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김선자의 소수민족 신화기행_03

醉月 2009. 11. 25. 08:50

티베트이야기① -바람·햇빛·설산·호수 그리고 사랑

그곳에서 자연은 신이 되고 신은 자연이 되었다
‘신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싸, 이제는 더 이상 고즈넉한 땅이 아니다. ‘칭짱철로’라 불리는 기찻길이 열리면서 그곳을 속수무책으로 열려버렸다. 그곳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티베트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려버린 그 길을 통해 ‘문명’ 세계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신은 과연 언제까지 라싸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마구 늘어나는 거리의 네온 불빛 속에 신의 자리는 남아있기나 한 걸까.

남초가는 길, 해발 5190m 라켄라고개에서 휘날리는 룽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라싸의 심장부, 조캉사원에 가보면 깨끗이 사라진다. 종교적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외지인들이 아무리 몰려든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족의 영혼이란,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코르의 순례 길을 돌며 다음 생에서의 더 나은 삶을 기원한다. 현실은 참으로 팍팍하고 힘들지만 착하게 살면 다음 세상에서는 더 좋게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는 그들의 믿음이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늘 밝다. 낯선 이들에게 보여주는 티베트 사람들의 환하고 맑은 미소는 그런 선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나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오기 이전, 그들은 뵌교라는 토착종교를 믿었다. 뵌교를 믿는 사람들을 ‘뵌뽀’라고 했는데, ‘뵌뽀’는 ‘경전을 외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와서 자리잡기까지, 뵌교와 오랜 투쟁을 벌여야 했다. 뵌교는 원초적 샤머니즘과 맥이 닿아있다. 뵌교의 사제들은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 그들이 모시는 신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티베트 신화의 전승자 역할을 했다. 바람과 햇빛, 설산(雪山)과 호수에 관한 아름다운 티베트 신화들은 그렇게 전해져 왔다. 그러나 뵌교가 불교와의 투쟁에서 패배하면서 신화는 불교식으로 각색되었으며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성격도 모두 바뀌었다. 그들을 둘러싼 가장 장엄한 자연, 거대한 설산의 산신들은 티베트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이 되고 말았다.

녠칭탕글라 산맥과 남초.

하지만 정신적 전통이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바코르와 강디쎄(카일라스)산의 순례 코스를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뵌교 신도들이 남아있고(불교 신도들은 왼쪽에서 오른쪽, 즉 시계 방향으로 돈다), 적은 수이지만 뵌교의 사원도 남아있다. 물론 뵌교 사제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오래된 신화들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불교의 흔적을 살짝 지우기만 한다면 그것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뵌교의 경전인 ‘스바줘푸’에서는 천계의 왕에게 다섯 가지의 원초적 물질이 있었다고 말한다. 법사가 그 다섯 가지 물질을 그의 몸에 넣고 불었더니 바람이 생겼다. 바람이 빠르게 돌면서 불이 생겼고, 불의 열기와 바람의 냉기가 합쳐져 이슬방울이 생겨났다. 이슬방울에서 미립 원소들이 나왔고, 그것이 바람에 날려 쌓여서 산이 되었다. 바람과 불, 물과 흙, 그리고 텅 빈 ‘공(空)’이라는 다섯 가지가 바로 티베트 신화에서 세상을 만드는 요소이다. 생각해보면 이 다섯 가지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이다. 해발 고도가 4000~5000m에 달하는 그 땅에는 숨을 멎게 할 정도의 바람이 강하게 분다. 투명하게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햇살은 피부를 태울 정도이다. 1년 내내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산은 경배의 대상이며 설산 아래에 있는 맑고 차가운 호수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바람(風)과 햇빛(火), 설산(土)과 호수(水), 그리고 텅 빈 하늘(空)은 티베트 사람들의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다.

바람에 룽다는 휘날리고 푸쏭마을의 경전 조각하시는 분들이 웃고 있다.

지금도 티베트의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오색 깃발 룽다는 그 다섯 가지 요소를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룽다는 ‘바람의 말(風馬)’이라는 뜻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천신과 동일시했던 산신은 그들의 수호신이다. 가축의 새끼를 잘 낳도록 도와주고 인간의 병을 고쳐주었던 산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색의 룽다를 내걸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룽다는 신들에게 보내는 인간들의 경외심과 소망이었던 것이다.

망과절 축제에 참가한 티베트 여성들.
또 하나의 뵌교 경전인 ‘십만용경(十萬龍經)’에 등장하는 용신은 대부분 여신이고, 가장 중요한 계보에 속한 360여 명의 신들도 모두 여신이다. 여신들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신화는 만주족에게도 있다. 천신이자 버들잎 여신인 아부카허허를 비롯한 300여 명의 여신들이 악의 세력인 에루리를 물리치는 신화가 그것이다. 뵌교의 경전에 이렇게 많은 여신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신화의 시작에 언제나 여신이 있었던 다른 소수민족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 ‘십만용경’의 용모(龍母)는 자신의 온몸을 세상 만물로 변화시킨다. 머리는 하늘이 되고 왼쪽 눈은 해가, 오른쪽 눈은 달이 된다. 네 개의 앞니는 별이 되고 목소리는 우레가, 혀는 번개가 된다. 핏줄은 강이 되며 몸은 대지가 된다. 창조의 힘과 관련된 여신들의 이름은 초모랑마(에베레스트)에도 남아있다. 초모랑마 다섯 봉우리의 산신이 모두 여신이라는 것은 이런 뵌교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티베트에서는 산신은 남성, 호수는 여성으로 나타나며 산신과 호수의 혼인은 하늘과 땅의 결합을 의미하고 있다.

티베트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산신들은 천신과 동일시된다. 티베트 신화에서는 천상의 세계나 주재신이 따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는 하늘 높이 솟은 신산이었다. 얄람샴뽀와 녠칭탕글라를 비롯한 티베트 지역 4대 신산의 산신들은 현지인들의 위대한 수호신이다. 얄람샴뽀의 산신은 하얀 야크로 화신하기도 하는데 그는 입과 코에서 끊임없이 눈보라를 뿜어낸다. 그 산신은 하얀 인간이 되어 사람과 혼인, 아이를 낳기도 한다. 녠칭탕글라의 산신은 산의 북쪽 면에 산다. 그가 사는 곳은 늘 봄처럼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늘엔 터키석 빛깔의 매가 날아다닌다. 산신은 백마를 타고 오른손에는 등나무 가지를, 왼손에는 수정검을 들고 있다. 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는 투명하고 맑은 하늘 호수, 남초는 녠칭탕글라 산신의 아내이다.

조캉사원에서 만난 순례자 아주머니의 웃음.
티베트 신화에서 호수는 언제나 여신이다. 강디쎄(카일라스)산에 있는 마팜유초(마나사로바호)는 여신의 검고 맑은 눈동자이다. 원래 강디쎄는 나무나니와 혼인했다. 그런데 강디쎄는 결혼식 날 꽃을 가지고 온 여인의 검고 그윽한 눈동자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 날, 마팜유초를 거닐던 강디쎄는 그 호수에서 검고 맑고 깊은 여인의 눈동자를 보았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슬픔에 젖은 나무나니는 히말라야로 가서 산봉우리가 되었다. 그녀의 슬픔을 이해한 강디쎄도 산이 되고 그를 사랑한 마팜유초는 영원한 검은 눈동자, 호수가 되었다.

신들의 사랑이야기는 티베트 신화에서 자주 보인다. 티베트의 오래된 시에 등장하는 반차바나는 사랑의 신이다. 그의 아내 린디 역시 사랑의 여신이다. 사탕수수와 꿀로 만들어진 반차바나의 화살은 에로스의 화살과 같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그 화살을 맞는 자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날, 반차바나의 화살이 정결한 신 신와의 세 번째 눈에 맞았다. 신와는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빙하에 뒹굴었지만 더욱 뜨거워지기만 했다. 결국 눈의 신과 결혼하고 난 뒤에야 안정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정결함을 잃었다. 사랑의 신 반차바나가 죽은 후 세상엔 사랑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신들은 그를 부활시켰다.

티베트의 장엄한 자연을 보여주는 걍체 풍광.

또 다른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아추 왕자가 있다. 티베트 사람들의 주식인 칭커, 즉 보리 종자를 구하러 98개의 산과 98개의 강을 건너 머나먼 길을 떠났던 아추 왕자는 무시무시한 뱀 왕의 방해를 뚫고 무사히 보리 종자를 구한다. 그러나 뱀 왕의 저주로 인해 왕자는 개로 변해버린다. 물론 단서가 달린다.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야 저주가 풀릴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없어서 안 되는 주식인 보리를 구해온 영웅 아추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왕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뱀 왕의 마법이 풀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신화 속의 사랑은, 치유의 힘이다.

티베트에 가면 누구나 겸손해진다. 그것은 티베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 경건함에 감동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앞서는 것은 티베트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다. 티베트 신화는 그러한 자연에 바쳐지는 송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노래이기도 하다.

티베트이야기② - 무지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
인간과 신은 하늘사다리 오르내렸다
하늘과 가까워 투명한 햇살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져 내리는 티베트이지만 한여름이 되면 한바탕씩 갑자기 비가 내리곤 한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환상처럼 나타나는 눈부신 무지개, 그것은 설역고원(雪域高原)의 또 다른 상징이다. 제대로 된 반원형의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을 한다. 물론 신화 속의 무지개는 이미 사라졌고 그 빛깔은 티베트 사원의 곱디고운 오색문양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지만 햇빛과 물이 만나 만들어낸 그 찬란한 무지개를 보며 사람들은 아득히 먼 ‘그때(illud tempus)’를 떠올린다.

라싸의 간덴사 올라가는 길. 칭짱철도가 열린 뒤 이 길은 포장도로로 변했다.

아득한 그 시절, 인간이 신과 더불어 살아갔을 때 인간과 신은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를 타고 서로의 세상을 오르내렸다. 살면서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인간은 하늘로 올라가 신에게 질문을 했고 신들도 심심하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그렇게 어우러져 살았다.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뒤덮인 높은 산이나 하늘로 치솟은 나무들은 그들이 타고 오르내리는 사다리였다. 강디세(카일라스)산은 천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였으며 린즈(티베트 동부지역)의 신산(神山)에 있는 높다란 나무는 인간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이 죽으면 그 시신을 상자에 담아 그 나무에 놓아두었다. 나무는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사다리였기 때문이다.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에벤키나 오로첸족에게도 수목장(樹木葬)의 풍습이 있었다. 그들 역시 죽은 영혼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믿었다. 서북지역의 치앙(羌)족은 원숭이가 마상수(馬桑樹)라는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나무를 타고 하늘까지 올라간 원숭이는 천신의 경고를 듣지 않고 금으로 된 대야를 엎어버렸다. 금 대야에 들어있는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인간 세상에는 홍수가 일어났다. 인간과 신은 그렇게 여러 길을 통해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인 조캉사원 앞에 솟아오른 타르초.
그런데 어느 날 그 하늘사다리가 끊겼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고 신도 지상으로 내려올 수 없게 되었다. 하늘에 와서 천상의 지식을 가져간 인간들이 신들보다 총명해질까봐 걱정이 되어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 하늘나라를 너무 소란스럽게 만드는 무례한 인간들이 귀찮아진 신이 그 길을 끊었다고도 하고 냄새를 피우거나 욕심을 부려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신들에게 요구하거나, 자연을 파괴하여 신들을 노엽게 하거나, 지켜야할 규칙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인간들을 신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신은 하늘사다리를 거두어들였다. 인간은 이제 하늘을 잃었다.

티베트 신화 속에서 인간이 하늘과 통할 수 없게 된 것은 지굼잰포 시절부터였다. 머나먼 옛날, 하늘에서 비범한 아이가 내려왔다. 그리고 장성하여 얌드록호수의 여신 남무무와 혼인해서 아들 무치를 낳았다. 그리고 무치가 ‘혼자서 말을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 부부는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인 ‘무탁’을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긴 티베트의 서사시 ‘게사르(Gesar)왕 전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링 왕국의 왕 게사르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돌아간다. 무탁은 바로 티베트의 오색무지개이다. 자신의 후계자를 세상에 남긴 티베트 왕들은 자신들의 아들이 혼자서 말을 탈 수 있는 나이, 즉 13세가 되면 하늘 밧줄을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들은 시신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티베트사람들의 화장 습속을 보여주는 신화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화장을 하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티베트 박물관 입구의 오색 장식.
그렇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하늘로 돌아간 왕들, 즉 천신들의 이야기는 7대까지 이어진다. 천신들은 아침에 지상으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다가 저녁이 되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조캉사원 앞에 서있는 회맹비(會盟碑)에도 신성한 왕, 잰포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설산의 가운데, 강물의 원류, 깨끗한 땅’ 토번(吐蕃: 티베트의 옛 이름)의 국왕이 되었는데 그가 ‘천신이면서 인간세상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티베트의 왕들은 천신의 후손으로, 머리에서 하늘로 바로 이어지는 하늘의 밧줄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밧줄이 끊어지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치’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그 7대 왕들 모두가 이름 속에 어머니의 이름을 한 글자씩 담고 있다는 점이다. 밧줄 사다리를 통해 하늘로 돌아가던 그 시절, 왕들은 어머니의 계보를 함께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더 이상 밧줄이 내려오지 않을 때, 왕들은 어머니의 이름을 잃었다. 그것은 신하에게 살해당한 왕 지굼잰포에서 시작된다.

왕은 천신의 아들/ 보통 사람의 몸을 가졌으나/ 보통 사람과는 달랐네/ 하늘을 날아올라 세상의 끝까지 가는 큰 신통력을 지녔고/ 늘 부하들과 무공을 겨루는 걸 좋아했지

‘칼로 살해되다’라는 뜻의 이상한 이름을 가진 지굼잰포는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신하에게 목숨을 잃고 하늘로 올라가는 밧줄도 자신의 손으로 끊어버리게 된다. 다른 민족의 신화 속에서 하늘사다리가 사라지는 이유가 인간의 오만함 때문이었다면 티베트 신화에서 하늘 밧줄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지굼잰포의 오만함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때부터 왕들은 어머니의 이름을 버리게 된다.

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 벽에는 티베트 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그린 벽화가 있다.
욕심 때문에 하늘사다리를 잃게 된 인간들과 오만함 때문에 하늘 밧줄을 잃어버린 지굼잰포의 이야기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같다. 신화는 인간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한다. 하늘을 만지며 놀 수도 있었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별을 딸 수도 있었던 인간이 하늘사다리를 잃어버린 것은 그들의 방자한 행동 때문이다. 인간은 곡식을 가지고 담을 쌓는 경박한 행동을 했다. 농사는 제대로 짓지 않고 북을 치며 노래하는 인간들이 한심하여 신들은 잡초 씨앗을 세상에 보내어 땅에 잡초가 가득 자라게 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잡초를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북을 치고 노래했다. 그 게으름이 신을 노하게 했다.

신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환경을 절대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생태환경의 파괴는 바로 인간의 파멸을 가져온다. 곰 사냥을 하면서 곰의 넋을 달래주는 제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아무 때나 함부로 곰을 잡지 않는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잡을 뿐, 그저 재미로 사냥을 하는 것 같은 무지막지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 역시 언젠가는 인간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신통력을 가진 원숭이가 여신과 혼인하여 낳은 후손들이 지금의 티베트 조상인데, 문제는 그들이 낳은 새끼 원숭이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새끼 원숭이들이 너무 많아지니까 먹고살 것이 없어 생존이 어려워졌다. 물론 그때 자비로운 신은 곡식의 종자를 주어 인간들이 계속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원숭이들이 무한번식을 하게 되어 먹을 것이 없어져 살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자연환경의 파괴가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간덴사 뒷산에 피어있는 야생화.
하늘사다리를 잃게 된 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을 잃게 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던 밧줄을 끊게 된 지굼잰포의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같다. 어머니의 이름은 풍요와 생명을 상징한다. 하늘사다리가 끊겼다는 것은 그러한 풍요로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신과의 공존이란 바로 자연과의 공존에 다름 아니다.

물론 하늘사다리를 통해 천계로 올라가 신의 뜻을 듣고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일은 샤먼의 몫이었다. 하늘사다리가 끊기면서 직접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된 인간들은 샤먼이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가졌던 모든 민족에게서 하늘사다리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하늘사다리가 끊기면서 인간은 낙원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낙원이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니,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잃어버린 무지개를 다시 찾는 것 또한 인간 스스로가 할 일이다.

서북이야기① - 파미르의 숫 독수리, 타지크족 이야기
女神의 눈물은 아롱 아롱 호수에, 설산에 맺혔네
중국의 서부, 카슈가르를 떠나 서남쪽으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달리다보면 타지크족의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중국 내에 살고 있는 타지크족의 인구는 4만명이 채 안된다. 하얀 피부에 독수리 부리처럼 생긴 코를 가진 키 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 타슈쿠르칸은 그 중심 도시이다. 파미르고원의 장대한 풍광을 배경으로 도시의 중심에 서있는 검은 독수리상이 눈에 들어온다. 타지크 사람들에게 있어서 독수리는 충성과 정의, 선량함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타지크족의 신화 속에서 독수리는 언제나 타지크족을 위하여 스스로를 버린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독수리는 자신을 희생한다. 주인은 슬픔을 참으며 독수리를 죽여 날개 뼈로 피리를 만들어 분다. 높고 가늘지만 강렬한 그 피리 소리는 타지크족을 단결시켜 목숨을 걸고 투쟁하게 한다. 물론 그 소리를 듣고 몰려든 다른 독수리들도 타지크 사람들을 위하여 싸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독수리 뼈로 만든 피리를 불며 독수리의 충직함을 기리고 독수리 춤을 추며 그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타슈쿠르칸 시내에 있는 파미르의 숫 독수리상.
타지크 사람들의 신화 속에서 신은 언제나 자애롭다. 그리고 그 신은 늘 빛을 대표한다. 빛의 신에게서 알이 하나 나타났다. 신은 그 알을 반으로 갈라 땅과 하늘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상이 적막하여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 신은 다른 신들에게 진흙을 가지고 인간을 만들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지 몰랐다.

“하늘의 호수로 가보아라.”

신들이 하늘 호수로 가보았더니 호수 표면에 인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신들은 그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신은 자신의 빛으로 생명을 주고 하늘나라 호수의 물로 피를 만들었으며 하늘의 기운으로 숨을, 하늘의 불로 체온을 주었다. 마침내 세상엔 인간이 생겨났다. 그러나 인간의 양쪽 이마에는 빛과 어둠의 신이 살았다. 빛과 어둠을 대표하는 신은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선신, 지혜의 신)-앙그라 마뉴(악신)의 관계처럼 언제나 팽팽하게 대립한다. 사람의 오른쪽 이마에 사는 빛의 신과 왼쪽 이마에 사는 어둠의 신은 사람들을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 사람이 정의롭고 착하게 살아가면 그것은 오른쪽 이마에 있는 빛의 신이 강하기 때문이며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살아가면 왼쪽 이마의 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빛과 정의가 언제나 이기긴 하지만 어둠과 악은 늘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을 사악한 방향으로 이끈다.

무스타그 아타와 검은 호수 카라콜.
그런데 원래 천상의 세계에서 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인간들이 하늘에서 금지된 음식, 즉 밀알을 먹어 똥을 누게 되었다. 정결한 천상세계를 더럽히게 된 것이다. 신은 분노했다. 그리하여 인간을 아래 세상으로 쫓아버렸다. 태초부터 유혹은 존재했다. 신은 언제나 금기를 만들고 인간은 늘 그 금기를 깬다. 낙원에서의 추방으로부터 인간의 홀로서기는 시작된다. 물론 그것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만족을 모르는 어리석은 것들 같으니. 앞으로는 스스로 알아서 먹고 살아라!”

분노하는 신 앞에서 인간은 울며 용서를 빌었고 그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신은 하늘나라의 밀알을 주며 그것을 심어 농사를 지어 먹고 살라고 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농사를 짓나요?”

신은 먼저 소를 보내주었고 나중에는 말도 보내주었다. 거친 말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자 인간은 또 신에게 부탁했다.

“어떻게 하면 말을 우리 마음대로 부릴 수 있나요?”

결국 신은 인간에게 말을 통제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자애로운 신 덕분에 인간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원래는 밀가루였다. 하늘에서 늘 밀가루가 내려오기 때문에 인간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배부르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막 밟고 다니기도 하고 사방에 흩뿌리기도 하는 등 밀가루를 함부로 낭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똥을 눈 손자의 엉덩이를 밀가루 반죽으로 닦아주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은 신의 분노를 촉발했다. 신은 그 순간부터 밀가루를 눈으로 변하게 했다. 그날부터 하늘에서는 더 이상 밀가루가 내려오지 않았고 인간은 먹을 것을 잃었다. 결국 인간은 신에게 빌었고 신은 하늘나라의 곡식을 내려주어 인간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게 했다. 신화는 언제나 자연 앞에서 겸손할 것과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들을 아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타슈쿠르칸 석두성(스톤시티)에서 내려다 본 초원 풍경.

타지크 신화에서 달은 원래 환하고 밝았으며 따뜻한 온기도 지닌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달의 소중함을 몰랐다. 오히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투덜거렸다. 어느 날 세 자매가 집안에서 싸우다가 불이 꺼지자 밖으로 나와 옷을 다 벗은 채 계속 싸웠다. 그 광경이 하도 민망하여 달은 그만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버렸다. 오늘날 달이 온기를 잃고 어두운 노란 빛을 띠게 된 것은 그 때문이며 달에 생긴 어두운 그림자는 세 자매의 그림자라고 한다.

한편 타지크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산에 관한 신화가 있다. 무스타그 아타(Muztag Ata), 즉 ‘수호신 무스타그’라는 이름을 가진 해발 7546m의 무스타그봉은 타지크 사람들의 성산이다. 그들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무스타그 아타가 우리를 보호하고/ 무스타그 아타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무스타그 아타가 너의 길에 함께 하기를!”
“무스타그 아타가 너에게 벌을 주기를!”

타지크 사람들에게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 안장 모양의 무덤은 비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의 무덤이다.
지금은 빙하로 뒤덮인 장엄한 하얀 산이지만 신화 속에서 무스타그봉은 온갖 풀과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낙원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천상의 꽃들이 자라고 있는 그 낙원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꽃들을 지키는 여신이 온갖 무서운 동물로 변신을 하여 그곳에 들어오려는 자들을 막았다. 그래도 그곳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주문을 읊어 무생물로 변하게 해버렸고 귀신들을 불러다가 잡아먹게 했다. 인간은 꽃을 원했지만 그 꽃은 천상의 세계에만 속해 있었다. 그런 곳에 영웅 루스타무가 들어갔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꽃을 가져오기 위하여 루스타무는 무스타그산으로 갔다. 이레 낮밤을 꼬박 올라갔더니 마침 꽃을 지키는 여신이 잠을 자고 있었다. 루스타무는 얼른 하얀 꽃과 붉은 꽃 한 묶음씩을 갖고 몸을 돌려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 중턱쯤에 왔을 때 여신이 곰과 독수리 등 온갖 동물로 변하여 루스타무를 막았다. 루스타무는 열심히 싸웠지만 거대한 거인으로 변한 여신과 맞닥뜨리게 되자 그녀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루스타무는 여신에게 진지하고 솔직하게 부탁했다.

“여신이시여,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꽃을 가지러 왔어요. 날 보내주지 않으면 절벽에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답니다. 저를 보내주세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목숨 걸고 꽃을 가지러 온 루스타무에게 감동한 여신은 꽃을 내주었고, 루스타무가 가져온 꽃들 덕분에 지상에도 마침내 천상세계와 같은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꽃을 지키는 여신은 천신의 징벌을 받게 되었다. 루스타무의 사랑에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이 오른쪽 눈에서 흘러나왔고, 자신의 처지가 가엾어서 흘리는 눈물이 왼쪽 눈에서 흘러나왔다. 영롱하고 투명한 ‘행복의 눈물’은 무스타그봉 아래로 흘러 ‘검은 호수’인 카라쿨호가 되었고 ‘비탄의 눈물’은 방울방울 모두가 맑고 차가운 얼음이 되어 무스타그봉 꼭대기의 눈부신 빙하가 되었다.

일찍이 어려서 사자를 때려잡았고 신마(神馬)를 타고 다니는 영웅 루스타무는 악의 세력과 싸워 지상의 악을 물리쳤다. 그러나 천상세계에서는 아직도 빛과 어둠의 신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눈보라와 비, 우박이 쏟아져 내려 햇살을 볼 수 없게 되니 인간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야 했다. 루스타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커다란 활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 그 전쟁을 평정, 40일 만에 햇살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싸움을 마친 루스타무의 활이 하늘에 나타났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비 내린 후에 나타나는 찬란한 무지개를 사람들을 루스타무의 활이라고 생각한다. ‘소수’라는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의 땅 한 모퉁이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무스타그봉으로 꽃을 찾아갔던 영웅 루스타무는 그들의 신비롭고 선량하며 맑은 눈빛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서북이야기②-위그르, 투명한 푸른색에 물들다
 ‘초록빛 생명’ 숭배하는 영혼들
중국의 서쪽 끝, 아직은 위구르인의 정신이 살아있는 도시 카슈가르에는 어둠이 늦게 내린다. 푸르스름한 초저녁, 이드카 모스크가 있는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어디선가 전통 악기인 탄부르를 연주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전통 시장인 바자르에는 양꼬치를 굽는 연기가 퍼지면서 구수한 향기가 풍기고, 아몬드(그곳에서는 바단무(巴丹木)라고 부른다)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독특한 모자를 쓴 사람들이 넘치기 시작한다. 이미 현대화된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카슈가르의 좁은 골목길에서는 여전히 위구르 사람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카슈가르에서 호탄으로 가는 도중 나타나는 백양나무길.

흙으로 지어진 집을 빛나게 해주는 나무 대문의 투명한 푸른색은 위구르인이 사랑하는 푸른 하늘, 위구르인의 조상인 푸른 늑대의 빛깔이다. 거리를 오가는 여성들이 입고 있는 옷의 ‘아델라이스’(찰염(染)이라는 뜻) 무늬는 위구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빛깔들을 담고 있다. 초록은 오아시스의 나무들, 빨강은 태양과 불, 노랑은 타클라마칸 사막, 파랑은 최고의 천신이 사는 하늘, 흰색은 광명, 검은색은 장엄함을 의미한다. 빛깔 속에 담긴 위구르의 영혼, 그것은 지금 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보다 더 오래된 종교인 샤머니즘, 그리고 신화에 맥이 닿아 있다.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살고 있는 위구르인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돌궐, 즉 투르크인들이 가장 존경한 것은 푸른 하늘이었다. 위대한 천신 텡그리가 있는 하늘은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었다. 위구르 전설 속의 영웅 우구스의 출생과 성장, 혼인, 전쟁담 등 영웅적 사적을 노래한 서사시 ‘우구스칸의 전설’을 보면 우구스의 첫 번째 아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우구스칸이 하늘에 기도할 때/ 장막처럼 어둠이 내렸네/
하늘에서 갑자기 푸른 광선이 한 줄기 내려왔지/
태양보다 찬란하고/ 달보다 밝았어/
푸른 빛 속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네/
아름다운 아가씨/ 이마엔 북극성처럼 위구르, 투명한 푸른색에 물들다빛나는 검은 사마귀가 있었지/
그녀가 웃으면/ 푸른 광선도 웃는 듯했어

카슈가르의 소녀들이 알록달록한 아델라이스 옷을 입고 있다.
우구스는 하늘의 푸른 광선에서 나온 여인과 혼인한다. 태어난 후 초유(우구스는 ‘초유’라는 뜻이다)만 먹고 다음날부터는 엄마 젖을 먹지 않은 채 날고기를 먹었던 우구스, 그는 수소의 다리와 늑대의 허리, 검은 표범의 어깨, 곰의 가슴을 가졌으며 온몸에 털이 난 무시무시한 모습의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와 혼인한다. 그는 또한 적들과 싸우기 위해 출정할 때 이렇게 외친다.

부족의 표시는 우리의 길조/
푸른 늑대는 우리의 전투 구호/…
태양을 깃발로 삼고/ 푸른 광선을 군영(軍營)으로 삼는다/

‘전투 구호’라는 것은 위구르어로 ‘우란(uran)’이라고 한다. 우란은 고대 투르크인들이 숭배하던 사물이나 사람을 가리킨다. 군인들이 전투할 때 어떤 것을 우란으로 삼는다는 것은 곧 그것이 그들에게 엄청난 용기와 힘을 북돋아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푸른 늑대가 우란이 된다는 것은 푸른 늑대의 힘과 용기를 그들이 그대로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우구스가 전쟁터에 나가 40일 만에 무스타그산 기슭에 도착했을 때 햇빛처럼 찬란한 광선이 그의 천막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푸른 털을 가진 늑대가 나타났고 그 늑대가 우구스의 길을 인도하겠다고 했다. 이후의 전쟁에서 푸른 늑대의 도움을 받은 우구스가 승승장구했음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푸른 늑대와 푸른 광선은 모두가 하늘, 즉 텡그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푸른 빛깔에 대한 위구르 사람들의 숭배와 사랑은 이렇게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위구르의 두 번째 아내는 물가의 나무에서 나온다.

어느 날/ 우구스가 사냥하러 나갔네/
호수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 있었지/ 나무 구멍 안에 소녀가 홀로 앉아 있었네/
아름다운 아가씨/ 눈이 푸른 하늘보다 더 푸르네/
머리카락은 흐르는 물 같았고/ 이는 진주와 같았지/

투르판 근처에 있는 투위고우 마을의 사원.
호수 가운데 나무의 구멍에서 나온 여성과 혼인하는 우구스. 여기에서 초록빛 생명에 대한 위구르인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다. 카슈가르에서부터 신장의 남부지역인 호탄으로 내려가는 길 양옆에 늘어선 키 큰 백양나무는 남부 신장의 상징이다. 한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사막길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초록빛 오아시스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막에서 초록은 생명이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나 종교지도자의 무덤인 마자르의 지붕 색깔은 거의 모두가 초록색이다. 카슈가르 저항정신의 상징인 향비(香妃) 무덤 역시 초록색 타일로 덮였다. 위구르의 조상 불칸도 초록 나무에서 나왔고 나쁜 요괴에게 쫓기던 가엾은 아가씨를 나무가 자기 품에 안아 구해주기도 한다. 나무는 언제나 어머니였다. 오색 천으로 알록달록 장식된 나무는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신이기도 했다.

우구스가 사람들을 소집하여 영지를 나눠주는 일에 대한 중대 결정을 할 때, 우구스는 먼저 의례를 행했다. 큰 천막 오른쪽에 40척 길이의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금계를, 아래쪽에 하얀 양을 묶어놓았다. 왼쪽에도 같은 크기의 장대를 세우고 은계와 검은 양을 묶어 놓았다. 금계는 태양, 은계는 달을 의미하며 하얀 양과 검은 양은 각각 착한 영혼과 나쁜 영혼을 대신한다. 이 장대가 바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연결해주는 우주목이다. 우구스가 행한 의례는 나무를 가운데 두고 행해지던 샤먼의 제의인 것이다. 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호양목(胡楊木)이나 오래 된 나무를 만나면 말에서 내려 기도를 했다. 특히 ‘살아서 천 년, 죽어도 쓰러지지 않은 채 천 년, 쓰러져서 천 년’을 산다는 생명력 강한 사막의 호양목은 그들의 절대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나무야, 나무야/ 네가 흔들리면/ 내 마음도 흔들린단다

우루무치 북쪽의 오채성. 아득한 옛날 만들어졌다는 오색빛 지형이 찬탄을 자아낸다.

그래서 3000년 전 타클라마칸 사막 남부의 니야(尼雅)에서는 나무를 베면 말 한 필을, 나무를 꺾으면 소 한 마리를 벌금으로 거둘 정도로 나무를 소중히 여겼다. 초록의 나무는 위구르인의 어머니이며 생명이었다.

위구르 신화에서도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든 신은 역시 여신이다. 여신이 우주의 공기와 먼지를 다 빨아들인 후 입에서 큰 공을 내뿜었다. 그것이 바로 땅인데 땅이 너무 멀리 내려가버려 찾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 여신은 큰 거북이를 내려 보냈다. 거북이를 물에 떠있게 하고 다시 수소를 보내 거북이 위에 서서 땅을 받치고 있게 하였다. 받치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수소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한쪽 뿔에서 다른 쪽 뿔로 땅을 옮기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지진이 일어났다. 세상이 적막하다고 생각한 여신은 우주의 모든 기운과 먼지를 들이마시고 다시 뱉어내 해와 달, 별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적막했고 여신은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 뱃속에 들어있던 먼지를 힘껏 내뱉으니 그것이 모두 작은 진흙인간으로 변했는데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여신이 다시 한번 힘껏 내뱉으니 곤충들이 나왔고 그 곤충들이 진흙인간을 밀어주어 인간이 비로소 걷기 시작했다. 곤충의 도움 없이는 인간도 걸을 수 없었다. 마침내 여신이 진흙인형에게 숨을 불어넣어주니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크기가 너무 작아 여신이 매만져서 키를 늘려주었다. 카자흐족의 신화에도 쟈사간(‘조물주’라는 뜻)이라는 신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열기와 빛으로 해와 달을 만든다. 인간을 만들기 위해 세상의 중심에 나무 한 그루를 세웠는데 나무가 자라자 새처럼 생긴 영혼들이 그곳에 살았다. 신은 진흙으로 속이 빈 인형을 만들었다. 다 마른 후에 배꼽을 그렸고 나무 위의 영혼들을 가져다가 진흙 인형의 입 속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진흙 인형들이 일어나서 뛰어다녔다. 그들이 바로 인류의 시조, 아담아타(‘인류의 아버지’)와 아담아나(‘인류의 어머니’)였다.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를 사랑하는 위구르사람들, 그들의 영혼 깊은 곳은 지금도 여전히 저 아득하게 높은 하늘과 맞닿아있다.

광시이야기① 좡족-사람은 꽃이다
광시(廣西) 좡족(壯族)자치구의 중심도시 난닝(南寧), 공기도 맑고 햇살도 환하다. 중원 땅보다 베트남이 더 가까운 중국의 남쪽, 시원하게 뚫린 길의 양쪽엔 목면화(木棉花)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봄이 되면 메마른 가지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선홍빛 큰 꽃, 목면화는 좡족의 창세신 부뤄퉈(布洛陀)의 전사(戰士)였다. 그는 언제나 손에 횃불을 들고 싸웠으며 죽을 때도 그것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죽은 뒤에 가지가 온통 붉은 꽃으로 뒤덮이는 나무, 목면화가 되었다.

부뤄퉈사당 올라가는 길목의 동굴속에 서있는 부뤄퉈의 전사.
좡족이 사는 곳은 아열대지역에 속해 겨울에도 빛깔 고운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그래서 꽃들에 관한 신화가 많다. 좡족의 창세여신 무리우쟈(姆六甲)도 꽃에서 태어났다. 하늘과 땅이 갈라진 이후, 대지는 황량했다. 그 황량한 대지에 잡초가 생겨났고 그 땅에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그 꽃 속에서 머리가 긴 여신 무리우쟈가 탄생했다. 무리우쟈는 화산(花山)에 있는 천상의 꽃밭에서 수많은 종류의 꽃들을 기르며 살았다. 이 꽃밭은 생명의 꽃을 비롯한 온갖 꽃들이 사는 우리나라 신화의 ‘서천꽃밭’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원래 천상의 꽃밭에 사는 꽃들이었다. 여신이 꽃의 영혼을 인간세상의 어느 집에 보내주면 그 집엔 아이가 태어났다. 천상의 꽃밭에는 붉은 꽃과 하얀 꽃이 자랐는데 여신이 붉은 꽃의 영혼을 보내면 여자아이가, 하얀 꽃의 영혼을 보내면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여신이 꽃밭의 꽃들에 물을 주고 잘 돌봐주면 인간세상에서 자라는 아이도 건강하고 생기가 있었다. 그러나 꽃들에 물이 부족하거나 벌레가 생기면 인간세상의 아이도 병에 걸렸다. 그럴 때 인간은 사공(師公: 좡족의 무당)을 청해 영혼여행을 하게 한다. 사공이 직접 천상의 꽃밭으로 가서 병에 걸린 아이의 꽃을 찾아내 꽃에 생긴 벌레를 없애거나 물을 주면 꽃이 생기를 되찾고, 아이도 다시 건강하게 되었다. 꽃의 여신이 하얀 꽃과 붉은 꽃을 함께 심으면 인간세상의 남자와 여자는 혼인하여 부부가 된다. 그리고 인간이 죽으면 다시 꽃이 되어 천상의 꽃밭으로 되돌아갔다. 하늘나라 꽃밭은 생명의 근원이며 동시에 영혼이 돌아가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사람은, 한 송이 꽃이었다.

부뤄퉈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모습-까마득히 아래에 입구가 보인다.
좡족 사람들에게 전승되는 노래 중에 ‘꽃을 바치는 노래(還花謠)’가 있다.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어 죽은 젊은 아내를 위해 남편은 무덤가에 파초를 심는다. 그리고 아홉 달이 지나 파초에 진분홍 꽃봉오리가 맺힐 무렵, 아내를 먼저 보낸 남편은 슬픈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무덤가에 심은 나무에/ 꽃봉오리 맺혔네요/ 당신 떠난 지 아홉 달, 이제 먼 길 떠나요/
당신 곁에서 아홉 달, 이제 우리 이별할 시간이에요/ 당신 이제 씻어야지요/
내가 아홉 달 동안 그대 곁에 있었어요/ 안개로 그대 얼굴 씻어주고/
이슬로 그대 몸 씻겨주고/ 눈물로 그대의 발을 씻겨줄게요/
사랑으로 당신의 영혼을 위로해요/ 이제 당신 이렇게 깨끗이 씻었으니/
당신의 영혼, 먼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가장 크게 자라는 건 파초/
그걸 이제 크게 키웠어요/ 어서 그 꽃을 가지고 가요/ 정결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요/
우리 사랑 그렇게 깊었지만/ 이제 모두 푸른 연기로 변해버렸지요/
우리 생활 그렇게 아름다웠지만/ 너무나 짧았어요/
이제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이 파초나무 뿐….

좡족 아기 포대기에도 꽃들이 가득 수놓아져 있다.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를 위해 무덤가에 파초를 심고, 그 파초에 꽃봉오리 맺히면 안개와 이슬과 눈물로 아내를 정결하게 씻겨 꽃봉오리 들고 천상의 꽃밭으로 돌아가라는 노래를 부른다. 피를 흘리며 죽어간 아내는 깨끗한 몸으로 화산으로 돌아가 다시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다리게 되고 아내를 보낸 남편도 이제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좡족 사람들에게 꽃은, 영혼이다.

그래서 무리우쟈는 좡족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신이자 생육의 여신이 되었지만 무리우쟈는 원래 창세의 거인 여신이었다. 혼돈의 우주에 홀로 생겨나 천지를 만들고 인류와 만물을 만들었다. 숨을 내쉬어 하늘을 만들었고 하늘에 구멍이 나자 목화솜으로 막았다. 그것이 흰 구름이 되었다. 하늘이 작고 땅이 커서 하늘이 땅을 다 덮지 못하자 땅의 가장자리에 바느질을 하여 실을 당겨 땅에 주름을 잡아 하늘과 땅의 크기를 맞췄다. 그때 튀어나온 부분은 산이 되었다. 그리고 두 개의 큰 산을 딛고 앉아 오줌을 누었고 오줌에 젖은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

진홍꽃 파초 꽃봉오리.
그러나 사회 형태가 바뀌면서 무리우쟈는 위대한 신성을 잃었고 남성 신인 부뤄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없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부뤄퉈는 ‘바오롱퉈’라고도 불리며(부뤄퉈의 고향이라고 하는 톈양 사람들의 발음), 물고기 잡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불을 발견했으며 식물을 심고 가축 기르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문화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과 함께 태어난 우레신을 하늘로 쫓아버렸으며 뱀 혹은 악어처럼 생긴 투어를 물속으로, 사나운 호랑이를 숲 속으로 쫓아 보내 인간들을 편히 살 수 있게 해주었다. 부뤄퉈가 늙어 나이가 들자 부보가 그의 후계자가 되었고 부보 역시 비를 내려주지 않는 우레신과 싸운다. 우레신은 바람과 불을 손에 쥐고 있는 비의 신이다. 논농사를 짓는 좡족 사람들에게 우레신은 무시무시한 권위를 지닌 신이었다. 수탉처럼 생긴 머리를 가진 우레신은 부보가 피운 불에 그슬려서 얼굴이 검푸르게 되었다. 부보한테 패해서 발이 잘린 후 급한 마음에 닭발을 갖다 붙이는 바람에 우레신의 발은 닭발이다. 우레신과 부보는 신화 속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결국 우레신이 대홍수를 일으키는 바람에 부보가 패하여 죽어 샛별이 된다. 물론 그 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남매가 다시 인류의 시조가 된다.

부뤄퉈사당 곁의 동굴 속에 만들어진 여신 무리우쟈신상, 꽃속에서 태어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부뤄퉈는 창세 여신인 무리우쟈의 위치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고 좡족의 시조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된다. 2004년, 난닝 서북부 도시 톈양에는 거대한 좡족의 성지가 만들어졌다. ‘한족의 황제(黃帝)에 맞먹을 만한 좡족의 인문시조’ 부뤄퉈를 위한 공간이 간좡산(敢壯山)에 조성되었는데 그 규모가 놀라울 정도로 크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제사에는 수십만명이 몰려든다. 신화 속의 인물을 역사 속의 실존인물로 만들어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것이 고고학 등과 결합하여 이데올로기가 될 때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필자는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책세상, 2007)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이 소수민족인 좡족(사실 좡족의 인구는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많은 1500만명이다)에게서도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 착잡하다. 신화 속의 신은 그냥 신화의 공간에 남아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신들이 신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실존했던 역사 속의 인물로 끌어내려질 때 신화의 영원한 생명력은 사라지고 만다. 신화의 생명력은 새롭게 조성되는 거대한 공간들과 그곳을 향해 몰려드는 인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소박한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아득한 옛날, 해만 있고 달은 없던 시절에 한 소녀가 살았다. 해가 떨어지면 세상이 너무 어두워졌고, 소녀는 등불을 하늘에 걸어 세상을 밝히고 싶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소녀는 등불과 짚신 짜는 도구, 깨 한 자루를 들고 길을 떠났다. 하늘에 도착하려면 얼마를 가야 하는지 몰랐으나 가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할 거라고 믿었다. 소녀는 짚신이 떨어지면 만들어 신고 하루 끼니를 깨 한 톨로 때우며 한없이 걸어갔다. 얼마나 갔을까, 깨는 반으로 줄고 소녀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소녀는 계속 걸었다. 어느 날, 물이 말라버린 바닷가에 도착하여 커다란 둥근 돌판 위에 앉아 짚신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마른 바다에 갑자기 물이 생기고 파도가 치더니 소녀가 앉아 있는 둥근 돌판이 물 위를 떠다니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짚신을 만들던 소녀가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이미 망망한 하늘에 올라와 있었다. 소녀는 기뻐하며 들고 온 등불을 밝혔고, 돌판은 환하게 빛났다. 그것이 바로 달이다. 소녀가 남은 반 자루의 깨를 하늘에 뿌렸더니 그것은 모두 초롱초롱한 별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소녀가 정말 하늘에 올라가 등불을 켰음을 알고 함께 기뻐했다.
 
광시이야기② 좡족 - 우레신의 딸 개구리, 북 속으로 들어가다
2008년 5월, 쓰촨성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두꺼비와 개구리 떼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두꺼비는 일찍이 1900여년 전의 한나라 때 사람 장형(張衡)이 만들어낸 지진계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어느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그 방향의 용 입에 들어있는 구슬이 떨어져 아래쪽에 있는 두꺼비(혹은 개구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 하필 두꺼비인가? 두꺼비와 개구리에게 지진을 예지하는 능력이 실제로 있는지 여부는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고 하지만 장형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지진계에 두꺼비 여덟 마리가 앉아 지진이 난 방향을 알려주었다고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고 위에 개구리 장식이 붙어있다.
한족에게 두꺼비가 영험한 존재였다면 좡족에게는 청개구리가 그런 존재이다. 좡족 사람들의 청개구리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지금도 좡족 북부지역에서는 해마다 설이 되면 청개구리축제를 연다. 춤추고 노래하며 청개구리(마과이· 拐)를 장례지내는 풍습을 재현하면서 한 해 동안 풍작이 들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청개구리는 하늘에 살고 있는 우레신의 딸(혹은 아들)이다. 때론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우레신은 좡족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였다. 비를 내려주는 권한을 갖고 있는 하늘의 우레신은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벼농사를 짓는 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레신을 무서워했다. 화등잔만한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 눈에서는 초록빛 빛이 뿜어져 나왔다. 등에 달려있는 날개로 날갯짓을 하면 폭풍이 몰아쳤고 길고 육중한 다리로 발걸음을 옮기면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렸다. 손에 든 도끼를 휘두르면 지상에는 번쩍거리는 번개가 쳤다.

멀리서 바라다 본 좌강 화산 절벽의 바위그림.

청개구리는 바로 그런 무시무시한 우레신의 딸이었다. 농사 때문에 비가 필요하면 사람들은 청개구리에게 부탁을 했고, 청개구리는 하늘의 우레신에게 말하여 인간 세상에 비를 내려주게 하였다. 그들에게는 청개구리가 신의 사자였던 셈이다.

마과이(청개구리)는 하늘의 딸/ 우레신 할머니가 마과이의 어머니
마과이가 인간 세상에 오면/ 우레신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지
마과이가 울지 않으면/ 하늘은 비를 내리지 않아
마과이를 하늘로 돌려보내주면/ 우레신 할머니 감동하지
우레신께 비를 내려달라 부탁하면/ 풍년이 들지

그런데 이런 청개구리가 좡족 사람들의 동고(銅鼓·청동 북)에도 등장한다. 광시난닝자치구 박물관에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많은 동고가 전시되어 있다. 동고가 울리면 천둥소리가 난다. 사람들이 동고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우레신 때문이었다.

아득한 옛날, 우레신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규칙을 만들어 꼭 지키게 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의 시신을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나눠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엽기적으로 보이는 이런 규칙이 과연 고대의 좡족 사람들에게 실제로 있었는가 하는 것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것이 일종의 풍요제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어쨌든 좡족의 어느 형제가 우레신의 이런 규칙에 반항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제는 소를 잡아 우레신을 속였다. 우레신이 노하여 자신의 아들(여기서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다) 청개구리를 보내 진상조사를 하게 한다. 그런데 그 청개구리가 그만 사람들에게 잡혔고, 청개구리는 우레신의 힘이 개구리 네 마리가 장식된 동고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우레신을 이기기 위해 여섯 마리 개구리로 장식된 동고를 만들었다. 마침내 우레신은 자신의 동고를 갖고 내려와 무서운 천둥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섯 마리 개구리로 장식된 동고를 갖고 와 두드렸고, 결국 우레신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노인이 돌아가시면 무당을 불러다가 동고 춤을 추게 한다.

바위 그림의 일부. 손에 우산 같은 것을 들고 허리에 고리달린 칼을 차고 있는 인물은 우레신과 싸운 부보인 듯하다.

좡족의 전설 속에서 동고는 지혜로운 신 부뤄퉈가 내려준 것이기도 하다. 자애로운 창조신 부뤄퉈가 천지를 다 만들고 난 후 인간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물었다. 당시 세상에는 해와 달의 빛이 골고루 비추지 않아 어둠이 있는 곳에 요괴들이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해 어둠을 없애고 싶어 했다. 그러면 어둠의 요괴들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엔 모든 것이 다 있는데 별이 없어요. 별을 내려주시면 세상의 요괴가 사라질 거예요.”

부뤄퉈는 세 가지 빛깔이 나는 흙으로 틀을 만들고 구리 성분이 들어있는 공작석을 녹여 틀에 부어 금빛 찬란한 북을 만들었다. 북의 아래쪽은 트여있고 위쪽은 막혀있었는데 그 위에 찬란한 별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부뤄퉈는 천둥소리를 내는 그 북을 ‘아란’이라 부르라고 했다.

하늘엔 별들이 많고/ 땅위엔 동고가 많아
별들과 동고는/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지

좡족 사람들에게 동고는 그렇게도 성스러우며 친근한 물건이다. 그래서 동고가 남자로 변하여 물 속의 용왕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신화도 등장한다. 동고에는 영혼이 깃들어있고 그 영혼은 밤에 위풍당당한 남자로 변한다. 손에 활을 들고 누런 양을 타고서 마을을 돌며 못된 요괴들을 없애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그는 때론 용왕의 딸과 사랑에 빠져 물 속에 오래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낮에 보면 동고에는 푸른 물이끼가 끼어 있곤 했다. 밤마다 마을을 지켜주던 동고가 여인과 사랑을 하느라 마을을 소홀히 하니 사람들이 슬퍼했고, 그 모습을 본 동고는 자신이 밤에 나가지 못하도록 동고에 달린 고리에 누런 양의 뿔을 묶어놓으라고 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사랑을 포기하는 동고, 우리 눈에는 무생물처럼 보이는 동고가 좡족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고귀한 생명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또한 동고에는 배를 타고서 깃털 모자를 쓰고 제사를 올리는 샤먼의 모습이라든가, 새, 별 문양이 등장하며 좡족 사람들의 수호신이자 풍요의 신인 개구리가 자주 나타난다.

(왼쪽)광시 난닝박물관에 전시된 동고 관련 사진. (오른쪽)난닝박물관에 전시 중인 동고에 깃털 모자를 쓴 사람들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광서백월문화문물정품집(2006)에 수록된 도판.

난닝에서 서남쪽으로 가다보면 베트남 국경 가까운 곳에 좌강(左江)이 있다. 이곳에는 참으로 기이한 바위 그림들이 있다.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붉은 빛깔을 띤 깎아지른 절벽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절벽 여기저기에 붉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상당히 넓은 지역에 분포된 이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무릎을 굽힌,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그린 것인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수께끼인 이 좌강 화산(花山)의 바위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선연한 붉은 색을 띤 채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절벽 중간에 그려진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눈에 들어온다. 팔을 치켜들고 무릎을 굽힌 그 모습은 영락없는 샤먼의 춤이다. 머리에 깃털 모자를 쓰고 있기도 한 그들은 동고 속의 주인공들과 닮아있다. 자세히 보면 개도 있고, 별 모양이 그려진 동고도 보인다. 손에 우산처럼 생긴 것을 들고 허리에 둥근 고리가 달린 칼을 찬 인물은 우산으로 된 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우레신과 싸운 부보 같다. 그러나 도대체 이 그림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앞에 소개한 이야기들과 동고, 그리고 이 그림들을 조합해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다. 바로 개구리이다. 우레신의 아들이자 비를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청개구리는 좡족 사람들의 귀한 수호신이다. 그래서 좡족의 창세신 부뤄퉈를 모신 사당에도 개구리가 있었다.

천둥소리를 내어 세상의 사악한 것들을 물리치는 동고에서 개구리는 우레신의 권위를 대신하고 있으며 비를 기원하는 의식에서도 개구리는 우레신을 의미한다.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자세를 한 절벽 그림 속의 사람들이 추는 춤 역시 동고를 두드리면서 추는 개구리축제의 춤이다. 빛나는 별이 그려진 동고를 두드리며 사람들은 세상의 어둠과 사악한 요괴들이 물러가고 마을에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했으며 비가 넉넉히 내려 마을에 풍년이 깃들기를 소망했다. 좡족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아이콘이 바로 개구리인 셈이다.

광시이야기③- 개구리, 인간으로 변한 개, 그리고 ‘미친 소’
5월31일, 시청광장의 일렁이는 촛불바다에 서있었다. ‘미친 소’에서 시작된 촛불집회, 이제 사람들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을 했다. 소수민족신화기행의 종점이 보이는 지금, ‘미친 소’에 대한 이야기라도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애초에 문제는 ‘미친 소’였다. 동물성 사료를 먹고 미쳐버린 소, 그런 소를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다. 촛불집회 첫날부터 광장에 나갔다. “너나먹어, 미친 소!”라는 구호는 그날 터져 나왔다.

좡족 부뤄퉈 사당 옆 마을에서 풀을 뜯는 소들.

신화를 이야기하는 나의 시각에서 보면 ‘미친 소’는 너무나 불쌍한 존재였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인간들이 강제로 먹인 동물성 사료 때문에 병에 걸린 소는 참으로 가엾다. 세상에, 선량한 눈을 가진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다는 미친 발상을 하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문명인이라 말할 자격이 있는가. 발달된 과학문명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인간들이 깊은 산 속에 살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가는 소수민족들보다 더 문명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소개해왔던 소수민족의 신화들은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 소수민족신화 속의 신들은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인간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자연은 인간에게 재앙을 내린다. 그러나 신화를 통해서 볼 때, 그 재앙은 언제나 인간이 자초한 경우가 많다. ‘미친 소’ 역시 마찬가지이다. 풀을 먹도록 되어있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다. 언제나 한없이 자애로운 자연이긴 하지만 자연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인간의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할 때 자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는 것이다.

소수민족들의 신화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이나 동물, 식물, 하다못해 귀신까지도 모두 같은 신에게서 태어난다. 그들은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연계의 구성원들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동물의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면 그 고기를 제공해주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동물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고방식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루어낼 수 없다.

벼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하는 광시 좡족에게 있어서 비를 보내주는 신의 사자인 개구리는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 개구리를 함부로 잡아먹는 부부가 있었다. 나이 45세에 늦게 본 아들이 개구리 고기를 좋아한다고 하여 논의 개구리를 몽땅 잡아다가 아들에게 주고 자기들도 함께 먹었다. 개구리가 다 잡혀 먹히고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개구리들이 개구리 왕에게 호소했다.

“이러다간 우리가 모두 죽게 생겼어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개구리 왕은 방법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왼쪽부터)좡족의 신화 속에서 개 역시 사악한 것들을 쫓아주는 역할을 한다. 벼농사에 꼭 필요한 존재인 소를 위해서 좡족 사람들은 해마다 소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준다. 좡족 신화에 등장하는 개구리는 신의 사자이다.

어느 날, 아이의 엄마가 잡아온 개구리를 죽이려 할 때 개구리가 말했다. “나를 잡아다가 칼로 배를 가른다면 내 고기가 익지 않을 것이야. 네 아들은 그걸 먹게 될 것이다.” 아이의 엄마가 놀라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나 말하는 개구리가 어디 있느냐며 남편은 믿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개구리가 말했다.

“나는 벌레를 잡아먹고, 너는 곡식을 먹지. 네 농사가 잘되도록 내가 도와주는 것인데 나를 잡아먹는다면 너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개구리의 말을 듣지 않고 개구리를 죽여 삶았다. 아무리 삶아도 개구리가 푹 익지 않았지만 아들이 하도 보채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냥 먹였다. 그런데 그걸 먹자마자 아들의 팔, 다리, 머리가 모두 사라져 버렸고 아들은 순식간에 냄새 나는 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해에 메뚜기 떼가 날아와 농사를 망쳐버렸다. 개구리의 복수였던 셈이다. 농사를 도와주는 개구리를 몽땅 잡아먹어 귀한 아들을 잃고 결국 해충 때문에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미친 소’를 먹으면 걸리게 된다는 광우병, 분노한 개구리를 먹고 냄새 나는 물로 변해버린 아들의 이야기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좡족의 신화와 전설 속에서 개구리는 의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느날 어떤 농부가 청개구리 한 마리를 구해주었다. 다음 해, 농사를 지어야 할 봄이 왔을 때 농부가 그만 병에 걸려 쓰러졌다. 농부의 아내와 딸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청개구리가 청년으로 변하여 그들을 도와주어 풍년이 들었다. 그런데 이웃 마을의 돈 많은 자가 농부의 딸을 억지로 데려다가 첩으로 삼으려 했다. 부자와 하인들이 농부의 딸을 끌어가려고 할 때, 청년이 웃통을 벗었다. 그의 몸에 붙어있는 초록색 속옷 같은 것이 반짝이는 빛을 발하며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찌르려 하니 딸을 끌어가려던 자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그 초록빛을 보고서야 농부는 그가 바로 자신이 구해준 개구리인 것을 알았고, 자신의 딸을 개구리청년과 혼인하게 하였다. 개구리청년은 그들을 도와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언제나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남의 딸을 빼앗아가려는 돈 많은 부자, 청개구리만도 못한 인간이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말하는 신화적 사유에서 나온다.

좡족 부뤄퉈 사당에 만들어진 개구리.
광시에는 야오족(瑤族)이 산다. 야오족은 오색찬란한 털빛을 가진 개, 판후(盤瓠)의 후손들이다. 판후는 평왕(評王)의 멋진 개였다. 키가 컸고 능력이 아주 빼어낸 개 판후는 용견(龍犬)이라고도 했다. 그 당시, 근처에 있는 고왕(高王)이 자주 평왕의 영역을 침범하여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평왕은 그와 몇 차례 전쟁을 했으나 계속 패했고, 결국 지혜롭고 용감한 자들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하들 중 그 누구도 선뜻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때 판후가 평왕이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고왕을 잡아오겠다고 했다. 평왕은 아주 기쁜 나머지 판후가 일을 해결하고 오기만 하면 궁녀를 아내로 주겠다고 말했다. 판후가 평왕과 이별하고 난 뒤 이레 만에 마침내 고왕의 땅에 도착했다. 고왕은 판후가 자기에게로 온 것을 보더니 무척 기뻐하며 말했다.

“돼지가 오면 가난해지고, 개가 오면 부자가 된다고 했지.”

고왕은 매일 판후를 곁에 두고 총애했다. 어느 날, 고왕이 잔치를 열어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취해서 뒤뜰에 누워 있었다. 판후는 단숨에 고왕의 목을 물어뜯어 그의 머리를 물고 다시 바다를 건너 평왕에게로 돌아왔다. 평왕은 감탄을 금치 못했고 판후에게 큰 상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판후는 높은 관직이나 돈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판후는 평왕에게 식언을 하지 말고 궁녀를 아내로 달라고 했다. 평왕은 그렇게 하라고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판후부부는 회계산(會稽山)에 가서 살았다. 6남 6녀를 낳고 살아가던 어느 날, 판후는 영양을 잡으려고 쫓아가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궁녀는 6남 6녀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평왕은 기뻐하며 판후를 시조 판왕(盤王)으로 삼았고 6남 6녀에게 12성을 내려주었다. 나중에 그들이 서로 혼인하여 야오족이 되었다.

(위) 좡족의 시조 부뤄퉈를 모신 사당의 입구 패방 위에 있는 개구리. (아래) 광시 롱성 홍야오족의 여성치마.
지금도 야오족 사람들은 오색찬란한 옷을 즐겨 입는데 그것은 조상인 판후가 오색의 털빛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꼬리처럼 생긴 의상을 입는 것도 그 때문이고, 가슴 앞에 늘어뜨린 붉은 두 줄의 레이스는 판후가 죽을 때 흘린 붉은 피의 색깔을 의미한다. 판왕이 죽은 후 사람들은 양가죽과 가래나무로 기다란 북을 만들어 판후의 영혼을 위로하고 추모했는데 거기에서 지금 야오족의 장고(長鼓)춤이 유래했다.

이것은 ‘평왕권첩’(評王券牒)이라는, 야오족 사람들에게 전승되어 오는 책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이다. 물론 다른 전승에서는 이야기 내용이 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멋진 개 판후는 인간의 여인과 혼인하여 야오족의 시조가 되며 지금도 야오족 사람들은 그를 판왕으로 모시면서 해마다 음력 10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배를 타고 먼 곳으로 이주하는 야오족을 풍랑에서 구해준 수호신으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들은 지금도 개를 먹지 않는다.

동물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존의 사유체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런 이야기는 나올 수 없다. 곰과 인간이 혼인한다는 북방민족들의 이야기 역시 이런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유 체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동물을 함부로 희생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동물과의 혼인담이 야만인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소위 ‘문명세계’의 사람들, 과연 누가 더 문명인이고 누가 더 야만인인가. 찬 바람 부는 광장에 서서 문명과 야만을 다시 생각한다.

광시이야기 ④ - 뿔난 ‘줌데렐라’, 그리고 미뤄퉈
소수민족신화기행의 마지막 원고를 쓰는 밤, 광장은 여전히 시끄럽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광장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쥔 사람들은 여전히 ‘배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배후’가 등장하지만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나오는 ‘줌데렐라’들이야말로 그 든든한 ‘배후’ 중의 하나일 것이다. 대한민국 ‘아줌마’의 씩씩함과 거침없음은 이미 세계에 그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바, 이번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그들의 당당함은 그들이 왜 ‘줌데렐라’로 불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병든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이들에게 좀더 나은 생태환경,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거리로 나온 아줌마들. 주변 상황이 거칠어지면 거칠어질수록 더 용감해지는 여성들,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감싸안고 보듬어주며 한없이 자애롭지만 때론 아주 강력하고 강인한 힘. 여성이라면 누구나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위대한 힘. 그 힘은 신화 속에서 종종 창세의 여신으로 형상화된다.

물 맑은 강이 흐르고 있는 바마의 풍경.

소수민족들의 신화에는 참으로 많은 여신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창세의 여신들은 언제나 넘치는 지혜와 강한 신통력, 그리고 끈질긴 참을성으로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든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인간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여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간을 도와준다. 곡식의 씨앗을 주기도 하고 홍수에서 인간을 구해주기도 하며 너무 많이 떠오른 태양과 달을 없애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광시 부누(布努)야오(瑤)족의 미뤄퉈 역시 그런 여신이다. 부누야오는 야오족의 한 지파로서 광시 좡족자치구의 북부, 바마(巴馬)와 두안(都安)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그들에게 전승되는 창세신화에 미뤄퉈가 등장한다. ‘미뤄퉈’의 ‘미’는 ‘어머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미뤄퉈는 창세의 여신이면서 동시에 부누야오족의 시조이다.

바마에 사는 104세 탄 노인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광시 좡족자치구의 북부에 있는 바마는 유명한 장수촌이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꼽히는 장수촌이라는 바마에는 야오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지만 좡족도 많이 산다. 공기와 물이 맑은 이곳에는 100세 이상의 노인만 해도 74명이나 살고 있다. 필자가 가서 만나본 바마 자좐(甲篆)향의 탄(譚) 노인은 104세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대나무 바구니 짜는 일을 하고 계셨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은 탄 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옥수수 죽이라고 했다. 술과 담배는 아예 하지 않고 그저 늘 웃으면서 산다고 말씀하셨다.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쪼그리고 앉아 대나무 바구니를 짜다가 손님들이 왔다고 바지를 자꾸 펴 내리시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눈부시게 밝고 찬란했다. 좡족 사람들의 속담에 “마을에 노인 세 분이 계시면 그 어떤 보물이 있는 것보다 훌륭하다”라는 말이 있다. 좡족의 시조신 부뤄퉈 역시 ‘한없는 지혜를 가진 노인’이란 뜻이다. 노인은 지혜롭고, 그 지혜로 세상을 이끌어간다. 바마에 살고 있는 야오족에게 가장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존재가 바로 시조할머니, 창세의 거인여신인 미뤄퉈이다. 미뤄퉈는 바람에서 태어났다.

아득한 그 시절/ 해와 달, 별이 없었지/ 큰 강이나 냇물도 어디 있는지 몰라/ 우주는 달걀노른자처럼 혼돈 그 자체였어/ 바람이 그것을 맷돌 돌리듯 빙빙 돌렸지….

그렇게 해서 생겨난 미뤄퉈는 자신의 금귀고리를 삼켜 금빛 찬란한 태양을, 은귀고리를 삼켜 은빛 달을 낳았다. 찬 바람 몰아치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걱정되어 자신의 고운 치마를 태양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구름이 되었고, 친구가 없어 심심해하는 달을 위해 자신의 진주를 하늘에 뿌려 별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미뤄퉈가 태양을 낳는 데 9000년, 달을 낳는 데 9000년이 걸렸다. 신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천지만물을 만들어낸다. 하늘과 땅을 만들 때에도 하늘과 땅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세상을 만든다.

만들어낸 하늘이 땅보다 작았지/ 만들어낸 땅이 하늘보다 넓었네/ 미뤄퉈가 실과 바늘 가져다가/ 하늘과 땅의 가장자리를 꿰매어/ 실을 잡아 당겼네/ 하늘의 가장자리 단단하게 달라붙었지만/ 실을 잡아당기니/ 하늘은 솥뚜껑처럼 되고/ 땅은 주름치마처럼 되었네

미뤄퉈가 인간을 만드는 과정은 더욱 힘들었다. 처음에 붉은 돌로 인간을 만들었지만 실패해서 귀신이 되었고 진흙으로 만든 것은 그만 항아리가 되어버렸다. 파초 잎과 옥수수 잎으로 만들었더니 메뚜기가 되었고, 찰밥으로 만들어보려 했더니 향기로운 술이 되고 말았다.

무슨 재료를 써야 좋을까 고민하던 미뤄퉈는 마침내 밀랍에 꿀을 섞어 반죽하여 인간을 빚었다. 그리고 그것을 네 개의 상자 속에 넣어두고 270일이 지나 뚜껑을 열었다. 그랬더니 상자 속에서 야오족과 좡족, 한족과 먀오족이 나왔다. 미뤄퉈는 그렇게 힘들게 만든 인간에게 자신의 젖을 먹였다. 부누야오족 사람들은 지금도 인류의 어머니인 미뤄퉈를 기억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노래를 부른다. 미뤄퉈에 대한 야오족사람들의 존경심은 또한 ‘아기포대기의 노래(背帶歌)’에도 들어있다.

광시 좡족자치구박물관에 전시된 아기 포대기.

야오족의 어머니들은 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외손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정성껏 아기포대기를 만들었다. 아기를 보호해줄 수 있는 온갖 다양한 문양을 수놓아 고운 포대기를 만들어 시집간 딸이 첫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린다. 첫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 어쨌든 첫 아이가 태어나는 건 경사스러운 일이다. 마침내 딸이 첫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날, 어머니를 비롯한 외가의 식구들은 아기포대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선물을 장만한다. 그리고 좋은 날을 골라 부자오(布覺: 여자 쪽의 가수)를 앞세워 딸의 집으로 간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예물을 준비하여 귀여운 외손에게 아기포대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행렬이 딸의 집에 도착하면 그 집 식구들이 모두 나와 영접한다. 문 앞에는 남자 쪽의 가수인 부쌍(布桑)이 기다리고 있다. 부자오가 “은별이 땅에 내려온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노래하면 부쌍이 화답한다. “하늘이 금을 줍게 해주어 고맙고, 땅이 은을 줍게 해주어 고맙지요.” 둘의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태양의 금빛이 포대기의 앞면을/ 달의 은빛이 포대기의 속을 보내주었어요.”

“첫 번째 포대기를 잊어버리면/ 인류는 번성하지 못한다오.”

여기에서 ‘첫 번째 포대기’는 지고무상의 여신 미뤄퉈가 전해주는 것이다. 미뤄퉈는 야오족 사람들의 생명과 영혼의 근원이며 포대기는 대대로 이어지는 민족의 상징인 동시에 생명의 요람이다. ‘포대기의 노래’는 미뤄퉈를 잊지 말라고 노래한다. ‘포대기의 노래’ 12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농사짓는 자에겐 부지런할 것을, 지식인에겐 도리를 제대로 할 것을, 노인에겐 젊은 시절을 잊지 말 것을, 젊은이에겐 노인에게 잘 할 것을 두루 당부한다. 미뤄퉈가 전하는 도리를 잊지 말고 미뤄퉈가 열어놓은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물고기는 물보라를 보며 꼬리 흔들고/ 새는 푸른 잎을 보며 즐거워하네/ 외손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와/ 외할머니가 아기포대기 만들었네/ 포대기가 그물로 변해/ 하늘의 별들을 거두기를/ 별들이 등불 되어 책 읽게 하여/ 외손 뱃속에 문장 가득 들어가 총명해지길.”

광시 좡족자치구박물관에 전시된 아기포대기 아래엔 이런 외할머니의 노래가 적혀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업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은 자신의 딸에게 고운 아기포대기를 만들어주며 그 속에 미뤄퉈의 영혼을 담았다. 창세의 여신과 자신, 그리고 자신의 딸과 그 아이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아기포대기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줄이며 여성들의 지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광장에서는 오늘도 아기포대기 대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줌데렐라’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마도 여신들의 신화가 계속 되는 한, 줄기차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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