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선 아우른 조선 도맥의 정수
정북창은 조선 시기의 선도 인물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기이한 행적과 일화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도교사에서 학술적으로 차지하는 비중도 크기 때문에 조선의 선도를 얘기하게 되면
우선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바로 정북창인 것이다.
정북창은 본명이 렴,
별호가 북창(北窓)으로 조선 중종(中宗) 원년(1506) 온양(溫陽) 정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후일 부친인 정순붕(鄭順朋)이 우의정, 중부(仲父)인 정백붕(鄭百朋)이 형조판서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전형적인 사대부 가문 출신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벼슬길에는 본래부터 관심이 없어서 대과(大科)에도 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위의 추천으로 마지못해 관상감(觀象監)·혜민서(惠民署)·장악원(掌樂院) 등의 관리를 지냈는데,
이는 그가 천문(天文)·의약(醫藥)·음률(音律) 등에 정통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포천(抱川) 현감을 끝으로 더 이상 관직에 있지 않고 양주(楊州) 괘라리(掛蘿里)에 은거,
수련에 전념하다가 세상을 뜨니 향년 44세,
때는 명종(明宗) 4년(1549)이었다. 짧은 생애에 높지 않은 벼슬,
그의 공적인 삶은 결코 화려하달 수 없지만 그의 내면의 삶,
도인으로서의 삶은 그가 후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할 때
너무나도 길고 풍성한 의미의 일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뛰어난 신통력과 예지력의 소유자
전설에 의하면 정북창은 "나면서 말을 할 줄 알았다(生而能言)"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자질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그가 선도를 공부하게 된 과정은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에 의하면 김시습(金時習)에서
중 대주(大珠)로 이어진 조선 도교의 도맥을 계승함으로써라고 한다.
그가 산사(山寺)의 고승들과 교유(交遊)하기를 즐겨했던 것을 보면
그의 선도 수행에는 불문(佛門)과의 관계가 적지 않았음이 엿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소시부터 수련에 마음을 두게 된 것은 온양 정씨의 가학(家學)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온양 정씨 문중에서는 정북창뿐만 아니라 그보다 9세 연장인 종형 계향당(桂香堂) 정초(鄭礎) 역시
선도 인물로서 높은 명망을 지니고 있어서 선도 수행은
정북창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가학의 한 경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한 자질로 수련에 몰두했던 정북창이 일찍이 그 신통력으로
도계(道界)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것임은 쉽사리 추측할 수 있다.
한때 그는 산사에 들어가 선가(禪家)의 육통법(六通法)을 연마,
사흘 만에 산 아래 백 리 바깥의 일을 가만히 앉아서 모두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일화 중의 하나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정씨 집안에서 종을 시골로 심부름 보냈는데 귀가할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오질 않아 걱정하다
못해 정북창에게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때 정북창이 잠시 명상에 잠겼다가 말하기를,
그 종이 아무 고개를 넘어오다가 양반 행차에 불경한 짓을 해서 붙들려 맞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한참 후 종이 도착하여 사실을 확인한즉 과연 정북창이 말한 바와 같아서 온 집안이 탄복했다는 이야기이다.
정북창은 또한 새·짐승의 말을 알아듣기로 유명하였다.
어느 날 잔칫집엘 갔다가 새 소리를 듣고 그 집 술이 무덤가에서 거둔 밀로 빚은 것임을 간파한 일,
그리고 이로 인해 고을 원님에게 붙들려갔다가
고을 원님이 사생아라는 내력을 역시 새 소리에 의해 알아낸 일 등은 민간에 널리 유행하였던 설화이다.
정북창은 예언 능력도 뛰어났다.
그는 6형제 중 장남이었는데 유독 셋째인 십죽헌(十竹軒) 정첨(鄭石詹)의 부인인 구씨(具氏)를 존중함이 유별났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우리 집안은 모두 제수씨의 자손이 될 것인데 내가 어찌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과연 손자 대에 이르러 형제들이 무후(無後)하게 되자
십죽헌의 자손이 출계(出系)하여 대를 이었다.
정북창은 음률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휘파람 불기,
즉 소법(嘯法)에 뛰어났다.
소법은 선도 수행에서 깊은 내단의 공력을 바탕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으로
중국의 경우 일찍이 위진(魏晉) 시기의 선인 손등(孫登)이 이 방면의 대가로 손꼽혔었다.
언젠가 정북창의 부친인 정순붕(鄭順朋)이 강원감사로 있을 때 금강산엘 놀러갔었는데
갑자기 계곡을 진동하는 큰 휘파람 소리가 들려 시중들던 산사의 중들이 놀라 용의 울음소리인가 여겼는데,
알고보니 정북창이 낸 소성(嘯聲)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고고한 은일군자의 삶
정북창의 이런 신이한 행적은 당시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일찍이 부친 정순붕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가 어린 나이로 수행하였다.
북경에 도착하자 유구국(琉球國)의 사신이 찾아와
{고국에서 점을 치니 진인(眞人)을 만나리라 했는데 당신이 바로 그분}이라며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때 소문을 듣고 사신으로 왔던 각국 사람들이 객관(客館)으로 찾아왔는데
정북창이 각 나라의 말로 응대하니 모두들 경탄하고 천인(天人)이라 칭하였다.
정북창은 짧은 생애 동안 그의 도력(道力)과 관련한 수많은 일화를 남겼지만,
만년에는 세상에 조금도 뜻을 두지 않고 고고한 은일군자(隱逸君子)로서의 삶을 지켰다.
그의 풍채는 마치 구름을 탄 학처럼 탈속한 모습이었고 대낮에도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다.
아울러 그의 고결한 인품,
심오한 학문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칭송이 자자하여 인종(仁宗)이 세자 때에 그의 명성을 듣고,
즉위하면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과 더불어 정승을 시켜야 할 인물로 손꼽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종이 즉위 후 급서(急逝)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는 44세 되던 해 세상에 오래 있지 않을 뜻을 굳힌 듯 주위에 미리 이승을 떠날 날짜를 말하고
스스로 만사(輓詞)를 지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生讀破萬卷書 평생에 만 권의 책을 읽었고,
日飮盡千鍾酒 하루에 천 잔의 술을 마셨다네.
高談伏羲以上事 복희씨 이전의 일만 얘기하고,
俗說從來不卦口 속된 얘기는 입에 담지도 않았지.
顔回三十稱亞聖 안회는 삼십에도 성인에 버금갔거늘,
先生之壽何其久 선생의 삶은 어찌 그리 길었던고.
이 시는 그의 도인으로서의 삶의 요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4세의 수명을 어찌 그리 길었느냐고 자문(自問)하는 그의 마음 계제는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여 절대의 시공간을 노닐고 있는 경지인 것이다.
그가 조용히 좌화(坐化)한 날,
부근의 주민들이 그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는 백일비승(白日飛昇)의 설화가 후일담처럼 전한다.
유·불·도 삼교에 박통한 학자
지금까지 길게 서술한 정북창을 둘러싼 갖가지 설화들은 그를 신통력을 지닌 선인으로서 장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정북창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었고 따라서 그가 남긴 저작물을 통해
객관적·학문적으로 분석,
평가되어야 하는 도교 학자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이제 그의 학문세계, 그리고 그것에 대한 후세인들의 평가에 관해 알아보기로 하자.
정북창이 계승하고 있는 선도의 맥에 대해서는 앞에서 잠깐 얘기한 바 있다.
『해동전도록』에 의하면 그는 최치원(崔致遠)으로부터 이어지는 내단학(內丹學)을 조선에 들여와 크게 성취시킨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학문세계는 도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유교는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가훈(家訓)?에서 초학자는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을 반드시 학습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은
그가 유교를 생활원리로서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교와 더불어 불교도 멀리하지 않았는데,
자주 산사에 가서 수련을 하거나 불승(佛僧)들과 교유한 사실이 그의 시문(詩文)에 나타난다.
그는 유학자로서 선배인 서화담(徐花潭)을 존경하였고,
도인으로서는 수암(守庵) 박지화(朴枝華)와 친하게 사귀었다.
박지화 역시 당시 도계의 저명한 인물로 후일 수선(水仙)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정북창 사후 정북창의 막내동생 고옥(古玉) 정작(鄭 )의 사상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학문내용, 교유관계 등을 종합해볼 때 정북창은 유·불·도 삼교합일(三敎合一)의 입장에 섰던 도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후세인들의 정북창의 학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이 점에 주목하여 그를 삼교에 박통(博通)한 인물로 자주 표현하였다.
한학(漢學) 사대가(四大家) 중의 일인이었던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들어보자.
북창은 태어날 때부터 신령스러워 널리 삼교에 통달하였는데,
수련은 도교와 비슷하고, 깨달음은 불교와 흡사하나,
윤리는 우리 유교를 근본으로 하였다
(北窓生而靈異 博通三敎 其修攝似道 解悟類禪 而倫常行誼一本吾儒).
진인의 경지를 추구한 수련인
그러나 정북창은 삼교에 널리 통달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인의 경지를 추구하였던 수련인이었다.
그의 선도 이론은 그가 남긴 저작 『용호비결(龍虎秘訣)』을 통해 파악해볼 수 있다.
『용호비결』은 당시 수련인들이 중국 도서(道書)에만 의존해 어렵게 공부하던 실정에서 탈피하여
한국 선도의 입장에서 새롭고 쉽게 쓰여진 도서로서 정북창의 한국 선도에 대한 자부심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정북창이 소시에 중국에 갔을 때 한 중국 도사를 만났는데 그가 조선의 선도를 깔보자
정북창이 청산유수로 선도 이론을 설파하여 그를 굴복시켰다는 일화 역시
정북창이 평소 한국 선도에 대해 주체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무튼 『용호비결』은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도서이자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창작된 최초의 도서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정북창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우선 단경(丹經)의 왕이라 칭하는 『참동계(參同契)』의 난삽함을 비판하고
초학자를 위하여 쉽게 선도에 입문할 수 있는 수련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어서 폐기(閉氣)·태식(胎息)·주천화후(周天火候) 등 각 수련 법식에 따른 수련의 효과,
즉 신체적 징후 및 정신적 경지에 대해 명쾌히 해설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도서(道書) "용호비결"
이러한 『용호비결』이 한국 도교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매우 높다.
우선 『용호비결』은 정북창 당대뿐만 아니라 후세의 선도 수행자들의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서 정북창을 비롯한 조선의 선도 수행자들을 단학파(丹學派)라고 불렀는데
『용호비결』은 바로 이 조선 단학파의 교과서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용호비결』은 조선의 의학 사상, 특히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원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의보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허준만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다.
『동의보감』의 기획에는 당대의 여러 학자들이 관계했는데,
정북창의 막내 아우 정작이 유의(儒醫)로서 참여하여 결정적인 이론을 제공하였다.
『용호비결』에서 전개된 정기신론(精氣神論)이 『동의보감』의 독특한 도교 의학체계를 구성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정북창은 각 방면에 걸친 그의 탁월한 도력으로 인하여
후대에 이르러 점술·풍수학(風水學)의 대가,
의술의 달인(達人) 등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근세에는 신종교 측에 의해 말세를 예언한 도통자로서 추앙되기도 한다.
아울러 온양 정씨 일문에서는 정북창과 그의 종형 정초(鄭礎) 이후에도
정작(鄭 )·정지승(鄭之升)·정회(鄭晦)·정돈시(鄭敦始)·정두경(鄭斗卿) 등
조선도교사상 저명한 선도 인물들이 연속 배출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정북창이 그의 일문에 미친 사상적 영향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정북창의 대표적 저작으로는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 부록된 『용호비결』을 비롯,
온양 정씨 문집인 『온성세고(溫城世稿)』에 실린 45수(首)의 시와 ?가훈?이 있다.
그의 묘소는 생시에 그가 집안의 장지로 친히 잡아두었던 경기도 양주군 사정동(砂井洞) 산록에 있는데,
이 산은 온양 정씨의 선영(先塋)으로 현재까지 6백여 년 동안 잘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남양주군에는 그가 은거, 수련했던 장소가 지금도 정씨골이라는 명칭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수단의 도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이제 그에 관한 책이 소나 말에 가득 실어도 모자라고, 집 한 채를 다 채울 정도로 많은 데다가, 또한 그를 표현한 말이 명확하지 않아서 황훌 하니 참뜻을 알기가 어렵다, 폐기 閉氣
(복기 또는 누기라고도 한다.<황정경>(24)에 "신선도사라 하여 달리 신이한 술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과 기를 쌓아가는 것을 참된 길로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이른 말이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배우는 이가 처음 손댈 방법을 알지 못하여 장생을 얻으려다가 도리어 요절하는 사람이 많았다.
<참동계>(2) 라는 한 권의 책은 실로 단학의 시조라고 할 만한 책이지만 생각건대 이 또한 천지의 이치를 참고하여 괘와 효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어서 처음 배우는 사람은 조개 껍질로 바닷물을 헤아리려는 것과 같아 능히 짐작하기 어려운 바가 있다.
이제 난해한 것은 다 빼고 입문에 간절하고도 쉬운 것을 몇 개의 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자 한다.
만약 능히 깨달을 수 있다면 한마디 말로도 족할 것이다. 대개 처음의 시작은 폐기(3) 뿐이다. (이것이 이른바 한마디의 비결이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도이다. 옛사람들은 누구나 이것을 숨겨서, 내놓으려 하지 않았고, 알기 쉬운 말로 하려고도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처음 시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기식氣息 가운데에서 단을 수련해야 함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금석에서 단을 구하였기 때문에 장생을 얻으려 하다가 도리어 요절하였으니(4)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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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은 <용호비결> 원문에 붙인 후세 학인의 주註 2 - 한나라 외계 사람 위백양魏伯陽의 책. 수단修丹에 관한 책으로는 최초의 것으로 알려진 책으로 내용이 모두 역易으로 표현되어 있음.
3 - 예로부터 폐기를 폐식閉息으로 오인하여 숨을 멈추는 식의 호흡 공부를 하다가 몸에 부작용이 나타나는 등 잘못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 '閉'가 '닫는다'는 말이긴 하나 숨[息]이 아니라 기운을 닫는다는 것이다.
폐기는 숨을 멈추지 않고 기운이 단전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못 해석하므로. 봉우 선생은 머문다는 뜻을 가진 '留'자를 써서 유기'留氣'라고 하였다.
배에 기운이 차곡차곡 아랫배에 쌓인다 하여 누기累氣, 적기積氣, 축기蓄氣 등과 같은 용어도 사용하는데 모두 같은 의미이다.
4 - 연단煉丹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금속이나 약물로 단약을 만들어 오래 살고자 그것을 먹었다가 오히려 일찍 죽은 일이 많았음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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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폐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고 다리를 포개어 단정히 앉아서 (이른바 불가의 금강좌(5)이다.) 눈썹을 발처럼 드리워 내려다보되 눈은 콧등을 대하고 코는 배꼽 언저리를 대하며 (단학공부의 정신은 온전히 이에 있는 것이다. 이때 등뼈는 마땅히 수레바퀴 모양(6)으로 둥글게 하라.) 들이쉬는 숨은 면면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 내쉬는 숨은 조금씩 아주 미미하게 하여(7) 항상 신과 기로 하여금 배꼽 아래 한 치 세푼의 자리에 있는 단전(8)에 서로 머물게 하라. (숨을 꾹 참고 기를 내보내지 않을 필요는 없다. 참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다만 의식적으로 기를 아래로 보내되 대략 소변 볼 때와 같이 하면 된다.(9) 이른바 내쉬는 숨은 손풍(10)에 힘입는다 하는 것이다. 진실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머리를 자연스럽게 숙여 아래를 보되 눈은 콧등을 보고(11) 코는 배꼽 언저리를 대하게 하면(12) 기는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게 된다. 폐기의 초기에는 가슴이 번거롭게 꽉 차는 듯하거나 혹은 뱃속에서 찌르는 듯 아프기도 하고 우레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내려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 좋은 징조이다. 상부의 풍사(13)는 바른 기운의 핍박을 받게 되면 공동처(14)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 보내는 길을 얻은 연후에야 기는 스스로 평안해지고 병도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공부의 첫 길이요 또한 편향증험(15)이라고도 한다. 가슴앓이나 배앓이로 사람이 더욱 마음을 다하여 수련한다면 그 효과가 매우 신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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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불가의 수련 자세로서, 두 다리를 꼬고 앉는 가부좌跏趺坐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 수련 시에는 반드시 가부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앉아 있기에 편한 자세로 앉아서 수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
6 - 실제로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척수를 곧추세우지 말고 척추의 자연스러운 곡선은 그대로 유지하여 앉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7 - 드나드는 숨을 일부러 또는 억지로 가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가운데 가늘게 호흡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8 - 기를 모으는 곳으로 바다와 같이 많은 기를 모을 수 있다고 하여 기해氣海라고도 한다.
9 - 오줌을 누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일부러 힘을 주어 기를 내리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10 - 손巽은 역괘易卦중 팔괘의 하나인데 바람과 유순柔順함을 나타낸다.
11 - 눈으로 코끝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고 코끝을 볼 정도로 눈을 내리뜨라는 것이다.
12 - 눈을 내리뜨고 머리를 약간 숙이고 호흡을 하면 코가 배꼽 부근을 대하는 것과 같이 된다.
13 - 풍병, 울화병등 몸을 해롭게 하는 기운.
14 - 기해氣海, 즉 단전을 뜻함.
15 - 한 조각 새참을 먹는 것처럼 실제로 조식의 효능을 경험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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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생각하고 수련함으로서 공부가 차츰 익숙하게 되어 이른바 현빈일규(16)를 얻게 되면 백 가지 구멍과도 모두 통하게 된다.(17) (태는 구명 가운데에서 쉬는 것이니 이 한 구명을 얻는 것이 곧 선도를 닦는다는 것이다.)
일규의 얻음으로 말미암아 태식을 하고, 나아가 주천화후도 하고 결태도 되는 것이니 일규를 얻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 것이 없다. 어떤 사람은 방문(18)의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라 하여 행하려 들지 않으니 애석한 일이다.
변화하여 날고 솟구치는 술법은 감히 내가 말할 바가 못 되지만 양신(19)하는 데 있어서는 천 가지 방문(20)이나 백 가지 약이 있다 하더라도 이에 비할 수 없는 것이라,
이 공부를 한 달만 행하면 백 가지 질병이 모두 사라질 것이니 어찌 마음을 다하여 행하지 않겠는가? 대체로 풍사의 우환은 혈맥 속으로 숨어들어 드러나지 않게 몸속을 돌아다니는데도,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흉기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것이 오래 되어 경맥을 따라 고황(21)에 들게 되는데 그런 연후에는 의사를 찾아 약을 써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의가는 병이 난 후에 다스리지만 도가는 병이 나기 전에 병을 다스린다.)
정기와 풍사는 물과 불같아서 서로 어울리지 못하므로 정기가 머물러 있으면 풍사는 저절로 달아나서 백 가지 맥이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삼궁(22)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게 될 것이니 질병이 무슨 까닭에 생기겠는가?
좀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수련을 한다면 반드시 수명을 연장하여 죽을 기한을 물리치게 되겠지만 그 찌꺼기만 얻더라도 평안하게 천명을 마칠 수 있으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니,(23) 내가 항상 이 책을 여러 군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 또한 서로 사랑하는 도인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나의 외람됨을 용서해 준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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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현빈은 단전의 다른 이름으로 곧 단전에 한 개의 구멍이 난다는 뜻.
17 - 현빈일규 이후 정진하여 많은 진전이 있게 되면 기를 몸의 원하는 곳으로 마음대로 보낼 수 있다는 의미.
18 - 옳지 할은 법. 즉 이단이라는 뜻.
19 - 신神을 기름. 즉 정신 수련
20 - 처방을 적은 글.
21 - 고膏는 심장의 아랫부분, 황 은 심장의 윗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에 병이 생기면 낫기 어렵다.
22 - 상궁上宮은 이환궁泥丸宮, 중궁中宮은 강궁降宮, 하궁下宮은 기해궁氣海宮이다.
23 - <논어> 제 12장 안연顔淵.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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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생각하건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순리로 하면 사람이 되고 역리로 하면 신선이 된다고 하니,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넷을 낳고, 넷이 여덟을 낳고, 그렇게 육십사에 까지 이르게 되어 온갖 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은 인도이며 (순리로 밀고 가는 공부) 다리를 포개어 단정히 앉아서 눈썹을 드리우며 입은 다물고 만 가지 어지럽고 번거러운 일을 수습하여 아무것도 없는 태극의 경지로 돌아가는 것은 선도이다. (역리로 밀고 가는 공부)
참동계>에 소위 뜻을 버리고 허무로 돌아가서 항상 무념의 상태가 되고 (무라는 것은 태극의 본체이다.) 스스로 증험하여 차츰 밀고 나아감에 마음이 하나 되어 종횡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선도 수련의 첫째 뜻이다.
다만 수선修仙하려는 사람은 그 뜻을 세우는 것이 귀한 것이다. 몸의 원기가 쇠약해진 후에는 비록 백 배의 공을 들인다 해도 상선의 반열에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폐기라는 것은 눈을 깃발로 삼아 기의 오르내림과 전후좌우를 뜻하는 바대로 하지 않음이 없다. (기를 오르게 하려면 위를 보고 기를 내려가게 하려면 아래를 본다.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을 뜬 채로 위를 보면 좌측의 기가 돌아서 올라온다.
기를 내리는 데는 몸 앞쪽의 임맥을 쓰고 기를 위로 올라가게 하려면 몸의 뒤쪽에 있는 독맥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이 가면 기도 가고 신이 머물면 기도 머무는 것이니, 신이 가는 곳이면 기가 가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마치 군중에서 군을 지휘할 때 깃발을 사용하여 군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눈으로서 명령하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위를 보고자 할 때는 눈을 뜨지 않고 다만 눈동자만을 굴려 위를 보아도 된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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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태상노군太上老君,즉 노자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상청황정내경경上淸黃庭內景經> 36장이 있고, 동진東晋의 위화존魏華存이 전하는<상청황정외경경上淸黃庭外景經> 24장이 있다.
양생養生의 요결을 다룬 것들로서, 황黃은 중앙의 색色이고, 정庭은 사방四方의 가운데이며 뇌중腦中과 심중心中과 비중脾中을 가리키기 때문에 황정黃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련의 여러 도교 경전들을 총칭한다.
25 - 눈으로 기를 움직이는 것은 폐기의 시초에 행하는 것이 아니다. 수련의 정도가 깊어 조식 수련이 1분 이상이 경과한 후라야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초심자가 섣불리 행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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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개 몸의 위쪽은 기가 성하고 아래쪽은 기가 허해서 아플 때는 상기가 되어 아래위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므로, 늘 기가 아래로 내려가 중궁(26)에 있도록 힘써서 비장과 위장이 화창하고 혈맥이 잘 순환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다만 세상의 일반 사람들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을 수련하여 지키는 요체도 역시 이와 같이 몸의 중궁을 지키는데 있는 것이다.)
능히 혈맥으로 하여금 두루 돌게 하여 임맥과 독맥이 모두 통하게 되면 수명을 연장하고 죽음의 기한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단을 수련하는 길은 반드시 폐기하는 것으로 시작의 첫걸음으로 하여, 다리를 포개고 손을 단정히 하며 얼굴을 온화한 빛이 돌게 하고, 눈은 발을 드리운 듯 아래를 보아, 반드시 신과 기가 배꼽 아래 단전 가운데 머물게 하면 몸의 위쪽에 있는 풍사가 마치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내리듯 흘러내려서 먼저 가슴에서 배로 내려가게 된다. (처음에는 배에 가득 차고 다음에는 배가 아프게 된다.) 이 길을 얻은 연후에는 몸이 화평해지고 땀이 촉촉이 나면서 온몸의 모든 맥이 두루 돌게 되니, 곧 마음이 텅 빈 듯하여 눈앞에 백설이 펄펄 내리는 듯 느껴지고 내가 육신에 깃들어 있는지 육신이 내 속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며, 매우 고요하고 아득하여 황홀한 경지가 되어 자신은 이미 음과 양이 나누어지기 이전, 즉 태극이 갈리기 이전의 경지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참된 경계이며 진정한 정신 수련의 길이다. 이 밖의 것은 모두 삿된 말이요, 망령된 행동이다.
태식 胎息 (<태식경>에 이르기를, 태는 복기하는 가운데 맺고, 기는 태가 있는 가운데에서 쉰다. 기가 몸안에 들면 살게 되고 신이 형체에서 떠나면 죽게 되는 것이니 오래 살고자 하면 신과 기가 서로 같이 머물게 하라. 신이 움직이면 기도 같이 움직이고 신이 머무는 곳에는 기도 머문다.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길이다.)
폐기하는 요령이 점점 익숙해져서 신기가 좀 안정된 후에는 차차 기를 배 밑에 털이 난 데까지 밀어내려 이 기식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를 세심하게 추구하면서 그 출입을 따라 한 호흡 한 호흡으로 하여금 항상 그 가운데 있게 하여 (이를 소위 현빈일규 하는데 수단의 도는 이곳에 있을 뿐이다.) 입과 코 사이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면 (항상 한 치의 나머지 기운이 입과 코 사이에 있도록 한다.) 이는 소위 모태 안에 있을 때의 호흡이니 이른바 귀근복명(27)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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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천간天干으로는 무기戊己에, 오행五行의 토土, 장부로는 비장, 위장에 해당된다.
27 - 호흡의 근본인 태식으로 돌아가 참생명을 회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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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말하기를 근본으로 되돌리고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인데, 사람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는 입이나 코로 호흡하지 아니하고 탯줄이 어머니의 임맥에 연결되어 통하고 임맥은 폐로 통하여 어머니가 숨을 내쉬면 또한 태아도 숨을 들이쉬다가, 세상에 태어나 탯줄이 끊어진 후부터는 입과 코를 통해 호흡하게 되어 몸의 영양을 잃고 진기가 녹아 없어지니, 이로부터 질병이 생기고 요절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귀복하는 법을 얻어서 정진을 그치지 않는다면 벽곡(28)을 하고 등선(29)한다는 것이 모두 이 법에 있는 것이다.
옛사람의 시에 "집이 낡아도 고치기 쉽고, 약(30)은 말라도 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네, 다만 귀복법을 알기만 하면 금은 보화를 산처럼 쌓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태식이 능해진 후에야 이 기가 부드럽고도 온화해지고 안정이 되어 마침내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경에 말하기를 기가 안정되면 호흡이 없어진다 하였다. 옛적에 갈선옹(31)이 매년 한더위에는 깊은 연못에 들어가 열흘만에 나왔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폐기로서 태식을 한 까닭인가 한다.
주천화후 周天火候
(화에는 안과 밖, 느리고 빠름이 있다. 수련의 초기에는 기와 혈이 모두 허하므로 폐기를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화후가 일어나기 쉽지만 배꼽과 배사이에 기가 한동안 흩어지지 아니하면 반드시 따뜻한 기운이 그 사이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기혈이 점점 실해지고 화기가 더뎌진다. 또한 문무진퇴의 법(32)이 있으니 잘 살펴 수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천화후라는 것은 열기가 온몸을 도는 것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과 기가 서로 배꼽과 배 사이에 머물러 있을 때 의식을 두어 부는 것이 능해지면 (이 때에 문무화후와 근양법도(33)가 있으며 또한 진퇴의 법이 있으니 아주 조심스럽게 살펴 가며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킨 연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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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것을 말함.
29 -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름.
30 - 여기서는 기운, 기력.
31 - 중국 삼국 시대 오吳의 도인道人,강소江蘇 사람. 본명은 갈현葛玄으로 뒤에<포박자抱朴子>로 유명한 갈홍葛洪의 증조부이다. 혼자 힘으로 학문을 통달했으나, 벼슬을 즐겨 하지 않고 탄금彈琴에 전심, 노장老莊의 글을 암송하며 명리를 떠난 생활을 했다. 아버지의 사후 장생불사를 희구하여, 적성산赤城山,나부산羅浮山,천태산天台山등 여러 명산을 돌아다니며 수행하였다. A.D. 244년에 득선득선했다 한다.
32 - 문화文火와 무화武火 그리고 진화進火, 퇴화退火의 법.
33 - 기를 굵게 근중으로 보내는 법과 가늘게 양중으로 보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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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잘 진화하면 방광이 불같이 뜨거워지고 좌우의 두 신장이 끊는 물에 삶는 것같이 뜨거워서, 허리로부터 아래쪽이 평상시와는 달리 시원하게 느껴진다. 만약 화후를 가볍게 하지 못하면 곧 뜨거운 불기운이 온몸에 퍼져 도리어 몸에 화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따뜻한 기운이 미미한 상태에서 차츰 뚜렷해지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열기가 이르는 곳이 점점 환하게 열리면서 올라간다.) 마치 꽃봉오리가 점점 피어나는 것 같아서 소위 빛나는 연못에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신수화지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비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하고 아주 흔들림이 없는 고요한 경지를 돈독히 유지할 때에 쓰는 말이니 바로 이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태를 오래 간직하고 있으면 열기가 점차 왕성해져서 (이것이 소위 꽃봉오리는 점점 피어나고 감로甘露는 점점 무르익어 간다고 하는 것이다. 이 때에 수기가 위로 거슬러 올라와 달콤한 침이 입안에 고여 예천醴泉이 되는 것이니 소위 옥장금액이라 하는 것이다.)
뱃속이 크게 열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처럼 되면 삽시간에 열기가 온몸을 두루 퍼지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주천화후라 하는 것이다. 법도대로만 운화를 한다면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배꼽 아래 한 치 세 푼의 자리가 곧 하단전인데 상단전 (이환궁) 과 더불어 소리가 울리듯 서로 응하면 이른바 옥로 (단전의 다른 이름) 의 불은 따뜻하고 정상 이완에 붉은 노을이 난다고 하는 것이다. 상하단전이 물을 대듯 어울려 끝이 없는 고리모양으로 둥근 형상을 이룰 것이니 다만 이 단전의 불기운을 따뜻하게 길러 잃지 아니하면 (하루 사이에 자오묘유(34)로 진화를 해야 하며 따뜻한 기로 하여금 한숨이라도 진화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항상 밤낮으로 하루같이 수련하여 열 달이 된 후에야 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청명한 기가 위로 올라와 이환궁에 응결한 것이 선가에서 말하는 현주요, 불가에서 말하는 사리가 되는 것이니 이것에는 필연적인 이치가 있다. 성도 하느냐 못 하느냐에 이르러서는 각자의 정성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며 다만 일찍 달성하는 것이 귀한 것이다.
문득 듣자 하니 이른바 화火로써 약을 고며 단으로써 성도 한다는 말은 신으로써 기를 제어하고 기로써 신의 형체에 머물게 하여 모름지기 서로 떨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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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글자 그대로 하면 하루 사이에 자시, 묘시, 오시, 유시 이렇게 네번 진화를 하라는 것이나 실제로 그렇게 네 번에 걸쳐 8시간을 수련하라는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열심히 수련하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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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게 하는 것을 말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술은 알기 쉬우나 도는 만나기조차 어렵고 비록 우연히 만났다 하더라도 전심전력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까닭에 천 명, 만 명이 배워도 끝내는 한두 사람의 성공자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정성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또 시에 말하기를 "정기가 항상 몸속에 가득하면 한가 한곳에서 초연하게 지낸들 거리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였다. 달마 선사도 태식법을 얻었으므로 능히 면벽하여 관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정경>에 말하기를 " 사람들은 모두 오곡의 정기로 배를 불리나 나는 홀로 이 음양의 기운으로 배를 불리네!" 하였다.
이 두 시를 가지고 보건대 벽곡은 오로지 태식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진실로 능히 벽곡을 하여 홀로 음양의 기운을 포식할 수 있다면 땅의 문은 닫히고 하늘의 문은 열릴 것이니 어찌 평지에서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지 못하겠는가?
앞의(35) 세 조목(36)은, 비록 각각 이름을 붙이기는 하였으나 오늘 한 조목을 행하고 내일에 한 조목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부는 오로지 페기하는 중에 있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다만 공부에는 깊고 얕음이 있고, 등급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이니 비록 변화하여 하늘을 날으는 술법이라 할지라도 모두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며 오직 배우는 이의 정성에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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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원문은 우삼조右三條이나 그것은 세로 쓰기의 경우이므로 가로쓰기에서는 '우' 대신'상'이라고 해석하였다.
36 - 폐기, 태식, 주천화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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