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의 중심에는 늘 선운산과 선운사가 있습니다. 봄 동백과 가을 단풍, 그리고 이맘때의 꽃무릇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는 선운사의 매력이야말로 고창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명성이 다른 풍경들을 가립니다. 올해로 꼭 30년째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스님이 지키고 있는 소요산 벼랑의 절집 소요사. 생명력과 경외를 느낄 수 있는 습기 머금은 원시림의 운곡습지. 그리고 인천강의 하구에서 고창의 갯벌로 이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 길’…. 고창에는 이런 것들이 숨어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가려져 있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미처 발견되지 못한 덕에 이런 곳들은 아직 호젓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런 곳들을 골라서 고창의 가을로 떠나는 느긋한 여정을 꾸며봤습니다.
고갯길은 남도의 판소리 가락처럼 유장했다. 전북 고창의 질마재. 시인 서정주가 아름다운 시편에 주워담은 민담과 설화의 고갯길이다. 고창의 질마재가 넘어가는 건 소요산 자락이다. 소요산이라면 가을 단풍으로 이름난 동두천의 산을 떠올리겠지만, 고창에도 소요산이 있다. 한자 이름도 둘 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는 뜻의 ‘소요(逍遙)’를 쓴다. 소요산에는 아슬아슬한 벼랑의 바위 위에 올라앉은 자그마한 절집 소요사가 있다. 질마재 고갯길에서 나와서 수직의 아슬아슬한 벼랑을 끼고 산정을 향해 오르는 시멘트도로 끝. 소요산의 팔 분 능선쯤에 절집이 있다. 오르는 내내 벼랑에 자리 잡은 소요사의 전각과 법당을 고개 들어 올려다보느라 가을 하늘에 눈이 부셨다. 소요사는 멀다. 물리적인 거리로만 따지자면 내로라하는 대찰인 선운사까지 차로 30분이 채 안 걸리지만, 그 때문에 소요사는 멀다. 긴 능선과 기묘한 암봉을 거느리고 있는 선운산. 거기다 대면 소요산은 어림도 없다. 절집도 마찬가지다. 봄에는 동백꽃, 지금 같은 초가을에는 꽃무릇, 가을이면 단풍으로 사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거찰 선운사에 비하면 소요사의 위세는 보잘것없다. 선운사가 너른 주차장과 번잡스러운 식당, 도솔천을 끼고 있는 평안한 길 끝에 있다면, 소요사는 아찔한 벼랑길을 아슬아슬 올라야 한다. 소요사는 그래서 멀다. 너무 멀어서 아예 거기 있는 것조차 아는 이들이 드물다. 세상에서 한 발 뒤로 물러앉은 절집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적막과 침묵이다. 절집을 지키고 있는 노스님이 그 침묵의 한 가운데 있다. 종각 앞에 나와앉은 스님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합장만 할 뿐 말이 없다. 질문을 던져도 미소만 돌아올 뿐 도대체 대꾸가 없다. 스님이 문득 승복의 오른쪽 주머니를 뒤져 종이 뭉치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슬슬 종이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묵언 중입니다.’ 말의 답이 글로 돌아오는 필담이 이어졌다. “언제부터 묵언을 하시는지요.” 되돌아온 답이 놀랍다. ‘올해로 꼭 30년입니다.’ 세상에….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30년이라니. 그 침묵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스님은 ‘번잡한 세상에 말 보태지 않고 고요히 살고자 했다’고 답을 대신했다. 30년째 침묵을 거느리고 있는 노스님의 모습에서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에 담긴 시 몇 편이 떠올랐다. 스님이 마치 그 시집 속에서 걸어 나온 인물처럼 느껴져서였을 것이었다. # 소요산 정상에서 변산을 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요사는 내력 깊은 절집이다. 기록으로는 흐릿하지만 신라 경덕왕 때 연기 조사가 인근에 연기사를 짓고 부속암자로 지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때 소요라는 이름의 스님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겹친다. 절집을 세운 이가 누구였든 소요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신도들과 교유하는 절집이라기보다 정진하는 수행처다. 산 정상 아래 아슬아슬 딛고 선 자리부터 그렇다. 절집은 제법 운치 있다. 법당의 툇마루에 앉으면 내륙 쪽으로 탁 트인 경관과 마주하게 된다. 벼들이 익어서 물결치는 들판 뒤로 선운산의 능선과 방장산, 축령산, 불갑산, 그리고 멀리 내장산과 무등산까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산문을 들어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언덕 위의 느티나무를 두른 범종각 주변은 가을볕으로 온통 눈이 부시고, 벼랑을 끼고 아슬아슬 버티고 선 칠성각이며 산신각의 자태도 그윽하다. 이곳에는 가을이 일찍 당도하는지 절집을 둘러싼 활엽수들이 벌써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했다. 절집 소요사에서 산 정상까지는 300m 남짓. 솔숲과 바위를 딛고 오르는 길이 10분쯤 걸린다. 절집 뒤편 요사체 옆의 쓰러진 안내판 옆에 산정으로 이르는 길이 숨어있다. 소요산 정상에서는 탄성을 지를만한 경관이 기다린다. 이제 막 산정에 피기 시작한 억새꽃의 물결 너머로 고창의 들과 바다, 그리고 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내만으로 깊숙이 갯벌을 끌고 들어온 후포와 곰소, 그리고 바다 건너 병풍처럼 펼쳐진 내변산의 전경도 이리 시원할 수 없다. 고창 쪽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심원면 일대의 갯벌과 해안도로 경관은 제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이국적이다. 이 정도라면 수많은 능선과 봉우리를 거느린 선운산도 감히 넘보지 못할 수준의 조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과 한 발 물러서 있되 소요산은 높이만으로도 당당하다. 해발 445m. 다른 내륙의 명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높이지만, 해안가에 이만한 산은 흔치 않다. 선운산보다 100m 이상이 높다. 그러니 조망으로는 일대에서 소요산을 감히 따를 곳이 없다. 고창에 왔다고 굳이 선운사만 찾을 일은 아니다. 이맘때 화려하게 만개하는 선운사의 꽃무릇은 올해만큼은 가뭄으로 예전만 훨씬 못한데, 이곳 연기저수지 옆 공원의 꽃무릇은 깨끗하기도 하거니와 화려한 교태가 넘친다.
소요산과 소요사도 그렇지만, 고창의 선운사, 혹은 풍천장어 따위의 명성에 밀려서 그 면모를 100분의 1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운곡습지다. 운곡습지는 우리나라에서 16번째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이곳은 다른 습지와는 형성과정이 사뭇 다르다. 자연이 스스로 습지가 된 게 아니라, 출입통제로 통째로 마을이 소개(疏開)되고 묵은 논과 밭이 늪으로 천이(遷移)되면서 습기 가득한 원시의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운곡습지가 형성된 경위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전남 영광에 핵발전소가 들어섰다. 1981년 착공한 영광원전은 1985년부터 발전을 시작했다. 운곡리 일대 마을이 수몰된 건 그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식수가, 나중에는 핵발전 용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운곡저수지였다. 물을 가두면서 8개 마을이 수몰됐고, 158가구가 고향을 떠났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는 운곡리였다. 마을은 물에 잠겼고, 잠기지 않은 땅도 경작이 금지됐으며, 물가의 접근마저 통제됐다. 아니 통제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저수지에 담긴 물이 ‘핵발전소’ 가동에 쓰인다는 것을 안 뒤로 마을 사람들은 무슨 비밀처럼 쉬쉬하며 아예 발을 들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운곡리 마을은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세 잊히고 말았다. 그렇게 30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마을은 대부분 수몰됐지만, 미처 물에 잠기지 않은 상류 쪽의 경작지는 저절로 배후 습지가 됐다. 사람들의 간섭이 사라진 경작지는 내륙산지형 저층습지, 쉽게 말해서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원시의 숲과 늪으로 깊어졌다. 이곳을 지난 2009년 고창의 환경직 공무원이 발견하면서 인간의 간섭이 배제되면서 저 스스로 본성을 회복해가는 자연으로써 운곡습지의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 자연에 대한 경외 그리고 생명력…운곡습지 운곡습지는 운곡저수지와는 다르다. 저수지도 습지 보호구역에 포함돼있긴 하지만, 저수지가 있고, 그 상류 쪽의 배후에 습지가 따로 있다. 습지는 저수지 쪽으로도, 고창고인돌유적지 쪽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고인돌유적지 쪽보다는 도로를 따라 저수지를 거의 한 바퀴 돌아서 운곡서원의 느티나무 당산목쯤에 차를 대놓고 이쪽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습지를 둘러보는 편이 낫겠다. 습지만큼은 아니지만 어리연꽃이 피어나고 고요한 수면 위에 백로가 정물처럼 앉아있는 저수지 수변 경관도 못지않게 빼어나기 때문이다. 저수지를 지나서 발밑이 축축해지기 시작하면 이내 습지다. 습지에 당도하면 나무 덱 탐방로로 올라서게 된다. 습지 가운데로 깊숙하게 뻗어 지어진 덱 폭은 80㎝로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좁다. 덱 바닥은 습지에서 1m 이상 띄워서 지어졌고 바닥 나무판도 5㎝ 간격으로 틈을 벌려놓았다. 이게 다 햇볕과 공기를 통과시켜 그 아래 사는 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처음에는 심심한 듯 느껴지지만, 조금만 걸어보면 자연의 생명들이 저마다 조화를 이루는 세상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알 수 있다. 습지는 온통 물기 머금은 초록의 세상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자연의 느낌은 화려함보다는 싱싱한 생명력이다. 습지의 수면 위의 수생식물에서도, 손톱 만한 꽃을 피워올린 야생화에서도, 늪지의 물을 빨아들이는 버드나무들에서도 충만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여름 가뭄에도 이럴진대 비라도 내린 뒤라면 더 싱그러운 자연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습지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라면 고인돌유적지로 이어지는 길 부근의 습지 연못이다. 연못에는 지금 노랑어리연꽃들이 한창이다. 마치 수면 위를 꽃으로 거의 다 뒤덮다시피 만발했는데,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꽃이 화려하다. 습지를 둘러보는 내내 곳곳에 사람이 살던 흔적과 다랑논의 흔적을 쫓았지만, 어찌나 숲이 깊고 짙은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연의 맹렬한 회복속도는 경외에 가까웠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고창은 바다를 끼고 있다. 고창의 바다는 여느 바다와는 좀 다르다. 무겁고 진득하다. 연안이 대부분 갯벌이어서 그렇다. 갯벌을 끼고 억새와 갈대가 피어나는 고창 바다는 경관으로만 보자면 가을이 제철이다. 선운사쯤에서 인천강 하구를 지나 22번 국도를 따라가면 좌치나루터에서 바다를 만나는데 거기서부터 길은 하전갯벌과 만돌갯벌로 이어진다. 노랗게 익은 논, 그 뒤로 바다를 가둬 만든 양식장, 그리고 그 너머에 바다가 있다. 해가 설핏 기울 무렵 이 도로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억새와 코스모스, 그리고 노란 논 너머의 바다로 떨어지는 황홀한 낙조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 ‘가을의 길’을 뽑으라면 목록의 맨 앞에 올려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농게와 짱뚱어들이 수런거리는 하전 갯벌을 끼고 있는 사등마을에는 소금전시장이 있다. 예부터 이곳에서는 갯벌에 가둬 염도를 높인 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전통 소금 ‘자염’을 만들어왔다. 전시장 밖의 소금막에서는 주민들이 실제로 자염을 만들어 팔고 있다. 염전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천일염의 청결문제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와중이라 그런지 자염에 눈길이 갔다. 소금막에서 한 달 전쯤 만들어서 간수를 빼고 있다는 소금을 집어 맛을 봤다. 갓 만든 소금임에도 뒷맛이 쓰지 않고 부드러웠다. 고창에는 갯벌 말고도 너른 백사장을 가진 해변이 두 곳 있다. 하나가 구시포해수욕장이고, 다른 하나가 동호해수욕장이다. 왕복 2차선 도로가 이 두 해변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솔숲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며 소실점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드라이브하는 맛이 각별하다. 특히 밀물 때면 구시포의 명사십리 해변을 따라 초지 가까이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좁아진 백사장 위에 갈매기 떼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모습이며, 동호해수욕장 앞에 모래톱이 풀등처럼 솟아오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겁고 진득한 갯벌의 바다도, 알려지지 않은 절집도, 생명력 넘치는 습지를 품고 있는 고창을 어찌 선운사의 압도적인 명성으로만 해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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