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강암 송성용

醉月 2008. 8. 20. 08:08

완전한 덕을 갖춘 君子

과거 사대부들은 매·난·국·죽 사군자 중에서도
대나무를 특히 마음을 비우고 높은 절개를 지닌,
완전한 덕을 갖춘 군자로 여겼다.
그래서 때로 사대부들은 스스로 품격이 고상하고 풍채가 소쇄(瀟庚)한 대나무에
그들 자신을 비유하곤 하였다.

『詩經·衛風』에
"기수 저 모퉁이를 보라,
푸른 대나무 청초하고 무성하구나.
고아한 군자가 바로 거기 있도다.
깎고 갈아낸 듯,
쪼고 다듬은 듯,
정중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여,
빛나고 뛰어난 모습이여.
고아한 군자가 바로 거기 있도다.
결코 잊지 못할 모습이여." 라고 하였다.

절차탁마(切磋琢磨)를 말하는 이 시는
‘빛나며 고아한 군자’인 주(周)의 무공(武公)의 높은 덕과 뛰어난 학문,
우아한 인품을 기수(淇水) 가에 있는 대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에 비유한 것이라 한다.
백거이(白居易)의 <양죽기(養竹記)>는 대나무가 왜 군자들에게 상찬의 대상이 되는가를 잘 말해준다.

 

樹德, 立身, 體道, 立志의 의미를 담아

양죽기에서는 대나무를 어진 사람에 비유하여
“대나무가 어진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나무는 그 본성이 여물다.
여물기 때문에 덕을 세울 수 있다.
군자는 그 본성을 보고 잘 서서 뽑히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대나무의 성질은 바르다.
바르기 때문에 입신할 수 있다.
군자는 이 성질을 보고 중심을 잡고 서서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나무의 속은 비어 있다.
비었기 때문에 도를 체득할 수 있다.
군자는 그 속을 보고 쓰임에 응하도록 하고 마음을 비워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대나무는 마디가 곧다.
곧기 때문에 뜻을 세울 수 있다.
군자는 그 마디를 보면 이름과 행실을 갈고 닦아 쉬울 때나 어려운 때
한가지 자세를 유지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기 때문에 군자는 대를 많이 심어 정원의 나무로 삼는 것이다.


백거이는
대나무에서 여물고[固],
바르고[直],
속이 비어 있고[空],
곧은[貞] 네 가지 속성을 발견하고
여기에서
수덕(樹德),
입신(立身),
체도(體道),
입지(立志)라는 네 의미를 도출하고 있다.

한국의 전형적인 선비이며 묵죽(墨竹)의 달인으로 일컬어지던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이 68세 때
백거이의 <양죽기>를 자신의 예술세계에 응용하면서
연세대학교 창설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담묵(淡墨)의 대나무에서 수경(瘦勁)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꼿꼿하게 위를 향하고 있는 대나무들은 완전히 다 자란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더 필요한 대나무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입지는 하였지만 아직 많은 지도편달이 요구된다.
대학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다.
농묵(濃墨)으로 그려진 대에서 일단 위를 향해 치켜 올라간 잎에서
청년의 힘찬 기개와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밑으로 숙인 대나무 잎에서는 타자(他者)를 배려하고 겸양하는 마음으로
덕을 쌓고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삶의 자세를 요구한다.
양죽기에서 말하는 수덕, 입신, 체도, 입지를 대학(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廉恥節義로 백성을 다스려라

청대의 정섭(鄭燮)을 비롯하여 과거의 선비들은 대나무를 통하여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때로는 정치가가 어떤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고려 때 문신이었던 안축(安軸)이
「강릉 공관의 대나무 묵화를 그린 병풍에 대하여 쓰다.[臨瀛公館墨竹屛記]」라는 글을 보자.
안축은 강릉이 동방의 큰 고을인데도 공관에는 병풍 시설이 없는 것을 보고
검산도인(劍山道人)에게 공관에 가서 대나무 묵화를 쳐 줄 것을 청한다.
그것은 대나무에서 깊이 취할 바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대나무는 품성이 맑아서 허물이 없다.
곧아서 변함이 없다.
비어서 포용함이 있다.
꼿꼿하여 남에게 의지함이 없다.
그래서 옛 현인 군자들이 모두 사랑하지 않음이 없었다.
왕자유(王子猷, 王羲之의 아들인 王徽之)는
‘이 친구가 없다면 어찌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何可一日無此君耶]’라고 하였으니
대 사랑함을 보겠다.
이와 같은 것을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백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지금부터 이 (강릉)공관에 와서 이 병풍 밑에 앉는 자는
대나무의 맑음을 보면 염치심을 품어 백성의 재물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의 곧음을 보면 절의심을 닦아서 지킬 바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의 속이 빈 것을 보면 너그럽게 뭇사람을 포용하여
가혹하고 포악한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의 꼿꼿함을 보면 때에 따라 아부하지 않고 뚜렷이 홀로 설 것이다.
대나무가 사람을 감분시킴이 이와 같으니 이 병풍을 만든 것이
어찌 백성의 복이 아니겠는가?
이 대나무를 보고 이런 마음을 얻게 되면 복된 일이다.
이 대나무를 보고 이런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기록한 이 글을 볼 것이다.”고 하였다.
병풍 속에 그려진 대나무를 보고 염치심,
절의심, 포용심을 갖고 또 아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저항하고 거부하는 몸짓

무척이나 대나무를 좋아한 소식(蘇軾)은
“고기 없는 밥을 먹을 수 있어도 대나무 없는 집에서는 못 산다.
고기를 못 먹으면 야위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속되게 되어 못 쓴다.
야윈 사람이야 다시 살찌게 할 수 있겠지만 선비가 속되면 그건 못 고친다 라고 하였다.
풍죽(風竹)으로 이름을 떨친 송성용이 72세 때 이 내용으로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풍죽을 그렸다.
송성용의 호인 강암(剛菴)의 ‘剛’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대나무이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기에 그 바람에 농묵으로 그린 대 잎은 밀리는 듯 하지만
가지는 도리어 목을 길게 더욱 위쪽으로 들이밀고 있다.
부는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고 있다.
전혀 굽힘이 없다.
하지만 잎 끝은 도리어 평정하기조차 하다.
탈속의 세계를 보여준다.
주어진 역경에 저항하고 거부하는 몸짓으로 의젓하게 서 있다.
운명론적,
숙명론적인 삶의 태도라곤 전혀 없다.
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을 느낄 수 있다.
함석헌은 말한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가?
사람은 인격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격이란 무엇인가?
자유하는 것이 아닌가?
생명은 대듦(거부)이다.”라고.
논어에서 말하는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는 백이와 숙제일 것이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된다.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군자는) 안으로 반성하여 흠잡을 것이 없으니 무엇을 근심하며 두려워하리요.”
등을 연상시키는 풍죽이다.
평생 바람을,
역경을 극복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강직하고 올곧게 살고자 했던
송성용 자신의 일생을 담고자 한 대나무라고 여겨진다.

대나무를 좋아했던 소식의 정신세계와 송성용의 풍죽(風竹) 등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의지를 배우는 것은 어떨지?
대부분의 대학이나 공공건물에는 예술작품이 하나씩 걸려 있다.
이 같은 뜻을 담고 있는 작품을 걸어놓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마련되도록 하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