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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피곤한 '고비용' 결혼식

醉月 2009. 5. 6. 08:45

호텔 결혼식 초 장식 등 패키지 판매 "비쌀수록 더 특별하다" 호텔 고가마케팅 전략

작년 11월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결혼한 김모(29)씨는 결혼식 7개월 전인 4월부터 서울시내 주요 특1급 호텔을 찾아 다니며 식장을 물색했다. 마음에 드는 곳은 대부분 가을까지 결혼식 일정이 꽉 차 있었다. 김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 호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가, 앞서 예약한 사람이 결혼 일정을 취소하는 덕분에 식장을 확보했다.

서울 시내 특1급 호텔은 18곳이다. 이곳에서 결혼하면 간소하게 치러도 하객 500~700명을 기준으로 5000만원쯤 든다. 그런데도 결혼 성수기 주말이면 특1급 호텔 주위에 하객들이 몰고 온 승용차가 몰려 주차 전쟁을 벌인다.

특1급 호텔 결혼식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식은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문의 위세를 보여주는 자리'라는 한국 특유의 가치관 때문이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여·29)씨는 오는 24일 서울 강남의 모 특1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다. 비용 9900만원은 신랑측과 신부측이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김씨는 "대기업 계열사 임원인 아버지가 처음부터 '한번하는 결혼식인데 호텔에서 제대로 하라'고 하셔서 아버지 결정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결혼연령이 서른 전후로 높아지는 것도 호텔 결혼식이 인기를 끄는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호텔들이 이런 심리에 편승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부르며 "비쌀수록 더 특별하다"는 논리로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1급 호텔 결혼식 비용 중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는 대표적인 항목이 '식장 꽃 장식 비용'이다.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 그랜드볼룸(400명 기준)은 식장 꽃 장식 비용이 1500만원부터 시작한다.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비스타홀'(하객 500명 기준)의 경우 1300만원에서 시작한다. 한 호텔 관계자는 "5000만원까지 낸 고객도 있었다"고 했다.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그랜드볼룸(800명 규모)도 1000만원부터다.

자잘한 장식용 소품들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은 초 장식, 웨딩케이크, 샴페인 연출 등을 '2부 연출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150만원을 받는다. 빔프로젝터와 스크린(40만원), 얼음조각 장식(50만원), 테이블마다 놓는 메뉴카드(30만원) 등도 쉽게 납득하기 힘들 만큼 비싸다.

하객 1인당 식비도 거의 모든 특1급 호텔이 6만~7만원에서 시작한다. 비싼 곳은 1인당 20만원이다. 피로연 한끼 밥 값이 어지간한 최고급식당 만찬 가격을 웃도는 것이다.

특1급 호텔은 식장 사용비를 받지 않는 곳이 많다. 대신 꽃 값과 음식 값이 비싸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과 부모 입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식장 사용비를 받지 않는다면서 결국 다른 비용으로 본전을 뽑는 상술"이라는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특1급 호텔들은 "상담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주고 있으며, 결코 폭리를 취하거나 강매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모 특1급 호텔 관계자는 "꽃 값이 최소 800만원부터 시작하는 건 사실이지만 고객들이 여러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더 만족스런 식을 치를 수 있도록 다양한 추가 옵션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특1급 호텔 결혼식이 전면 허용되면서, 정부 부처 가운데 호텔 결혼식을 통제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호텔 결혼이 자유업으로 바뀌면서 완전히 방임돼온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며 "특1급 호텔 결혼식을 무작정 막을 수도 없는 만큼 소비자 입장에서 특1급 호텔이 매기는 가격이 과연 투명하고 합리적인지 모니터링 활동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체면치레… 치솟는 예식비… 호텔만 웃는다
"어지간하면 다 하는데…" 가문위세 과시심리 퍼져
올 3~5월 1000쌍 몰려 꽃값만 5000만원대도

하객 1인당 식비 6만~15만원, 예식장 꽃 장식비용 400만~1500만원, 드레스 대여·메이크업·스냅사진 등 450만~600만원, 기념 초 20만~30만원, 6단 웨딩케이크 100만원…. 서울 시내 특1급 호텔의 결혼식 견적서에 찍힌 숫자들이다. 하객 500~700명을 기준으로 간소하게 치러도 전체 비용이 5000만~7000만원은 나온다. 옵션을 더해 호사스럽게 치르면 금액이 억대로 치솟는다. 꽃값만 5000만원을 부르는 곳도 있다. 부가세 10%와 봉사료 10%는 별도다.

특1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2009년 3~5월 서울 시내 18개 특1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인 신혼부부는 500~1000쌍으로 추산된다. 특1급 호텔 결혼식은 지난 1999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폐지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꼭 10년 만에 재벌가와 연예인의 결혼 장소로 여겨지던 특1급 호텔은 서울 강남의 중산층 상부까지 소비자층을 넓혔다.

하나 둘뿐인 자식을 번듯하게 결혼시키고 싶어하는 혼주(婚主)의 심리, "요즘 어지간한 사람은 호텔에서 많이 하던데…" 하는 체면문화, 특1급 호텔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화학작용을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결혼산업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모든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고비용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1급 호텔이 터무니없는 비용을 물리는 데 대한 소비자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식장은 무료로 빌려주면서 대신 꽃값과 음식값을 비싸게 받거나 얼음 장식 등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품목까지 '패키지'로 선택하게 하는 관행에 대한 불만이다. 소비자문제 전문가인 서울여대 송보경(여·64) 교수는 "결혼식을 통해 가문의 위세를 드러내려는 혼주의 심리를 호텔측이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작년 9월 서울 강북 도심의 특1급 호텔에서 결혼한 주부 박모(34)씨는 "하객을 350명으로 줄이고 지인을 통해 25% 할인을 받고도 3800만원쯤 썼다"며 "그 돈을 아껴서 다른 데 쓰고 싶었지만 시댁에서 정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솔직히 겉치레"라며 "특1급에서 결혼한 친구들끼리 '당시엔 마냥 좋았는데 지금은 무슨 드레스를 입었는지도 생각 안 난다' '추억은 짧고 부담은 길다'고 한다"고 말했다.

 

99년부터 예식업 허용

호텔 결혼식은 한때 불법이었다. 1980년 12월 정부가 "호텔 예식은 허례허식"이라며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 '호텔 결혼 금지' 조항을 신설, 호텔들이 예식업을 하는 것은 불법화됐기 때문이다.

이후 14년 동안 금지됐던 호텔 결혼식은 1994년 다시 허용됐다. 정부는 1994년 관련 법률 일부를 개정해 특2급 호텔까지는 예식업을 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했다. 이후 정부는 1999년 2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폐지했다.

이 법률을 대신해 신설한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호텔의 예식장 영업에 대한 조항 자체가 없었다. 이때부터 특1급 호텔들도 본격적으로 결혼시장에 뛰어들었다.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등 스타들의 결혼식 장소로 특1급 호텔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서울 강남의 중산층 소비자들에게까지 대중화됐다는 것이 예식업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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