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론의 정리
(1)
수행(修行)이란 개념이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를테면 수행이라면 ‘도가 터지는 것’을 연상하고, 또 ‘도를 닦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또 기(氣)를 쫒아서 신기한 기술을 터득하는 것을 수행이라고도 한다. 또 심신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닦는 것을 수행이라고도 한다.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이제 수행이란 개념을 새롭게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간명하게 인간발달의 공식이 성립하는 교육방법론, 그것을 수행론으로 정리해야한다. 인간발달이란 것은, 인간의 사회성과 사회역사적 생산성을 개발하는 것이다. 사회성도 없고 생산성도 없는 수행, 그것을 수행으로 이름할 수 없다. 전통적 수행론, 각종 유파의 수행론들도 이런 차원에서 합리적 핵심만 남기고 다 청산할 필요가 있다.
수행론을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이렇다. 근대문명은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있다. 과학기술의 개발이나 도구적 개발로 문명사적 위기를 넘어갈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느냐, 그 하나의 문제로 압축된다.
그러나 인간발달의 방법론, 인간 개발론이 없다. 진화를 말하지만, 인간의 진화에 대한 실천방법론이 없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인간발달의 수행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수행론은 실재론이다. 관념론이 아니다. 서구적 관점에서는 관념론으로 또는 동양의 신비라는 식으로 학문 외적 영역으로 밀쳐버린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관측되지 않는다고 실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암흑 물질이란 것도 암흑에너지라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재한다. 또 암흑에너지 너머의 그 무엇도 실재한다.
예를 들면, 불가에서 말하는 공(空)이나 인연(因緣)이란 것도 그렇고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태극이란 것도 관념의 산물이 아니다. 실재하니까 그렇게 형언한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관념을 상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실재를 경험하고 실증한 경험론이 동양학이다. 그걸 관념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2)
수행론은 합리론이 아니다. 가령 성리학에서도 성(性)이란 개념을 쓰고 불교에서도 불성(佛性)이란 개념을 쓰는데, 이것이 이성과 대동소이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하기도 하는데, 전혀 다른 개념이다. 서구의 이성(理性)은 인식능력이고 그런 면에서 관념이다. 그러나 동양학에서 말하는 성(性)은 물성(物性)이다. 실재론적 개념이다.
합리론에서는 물 자체(= 物性)는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수행론에서는 경험할 수 있는 실재이다. 그래서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또 각성(覺性) - 각성(覺醒)이 아님- 이라고도 하는데, 깨달을 각(覺)자를 보면 볼 견(見)자가 받치고 있다. 그러니까 성품을 보는 것이 깨침이다. 그러니까 서구근대철학에서 말하는 이성이라는 것과 동양학의 성(性)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합리론은 경험론에 반대하여, 참다운 인식은 생득적인 이성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성은 인간의 선천적인(先天的, a priori) 인식기능이다. 경험으로부터 독립해 있고 경험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 아닌, 인간이 생득적 인식능력이다. 합리론에서는 인간의 선천적 이성이 보편적 지식,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근대문명사 자체가 전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것, 근대문명의 막다른 골목에서도 이성은 전혀 무기력하다는 것, 그래서 이성은 철학책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가상적 개념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성은 인간을 구제할 수도 역사를 구원할 능력이 없다.
(3)
수행론에서는 인간의 선천적 이성이란 것은 무명(無明) 또는 불각지심(不覺之心)으로 정리한다. 인간의 생득적 이성 또는 감각과 경험에 의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론이든 합리론이든, 인간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보편적 지식,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수행론은 경험론과 합리론을 동시에 넘어선다.
수행론은 인간의 무명(無明)이 출발점이다. 말하자면 자기부정에서 출발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경험론이든 합리론이든 결코 진리에 다가갈 수 없다. 그야말로 소설쓰기일 뿐이라는 거다. 무명과 불각(不覺) 상태의 경험과 인식에서는, 아무리 분석 비판 종합을 해도 객관적 인식이란 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무명의 바탕에서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대입한다고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명의 재생산일 뿐이다.
인간의 오성론에 있어서 수행론과 서구철학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서구에서는 인간의 오관(五官)을 신뢰하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신뢰한다. 그러나 수행론에서는 그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하지만, 단 무명으로 오염된 감각과 인식능력을 세탁해야 한다는 거다. 때 묻은 상태의 인간, 이는 결코 신뢰할 수 없다는 거다.
서구철학은 무명에 대한 고민이 없다. 생명의 기원만큼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무명의 뿌리, 무명의 기원에 대해서 전혀 감지하지도 못한다. 서구철학이란 것은, 유식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8식설에 기준하더라도 6식 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8식이 아니라 7식에도 이를 수 없다.
(4)
경험론에서는 인간의 마음은 ‘빈방’과 같은 것이고 ‘아무런 문자도 없는 백지’와 같은 것이고 ‘완전히 밀폐된 밀실’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관념도 어떤 지식도 생득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험론의 분명한 한계가 있다. 마음을 백지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는 것, 이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음은 백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구겨진 종이이고 갖가지 색으로 덧칠이 되고 윤색이 된 종이라는 것, 그렇게 인간의 인지구조는 주관으로 오염되고 훼절되어 있다. 때문에 그런 인지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경험에 의해서 객관적 사실에 도달할 수 없다.
경험론은 인간의 오관(五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현대 과학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인간의 오관은 객관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가령 눈 하나만 놓고 이야기해보자. 눈은 외계사물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 아니다. 수정체의 굴절율이 평균 1.4이고 유리체의 굴절율이 1.335다. 단순 계산상으로도 0.7의 굴절율인데 그만큼 사물을 꼬아서 본다는 거다.
또 초현대식 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것은 4%가 안된다. 4%의 물질계 중에서도 일부만 관측할 수 있다. 96%를 구성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통상적 오관, 통상적 경험으로서는 결코 객관적 사실,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5)
불가지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유신론, 무신론과는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것이 불가지론이다. 철학사조 상으로 불가지론은 인식론적 접근 방식으로 해석하는 틀이다. 존재론이 아니다. 그러나 수행론은 인식론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도 중점을 두고, 존재론에도 방점을 찍어둔 인식론적 접근 방식, 해석방식이다. 서구철학사조의 불가지론과는 이점애서 다르다.
그러니까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자다 깨어나도 신을 인식할 수 없다. 신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신은 인간이 알 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다. 쉽게 말하며 가시권 반경 내에 있지 않다. 이것이 불가지론이다. 말하자면 보통의 평균적인 인간의 경험칙으로 간파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특수 경험칙이 필요하다. 그 특수 경험칙을 수행이라고 한다.
달리 표현하면, 인식할 수는 있는데 인간으로서는 불가하다는 것, 보통의 인간의 경험, 경험칙으로는 불가하다는 것, 통상의 생각하는 인간, 그냥 주어진 환경과 상황 속에 던져져 있는 인간의 일반적 경험칙으로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넘어서는 특수경험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존재자, 그게 신이라는 것이다. 그 신을 법(法)이라고 표현한다. 요즘 표현으로는 법칙성 이란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물의 본질이나 궁극적 실재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통상인의 경험으로는 절대 인식 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수 경험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론은 절대적 불가지론이 아니라 상대적 불가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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