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산의 기원
가장 사랑받는 산이자 가장 모르는 산, 2천만 년 지나면 다 깎여 사라질 수도
한반도는 그 자체가 자연사박물관이다. 좁은 국토이지만 원시생물만 살던 선캄브리아대부터 고생대와 중생대를 거쳐 가장 최근의 지질시대인 신생대 제4기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다양한 지질현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대륙이 충돌하고 세계를 흔든 화산이 폭발하며, 공룡이 노닐던 한반도 자연사에 대한 이해는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대한지질학회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가 어디서 왔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가장 깊고 오랜 궁금증을 풀어본다. 편집자.
“북한산이 언제 만들어졌죠?”
“아마 1983년인가….”
해마다 1천만 명 가까운 탐방객이 찾는 북한산이지만, 국립공원 지정 연도를 먼저 떠올린 공원 관계자처럼 북한산의 탄생에 대해 아는 이는 드물다.
지난달 28일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의 안내를 받아 조문섭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와 함께 북한산을 찾았다. 암석을 채취해 처음으로 정확한 생성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던 암벽과 바위가 새롭게 다가왔다. 얼룩덜룩한 무늬에 옅은 회색이나 분홍색을 띠는 화강암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입자가 평평해 거울처럼 반짝이는 것이 장석이고 검은 것은 운모, 그리고 가장 단단해 마지막까지 바위 표면에 꺼칠하게 남는 투명한 결정이 석영이다.
마그마 뚫고 나오면 용암, 땅밑에서 굳으면 화강암
화강암은 대표적인 화성암이다. 지구 깊숙한 곳에 있던 바위 녹은 물인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지표로 분출하면 용암이, 지하에서 굳으면 화강암이 된다.
그런데 같은 마그마가 굳어도 제주도의 용암은 검고, 화강암은 대체로 희다. 마치 막걸리를 걸러 투명한 소주를 만들 듯, 마그마에서 철 등 무거운 성분이 먼저 빠져나가고 알루미늄, 실리콘 등 가볍고 색깔 없는 성분이 남아 생긴 현상이다.
조 교수는 “이들 입자가 고르게 분포하는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그마가 지하의 고요한 상태에서 굳어 화강암을 형성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그마가 형성된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이번에 조문섭 교수가 측정한 결과 북한산 화강암은 약 1억7천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때 생성됐다. 당시 한반도의 땅속은 거대한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좌용주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유라시아 대륙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반도는 옛 태평양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간접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땅속의 온도가 상승해 암석이 광범하게 녹자 부력을 받아 지표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찬 지각물질에 열을 잃고 무게가 가벼워지자 지하 1만m쯤 되는 곳에서 마그마는 굳어 화강암이 됐다.
화강암 위 약 10㎞ 쌓여있던 암석 깎여나가면서 솟아올라
북한산을 이룬 화강암은 ‘서울 화강암체’로 불리며 북동~남서 방향으로 서울에서 의정부·포천까지 이어진다. 도봉산, 관악산, 수락산, 불암산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다.
이들 산에 둘러싸인 서울의 4대문 안과 성북·도봉·노원 구는 모두 화강암 암반 위에 세워졌다. 강남구를 비롯해 은평·마포·서대문 구는 12억~13억 년 전에 만들어진 변성암인 편마암 위에 서 있다. 서울의 오랜 터가 오히려 새 암반 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땅속 깊숙한 곳에서 생성된 화강암이 어떻게 지표에 나오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화강암 위 약 10㎞ 깊이로 쌓여있던 암석이 깎여나가면서 화강암이 솟아올랐다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믿기 힘들겠지만 작은 변화가 오랜 기간 쌓여 큰 변화를 내는 것이 지질학의 한 원리”라고 말했다. 1년에 0.1㎜씩 암석이 깎이더라도 1억 년이 지나면 10㎞가 된다.
북한산의 화강암 위에는 약 12억 년 전에 만들어진 편마암이란 변성암이 깔려 있었다. 이 암석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을 겪으며 깎여나갔다. 위에서 짓누르던 무게가 줄어들자 그 반작용으로 땅속의 화강암이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권성택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누르던 압력이 줄어 아주 천천히 융기가 일어났다는 것이지 히말라야나 알프스산맥처럼 단기간에 솟구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청계천 중랑천 등 서울 물길도 생겨나
지표에 노출된 화강암은 깊은 지하에서는 겪지 못한 환경에 부닥쳤다. 낮아진 압력은 말할 것도 없고, 결빙과 열사, 집요하게 파고드는 식물뿌리의 침입 등은 단단한 암석인 화강암을 서서히 부서뜨렸다.
박경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는 “백운대 정상 부근 등 화강암 바위가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것은 깊은 땅속에서 생성된 화강암이 압력감소 등으로 침식되는 특징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바위봉우리는 2억 년 가까이 이런 풍화와 침식을 견뎌낸 북한산의 고갱이이다. 사람 얼굴이나 오리 모양의 바위도 언뜻 위에서 굴러떨어진 듯이 보이지만, 실은 주변이 깎여나간 자연의 조각품인 셈이다.
서울의 물길을 정한 것도 화강암이다. 지층이 어긋나는 단층을 따라 바위가 쉽게 부서지는데, 그곳에 물길이 난 것이 청계천과 중랑천이다.
북한산 생성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도 있다. 무엇보다 지하의 북한산을 두텁게 덮었던 막대한 양의 지층이 어디로 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깎여나간 모래와 흙은 수십 번은 바뀌었을 강을 따라 어딘가로 흘러갔을 것이다. 조산운동으로 생긴 히말라야 산맥에서 침식된 암석과 흙은 벵골 만에서 확인된 바 있다.
설악산 대청봉 꼭대기에는 화강암 위를 덮었던 오래된 편마암의 일부가 미처 깎여나가지 않고 남아있어, 북한산의 과거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풀리지않은 수수께끼 많고 그 미래도 미지수
북한산의 미래도 미지수이다. 단순히 계산하면 1억 7천만 년 동안 1만m가 깎여나갔으니, 높이가 1천m도 안 되는 북한산은 2천만 년이면 사라질 것이다.
권성택 교수는 “지질작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며 “지각은 융기하다가도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에 침식만으로 짐작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억 7천만 년 동안의 침식 높이도 평균일 뿐 지각이 오르내린 것까지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분명한 것도 있다. 우리는 북한산이 해마다 몇 ㎜씩 깎여나가는지, 또 북한산의 뿌리인 화강암체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부족 때문”이라고 아쉬워했다.
북한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산이지만, 동시에 가장 잘 모르는 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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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2억6천만년 전 남반구서 왔다
<2> 이동과 충돌
호주 인근 적도 땅들 1억4천만 년 동안 북행, 1300만년 뒤 동해 없어지고 5천만년 후 사막
독일 과학자이자 모험가인 알프레드 베게너(1880~1930)는 세계지도를 보다가 남아메리카 동안과 아프리카 서안이 조각그림 맞추기처럼 꼭 들어맞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두 대륙 양안에 유사한 지층과 화석이 연결돼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고, 1912년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란 책에서 세계의 대륙이 한때 ‘판게아’라는 초대륙으로 뭉쳐 있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대륙이 어떻게 이동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베게너는 비웃음거리가 됐고, 50살의 나이로 그린랜드 탐험 중 실종됐다. 그의 이론은 오늘날 지구의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으로 평가받는 판구조론이 1960년 등장하면서 옳았음이 밝혀졌다.
인도대륙은 지금도 연간 5㎝ 속도로 북쪽으로 치받기
판구조론은 지구 내부의 맨틀 대류로 해저가 확장되고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가라앉음으로써 대륙이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그 증거가 히말라야산맥에서 확인된다.
2억 년 전 지구에는 북반구의 로라시아대륙과 남반구의 곤드와나대륙이 합쳐진 초대륙 판게아가 유일한 대륙이었다. 곤드와나대륙에서 아프리카, 남미, 남극, 호주와 붙어있던 인도는 8000만 년 전 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연간 20㎝라는 ‘빠른’ 속도로 북상을 시작해, 5000만 년 전 아시아와 충돌했다. 두 땅덩어리의 충돌부를 따라 지층이 구겨지고 솟아올라 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이 만들어졌다. 인도대륙은 현재도 연간 4~5㎝ 속도로 북상 중이며 끊임없이 이 일대의 지각변형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8만 7천여명의 인명을 순식간에 앗아간 규모 7.9의 쓰촨대지진도 근본 원인도 이 충돌 때문이었다. 인도와 아시아의 충돌이 히말라야를 낳은 것처럼 북미와 유럽의 충돌한 흔적은 애팔래치아산맥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의 충돌 자취는 알프스산맥으로 솟아있다.
3개 땅덩어리와 2개 습곡대가 한반도 구성
한반도는 인도보다 훨씬 전 벌어진 대륙이동과 충돌의 산물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한반도는 단일한 땅덩어리가 아니다. 낭림육괴, 경기육괴, 영남육괴라는 3개의 선캄브리아(5억 4천만년 이전) 시대 땅덩어리와 그 사이 낀 임진강대와 옥천대라는 2개의 습곡대로 이뤄져 있다.<그림 ‘한반도의 지체구조’ 참조> 이 두 습곡대는 약 2억년 전인 중생대 초에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오랜 땅덩어리는 어디서 왔을까. 중생대에 한반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판구조론이 이런 의문을 풀 단서를 제공했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기반정보연구부 박사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형성은 곤드와나대륙이 분열되면서 시작된 세계적인 격변의 일부”라고 말했다. 고 지자기 연구 결과 고생대 초(약 5억 년 전) 동아시아 땅덩어리들은 남반구에 위치한 곤드와나 대륙의 북쪽에 속해 있었으며, 후에 한반도를 이루게 될 땅조각들은 남반구 저위도에서 적도 사이에서 서로 떨어져 있었다. 이웃엔 인도, 호주, 인도차이나, 아프리카 대륙이 있었다.
암석에 새겨진 남반구의 기억…생물학적 증거도 뚜렷
한반도가 한때 남반구와 적도 근처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 단서는 암석에 남아있는 고 지자기이다. 고 지자기란 녹은 암석이 굳기 직전 당시의 지구 자기 방향을 기억한 것이다. 지자기의 방향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어떤 암석이 간직한 고 지자기를 알면, 그 암석이 언제 어떤 위도에서 처음으로 굳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생대 때 한반도는 남반구에 위치한 곤드와나대륙의 북쪽에 자리잡았다. 고생대 후기에 들어 맨틀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열덩어리가 올라오면서, 곤드와나대륙이 하나씩 붕괴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약 2억 6000만 년 전 곤드와나대륙 북쪽 가장자리에서 두개의 작은 땅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가 북쪽으로 먼 여행에 나섰다. 이 땅덩어리들은 1억 8천만년 전 함께 부닥치고 회전하고 봉합함으로써 중한지괴(한·중·일의 주요부를 구성하는 땅덩어리)를 이루게 된다. 중한지괴는 계속 북상하다가 마침내 중생대 백악기 초인 1억 2000만 년 전 남하하던 로라시아대륙의 시베리아지괴와 충돌함으로써, 오늘날 유라시아 모습이 완성되었다.<그림 ‘한반도 형성과정’ 참조>
생물학적 증거도 있다. 고생대의 표준화석인 삼엽충은 주로 아열대의 따뜻한 바다에 살았다.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강원도 태백·영월 지역의 삼엽충 화석을 북중국·오스트레일리아 화석과 비교한 결과 우리 것이 중국과 거의 같고 오스트레일리아와 유사함을 밝혔다. 최 교수는 “태백·영월이 당시 곤드와나 대륙의 가장자리에서 호주와 이웃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억년 전 한반도 원초적 ‘뿌리’ 찾을 단서
한반도가 단일한 땅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은 한반도 지체구조 연구의 중요한 결실이자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충돌설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중국대륙이 남중국과 남중국 지괴가 충돌해 형성된 것처럼, 한반도도 대륙의 충돌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윤수 박사는 “원래 북중국지괴에 있던 영남육괴는 남중국지괴에 있던 경기육괴와 충돌하면서 내려와 붙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륙충돌대가 한반도의 임진강대로 연장된다는 주장은 아직 다이아몬드나 코에사이트 등 대륙충돌의 더 결정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김정환 서울대 명예교수(지질학)는 “한반도가 남반구에서 이동해 왔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충돌설을 두고는 논란이 많다”며 “초고압광물 한 두 개 발견이 아닌 충돌선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기반암은 대개 선캄브리아대(5억4000억 년~46억 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5억 년보다 더 먼 과거에 한반도는 어디에 있었을까. 오랜 기간 변성을 겪고 유일한 단서인 고 지자기마저 흐릿해진 당시를 되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중생대 동안 극심한 조산운동이 일어난 한반도에서 선캄브리아대의 암석에서 잔류자화를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졌다.
최근 이윤수 박사는 수년간의 연구끝에 서해 백령·소청도의 약 8억년 된 암석에서 1차 고 지자기 방향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10억 년에서 8억 년 전 사이 지구상에는 판게아 이전의 초대륙인 로디니아가 존해했음에 비추어 수년 안에 한반도의 고지리 복원이 10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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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소 무늬 25억살 대이작도, 한반도 땅 원형
<3> 한반도의 속살
수많은 지각변화 흔적 오롯, 지각진화사의 ‘표본’, 중국 태산에 똑같은 기반암, 북한서도 동갑 암석
한반도는 오랜 땅덩어리다. 아무렇게나 밟히는 암석도 20억 년 가까운 풍상을 견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을 보려면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으로 가야 한다.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위치한 대이작도의 암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25억살의 나이를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4일 대이작도 남쪽 해안인 둘얼개를 찾았다. 바닷가에 드러난 암반과 갯바위의 얼룩무늬가 눈길을 끌었다. 적황색 암반에 검은색 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토종소인 칡소의 무늬가 떠올랐다.
고도의 변성작용 받은 혼성암의 형태
“고도의 변성작용을 받은 증거인 혼성암(미그마타이트)의 특징적 형태”라고 동행한 이유영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연구원이 말했다.
부드러운 점토를 서서히 가열하면 흙이 녹지 않고도 단단한 도자기가 되듯이, 땅속 깊숙이 들어간 암석은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구성광물과 조직이 변해 변성암이 된다.
높은 변성을 겪은 편마암은 밝은 광물과 어두운 광물이 분리돼 띠모양을 이룬다. 대이작도의 혼성암은 편마암이 더욱 변성을 받아 암석이 내부에서 녹기 시작해 작은 마그마 맥을 이룬 상태에서 굳은 것이다. 변성암과 화성암이 섞인 셈이다.
대이작도의 암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검은 띠의 윤곽이 흐릿하거나 줄무늬의 폭이 들쭉날쭉하고 심지어 줄무늬가 중간중간에 끊긴 모습도 나타난다.
고온상태에서 시럽처럼 껄쭉하게 된 암석의 성분이 분리되고 늘어나거나 끊기는 변형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기반암의 생성연대는 약 19억 년 전이다. 당시 한반도 전역에 큰 지각변동이 있었고, 그때 녹았다 굳은 지르콘 결정이 이 연대를 가리킨다. 지리산, 청계산 등 경기육괴와 영남육괴에는 이때의 암석이 많다.
대이작도 이전에 남한에서 가장 오랜 암석은 강원도 화천에서 발견된 19억 년 된 백립암이었다.
흔히 한반도는 30억 년 역사를 지닌다고 말한다. 약 30억 년 전 시생대 지각물질이 결정형태로 검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흔적일뿐 구체적 형체를 지닌 암석은 아니다.
대륙충돌 가설과 대이작도 ‘흔적’은 충돌할까?
낚시를 하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해 연대측정한 결과를 학계에 보고한 조문섭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대이작도 혼성암은 남한에서 가장 오랜 암석이란 사실을 넘어 한반도 지각진화사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산둥반도 태산에 가면 대이작도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기반암을 볼 수 있다”며 “25억 년의 연대를 지닌 편마암과 화강암은 북중국지괴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북중국지괴에 속하는 북한에서도 최근 25억 년 된 암석이 발견됐다.
25억 년 전은 시생대로 대기속에 막 산소가 늘어난 상태에서 단세포 생물만이 살던 시대였다.
대륙충돌로 한반도가 형성됐다는 이론(<한겨레> 5월27일치 ‘한반도의 이동과 충돌’)에서는 경기육괴가 북중국이 아닌 남중국지괴에 속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대이작도는 충돌가설과 충돌할까.
조 교수는 “지층이 윤활작용을 하는 암염이나 탄산염 층을 미끄러져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실이 알프스산맥에서 드러나 있다”며 “실제 대륙이 충돌한 지점과 경계부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이작도는 경기육괴와 태생이 다를지 모른다. 조 교수는 임진강 단층대를 남쪽으로 연장해 경기육괴를 둘로 나누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땅인 대이작도는 수많은 지각변화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25억 1천만 년 전 변성을 받아 혼성암이 형성된 뒤 17억~23억 년 사이에는 현재의 일본열도처럼 대륙지각을 해양판이 파고드는 지각현상이 인근에서 벌어졌다. 중생대인 2억 3천만년 전에는 한반도의 다른 곳처럼 대규모 화성활동으로 화강암이 뚫고 들어온 암맥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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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년 건너뛴 김삿갓계곡은 '지층 타임머신'
<4> 시간이 바뀐곳
5억년 전 장산규암과 20억년 전 변성암 맞닿아, 단양 다리안폭포에서도 똑같은 시간여행 경험
김삿갓 유적지로 유명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는 일반인이 모르는 또하나의 명물이 숨겨져 있다.
남한강 지류인 미포천을 따라 오르다 와석1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깊은 계곡과 절벽, 백사장이 어우러진 곳이 나온다. 여름철 피서객이 즐겨찾는 김삿갓 계곡이다. 이곳에선 김삿갓의 덧없는 발걸음처럼 15억 년이란 세월을 훌쩍 건너뛴 두 지층이 만나는 모습이 펼쳐져 있다.
지난 16일 현장을 둘러본 원로 지질학자인 진명식·최현일 박사는 “시대가 다른 지층 두 개가 여기처럼 경계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곳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감탄했다.
무생물 세계와 생물 세계의 경계
하천변에 드러난 절벽 가운데에는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기운 경계면이 한눈에 드러난다. 윗 지층은 약 5억 년 전인 고생대 초기의 변성퇴적암인 장산규암이고 아래는 약 20억 년 전 선캄브리아시대의 편암과 화강편마암이다.
고생대는 각종 동·식물 등 생명체가 지구의 주인이 된 시기인 반면 선캄브리아시대의 지구엔 고작 몇 종의 원시적인 단세포 생물만이 있었다. 이 부정합면을 경계로 세상의 주인은 무생물에서 생물로 바뀐다.
옅은 붉은빛을 띠는 장산규암층을 더듬어 잿빛 편암과 암갈색 화강편마암층으로 내려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듯 갑자기 생물이 들끓던 세상에서 암석과 바다만이 보이던 초창기 지구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15억 년의 간격을 둔 두 지층 사이에 있던 지층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수수께끼를 풀 단서는 바로 현장의 암석에 남아있다.
진명식 제주화산연구소장은 “경계면 아래 선캄브리아 기반암은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같은 층상구조를 보이는 편암과 이 암석을 관입했던 화강암이 있다”며 “이는 20㎞ 이하 깊은 땅속에서 퇴적암과 화강암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변성암이 되면서 변성구조인 ‘편리’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반암은 고생대 퇴적층이 쌓이기까지 15억 년 동안 땅위로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고 지각변동으로 구겨지거나 구워지는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진 박사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고생대 퇴적층이 쌓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지표에 노출돼 온갖 풍상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라며 “이때 깎여져 나간 자갈, 모래, 진흙은 이후 중생대와 신생대 암석의 원료로 재활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생대 해변 백사장이 시간이동 단서
약 5억년 전 영월의 김삿갓 계곡은 아열대 바닷가였다. 육지에서 쓸려온 모래가 바닷가에 쌓였다. 더 먼 바다엔 입자가 가는 펄이 퇴적됐고, 여기에 탄산칼슘 껍질을 지닌 생물이 다수 서식하기도 했다.
대륙의 이합집산에 따라 바다의 침입과 후퇴가 되풀이됐고, 마침내 이 일대는 땅속 10㎞ 깊이에 묻혔다. 모래는 장산규암층이 됐고, 펄은 묘봉슬레이트층으로, 해양생물이 많던 곳에는 두터운 석회암층이 생겼다.
최현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박사는 “이때 해안습지와 평야에 쌓인 식물이 석탄층을 이뤘고 얕은 바다엔 석회암이 쌓여 우리나라 산업화에 필요한 무연탄과 시멘트를 선물로 남겼다”고 말했다.
기반암과 맞닿은 장산규암층의 맨아래에는 자갈이 박혀 있었다. 최 박사는 “자갈이 든 규암층은 풍화된 기반암 위에 처음 모래가 퇴적된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시간을 건너뛴 부정합의 증거”라고 설명했다.
고생대 전기 지층은 남한의 강원도 삼척, 영월, 정선 등 태백산 지역과 북한 평안북도와 황해도 일대에도 넓게 분포한다. 이 시대 해안가 모래층이었던 장산규암은 두께 10~200m 깊이로 고생대 지층에서 가늘고 긴 띠 형태로 나타난다. 해안선의 길이가 무한하듯이 비록 두께는 얇아도 장산규암층의 길이는 수백㎞에 이른다. 그러나 경계면을 드러내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소백산자락인 충북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 다리안계곡에도 장산규암과 화강편마암 기반암의 경계면이 나타난다.
단양읍내에서 고수동굴과 다리안관광지를 거쳐 소백산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고생대에서 선캄브리아시대로 20억년 가까운 시간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지층이 굴곡져 산으로 올라갈수록 더 오래된 지층이 보인다.
다리안관광지의 소백산교 아래에 드러난 암반은 5억 년 전 장산규암이다. 그러나 여기서 10여m쯤 상류로 올라가면 20억 년 전 선캄브리아시대의 변성암층이 나타난다. 그 사이 어딘가에 부정합이 있다는 얘기다. 몇 초만에 15억 년을 건너뛴다면, 타임머신을 탄 것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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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열리며 한반도 산맥 솟았다
<5> 백두대간의 탄생
2300만년 전 지각변동 일본 떨어져 나가
동해 ‘설악산 화강암’은 지각 균열 흔적
강원도 강릉의 정동진 해안은 해돋이 관광객뿐 아니라 지형학자에게도 명소이다. 한반도의 땅덩어리가 솟아오른 가장 도드라진 증거가 여기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모래시계공원이 있는 해변에서 조각공원 쪽을 바라보면, 언덕 위에 올라앉은 배 모양의 리조트 건물이 이채롭다. 그러나 60만~70만 전 이 ‘배’가 있는 평평한 언덕은 실제로 파도가 치는 해수면이었다.
한반도, 10만년에 10m꼴 융기
장호 전북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썬크루즈 리조트가 있는 해발 60~70m의 해안단구는 정동진에서 가장 넓은 단구”라며 “정동진에는 해발 160m까지 약 10m 높이마다 단구 면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땅덩어리는 1000년에 0.1m, 곧 10만 년에 10m꼴로 융기하고 있다”며 “정동진은 그런 융기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증거”라고 설명했다.
해안단구는 파도에 깎여 평평해진 해안이 지반융기와 함께 솟아올라 형성된다. 정동진에서는 심곡리 곰두리 단구에서 바위에 구멍을 파는 조개화석이 발견됐는가 하면 해발 160m 단구에서 암반이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자갈층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반도 융기의 또 다른 주요 증거는 산꼭대기의 평평한 땅을 가리키는 고위평탄면이다. 해발 1300m인 대관령 삼양목장과 800m인 횡성휴게소, 500m인 남한산성을 이으면 한 직선상에 놓인다.
최성길 공주대 사범대학장(지형학)은 “이들 세 지점은 과거에 하나의 평탄면, 곧 해수면을 이뤘다”며 “신생대 말 지반운동을 받아 동해안 쪽이 서해안 쪽보다 더 많이 솟아올라 현재의 ‘동고 서저’ 지형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한반도가 지역별로 다양한 융기를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박수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수치고도모델(DEM)로 한반도의 지형을 분석해 북부·중부·남부·동해안 등 4개 지반운동구로 나눴다. 융기의 중심은 개마고원과 태백산맥, 덕유산·지리산 축이었다.
박 교수는 “신생대 제3기 단층운동으로 태백산맥과 개마고원을 중심으로 북서쪽으로 기운 한반도 지형의 원형이 형성됐고, 이후엔 산지가 침식되면서 줄어든 무게를 보상하기 위한 지각균형적인 점진적 융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도 “한때 서·남해안의 복잡한 해안선을 침강으로 설명한 적이 있었지만 이곳에서도 해안단구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융기가 분명해졌다”며 “약 200만 년 전 이후에는 동·서해안의 융기속도가 같아졌다”고 말했다.
동해 바닥에서 발견된 ‘육지 조각’
그렇다면, 한반도에 산맥이 솟고 지형이 동쪽으로 기울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질학자들은 그 힘이 신생대 제3기 동안 동해를 열고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했다고 믿는다.
먼저, 동해와 태백산맥의 형성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음을 보여준 주목할 연구결과가 나왔다. 민경원 플로리다대 교수와 조문섭 서울대 교수 등은 지난해 미국지구물리학연맹(AGU)에 낸 논문에서 대관령 화강암 내 인회석의 형성시기를, 동해 형성 시점과 같은 약 2300만 년 전으로 계산했다. 조 교수는 “(이로써) 동해가 처음 열리면서 경동 요곡작용에 의해 태백산맥이 만들어졌다는 기존의 가설이 지질학적으로 뒷받침된다”고 밝혔다.
동해는 서·남해와 출생부터 다르다. 서·남해가 간빙기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물에 잠긴 육지라면, 동해는 지각이 깊게 갈라지고 그 틈에 해양지각이 형성돼 만들어진 바다이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분리되면서 떨어져 나간 육지 조각은 지각변동의 흔적으로 동해에 널려있다. 울릉도 북쪽에 위치한 한국대지는 그런 예이다. 폭 250㎞, 길이 200㎞의 넓은 해저 대지인 이곳의 수심은 800~2800m로 주변보다 훨씬 얕다.
한국해양연구원이 한국대지에서 굴착한 암석은 북한산이나 설악산을 이루는 암석과 비슷한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꼴 확장설 대 이단계 확장설 논란
동해의 형성은 논쟁을 부르는 주제다. 대륙충돌과 해양판 확장이 얽힌 복잡한 지구조 사건이 동해를 둘러싸고 벌어졌기 때문에 명쾌한 해명이 쉽지 않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연구자들은 ‘부채꼴 확장설’을 발표했다. 약 1500만 년 전 일본 서남부가 대한해협을 축으로 시계방향으로 54도 회전하고, 동북부는 1100만~2100만 년 사이 반시계방향으로 50도 회전해 오늘날의 휘어진 일본열도와 동해를 형성했다는 이론이다.
김인수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이 이론은 선풍을 일으켰지만 일본열도를 회전 이전으로 복원했을 때 동해에 가라앉은 대륙지각이 들어설 공간이 없고, 1500만 년 이전의 화산암이 동해 주변에서 발견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를 지닌다”고 말했다.
‘2단계 확장설’은 부채꼴 확장 이전에 일본 섬들이 남동쪽으로 평행이동했다고 본다.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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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가 열린 원동력이 무언지도 논란거리다. ‘당겨열림설’은 5천만 년 전 인도대륙과 유라시아대륙의 충돌 여파로 동해가 열렸다고 본다. 김인수 교수는 “고무지우개를 세로로 세워 위에서 누르면 마치 양쪽에서 잡아당기듯 좌우로 벌어지는 힘이 작용한다”며 “그 힘 때문에 바이칼호, 남중국해와 함께 동해도 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해안에 탄생의 엔진이 들어있었다는 이론도 만만치 않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해양판인 태평양판이 맨틀로 파고들어 마그마를 형성하는 곳에 위치한 동해 지하는 현재도 열류량이 높다”며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의 확장을 동해 생성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 뒤로 물러나는 폭포
한반도 융기가 후퇴 가속시켜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강원도 삼척시 통리 협곡에 있는 미인 폭포는 대표적인 예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층이 고생대 석탄지대로 둘러싸여 있는 통리 협곡은, 상대적으로 무른 퇴적층이 300m 가까이 패여 붉은 퇴적암반이 드러난 깊은 계곡이 됐다.
협곡을 흐르는 오십천은 동해가 열리고 태백산맥이 솟으면서 물살이 빨라져 침식을 가속했다. 상류로 향하는 이 침식의 선단이 바로 미인 폭포이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재인 폭포도 물러나는 폭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지장봉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한탄강의 현무암 대지를 깎아내, 현재는 강변에서 북쪽으로 350m가량 물러나 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빠른 침식속도로도 유명하다. 이 폭포는 지난 1만 2000년 동안 11.4㎞를 후퇴해, 직선이던 폭포 선단이 말발굽 모양으로 바뀌었다. 연간 1m의 후퇴속도이다. 물흐름을 바꾸고 침식억제 공사를 통해 현재 침식속도는 연간 1㎝ 수준으로 줄었다.
울릉~독도, 수심 2000m 바다산맥 ‘진화 실험실’
<6> 한국의 갈라파고스
독도가 340만 살 앞서 화산으로 태어난 ‘형님’
독특한 생물과 해산 진화 과정 고스란히 보존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독도를 바다밑에서 보았다면 이 노래 가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다른 해저 산(해산)들과 옹기종기 모여 해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동일한 탄생기원을 지닌 ‘친 형제들’일 가능성이 높다.
해저 지형조사 결과 울릉도는 수심 2000m의 바다에서 수면 위로 1000m 가까이 솟은 총높이 3000m 규모의 화산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독도도 해수면 밑에 높이 2000m, 직경 20~25㎞인 한라산 크기의 화산체를 숨기고 있다. 독도의 동도와 서도는 이 거대한 화산의 평평한 정상부에, 마치 산꼭대기 텔레비전 중계탑처럼 뾰족 솟아 있다.
하와이나 갈라파고스 군도와 유사한 탄생설
독도 동쪽 약 15㎞와 55㎞ 떨어진 곳에는 독도해산과 규모가 비슷한 심흥택해산과 이사부해산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거쳐 이사부해산까지 동해 바다에 띠처럼 이어진 섬과 해산은 하와이나 갈라파고스 군도처럼 맨틀상승류와 열점에 의해 탄생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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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개의 작은 섬들이 사슬을 이루고 있는 하와이 군도는 특이하게도 북서쪽으로 갈수록 섬의 나이가 많아진다. 남동쪽 끝인 큰섬에서는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활동이 아직도 활발하다. 지난 500만년 동안 화산활동을 하던 북서쪽의 섬들은 하나씩 불을 끄고 파도에 깎이며 물속으로 잠겨들고 있다. 큰섬 남동쪽 바다밑에선 활화산 하나가 언젠가 수면 위 섬으로 떠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맨틀과 핵의 경계인 약 3000㎞ 지하에서 주변보다 뜨거운 맨틀이 지표면으로 솟아올라 지각과 만나는 곳이 열점이다. 고정된 열점이 서서히 움직이는 지각판을 달궈 화산활동이 일어나면서 이사부해산부터 심흥택해산, 독도, 울릉도 등 일련의 해산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독도의 형성을 연구해온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해산의 나이가 많아진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가 2005년 수행한 ‘독도 해양생태계 조사연구’ 보고서에서도 “독도 주변의 지자기이상을 조사한 결과 독도해산이 동쪽에 있는 두 개의 해산보다 뒤에 분출했음을 알 수 있다”며 “해산의 배열 모습과 지형적 특징이 열점 개념의 화산체임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해저 굴착을 통해 해산에서 직접 채취한 암석의 연대와 지자기 등을 측정해야만 동해 해산 출생의 기원을 정확히 밝힐 수 있다. 수심 2000m가 넘는 심해에서 이런 작업을 하기는 어렵다. 유일하게 암석이 수면 위로 드러난 독도와 울릉도에서 단서를 찾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무너져내리고 있는 독도
독도는 460만 년 전 수중화산으로 탄생했다. 조용히 용암을 분출하던 초기 독도는 수면 위로 성장하면서 격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250만 년 전 화산활동을 멈췄을 때 독도는 지금보다 수십배 큰 화산체였다.
응회암과 각력암이 미처 굳지 않은데다 단층과 주장절리를 통한 침식 때문에 독도는 빠르게 무너져내리고 있다. 현재의 독도는 화산 분화구 바깥 테두리 가운데 남서쪽 일부가 남아있는 것이다. 화구는 독도 북동쪽으로 수백m 떨어진 바다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손 교수는 “독도가 처음 울릉도 크기였다면 지난 250만 년 동안 전체의 99%가 깎여나간 셈”이라며 “지질학적으로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독도가 수천~수만년 안에 사라질 걱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울릉도는 약 14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 5단계에 걸쳐 화산활동을 거치며 탄생한 섬이다. 마지막 화산활동은 9300~6300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그마가 빠져나간 화산 윗부분의 빈 공간이 무너져 내리면서 나리분지가 생겼고, 분지 서쪽엔 또다른 분화구인 알봉이 있어 이중화산을 이루고 있다.
울릉도는 독도가 화산활동을 멈춘 지 100만년 뒤에야 분화를 시작했지만 주요 암석이 알칼리 계열 조면암이고 화학적 구성도 매우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대륙붕의 연장인 오키섬과는 탄생 과정부터 전혀 달라
이종익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 박사는 논문을 통해 “독도와 울릉도의 화산활동이 같은 맨틀 상승류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화산활동의 시차는 맨틀상승류의 주기성과 지각판의 이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울릉도의 마지막 화산활동기에 비추어 현재 열점의 위치는 울릉도 화산체 아래에 존재하거나 그 위치에서 소멸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박사는 열점 기원설의 한계로 해저 화산체에 대한 절대연령 측정자료가 없고 판 이동을 깔끔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점을 들었다.
김창환 한국해양연구원 독도전문연구센터 박사도 “지각을 남북으로 당기는 힘에 의해 동해가 탄생했고, 이 힘은 이후 동서방향의 압축력으로 바뀌어 독도, 울릉도 등 해산을 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지각판이 이동하기보다는 해저지각이 갈라진 틈에 순차적으로 화산활동이 벌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독도의 형성과정 연구는 진행중이지만 독도가 일본 오키섬과 생성원인이 전혀 다르다는 성과를 거뒀다. 독도화산체는 일련의 열점활동 결과여서 일본 대륙붕의 연장인 오키섬과는 탄생 과정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경북도는 울릉도·독도의 이런 지질학적 가치를 살려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책임자인 장윤득 경북대 지질학과 교수는 “독특한 생물진화가 일어나는 울릉도와 해산의 진화과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독도는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보전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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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어머니요 불은 아버지인 180만 살 제주
<7> 180만년 동안의 화산분출
얕은 바다서 치솟아 한라산과 360개 오름 탄생
일출봉엔 속살 고스란…최고 걸작은 용암동굴
제주도 서쪽 끝인 한경면 고산리 해안에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장관이 있다. 층을 이뤄 쌓인 화산재를 크고 작은 암석들이 관통한 모습이 절벽 면 가득히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화산폭발로 뿜어져 나온 뜨거운 가스가 화산 기슭으로 소용돌이치며 밀려 내려와 물결무늬의 지층을 쌓았고, 그 위로 암석조각이 비 오듯 쏟아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수월봉 화산기원 퇴적층은 외국 화산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적 화산섬
북서쪽의 한림읍 비양도 해변에는 거대한 화산탄이 널려있다. 빠른 속도로 분화구 꼭대기로 상승한 기포가 폭발하면서 큰 마그마 덩어리를 공중에 내던졌다. 마그마는 공중에서 회전하면서 고구마 형태로 굳어 땅에 떨어졌다. 이곳에는 길이 4m, 무게 약 10t의 화산탄도 있어 지척에서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 화산섬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물의 섬’이기도 하다.
세계자연유산을 관리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전문가인 전용문 박사는 “제주도를 탄생시킨 절반이 불이라면 나머지 반은 물”이라고 말했다.
성산 일출봉은 물과 불의 대표적인 합작품이다. 약 5천 년 전 얕은 바다 밑에서 화산분출이 시작됐다. 뜨거운 용암이 찬 바닷물과 만나자, 용암은 급격히 식고 물은 끓어오르는 격렬한 반응과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났다. 뜨거운 유리잔에 찬물을 부었을 때처럼 마그마는 유리조각 알갱이로 깨져 튀어 올랐다.
일출봉은 경사가 30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의 화산으로 유리질 화산재가 사태를 일으키고 쌓인 과정이 절벽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일출봉을 제대로 보려면 땀흘리며 분화구에 오를 게 아니라 해안가 절벽으로 가야 한다.
일출봉 화산체의 대부분은 침식돼 사라지고 정상부와 사면만 남았다. 그 덕택에 화산의 탄생과 형성과정을 담은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화산으로 꼽힌다.
서귀포 천지연폭포 서쪽 해안엔 ‘탄생의 비밀’
제주도 자체가 물에서 태어났다. 신생대 후기인 약 18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됐다. 크고 작은 수많은 화산이 때로는 폭발과 함께 격렬하게, 때로는 느릿느릿 용암 분출을 이어갔다. 80여 차례의 화산 분출로 오늘날의 한라산과 360여 개의 오름이 형성됐다.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서쪽 해안에서 제주도 탄생의 증거를 볼 수 있다. 어딜 가나 검은 용암으로 뒤덮여 있는 제주이지만, 대형 가리비를 포함해 수많은 바다생물의 화석이 들어있는 퇴적층인 서귀포 층이 절벽에 드러나 있다. 이 지층은 조가비와 함께 첫 화산폭발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다.
윤석훈 제주대 지구해양과학과 교수는 “서귀포 층에 들어있는 화산암 조각은 용암이 흐른 형태가 아니라 얕은 물에서 폭발한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어서 제주도가 수중분출한 화산으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서귀포 층은 제주도를 세계의 다른 화산과 구별해 주는 구실을 한다.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제주도가 겉모습은 하와이나 인도네시아 등 해양성 화산과 비슷하지만 내부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근본원인은 얕은 바다에서 탄생한 대륙붕 형 화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를 덮고 있는 평균 70m 깊이의 용암을 모두 걷어내면, 제주도 탄생 당시 활동하던 수중화산 150여 개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송악산, 수월봉, 당산봉, 일출봉, 용머리 등이 물과 불의 격렬한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수성화산이지만, 대부분의 오름은 물 없이 태어났다.
용암은 까칠하거나 또는 미끈한 두 얼굴
성산읍의 섭지코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마그마 속 휘발성분은, 마치 탄산음료 속 이산화탄소 거품처럼 빠른 속도로 상승해 압력이 낮아지면 폭발적으로 분출한다. 불길이 500m 상공까지 치솟은 폭발과 함께 화산재는 멀리, 화산탄이나 부석 같은 굵은 알갱이는 분화구 주변에 쌓였다.
섭지코지 등대가 있는 봉우리는 거대한 분화구의 가장자리가 침식을 견디고 남은 부분이다. 화산의 중심 분출통로의 자취가 바로 바닷가에 서 있는 선돌바위이다.
제주의 용암은 다 같아 보이지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까칠하거나 미끈한 두 얼굴이 있다. 하와이 사람들의 말을 따 처음 것을 ‘아아 용암’, 나중 것을 ‘파호이호이 용암’이라고 부른다.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점성이 높은 아아 용암은 천천히 흐르는 동안 굳은 표면이 쉽게 깨져, 걷기 피곤한 거친 암석층을 이룬다. 또 표면과 바닥이 굳어 용암통로를 만들기도 하는데, 제주시 해안의 용두암은 바다 쪽으로 향하던 용암통로의 일부가 판자 모양으로 남은 것이다. 아아 용암이 물 등을 만나 갑자기 식으면, 논바닥이 갈라지는 것처럼 5~6각형으로 갈라져 대포동 해안에서 보는 주상절리를 형성한다.
온도가 높고 점성이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은 제주도에서 ‘빌레’라고 부르는 넓고 평탄한 지형을 만든다. 풍력 발전기가 나란히 서 있는 행원리 바닷가에 마치 아스팔트 포장을 해놓은 것처럼 검은 용암이 펼쳐진 곳이 바로 빌레이다. 자세히 보면, 굳은 표면 밑에서 용암이 밀어올려 표면이 빵 껍질처럼 부풀어 오르거나 식은 팥죽의 주름처럼 밧줄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용암이 굳은 표면 틈으로 삐져나와 짜놓은 치약이나 코끼리 발톱 모양으로 굳은 것도 있다.
화산동굴이면서도 석회동굴과 같은 종유관, 석화 등 독특
파호이호이 용암이 만든 걸작이 용암동굴이다. 흐르던 용암 표면이 굳고, 공급되던 용암의 양이 줄어 생긴 공간은 동굴이 된다.
거문오름에서 10㎞ 이상 흘러나온 용암이 만장굴, 벵뒤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동굴 등 세계적 가치를 지닌 용암동굴계를 형성했다.
이광춘 상지대 교수(지질학)는 “10만~30만 년 된 오랜 화산동굴이면서도 내부가 훼손되지 않았고 규모도 커 보전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특히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조개껍데기 성분이 많은 지표의 모래가 지표의 빈틈이나 나무뿌리를 타고 동굴에 스며들어 화산동굴이면서도 석회동굴과 같은 종유관, 동굴진주, 석화 등을 생성시켜 세계적 독특함이 선정기준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기여했다.
그렇다면 200만년 가까이 제주도에 수많은 화산을 분출시킨 열원은 뭘까. 그동안 학계에선 하와이를 형성시킨 것과 같은 열점을 원천으로 설명했다. 맨틀 깊숙한 곳에서 대류현상에 따라 마그마가 상승해 지표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열점보다는 더 얕은 곳에서 마그마가 상승한 것으로 보는 가설도 나온다. 최성희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 박사는 “단층 주변 등 지각이 약한 곳을 따라 맨틀 상부의 마그마가 올라와 화산활동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마그마 분출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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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엔 300년에 한번씩 숨 쉬는 괴물이 산다
<8> 백두산은 살아있다
760~960년께 최대 분출, 발해 멸망 불씨 가능성
최근 들어 다시 기지개, 달마다 10~15차례 지진
“하늘과 땅이 갑자기 캄캄해졌는데 연기와 불꽃 같은 것이 일어나는 듯하였고 비릿한 냄새가 방에 꽉 찬 것 같기도 하였다. 큰 화로에 들어앉아 있는 듯 몹시 무덥고…흩날리던 재는 마치 눈과 같이 산지사방에 떨어졌는데 그 높이가 한 치가량 되었다.”
1702년 (숙종 28년) 6월3일 함경도 부령과 경성에서 벌어진 일을 <조선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백두산 천지의 화산분출의 영향을 약 150㎞ 동쪽에 위치한 함경도에서 관찰한 것”이라며 “천지 칼데라 화산의 분출은 이것 말고도 1413년, 1668, 1903년의 분출을 역사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960억㎥ 분출물, 성층권인 25㎞ 치솟아…화산재는 홋카이도까지
그러나 백두산의 분화가 황화수소 가스와 화산재를 뿌리는 정도에 그쳤을 것으로 본다면 오산이다.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백두산의 화산분출은 지구기후에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지난 2000년 동안 지구상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분출 가운데 하나임이 드러나고 있다.
독일의 세계적 화산학자인 한스 울리히 슈민케 박사팀이 북한 당국의 허가 아래 백두산의 지질을 조사해, 2000년 <화산학 회보>에 발표한 논문은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슈민케는 이 논문에서 서기 969년 백두산이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960억㎥의 분출물을 성층권인 25㎞ 상공까지 뿜어 올렸다며 “단기간의 분출이지만 지구기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백두산의 분출규모가 이보다 컸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윤성효 교수는 “슈밍케는 일본에 쌓인 백두산 화산재의 두께를 1㎝로 보고 계산했지만 실제로 재면 5㎝까지 나온다”며 실제 분출량은 150㎦(1500억㎥)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백두산 분출은 1815년 지구촌에 ‘여름 실종’ 사태를 부른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폭발과 뉴질랜드 타우포 호 분출 등과 함께 역사기록이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화산활동인 셈이다.
천지 분화구에서 분출한 화산재와 가스는 서풍을 타고 북한의 함경도를 거쳐 1000㎞ 이상 떨어진 동해와 일본 동북부와 홋카이도까지 퍼졌다.
궈 젱푸 중국 과학아카데미 연구원은 당시 불화수소 약 2억t과 아황산가스 2300만t이 함께 나와 야생동물과 가축의 질식, 산성비, 나아가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도 일으킨 것으로 추정했다.
시속 100여㎞ 속도로 덮치는 화산쇄설류에 앉은채로 ‘억!’
그러나 화산폭발에서 정작 무서운 것은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땅으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화산재와 바위가 섞여 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화산쇄설류와 뜨거운 가스와 돌조각이 섞여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밀려드는 화쇄난류가 치명적인 재해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100여 km/h로 덮치는 화산쇄설류에 ‘억’]
백두산에서 화산쇄설류는 분화구로부터 반경 35㎞에 걸쳐 3~83m 두께로 쌓여 있다. 거대한 돌덩이가 든 레미콘 반죽과 같은 화산재가 지축을 울리며 계곡을 흘러내렸을 것이다.
화쇄난류는 화산쇄설류보다 훨씬 빠르고 계곡을 건너뛰기도 해 더 큰 피해를 준다. 핵실험과 9·11 테러 때 공중으로 솟는 버섯구름과 동시에 수평으로 확산되던 먼지구름이 바로 화쇄난류이다. 1631년 베수비오 화산폭발 때 폼페이 시민 1만 8천여 명이 미처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빠져나갈 틈도 없이 목숨을 잃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백두산의 이런 대규모 분출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아직 논란거리다. 유력한 단서가 밀려오는 화산쇄설류에 묻혀 타고남은 탄화목의 탄소연대를 측정하는 것이다.
좌용주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천지 부근 탄화목의 방사성 연대측정을 근거로 화산분출이 서기 760~960년 사이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탄화목을 이용한 다른 연구결과 추정된 연대는 700~1150년에 걸쳐 있다.
손영관 교수는 “백두산이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차례 분출했으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약 1천 년 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장기간의 화산활동으로 인한 자연재해와 농경지 피해로 발해가 멸망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2000m가 넘는 천지 20억t의 물이 순식간에 터져 쏟아진다면
문제는 백두산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천지 주변에는 매달 10~15차례 지진이 발생하고 있고, 지진파 측정 결과 백두산 지하에는 거대한 마그마 방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그마는 살아있는 생물이 숨 쉬듯이 오르내리면서 지표를 밀어올리거나 함몰시킨다. 괴물은 천지 물속이 아니라 백두산 땅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시대의 대규모 분출기록과 최근의 전조증상을 바탕으로 화산학자들은 백두산을 ‘고위험 화산’으로 분류한다. 중국 국가지진국은 1999년 천지온천 북쪽에 천지화산관측소를 설립해 다음 분출에 대비하고 있다.
천지화산관측소가 마그마 공급속도를 근거로 계산한 백두산의 분출 잠복기는 약 300년으로, “다음 100년 안에 분출할 확률이 매우 높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관측소가 내다본 최악의 시나리오는 재앙적이다. 격렬한 폭발과 함께 날아간 6㎝ 이상의 화산탄은 건물의 지붕과 벽을 관통할 만큼 위력적이다. 화산재가 10~15㎝ 두께로 쌓이면 건물 지붕이 무너진다. 지난번 분출 때는 1만 4천~3만 3천㎢ 범위에 10~30㎝ 두께로 화산재가 쌓였다. 화산재가 1㎝만 덮여도 농작물은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 마그마에 포함된 다량의 불소는 유독가스가 돼 사람과 가축을 질식시킬 것이다. 관측소는 천년 전 분출이 되풀이된다면 중국과 북한, 일본 북부 등에서 남한 면적의 7배인 70만㎦가 농업과 주거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측했다. 무엇보다 20억t의 물이 2000m가 넘는 높이에 고여있는 천지가 화구 붕괴와 함께 쏟아진다면 백두산 일대에 가공할 홍수피해를 일으킬 것이다.
북한은 풍향으로 볼 때 중국에 못지않은 피해를 입을 수 있지만 백두산 화산 연구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어준 채 2000년대 이후 연구성과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은 2007년 백두산에 지진계를 설치해 화산활동을 공동으로 연구하기로 합의하고 지난해까지 실무협의를 했으나,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사실상 무산된 상태이다.
손영관 교수는 “백두산은 2천 만년에 걸쳐 분출한 화산이어서 폭발적 분출의 빈도 등을 알려면 적어도 몇십만 년에서 100만 년 동안의 지질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북한, 중국과의 공동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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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 흘러 넘친 한탄강, 한반도 ‘막내 땅’
<9> 용암 흐르던 한탄강
드넓은 철원평야 논 사이로 뜻밖에 가파른 협곡
북한 오리산에서 분출…20~30m 깊이 용암 쌓여
이삭이 패기 시작한 벼가 드넓은 철원평야의 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 논 사이에 아래를 내려다 보기가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협곡이 숨어있었다.
지난 21일 찾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의 대교천은 너른 들판을 칼로 베어낸 듯 깊이 패인 현무암 협곡을 이루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절벽에 기둥처럼 들어선 주상절리에 세차게 부딪친 계류는 방향을 돌려 맞은편 절벽을 때리며 빠른 속도로 흘러내렸다. 여울과 소, 작은 폭포를 잇달아 이루며 바닥과 벽을 깎아내면서 흐르는 이 협곡은, 대교천 하류의 한탄강과 만나기까지 1.5㎞ 구간에서 나타난다.
북한 땅인 평강 오리산과 그 동북쪽 ‘680m 고지’에 분출구
동행한 원종관 강원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유년기 계곡지형”이라며 “약 27만 년 전 용암이 이 하천 구간을 완전히 메운 뒤 새롭게 물길이 났기 때문에 이런 지형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협곡의 절벽은 3차례에 걸쳐 흘러온 용암이 굳어 생겼는데, 그 깊이가 20~30m에 이른다. 다시 말해, 협곡 좌우의 넓은 들판 밑에도 이 정도 깊이의 용암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용암은 어디서 분출했으며 어디로 흘러갔을까.
일본 지질학자 기노사키는 1937년 철원평야의 용암대지를 형성한 분출구로 지금은 북한땅인 강원도 평강 서남쪽 3㎞ 지점에 위치하는 오리산(해발 452m)과 여기서 동북쪽으로 24㎞ 떨어진 ‘680m 고지’라고 발표했다. 이 설명은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오리산 화산체는 정상에 직경 400m가량의 분화구가 있는 것이 위성사진으로 확인된다.
점성이 작았던 용암은 꿀럭대며 분출을 계속해 낮은 지대로 흘렀고, 옛 한탄강의 물길은 불길로 바뀌었다. 강물과 만난 용암은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으며 굳었지만, 가차없이 밀려든 용암은 곧 강을 넘어 주변으로 넘쳤다.
하와이 물 속 활화산에서나 볼 수 있는 베개용암이 삐쭉
임진강 하류인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는 율곡이 즐겨 찾던 정자인 화석정이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부근 임진강변에는 유장하게 흐르는 하류인데도 한탄강 협곡에서 보는 현무암 절벽이 서 있다. 용암이 여기까지 흘러왔다는 증거다.
이문원 강원대 과학교육학부 교수는 “분화구에서 115㎞ 떨어진 이곳에 8m 높이로 용암이 쌓이려면 어마어마한 양이 흘러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탄강을 따라 흘러온 용암은 전곡에서 병목현상을 일으켜 임진강 상류 쪽으로 역류하기도 했다. 두 강의 합류점에서 현무암의 두께는 30m에 이르렀고, 여기서 12㎞ 상류인 선곡리까지 6m 두께의 현무암층을 남겨 놓았다.
한탄강이 영평천과 합류하는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아우라지도 유명한 용암 병목지점이었다. 한탄강의 용암이 영평천으로 역류한 이곳에선 하와이의 물속 활화산에서나 볼 수 있는 베개용암이 물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용암이 물과 만나 거죽은 급히 식어 굳지만 안쪽에서 액체 상태로 계속 흐르면, 표면 틈으로 마치 치약처럼 삐져나와 굳어 생긴 것이 베개용암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철원을 두고 “들 가운데 물이 깊고 검은 돌이 마치 벌레를 먹은 것과 같으니 몹시 이상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탄강의 특징은 바로 이중환이 가리킨 대로 ‘용암이 굳은 현무암 협곡’이다.
신생대 지층 밟고 절벽 아래로 내려오면 수억년 전 중생대 암석
협곡의 형성은 용암의 냉각과정과 관련이 있다. 이문원 교수는 “용암이 공기와 만나 급하게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마치 논바닥이 갈라지듯 수많은 5각, 6각 기둥 형태가 만들어진다”며 “이런 주상절리가 침식돼 수직으로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가파른 절벽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절벽의 형태는 주변 암석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현무암 사이로 강이 흐르면 대교천처럼 양쪽이 가파른 협곡이 되지만, 강이 화강암 등 기반암과 현무암 사이를 흐른다면 현무암 쪽에만 가파른 절벽이 만들어진다.
한탄강에는 재인폭포, 직탕폭포, 고석정, 순담계곡 등 지질학적 명소가 많지만, 연천읍 신답리 수력발전소 밑 절벽에는 한탄강 용암분출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 숨어 있다.
절벽 맨 아래엔 강바닥에서 흔히 보는 굵은 자갈층이 깔려있다. 용암이 흘러오기 전 옛 한탄강의 강바닥이다. 그 위에 강물의 최후가 기록된 베개용암이 나타나고 이어 현무암이 판상절리와 주상절리 형태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40m 절벽 꼭대기엔 식물이 자라는 충적층이 깔려 있다.
원종관 교수는 “신생대 지층을 밟으면서 절벽 아래로 내려와 수억년 전 중생대 암석을 만져볼 수 있는 곳”이라며 “한탄강은 용암에 의해 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땅이 만들어졌고 그 위로 가장 젊은 강이 형성되고 있는 역동적인 지형·지질학 현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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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동안 땅속서 잠잔 신라 마애불의 비밀
<10> 땅이 흔들린다
경남·북 일대 단층 30여개 발견, 지진 안전론 ‘쑥’
한반도 동남부, 지각판 충돌하는 지점 가까워
완벽한 미소를 머금은 채 13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 지난 2007년 5월 발견된 신라 마애불은 왜 무너졌을까.
높이 6.2m 무게 약 70t인 이 거대한 불상은 풍화가 거의 되지 않아, 제작 직후 엄청난 외부 힘에 의해 넘어져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돼 왔다.
불상은 8세기 양식…역사 기록엔 779년 경주 지진으로 100여 명 사망
김영석 부경대 환경지질학과 교수팀은 <지질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여래입상의 붕괴 원인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마애불과 인근 암반에 나 있는 미세한 균열의 양상을 비교한 결과 마애불을 현 위치에서 약 12m 떨어진 사면 상부 자연암반에 조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 마애불이 반시계방향으로 약 20도 회전하면서 넘어진 사실도 밝혀냈다.
김 교수는 “지진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처럼 큰 자연적인 힘만이 70t짜리 불상을 12m 옮길 수 있다”며 “불상이 8세기 후반 양식이라는 고고미술학계 의견과 779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1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역사기록이 맞아떨어져 주목된다”고 말했다.
마애불이 있는 경주 남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동성이 높은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이 만나는 부근에 위치한다.
지각판 경계부에 놓인 일본, 대만 등과 달리 유라시아판 주변부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지진 위험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남·북 일대에서 제4기 최후기의 단층 30여 개가 최근 발견되면서 이런 얘기는 쑥 들어갔다. 1995년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였던 굴업도에서 최근 1만 년 사이에 활동한 4개의 활성단층이 발견돼 터 지정이 취소되면서 본격적인 활성단층 연구가 시작됐다. 학계에서는 최신의 지질시대를 가리키는 제4기(180만 년 전~현재)에 일어난 지각운동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경북 경주시 암곡동의 산자락에는 사태로 무너져내린 높은 절벽이 있다. 이곳엔 우리나라 4기 단층 가운데 땅이 움직인 거리가 가장 긴 왕산단층이 드러나 있다.
절벽에는 지층을 왼쪽 위 45도 각도로 자르는 단층면이 지나고 있다. 단층면 오른쪽 지층은 압축력을 받아 왼쪽 지층에 비해 무려 28m나 미끄러져 올라갔다. 경계면엔 지각운동 당시의 마찰과 열로 생긴 미세한 점토층이 40~50㎝ 두께로 끼어있다. 이곳에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부산까지 흔들린 규슈 지진같은 일이 8번 일어났다면”
2004년 12월26일 인도양에서 일어난 수마트라-안다만 지진은 지진해일을 일으켜 28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지진으로 해저 지층이 1200㎞에 걸쳐 미끄러졌는데, 그 거리는 왕산단층보다 작은 최고 20m였다.
그러나 경주에서 수마트라보다 큰 지진이 일어난 증거는 없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난 1만 년 동안 여러 차례 일어난 지진의 결과가 누적돼 28m의 변위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며 “2005년 부산까지 흔들린 규모 6.6인 규슈 지진의 최고 변위가 3.2m이므로, 그런 지진이 8번 일어났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왕산단층이 대규모 지진의 흔적이라는 데는 다른 견해도 있다. 최성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왕산단층은 좁은 범위에서 큰 규모로 움직인 단층의 하나”라며 “구조적인 이유로 생긴 대규모 지진인지는 더 자세한 연구를 해 봐야 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청하면 유계리에 위치한 유계단층은 한반도에서 가장 최근에 움직였던 활성단층이다. 양산단층대의 북쪽에 자리 잡은 이 단층은 지층이 4.2m를 미끄러졌다. 이 단층을 연구한 김영석 부경대 교수는 “약 2000년 전 규모 7.0~7.3의 지진이 일으킨 흔적이며, 지진으로 생긴 파열대의 길이는 130~280㎞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지진의 90%는 한 번 일어난 곳에서 다시 발생한다. 지진은 땅속에 축적된 에너지가 지각의 약한 부분을 통해 갑작스럽게 방출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단층에서 지진이 빈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활성단층이 속속 발견되는 경남·북 지역은 특히 주목의 대상이다. 이 지역에는 핵발전소를 비롯해 각종 산업시설과 대도시, 핵폐기물 처분장까지 몰려 있다.
“규모 5 지진은 10~15년마다, 6~7 대규모 지진은 수백 년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작은 지진만 일어난다고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속단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김영석 교수는 “큰 지진은 발생하는 주기가 길 뿐”이라며 “다음번 대규모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며, 그것은 내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역사기록을 보면 규모 5의 지진은 10~15년마다, 규모 6~7의 대규모 지진은 수백 년마다 일어났다”며 “경주 울산 포항 등은 암석 자체가 최근의 지각변형을 받아 균열이 많은데다 대규모 산업시설이 몰려있어 지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지질 안정성보다 지역 여론을 먼저 고려하는 정부의 정책에 비판이 쏟아진다.
손문 교수는 “지질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을 선정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일단 부지부터 선정하고 취약한 지질을 공법으로 보강한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며 “수십만 년 동안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지을 때 이런 절차가 꼭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산단층대는 부산~경주~영덕을 잇는 약 200㎞의 단층곡이며, 울산단층대는 경주 동부~울산의 약 50㎞ 구간을 가리킨다. 이 두 단층대는 다시 수많은 작은 단층들로 구성돼 있다.
한반도 동남부에 이처럼 단층대가 발달한 것은 지각판이 충돌하는 지점과 상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해양지각인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은 일본 근해에서 대륙지각인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한반도를 북서쪽으로 밀친다. 약 5000만 년 전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한 인도판의 영향도 아직 살아있다.
▲ 부산 금정산에서 바라본 양산단층대의 지표 모습. 주변보다 부서진 암석이 빨리 침식돼 경부고속도로 양산 경주 구간과 낙동강 최하류가 단층선 위를 흐른다. 손일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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