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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식_삼국지의 여인들_05

醉月 2015. 3. 18. 07:26

삼국지의 여인들 ⑤ 조조, 조비, 조식 모두가 사랑한 원소의 며느리 견씨

저 유씨를 죽여주세요. 무서운 여자입니다. 원소의 애첩들을 모조리 죽인 여자죠. 제발 저 여자를 죽여주세요.   


헌제(獻帝)를 등에 업고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 조조(曹操)에 대해 위협을 느낀 하북의 패자(覇者) 원소(袁紹)는 군사 70만을 거느리고 조조군 섬멸에 나섰다. 참모인 전풍이 원소에게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니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충고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참모 저수(沮授)도 “적은 소수이지만 정병입니다. 지금은 방어태세로 적의 병량이 소모되기를 기다릴 때입니다”하고 간했으나 역시 원소의 노여움을 샀다. 라이벌 공손찬(公孫瓚)을 패퇴시키고 하북의 4개 주를 거느리는 100만 군세의 최고 통치자로서 원소는 조조의 7만 군대를 우습게 볼 여유가 있었다.
 
  원소의 70만 군사는 남하하여 관도에 자리를 잡았다. 조조군이 비록 정병이라 하지만 10분의 1 병력으로는 원소의 대군을 감당할 수 없었다. 참모 순욱이 “원소의 군은 수는 많지만 오합지졸이고 아군은 정병이니 승부는 단숨에 결정지어야 합니다”하고 진언하였다. 조조는 이 의견을 채용하였다. 조조는 하후돈(夏侯惇), 조홍(曹洪)에게 각기 3천의 군을 주어 적진으로의 돌입을 명하였다.
 
  원소의 참모 심배(審配)는, 조조군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석궁대 1만을 양측에 배치하고 중앙에 사수 5천을 두어 일제히 대응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조군은 거의 전멸하였다. 단기전을 바란 조조이지만 적진에 침입하는 데 실패하였다. 원소는 조조진의 정면에 수십 개의 작은 산을 만들었다. 산 위에 진을 치고 조조군의 진영을 향해 화살을 쏴댔다. 조조는 막료를 소집하여 대책을 강구하였다.
 
  참모 유엽(劉曄)이 “진지와 산을 부수기 위해 발석차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발석차란 지렛대의 원리로 거대한 돌을 쏘아대는 신무기였다. 조조는 수백 개의 발석차를 만들어 원소군의 진지와 산을 공격하였다. 진지와 산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에 당황한 심배는 땅굴을 파 공격로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유엽은 진영의 전면에 참호를 파 저지시켰다. 그때 경계를 서던 부장이 원소군의 간첩을 잡았다. 심문을 하자 간첩은 한맹(韓猛)이 병량을 싣고 오기로 되어 있어 그 연락을 위해 본영에 간다고 자백했다. 조조는 한맹을 습격하고 원소의 구원대와 결전을 벌이라고 명하였다.
 
  원소는 진중의 북서 방향에서 불이 난 것을 발견하였다. 도망쳐온 병사로부터 수송대가 조조군의 기습을 받아 병량이 타버렸음을 알고 장합(張郃)과 고람(高覽)을 보내 조조군의 퇴로를 폐쇄하였다. 순우경(淳于瓊)에게는 2만의 병사를 주어 병참기지가 있는 오소로 파견해 식량의 증발과 수송의 역을 맡겼다.
  
  식량창고 기습에 성공한 조조
 
  조조도 병량이 부족하여 허도를 지키는 순욱(荀彧)에게 양식을 수송하도록 사자를 파견했으나 원소의 막료 허유에게 잡혀버렸다. 허유(許攸)는 젊었을 때 조조와 친한 사이였으나 그 후 원소에게 가 막료가 된 자이다. 조조의 편지를 읽은 허유는 바로 원소에게 가 “조조의 군량이 바닥났으니 이때 허도를 급습하면 점령할 수 있습니다. 병량이 부족한 조조군을 포위하면 그들은 그대로 자멸할 것입니다”하고 진언하였다.
 
  원소는 허유의 계에 대해 “조조는 책략이 뛰어나므로 이 편지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계략일 수 있다”며 반대하였다. 게다가 원소는 심배가 보낸 편지를 읽었는데, 그 편지엔 허유가 구주에서 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일, 그의 아들이 무거운 세금으로 사복을 채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원소는 이것을 보고 노발대발하였다.
 
  목숨이 위험해진 허유는 원소의 진에서 도망쳐 나와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조조는 “원소가 허유의 계책대로 허도를 급습했더라면 참패할 뻔했는데 하늘이 도왔다”며 기뻐하였다. 그리고 허유에게 원소를 칠 수 있는 계략에 대해 물었다. 허유는 “원소는 무기, 병량의 전부를 병참기지인 오소에 두고 있습니다. 기지의 수장인 순우경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놈이라 기지의 수비는 허점투성이입니다. 그 허점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고 치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조조는 그의 계략을 채용, 오소를 기습기로 하고 스스로 5천 정병을 이끌고 공격의 선두에 섰다. 원소의 참모 저수는 진중에서 천문을 보다가 금성이 역행하는 것을 보고 원소에게 “금성이 역행하는 것은 야습의 징조이므로 오소의 경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술과 여자에 빠져 있던 원소는 “엉뚱한 미신”이라며 그 말을 일소에 부쳤다.
 
  조조군의 기습 부대는 오전 2시경에 오소 기지에 도착하였다. 수비병에게 기지를 도우러 왔다고 속이고 문을 열게 하였다. 안으로 진입한 조조의 병사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병량과 무기에 불을 지르고 당황하는 수비병들을 마구 죽였다. 수비대장 순우경은 술에 취한 채 막사에서 자고 있다가 조조의 군사에게 체포되었다.
 
  원소는 북방에서 불기둥이 오르고서야 조조군의 병참기지 습격을 알았다. 기지 구원을 위해 출진을 준비할 때 참모 곽도(郭圖)가 “조조군이 오소를 급습했으니 그의 본진은 허술할 것입니다. 적의 본진을 급습해야 합니다”고 진언했다. 원소는 교현(橋玄)에게 조조의 본진을 급습하라고 명하였다. 원군이 본진에 이르자 좌에서 하후돈, 우에서 조인, 정면에서 조홍의 군대가 나타나 원소군은 패하였다.
 
  본진 강습이 실패하여 입장이 불리해지자 곽도는 패전의 책임을 장합과 고람에게 뒤집어씌워 “그 둘이 이전부터 조조에게 항복하려 했다”고 보고했다. 원소가 화가 나 두 사람을 송환코자 하자 그들은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이에 원소군의 병력은 극감하고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조조는 장합과 고람을 선두로 야습을 하기로 하고 그날 밤 삼경 세 방향에서 원소군의 진영에 돌입하였다.
 
  조조가 이어 허위정보를 퍼뜨리자 여기에 놀란 원소는 셋째 아들 원상(袁尙)에게 5만의 군사, 신명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여양으로 급히 보냈다. 조조는 이것을 알고 전군을 8로 나누어 일제히 공격했다. 원소군은 이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원소는 본진에 돌아와 심한 병이 들었다. 건안 7년(서기 202년) 마침내 원소는 피를 토하며 죽는다. 조조의 가장 강력한 맞수이자 명문 귀족의 후손으로 높은 인망과 막강한 군세와 인재를 거느리고 그 자신이 천하의 패권을 쥘 수도 있었던 원소는, 젊은 시절의 무용과 식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만과 독선에 빠져 조조에게 대패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일족 모두가 괴멸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조조 부자 앞에 선 업성의 두 여인
 
  건안 9년(서기 204년) 7월, 마침내 조조는 원소의 본거지인 업성(鄴城)을 함락했다. 14세 때 부친 조조를 따라나선 후 3년에 걸쳐 원소군과 싸워 온 장남 조비(曹丕)는 매우 흥분하였다. 10배가 넘는 원소의 대군을 물리치고 중원을 제패한 기쁨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성안을 둘러보던 조조의 장남 조비는 원소의 사저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미인을 발견하였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얼굴엔 때가 껴 꾀죄죄한 모습임에도 상쇄해 큰 눈동자, 고귀한 자태 등 아름다움이 뿜어나왔다. 그 미색에 놀라 조비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녀는 제 둘째 아들 원희(袁熙)의 처 견씨(甄氏)입니다.”
 
  견씨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 미처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던 한 중년 여인이 어느새 다가와 말했다.
 
  “그럼 당신이?”
 
  “네, 제가 바로 원소의 처 유씨입니다.”
 
  “이거 뜻밖이군요. 당신을 보니 당신이 총애해 마지않는 셋째 아들 원상의 외모에 대해 하는 얘기가 과장은 아닌가 보오.”
 
  “칭찬인가요?”
 
  “잡아서 참수하기엔 아까운 외모란 뜻이오.”
 
  이 말을 들은 유씨는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은 업성을 떠나 있는 원상을 잡아 참수하겠다는 건지, 자신을 참수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참수하고 말겠다는 건지, 극도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원소의 아내로서 최고의 권력에 온갖 호사를 누리며 신하나 첩의 목숨 따위는 파리 목숨처럼 여겨왔던 유씨는 이제 17세 애송이 앞에서 벌벌 떨며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당신의 며느리 또한 그냥 두고 보기 아까운 미모군요.”
 
  조비의 이 말에 유씨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보는 듯했다.
 
  “마음에 드시나요?”
 
  “마음에 든다면 내게 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여부가 있나요. 여자는 때로 정복당하는 욕망에 시달리기도 하죠. 더구나 상대가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 나리의 장남이라면 그 누가 거부할 수 있겠어요?”
 
  조비는 며느리를 팔아서라도 목숨을 유지해 보려는 유씨의 노골적인 속셈을 알아채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견씨는 그저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조비보다는 유씨를 더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원소의 처 유씨
 
  유씨는 견씨와 조비의 손을 잡고 규방으로 안내했다. 조비는 견씨의 매력에 견딜 수가 없어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대로 어색하게 껴안았다. 그녀는 유씨에게 원망 섞인 표정을 지으며 할 수 없다는 듯 그에게 몸을 맡겼다. 조비로서는 최초의 여인 경험이었다. 다음날 아침 유씨는 입성한 조조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드님이 우리를 지켜주어서 이처럼 목숨을 건졌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견씨를 젊은이의 부인으로 바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조조는 아들이 벌써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생긴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나이는 몇이오.”
 
  “스물두 살입니다.”
 
  “아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군. 어디 데리고 와 보게.”
 
  유씨가 견씨를 조조 앞으로 데리고 와 인사를 시키자 조조는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정말 내 아들은 여자를 볼 줄 아는구나”하고 중얼댔다.
 
  대장 원소가 병사하였으나 세 아들 장남 원담(袁譚), 차남 원희, 삼남 원상과 조카 고간(高幹) 등 넷은 각기 자신의 영지에서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장남 원담과 삼남 원상은 서로 원소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영토를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 원담은 조조에 게 붙었다가 원상과 연합하는 등 매우 어지러운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조조는 사분오열된 원소의 자식들을 치기 위해 조비를 불러 말했다.
 
  “너도 부인을 얻었으니 남자가 된 것이다. 원소의 아들과 전투를 해 공도 세워야 할 게야. 네가 원희의 처를 빼앗은 이상 원희를 살려둘 수는 없다. 네 손으로 그를 없애라.”
 
  그가 원희를 처치하면 조조는 원소의 세 아들 중 가장 강적인 원상을 처치할 계획이었다.
 
  조조는 원소의 관에 머무르며 만찬회가 벌어지자 유씨를 불러 술을 따르게 했다.
 
  “전처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남편의 아이인데, 그 며느리를 보신을 위해 적과 결혼시키다니 대단한 여자로구나.”
 
  “여자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법입니다. 보살펴주어야 할 분이 필요하죠. 살아 있다 해도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남편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유씨는 조조에게 몸을 기대었다. 조조는 처소로 가 유씨의 옷을 벗기고 가슴을 만지면서 말했다.
 
  “원소가 여자를 아는군.”
 
  “나리의 뜻대로 하세요.”
 
  유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런데 지금 이 눈물은 무슨 뜻이오? 그대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 아닌가. 남편 원소가 죽은 후 그의 애첩 다섯과 그 일족을 잔혹하게 죽였다고 들었소만.”
 
  유씨는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어찌 그리하겠습니까. 밑의 사람들이 한 일입니다.”
 
  “글쎄. 오늘은 좀 젊은 여인을 안고 싶으니 나를 견씨 방으로 안내해 주겠소?”
     
  견씨를 ‘공유’하게 된 조조와 조비
 
  유씨는 할 수 없이 조조를 견씨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잠들어 있던 견씨는 갑자기 조조가 찾아오자 매우 놀랐다. 조조는 견씨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같이 잠자리에 들자고 하였다.
 
  “아니 되옵니다. 저는 이미 아드님의 처이온데…”
 
  견씨가 벌벌 떨면서 말하자 조조는 말없이 그녀의 옷을 벗기고 완력으로 그녀를 정복해 버렸다. 견씨는 처음에는 다소 반항을 하였으나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몸을 맡겼다.
 
  “그런데 너처럼 잘난 여자가 왜 세 형제 중 제일 못난 원희와 결혼했느냐.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냐.”
 
  견씨는 할 수 없다는 듯 사실을 털어놓았다.
 
  “저는 본래 원소 나리가 좋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 유씨가 질투가 심해서 나리가 유씨의 협박에 못 이겨 그만 아들 원희에게 저를 주었지요.”
 
  꼼짝없이 조조와 견씨가 정사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던 유씨의 안색이 변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원소의 여자였구나. 원소나 그 아들은 여자를 즐겁게 해줄 주변머리가 못 되는데 너의 몸은 그래도 남자를 즐겁게 해줄 줄 아는구나. 너는 앞으로 나의 여자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을 하면 안 되지.”
 
  정사를 마음껏 즐긴 후 조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견씨는 그의 손을 잡고 청이 있으니 들어달라고 하였다.
 
  “무슨 청이냐?”
 
  “저 유씨를 죽여주세요. 무서운 여자입니다. 원소의 애첩들을 아주 잔인하게 죽인 여자죠. 이제 저도 죽이려 들 것입니다. 제발 저 여자를 죽여주세요.”
 
  “네 말이라면 못 들어줄 거 없지.”
 
  조조는 새파랗게 질린 유씨의 목을 잡고 방 밖으로 나가 형우를 불렀다.
 
  “이 여자는 나를 농락하고 원소의 복수를 한답시고 틈을 타 나를 죽이려 했다. 밖으로 데려가 목을 쳐라.”
 
  유씨는 비명을 지르며 발광을 하였지만 결국 형우의 칼에 목이 달아났다.
 
  “이제 나와 너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없구나.”
 
  그 후 조조는 조비가 원정에 나가 돌아올 때까지 매일 밤 견씨와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어느 날 조조는 정사를 마친 후 견씨에게 말했다.
 
  “그대의 아름다움이 남자를 끌어당기도다. 아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저히 그대 곁을 떠날 수 없으니…. 그러니 그대가 말 한마디만 잘못 해도 천하의 추세가 바뀔 수도 있지…. 정말 망국의 미녀로다.”
 
  “그럼 제가 살아 있는 것이 죄인가요?”
 
  “죄이건 아니건 살아서 나를 즐겁게 하라. 내가 그대에게 원하는 건 그것이 전부이다.”
    
  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아이를 낳다
 
  이듬해 견씨는 아들을 낳았으니, 바로 조예(曹叡)다. 조조는 손자 조예를 몹시 귀여워했다. 건안 12년(서기 207년) 9월 원소의 아들 삼 형제 중 3남 원상, 차남 원희의 목이 조조에게 보내졌다. 이 둘은 중국 동쪽 요동의 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 구원을 청하였으나 조조를 두려워한 공손강이 두 사람의 목을 베어 바친 것이다. 이리하여 7년에 걸친 원씨 일족과의 싸움이 끝나고 중평은 조조의 것이 되었다.
 
  전 남편 원희의 죽음을 안 견씨는 슬프게 울었다. 남편이 있는 몸으로 적장의 여인이 되어 그 아들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왜 아니 슬프겠는가.
 
  조조는 원소 일족을 멸한 그 위세를 떨치기 위해 업의 서북쪽에 동작대(銅雀臺)를 세웠다. 그 후 조조는 조비를 미워하고 총명한 조식(曹植)을 사랑하였는데, 이 조식 또한 천하절색 견씨를 오랫동안 짝사랑하였다.
 
  어느 날 조조의 귀에 조예가 조조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때문에 견씨를 멀리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견씨가 조비의 여자가 되기 전 이미 원희의 아이를 임신한 몸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럴 경우 얘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아무튼 견씨가 32세 때 조조는 그녀보다 젊은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조비도 황후와 측실을 두고 그녀를 멀리하였다.
    
  균열이 생긴 조씨 家
 
  그 후부터 조비는 냉정한 인간이 되었으니, 세 동생 중 아버지의 장례에 늦게 왔다고 4남 조웅(曹熊)을 자살하게 하고 차남 조창(曹彰)은 전선에 보내 죽였다. 견씨는, 원소의 유산을 형제가 서로 탐내 싸우다 조조에게 패한 사실을 돌아보며 조비 형제의 분란을 염려했다. 마침내 견씨는 미쳐서 발광하다 조비로부터 자살을 명받고 39세에 죽는다. 조비도 5년 후 재위 7년 만인 39세에 세상을 떠난다. 이후 위(魏)의 제2대 황제에 조예가 오른다.
 
 
  피리 부는 여인 蔡琰과 조조
 
  평범하지 않은 조조의 기질
 
  조조는 어린 시절에는 방탕아였다. 공부는 별로 하지 않고 요령을 부리며 남을 속이는 걸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청년시절에는 유명한 인물 감정가 허소(許劭)에게 자신을 평해 달라고 부탁하여, ‘치세(治世)의 능신, 난세(亂世)의 간웅’이라는 유명한 평을 들었다. 조조는 이 평을 듣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조조의 담대한 성격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조조는 20세 때 효렴의 천거를 받아 낙양의 경비를 맡았다. 황건적 토벌의 공로로 황궁의 금위군 통솔자인 기도위가 되고 이후 전군교위를 역임한다. 동탁(董卓)이 권력을 잡자 반동탁연합군을 결성한 조조는,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한 후 황건적 잔당을 몰아내고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때 항복한 청주(靑州)의 병사 30만을 수용하여 전력을 크게 강화하였다. 이각, 곽사의 난을 진정시키고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옹호하여 허도(許都)를 수도로 정한 조조는 주변의 여러 세력을 제압하고 실력을 길러 중원에 큰 거점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주위에 유능한 참모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조는 여포(呂布), 원술 등 각지의 군웅들을 차례차례 평정해 나갔다. 서주의 여포를 물리치고 유비(劉備)를 익주로 몰아낸 조조는 그 이전부터 대립하고 있던 원소와 중원의 지배를 놓고 다툰다. 백마, 관도의 싸움에서 승리한 조조는 마침내 중원을 지배하고 원소가 죽은 후 그 자식들을 차례로 무찌르고 하북 지방을 차지하게 된다. 이제 그는 후한의 중심인물로서 궁전을 지배하게 된다. 인재들이 모이고 그들의 진언을 받아들여 정치에 큰 성공을 이룬다. 이어 그는 천하통일을 향해 나아갔다.
 
  조조는 유표(劉表)의 형주를 노렸다. 유표가 죽고 후계자를 둘러싼 내분이 일어나자 조조는 형주를 침공하였다. 유언서 위조로 새 태수가 된 유종(劉琮)은 싸우지도 않고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조조는 유종을 청주자사로 봉하고 임지로 가는 그를 우금(于禁)에게 명해 죽였다. 형주를 손에 넣은 조조는 신야성의 유비를 습격하지만 유비는 유표의 장남 유기(劉琦)가 지키는 강하성으로 피신한다.
 
  장강 이남 진출을 노린 조조는 형주 분할을 미끼로 손권에게 유비의 토벌을 요청한다. 조조는 원소로부터 빼앗은 병사에 형주의 항복한 군을 합해 83만의 대군을 이루었다. 조조는 이것을 100만 군대라 칭하고 오의 손권(孫權)을 위협하였다. 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항하였다. 오의 군세는 겨우 3만, 동맹관계에 있는 유비의 군사를 합해도 4만에 이르지 못하였다. 조조는 안심하고 오를 칠 수 있다고 보았으나 당시의 조조군은 네 가지 약점이 있었다. 완전히 평정되지 못한 북국의 적대시, 마초(馬超)의 수도 공격 우려, 수전(水戰)의 미약함, 원소와의 오랜 전투로 인한 피로 등이었다. 인마(人馬)와 식량도 절대 부족했다. 게다가 적군 주유(周瑜)와 공명(孔明)의 계략이 너무 뛰어났다. 조조는 마침내 황개(黃蓋)의 ‘고육의 계’, 방통(龐統)의 ‘연환의 계’에 넘어가 대패하고 만다.
 
  조조는 패기와 투지를 잃지 않고 허도로 퇴각하여 체제 확립에 힘썼다. 우선 숙적인 마초의 군사를 격퇴하고 위신을 되살렸다. 조조는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로 비단 전투에 능하였을 뿐 아니라 참모를 잘 쓰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또한 학문에도 깊이가 있어 그의 《손자병법》 해설은 오늘날에도 탁월한 병법서로 남아 있다. 그 밖에 그는 시를 좋아하고 뛰어난 예술가를 아꼈다.
 
  조조의 예술적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중 전장으로 가는 도중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채염(蔡琰)과의 관계를 다룬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다.
    
  피리 부는 명랑한 소녀
 
  중국의 서동관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풍성한 숲이 있다. 그 숲에 둘러싸여 있는 장원은 남전이라 부르는 지방의 유명한 토지로 채옹(蔡邕)의 영지다. 그는 그곳 영주인 동시에 교양인으로서 추앙받고 있었다. 한때는 한나라 조정에서 불러들여 높은 지위에도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황제를 둘러싸고 있는 사리사욕에 눈먼 환관들의 모함으로 마침내 장원으로 내쫓긴 것이다. 젊은 조조가 그런 그를 따르며 어느 날 물은 적이 있다.
 
  “영주님의 장원은 사방이 흉노족 등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데도 항상 평화로우니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채옹은 웃으며 대답했다.
 
  “어느 태수가 오든 예의를 지킨다네. 이민족에 대해서도 왕이건 관리건 친교를 맺으며 적개심을 내비치지 않지. 그리고 상대가 어려울 때는 기꺼이 도와주되 나 자신을 위해선 부탁을 하지 않네. 이 모든 것이 영민들과 채씨 일가가 살아남기 위해서이네. 대대로 장원의 영주들이 땅을 지켜온 방식대로 나도 그렇게 해오고 있네.”
 
  조조는 이 말에 감동을 받았다.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는 자신과는 생각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채옹에게는 15세 된 채염이라는 귀여운 딸이 있었다. 조조는 한때 그녀를 좋아했다.
 
  “조조님은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난세인가요, 치세인가요”하고 채염이 조조를 만났을 때 장난기로 물은 적이 있다.
 
  “난세에 가까운 치세라고 해두지.”
 
  이 답에 그녀는 다시 깜찍하게 대꾸했다.
 
  “그럼 맹덕 나리께서는 지금 간웅이 되어가고 있군요.”
 
  그러자 조조는 껄껄 웃었다. 이어 조촐한 연회가 벌어지자 그녀는 호가를 연주하였다.
 
  “그건 이민족의 피리인가”하고 조조가 물었다.
 
  “흉노의 악사가 준 건데 음색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곡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녀의 눈은 선율처럼 반짝였다.
    
  결혼식날 약탈당한 신부
 
  20세가 된 채염은 아버지의 권유로 한 성실한 호족의 젊은이 위중도(衛仲道)와 결혼하게 되었다. 혼례가 있는 날 축하하러 온 영민들을 밀어제치며 거친 패거리 수십 명이 무기를 들고 나타났다. 채옹이 급히 나와 물었다.
 
  “무슨 일인지요. 보시다시피 오늘은 결혼식 날입니다.”
 
  말썽을 두려워한 채옹이 종이에 돈을 싸서 주자 그들은 그것을 세어보고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도 축하하러 왔소이다. 호가를 잘 분다는 그 아가씨나 좀 보여주시오.”
 
  주위에서 “영주님, 관리를 부르세요.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하고 간했으나 채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자칫 일을 키울 수도 있소. 잘 달래서 보내야 하오.”
 
  아버지가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본 채염은 제 발로 나와 패거리에게 고개 숙여 절을 하였다.
 
  “축하해 주러 오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음식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관에는 사람이 꽉 차 들어갈 수 없으니 정원에 음식을 차려 올리겠습니다.”
 
  “참 멋진 여자군. 이 동네 사나이와 결혼하기는 아깝지 않나? 우리 왕에게 바치면 큰 상을 받을 게야.”
 
  우두머리 남자가 신호를 보내자 부하들이 모두 달려들어 그녀를 납치해 사라졌다. 딸을 납치당한 채옹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였다. 그 남자들은 산에 살며 말 장사를 하는 거친 흉노족이었다.
 
  결국 채염은 흉노족의 2인자인 좌현왕 앞으로 끌려갔다. 좌현왕이 그들의 두목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멋대로 말 장사를 하다니, 전원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두목은 넙죽 엎드려 채염을 바치며 선처를 구했다.
 
  “앞으로는 말 장사를 하지 않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한나라 여자는 좌현왕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좌현왕은 놈들의 천한 태도에 화가 나 다 처형해 버렸다. 채염은 좌현왕의 측실이 돼 사랑을 받으며 두 아이를 낳았다. 흉노와 거친 생활을 하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호가를 불며 마음을 위로했다.
    
  조조의 마음을 사로잡은 채염의 노래
 
  몇 년 후 조조가 있던 허도에서 한 노래가 유행했다. 한의 정승 조조는 누가 작곡한 노래인지 알고 싶었다.
 
  “참으로 슬픈 노래입니다. 결혼식 날 납치당해 흉노 좌현왕의 측실이 된 채염의 곡이라고 합니다”하고 신하가 아뢰었다. 조조는 그녀가 대문호 채옹의 딸임을 알고 크게 놀랐다.
 
  그 곡을 들을 적마다 조조는 그녀의 가련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처럼 밝고 명랑하던 소녀가 이처럼 슬픈 곡을 작곡한 연유를 안 조조는 좌현왕에게 사자를 보내 채염을 천금에 사겠다고 하였다. 좌현왕이 놀라 그녀를 불러 물어보았다.
 
  “어찌하여 한나라 정승을 알고 있소?”
 
  “조조 나리를 어릴 적 아버님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하긴 당신의 아버님은 한나라의 대문호였으니 문인을 유독 존중하는 정승이 친교를 왜 아니 맺었겠소. 그런 정승께서 특별히 부탁하니 내 어찌 천년만년 그대를 잡아둘 수 있겠소.”
 
  채염이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좌현왕이 다시 말했다.
 
  “가시오. 돈은 받지 않겠소이다. 대신 아이들은 두고 가오. 정승께 안부나 잘 전해주오.”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가 원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좌현왕은 돈은 받지 않고 정중하게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 후 채염은 조조의 알선으로 동사(董祀)라는 관리와 결혼하였다.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자 그녀의 얼굴에도 이전의 웃는 모습이 되살아났다.
    
  채옹이 남긴 마지막 수수께끼
 
  동탁이 죽은 후 옥사한 채옹의 뒤를 이어 채염은 장원을 잘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일 보러 나간 사이 원정 도중의 조조가 방문하였다. 그녀는 황급히 조조를 맞아들였다.
 
  “내 진작 그대가 처한 일을 알았더라면 더 빨리 손을 썼을 터인데 미안하오.”
 
  채염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난관을 헤치며 오늘의 위치에 오른 한 영웅의 모습에서 그 옛날 고향의 장원에서 만난, 젊은 시절의 수려했던 조조의 모습을 떠올리고 아련한 아픔에 휩싸였다. 그때 조조는 자신의 철없는 응석을 귀엽다는 듯 받아주곤 했다. 그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지 조조는 채염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이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때 이상한 것이 눈에 띄어 조조가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오.”
 
  “조아(曹娥)의 비입니다. 후한 4대 소제 때 조한이라는 무용을 잘하는 무당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5월 5일에 술에 취해 춤을 추다 배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당시 그의 딸 조아는 열네 살이었는데 17일간 울다가 자신도 물에 몸을던져, 며칠 후 아버지의 시체를 등에 이고 수면으로 떠올랐습니다. 현령의 도상이 약관 20세의 수재 한단순(邯鄲淳)을 시켜 그녀의 효행을 비문에 남기게 하였습니다. 그 비는 무덤 옆에 세워졌는데 아버님 채옹이 빛이 바랜 글자를 알아볼 수 없어 손으로 더듬어 읽고는 비 뒤에 8개의 문자를 크게 썼습니다. 그것이 이 척본입니다.”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虀臼)…. 이것이 무슨 뜻일까.’
 
  아무도 그 뜻을 풀지 못할 때 양수(楊脩)가 나서 조조도 같이 생각하였다.
 
  “이것은 은어로군. 나는 풀었네.”
 
  조조가 8개의 문자를 4로 나누어 황견은 색이 있는 포이므로 절(絶)이고 유부는 소녀의 뜻이라 묘(妙)라고 풀어내자, 양수는 외손은 딸의 아이이므로 호(好)이고 제구는 신맛이 나는 음식을 담은 그릇이라 사(辭)라고 풀었다. 이에 ‘절묘호사(絶妙好辭·아주 묘하고 좋은 말)’가 되니 모두 조조와 양수의 기지를 찬양하였다.
 
  조조가 채염에게 호가 한 곡을 청하자 그녀는 최근에 작곡한 조아의 곡을 불었다. 조조는 그 애절한 음률 속에서 그녀의 과거 비참함과 두고 온 자식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조조는 그녀의 집을 나와 전쟁터로 갔고 그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