 문제라고 늘 지적하셨죠. 날 교수 되도록 이끌어주신 선생님이세요.”

 

죽음의 문턱에서

1990년대 영남대에선 최초로 민선총장이 뽑혔다. 그 무렵 장 교수도 주변의 강권으로 학교운영을 위한 보직을 맡았다. 학생 생활연구소장을 거쳐 학생처장이 됐는데 2년 임기가 끝나고 나니 스트레스가 하도 심해 이빨이 다 덜컥거렸다. 진작부터 좋지 않던 심장도 더 나빠졌다. 시간만 나면 명상수련을 했다. 기도, 참선, 호흡, 간경, 염불 등 삼마타와 위파사나를 번갈아 집중 수행했다.

 

1995년엔 반야심경을 1000번 사경(寫經)하기도 했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그는 역사문제연구소가 개최하는 ‘항일독립운동의 루트’를 찾는 여행단의 일원으로 연해주 탐방을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였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고 용수철이 튀어나오는 침대에 수도도 고장난 구소련의 특급호텔. 사회주의 국가의 실상을 알고 난 뒤 꽤 우울했다. 노천에서 일정의 하나인 강의를 듣는데 극심한 가슴통증이 왔다.

 

“순식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장면이 주르륵 흘러가요. 이게 죽음이구나 싶데요. 그때 든 생각이 두 가지였어요. 첫째, 난 참 열심히 살았구나. 둘째, 그런데 참 아쉽구나. 다른 무엇보다 불교의 명상공부를 철저히 해서 깨달음을 얻을 걸. 혹시 죽지 않고 살아난다면 내가 할 일은 바로 그거다!”

 

평소 단전호흡을 수련했으니 편안하게 심호흡을 했다. 무섭지도 싫지도 않았다. 차츰 안정이 됐다. 숨쉬기도 편해졌다. 연해주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온 그는 그날의 깨달음을 잊지 않는다. 명상에 매달린다. 해탈을 얻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 병원에서 검사를 해봤지요. 심장에서 나오는 관상동맥 세 가닥 중 한 가닥이 막혔는데 희한하게 옆으로 통하는 측지가 생겼다고 말하데요. 의사는 우연이지만 기적이라고 하고….”

 

본격적인 불교공부에 빠져들고 싶었다. 단기 출가를 결심했다. 그러나 그게 어그러져 애리조나로 떠났던 것이다. 그의 집안엔 학문하는 전통이 있었다. 지금도 직계 가족 중엔 박사가 열 손가락에 다 못 꼽을 정도다. 증조부는 고성부사를 지냈고, 조부는 보성전문 1회 졸업생으로 구한말 북청에서 판사를 했다. 그러나 한일강제합방이 되자 판사노릇을 과감히 그만두고 대구에 내려와 변호사 개업을 한다. 한때는 떠르르하게 살았으나 조부가 미두(米豆)에 손을 대 집안이 졸지에 무너진다. 독립자금을 댄 게 발각이 났던 것도 이유였다. 머리가 비상했던 선친은 동경농대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없어 입학을 포기했다. 초등학교 교사 노릇을 하며 혼자 공부해 나중에 고등학교 생물교사가 되는데, 선친이 한번 전근을 갈라치면 전교생이 온통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장 교수가 후에 세계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즈 후(Marquis Who’s Who)’ 3개 분야에 6년 연속 등재되고 미국인명학회 (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ABI)가 뽑은 ‘500인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는가 하면 영국 국제인명센터(IBC)로부터 ‘100대 교육자’ 공식 인증패를 받는 등 세계 3대 인명사전에 고루 이름이 오른 것은 이런 선대의 힘일지도 모른다.

 

질병의 80%는 마음에서 온다

마음이 즉 몸이다. 우리말 구조를 살펴봐도 곧 아는 일이지만 마음과 몸은 둘로 쪼갤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고작 30년 정도밖에 안 된다. 1974년 로체스터 의대 심리학자 로버트 아더는 흰쥐에 사카린을 주사하고 곧이어 구토제를 주사했다. 다음번엔 구토제 없이 사카린만 주사해도 쥐들은 심한 구토증세를 보였다. 물론 사카린과 구토제를 결합해서 맞은 경험이 없는 쥐들은 사카린에 전혀 구토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사카린에 구토증세를 보이던 쥐들은 곧 면역계가 취약해져 병들어 죽더라는 것이다.

 

이전 학자들은 뇌와 면역계를 별개의 계통으로 여겼다. 미각을 담당하는 뇌 중추와 면역을 담당하는 T-세포를 생성하는 골수 간에 연결통로가 없다고 믿었던 해부학자, 생리학자, 생물학자들은 이 두 체계 간에 다양한 생리적 연결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차츰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대의학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하버드대 허버트 벤슨 교수는 모든 질병의 80%는 마음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마음의 스트레스가 몸의 질병을 불러온다는 걸 거꾸로 해석하면? 마음의 평화가 몸의 고장을 고칠 수 있다는 얘기다.

 

토끼는 심혈관계가 인간과 매우 흡사한 동물이다. 휴스턴대에서 이뤄진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혈통을 가진 토끼를 대상으로 일정기간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음식을 먹여 심장동맥의 경화 여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사육 상자가 높은 선반에 있던 토끼들은 낮은 선반에 있던 토끼들보다 동맥경화에 걸린 비율이 훨씬 높았다. 왜 그럴까. 이유를 찾아봤더니 매일 저녁 먹이를 줄 때 여자 사육사가 낮은 선반에 있는 토끼들은 안아주고 쓰다듬어줬고 높은 선반에 있는 토끼들은 손이 닿지 않아 그냥 먹이만 밀어넣어줬다는 것이다. 사랑을 충분히 받은 토끼는 사랑받지 못한 토끼에 비해 동맥경화 발생률이 60%나 감소한다는 사실이 우연히 밝혀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사랑을 ‘사회적 지지’라고 부른다. 미국의 한 도시 주민 7000명을 대상으로 건강과 생활습관을 비교한 연구를 보면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 부인들은 자궁암, 유방암,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그룹보다 2.4배나 높았다 한다. 사랑이 운동이나 음식 같은 생활습관보다 훨씬 강력한 요인임을 입증한 연구였다. 마침내 심리학자들은 “생각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 이는 금세기 인류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라는 말을 논거로 들어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고요한 각성 상태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심리학과 명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일상생활에 스트레스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장 교수는 그동안의 공부와 카밧진의 ‘명상과 자기 치유’같은 책을 참고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맞은 명상 프로그램으로 개발했다. 명상의 방법과 효능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이완명상법’ ‘스트레스와 심신의학’ ‘몸의 병을 고치려면 마음을 먼저 다스려라’ 같은 책도 연거푸 발간했다.

 

내가 경험한 건포도 명상법이 바로 그가 한국인에게 알맞게 고안해낸 마음챙김 명상(MBSR)이다. MBSR은 ‘Mindfullness-Based Stress Reduction’의 약자로 카밧진의 ‘마인드풀니스’를 응용한 것이다. 총 8주 프로그램이다. 두 달이면 우리 마음에 근육이 생길 수 있다. 돈도 들지 않고 통증도 없고 부작용 또한 있을 수 없다. 의학의 개가다. 그 첫 단계가 바로 건포도 먹기 명상이다.

   

 

“마음챙김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반대말을 생각해보는 게 좋아요. 넋 나간 혹은 얼빠진(mindlessness)과 반대거든요. 뭔가를 가득 채운다는 뜻 같기도 하지만 순간순간 자신의 마음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요히 각성된 상태랄까. 지금(now) 여기(here)에 마음을 모으는(mindful, attention, awake) 거지요. 지금(今) 여기(處) 마음(心) 모으는 것을 불교에서는 염처 (念處)라고 불러왔습니다. 사염처(四念處) 수행은 남방불교에서 위파사나라고 부르는 깨달음의 주요 방편이지요.”

 

불교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법은 두 갈래가 있다는 것을 장 교수에게서 들었다. 인도에서 남방으로 간 갈래(소승불교)는 위파사나로 생각을 한 곳에 얽매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주는 방식의 명상이다. 대신 그 생각을 따라가면서 지금, 여기, 생각이 머문 곳을 끊임없이 각성하고 들여다본다. 아까의 건포도 명상은 위파사나에 가깝다. 중국을 거쳐 북방으로 와 우리나라에 들어온 갈래(대승불교)는 삼마타로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 다른 생각을 잘라버리는 방식이다. 간화선이 그렇고 염불이 그렇다. 위파사나는 혜(慧)라 하고, 삼마타는 정(淨)이라 하는데 불교학자들은 정혜쌍수(淨慧雙手)를 가장 바람직한 수행법으로 본다. 장교수의 MBSR 프로그램은 위파사나에 가깝지만 얼마간의 삼마타도 가미된 명상법이라 할 수 있다.

 

“장래희망? 해탈입니다”

MBSR 훈련 8주 과정을 학습하고 나면 몸과 마음에 엄청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MBSR 관련 논문은 수백편 넘게 발표되고 있다. 이 과정을 훈련하고 나면 몸과 마음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진다. 자신의 몸과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심신을 스스로 이완할 줄 알게 된다. 만성통증, 불안, 신경증, 우울증, 고혈압, 심장병, 편두통, 관절염, 암, 에이즈, 피부병의 징후가 눈에 띄게 경감되거나 치료되는 게 관찰된다. 면역기능이 증가해 평소에 감기 같은 감염성 질환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 바깥으로 떠도는 산만한 마음을 나 자신의 감각과 생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이런 효능이 생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MBSR은 막연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임상에서 도출된 여러 뇌 과학 실험결과가 명상의 효능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최근엔 자기공명 영상기록인 MRI가 개발되어 명상이나 이완 또는 일반적 휴식상태에서 일어나는 두뇌활동의 신비를 밝힐 수 있게 됐습니다. 명상하는 사람의 세포 속에서는 산화질소가 분출돼요. 그게 또렷하게 관찰됐어요. 산화질소는 명상하는 동안 일어나는 세타파와 관계있는 걸로 보입니다. 창의성이나 직관 또는 통찰에 연결돼 있고 기존 사고나 타성의 틀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벤슨의 2003년 연구지요.”

 

산화질소는 우리 몸속에서 거의 제한 없이 활동하는 기체로 온몸과 중추신경계를 흘러다닌다. 다니면서 기억과 학습을 증진시키고 도파민과 엔도르핀 같은 신경전달물질 방출을 촉진해 안정감을 높이고 최상의 신체적 쾌감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운동선수, 연주자, 작가들이 느끼는 절정감이 바로 산화질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체는 에스트로겐 투여효과를 높여 폐경기 우울증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며 전신의 혈류이동을 조정하고 뇌 부위의 혈행을 개선하고 혈관을 확장해 심장의 혈액 흐름을 개선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다. 안타깝게도 국내 의학계는 이런 명상요법을 환자치료에 도입하는 일에 무척 더디다. 올해부터 딱 한 곳, 가톨릭의대 안에 최초의 통합의학 교실이 만들어진다. 거기서 장 교수의 MBSR (마음챙김 명상을 바탕으로 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응용될 전망이다.

 

장 교수에겐 몇 해 전 새 아내와 딸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그의 아내 조미향 여사에게서 들은 얘기.

“나도 참 우스운 사람이죠. 처음 만났을 때 60이 다 돼 가는 사람에게 ‘장래희망이 뭐예요?’ 하고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진지하게 ‘해탈입니다’ 하는 거예요. 나도 상처를 가졌으니 만약 사람을 새로 만나면 세 가지 기준으로 고르리라 다짐하고 있었거든요. 첫째 형이상학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 둘째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오지는 않은 사람, 셋째 미간에서 힘이 나오는 게 느껴지는 사람. 그런데 저 사람을 만나니 그 세 가지가 완전히 딱 들어맞는 겁니다.”

 

해탈이 인생의 목적이다? 언제 그 목적이 확고해졌는지를 나는 안다. 장 교수와 길상사에 동행했던 나는 그가 슬쩍 미소 띤 얼굴로 아미타 부처 앞에 가부좌하고 앉은 모습을 봤다. 해탈…. 그게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가 시베리아에서 느꼈다던 아쉬움은 극복될 것이다. 더구나 그는 다른 사람에게 명상에 이르는 방법을 아주 친절하게 안내하는 길잡이 아닌가. 지금부터 나는 하루 한 번씩 건포도 명상에 준한 MBSR을 연습하겠다.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성성적적하게 깨어 있을 수 있는 훈련…. 언젠가 내 대뇌 세포에서도 산화질소가 퐁퐁 솟아나는 날이 오기를.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