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을 알고, 체질을 잊어야 한다
1
체질이란 게 기질(氣質)인데, 사람마다 생긴 모습이 다르고 소질과 적성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 체질자체는 좋고 나쁜 게 없다. 각자의 체질대로 살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다들 체질에 연연한다. 자기 체질에 좋은 것을 찾는다. 가히 체질의 노예가 되어 있다. 그러나 체질에 좋은 것만 먹으면 건강해질까? 오히려 몸을 망가지게 할 수 있다.
흔히 체질요법을 말하는데 이걸 분명히 알아야 된다. 가령 ‘발전’에 비교하면, 평상적 발전시스템이 있고 그것이 고장이 날 때는 비상발전을 한다. 우리 몸도 정상적인 생리기전이 작동하는 건강체계가 있고 병이 생기거나 외부에서 뭔가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침입하는 그런 때에는 비상 동원체계가 작동한다. 이걸 면역체계라 그런다.
체질요법을 쓰는 것은, 정상적 건강체계에 이상이 생겨서 비상발전시스템 - 면역체계를 동원해야 하는 경우다. 정상 발전이 안되니까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비상발전 밖에 없고 그래서 체질요법이란 것을 통해서 비상발전에 힘을 불어 넣는 것이다. 비상발전을 하면서 다시 자생력을 회복해가는 것이다. 이런 때는 체질요법이 유효하다.
그러나 비상발전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체질요법이란 걸 자꾸 하면 어떻게 될까? 정상적으로 발전이 되고 있는데 비상발전을 하면 발전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고장이 나거나 비상발전을 꼭 해야할 경우에 못 쓰게 되든지 할 것이다. 그러니까 상시적 건강체계를 작동할 때와 면역체계를 작동시킬 때를 잘 가려야 한다. 가령 소음 체질에 닭고기가 좋다고 매일 닭고기만 먹어대면 어떻게 될까? 없는 병도 만들 것이다. 성인병의 요인을 만들 것이다.
사상체질을 이야기할 때, 곧 잘 ‘폐대간소(肺大肝小)’니 ‘비대신소(脾大腎小)’니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대소(大小)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크다 작다고 하는 것이지 일상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가령 폐가 좀 작아도, 간이 좀 작아도 일상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체질요법을 한답시고 간에 좋으라고 간에 좋은 것만 자꾸 먹어대면, 그게 간으로 다 가는 것도 아니고 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과잉이 되는 부분은 전혀 딴데로 간다. 간 쪽으로 너무 쏠리니까 그것을 억제하는 쪽으로 간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간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충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소리 없이 골병이 드는 거다.
그러니까 체질요법이란 것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건강할 때는 건강체계를 발동하고 정말 어려움에 당도했을 때는 비상 면역체계를 발동하고 이런 삶의 융통성, 슬기로움 이게 필요하다.
2.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1장에 “폐(肺)는 사무에 통달하고 비(脾)는 교우(交遇)에 합당하며 간은 당여(黨與)를 세워주고 신(腎)은 거처를 안정시킨다”는 구절이 나온다,
(a) ‘폐는 사무에 통달하고’라고 하는 것은, 사무에서 공사(公私)의 구분이 정확하고 그래서. 빙공영사(憑公營私)를 하거나 독선적이지 않으면, 그렇게 일처리가 깨끗하면 폐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심(私心)으로 일을 밀어붙치면서 독선에 빠지고 또 남의 말에 귀를 막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폐기능이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b) ‘비는 교우(交遇)에 합당하며’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여러 사람의 입장과 이익을 두루 존중할 줄 알고 조화를 추구하면 비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가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편협하고 편파적이 되면 비장의 기능을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c) ‘간은 당여(黨與)를 세워주고’라는 것은, 인륜에 합당한 처신을 가져가면 그가 속한 혈연관계나 운명집단(= 黨與)이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륜에 합당한 처신을 하면 간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인륜을 흐리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하면 간기능을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d) ‘신(腎)은 거처를 안정시킨다’는 것은, 생존터전의 경영에서 과욕을 부리지 않고 허황된 욕심 없이 생존터전을 안정적으로 가꾸면 신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행수로 대박을 노리고 사행심리를 갖게 되면 신장기능을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체질적 약점, 기질적 약점을 바로 잡는 것은 삶의 방식과 자세를 바로 잡는데 있는 것이지 몸에 좋다는 음식과 약을 먹어서 될 일은 아니란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을 잘 볼 필요가 있다, 1권에 성명론(性命論)과 사단론(四端論)이 나온다. 거기에서 건강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2권 이하에서 병증에 대한 투약요법이 나온다. 이미 건강의 원리가 무너진 사람들, 건강의 원리를 삶에서 실현할 수 없는 사람들을 약물을 써서라도 급한 대로 병증을 치료하자는 방편을 그렇게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성명론>과 <사단론>을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격치고>라는 저술을 잘 살피면 이제마가 말하고자 한 건강의 원리가 무언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사실 체질은 무슨 체질이든 상관이 없다. 체질 때문에 병이 나는 것이 아니다. 일 같은 일을 하고 또 일을 일 답게 열심히 하고 살면 병이 나지 않는다. 일 같지 않은 일을 하고, 일을 일답게 하지 않으니까 병이 난다. 억지를 하고 무리수를 두고 꼼수를 부리고 게을리 하니까 병이 난다. 그러니까 자기 병을 놓고 체질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체질을 탓할게 아니라 잘 못 살았다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건강이 삶에 저절로 따라오게 해야지 그저 건강을 챙기는데 급급하는 삶은 차라리 굴욕이다. 더구나 체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더더욱 굴욕이다. 좀 외람된 이야기지만, 내 건강을 챙기는만큼 세상에 봉사하고 사람에 봉사한다면 체질을 잊고 건강을 잊고 살아도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자신의 체질을 알되 체질을 잊고 살 수 있다면 그게 건강한 삶이다.
체질이란 게 기질(氣質)인데, 사람마다 생긴 모습이 다르고 소질과 적성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 체질자체는 좋고 나쁜 게 없다. 각자의 체질대로 살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다들 체질에 연연한다. 자기 체질에 좋은 것을 찾는다. 가히 체질의 노예가 되어 있다. 그러나 체질에 좋은 것만 먹으면 건강해질까? 오히려 몸을 망가지게 할 수 있다.
흔히 체질요법을 말하는데 이걸 분명히 알아야 된다. 가령 ‘발전’에 비교하면, 평상적 발전시스템이 있고 그것이 고장이 날 때는 비상발전을 한다. 우리 몸도 정상적인 생리기전이 작동하는 건강체계가 있고 병이 생기거나 외부에서 뭔가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침입하는 그런 때에는 비상 동원체계가 작동한다. 이걸 면역체계라 그런다.
체질요법을 쓰는 것은, 정상적 건강체계에 이상이 생겨서 비상발전시스템 - 면역체계를 동원해야 하는 경우다. 정상 발전이 안되니까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비상발전 밖에 없고 그래서 체질요법이란 것을 통해서 비상발전에 힘을 불어 넣는 것이다. 비상발전을 하면서 다시 자생력을 회복해가는 것이다. 이런 때는 체질요법이 유효하다.
그러나 비상발전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체질요법이란 걸 자꾸 하면 어떻게 될까? 정상적으로 발전이 되고 있는데 비상발전을 하면 발전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고장이 나거나 비상발전을 꼭 해야할 경우에 못 쓰게 되든지 할 것이다. 그러니까 상시적 건강체계를 작동할 때와 면역체계를 작동시킬 때를 잘 가려야 한다. 가령 소음 체질에 닭고기가 좋다고 매일 닭고기만 먹어대면 어떻게 될까? 없는 병도 만들 것이다. 성인병의 요인을 만들 것이다.
사상체질을 이야기할 때, 곧 잘 ‘폐대간소(肺大肝小)’니 ‘비대신소(脾大腎小)’니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대소(大小)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크다 작다고 하는 것이지 일상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가령 폐가 좀 작아도, 간이 좀 작아도 일상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체질요법을 한답시고 간에 좋으라고 간에 좋은 것만 자꾸 먹어대면, 그게 간으로 다 가는 것도 아니고 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과잉이 되는 부분은 전혀 딴데로 간다. 간 쪽으로 너무 쏠리니까 그것을 억제하는 쪽으로 간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간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충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소리 없이 골병이 드는 거다.
그러니까 체질요법이란 것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건강할 때는 건강체계를 발동하고 정말 어려움에 당도했을 때는 비상 면역체계를 발동하고 이런 삶의 융통성, 슬기로움 이게 필요하다.
2.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1장에 “폐(肺)는 사무에 통달하고 비(脾)는 교우(交遇)에 합당하며 간은 당여(黨與)를 세워주고 신(腎)은 거처를 안정시킨다”는 구절이 나온다,
(a) ‘폐는 사무에 통달하고’라고 하는 것은, 사무에서 공사(公私)의 구분이 정확하고 그래서. 빙공영사(憑公營私)를 하거나 독선적이지 않으면, 그렇게 일처리가 깨끗하면 폐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심(私心)으로 일을 밀어붙치면서 독선에 빠지고 또 남의 말에 귀를 막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폐기능이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b) ‘비는 교우(交遇)에 합당하며’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여러 사람의 입장과 이익을 두루 존중할 줄 알고 조화를 추구하면 비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가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편협하고 편파적이 되면 비장의 기능을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c) ‘간은 당여(黨與)를 세워주고’라는 것은, 인륜에 합당한 처신을 가져가면 그가 속한 혈연관계나 운명집단(= 黨與)이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륜에 합당한 처신을 하면 간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인륜을 흐리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하면 간기능을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d) ‘신(腎)은 거처를 안정시킨다’는 것은, 생존터전의 경영에서 과욕을 부리지 않고 허황된 욕심 없이 생존터전을 안정적으로 가꾸면 신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행수로 대박을 노리고 사행심리를 갖게 되면 신장기능을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체질적 약점, 기질적 약점을 바로 잡는 것은 삶의 방식과 자세를 바로 잡는데 있는 것이지 몸에 좋다는 음식과 약을 먹어서 될 일은 아니란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을 잘 볼 필요가 있다, 1권에 성명론(性命論)과 사단론(四端論)이 나온다. 거기에서 건강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2권 이하에서 병증에 대한 투약요법이 나온다. 이미 건강의 원리가 무너진 사람들, 건강의 원리를 삶에서 실현할 수 없는 사람들을 약물을 써서라도 급한 대로 병증을 치료하자는 방편을 그렇게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성명론>과 <사단론>을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격치고>라는 저술을 잘 살피면 이제마가 말하고자 한 건강의 원리가 무언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사실 체질은 무슨 체질이든 상관이 없다. 체질 때문에 병이 나는 것이 아니다. 일 같은 일을 하고 또 일을 일 답게 열심히 하고 살면 병이 나지 않는다. 일 같지 않은 일을 하고, 일을 일답게 하지 않으니까 병이 난다. 억지를 하고 무리수를 두고 꼼수를 부리고 게을리 하니까 병이 난다. 그러니까 자기 병을 놓고 체질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체질을 탓할게 아니라 잘 못 살았다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건강이 삶에 저절로 따라오게 해야지 그저 건강을 챙기는데 급급하는 삶은 차라리 굴욕이다. 더구나 체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더더욱 굴욕이다. 좀 외람된 이야기지만, 내 건강을 챙기는만큼 세상에 봉사하고 사람에 봉사한다면 체질을 잊고 건강을 잊고 살아도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자신의 체질을 알되 체질을 잊고 살 수 있다면 그게 건강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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