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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순의 방하 한생각_06

醉月 2014. 6. 30. 20:44
인간의 의식을 믿을 수 없는 이유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이야기 할 때 주목하는 것이 의식(意識)이다. 이를테면 동물에는 문명사가 없고 인간에는 문명사가 있다는 것의 차이, 그 차이를 인간 의식의 발달로 설명한다. 그러나 정말 인간의 의식이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의식이란 것을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일까? 그 점을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불교의 유식학에서는 5식, 6식, 7식, 8식이라는 개념을 쓴다. 7식과 8식은 보이지 않는 세계, 본질계로 통하는 것이니까 이건 일단 차치하고 5식과 6식만을 놓고 보자. 5식이란 건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이라는 다섯 가닥의 감각에 기초하기 때문에 오식(五識)이라고 하는 것이다. 6식이란 게 우리가 말하는 의식인데 이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5식의 통합개념이다. 그러니까 5식의 통합과 상호연관성 정도가 의식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의식(6식)이란 것은 5식이 상호 연관적으로 체계적으로 작동할 때, 그 본래적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5식이 따로 놀거나 단절되나 또는 상호 충돌하면 의식이란 것은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5식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6식(의식)을 갖고 있지만 실제 하는 짓은 5식 수준, 기껏해야 5식에서 6식에 걸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우리 일상에서 의식이란 게 어느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을까?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처럼, 보는 대로 욕심이 동하고 끌려가는 것, 이게 5식 수준이다. 그리고 ‘오매 좋은 것!’ 이런 것도 5식 수준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혹해서 상황판단이 마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5식 상호간의 회로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다. 가령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충고나 조언을 듣는다. 들을 때는 ‘아! 이제부터 달라져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하던 짓을 되풀이한다. 귀로 듣는 것과 몸으로 하는 짓은 따로 노는 것이다. 이식(耳識)과 신식(身識)이 따로 노는 것이다.

5관이 따로 논다는 것,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인식과도 거리가 멀고 합리적 인식과도 거리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또 5식이 상호 충돌하면서 버그를 일으키는 경우도 다반사다. 번연히 보면서도 말은 다르게 하는 것이다. 눈으로 볼 때는 이렇게 보고 그러나 말로 옮길 때는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까 의식이란 게 꼼수밖에 나올 게 없다. 해야 할 것을 안하는 꼼수,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꼼수밖에 나올 게 없다. 합리가 작동하는 게 아니라 합리화의 꼼수만 난무한다.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하지만, 도무지 이성이 작동할 수 없는 이유도 이런 것이다. 5식의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상호충돌하면서 버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통과 공감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자신의 오식 상호간에도 소통이 안 되는 바에야 타자와의 소통이나 공감은 날 샌 이야기이다. 그 점 우리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분명 6식(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걸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5식이란 게 하나의 연관된 체계로서 통합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7식이니 8식이니 하는 어려운 개념을 갖고 오기 이전에 5감 그 각각의 고유한 감수성을 회복하고 오감 상호간의 회로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학습을 통해서 오감의 상호연관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인간발달의 일차적 과제다. 6식의 존재자 내지 6식의 향유자가 인간개발의 첫 출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초가 오감학습(五感學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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