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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사람들 말 권하는 사회

醉月 2009. 8. 25. 09:01


대한민국 남녀노소 스피치 열풍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7월29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의 스피치 아카데미 ‘L스피치랩’. 양복과 원피스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장인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레젠테이션 스킬과 스피치 기본에 대한 ‘맛보기’ 수업 격인 특강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강 목적은 다양했다. 강사의 리드로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건설업체를 운영해왔습니다. 제 전문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들려달라는 강의 의뢰가 점점 늘어나 스피치 기술을 따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건설업체 최고경영자)
“국내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할 일이 많은데 좀더 효과적으로 제안 사항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주한 외국대사관 무역대표부 근무)

“지금까지 해외에서만 근무해 한국식 프레젠테이션, 스피치 방법에 익숙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모범적이라 받아들이는 말하기 스타일이 궁금합니다.”(외국계 물류회사 근무)

 

전문직 종사자, 고위 공직자, 주부까지 가세 … 강의 제목도 세분화

이날 모인 직장인 가운데 약 30%는 조리 있는 말솜씨가 직무 경쟁력과 직결되는 영업 관련직 종사자.아모레퍼시픽 생활용품 부문의 영업 파트에서 근무하는 유영국(31) 대리는 프레젠테이션 실력의 ‘한 단계 도약’을 목표로 이 특강에 신청했다. 그는 “듣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나이대에 맞는 말투는 물론 프레젠테이션용 파워포인트를 제작할 때 주제, 청중에 따라 어떤 색상이나 테마를 잡아야 하는지 등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까지 포함하는 디테일한 기술을 익히고 싶다”고 설명했다.

 

한편 PCA생명의 파이낸셜컨설턴트(FC) 김병규(34) 씨는 “보통 10~20분 내에 고객에게 보험 상품을 설명해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동아방송 아나운서, 불교방송 편성제작국장 출신인 ‘L스피치랩’ 이선미 대표는 “최근에는 건축가, 애널리스트, 의사, 변호사, 검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고위 공직자, 기업체 임원들에게서 스피치 강의를 듣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지금 우리 사회의 스피치 열풍은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 정부부처 대변인, 장관, 검사 등을 대상으로 미디어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 대비한 스피치 레슨 및 ‘미디어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직 종사자들은 서비스 경쟁 시대에 좀더 나은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찾아옵니다. 최근 한 여성 한의사의 경우 목소리가 앳된 편이어서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힘들다고 판단해 혀 짧은 발음과 지나치게 높은 음색의 목소리를 교정하기 위해 수업을 받았어요.”

 

전문직 종사자들의 스피치 교육 수요가 높아지는 것은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이들이 전문 케이블 채널, 인터넷 방송 등에 출연할 기회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웰스매니지먼트 최태선 대표는 “재테크 상담이나 재무 관련 도움말을 위해 방송 매체에 출연할 때마다 나의 목소리 톤, 제스처 등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다”며 “직접 방송에 출연한 듯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것을 비디오로 촬영한 뒤 전문 강사가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모니터 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맞물려 여성 수강생이 점점 느는 것도 트렌드 중 하나다. 7월3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롯데백화점 노원점 문화센터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참석한 가운데 ‘나를 브랜드화하는 말’이라는 주제의 스피치 교육이 진행됐다. 전업주부부터 댄스강사, 프로골퍼, 세일즈우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한 표정으로 강사의 지시에 따라 표정, 말투, 음색을 고쳐나갔다.

골프 강사 노명선(41) 씨는 일대일 레슨을 할 때 수강생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는 대화법을 익히고 싶어 점심시간을 쪼개 스피치 강좌에 등록했다.


“사람을 대할 때 긴장도 많이 하고 무뚝뚝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말의 기술을 익히다 보니 표정까지 함께 부드러워졌다고들 해요.”

두 달째 스피치 강좌를 듣는 벨리댄스 강사 최민희(37) 씨는 “심지어 남편, 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엔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왜 늦었느냐며 쏘아붙였는데 이젠 ‘이렇게 늦게 다니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당신 없이는 못 사니까 좀 일찍 다니면 좋겠어’라고 돌려 말하는 기술을 알게 됐어요. 잊고 지냈던 가족 간 대화 매너를 다시 지키게 된 셈이죠.”

롯데백화점 5개 지점 문화센터에서 스피치 관련 강좌를 진행하는 김현주 강사는 “과거에는 대인공포, 성격개조 등 특정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스피치 강좌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은 프레젠테이션 진행, 주제가 있는 집단 토론, 회의 진행 등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이 많아졌다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가에서도 ‘말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2004학년도 2학기에 ‘말하기’ 교육 과정이 처음으로 개설됐다. 현재까지 이 수업을 담당해온 전 KBS 아나운서 유정아 씨는 최근 이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란 책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씨는 모두가 말하기를 잘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말하기’에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대로 된 말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욕구는 상상 이상이었다. 수강 신청은 매번 10초 만에 마감됐고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해 현재는 강좌 수를 10개로 늘였다.”


발성, 발음법 등 기본적인 언어 훈련은 물론 자기소개 스피치, 인터뷰, 대화, 토론, 토의, 프레젠테이션 실습 등의 실용적인 스피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도 높다. 대학가의 말하기 강좌는 서울 소재 대학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현재 스피치 관련 강좌를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전국적으로 7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커리어 교육업체인 ‘듀오아카데미’ 관계자는 “입학이나 입사 등에서 면접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직장인뿐 아니라 취업준비생, 수험생, 초등학생 등으로까지 수요층이 점점 두터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강남점 문화센터 역시 지난해 11월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처음으로 스피치 강좌를 개설했다. 최근에는 주부반까지 운영하기 시작했다.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 문화센터도 스피치 강좌에 대한 문의가 늘자 지난해 처음 관련 코스를 마련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고품격 화법 · 매너’ ‘윈윈(win-win)하는 공감 대화법’과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한 ‘발표 영재 아나운서교실’ ‘초등 논리력! 발표력 스피치’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들의 스피치 교육 열풍도 트렌드 중 하나. 롯데백화점 노원점 문화센터의 스피치 수업 모습(왼쪽). 서울 마포 ‘L스피치랩’에서 프레젠테이션 특강을 듣고 있는 직장인들.

 

말하기가 두려운 한국인들 … 스피치 열풍은 시대적 요구

이곳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는 P스피치 박수현 강사는 “과거 스피치 강좌는 두루뭉술하게 ‘말 잘하는 법’을 내세웠다면 요즘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보이스 트레이닝’ ‘유머 트레이닝’ 등 세분화된 주제로 나눠 가르치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우리 사회의 스피치 열풍은 말하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언론정보학·신문방송학 연구자들의 학술단체인 한국소통학회 류춘렬 회장(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은 “우리나라는 해방 전후에 이르러서야 말과 글을 온전히 한글로 사용하게 됐으며 그전까지 글쓰기는 한자를 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말과 글이 일치하지 못해 글을 잘 쓰는 것만큼이나 말을 잘하는 ‘훈련’이 이뤄지지 못했고 이것이 스피치에 약한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말 (잘하기를) 권하는 사회’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말하기가 개인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됐기 때문. ‘표현력’보다 ‘숨겨진 내공’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가 글로벌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서양에서처럼 ‘자신을 알리고 표현하는 것이 곧 실력’이라 받아들이는 풍토로 변화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이 말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직장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리어 교육기관 듀오아카데미가 7월9일부터 17일까지 직장인 2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는 ‘말 잘하는 직장인의 승진 확률이 높다’고 답했다. 또 73%는 ‘말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고, 89%는 ‘화술을 따로 배워서라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듀오아카데미의 김유경 전임강사는 “비슷한 스펙, 콘텐츠 등을 갖춘 상황이라면 이를 말로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능력의 잣대로 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피치 열풍은 ‘소통’이 화두가 되는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류춘렬 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는 보혁 갈등 등으로 첨예하게 갈라진 단체 간, 개인 간 문제를 해소하고 서로 원활히 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통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하는 때”라면서 “학자들을 중심으로 소통의 방법론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하는 이때, 소통의 수단인 대화, 토론, 스피치 등으로 ‘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바야흐로 말 권하는, ‘말짱’의 시대다. 당신은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청중은 애인’ 자기암시를 하라!
말하기 기본 5가지 법칙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말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말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듣는 사람의 귀로 들어가 머릿속에 박히는 것’이다. 허공에서 흩어지는 말은 허무하다.

즉 말하기는 듣는 사람에 대한 서비스의 개념에서 바라봐야 한다. 내가 아닌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에서 자주 범했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듣는 사람’을 명심하며 말하기의 ‘기본기’를 닦아본다.

도움말 주신 분 :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정경진 한국커뮤니케이션코치협회 회장, 유정아 전 KBS 아나운서·서울대 말하기 강사

 

[Basic 1]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너를 만나면 더 멋지게 살고 싶어진다.”
용혜원의 시 ‘너를 만나면 더 멋지게 살고 싶어진다’의 한 구절이다. 정경진 회장은 “말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이 시구로 요약된다”고 말했다. 즉 상대방이 이 시의 ‘너’라고 생각한다면,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최선을 다해 말한다는 것. 듣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상황을 고려해 말해야 한다.

이는 5000여 명이 모인 대중 강연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중 하나하나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또 말하기의 시작이 듣기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지만,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을 정리하거나 이야기의 결론을 추론하고, 선택적으로 듣는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한다. 말하기 전에는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자기암시를 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잘해야지’라고 다짐하는 건 금물. 아무리 어려운 상대와 이야기를 하더라도, 연단에 올라 대중 강연을 하더라도,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더라도 평상시와 똑같이 말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Basic 2] “다른 사람들도 다 떤다!”

누구나 대중 앞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두려움을 느낀다. 꼭 연단에 오르는 게 아니더라도 회의 중 의견을 말하거나 상사에게 보고할 때도 떤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나만 떠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유롭고 당당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상은 떨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다.

떨림을 극복하려면 먼저 떨림의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본다. 자신감의 결여인지, 완벽해야겠다는 욕심인지, 아니면 발표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분석한 뒤 그에 따른 극복 방안을 모색해본다. 대부분은 준비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 떤다. 철저히 준비하고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해 발표 경험을 쌓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편안한 상태로 말하다가 갑자기 떨리기도 한다. 이럴 때 솔직하게 “떨린다”고 고백하는 것이 좋다.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유용하다. 이 경우 청중의 흐트러진 관심을 모을 수 있고, 답변자가 대답하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했습니다’ 등의 딱딱한 말투를 ‘했어요’ 등으로 부드럽게 바꿔도, 발표가 아니라 일상의 대화처럼 느껴져 마음이 편해진다. 말하는 사람에게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에게 시선을 주는 것도 좋다. 그 사람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에 불안한 마음이 진정된다.

 

[Basic 3] “말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라!”

공식적 스피치든, 비공식 모임에서의 말하기든 말의 물꼬를 어떻게 트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말의 오프닝이 독창적일수록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는 배한수입니다”보다는 “배움에 목말라 있는 남자,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배한수입니다”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오프닝은 준비해놓는 게 좋다.

말의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단순한 정보전달자가 아닌 다양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구성해 말하는 ‘스토리텔러’가 돼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가족사, 속담이나 격언, 신문이나 잡지, 책, 방송 등이 에피소드의 소재가 될 수 있다. 한편 상대방에게 좋은 대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말하기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정 회장은 “‘왜’를 ‘어떻게’ 또는 ‘무엇’으로 바꾸고, 미래형 질문을 하라”고 조언했다. “왜 이렇게 일이 늦어졌니?”가 아닌 “일이 늦어진 원인은 무엇일까?”로 질문을 바꿔보라는 것. 또 잘못을 질책해야 할 경우도 단순히 나무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묻는다.

 

정말로… 미안하다… 솔직히… ‘커뮤니케이션 킬러’를 제거하라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킬러’가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구 쏟아낸 단어와 표현들이 상대방과 나의 관계를 산산조각 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첫 번째 킬러는 바로 ‘정말로’라는 부사구다. 전체 문장에 아무런 의미도 보태지 않을뿐더러, 아첨하는 표현 내지는 얕잡아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두 번째는 ‘안 될 이유야 없지요’다. 이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전형적인 발뺌식 표현. 유사어로 ‘제가 아는 한 그래요’ ‘거의’ ‘예상대로라면’ 등이 있다.
세 번째는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것. 즉 미안하지 않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네 번째는 ‘솔직히’라는 부사구. ‘사실은 말이야’ ‘터놓고 말하면’도 비슷한 부류다. ‘솔직히’라고 말하는 순간, 듣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화자의 ‘솔직함’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 밖에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등의 표현도 상대방과의 관계 형성에 도움이 안 되니 쓰지 않는다.
※ ‘디테일 토킹’(다산라이프) 요약 발췌

 

[Basic 4] “‘네, 뭐라고요?’ 되묻지 않게 말한다!”

“에너지를 덜 쓰려는 게으름, 절약정신(?)이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게 한다.”
유정아 강사는 “입을 크게 안 벌리고 말하거나 이중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해 얼렁뚱땅 넘기려는 습관이 안 좋은 발음과 발성을 낳았다”고 꼬집었다. 상대방이 “네, 뭐라고요?”라고 되묻게 만들고, 스스로도 한 번 더 이야기해야 하는 수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발음 트레이닝은 필요하다.

우선 음가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발음하도록 노력한다. 특히 모음을 정확히 발음해야 전체 발음이 좋아진다. 모음은 혀를 입안의 제대로 된 위치(조음점)에 놓아야 정확히 발음된다. 혀의 위치(앞, 중간, 뒤와 위, 아래)와 입을 벌리는 정도(열림, 반만 열림, 반만 닫힘, 닫힘)에 따라 모음의 발음이 달라진다.

 

다양한 목소리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 회장은 “인간은 서너 가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지만, 이를 개발하지 않고 한 가지만 고수한다”고 설명했다. 즉 여러 목소리를 내는 성우들처럼 일반인도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목소리 개발을 위해선 낭독의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무작정 읽는 게 아니라 한 번은 아나운서 톤으로, 한 번은 대중 앞의 연설자 톤으로, 또 한 번은 내담자를 앞에 둔 상담자의 톤으로 읽으라는 것. 하루에 2장씩 매일 읽으면 서너 달이면 한 권을 다 읽는다. 낭독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목소리 개발뿐 아니라 발음 교정, 어휘력 향상에도 유용하다. 또 발음이나 목소리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말하는 속도를 천천히 하고, 중간 중간 포즈를 두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Basic 5] “효과 2배! 눈과 손이 메시지다!”

손은 또 하나의 말이다. 어떤 사람이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손을 살펴보는 것. 사람들은 진실된 이야기를 할 때 손바닥을 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스피치를 할 때도 손을 적절히 사용하면 전달 효과를 2배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

간청하고자 할 때 : 손바닥을 위로 편다

유순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자세로 무엇인가를 간청하고자 할 때 손바닥을 위로 펴는 것이 효과적이다.

스피치 내용에 권위를 싣고자 할 때 :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다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손짓하는 건 지배적이고 위협적인 제스처다. 내용에 권위를 싣고자 할 때 사용하면 좋다. 하지만 청중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스처만 본다면 명령을 받은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적대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청중에게 명령할 때 : 주먹을 쥐고 손가락으로 지시한다

매우 공격적인 제스처다.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려고 할 때 효과적이지만 손가락으로 청중을 지칭하는 건 당사자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한다.

손의 움직임만큼 중요한 것이 시선 처리다. 정확히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말할 때 전달 효과가 커진다. 여러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한 사람만 보지 말고 따뜻한 눈빛으로 전부를 찬찬히 쓰다듬어준다. 대규모 강연을 할 때는 청중을 몇 그룹으로 나누는 ‘그루핑’을 한 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살펴본다.

왼쪽, 오른쪽, 앞, 뒤로 이동하면서 말하는 것도 좋다. 움직일 만한 여건이 안 되면 몸이나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면서 말한다. 또 웃으면서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이를 드러내고 웃어도 되고, 살포시 미소만 지어도 된다.
※ 참고서적 : ‘성공하는 직장인의 7가지 대화법’(크레듀),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문학동네)

 

진화론적으로 바라본 말하기
말 잘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애완동물을 키우다 보면 이들이 보이는 두려움이나 애착, 질투 같은 감정이 사람과 무척 비슷하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그럼에도 동물과 사람의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으니 바로 말, 즉 대화의 여부다. 자신에게 말을 하는 주인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꼬리를 흔드는 개를 보면서 ‘저 녀석, 용케 말을 잘 알아듣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개도 소리를 내면서 의사를 표현한다. 뭔가 불편하면 낑낑거리고 화가 나면 으르렁거린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이런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의사소통 수단이다. 자음과 모음을 구분해 발음할 수 있는 발성기관과 단어, 문장을 문법에 맞게 구사할 수 있는 뇌의 회로가 갖춰져야 말을 할 수 있기 때문.
많은 과학자들이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와 의사소통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일부 영리한 침팬지가 수화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대화와는 거리가 멀다. 즉 ‘바나나’를 뜻하는 손짓이 ‘바나나가 먹고 싶다’는 건지, ‘바나나가 길쭉하다’는 건지, ‘바나나가 노란색이다’라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십중팔구 먹고 싶다는 뜻이겠지만.
사람의 놀라운 언어능력에는 좌반구 대뇌피질의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 주변이 집중적으로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은 체중이 침팬지의 1.5배 정도지만 뇌 용적은 3배가 넘는다. 주로 대뇌피질이 급격히 팽창했는데 언어능력 습득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고나 중풍 등으로 이 부분이 손상되면 심각한 언어장애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사람도 예전에 부르던 노래는 술술 부르고 화가 났을 땐 욕을 한다는 것.
한편 뇌의 언어영역이 손상된 농아는 수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화와 말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둘 다 엄격한 문법에 따라 문장을 만든다. 결국 언어능력이란 단순히 청각을 통해 소리를 주고받는 것 이상임을 의미한다. 몇몇 원숭이가 독수리가 나타났을 때와 뱀이 나타났을 때 다른 소리로 경고 신호를 낸다고 해서, 이들이 우리와 같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주장하는 건 억지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간은 언어능력을 갖게 됐을까. 1998년 찾아낸 이른바 ‘언어 유전자’의 존재는 이런 의문점을 풀 실마리를 줬다. 선천적으로 문법에 맞는 말을 못하는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FOXP2’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음을 발견했다. 그 뒤 다른 동물에서 이 유전자를 조사했는데 침팬지는 인간과 두 곳, 생쥐는 세 곳이 달랐다. 실제로 FOXP2는 뇌구조 발달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생쥐에 사람의 FOXP2 유전자를 넣었더니 뇌구조는 물론 찍찍거리는 소리 패턴이 바뀌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FOXP2 유전자가 발견된 뒤 많은 사람은 ‘인간의 유전자를 넣으면 침팬지가 말을 할까’라고 생각했고, 이를 풍자한 카툰도 있었다. 아마 지금도 어느 실험실에선가 이런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언어능력은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이래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므로 FOXP2 외에도 많은 유전자의 변이가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언어능력은 문법, 어휘, 억양 같은 다양한 측면의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회로가 발명된 결과 얻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류가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며 언어능력을 획득한 이유는 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기후변화로 밀림이 사바나로 바뀌면서 나무에서 내려와 들판을 헤매야 했던 인류의 조상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진화시켰다. 결국 의사소통이 원활한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고 자손도 많이 남겼을 것이다.
강석기 과학동아 기자 sukki@donga.com

 

(사람을 모을 땐) 스탠딩 스피치 (내 사람 만들 땐) 싯다운 스피치
도전! 성공하는 직장인의 비즈니스 말하기 전략    

# 말 잘한다고 소문난 강 회장. 그의 연설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발음과 발성이 좋을 뿐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이야기해 이해하기도 쉽다.

방송이나 조찬모임 등에서 여러 차례 강의도 했다. 연설을 기가 막히게 잘하고 대중적 이미지도 좋은 강 회장이지만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는 직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을 아주 피곤하게 하는 유형이라는 것. 직원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유창한 말솜씨를 자랑하며 자신의 말만 계속하는 ‘회장님’과의 식사 자리를 고역으로 여긴다.

 

 

# 기획팀 김 과장은 사내에서 말 잘하기로 유명하다. 업무 지시와 보고를 똑 부러지게 잘해 선후배 사이에서 신임이 깊다. 회식 자리에서도 최신 유머와 촌철살인급의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심지어 동료들이 연애 고민 같은 사적인 상담을 요청해올 정도. 그런 김 과장이 최근 매일 가위에 눌릴 정도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기획팀장이 신상품 프레젠테이션을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 그 내용은 사내 방송을 통해 전 사원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김 과장은 대중과 카메라 앞에 설 생각만 하면 오금이 저려오고 식은땀이 난다.

회사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스탠딩 스피치(Standing Speech)’를 잘하는 사람과 ‘싯다운 스피치(Sit-down Speech)’를 잘하는 사람이다. 앞서 설명한 강 회장은 공식적인 연설, 즉 스탠딩 스피치에 강하지만 비공식적인 대화, 싯다운 스피치에는 약하다. 김 과장은 반대의 경우다.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은 “회사를 포함해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두 유형의 말하기를 모두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탠딩 스피치를 잘해야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싯다운 스피치를 잘해야 그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두 가지 말하기의 기법은 전혀 다르고, 실제 생활하다 보면 이 둘을 혼합해서 말해야 할 상황도 많다.

그럼 지금부터 ‘말하기 실전’이라 할 수 있는 회사생활 및 각종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화법에 대해 스탠딩 스피치와 싯다운 스피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정경진 한국커뮤니케이션코치협회 회장, 이정숙 에듀테이너그룹 대표, 유정아 전 KBS 아나운서 겸 서울대 말하기 강사에게서 도움말을 받았다.

 

‘구체적인 언어로 말하기’|지시할 때

직장 내에서 업무 지시를 할 때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이정숙 대표는 “모든 지시는 간결하고 분명하게 내리되 지시와 동시에 잔소리를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지시는 좋지 않다.

“지난번 시장조사는 중요한 부분에 결함이 있었어요. 경쟁사를 고려하지 않은 조사였으니까. 그건 당연히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번에는 좀 잘해봅시다. 알았지요?”
대신 이렇게 지시한다. “이번 시장조사는 철저히 경쟁사와 비교, 분석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세요.”

 

‘결론부터 말하기’|보고할 때

“거기 사장을 만났는데요. 사람이 아주 신뢰할 만하고 성격도 좋은 것 같아요. 공장 시설이 좋고 물건 품질도 괜찮아서 납기도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맞출 수 있을 것 같고요.”

계약 성사 여부에 대해 물었을 때 부하 직원이 이렇게 대답한다면 팀장은 복장이 터질 것이다. 보고의 핵심은 ‘결론부터 말하기’다. 보고자 처지에서는 계약 성사까지 얼마나 난관이 많았는지, 그것들을 얼마나 열심히 제거하고 처리했는지 말하고 싶겠지만, 상사가 궁금해하는 것은 결과물. 정경진 회장은 “결론, 이유, 경위, 의견 순으로 보고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보고할 때 형용사와 부사는 자제하고 명료하게 말한다. 필요할 경우 1회 이상 중간보고를 한다. 여기서 보고의 기본은 지시를 잘 받는 것이다. 지시 내용을 메모하고, 모호한 부분은 반드시 질문해서 명확히 해둔다. 일의 기한도 반드시 확인한다.

 

‘풀세트로 말하기’|회의 중 의견 피력할 때

정경진 회장은 “회의 중 의견을 말할 때 결론, 근거, 부연설명 등으로 구성된 풀세트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분위기가 산만해진다. 명확하게 결론을 이야기한 뒤 근거나 이유를 제시한다. 근거 부분에서 말을 흐리는 것은 금물. 풀세트로 말하되 각 부분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하자. 최대한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찬반이 명확한 주제에 대해 회의할 때는 찬성, 반대, 절충안 중 하나로 분명히 말한다. 사람들 의견을 다 들어보고 대세를 따르는 것은 근무 태만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경우에 ‘노’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럴 땐 ‘YB 화법’을 활용한다. ‘Yes, But’ 즉 “네, ○○님 생각이 옳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이런 점에서) 동의해요. 하지만 저는 ○○ 부분을 좀더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식으로 말해야 한다.

이는 회의뿐 아니라 모든 업무 말하기와 사적인 대화에서도 명심해야 한다. 또 본인이 질문하고 본인이 답변하는 레토릭 화법을 사용해 부정적 의견을 사전에 봉쇄하면 인상적인 말하기가 된다. “이렇게 말하면 예산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예산 마련을 위한 대안도 생각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의사 결정권자에게 길고 진지하게 눈을 맞추는 ‘애티튜드’도 중요하다.

 

ㄱ자 자리배치가 친밀도 높인다
협상 테이블에서 두 사람이 ㄱ자 형태로 앉을 때와 마주보고 앉을 때 중 협상 성공률이 더 높은 때는 언제일까? 정답은 ㄱ자 형태로 앉을 때다. 마주보면 대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ㄱ자 형태로 앉으면 같은 편이 되어 의견을 나누는 것 같기 때문.
또 주요 인물과 비즈니스를 할 때는 그 사람이 벽을 바라보고 앉게 해야 한다. 문이나 복도 등이 보이는 자리에 앉으면 산만해져 비즈니스에 몰두할 수 없기 때문. 창가에 앉는 것도 좋다. 외부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물론 풍경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을 할 수 있다.
소개팅이나 선 자리에서 혹은 연애 초반일 때는 남녀가 마주보거나 ㄱ자로 앉는 것보다 나란히 앉는 게 좋다. 하지만 아직 친해지지 않은 관계라면 50cm 반경 안으로 상대방이 들어오면 오히려 부담을 느끼니 조금 떨어져 앉는다.

 

‘뼈대 세운 후 데커레이션하기’|프레젠테이션할 때

프레젠테이션은 스탠딩 스피치의 대표적인 형태다. 임원진 보고부터 대중 강연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하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내용의 뼈대가 확실히 서 있어야 한다는 것. 이정숙 대표는 “서론, 본론, 결론의 척추부터 배치한 뒤 중추에 해당하는 본론에 3개 정도의 갈비뼈(보편타당성이 인정된 근거)를 붙이라”고 조언했다. 또 뼈대를 세운 후에는 키워드를 머릿속에 오래 남기기 위해 ‘3·3기법’을 활용하라고 덧붙였다. 3·3기법은 키워드 3개를 3번 언급하라는 뜻. 키워드는 서론에서 한 번, 본론에서 각각 풀어서 한 번, 결론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한다.

데커레이션은 흥미로운 스토리, 즉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말한다. 보고 형태의 프레젠테이션보다 대중 강연에서 에피소드는 더욱 중요한 구실을 한다. 김미경 원장은 “청중의 공감을 일으키는 건 다양한 에피소드”라면서 “1시간 강의에는 에피소드가 30개 이상 들어가야 지루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Tip!
소규모 모임에서의 즉석 스피치 노하우
소규모 모임에서 즉석으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예상된 공식적인 프레젠테이션의 경우 준비할 시간이 있지만, 즉석 스피치와 같은 돌발 상황에서는 대다수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곤란해한다. 이럴 경우 몇 가지 키워드만 알면 무난히 스피치를 끝낼 수 있다. 우선은 모임을 주최한 측에 대한 감사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모임과 본인의 관계, 즉 언제부터 이 모임을 참석하게 됐고, 모임에서 어떤 일들을 경험했으며, 모임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관련 에피소드는 1개 정도만 언급하는 게 좋다는 것. 길어지면 듣는 사람이 지루해한다. 앞으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과 자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언급하면서 마무리하면 무난하다. 시간은 2분 내외로 하는 게 좋다.

세계적인 인기! 엘리베이터 피치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30초에서 1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구매를 권유하는 것을 뜻한다. 아주 짧은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 또는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을 간결하고도 기억에 잘 남게 전달하는 것으로 ‘말하기 기법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앤드 컴퍼니’가 직원 채용 면접 때 이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리베이터 피치에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전문용어를 배제한 채 본인의 비즈니스를 설명하고

▲고객에게 초점을 맞추며

▲한 가지 사례에 집중하고

▲고객의 해피엔딩을 이야기한다.
즉 전문용어를 남발하거나, 고객이 아닌 설득하는 본인의 처지에서 내용을 설명하며, 여러 사례를 뒤죽박죽 이야기하고, 이 사업이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 고객에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짧은 시간에 핵심만 전달하는 말하기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 앞서 설명한 엘리베이터 피치의 유의점을 명심하고 평소 연습하는 게 좋다. 다른 사람의 스피치를 분석해보는 것도 연습이 될 수 있다. 업계의 전문용어나 의미 없는 수치, 지나친 사명감이 초래한 표현이 없는지 생각해보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말할 것인지 고민해본다.

 

‘판단하지 말고 사실만 말하기’|외국인과 미팅할 때

외국인과의 미팅 자리에서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하고, 판단은 상대방이 하게 한다. 중언부언 설명하는 것도 좋지 않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이정숙 대표는 “최근 외국계 투자회사들은 한 줄 프레젠테이션, 즉 한 줄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등지에서 한 줄 소통을 대표하는 ‘트위터(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엘리베이터 피치’가 각광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외모, 사생활, 종교, 아이들 문제 등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과 상대방이 꺼릴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대신 음악이나 요리, 스포츠 등 상대방의 취향에 대해 언급한다.

 

유정아 강사의 수업 중 말하기 조언
“내용은 비판적이라도 표정은 밝게 하라”


“진지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되, 밝고 맑게 표현하는 학생이 가장 우수하다고 할 수 있죠.”
2004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에서 ‘말하기’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유정아 강사는 “학생들은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간을 찡그리고 화난 표정을 짓고 거칠게 말하는 오류를 범한다”면서 “내용은 비판적이라도 표정은 밝게, 표현은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업시간 중 강사에게 인정을 받는 학생들은 밝은 표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타일”이라고 강조했다. 즉 강사와 눈맞춤을 많이 하는 건 기본.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갸우뚱하는 등 비언어적인 표현을 많이 해주는 것이 좋다. 또 수업 중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질문하는 데도 노하우가 있다. 강사가 질문을 원하는 상황인지 파악한 뒤 질문해야 한다는 것. 질문의 내용도 수업의 진행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 엉뚱한 내용을 묻거나 많은 질문을 계속 이어갈 경우 수업에 방해가 된다.


유정아 강사의 말하기 강의는 ‘개개인의 말하기 불안 요인 분석하기’ ‘발성 및 낭독하기’ ‘자기소개 스피치’ ‘정보 스피치’ ‘설득 스피치’ ‘토론’ ‘최종 발표 스피치’ 등으로 이뤄진다. 이 강의는 매번 수강신청을 시작하자마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끈다.
“요즘 학생들은 개인 발표는 물론 토론에서 말하기를 아주 잘합니다. 오히려 기성세대보다 낫죠. 또 멀티미디어 시대에 맞게 짧고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하고, 발음도 꽤 정확해요. 물론 논술학원에서 배운 것 같은 동일한 패턴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학생들도 수업을 들은 뒤엔 많이 달라지죠. 학생 때 말하기를 제대로 배워야 가깝게는 입사면접에, 멀게는 이후 직장생활과 비즈니스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입사면접 때 말하기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핵심은 당당하라는 것. 회사가 나를 선택할 수 있듯, 나도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여유롭게 대답해야 한다. 스스로 면접관이라면 어떤 질문을 던질지 예상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또 단순한 정보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기승전결의 ‘스토리’로 구성해 말하면 스마트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상대 마음을 훔치는 말하기’|영업할 때

“그 상품은 사실 광고비로 수익이 다 나가기 때문에 품질은 형편없어요. 저희 상품은 광고는 거의 하지 않지만, 품질이 정말 훌륭합니다. 오늘 아니면 이 상품을 이렇게 좋은 가격에 살 수가 없어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영업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된 말하기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얻어내려고 했고, 심지어 다른 회사 제품을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유정아 강사는 영업과 같이 설득하는 말하기를 할 때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상대방의 생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한 번에 모든 것을 얻어내려 하기보다는 여러 차례 작은 것으로부터 마음을 훔쳐야 한다는 것.

정경진 회장도 “처음부터 물건을 팔려는 목적으로만 말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거절을 당해도 괜찮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말을 건네야 한다”고 말했다. 즉 처음 만났을 때 ‘대면했으니, 다음번엔 인사를 건넬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두 번째 만났을 때 ‘앞으로 2~3번 더 만나면 친분을 맺을 수 있겠구나’라고 믿으라는 것.

 

또 직접 상품에 대한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보다는 고객에게 ‘이 상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며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이후 고객의 말을 경청하면서 실제로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다른 회사의 제품을 흠집 내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

타사 제품을 칭찬하는 고객에게 “그 제품도 굉장히 좋다”고 말한 뒤 “우리 제품도 그에 못지않은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여야 한다. 여기에 우리 제품만의 강점을 자연스럽게 추가해야 심리적 저항을 막을 수 있다.

 

Tip!
직장 동료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사적인 비밀:

직장동료는 아무리 친해도 경쟁자다. 사적인 비밀을 전부 털어 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비밀을 공유하되, 상대방이 알아도 경쟁에서 ‘활용’할 수 없는 정도로만 털어 놓는다.
동료의 비밀:

동료의 비밀은 반드시 지킨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다. 말은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면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간다. 이는 회사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린다.
듣기 싫어하는 농담:

자존심 상할 만한 말은 삼간다. 별명 같은 것은 만들지도 부르지도 않는다.
자기탓:

정의의 사자라도 된 것처럼 ‘내 책임이야’ 라고 말하는 것은 금물. 공동 프로젝트를 할 때 아무리 친한 동료 간에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잘못하지 않은 일은 절대 자기 책임으로 떠안지 말아야 한다.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말: 말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행동을 지배한다. 회사에 대해 좋게 말하면 회사의 긍정적인 면이 잘 보여 애사심이 생긴다.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새나가 언젠가 곤욕을 치른다.

‘2배로 맞장구치기’|전화로 비즈니스할 때

상당수 업무와 비즈니스 미팅 등은 직접 만나서 이뤄지지만 피치 못할 경우 전화로 진행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표정 등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으므로 더욱 말하기에 유의해야 한다. 유정아 강사는 “전화에서도 짤막하지만 대화의 단계를 모두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시간을 빼앗는 것에 양해를 구한 뒤 용건을 말해야 한다.

이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하고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준 다음 통화를 마쳐야 한다. 김미경 원장은 “첫 통화에서 모든 목적을 이루려 하지 말라”고 말했다. 즉 ‘본전화’ 이전에 ‘예고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 통화의 용건이 무엇인지 간단히 전달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준비할 여유를 준 뒤 그 사람이 편안한 시간에 다시 통화해야 한다.

또 상대방에 대한 기본 정보(나이, 성별, 학교, 직장, 고향 등) 중 공감대를 끌어낼 만한 요소를 찾아내야 한다. 한 번은 서로 공감하며 웃어야 이후 대화가 원활해진다. 맞장구나 추임새도 대면할 때보다 2배 이상 해줘야 한다. 특히 전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자르면 자칫 큰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끝까지 듣는 인내가 필요하다.

 

‘KISS를 기억하며 말하기’|싯다운 스피치 달인이 되고자 할 때

싯다운 스피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말을 독식하지 않는 것’이다. 회식 자리가 고역이 될 때는 특정 인물(주로 부장 이상의 간부급)이 이야기를 독식할 때다. 즐거워야 할 회식이 ‘부장님 강연’ 자리가 되면, 부하 직원들은 조용히 식사만 하거나 작은 소리로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싯다운 스피치의 달인이 되려면 아무리 잘 아는 주제라도 5분 이상 말하지 않아야 한다. 또 자신이 모임의 ‘사회자’가 되어 참석자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질문해주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는 적절하게 맞장구치면서 경청한다. 유머도 싯다운 스피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정경진 회장은 “유머를 말할 때는 ‘KISS’를 기억하라”고 설명했다.

심플하고 스마트(Keep It Simple · Smart)하면서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내용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래의 유머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사장님!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
“그럼 부장님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장님이 거기 가기 때문이지.”

자신을 낮춰 편안한 웃음을 만들고, 듣는 사람이 상처받을 수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며, 청중의 취향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내용의 유머를 하는 게 좋다. 동료에 대해 적절한 칭찬도 싯다운 스피치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정경진 회장은 “구체적, 간접적, 공개적으로 칭찬하라”고 강조했다.

즉 ‘오늘 코디가 좋네요’보다는 ‘오늘 넥타이가 와이셔츠랑 매치가 잘되네요’로(구체적), ‘존경하는 교수님을 만나서 영광입니다’보다는 ‘제 친구가 존경하는 교수님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서 뵙고 싶었습니다’로(간접적), 둘이 있을 때보다는 회의나 회식 때(공개적) 칭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기서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칭찬을 한 뒤 잔소리를 덧붙이지 말라는 것. 상대방은 칭찬은 잊고 잔소리만 기억하게 된다.

참고서적 : ‘성공하는 직장인의 7가지 대화법’(크레듀),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문학동네), ‘성공하는 직장인은 대화법이 다르다’(더난출판), ‘디테일 토킹’(다산라이프)

 

김미경 원장의 CEO 말하기 조언
“회식 땐 무조건 듣고 사회자 역할만 하라”


“직원들 앞에서 회사의 비전이나 신사업 계획 등을 이야기하는 이른바 ‘강당 매니지먼트’가 중요시되면서 CEO들을 대상으로 한 말하기 교육이 불붙기 시작했어요.”
최고경영자 말하기 과정을 운영하는 아트스피치 김미경 원장은 “전문가 출신 CEO가 늘어나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한 직원과의 소통이 중요하게 됐고 그 결과 CEO들의 말하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CEO는 사내외 각종 회의나 모임 등에서 스피치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말하기 교육에 대한 니즈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대형 프레젠테이션뿐 아니라 동창회, 학부모회 등 각종 모임에서 짧은 이야기를 통해 주목을 끌 수 있도록 하는 5분 스피치 노하우, 건배사 잘하는 방법, 직원과의 회의를 효율적으로 이끄는 화법, 효과적인 스피치를 위한 제스처 등에 대해서도 배우려고 한다.
“이런 형태의 스탠딩 스피치는 청중을 분석하고,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몇몇 CEO는 스피치를 하러 가는 차 안에서야 겨우 신입사원 대상인지, 중간관리자 대상인지 물어보기도 하는데,

이건 스피치의 기본자세가 안 된 거죠.”


최근에는 스탠딩 스피치보다도 싯다운 스피치를 잘하는 게 CEO의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미경 원장은 “CEO가 직원들과 함께 싯다운 스피치를 할 때는 말하지 말고 무조건 들으라”고 조언했다. 우선 상석을 따로 두지 않아 직원들과 동일한 자리에서 식사하도록 자리 배치를 하고, 직원들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것. 본인이 말을 할 경우라도 여러 직원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사회자’ 역할을 하고, 의견이나 주장을 피력해야 할 때는 2분을 넘기지 말라고 강조했다. 특히 직원들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거나,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금물이다.


“CEO는 솔직한 이야기를 요령 있게 돌려서 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아는 CEO 한 분은 중언부언하는 부하 직원들의 말을 자르는 대신, 전체 직원 대상의 5분 스피치를 활용해 이를 개선했어요. ‘간결하게 보고 잘하는 법’에 대해 말한 후 전체 직원으로 하여금 자신이 보고를 잘못했던 사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게 한 거죠. 이처럼 CEO의 말하기는 중요한 만큼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중간관리자 이상이면 누구나 가슴에 새겨둬야 합니다.”

영업의 달인 3인“설득의 기술 알려주마!”
“기차에서 만난 남자와 비엔나에 내렸어” “너 미쳤니?” “설득당했어.”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의 한 장면이다.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이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상사를, 고객을, 가족을 설득하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는다. ‘말의 달인’만이 살아남는다는 영업 분야. 그곳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적으로 ‘설득의 왕’으로 추앙받는 3인을 만났다. 화려한 외모, 서울 표준말, 세련된 수사라는 삼박자를 갖추지 않고도 남다른 성과를 내고 있는 이들의 비밀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끈질기게 기다려라 - 대한생명 강북지역본부 용산지점 유현숙 부지점장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영업상황 악화에도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거두며 2009년 보험왕으로 선정된 대한생명 강북지역본부 용산지점 유현숙(40) 부지점장. 그는 지난 한 해 무려 141건의 계약건수를 이끌어내며 혼자서 약 73억원 규모의 매출을 거뒀다. 그가 직접 관리하는 고객 수만 약 1200명. 연봉은 1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그마한 체구에 소탈한 인상에서는 억척스러운 모습을 연상하기 힘든데도 에너지만큼은 ‘업계 최강’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14년 전 보험업에 처음 뛰어든 이후로 현재까지 계약기간 1년을 넘긴 시점인 13회차 기준의 계약유지율이 99.8%에 이르는 것 역시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유 부지점장이 보험업에 발을 담그면서 가장 큰 목표로 삼은 것은 동대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매일 새벽 1시, 손수 만든 김밥을 싸들고 동대문시장으로 출근했어요. 새벽부터 활동하는 상인들에게 김밥을 건네주며 일일이 인사를 했지요. 상담도 많이 해주고 정보도 많이 전한 덕에 ‘동대문시장의 재테크 설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그의 설득 노하우 첫 번째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많이 드러내는 것.
“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야 친해질 수 있고 또 진심도 통할 수 있거든요. 아무래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뭐 하나라도 더 주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현재 그는 용산지점 매출의 약 50%를 벌어들이며 보험설계사 30~40명의 몫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처음부터 보험 세일즈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낯선 사람, 싫은 사람과는 말도 잘 섞지 않으려 하는 성격이 문제였다.
“상대에게 살갑게 말하는 말투 연습을 많이 했어요.성격이나 태도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책도 많이 읽었지요. 사람들을 고루 만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 부지점장은 베테랑이 된 지금도 고객을 만나기 전에 철저히 준비를 한다. 어떤 말을 하고, 이러한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다. 그의 영업 노하우 중 또 하나는 사람의 성격과 유형별로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예의범절을 무척 중시하기 때문에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건넵니다. 반대로 젊은 사람들한테는 친언니나 친구처럼 편안한 단어, 어투를 사용하죠.”

하지만 ‘설득의 달인’에게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 이럴 때 그의 해결책은 한 번 더 찍기보단 때를 기다리는 것. “딱 잘라서 ‘안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도 끝까지 정성을 다해 말하고 만남의 끈도 계속 유지합니다. 나중에 상황이나 마음이 변할 수 있으니까요.”

그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설득의 비법’은 자신감이다. “저는 대통령을 만나도 제 직업과 판매하는 보험상품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요.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져야 남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은택(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강약, 경중 조절하며 고객 마음 열기 - 패션 멀티숍 한스타일 총괄매니저 김미정 실장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패션 멀티숍 ‘한스타일’의 총괄매니저 김미정 실장은 수년간 비슷한 디자인의 검은색 뿔테 안경을 고수하고 있다. 숍을 찾는 고객들에게 ‘변함없는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세일즈에서는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도 무척 중요합니다. 일관성 있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언제 와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객을 기다린다는 느낌을 줘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김 실장은 2007년 3월 ‘한스타일’에 합류하기 전, 패션업체 ‘논노’와 갤러리아백화점 등에서 근무했다. 세일즈, 비주얼 머천다이징(VMD), 머천다이징(MD) 업무를 경험했고 고객의 취향에 맞게 스타일을 제안해주는 퍼스널 쇼퍼로도 활동하는 등 패션 관련 업종에서만 약 25년의 경력을 쌓았다.

일반적으로 멀티숍을 찾는 고객들은 백화점 고객보다 정보도 많고 취향도 뚜렷한 편. 김 실장은 “국내에서 상위 0.1%에 드는 앞선 취향과 감각을 가진 고객이 많아 이에 따라 세일즈 전략도 다양하게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사적인 얘기를 많이 나누길 원하고, 어떤 분은 쇼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을 좋아해요. 안부전화 받기를 좋아하는 분, 문자메시지로만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분도 있지요. 고객과의 ‘관계 맺기’는 그래서 고객 성향에 따라 ‘강약, 경중’을 맞춰야 합니다.”

단골 고객들은 그의 겸손한 말투와 다소 어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부산 사투리 등의 ‘인간적인 매력’을 그의 경쟁력 중 하나로 꼽는다. 어려운 디자이너 이름을 유창한 외국어 발음으로 읊으며 잘난 척하거나 ‘패션 피플’ 특유의 ‘얌체스러움’이 없는 것이 오히려 큰 강점이 된다는 것.

 

김 실장이 강조하는 ‘설득적 세일즈’의 첫 번째 노하우는 말하기보다 ‘듣기’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스몰토크’ 속에서도 고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그 정보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판매할 때 공략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상품을 매입하러 해외 출장을 떠나서도 단순히 ‘이게 잘 팔리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옷에 어울릴 특정 고객을 떠올린다고 설명했다. 매출에 따라 연봉 1억2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이는 김 실장은 “세일즈 화법에도 나만의 철학이 담긴 ‘시그너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고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고객 모습 시뮬레이션으로 ‘족집게 대화’- 기아자동차 테헤란지점 박광주 부장

“늘 고객을 만나기 전, 그분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기본 정보를 보고 여러 가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는 거죠. 외모나 기본적인 성향, 성격이 어떨지는 물론 그분이 자동차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일까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따져봅니다.

그렇게 여러 상황을 설정하고 상담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한 뒤 고객을 만나면, 한두 마디만 나눠도 그분이 원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아자동차 테헤란로지점의 박광주(39) 부장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연속 전국 판매왕을 기록한 ‘판매의 달인’이다. 1994년 1월 기아자동차 영업을 시작한 그는 지난 4월 말 누계판매 2000대를 달성했다. 연봉은 2억원대에 이른다.

 

그런데 박 부장은 자신이 달변가도 아니고 더더욱 설득하는 말은 잘하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실제로 그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말 잘하는 영업맨’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분자분한 그의 말에 머리보다 귀가 먼저 ‘혹했다’.

박 부장은 인터뷰를 하기 전에 기자의 기본 정보를 알아보고, ‘영업의 달인에게서 듣는 말하기 노하우’라는 인터뷰 취지에 따라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봤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박 부장은 계속 되는 질문에도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화법은 부담 없이 ‘편안한 대화’와 ‘치밀한 대화’로 요약할 수 있다. 계약 이전엔 ‘편안한 대화’를 통해 잠재 고객과의 친밀감을 쌓는다. “모임 만드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라는 박 부장은 현재 활발하게 참여하는 모임만 20여 개에 이른다.

 

중고교 및 대학 동창회와 헬스, 등산, 에어로빅, 영화 동호회는 기본. ‘첫째아이 친구의 아빠들 모임’ ‘동네 텃밭 가꾸는 주민 모임’ ‘헬스클럽 사우나 함께 하는 모임’ 등 목적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모임에서 절대로 자동차 영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자동차 구매에 대한 강요로 들릴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계약 단계에 들어서면 ‘치밀한 대화’로 임한다. 비용에선 원 단위까지 확실하게 이야기해 전혀 착오가 없게 하고, 상품에 대해선 아주 작은 것까지 설명해준다. 기술적인 면에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엔지니어에게 문의해 하나하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고객을 위한 진심을 담아, 거짓 없이 이야기하면 고객의 마음은 움직인다”며 미소를 지었다.

첫 만남엔 무조건 띄워라,‘스몰 토크’에 감동하라!


그 남자, 그 여자 마음 잡는 성공률 100% 연애화술

이재목 ㈜듀오정보 연애컨설턴트·‘연애야 말해봐’ 저자 gagman2000@duonet.com

㈜듀오정보가 주최한 미팅 파티. 적절한 칭찬은 이런 만남에서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좋은 방법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있으며 조리 있게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는 취업을 위한 면접만 보면 본인의 특기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뽑아만 주시면 목숨 바쳐서 일하겠습니다” “저 같은 인재를 놓치면 면접관님은 후회하실 겁니다”라고 말할 뿐.

면접과 같이 말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크면 평소 말을 잘하는 사람도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필자가 보기엔 면접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것이 바로 남녀 간의 대화, 즉 연애를 위한 말하기다.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자기 자신의 전부를 걸 만한 이성인 만큼 말을 통해 얻으려는 목표치가 가장 높다. 상대방 역시 가장 날카롭고 예민하게 경계하게 마련이다.

그를, 또는 그녀를 당신에게 넘어오게 만드는 ‘말하기 비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비법의 기본은 ‘나는 당신의 편’이라는 긍정적인 기를 전달해 경계의 벽을 효과적으로 허무는 것.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호감을 느끼게 하거나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면, 긍정적인 동기부여와 호감을 끌어낼 수 있도록 정서적인 교감을 형성해야 한다. 이를 국민 MC인 강호동과 유재석을 ‘교과서’ 삼아 배워라.

 

강호동은 칭찬의 달인 … 경계심 쉽게 무너져

강호동은 칭찬의 달인이다. 상대방을 ‘대한항공 기장’보다도 높게 띄운다. 처음 만남에서 강호동식 칭찬을 해주면 상대방은 당신에게 최소한 호감은 느끼게 될 것이다. 칭찬은 인간관계에서 매우 소중한 대화 기술이다. ‘당신은 대단하다’ 또는 ‘나는 당신의 편’이라는 표현으로 상대방의 긍정적 에너지를 솟게 하면, 단순히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온전히 귀를 열게 할 수 있다.

필자는 ㈜듀오정보에서 미팅 파티 전문 플래너로 일하며 1만2000여 명의 미혼 남녀가 만나는 과정을 지켜봤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해도, 미팅 파티 현장의 미혼남녀 표정은 올림픽 축구 결승전에 출전한 선수들 같다. 이럴 때 적절한 칭찬은 어색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를 깨는 좋은 방법이다.

특히 ‘예쁘다’ ‘세련됐다’ ‘호감 가는 외모다’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의 칭찬을 100% 진심으로 받아들이진 않더라도, 최소한 부정적인 태도는 누그러진다. 하지만 간혹 잘못된 칭찬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다음의 말을 예로 들어보자. “저는 연애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가 당신을 본 순간 외모에 반했고, 스타일에 호감을 느낍니다.”

좋은 칭찬일까? 그렇다면 다음의 말을 살펴보자. “내 스타일에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해서 지금까지 싱글로 지냈습니다. 오늘에서야 나의 이상형인 당신을 만나게 됐네요. 정말 예쁘고 멋있어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동안 숱한 인연의 다가옴을 거절했던 것 같아요. 외롭게 지낸 게 참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무너뜨리면서 상대방을 칭찬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나는 매우 매력적인 사람인데, 이런 내가 당신을 칭찬한다’라는 느낌을 건네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욱 감미로운 기분이 될 것이다.

천하장사 강호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다. 그런 그가 상대방을 띄워준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잘난 남자지만, 이런 내가 보기에도 당신은 정말 잘났다’는 암시를 대화 중에 계속 건넨다. 그러면 상대방은 신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막 털어놓는다. 강호동식 화법은 소개팅이나 선 등으로 만나 시작하는 연애에 잘 맞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래된 친구나 동료 사이였다가 연인으로 발전하려면 어떤 화법을 쓰는 게 좋을까. 어릴 적 배웠던 ‘우화’를 떠올려보자.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건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다는 이야기. 앞에서도 언급했듯 절실할수록 마음은 급해지고 얼굴은 경직되며 행동은 커진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연인으로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몰아친다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보호를 위한 경계심만 크게 만든다.

 

유재석은 소통의 달인 … 오랜 친구 같은 수다 유도

이럴 때는 유재석을 따라 해보자. 유재석의 대화법은 상대방이 스스로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 편안한 맞장구가 특징이다. 유재석은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전 힘이 없고, 겁도 눈물도 많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죠. 부족한 것도 많지요.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 누구보다 재미있게 들어주고 당신의 편이 돼 맞장구쳐줄 수 있어요. 다른 데 가서는 못할 이야기도 제게는 해도 됩니다.’

‘길을 가다 넘어져서 민망했다고요? 괜찮아요. 전 쓰레기통을 안고 넘어지기도 했어요.’ ‘전부터 마음에 품었던 회사 동료에게 술 먹고 전화해 울었다고요? 에이, 저는 술 먹고 후배에게 전화한다는 게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내 마음을 받아줘’라고 했는걸요. 우리는 통하는 게 꽤 많네요.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요. 그러다 인연이 되면 좋은 사이로 발전하는 것이고, 아니더라도 언제나 편하게 수다 떠는 좋은 친구가 되는 거죠.’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한 유재석식 경청과 맞장구는 상대방의 ‘평생 나와 함께할 사람을 찾느냐, 아니면 평생 안 볼 사람을 만나느냐’는 식의 부담을 이완해준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연애의 최종 목표에 골인한 부부간에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실제로 결혼 이후에는 목표 상실로 인해 말하기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유명 개그맨이나 MC들도 집에 오면 말 한마디 안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인기와 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 집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말을 안 해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 있다 보니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부부간 대화를 위해서는 일희일비(一喜一悲)해야 한다. 군자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 부부간에는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게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이 좋다. 근엄하고 대범한 사람이라도, 큰 조직의 리더라도 집에선 수다스러운 남편과 아내가 돼야 한다. 가족 간 대화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고 유치한 것이라도 순간순간 내가 느낀 바를 가족에게 솔직히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혼자서 책임지겠다는 의지와 다짐으로 홀로 담배 피우며 힘들어하지 마라. 밖에서 힘들어하고 참았으니 집에서만큼은 감추거나 참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말로 수다를 떨어라. 어머니는 자녀들의 시험 성적에만 몰두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 하나의 인간으로 당신을 그대로 인정해줄 사랑스러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 밤부터 아주 작고 유치한 이야기에 일희일비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쌍꺼풀 수술 언제 했어요?” & “상자에 도넛 6개가 들어가세요”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그때 말만 잘했어도!” 살다 보면 이런 쓰라린 후회를 할 때가 많다. 직장 상사에게, 애인에게, 교수에게, 친구에게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반대로 말 한마디로 큰 성공을 거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말로 성공하고 실패한 이들의 ‘공감’ 에피소드에서 말하기 비법 한 수를 배워보자.

 

아, 이 말은 하지 말걸! …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 말 말

지방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오랜만에 서울에 온 과장님이 반가워 친근함의 표시로 “과장님, 머리가 꼭 가발 같잖아요! 가르마를 바꿔보세요!”라고 했다. 헉. 알고 보니 진짜 가발이었다. (하주경·27·회사원)

남자친구랑 동네를 걷다 허름한 단독주택을 지나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저런 데선 절대 못 산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고 보니 남자친구도 그런 집에 살고 있었다. (김지영·22·대학생)

 

시어머니가 ‘나이 먹으니 눈밑살이 자꾸 처진다’고 고민하셨다. 내 딴에는 신경을 많이 쓴다고 ‘보톡스 주사를 맞아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님이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내가 그런 시술을 할 정도로 볼품없어 보이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김지현·27·디자이너)

지난 연말, 회사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회식 후 우연히 과장님 차를 얻어 탔는데 바쁘다는 얘기를 하다 “난 지지리 복도 없다”며 신세 한탄을 했다. 그때 과장님이 나를 투정만 부리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본 것 같다. 이후 회식 자리에도 불러주지 않는다. (손미선·29·회사원)

 

우리 과장님은 썰렁한 농담을 많이 한다. 보통은 장난으로 야유하거나 그냥 웃고 넘어가는데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문제가 터졌다. 거래처 사람이 과장님 못지않게 썰렁한 유머를 남발한 것. 그 자리에서 “우리 과장님보다 싱거운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하며 혼자 막 웃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권유진·30·회사원)

 

나와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에게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쌍꺼풀 수술을 한 듯해서 “수술 언제 했어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부기 빠지면 진짜 예쁘겠다”고 친근하게 말을 건넸는데 그 친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러더니 톡 쏘듯 말했다. “수술한 지 3년 됐거든요!” (익명을 요구한 30대 회사원)

 

처음 방송 출연했을 때 아찔한 말실수가 잊히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잘 말해놓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 담당 PD와 친해진답시고 차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떨었는데, ‘○○여대 ○○학과’ 출신 인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학과 출신 여자들 엄청나게 드세잖아요”라고 말한 순간, PD 표정이 확 달라졌다. 그 순간 담당 PD가 바로 그 ‘드센 여자’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었다. 고정 출연인 줄 알았는데 그 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칼럼니스트)

 

식구들이 모두 외출해 시아버지와 집에 단둘이 남게 됐다. 친한 척하려고 말 한마디 건넸다 큰일 날 뻔했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아버님에게 “아버님, 개 밥 드렸어요?”라고 물었던 것. 제대로 배우지 못한 며느리 쳐다보듯, 황당해하던 아버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주부)

이 말 하길 잘했다 … 다시 생각해도 잘한 말 말 말

서비스업에 종사한 적이 있어 고객 응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얼마 전 동대문시장에 옷을 사러 갔는데 가격이 5만9000원이었다. 그런데 판매하시는 분 얼굴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언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지 그래요”라고 말했는데 그 분이 정말 고마워했다. 그날 나는 그 옷을 4만2000원에 샀다. (한경숙·28·회사원)

 

텔레마케터로 휴대전화를 판매하고 있는데, 전화를 통해 신청을 접수하다 보면 어르신들이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60대 할머니가 말도 잘 이해하고 신청 절차도 잘 따라해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 정말 대단하세요! 20대들보다도 잘하시네요”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가 친구를 세 분이나 더 소개해줬다. (남연우·30·회사원)

 

소개팅에 나갔는데 소개팅녀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음을 비우려던 찰나 그녀의 귀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귀고리가 정말 예쁘다고 칭찬했더니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며 스위스 여행 중 사온 것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도 스위스 여행을 한 적이 있어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니 꽤 긴 시간을 보내게 됐다. 지금 그녀는 나의 소중한 여자친구다. (조모 씨·28·회사원)

 

입사 최종면접 때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준비해간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버벅대고 있었다. 그러다 한 면접관이 “시력이 상당히 나쁘네요, 모니터 계속 봐야 하는 일인데 괜찮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도 몰래 “당장 라식수술 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면접관 다섯 분이 동시에 껄껄 웃기 시작하고…. 합격 후 그 자리에 계셨던 한 임원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때 내 목소리가 어찌나 다급하게 들렸던지 이런 지원자라면 꼭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성재·26·그래픽 디자이너)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와 이은택(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틀리는 말 말 잘하는 사람의 내공은 ‘디테일’한 표현도 실수하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자료집 ‘국어연구원에 물어보았어요’와 올해 3월 발간된 책 ‘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달인편’(다산초당 펴냄)에 게재된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말들을 정리했다.

“연배가 어떻게 되세요?

어른들에게 연배(年輩)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연배란 동년배(同年輩), 즉 같은 또래라는 뜻이다. 연장자에게 말할 때는 “연세(年歲)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다.
“부장님, 과장님 지금 자리에 안 계신데요?

직급상 부장이 과장보다 높으므로, 과장에게 높임말을 써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모셔오라셨어요”도 같은 이유로 잘못된 말. “아버지가 모셔오래요”라고 말하는 게 원칙상 맞다.
“‘사장님실’로 모시겠습니다.

사장실, 국장실, 부장실이라고 부르면 왠지 예의에 어긋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사장님실, 국장님실, 부장님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어법에 맞지 않다. ‘사장실’이란 회사에서 사장 역할을 맡은 사람이 쓰는 방이란 의미로 고유명사다. ‘화장실’이나 ‘회의실’처럼 특정한 공간을 뜻하는 것. 그러므로 그냥 ‘사장실’이라고 써야 한다.
“선생님, 수고하세요.

‘수고하다’는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수고했다’는 말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일을 평가하는 의미가 내포되므로 윗사람에게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세요’라는 어미 역시 명령형이므로 윗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이 된다. 아랫사람에게 쓰는 것도 권장할 만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고생을 피하고 싶어 하는데

 ‘수고(고생)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덕담이 되기 힘들기 때문.
“이 상자 안에는 도넛 6개가 들어가세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고객을 친절히 대하기 위해 과도한 높임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어법에 맞지 않고, 오히려 고객의 반감을 살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 상자 안에는 도넛 6개가 들어가신다’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도넛을 높이는 말이다.
“정년 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정년퇴임하는 사람은 만감이 교차한다. 민감한 때는 인사말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정년퇴임을 하는 사람이 이를 축하할 일로 인식하는지, 위로할 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인사말은 크게 달라진다. 가장 무난한 인사는 “벌써 정년이시라니 아쉽습니다” 정도다.

 

우리 시대 방송 입담꾼들은 ‘1대 2대 3법칙’으로 말한다
방송인 이숙영의 말하기 분석 다독 김제동, 낮추기 달인 박경림, 노력하는 유머 김수로, 웃는 얼굴 노홍철

 이숙영 SBS 파워FM 진행자·‘이숙영의 맛있는 대화법’ 저자 powerdj21@hanmail.net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친다.

본인의 말하기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싫어하는 화제 등을 파악한 뒤에야 시작한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하나를 말하고, 둘을 듣고, 세 번 맞장구친다’는 ‘1대 2대 3법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특히 맞장구는 호감을 부르는 마법 같아서 상대방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여러 명과 대화할 때 소외당하는 사람이 있다 싶으면 재빨리 화제를 바꿔주는 것도 중요하다.

 

경청과 맞장구만큼 중요한 대화의 자세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즉 나의 단점을 지나치지 않은 정도, 듣는 사람이 당황스럽지 않은 정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면 사람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상대방의 단점은 건드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 단점이 치명적인 콤플렉스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 방송계에서도 네트워크 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박경림은 자신을 낮추고 남의 아픈 점을 건드리지 않는 말하기를 했더니 많은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거들먹거리지 않고 상대방을 적절히 띄워주다 보면 호감을 얻는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것.

 

가수 김민우도 비슷하다. ‘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를 불렀던 왕년의 톱가수가 자동차 판매왕이 될 수 있었던 건 ‘낮춤화법’ 덕분이다. 그는 인기가수였다고 거들먹거리기는커녕 누구를 만나든 늘 깍듯하게 인사하고 고객을 최대한 높여주면서 감동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대화의 소재는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공통된 내용이어야 한다. 즉 음식, 여행, 날씨, 스포츠, 영화, 취미 등 누구나 들어도 부담 없는 화제면 좋다. 그런데 다양한 화제를 많이 알고 있으려면 독서는 필수다. MC 김제동은 매일 신문 서너 개를 읽는 건 기본이고, 여러 분야에 걸쳐 책을 많이 읽기로 유명하다. 자타가 인정하는 그의 순발력은 타고났다기보다는 독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필자 역시 일주일에 2~3권 읽는 책과 잡지 등이 라디오 방송을 할 때 가장 든든한 밑천이 된다.

 

또 대화를 잘하기 위해선 열린 마음과 웃는 표정이 중요하다. 말이 다소 어눌하더라도 긍정적인 태도와 웃음 띤 표정을 지녔다면 대화의 분위기는 좋아진다. 가수 장윤정의 마음을 사로잡은 개그맨 노홍철이 대표적인 경우. 웃는 얼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인드야말로 그의 경쟁력이다.

 

간단한 유머가 대화의 윤활유

칭찬 화법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중요한 대화의 요소다. 주변에서 인기가 많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하나같이 칭찬을 많이 하고 상대방 말에 절대 까칠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MC 유재석이 ‘안티팬’이 없는 이유는 남을 잘 깎아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MC 김구라는 상대방의 모자라는 점을 부각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러다 보니 김구라는 안티팬이 많지만, 유재석은 국민 대다수에게 사랑받는 국민 MC가 될 수 있었다. 또 대화에 대해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바로 유머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탁재훈이나 신정환의 촌철살인 유머는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 구실을 한다.

 

천성적으로 유머감각을 타고났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융통성을 가지고 상황을 너그럽게 바라보라. 그러다 보면 사람들을 웃길 만한 생각이 한두 가지는 떠오른다. 간단한 유머 몇 개를 외워두는 것도 좋다. 예컨대 아이들과 있는 자리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새끼 낳는 동물은?’ ‘사과를 한 입에 베어 먹었다를 네 글자로 하면’ 등의 유머를 구사하면 좋다.

 

답은 하이에나와 파인애플. 성인용 유머를 구사할 경우 가벼운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가 좋다. 도를 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탤런트 김수로의 유머는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출연 전날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면서, 어느 부분에서 어떤 애드리브를 할 것인지까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경청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 꾸준한 독서와 사색 등만 갖춘다면 당신도 말 잘하는 사람으로 멋지게 변모할 수 있다.

 

요즘 화제! 오바마, 손석희, 이금희, 박경철 스타일 스피치 파트너 리더십 강조한 오바마 스피치
긍정 프레임으로 미래 비전 제시
:

오바마 스피치의 핵심은 지금의 시련과 위기는 더 큰 성장을 위한 에너지로 작용하기에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 프레임을 제시하는 데 있다.
‘우리’ ‘함께’의 파트너 리더십 강조 :

‘여러분이 나를 믿고 따라오면 내가 앞장서겠다’는 ‘따라와’ 리더십이 아닌, ‘우리가 뭉치면 해낼 수 있다’라는 ‘함께 가’ 리더십을 얘기한다.
자신의 그늘진 과거를 솔직히 고백 :

부모의 이혼, 불우한 청소년기 등에 대한 고백은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배경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구나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인간적 매력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정책을 추진하는 데서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유머감각 :

원고만 읽는 딱딱한 대통령이 아닌 상황에 맞게 유머를 던지는 대통령.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전형이다.
자신감 넘치는 자세 :

당당한 발걸음, 곧게 편 자세, 세련된 무대 매너, 적절한 제스처와 울림이 있는 바리톤 음성 등 비언어적인 부분도 신뢰감을 주는 오바마 대통령. 이런 부분은 스피치에서 언어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적 긴장감 즐기는 손석희 스피치
짧고 굵은 명쾌함
:

군더더기나 사족을 찾을 수가 없다. 첨예한 상황에서 긴장감을 즐기는 듯 탄력과 명쾌함 사이를 오간다.
논리와 담백함 :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비전과 가치관을 확실히 하고 꾸밈없는 말투와 솔직함으로 말한다.
소신과 중립 : 소신을 가지면서도 진행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인 중립을 잃지 않는다.
펄떡이는 물고기의 생생함 : 생방송 상황에서도 출연자의 진정성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공감의 가슴을 가진 이금희 스피치
탁월한 공감의 소유자
: 진행자인 자신보다 출연자가 더 많이 이야기하도록 귀 기울여준다. 상대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는 데 탁월하다.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철저한 준비 : 정확한 발음, 간결한 억양, 명료한 정보 전달력, 장단음을 살린 핵심어와 적절한 포즈, 진취적이며 생동감 있는 언어와 바른 자세 등 방송인으로서의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 있다. 이는 모두 철저한 준비의 산물이다.
칭찬과 감사로 상대 높이기 : 소유가 아닌 재능을, 재능보다는 의지를 칭찬한다. 특히 구체적이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한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은 박경철 스피치
쉽고 가벼운 예시
: 어려운 내용일수록 쉽고 가벼운 예시를 들어 재미있게 풀어간다.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어필 : 진정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스피치는 유창한 말솜씨가 아니라 진정성이 묻어나는 말과 자세다. 정체성을 가지고 가장 본인다운 모습으로 ‘박경철’ 브랜드를 알리는 그의 스피치는 대단한 힘을 가진다.
정경진 한국커뮤니케이션코치협회 회장 kyung3770@naver.com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인 게 언제인가요

 


상대방에게 감정이입, 듣기 통한 ‘공감적 경청’이 리더십의 기본

손정숙 자유기고가 soksaram1@hanmail.net

현악기 제조회사 홍보팀 이 과장. 자신의 지식과 판단만 믿으며 주위에서 뭐라 하든 아랑곳 않는 ‘추진력’으로 유명하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내 말 귀담아들어본 적 있느냐”고 항의하다 지친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어린 아들은 말을 못 알아듣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회사는 구조조정의 격랑에 휘말리지만, 약빠르게 실세의 편에 선 그에겐 대리점 개설권이라는 보상이 주어졌다. 문제가 터진 건 대리점 오픈 당일. 이 과장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다 갑자기 쓰러지고, 오픈 행사는 엉망이 된다.

병원에 실려간 그는 뇌에서 청신경을 압박해 소리를 못 듣게 하는 종양이 머릿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선고를 듣는다.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은 이렇게 남의 말을 들을 줄 몰랐던 30대 후반 직장인에게 닥친 청천벽력 같은 청각의 상실과 뒤늦게 찾은 ‘각성’을 그리고 있다.

2007년 나온 이 책은 아직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내린다. 우리 모두 주위에서, 어쩌면 자신의 모습에서 조금씩 이 과장의 모습을 발견하고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 아닐까. 말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 현란한 수사를 구사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살아가지만, 그러다 한순간에 기우뚱 추락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말이다.

 

하나인 입이 두 개인 귀를 죽일 때

‘탈무드’는 입이 하나인데 귀가 두 개인 것은 말보다 듣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현들이 이구동성 말을 잘하기보다 잘 들으라고 강조한 것은 그걸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탓이리라.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은 “입은 상대적으로 경영하기 수월한 반면 눈과 귀는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통제가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말은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일단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귀담아듣기 위해서는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가 숨가쁘게 쏟아지는 요즘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 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프로들끼리 공동작업을 통해 집단지성을 쏟아내도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을까 말까다. 그런데 이 프로들이 하나같이 너무 잘난 사람들이라는 게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호 전무는 “‘핵심 인재’가 강조되고 다들 ‘튀어야 산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말이 많아지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현상이 생긴다”고 진단했다. 하나인 입이 두 개인 귀를 죽일 때, 우리는 똑똑한 인재로 인정받기는커녕 세상의 숨가쁜 흐름에서 이 과장처럼 낙오해버릴지도 모른다.

 

귀는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

뉴욕 번화가를 지나던 한 인디언이 갑자기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 주변의 뉴요커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떨어뜨렸다. 지나가던 뉴요커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미국의 작가이자 연설가인 팀 한셀이 소개하는 이 일화는 듣기의 속성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 귀가 객관적이라고 자부하지만 듣고 싶은 것만 걸러내 듣는 ‘필터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

구 소장은 “이런 필터링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더 많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조직에서는 경영자나 상사가 입맛에 맞지 않는 부하의 얘기에까지 귀 기울이는 성가심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대답 없는 메아리일 걸 알기에 부하들도 입을 닫는다. 젊은 아이디어들은 사장되고, 창의성과 열정은 시들며, 소통은 고사한다.

원활한 듣기를 가로막는 또 다른 훼방꾼은 예단과 두려움이다. 하지현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귀 기울여 들어봤자 결론이 뻔하다고 지레짐작해버리면 더 이상 상대방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어진다”면서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가운데 끝까지 듣지 않고 빨리 결론 내거나 넘겨짚기를 좋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소리가 아닌 마음을 들어라

듣기를 방해하는 지레짐작 가운데서도 파괴적인 것 중 하나가 상대방이 나를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사이 나쁜 부부간에 흔히 발견되는 기류다. 공격받을 게 뻔하다고 생각되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스스로를 방어하려 똑같이 공격의 칼날을 세우게 된다. 남는 것은 공격의 악순환뿐이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서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인 말 밑에 감춰진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다. 이성희 우석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이가 떼를 쓰거나 엇나가는 행동을 할 때 그 표면적인 말이나 행동에만 집착하면 부모가 먼저 지칠 수밖에 없다”면서 “아이가 내뱉는 말의 밑바닥에 깔린 동기나 좌절된 욕구, 감정 등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엄마를 비난할 때 그 말에만 좌우돼 감정을 상하지 말고 감춰져 있는 아이의 좌절된 욕구를 들어주라는 것. 제대로 된 듣기란 상대방의 말 너머 마음을 읽는 기술인 셈이다. 상대방의 진의에 귀 기울이며, 듣는 이가 말하는 이에게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해 말해주는 기법을 ‘공감적 경청’이라고 한다. 한 지방대학 총장은 어느 날 어렵게 영입한 미국 유학파 여교수가 들고 온 사표에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놀라움을 감추고 차분히 여교수의 얘기를 들어줬다. 여교수는 한국 교수사회에서 남성들의 협조를 얻어가며 일처리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간 속으로만 삭인 고충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았다. 공감적 경청을 한 지 3시간 만에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여교수는 사표를 철회했다.

홍정수 한국리더십센터 전문위원은 “CEO 대상 강좌의 뒤풀이 자리에서 총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공감적 경청의 위력을 이렇게 정리했다.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행위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대인관계의 예술이다.”

 

공감하려면 관용하고 포용하라

홍 전문위원은 “공감적 경청의 성패는 상대방에게 감정이입하는 듣는 이의 능력과 품성에 달렸다”고 말했다. 잘 듣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인격수련과 훈련이 필요한 셈이다. 구 소장은 특히 마음을 읽고 공감해 건설적 대화로 이끄는 듣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관용적 듣기’와 포용의 회복이라고 지적한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어떤 제국이든 전성기 때 가장 눈에 띄는 미덕은 관용이었다. 정말 강한 제국은 피지배 민족의 문화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풍습을 용인했다.”

힘 있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의 소리를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힘든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권력과 지배력을 가진 이들이 관용적 듣기로 귀를 열 때 그 효력은 배가 된다. 이는 가정, 조직, 기업, 국가 어디에나 마찬가지다. ‘잘 들어주는 것’은 막혔던 혈관 구석구석까지 소통의 생혈을 흐르게 해 조직에 활기와 열정을 되찾아주는 묘약이다.

 

“바쁜데 결론부터 …” 두괄식이 대세
대통령 스피치 스타일 & 미디어 발달과 발맞춰 변화한 스피치 트렌드 분석    

1 1945년 10월17일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구 조선총독부 청사 앞에서 대중연설을 했다. 2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브리핑’ 문화가 꽃을 피웠다. 서울대 종합건설계획 브리핑을 듣고 있는 박 대통령. 3 노태우 대통령 시대에는 원탁 토의를 통해 ‘수평적 말하기’ 문화가 유행했다.

‘이 연사 강력히 외칩니다~’를 가르치던 웅변학원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스피치학원’ ‘언어학원’ ‘스피치 리더십학원’ 등으로 소비자 요구에 따라 간판을 바꿔 달았다.

‘웅변’의 사전적 정의가 ‘조리 있고 막힘없이 당당하게 말함 또는 그런 말이나 연설’로, 최근 강조되는 스피치 교육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웅변=계몽적·선동적 말하기’란 인식이 강해 ‘모던’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스피치학원들은 ‘보이스 트레이닝’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법’ ‘효과적 영업을 위한 말하기’ 등으로 목적에 따라 강의 내용을 세분화하고 있다.

말을 잘하려는 목적과 상황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점점 전문적인 교육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언론학자, 국어학자들과 현장의 스피치 강사들은 소비자의 수요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변화했다고 말한다. 과연 어떤 이유로, 또 어떻게 ‘말하기’의 트렌드는 달라져왔을까.

대통령 연설, 변신은 무죄

동아방송 부국장, KBS 아나운서 실장, 한국화법학회 1, 2대 회장을 역임한 수원대 전영우 명예교수는 1963년 미국 스피치협회에 가입한 이후 최근까지 스피치 관련 저서와 번역서 등을 활발히 집필해왔다. 그는 우리 사회의 스피치 트렌드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소재로 대통령의 스피치 스타일을 꼽았다.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집권 전후인 1950~60년대에는 만연체로 가득한 복합문을 많이 사용했다. 이 대통령의 연설문만 봐도 한 문장의 길이가 길어 ‘~합니다’ 같은 종결어미가 나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 ‘설득적 스피치의 심리(psychology of persuasive speech)’를 집필한 미국의 로버트 올리버 박사에게 스피치 지도를 받았던 이 대통령은 웅장하고 유장한 전형적인 웅변조를 모범으로 삼았다.

“컬러TV의 등장이 만연체의 유장한 스피치 문화 소멸에 영향”-이선미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브리핑’이 화두였다. 현장을 방문해 책임자들에게 브리핑을 요구한 박 대통령의 영향으로 사회 요직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장 브리핑’을 강조했기 때문. 전 교수는 “당시 정부 각 부처, 국영기업체 등으로부터 브리핑 강의 의뢰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도 비슷한 전통이 이어졌다. 엄격하고 공식적(formal)이며 짧고 힘 있는 스피치 스타일이 득세했다.

노태우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집권 시기 전후에는 부처, 기관별로 ‘원탁’ 토의가 활성화됐고 이는 ‘의식적인’ 수평적 말하기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점차 확산되는 민주화 분위기가 스피치 어투에까지 스며든 셈. 웅변조보다는 톤 다운된 부드러운 말하기 스타일이 선호되던 때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야당 정치인의 양대 산맥이던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대에는 정서적인 요인이 스피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번역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을 펴낸 전 교수는 이 시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내세운 설득의 세 가지 요소 중 ‘실천 가능한 견해를 수용하도록 자각시키는 파토스(pathos)적인 정서’가 강했던 때라고 진단했다. 공식적인 상황에서도 말하는 사람의 정서를 솔직하게 담는 스타일의 스피치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3년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 공적 스피치에서도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그의 스피치 스타일 때문에 ‘감성적 말하기’가 스피치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정서적인 요소가 강한 스피치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꽃을 피워 우리 사회에 좀더 직설적이고, 감성적인 말하기가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인 현재는 ‘토크쇼’적 말하기가 인기를 끈다. 현대 대중의 특성을 고려해 유머러스하고 호흡이 짧고, 감각적인 말투가 득세하는 것.

전 교수는 “이 대통령의 스피치도 점점 ‘두괄식’의 형태를 띠는데 이 역시 ‘짧고 강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대중의 성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통학회 류춘렬 회장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직설적인 스피치 트렌드는 ‘사회적 자정’ 과정을 겪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386 세대’가 대표하는 반권위주의적 세력은 공적인 상황에서조차 여과되지 않은 격한 레토릭을 구사하는 것을 용인했습니다. 현재는 이러한 레토릭이 난무하면서 사회 여러 세력 간 갈등이 더욱 커졌다는 반성이 일고 있는 시점이며, 이에 따라 좀더 정제된 표현을 쓰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짧고 즉각적인 말하기가 트렌드

스피치 트렌드는 시대별 미디어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울여대에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는 ‘이선미 스피치랩’ 이선미 대표는 “라디오가 유일한 방송매체였던 시대에는 오로지 말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려다 보니 만연체가 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라디오 방송에서조차 ‘아스라이 쏟아지는 별빛’ 등 수사학적이고 문어체적인 어구가 만연했고 아나운서, 전문 MC들의 방송언어도 흐느끼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호소력 짙은 스타일이 인기였다.

그러다 등장한 컬러TV는 표정, 제스처, 옷차림 등 말 이외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요소들을 더욱 부각했다. 라디오에서처럼 장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진 만큼 설명적인 어투도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편 휴대전화 텍스트 메시지나 인터넷상에서의 짧은 ‘댓글’을 통해 즉각적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현 세대는 단문 중심의 짧고 간결한 어투를 선호한다.

“웃는 소리를 ‘ㅋㅋ’라는 자음 두 개로 표현하는 세대이니 만큼 매스컴에 등장하는 언어들도 짧고 감성적이죠. 스피치 강의를 하면서 ‘1분 스피치’를 자주 시켜보는 것도 짧은 시간 내에 자기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는 게 최근의 스피치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미디어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스피치 트렌드의 변화 주기도 과거보다 한층 짧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스피치에는 시대별 말하기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전영우

 

 

말 잘하는 애들이 국제중·특목고 간다?

‘입학사정관제’ 시대, 초등학생 스피치학원 열풍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3월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서울대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학생들이 전교학생회장 및 부회장 임원선거를 하루 앞두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본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전 의사가 되고 싶은 임○○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면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7월28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A스피치학원. 한 여학생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교실 가득 울려 퍼졌다. 초등학교 4학년인 임양은 1분 동안 ‘나의 꿈’을 주제로 대본 한 줄 없이 유창하게 말을 이어갔다.

스피치를 듣는 학생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7명의 또래 친구들은 발표자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했다. 서울 강남, 목동과 경기 분당 등 교육열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스피치학원을 찾는 초등학생이 늘고 있다.

A학원 관계자는 “원래 성인을 위한 스피치학원으로 운영해왔는데 방학에 초등학생이 대거 등록해 따로 반을 편성하게 됐다”며 “자녀들의 스피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부모들이 먼저 학원을 찾아와 수업을 개설해달라고 요구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올 여름방학을 전후로 이 학원에는 초등학생 50여 명이 등록했다. 이 학원의 방학특강 학원비는 1회 3만원이며 수업은 총 10회로 진행된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서울 서초구, 강남구에 사는 학생. 강북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수행평가 좌우하는 발표력 키우기 ‘선행학습’

경기도 분당의 B스피치학원도 방학을 맞아 초등학생반을 개설했다. 1회 2시간으로 구성된 수업 시간에 발음 교정, 발성 연습, 말하기 매너 및 자신감 있게 말하기, 토론하기 등을 가르친다는 설명이다. 역할극이나 동화구연을 하기도 한다. B학원 원장은 “특히 의견 발표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당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점적인 교육목표로 삼는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스피치학원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다. A스피치학원에 초등학교 6학년, 3학년 형제를 등록시킨 한 학부모는 “학교 성적은 좋은데 숫기가 없어 수업 시간에 당당하게 발표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현대사회는 ‘자기 PR’ 시대인 만큼 아는 것보다 아는 것을 말로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목고, 명문대 진학 등의 목적으로 일찍이 ‘선행학습’을 시키는 사례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자녀를 경기도 일산 C스피치학원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요즘은 학교 성적에서 수행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수행평가의 근간이 발표라 스피치를 따로 가르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목고,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중고등학교 내신이 중요한데 이에 도움이 되는 스피치 교육을 비교적 시간이 많은 초등학생 때 미리 해놓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스피치학원을 찾은 초등학생 가운데는 국제중학교 면접을 대비해 이와 관련된 스피치 훈련을 받으려는 사례가 많았다. A학원 원장은 “국제중 입시를 내건 학원 홍보가 금지됐는데도 국제중 대비 사교육은 공공연히 이뤄졌다”며 “학부모들의 ‘수요’에 맞춰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7월2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스피치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이 스피치의 기본기 훈련을 받고 있다.

국제중 입학을 둘러싼 사교육이 과열되자 2010년부터는 서울권 국제중(대원·영훈국제중)의 입학 전형 가운데 면접 부분이 삭제됐다. 그럼에도 ‘학생회장반’ 같은 특별반에서 스피치 수업을 듣는 학생이 많아지는 것은 왜일까.

5학년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국제중 서류전형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력, 경험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학생회장 경력이라고 강남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나 있다”며 “회장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려면 동료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말하기 훈련이 필수적이어서 학원에 등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학부모가 눈여겨본 과정은 A학원 내 ‘학생회장반’. ‘학생회장반’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연설문을 짜주고 리허설도 한다. A학원 원장은 “이 과정을 수강한 학생 중 90% 이상이 학교 임원으로 당선됐다”고 자랑했다. ‘학생회장반’의 교육비는 1회 8만~10만원으로 정규 과정보다 비싸다.

국제중 입시반을 운영하는 서울 양천구 D입시학원 원장은 “국제중이 학생 임원 출신에게 주는 공식적인 가산점은 없지만, 국제중 합격자 90%가 학생 임원 출신인 점이 학부모들을 자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찌감치 특목고를 겨냥해 말하기 교육을 시키는 학부모들도 있다. 2010년 입시 요강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특목고가 구술면접을 선발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전체 점수 중 15% 안팎은 이 면접 성적이 좌우한다.

 

면접이 당락 좌우 … 맞춤식 수업도 성행

4학년인 딸을 분당의 B스피치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는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특목고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조금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말하기 연습을 해둬서 손해볼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특목고 구술면접에 교과지식을 묻는 문제를 배제하고 인성 등 기본적인 자질을 측정하는 문항에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입시만을 타깃으로 한 사교육 시장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한 학부모는 “인성 역시 얼마나 말로 잘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이를 겨냥한 사교육 시장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대입 신입생, 면접만으로 선발’ 발언으로 이슈로 떠오른 입학사정관제도 좋게 말하면 ‘장기적인 비전’, 나쁘게 말하면 ‘성급한 선행학습’을 염두에 둔 학부모들을 초조하게 하고 있다.

포스텍이 올해부터 모든 신입생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발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주요 대학의 입학사정관제 확대 실시 방안이 속속 밝혀지면서 이를 겨냥한 ‘맞춤식 수업’을 요구하는 학부모들도 생겨나고 있다. C스피치학원에 6학년인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는 “결국 아이들 교육의 최종 목표는 명문대 진학”이라며 “입학사정관에게 자신을 잘 ‘포장’해 보여주는 방법을 어려서부터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의 스피치 교육 과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지연숙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말하기 훈련을 하는 것은 좋지만 입시를 목적으로 말의 ‘테크닉’만 배우면 자기 의견만 강요하고 남의 의견은 잘 듣지 못하는 일종의 ‘소통 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또 “기본에 충실한 말하기 교육을 공교육을 통해 확대 실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말 잘하는 집안이 흥한다
아이 열한 살 무렵, 가족간 대화가 명령과 권위의 수단 되는 경우 많아

김미경 아트스피치 연구원 원장 www.artspeech.co.kr

1년 전,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모 기업 김 이사에게 전화가 왔다. 부사장 승진에서 밀려나 25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 심정이 어떨지 짐작돼 군말 없이 약속을 잡았다. 예상대로 그는 몰라보게 수척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괴로워했던 것은 은퇴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그가 허탈하게 말했다.

“아들 녀석이 나한테 뭐라는 줄 알아요? 아버지인 내가 ‘애로사항’이래요.”

그에게는 대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 한창 일할 때는 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살펴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러나 은퇴하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들이 늦잠 자는 것부터 밤늦게 들어오는 것, 방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는 것 등이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 큰 아들에게 잔소리를 할 수도 없어 친근하게 말을 붙여봤지만 시큰둥한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솔직히 얘기를 좀 해보려무나.”
그러자 아들은 주저 없이 아버지를 ‘애로사항’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침울한 표정의 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들의 처지도 이해가 갔다.

 

수많은 아버지, 아들과 ‘어색한 동거’

그는 한국의 수많은 아버지가 그러하듯 20여 년간을 유령으로 살았다.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알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런 아버지가 집에서 하는 말은 정해져 있다. “애들은?” “별일 없고?” “새벽에 깨워”가 전부다. 특히 자식들에게 하는 말 중 가장 안 좋은 말이 “별일 없고?”다. 집에서 가족끼리 얼마나 소통이 안 되면 그동안 별일 없는지를 묻겠나. 그런데 그렇게 ‘별일’ 없는 줄 알고 살아온 아버지가 갑자기 아들에게서 생소한 얘기를 들으니 당황할 수밖에.

이는 비단 김 이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아버지와 아들이 이렇게 ‘어색한 동거’를 한다. 결혼하고 분가하면 더 심해진다. 아들이 전화했을 때 아버지가 받으면 서로 화들짝 놀라는 집도 많다. “(아버지도) 별일 없으시죠?”라고 물으면 그나마 낫다. 다짜고짜 “엄마 없어요?”라고 묻는 아들도 많다. 아버지는 괜히 전화받은 사람이 되는 셈이다.

반면 분위기 좋고 잘되는 집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족 간에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이심전심으로 통하고 아이들도 부모 마음을 잘 안다. 또한 아이들은 말을 통해 할아버지, 부모 세대의 경험과 교훈을 자신의 정신적 유산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많은 가정에서 가훈은 액자에 걸린 장식품일 뿐이다. 가족 간 기본적인 대화조차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말의 ‘권력화’에 있다. 말을 소통이 아닌 명령과 권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숙제 했어, 안 했어?”
“셋 셀 때까지 말해!”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 다루는 아버지 앞에서 아이들은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부모가 원하는 답만 말하게 된다. 입이 막히면 머리와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중에는 차라리 벽을 보고 얘기할지언정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

 

밥상머리 대화가 유지되기만 해도 가족 간 ‘말하기’는 상당 부분 성공한 셈이다. 혹시 아이에게 “별일 없냐?”고 묻는 것이 유일한 대화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사진은 KBS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

이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강연하러 많은 기업을 다녀보면 다들 특유의 조직문화가 있다. 어떤 회사에선 ‘어두운 뒷골목’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런 곳은 대부분 팀 토론이 원활하지 않고 상사가 권위적이다. 브레인스토밍 하라고 해서 곧이곧대로 말했다가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폭풍우를 만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입 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사 앞에서 얼어붙은 입은 밤에 술로 녹인다. 서로 뒷담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유일한 소통의 통로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이다. 말의 권력구조 안에서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각자 방에서 휴대전화 문자로 부모 뒷담화를 하거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댓글을 단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이처럼 발달한 까닭은 이것이 유일한 탈권위적 소통의 통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직장인이 돼도 상사를 설득하지 못한다. 집에서 아버지 세대를 설득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자랄 리도 없다. 그러나 자식을 벙어리로 만든 부모들은 “다 큰 녀석이 자기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하느냐”며 외려 화를 낸다.

말의 권력화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소통이 아예 단절되기도 한다. 특히 새벽에 나왔다 새벽에 들어가는 유령 같은 삶을 사는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대화할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아버지가 회사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기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더니 결국 승진도 못한 무능력한 아버지’로 찍히는 경우도 많다. 아버지가 추구했던 가치와 삶을 대화로써 정신적 유산으로 남겨야 자식들도 아버지처럼 살겠다는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다. 대화가 없는 집은 아버지가 알려준 바 없으니 ‘제로 세팅’돼서 인생을 시작한다. 아버지가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스레 DNA로 전수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가족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대화 통해 가족문화 만들어야 ‘정신 유산’

이제라도 가족과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으면 말의 권력구조를 과감히 깨버려야 한다. 여기서 N분의 1 법칙을 기억하자. 전체 대화시간을 사람 수대로 나누는 것이다. 4인 가족이 1시간 동안 대화한다면 각자 15분씩 말하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50분 말하고 자녀가 10분 얘기한다면 말이 권력화했다는 증거다. 각자 똑같이 15분씩 얘기해야 한다.

산술적으로 똑같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일단 산술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 실험해보자. 이미 자녀들과 대화가 끊겼다면 그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열한 살부터 대화가 끊겼다면-많은 가정이 아이들이 열한 살쯤 되면 대화가 끊어진다- 초급단계로 내려가야 한다. 초급단계에서 멈춘 대화는 결코 한 번에 고급 대화로 업그레이드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김 이사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대화가 끊겼다. 그 시절 무슨 얘기를 주로 했나 돌이켜봤더니 같이 수영장에 가고 운동을 하면서 나눴던 대화들이 떠오르더란다. 결국 그는 아들과 함께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야, 이 녀석아 그것도 공이라고 던지냐?”
“아버지, 가만히 서 있지 말고 공 좀 따라가세요.”

그는 초등학생 아들과 나눌 법한 ‘기초적인’ 대화를 1년 가까이 한 뒤에야 아들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라도 자식들과 대화하고 싶다면, 자식들을 말 잘하는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면, 말의 권력구조부터 깨고 아이들과 눈높이 대화를 시작하자. 그때 나눈 말들은 자연스레 아이들의 정신적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