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민희식_삼국지의 여인들_01

醉月 2014. 9. 17. 08:44


삼국지의 여인들 ① 동탁과 왕 美人

글 : 민희식 전 서울대교수
그림 : 유승배 

민희식
⊙ 80세. 서울대 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프랑스 슈트라스부르 대학 불문학 박사.
⊙ 서울대, 한양대 교수 등 역임
⊙ 프랑스 최고문화훈장. 파키스탄 정부 초빙으로 간다라 역사문화 연구 중.
⊙ 《프랑스문학사》 《성서의 뿌리와 이해》 《예수와 붓다》 등 200여 권의 저서와 역서.

삽화 - 유승배
⊙ 애니메이션 220만 신화 ‘마당을 나온 암탉’ 미술감독 및 순천만 정원박람회 주제영상
    ‘달의 정원’ 미술감독.
⊙ ‘Design Leader's Choice’에서 디자이너 그랑프리상 수상.
⊙ 현재 유기견 애니메이션 기획.
36만의 군사 조직은 명령이 떨어지자 황색포를 머리에 감았다.
  
[작가의 말・연재를 시작하며]
 
  본인이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연구할 때 가장 흥미 있게 읽은 책이 《삼국지》와 《손자병법》이었다. 당시 나는 발자크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프랑스 르와르 지방의 벽촌에 방을 얻어 공부에 힘쓰고 있었다. 마을은 고요하고 인구도 적었는데 주민들은 도시인과 달리 순박하였고 한국인이 지방의 도서관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것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벽촌에는 영화관이 하나 있었으나 목요일에 영화 한 편을 상영하고 6일은 쉬는 형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교양이 있는데다 동양의 문물에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해서 나는 그들의 청으로, 파리에 갔다 올 때 《삼국지》를 사 갖고 와서 틈나는 대로 같이 읽는 시간을 가졌다. 작품 속 인물들의 사고방식이 프랑스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라 그들은 매우 놀라워하며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 많은 프랑스인이 《삼국지》에 여자 이야기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프랑스 문학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인생의 중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성이 중심 역할을 하는 삼국지를 써보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판, 일본판, 중국판, 프랑스판, 영어판 등의 삼국지를 읽으며 여성을 중심으로 한 삼국지를 구상하였다. 그것이 오랜 세월 머릿속에 저장되어 숙성되어 가다가 이번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이 《삼국지》를 아끼는 모든 이에게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흥미와 비전을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때는 한제국(漢帝國) 중흥(中興)의 조(祖), 광무제(光武帝)로부터 11대가 지난 효령황제(孝靈皇帝) 유굉(劉宏) 시대의 일이다. 황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관직을 팔아 사복을 채우며 환관들을 중용하고 외척에게 주요 직위를 주었다. 조정의 부패가 극에 달하니 하늘이 조정을 버린 것인가. 어느 날 파란 구렁이가 옥좌(玉座)에 앉고 암탉이 수탉이 되고 대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메뚜기 떼가 밭을 메우고 기아로 아사자가 속출하였다. 측근과 환관들이 보고조차 하지 않으니 황제 유굉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유굉은 13세에 즉위하였다. 20여 년간 낙양의 궁전에서는 매일같이 연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가려 뽑은 미녀들과 함께 환락을 즐기는 게 그의 주요 일과였다. 이 어리석은 황제는 그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환관들 또한 황제를 돈과 여자와 술에 빠뜨려 정치에 마음 쓰지 못하도록 책략을 써 왔다. 환관 가운데 제일 윗자리의 열 명을 십상시(十常侍)라 하였는데 조금이라도 그들을 비판하는 자는 국외로 추방하거나 참혹하게 살해하니 백성들은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었다.
 
  환관의 두목이자 황제로부터 아버지라 불리는 장양(張讓)은, 매일의 일과로서 금소(禁所)에 드나들었다. 황제는 반나체 상태로 취해 있기 일쑤고 주위에는 노래와 춤이 질펀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술과 음식이 넘쳐흘렀다. 여자들도 아편에 취해 나체로 지냈다. 누워 있는 나체 여자의 음부에는 남근을 본뜬 장형(張形)이 박혀 있기도 하였다. 환관들은 여자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 금소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성욕을 채울 수 없는 한을 풀기 위해 대신 권력다툼과 돈벌이에 열중하였다. 황제가 가장 아끼고 집착하는 왕 미인(王美人)은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상의가 찢어질 만큼 크고 아름다운 유방을 가졌다. 장양은 황제가 없으면 그 부드럽고 탄력 있는 유방을 쓰다듬고 즐겼으나 거기까지뿐이었다. 그는 ‘황제여, 마음껏 즐기시오. 우리 십상시는 비록 여자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그대보다 더 부자올시다’ 하고 속으로 외쳤다. 또한 ‘아들아, 정치는 이 아비가 할 터이니 너는 지금처럼 그렇게만 계속 지내다오. 설령 비명에 간다 해도 새 황제를 옹립하여 이 권세 천년만년 누리리라’, 그렇게 속말을 하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왕 미인의 불안
 
  왕 미인은 눈만 뜨면 언제나 황제의 몸 위에 있었다.
 
  왕 미인이 15세 나이로 제의 측실(側室)이 된 지 어느덧 7년. 7년 전 왕 미인의 아버지는 그녀를 대가로 고관의 요직을 샀다.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세상인지라 아름다운 딸을 가진 자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황제는 매일 궁녀를 상대로 치정소동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반드시 왕 미인을 껴안고 지냈다. 아무리 탐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을 팔아 돈을 버는 것과 아름다운 여자를 품는 일이었다.
 
  황제는 왕 미인을 품을 때면 ‘쾌락이란 끝이 없구나, 단지 그 쾌락을 끝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도다’ 하고 한탄하였다. 황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일반 백성들은 남녀관계는커녕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황제는 백성이란 어차피 그런 존재들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만백성의 주린 창자에서 나는 가여운 소리보다 왕 미인의 교태 섞인 신음이 훨씬 중요하였다.
 
  그런 왕 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시녀들이 꽃잎과 향수가 든 통을 가져와 몸을 씻겨 주고 화장을 해 주고 옷을 입혀 주었다. 거울에 비치는 왕 미인의 가는 허리와 매끄러운 손발과 긴 목, 눈처럼 흰 살결, 큰 유방,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시녀들은 감탄과 함께 질투 어린 눈길을 감추기 바빴다. 왕 미인을 질투하다 못해 증오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하 황후였다.
 
  황제가 “그대는 누구보다 아름다우니 죽을 때까지 안고 싶다”고 속삭이자 왕 미인은 “저 또한 황제 폐하의 품에 이렇게 안겨 영원히 지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 황후가 저를 시기하여 저와 아들 협을 해할까 늘 두렵답니다” 하며 얼굴 가득 수심을 드리웠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짐이 끝까지 지켜 줄 것이니 아무 걱정 말아라.”
 
  황제가 안심시켰으나 왕 미인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저러다 덜컥 자리에 눕기라도 하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왕 미인은 황제의 생모(生母)인 동 태후(童太后)를 더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황제에게는 하 황후가 낳은 장남 유변(劉弁)이 있으나 동 태후는 왕 미인이 낳은 유협(劉協)을 더 귀여워하였다. 유변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6살에 지나지 않은 유협은 유변보다 총명하였고 왕 미인을 닮아 외모 또한 수려하였다. 어린 유협이 어머니에게 그날그날의 일을 꼬치꼬치 보고하니 왕 미인은 아들이 나날이 철이 든다고 기뻐하였다. 영악한 왕 미인은 황제의 사랑 속에서 아들 유협을 키우며, 동 태후를 등에 업고 황제의 어미가 되는 야망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영제 (靈帝)의 죽음에 의한 세습 다툼
 
  어느 날 황제는 여느 때처럼 궁녀와 노닌 후 왕 미인의 방으로 갔다. 그러나 그녀를 안아도 남근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황한 황제는 그녀의 옷을 찢으며 짐승처럼 난폭한 행동을 하다가 지쳐 돌아갔다. 왕 미인은 두려움에 떨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황제의 무서운 모습이었다.
 
  며칠 후 황제는 왕 미인을 불러 강제로 하반신을 노출시키고 음부에 장형을 넣었다. 장형에는 가죽끈이 달려 있고 가죽끈은 허리에 묶게 되어 있었다. 황제는 열쇠가 달린 기구로 장형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폐하, 제발 이것만은 말아 주세요.”
 
  왕 미인이 몸을 비틀며 호소했으나 황제는 간단히 무시했다.
 
  “짐은 이미 남자의 역할을 할 수 없는 몸이다. 이제 너를 더 이상 안을 수 없구나. 이 장형은 나 자신과 같은 것이니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필요할 때는 말하마.”
 
  장형에는 황제의 이름인 ‘宏(굉)’이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몸 한가운데 장형을 단 왕 미인은 처음에는 걸을 수조차 없었다. 시녀들의 목욕 시중도 뿌리쳐야 했고 특히 아들 협이 이 사실을 알까 조마조마하였다. 용변을 볼 때면 너무도 수치스러워 홀로 울음을 삼켰다. 황제의 그녀에 대한 애착이 도를 넘어 탐욕적이고 광적인 소유욕으로 변질돼 갔으니 왕 미인은 황제를 원망하며 야위어 갔다.
 
  중평 6년(189). 황제가 연회석에서 갑자기 쓰러져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이 깊어져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황제는 십상시 건석(蹇碩)을 불렀다. 건석이 동궁(東宮)을 내정하실 것을 청하니 황제가 병상에서 대답하였다.
 
  “짐은 협이 태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오. 동 태후께서도 협을 아끼고 있고 그러니 왕 미인이 황후가 되는 것이 좋겠소. 나이는 형 유변이 많지만 그릇이 작고 범용하니 말이오.”
 
  십상시들도 유협을 태자로 삼는 데 찬성하였다. 마음이 놓인 황제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유굉은 그 무능 때문에 영제(靈帝)라 했다. 십상시들이 모인 자리에서 두목 장양이 말했다.
 
  “우리가 유협을 지지하면 하 황후와 하진 장군이 가만있지 않을 거요.”
 
  “제가 돌아가신 사실을 잠시 감추고, 세습 문제로 제가 보자 한다며 불러들여 죽이는 것이 어떨는지.”
 
  십상시 건석이 말했다. 다들 동의하자 하진(何進) 대장을 부르러 갔다. 궁 안에는 병사들을 잠복시켰다. 그런데 첩자가 이 음모를 하진에게 일러바쳤고 분노한 하진은 5000의 군사와 함께 궁전에 들어가 십상시에게 외쳤다.
 
  “황제의 승하를 감춘 채 태자를 폐하고 협을 황제로 세우려 들다니! 이런 음모를 꾸미고도 너희가 감히 살기를 바라느냐!”
 
  그러고는 건석을 칼로 베니 장양과 환관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사죄하였다.
 
  “장군을 해하려 한 자는 오직 건석뿐이옵니다. 우리는 모두 반대했습니다.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이에 하 황후가 하진을 타일렀다.
 
  “죄진 자는 건석뿐인가 보오. 다른 자들은 그만 용서해 주지 그래요.”
 
  하진은 우유부단한 데다 또한 누이동생을 어려워해 나머지 사람들을 용서하고 말았다. 다만 그 자리에서 태자를 유변으로 바꾸고 황태후 자리에 하 황후를 앉혔다. 유협은 발해왕(渤海王)에 봉하였다(후에 다시 진류왕·陳留王으로 격하시킨다).
 
  유변의 어머니인 하 황후는 하층계급 출신이었다. 하지만 키가 크고 피부가 뽀얀 미인인 그녀는 십상시의 추천을 받은 데다, 천한 집안 출신이니 외척이 힘을 쓰지 못할 거라는 동 태후의 계산에 힘입어 황후가 된 것이다. 그녀의 오빠인 하진은 원래 돼지 잡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 자였다. 누이동생이 태자를 낳자 그 힘으로 관위(官位)를 얻어 출세해 어린 나이에 무관의 최고위 대장군이 되었다. 하진은 이제 한나라의 모든 군대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 황후는 왕 미인이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자 그녀를 날마다 미워하게 되었다. 귀인(貴人)도 아니고 미인(美人) 주제에, 아들을 낳았답시고 저리 사랑을 받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왕 미인은 하 황후의 잔인한 성정으로 볼 때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몰라 유협과 함께 동 태후의 관에 숨은 채 병을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하 태후와 하진은 선제(先帝)의 어머니인 동 태후에 대적할 수는 없어 눈엣가시 같은 왕 미인과 유협을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지키기 위한 왕 미인의 도박
 
  백성들은 나라의 혼란 속에서 흉년과 천재지변과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궁전 중축에까지 동원되면서 피골이 상접한 몰골들이었다. 관리는 뇌물로 모든 일을 해결하니 썩을 대로 썩었고, 이에 뜻 있는 자는 토지를 버리고 유랑민이 되었다. 또는 도적이 되거나 황건적에 들어가 조정 타도를 위한 반란군을 결성하였다. 부패한 조정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라를 염려하는 이들도 각지에서 늘어났다.
 
  원소(袁紹)와 조조(曹操)도 정의감과 우국의 뜻을 품고 낙양에 왔으나 부패한 조정을 보며 그 원흉이 십상시와 환관들임을 알게 되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십상시·환관들 대(對) 병권을 장악한 하진 오누이의 대립은 더욱 격해졌다. 십상시는 하진을 제압코자 동 태후를 선동하였다. 동 태후의 조카인 동중(董重)을 장군으로 삼고 군대를 내려 궁전을 지키게 했다. 동 태후 자신도 궁전에 나가 정무를 보았다. 하 태후는 권력욕을 내비치는 동 태후가 다시 진류왕 유협을 들고 나올까 두려웠다. 이에 자주 연회를 열어 동 태후와 왕 미인을 초대해 의중을 살폈다.
 
  “여자가 나라 일에 개입하면 흉사가 흔하다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조정의 일은 대신과 원로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라고 봅니다.”
 
  하 태후의 입에 발린 말에 동 태후는 “태후야말로 오빠 하진의 권한을 믿고 자기 아들을 제로 삼으니 이는 선제의 유언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오. 보시오. 선제는 협을 제로 삼았어요. 우리는 지금 선제의 은혜를 저버린 꼴이 되었소. 돼지 잡던 일족이 어찌하여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는지 통탄스러울 뿐이오” 하고 치를 떨며 쏘아붙였다.
 
  왕 미인은 두 사람의 살벌한 설전을 들으며 살아도 살아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 태후와 동 태후 사이에 설전이 있은 그날 밤, 하 태후와 하진은 군대의 중진들을 불러 모았다. 바로, 병권을 쥐고 있는 동중 장군의 관을 포위하고 장군 지위를 반환하라고 윽박질렀다. 동중은 형세를 되돌릴 수 없다고 보고 자살하고 말았다. 하진은 이어서 동 태후도 잡아 가두었다. 위험을 느낀 장양 등 십상시는 급히 금은보화를 모아 하진의 친척 중 고위직에 있는 자에게 건네고 보호를 요청했다. 우유부단한 하진은 친척의 말만 듣고 십상시를 계속 중용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하진은 몰래 자객을 보내 동 태후를 암살하였다.
 
  동 태후라는 큰 배경을 잃어버린 왕 미인은 마지막 수단에 호소했다. 동 태후와 동중의 먼 친척뻘인 서량의 태수 동탁(董卓)에게 구원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왕 미인은 아들 유협의 이름으로 피가 밴 밀서를 써서 동탁에게로 보냈다.
 
  선제께서 본인의 황위 계승권을 인정하고 나라의 후사를 맡겼으나 하진 장군과 하 태후가 범용한 형 유변을 황위에 앉히려고 허위문서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한 동 태후와 장군 동중도 살해되었습니다. 나는 진류왕으로 봉해져서 지금 목숨이 위험합니다. 정치를 맡은 십상시들은 자신들의 보신에만 열중하며 나쁜 짓을 일삼고 있습니다. 역적 하 일가를 물리치고 조정을 바로잡아 환관을 배제하고 선제의 뜻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동탁 장군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을 이끌고 가능한 한 빨리 낙양에 들어오기 바랍니다.
 
  원래 야심을 품고 있던 동탁은 밀서를 받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적 십상시를 친다는 표문을 들고 병사들을 이끌고 급히 낙양으로 들어왔다.
 
 
  환관들의 죽음과 유협의 황제 등극
 
  동탁이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보고를 받은 환관들은 크게 당황했다.
 
  ‘하진이 우리를 죽이려는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한 장양은 하 태후의 이름으로 하진을 불러들여 죽이기로 결심했다. 원소와 조조는 하진에게 “이는 십상시의 올가미이니 가시면 안 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하진은 이를 무시했다. 원소와 조조는 할 수 없이 병사 500을 거느리고 하진을 뒤따랐다. 그러나 관리가 하진 장군 외에는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이라며, 하진이 들어가자마자 궁궐문을 닫아 버렸다. 둘은 문 밖에서 대책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장양이 “하진이 선제의 뜻을 무시하고 동 태후를 죽였다!”고 외치며, 홀로 들어선 하진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다.
 
  조조와 원소는 하진이 돌아오지 않자 큰소리로 장군을 불렀다. 그러자 성안에서 누가 하진의 머리를 던졌다. 분노한 원소는 “환관이 하진을 죽였다!”고 외치며 궁 안으로 쳐들어가 십상시를 모조리 도륙하였다.
 
  왕 미인은 이 혼란 속에서 재빨리 유협을 데리고 비밀통로를 통해 낙양성을 빠져나가 숲속에 숨었다. 이튿날 아침 둘이서 성 밖을 서성거리다 ‘董’(동)이라는 문자가 새겨진 깃발이 휘날리는 곳에서 무장한 군대를 만났다. 왕 미인은 동탁의 군대임을 알아보고 대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말을 걸었다.
 
  “대장 이름이 무엇이오?”
 
  동탁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멍했으나 오만한 태도로 답하였다.
 
  “서량의 태수 동탁이오.”
 
  “우리는 진류왕 유협과 그 어미요. 잘 오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동탁은 말에서 내려 엎드려 절하였다.
 
  “진류왕의 밀서를 받고 이 동탁이 몸을 바치기 위해 불철주야 달려왔습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제가 한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태산처럼 듬직한 장군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구려. 자 그만 일어나세요.”
 
  동탁은 죽은 동 태후가 아꼈다는 유협을 살펴보며 과연 용모가 수려하고 총명함이 얼굴에 씌어 있으니 천자의 자리에 오를 만하다고 바로 단정하였다. 그리고 선제가 가장 사랑했다는 왕 미인의, 어떤 사내라도 녹일 만한 미모와 탄력 있는 몸매를 보고는 두고 보기 아깝다고 생각하였다.
 
 
  상국 동탁
 
  동탁은 왕 미인과 유협을 수레에 태우고 선두에서 대군을 이끌며 의기양양하게 낙양에 입성하였다. 성내에서는 원소가 십상시와 환관 일족을 다 죽이고 있었다. 동탁이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와 원소가 나가 보니 대군이 왕 미인과 진류왕을 모시고 낙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수는 낙양수비대의 4배나 되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욕심 많은 돼지가 죽고 열 마리의 까마귀를 잡아 없앴나 했더니 이번에는 살쾡이가 나타났으니” 하고 조조가 불쾌한 얼굴로 말하자 원소도 “하진과 십상시가 사라지자 군과 정치가 모두 혼란에 빠져 버렸소. 동탁은 속이 검은 자요. 진류왕을 옹호하는 척하며 이 기회에 나라를 빼앗으려 할 것이 틀림없소” 하고 걱정하였다.
 
  동탁은 대군의 위세를 업고 문무백관을 모이게 한 후 옥좌에 유변을 앉히고 곁에 하 태후를 앉혔다. 그리고 왕 미인과 유협과 함께 신하의 자리에서 황제에게 아뢰었다.
 
  “지금 하진 장군이 죽고 십상시도 사라지고 나라가 매우 혼란합니다. 제게 대장군의 지위를 내려주시면 군을 다스려 바로 혼란을 가라앉히겠습니다.”
 
  황제 유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미인 하 태후만 바라보았다. 하 태후도 달리 방법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말했다.
 
  “그대를 대장군으로 삼겠소.”
 
  “그러면 대장군의 지위를 인수받고자 합니다.”
 
  동탁은 대장군의 지위를 얻자 사위 이유(李儒)에게 미리 준비해 둔 글을 읽도록 하였다.
 
  “금상폐하는 선제의 유언을 무시하였다. 태자 유협을 즉위시키라는 유언이 허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위를 찬탈했으니 죄가 있다. 이것을 막은 동 태후, 동중을 죽인 죄 또한 크다. 따라서 대장군 동탁은 천명(天命)과 진류왕의 요청으로 황제를 폐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봉하고 진류왕을 황제로 하겠노라.”
 
  이유가 다 읽고 나자 “불복하는 자는 지금 말하시오. 이 자리에서 군법에 따라 처치하겠소” 하고 동탁이 눈을 부릅뜨니 모두 무서워서 한마디 말도 못하였다. 그때 원소가 소리쳤다.
 
  “당신은 역적이오. 황건적 정벌에 실패하고 뻔뻔스럽게 뇌물로 서량 태수 지위를 산 걸 모르는 줄 아시오? 이 살쾡이 같은 자. 어디 죽이려면 죽여 봐라.”
 
  “이놈, 당장 죽이고 말겠다.”
 
  동탁이 칼을 뽑는 시늉을 하자 이유가 말렸다. 명문가의 후손인 원소를 죽였다간 민심이 사나워질 뿐 아니라 궐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탁 또한 명성과 직위에 약한 인물로, 일찍이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형제가 황건적 토벌의 공을 세웠을 때에도 관직이 없고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시했던 전력이 있었다. 그런 동탁이기에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원소 가문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동탁은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원소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천하대세는 이미 자신에게로 기울었음을 확신하고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문무백관들을, 내 말만 잘 들으면 두려워할 것 없다는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유를 향해 새 황제를 어서 옥좌에 모시지 않고 뭐 하느냐고 꾸짖었다.
 
  이유가 좌우의 부하에게 명하자 부하들은 황제 유변을 옥좌에서 끌어내려 신하의 자리에 앉혔다. 이어서 이유는 하 태후의 옷을 벗기고 유변 앞으로 발로 차 앉게 하였다. 동탁은 진류왕을 옥좌에 앉히고 왕 미인을 황태후로 삼아 백관에게 축하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전 황제와 하 태후를 영안궁(永安官)에 가두고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다. 젊은 황제는 4월에 등극하여 9월에 쫓겨난 셈이다. 동탁에 의해 새 황제가 된 진류왕 유협은 아홉 살 된 소년이었다. 그가 바로 헌제(獻帝)로 연호를 초평(初平)이라고 했다. 동탁은 삼공보다도 높은 상국(相國)이 되어 황제의 어전에서도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다. 영안궁에 갇힌 전 황제와 하 태후에게는 의복과 음식을 나날이 줄여 가며 그들이 종일 울며 지내게 하였다.
 
 
  하 태후와 황제 유변 독살
 
  태후가 된 왕 미인이 어느 날 동탁을 궁으로 불렀다.
 
  “돼지 백정의 여동생과 홍농왕이 살아 있는 한은 마음 놓고 잘 수가 없어요. 그들을 죽여 주세요.”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신하의 면목이 서질 않습니다.”
 
  동탁의 짐짓 예를 갖춘 말에 왕 태후가 실소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그대를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거늘 어찌 내 말을 거역하오.”
 
  “그래도 신하 된 도리가 아닌지라… 차차 생각해 보겠소.”
 
  동탁이 망설이자 왕 태후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대 같은 변방의 장수가 대장군이 되고 상국까지 된 게 도대체 누구 덕이오. 이제는 황제도 태후도 우습게 보이는 거요?”
 
  궁에서 물러난 동탁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이에 연회를 열어 계집을 끼고 술을 마시며 마음에 안 드는 자 하나를 지목해 그가 채찍에 맞아 죽는 걸 보며 기분을 풀었다. 동탁 눈에는 하 태후도 왕 태후도 한낱 계집일 따름이었다. 감히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죽이든 살리든 자기 마음이며 원한다면 살려 달라고 울면서 가랑이 밑을 기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동탁이기에 왕 태후가 뭐라고 지껄이든 한쪽 귀로 들으며 두 눈은 그녀의 굴곡진 몸을 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왕 태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하 태후와 전 황제를 죽일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다. 황제가 두 마리의 제비가 뜰에 날아든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 한 편이 동탁 손에 들어왔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푸르른 풀 연기처럼 자욱하고
  나는 쌍제비 저리도 자유롭구나
  외줄기 파란 강물 흐르는데
  들판의 사람들 부럽기 그지없네
  멀리 푸른 하늘 구름 떠가는 곳
  거기가 나 살던 옛 궁전 아닐는지
  충의를 지킬 어느 뉘 있어
  한 맺힌 이 마음 풀어 줄까
 
  嫩草綠凝煙
  裊裊雙飛燕
  洛水一條靑
  陌上人稱羨。
  遠望碧雲深,
  是吾舊宮殿。
  何人仗忠義
  泄我心中怨
 
  살려 두어 음식을 주고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터인데 이토록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니! 동탁은 비위가 상했다. 이참에 후환을 없애야겠다고 결심했다. 전 황제라는 존재 자체가 원소를 비롯한 반동탁 세력들이 결집할 구심점을 제공하는 구실이 될 터였다.
 
  동탁은 사위인 이유를 불러 전 황제가 다시는 시 따위를 짓지 못하게 그 입을 영원히 봉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그 어미에게도 아들과 함께 죽을 수 있는 영광을 주라고 하였다.
 
  전 황제와 하 태후를 죽이라고? 이유는 자칫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힐 그 일을 꼭 제 손으로 해야 하는지 원망스러웠으나 누구의 명령인데 감히 거역하겠나 싶었다. 그리고 어쩜 장인이야 말로 조만간 황제가 되실 분 아닌가. 이참에 큰 공을 세워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유는 병사를 데리고 가 하 태후와 홍농왕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상국께서 베푸는 술입니다. 건강에 좋은 술이니 드시죠.”
 
  공포에 사로잡힌 하 태후가 발악하듯 쏘아붙였다.
 
  “그렇게 좋은 술이라면 네가 먼저 마셔라.”
 
  이유의 눈이 잔인하게 빛났다.
 
  “잔소리 말고 마시시오.”
 
  이유는 하 태후의 목을 쥐고 입 안에 강제로 술을 흘려 넣었다. 하 태후는 몸부림치다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었다.
 
  “너도 마셔라.”
 
  폐위된 황제 유변은 울며 술을 마시고 죽고 말았다. 여섯 달을 황제로 있었기 때문에 후에 소제(少帝)라 불렸다.
 
 
  동탁의 만행
 
왕 태후는 단도를 꺼내 동탁의 어깨를 찌르다.

  이유의 보고를 받은 동탁은 잠시 눈을 감고 두 분의 명복을 빈 다음 왕 태후에게 갔다.
 
  “홍농왕과 하 태후가 술 한 잔을 드신 후 조금 전 편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랬어요? 거 참 안됐군요. 왕가의 혈통이니 장사나 잘 지내 주시구려.”
 
  왕 태후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말했다. 동탁은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될까 적이 염려가 되었다. 이쯤에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꿩 먹고 알 먹고의 방책이 하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상을 받고 싶습니다.”
 
  “무엇이 필요한가요.”
 
  “태후의 몸입니다.”
 
  동탁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 태후에게 덤벼들어 걸치고 있는 옷을 남김없이 벗겨 버렸다. 태후의 하반신에는 선제가 부착한 장형이 가죽띠로 매어져 열쇠가 걸려 있었다.
 
  “이게 대체 무엇이오?”
 
  동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왕 태후는 수치와 분노로 알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저항하는 태후를 억누르고 단도로 띠를 자르자 음부에서 장형이 튀어 나왔다. 거기에 선제의 ‘宏’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동탁이 말했다.
 
  “선제를 위해 정조를 지켜 오다니 훌륭한 일이로다. 그런 망령(亡靈)보다는 생신(生身)의 남자 것을 맛보아야지.”
 
  왕 태후가 놀라 격렬하게 저항하자 동탁은 더욱 몸이 달아올랐다. 태후는 짐승이 된 동탁에게 새벽까지 열 번 이상 범해졌다. 아침이 되어 기가 꺾이고 순해진 왕 태후에게 동탁이 정복자의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정말 남자를 못 견디게 하는 여자로군. 선제가 장형을 박아 넣은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앞으로는 내가 당신 남편이오. 궁 안에 자유로이 드나들고 천자의 침대에서도 자겠소. 상관있소?”
 
  동탁은 침착하게 장형을 주워서는 잠시 생각한 후 ‘宏’자를 단도로 깎아 ‘卓’이라고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것을 왕 태후에게 주며 스스로 음부 속에 끼어 넣도록 하였다.
 
  “앞으로는 내가 없을 때는 몸 안에 이것을 달도록 하시오.”
 
  그러고는 열쇠로 잠그고 큰소리로 웃었다.
 
  왕 태후는 ‘卓’자가 새겨진 장형을 보자 너무 분해서 살이 떨렸다. 생각할 틈도 없이 단도를 꺼내 방을 나가는 동탁의 어깨를 뒤에서 찔렀다. 동탁은 비명을 질렀으나 가죽옷을 입은 데다 왕 태후의 힘도 약해 상처는 가벼웠다. 동탁은 단도를 뽑아 돌아서서는 바로 왕 태후의 심장을 찔렀다. 왕 태후는 아들 협의 이름을 부르며 절명하였다. 그녀의 나이 25세였다. 왕 태후의 죽음은 누군가의 독살로 처리되었다.
 
  태후는 죽었지만 시신이 너무 아름답고 당돌해 동탁은 그녀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몰래 요리사를 불러 밀실에서 그녀의 몸을 해부하였다. 그녀의 목을 베어 식탁에 올려놓고 그녀의 장으로 만든 순대를 먹으며 도착적인 쾌감에 잠겼다. 당시 중국에서는 기근이 들면 사람고기 먹는 일이 없지 않았다. 또한 문무백관들이 역적이나 배신자의 시신을 씹어 먹기도 하였다. 동탁은 왕 태후를 실컷 농락한 후 그녀의 온몸을 요리해 먹었다.
 
  동탁은 그 후에 황제 유협의 조종자로 대권을 쥐고 낙양과 장안에서 난폭한 짓거리를 되풀이하며 악명을 떨친다. 왕 태후가 목숨을 걸고 지킨 아들 유협은 기구한 운명의 굴레를 쓴 후, 훗날 위(魏)에 제위(帝位)를 양보하게 되는 한제국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에 의해 산양공(山陽公)에 봉해진 후 서기 234년에 죽으니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제위를 선양하였기에 죽은 후 헌제(獻帝)라고 불렸다.
 
  동탁을 끌어들여 난세를 심화시킨 왕 미인,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해 나라의 기틀을 잡은 초선…. 《삼국지(三國志)》의 큰 뼈대는 이렇게 가녀린 여성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희식_삼국지의 여인들_03  (0) 2014.10.14
민희식_삼국지의 여인들_02  (0) 2014.09.30
전통식초 독립선언서  (0) 2014.08.29
요동하는 동북아시아  (0) 2014.07.25
배영순의 방하 한생각_06  (0) 201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