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욕망을 걸레통보다(?) 못하게 여기며 한세상을 풍미했던
토정선생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나른한(?) 아침입니다
명예고 돈이고 권력이고 해봤자 한 여름 개꼬리(꾀꼬리 아님 잘 봐~요)에
붙은 벼룩만큼도 여기지 않았던,
얽메인 데라곤 전혀 없던 이 위대한 자유인...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그래도 이승이 좋은 곳이라 하여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
세상이라는 말은 불가에서는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한다.
사바란 말은 고통이 현전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말하자면 사바세계는 온갖 괴로움과 어려움이 널부러져 있고
발닿고 손가는 곳곳이 아리고 쓰린 가시밭길이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르게 눈뜨고 환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가려서 걸어가야만
진흙 묻히지 아니하고 잘 살 수 있지 한발 헛놓으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불구덩에 빠지고 만다고 미리 경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바를 인토(忍土)라고 하여 참아 견디면서 살아가는 곳을 뜻한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윤회를 아는 둥 마는 둥 그냥 흘러간다.
이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사는 사람은 중생이다.
그 중생 가운데 무언가 찾아 나서 막연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길을 찾는 사람이다.
사람은 삶이란 길에 나선 것이다.
본래부터 어디로 갈 것이다라는 방향을 정하고 나선 사람은 서성되는 것이 없다.
어릿비릿하지 않고 대문을 나서자마자 곧 갈 길을 앞질러 나간다.
그러나 문앞을 나와도 문간에서 망설이고 행길가에서 좌우로 두리번거리고,
다리목에 오면 이 다리를 건너갈까,
돌아설까 하여 막연함과 아득함에 섞바뀐다.
왜 이럴까.
이 사람은 목적이 없는 것이고 방향이 없는 것이다.
무량겁 이전부터 흘러 온 윤회의 바퀴살에 걸려 굴러만 가는 것이다.
윤회의 바퀴살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어떻게 그러한 힘이 나올 수 있는가.
앞에도 깜깜 뒤에도 절벽이 에워싸고 있는데 어디 한 발짝 뛸 수 없는
흑암무명(黑暗無明)으로 장벽을 만들고 살고 있는데.
그래도 사바는 살만한 곳인가 아니면 한번 뛰어 볼만한 곳인가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바는 고통이 선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자신이 탈출의 지혜를 밝혀야 한다.
내 앞에 구원겁으로 쌓여 온 석탄(石炭)이 태산을 이루고 있다면
석탄더미에 뒹굴며 살지 말고 석탄을 태우면서 빛도 얻고 열을 이용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석탄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지 않고 산다면
훌륭한 땔감과 환한 불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탄장에서 떨고 있는 무지한 중생이 아닌가.
사바에 던져져 살고 있다 하더라도 삶의 빛을 찾아야 한다.
삶의 빛을 찾고 보면 사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참고 잘 견디고 기다리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사람만이
사바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자리하여 본래의 청정수를 내뿜고 있는
시천(始泉)이 되어 부단부절(不斷不絶)하게 맑은 물맛을 흘러내고 있다.
산하대지에서만 나오는 샘물만 찾지 말라.
그것은 색법(色法)의 세계에서 향락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이고
진공여래(眞空如來)에서 빛내나는 감로(甘露)를 찾아 보라.
그것은 심법(心法)의 세계에서 법열(法悅)을 누리는 깨친 자의 길이다.
우리 지금 이 사바에서 살지만 삶의 질을 높이는
마음의 씨앗을 하나 찾아 가슴에 심어 보자.
우리의 가슴에는 한(恨)·분(憤)·증(憎)이 쌓이는 곳이다.
우리 가슴에 한(恨)·분(憤)·증(憎)만 가득한 사람은
저도 모르게 병고(病苦)가 깊다.
넓고 부드럽고 따뜻한 가슴에 희망과 자비 그리고 온정을 가득 품고 살자.
허파에는 맑은 바람,
심장에는 깨끗한 물을 가득가득 채워서 유형적인 가슴을 청정히 하면
어느 곳에 병고(病苦)가 깃들게 될 것인가.
하물며 삶의 질을 높이는 마음의 씨앗이 청정하고 풍요로운 가슴으로 향상한다면
극락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마침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譬如工畵師
여러 가지 채색을 해 가면서 分布諸彩色
여러 가지 모양을 그리지마는 虛妄取異色
사대에는 아무 차별이 없는 것처럼 四大無差別
사대는 원래 채색 아니요 四大非彩色
채색도 또 사대 아니지마는 彩色非四大
사대의 본체를 떠나고서는 不離四大體
따로 채색이 있는 것 아니며 而別有彩色
마음이 채색 그림 빛깔 아니며 心非彩畵色
채색그림 빛깔도 마음이 아니네 彩畵色非心
그러나 마음 떠나 그림 빛깔이 없고 離心無畵色
그림 빛깔을 떠나 마음도 없네. 離畵色無心
라고 노래하고 있음을 잘 음미해 보면
마음의 씨앗이 본래부터 무엇하는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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