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동양 무도 수련관의 변천과 현대적 의미

醉月 2013. 5. 20. 01:30

동양 무도 수련관의 변천과 현대적 의미

글쓴이 : 스티븐 캐페너

 

목 차
제I장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2. 연구 목적
   3. 연구 방법
   4. 연구의 제한점
제Ⅱ장 동양 무도 개념 및 사상
   1. 동양 무도의 개념
   2. 전통 무도 사상 : 무심(無心)·형(型)·도(道)
   3. 무도 개념의 변천과 사회·경제적 배경
제Ⅲ장 동양 무도의 근대화와 수련관의 변화
   1. 전통 무도의 수련관 : 실전 지향성
   2. 무도 수련의 근대화 : 기술의 탁월성
   3. 한국 무도의 발달 양상과 수련 방법의 근대화
제Ⅳ장 동양 무도의 이해와 한계
   1. 무도의 민족주의적 접근
   2. 무도의 전근대적 인식
제V장 동양 무도 수련의 현대적 의미
   1. 수행(修行)으로서의 무도 수련
   2. 무도 수련에서 도(道)와 기술(術)의 의미
   3. 현대적 의미의 무도 수련
제Ⅵ장 요약 및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제I장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문화는 인간의 사회적 삶의 총체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갖는다. 문화 변동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에 의하여 일어나며, 대표적인 사례는 타문화와의 접촉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문화간의 접촉이 과거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면서, 모든 문화는 지역성이나 특수성에서 세계성 또는 보편성의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오늘날 가장 큰 규모의 문화 접변(接變) 현상은 동·서양 문화의 만남이다. 이러한 접촉으로 발생하는 문화 변동에 대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서양의 문화가 동양의 문화에 유입되어 동양 문화가 서양 문화에 일방적으로 종속된다는 시각이며, 둘째는 동·서 문화 접촉의 결과는 일 방향의 변화일 수 없으며, 오히려 양 방향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관점이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접촉이 미래에는 더욱 더 가속될 것이라는 예견이 지배적인 현 시점에서 볼 때 그 접촉 및 변화의 양상에 대해 이해와 대응 방법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접촉에 대한 이해는 '문화종속이론(文化從屬理論)'과 같이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일방적인 문화 전파를 주된 현상으로 파악하고, 여기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의 접촉은 영향을 주고받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적으로 일방적일 수만은 없다.

 

서구 사회가 동양의 철학이나 종교, 사상 등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 접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기이다. 20세기 초반 소수의 서양 학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동양의 문화와 사상을 연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몇몇 동양의 학자들이 서양의 언어로 동양에 관한 내용의 저서를 간행하는 사례가 증가함으로서 서구에서의 동양 문화와 사상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심의 대표적 사례는 선불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선불교는 50∼60년대의 반전(反戰) 운동과 같은 사회적 변동 속에서 놀라운 인기를 거뒀다. 이것은 서양 사회를 지배해왔던 과학, 철학, 종교 등 문화 전반에 대한 회의적 반성의 분위기와 함께 지나친 과학·기술 중심의 서양적 소비 사회에서 탈피하려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선(禪)불교의 신비스러움에서 대안적인 생활 방식과 사상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리적 사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선의 역설(逆說)적 세계는 그들에게 매우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는 동양의 전통 무도가 동양 사상의 서구 사회로의 전파에 주요한 한 매체의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김용옥은 무도를 통한 '서양의 동양에 의한 개화'의 양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동양의 서양화와 동시에 서양의 동양화는 어김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서양도 어김없이 '개화'의 역정을 밟았던 것이다. 동양의 서양화의 전초는 기독교였다. 그런데 서양의 동양화의 전초는 바로 무술이었다.
최근 미국의 체육계에는 동양 사상에 대한 관심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Seymour Kleinman은《Mind and Body: East Meets West》에서 동양 사상에 바탕을 둔 선(禪), 무도(武道) 등의 개념을 앞세워 북미와 유럽에 동양적 체육관(體育觀)을 소개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동양적 스포츠 활동을 동 서양의 체육 사상이 상호 교류하는 가교로 해석하고 있다. 신현군은 미국에서 이루어진 동양 체육의 접목 과정을 인지(認知:1953∼67), 수용(受容:1968∼82), 변용(變容:1982∼ )의 세 단계로 해석하였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하여 동양 무도가 서구의 스포츠 문화 '속에서' 변용(enculturalization: 동양 무도의 서양화)되는 것과 함께 기존의 서구 스포츠 문화 '속으로' 동양적 체육관이 이식되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았다.

 

동양의 문화가 서구 사회에 소개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직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동양 무도는 합리주의적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사상을 쉽게 구체화시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곧 역사적으로 구전되어 왔던 무도의 기법과 수련 이념을 합리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깨달음(覺)'이라든지, '무(無)', 또는 '공(空)', 혹은 '도(道)' 등의 개념과 사상들을 직각(直覺)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무도 수련을 통하여 현대 서양인들에게 체계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와 관련된 문제가 더욱 더 커지게 된 이유는 현대 무도에서 주장하고 있는 무도 철학의 개념들이 실제 수련의 구체적 과정이나 기술적 맥락들과 별로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즉, 현대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는 무도 수련의 가치와 그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수련 방법의 문제가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태권도는 국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였으며 세계적인 의미에서 볼 때, 무술 수련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권도와 같은 한국 무도가 이루어낸 서양사회에서의 놀라운 성장 현상을 빌어 한국 무도가 '역문화종속(逆文化從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하고 있다. 신창화는 이러한 역문화종속의 관점에서 태권도의 세계적 확산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정치, 군사적 직접 지배에 의한 것이라면 현대적 의미의 제국주의는 경제, 문화적 제국주의라는 간접적 지배 형태를 띄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모든 분야가 서구 문화의 침투에 의해 잠식당하고 그야말로 한국 고유의 것은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을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태권도만이 유일하게 민족적 주체성과 정체성을 유치하고 오히려 대외 침투의 역할을 수행하여 '역문화종속'을 이룩한 유일한 한국 문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동양 무도를 서양의 문화 공격에 대한 반격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동양 무도가 근대화와 스포츠화를 통하여 지역적 현상(regional phenomenon)의 한계성을 벗어나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간과하는 것이다. 물론, 전통 무도가 스포츠화되는 것을 보고 동양의 전통적 사상과 문화가 점차 서구화가 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 무도가 스포츠화되는 것을 서구화되는 것과 동일하게 규정하는 것도 역시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스포츠라는 현상을 서구 사회의 독점적 문화적 현상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예를 들면, 한국 전통 사회에서 각저(角抵)와 수박희(手搏戱)는 삼국시대부터 '희(戱)'로서 오락이나 민속놀이의 성격을 지녔으나 두 사람이 서로 맞서 승부를 겨룬다는 점에서 현대 스포츠와 아무런 거리감이 없다. 그런 점에서 아마 이진수는 이러한 운동을 '한국의 고대 스포츠'라고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일본의 전통 무도인 검술과 유술(柔術)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술(術)에서 도(道)로의 변화 과정'을 무도의 존재 이유가 '병술(兵術)에서 스포츠로' 변천되는 보편적 과정으로 해석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김용옥은 태권도가 경기화됨으로써 기술의 깊은 구조를 발견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성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점차적으로 다양한 동양 의 무도들이 스포츠의 틀에 맞도록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라는 말은 어떤 인간의 활동 현상에 대한 개념일 뿐, 문화관이라고 하는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일본 무도는 하위 개념인 스포츠가 될 수 없다는 Deshimura의 주장에 대하여, Wertz는 스포츠라는 말에는 동·서양을 대립시킬 만한 철학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이를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개념으로 재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태권도와 같이 스포츠와 유사하게 변화해 가고 있는 한국 무도의 개념, 수련 목적, 사상적 기반 및 교육적 의미 등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 무도가 현대적 의미의 스포츠 성격이 강해지면서 오늘날의 스포츠 문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태권도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실례는 스포츠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나친 경쟁심과 승부에의 집착 등을 들 수 있다. 장용규는 이러한 문제의 밑바탕에는 서구의 합리주의적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서구 합리주의의 사고 방식은 수단주의, 기능주의, 목적주의의 틀 안에서 전개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서구 합리주의는 이성중심주의라는 근본적인 신념으로 인하여 이원론적 심신관을 낳았다고 본다. Wertz는 동 서양의 스포츠에 대한 개념적 화해의 단서를 스포츠와 무도의 예술성에서 찾고자 한다. 스포츠에서 기술적 효율성(technical efficiency)을 지향하는 기능주의와 결과에 집착하는 목적주의로 인하여 스포츠가 예술일 수 없다는 Best의 입장에 대하여, 정응근은 스포츠는 '의미 구현체(meaning-embodied form)'이라는 관점에서 스포츠의 예술성을 정당화한다. 그에 따르면 동양 무도는 기량이나 결과뿐만 아니라 총체적(wholistic)인 실행(practice)의 차원에서 예술성이 내재하는 스포츠의 원형(prototypical model)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스포츠와 무도의 이념적 융합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 동양 무도의 존재 양식, 즉 무도 수련의 목적과 방식 그리고 사상적 토대는 동양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변화 아래에서 이루어진 지속적 발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보편화와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 동양 무도는 다양한 현실적 요구들에 대응해 나가기에 아직도 논리적 모순과 사상적 혼동이 잔존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과 혼동은 현대 무도의 수련 양식이 변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수련의 실재와 철학 또는 가치관의 불일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러 가지의 현대 무도가 상업주의적 성향만 강할 뿐, 실제 기술의 성격이나 수련 방식과 무도가들에 의해서 표방되는 사상적 기반의 내적 연관성이 약하다는 비판은 자주 제기되어 왔다. 한국 무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도 시장의 하나인 미국에서 일본 무도와 더불어 무도 수련자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절한 철학의 정립이라는 문제를 숙제로 안고 있다(강원식 1979; 양진방 1989; 김용옥 1990; 나영일 1992).

 

이상과 같은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무도 사상 또는, 수련 체계의 이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 문화의 역사적 변화 양상과 그에 따른 무도의 의미 변화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토대로 하여, 다음의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첫째, 동양 무도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한 재해석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 무도 수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간의 신체 활동에 대한 '동양의 총체적 접근법(wholistic approach)'을 체계화할 수 있는 현대 무도의 동양적 방법론과 사상적 토대를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현대 사회에서 동양 무도가 갖고 있는 교육적 가치를 보편화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화하여야 할 것이다.

 

2.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전통적인 동양 무도 수련의 가치관 변천과 함께 그것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상호 교류에 따른 동양 무도의 개념과 실제의 변화 양상, 그로 인하여 발생하여 온 문제점을 규명하고, 현대적 의미에서 스포츠나 체육에서 통용될 수 있는 무도 수련의 본질과 그 교육적 가치를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설정된 연구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 동양 무도 사상의 성립 과정과 그 내용은 무엇인가?

동양 무도 사상 및 그 수련관의 변천과 그것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동양 무도의 본질과 그 개념적 성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먼저 전통적인 동양 무도의 이념과 목적 그리고 수련 방식을 살펴보았다. 특히 기존의 연구에서 미흡했던 동양 무도의 사상적 배경으로써 불교, 유교, 도교 등의 동양 사상의 핵심 개념과 함께 동양 무도 사상을 논하였다.

 

2) 동양 사회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무도 개념은 어떻게 변천되었는가?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의 삶은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하겠다. 동양 무도 예외는 아니다. 본 연구에서는 오늘날의 동양 무도가 갖는 체육 활동으로서의 성격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동양 무도의 개념적 변천 과정을 그 사회·경제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았다.

 

3) 동양 무도의 수련관은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동양 무도는 근대화 과정에서 수련관(修鍊觀), 즉 수련의 목적과 가치 그리고 수련 방법에 대한 인식 등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이한 무도 수련의 개념뿐만 아니라 그 가치관과 실현 수단으로서의 수련 방법론에 대한 대립과 갈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 특히 실전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 형(型)중심 수련관과 겨루기 중심 수련관, 전통적 무도 옹호주의자들과 현대적 스포츠적 무도 주창자들 간의 가치관의 대립과 모순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을 토대로 하여 한국 무도의 발달 양상과 수련 방법의 근대화를 태권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4)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동양 무도 수련의 바람직한 철학은 무엇인가?

앞에서 취급된 내용을 근거로 오늘날의 동양 무도에서 표출되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조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대적 의미의 무도 수련의 대안적 가치를 모색하였다. 특히, 현대화된 동양 무도가 보여주고 있는 가치관의 이원론적 대치 양상을 극복하고 전통적 무도 사상의 본질을 살려 전통 무도가 현대적 의미의 스포츠나 체육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대안적 무도 철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3. 연구 방법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양 무도에 관한 문헌의 분석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문헌 고찰은 한국어로 쓰여진 문헌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중국, 일본, 영어 문헌들을 함께 사용되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무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나 무도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한다고 판단되는 문헌들도 사용하였으며, 특히 동양 사상과 역사 등에 대한 분야에서 그러한 경우가 많았다.
문헌 분석은 주로 연구자의 무도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해석적 틀로 하여 이루어 졌으며, 문헌들간의 논리적 교차를 통해서 객관성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무도에 대한 불충분한 연구 문헌과 무도 자체의 학문적 연구의 전통 부재로 인하여 본 연구의 분석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4. 연구의 제한점

1) 연구자가 갖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본 연구의 진행과 결과에 주요 한 한계점이었다. 특히 제한된 한문 독해력으로 인하여 특정 문헌을 분석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 연구자가 갖는 문화적 관점 역시 본 연구의 중요한 해석적 틀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2) 일본이나 중국어로 쓰여진 문헌은 한국어나 영어로 번역된 경우에만 참고할 수 있었다.

 

3) 본 연구는 연구의 주제와 그 문제 해결 방식에 있어서 해석적 문헌 분석의 방법을 택하였음으로 연구자의 해석적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4) 지금까지 이루어진 무도 관련 연구와 이용 가능한 무도 문헌의 범위 등 무도에 관한 이론들은 대부분 일본 무도에 대한 내용으로 편중되어 있다. 한국과 중국의 무도에 대한 개념이나 철학 등은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못하였음으로 본 연구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충분하게 다루지 못하였다.

 

제Ⅱ장 동양 무도 개념 및 사상

고대 동양의 무도는 이론과 기술이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전통 동양 사상인 불교·유교·도교 사상 등과 결합되었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무도는 사회 문화 적인 상호 영향을 통해서 형성되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동양 무도 고유의 철학적 근거와 수련 체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각 나라의 문화와 사회적 삶을 토대로 다양한 이름과 형식을 갖추게 된 동양 무도는 그것이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동양 사상의 일반적 특성에 바탕을 둠으로써, 서양의 이원론적 심신 개념과는 달리 몸과 마음의 조화를 찾는 총체적 신체 활동이라는 공통의 특성을 가질 수 있었다. 즉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선불교는 시대와 지역적 상황에 따라 표현 양식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인 의미는 동일한 것과 그 맥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장에서는 동양 무도의 개념 성립 과정과 무도의 사상적 체계화의 결정적인 근거가 된 불교, 유교, 도교의 주요 개념과 이들 사상들이 무도에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1. 동양 무도의 개념
전통 무도의 근대화 과정을 조명하고 무도의 현대적 의미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도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동양 무도의 본질에 대한 선행 연구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대략 다음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전통 무도의 개념 정립 문제
둘째, 전통 무도의 근대화 과정과 그에 따라 새롭게 제기된 무도에 대한 인식과 가치 평가의 문제
셋째, 전통 무도의 근대화에 바탕이 된 사회·문화의 전개 양상에 대한 이해
넷째, 전통 무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향 모색

 

먼저 전통 무도의 개념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검토해 보자. 최복규는 무술과 무예라는 용어의 용례를 통해서 전통 무도의 개념에 접근하였다. Oscar와 Westbrook의 주장에 따르면, 무술과 무도의 개념은 각 시대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상황과 관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 데 최복규는 무술과 무예의 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무술(武術)에서 술은 문자 그대로는 기법, 기술, 체계 등으로 번역된다. 무는 군사 기법, 군사 기술, 군사 체계 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무술이라는 용어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주로 무사 계층에 의해서 발전되고 실행되어 온 싸움 기법, 기술, 체계 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한편 무예(武藝)는…무와 예의 합성의 의미로서 무술보다 일반적이고 범위가 넓은 용어처럼 보이며 개별 무술 종목을 포괄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최복규는 무술과 무예의 개념 정의의 연장선 위에서 일본의 무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사용된 무도(武道)라는 용어는 무술보다 더 오래 되었다고 한다. 무도라는 용어는 연대기적으로는 에도시대 초기에 발견된다. 그러나 거의 모든 류(流)에 있어서 토쿠가와 시대 후기와 그 이후에 이르는 기간에는 무도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류에는 무도라고 일컬어지던 봉건 시대의 무술로부터 유래한 체계적인 교육 방법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대 무술의 류에 의해서 추구되던 것보다 훨씬 더 목적 달성을 위한 교육적인 방법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위와 같은 논의들을 통해서 최복규는 전통 무도의 개념 정립을 목적으로 무술, 무예, 무도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좀 도식적이긴 하지만 현대적인 의미로 술, 예, 법, 도 등의 의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도(道)는 만물의 생성 변화 발전을 설명하는 기본 원리이다. 도는 모든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며 반드시 다녀야 하고 또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길을 의미한다. 이러한 길에는 넓은 것도 있고 좁은 것, 곧은 것, 굽은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 도이다.…무예지도(武藝之道)란 무예 수련을 위한 바른 방법, 원리, 원칙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때 등장하는 개념이 법이다.…다음으로 술, 예는 기술적인 면에서 숙련된 상태로 앞의 법에 의해서 지배되는 원리들이 능숙하게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결국 몸을 통한 기술의 표현이라는 의미에서 무술 혹은 무예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도는 나무뿌리에 해당하고 법은 줄기, 무술과 무예는 나무에 피어있는 꽃이라고 볼 수 있다. 뿌리와 줄기, 꽃은 제각기 다르지만 모두 근원에서는 하나로 일치하고 있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자신의 역할이 없는 것이 없다.

 

따라서, 최복규는 한국의 전통 무예를 다음과 같은 내포(內包)와 외연(外延)을 갖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즉 한국의 전통 무예라고 할 때 내포는 (가) 한국의 역사 속에서 (나) 한국인에 의해 능동적으로 행해졌거나 (다) 새로이 창출된 (라) 정형화되고 체계화된 무예라는 네 가지 뜻을 지닌다. 외연은 (가) 한국의 무도 중 비교적 이론 체계가 갖추어진 것, (나) 외부로부터 수입되어 수정, 보완 등을 거쳐 새로운 체계로 구성된 것, (다) 무도의 양상이 확대되면서 스포츠화된 형태로 변용된 것의 3가지 의미를 갖는다.

 

김창룡은 《스포츠 철학》에서 무술과 무도, 그리고 무도와 병술(兵術)의 명확한 개념적 구분을 시도하였다. 그는 무술과 무도의 개념을 구분하기 위해서 미학이론에서 기술과 예술을 구별하는 방법의 차용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서 "술이란 단순한 기능이나 재주를 말하는데 비해, 예는 기능 습득 뒤의 재주가 아름답다거나 뛰어나다는 가치가 부여된다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무술과 무도를 구분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 한편 그는 무도와 병술의 구분에 대해서 임동규(1991)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개인 원리나 집단 원리에 따른 무와 병의 일률적 구분을 거부하고 무도 개념을 확대 해석함으로써, 무도라는 개념을 병술과 무술의 총칭으로 부를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인간이 기술 습득을 위하여 자신의 몸으로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하나의 실례로 무도를 보고 있다.

 

나영일(1992)은 「전통 무도의 현황과 과제」에서 전통에 대해서는 '습관과 풍속이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서 전대에서 후대로 전승되는 체계로 그리고 공간적인 선(線)을 따라서 습관과 풍속이 전파되는 것과 아울러 습관과 풍속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전달되는 구조'라는 사전적 의미를 받아들이면서, 전통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공동체의 체계를 조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도에 대해서는 무술, 무예라는 말이 따로 있지만 그것은 문화에 따른 선호 차이에 기인할 뿐 그 개념들이 갖는 기술적 우월이나 정신적 수련의 체계화라는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무도가 본질에 있어서는 보편성을 갖지만, 그 발전 과정에 있어서는 각 국가와 시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술, 무예, 무도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함께 새로운 해석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한편 양진방은 「무도에 함장(含藏)된 체육관(體育觀)」에서 무술, 무예, 무도라는 일반적인 구분을 통해서 전통 무도의 개념을 규정하려 하기보다는 어떤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무술, 무예, 무도라는 개념은 언뜻 보기에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쉬우나 전문적 시각에서 보면 심각한 논쟁 거리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논쟁의 핵심은 "주로 무술, 무예, 무도의 개념적 구분에 대한 의미론적 논의에서 출발하여 무술, 무예에 비하여 무도를 보다 상위의 가치를 지니는 개념으로서 규정하려고 하는 시도와 어떤 유형이나 유파의 무술을 무도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무도성의 기준에 대한 시비, 그리고 무도라는 개념의 역사적 연원에 관한 시비 등이다" 라고 지적하면서 "현재 사용하는 무도라는 개념은 그 기원이 명백히 일본이며 또 사용 시기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전통 무도의 개념과 연관하여 양진방이 제시하는 무술, 무예, 무도의 개념 구분은 다음과 같다.

 

일본 무도의 개념 변천 과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이한 해석이 가능한데, 첫째는 '술→예→도'로서의 진화적 변천 과정으로 파악하는 견해로서 오직 실용적 목적만이 중시되는 '술'의 단계에서 실용적 목적을 넘어서서 기술을 위한 기술의 추구 또는 기술의 극치를 추구하는 '예'의 단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지 기술을 통한 철학적 정신의 추구와 수련의 목적인 교육적 차원을 갖는 '도'의 단계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양진방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면, 동양의 전통 무도를 무술, 무예, 무도라는 개념 구분을 통해서 이해하는 데에는 크고 작은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전통 무도를 이해하는 일반적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것이 전통적인 동양 무도를 이해하고 그 근대화 과정을 조명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편, 양진방은 무술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들 중에서 무도에 대한 철학적 기반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고 그 현실적 대안을 찾기 위한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소극적 차원에서 현재의 철학이란 이름으로 제시되는 특수성의 수준을 벗어나서 상식적인 의미의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
둘째, 현재의 체육이나 스포츠와 비교하는 관점에서 무술이나 무도가 함장(含藏)하고 있는 대안적 가치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셋째, 무도라는 최상위 개념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서, 무도를 특수한 문화로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철학을 구체적인 무술적 노력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는 먼저 무도를 피상적이고도 평면적이었던 노장(老莊) 철학이나 선불교적 언어의 수동적 적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능한 개념'으로서 동양 철학 일반에 흐르고 있는 세계관과 인성관의 체육적 해석을 통해서 지금부터 형성해 가야 하는 '빈 개념(empty concept)'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복규는 전통 무도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크게 변형시키거나 거부하지 않고 현대적으로 소화하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에 의하면, 전통 무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무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개별 사례에 집착한 자의적 해석이나 임의적 판단을 지양하고 좀더 보편적인 해석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의 선행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전통은 현재의 전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사실 나열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로 무도에 대한 인식이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작업이 동양권 문명의 이해를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나영일은 전통 무도와 그 의의에 대하여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조선조의 무사 체육에 그 논의의 초점을 맞추면서, 우선 무사 체육의 주체인 무사의 본질과 특성 등을 파악하고, 둘째로 '무사시취제도(武士試取制度)'의 대표격인 무과(武科)를 중심으로 각종 시취 제도의 제도사적 변천 과정과 그 내용을 파악하며, 셋째로 무사들이 각종 시취 제도에 따라 어떤 종목을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곳에서 어떻게 훈련했는 가를 밝히고, 넷째로 무사 체육을 오늘날의 체육과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네 가지의 과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전통 무도에 대하여 접근하고자 하였다.

 

반면에 김용옥은 '무도의 근대화'로 인하여 스포츠와 무술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경기 무도'가 만들어졌다고 보고, 이러한 시각에서 경기 태권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태권도는 지나치게 도(道)의 권위주의와 정신주의에 묶여 있었던 일본의 당수도 혹은 공수도의 허물에서 완전히 벗어나 '경기 태권도'로 대변혁을 이루었다. 태권도의 경우에는 일본의 전통주의를 과감히 탈피하여 도(道)에 대한 술(術)의 원래적 성격의 근대적 재발견이라는 역동적 작업을 '경기 태권도'가 이루었다.

 

이상과 같이 전통 무도의 개념과 함께 현대 무도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앞의 논의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양에서 무술이나 무예 또는 무도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들은 고정 불변하기보다는 역사와 사회의 전개 양상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 무도 사상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인 Donahue는 무도의 본질을 이해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요약하였다. 하나는 무도를 싸움의 수단으로서의 기술적 효율성을 다루는 방법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도를 일종의 문화적 체계(cultural system)로 보는 것이다. Donahue는 현대 사회에서 무도를 싸움의 수단이나 호신술로 보는 것은 시대적 오류라고 하면서, 무도를 오히려 기술적 효율성까지도 포용하는 문화적 체계로서 그 문화와 철학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계승 발전시키는 매체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사회적인 조건들은 변하기 마련이며, 그 변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Donahue는 급변하는 현대적 상황 속에서 무도는 더 이상 전근대적인 싸움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보고, 개인적 실력(question of power), 자기 삶에 대한 관리(quest for control), 정체성의 추구(search for identity), 그리고 집단에 대한 개인의 연대(relationship of the individual to the group) 등과 같은 문제와의 관련 속에서 현대 무도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현대 사회에서 무도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거나, 신체적인 잠재력을 바탕으로 통일된 세계관(coherent worldview)을 갖고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간의 상호 이해 장치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무도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그 현상의 변화와 변용에 걸맞도록 재해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은 기존의 전통이 깨지고 새로운 전통이 형성되는 진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무도 이해에 있어 그 본질이 불분명한 전통의 미명 아래에서 시대 착오적인 수련 목적이나 수련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에 빠져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도의 세계화라는 현상이 전개되면서, 중요한 것은 동양 무도 체계의 원초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 무도의 수련 체계에 내재된 가치를 가능한 한 가치 중립인 입장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도 수련 체계의 교육적 가치는 그 수련에 내재된 가치의 보편성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도 수련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세계 2차 대전 중에 일본의 전통 무도인 검도와 유도는 군인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일본이 선택한 전쟁의 명분을 이해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었으며, 군국주의의 교육과정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그 핵심은 '전통적 무도 정신'이 '일본 정신(大和魂)'의 강화와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무도 수련의 목적과 가치는 일본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일본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2차 대전 중의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도 정신은 보편적 수련 가치로서 수용되기 어렵다. 오히려, 현대 무도의 개념과 바른 인식은 '전통 문화'라는 식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인식 태도를 벗어 던지고, 현대적 의미에서 무도 현상을 재해석하고 그 가치를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수련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2. 전통 무도 사상 : 무심(無心)·형(型)·도(道)

동양 문화권에서는 대인 격투에 필요한 신체 기능의 발달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였던 무술 수련이 인격 수양, 정신의 단련, 자아 발견 등의 교육적·종교적·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문화 영역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무술의 목적과 가치의 변용은 오랜 역사 속에서 동양인들이 무술 수련에 유(儒)·불(佛)·도(道) 등과 같은 동양의 전통 사상을 접목시킨 결과였다. 무술과 사상의 접목은 일반인에게 널리 인식된 달마(達摩)대사의 무술 창안설과 소림사의 무술사적 의미에 대한 믿음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무도에 대한 동양 사상의 영향은 무도에서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예(禮)의 중시, 스승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존경, 부동심(不動心)이나 부동지(不動知), 음양(陰陽)이나 오행(五行), 또는 팔괘(八卦)와 같은 개념의 사용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무도에 대한 기존의 문헌에서 동양 사상의 수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고찰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도에 관한 담론의 대부분은 동양 사상의 접목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별 무도의 철학이나 사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설득력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수련 맥락이나 실천 방안이 없는 공허한 구호로 인식되기 쉬운 문제를 안고 있다. 양진방은 오늘날 대부분의 무도 종목들이 주장하는 철학이나 사상의 내용이 공허함을 지적하면서 첫째, 동양 철학에 편재하는 일반적 수준의 도덕 덕목들을 한자의 뜻풀이 수준에서 상업적으로 급조한 철학 둘째, 무술의 기술적 성격이나 구체적 수련 문화와 내적 연결성이 전혀 없는 불순한 주장 셋째, 선불교나 도가 등 특정 종교의 사상을 무리하게 견강부회한 철학 등으로 분류·비판하고 있다.

 

무도의 발전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동양 사상의 접목과 수용의 과정뿐만 아니라 수용된 사상의 변용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국내의 문헌은 극히 제한적이며, 특히 한국 사상과 무도에 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오늘날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사회에서 무도(Martial Arts)의 개념은 일본식으로 이해되는 실정이다(Dreager 1973; Schmidt 1989; Monday 1994).

 

이처럼 무도의 개념이 일본식으로 이해되는 것은 그 동안 일본의 무도 문화가 먼저 그리고 널리 국제 사회에 소개된 원인 외에도, 무도 개념 그 자체가 일본에서 주로 발전해 온 역사적 현실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무도와 관련된 동양 사상의 고찰은 일본 무도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중심으로 하였고, 한국과 중국의 경우도 문헌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취급하였다.

 

1) 불교와 무도 사상

불교와 무술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달마(達摩)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대표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무술사가들의 부정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달마대사와 소림사의 관계를 사실처럼 믿고 있다.
달마가 소림사에 와서 승도들을 보자 "좌선 때문에 운동이 부족하여 정신도 위축되고 근육도 쇠약해져서 불법을 수행할 수 없다. 영(靈)과 육(肉)은 본래 일체인데 肉(신체)이 허약하면 심령도 허약해진다. 그러므로 신체를 먼저 단련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靜)적인 선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동(動)적인 무술을 수련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무술사가들은 달마의 '무술창안설(武術創案說)'을 부정하고 있으며, 달마가 창안했다는 《역근경(易筋勁)》이나 《세수경(洗隨勁)》은 달마의 시기가 아닌 청대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설화에 근거한 무술과 불교의 관계 지움이 아니더라도 불교, 특히 선불교의 영향을 무도 수련에서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김창룡은 동양의 무도 문헌의 분석을 통하여, 동양 무도는 인간과 자연의 단일성,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이 기초가 되는 수련의 내면적 체험을 통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버리고 현세적 근심이나 성공 지향적 아집에서 벗어나 무념의 상태 즉, 공(空)의 상태가 되기 위해 자기 수련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阿部 忍는 심신일여(心身一如), 평상심(平常心), 무(無) 또는 공(空) 등의 선(禪) 개념이나 경지가 무도 수련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주장하였으며,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이진수는 부동심(不動心)을 무도 수련의 궁극적 지향점으로 보았다.

 

무도 수련에 대한 불교의 개념이나 사상 또는 수련 문화의 영향은 특히 일본 무도의 발전 과정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론적으로도 잘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반면에,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 무술과 선불교와의 관계에 대한 문헌이 미흡하기 때문에 이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무도 수련에 있어서 불교 사상의 수용과 접합 과정은 일본 무도 발전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불가피하다.

 

선불교는 일본에 소개되면서부터 사회의 지배 계급인 무사들의 생활과 직접적이고도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불교는 가마쿠라시대(1185-1338)에 榮西(1141∼1215)와 道元(1200∼1253) 등에 의하여 일본에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榮西는 1187년에 중국의 송나라에 가서 임제선(臨濟禪)을 배워 귀국하여 임제종을 건립하였으며 乾印寺를 세웠다. 道元은 건인사에 들어가서 榮西에게 선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1223년 송나라로 들어가 道元은 송나라의 승려인 천동산(天童山) 如淨의 의발(衣鉢)을 이어받고 일본으로 돌아와 조동선(曺洞禪)을 세웠으며, 영평사를 중심으로 하여 총림(叢林)을 만들고 선원(禪院)으로의 기구를 정비하였으며 선을 가르쳤다고 한다. 가마쿠라시대의 선불교가 당대의 무사층에 대하여 갖는 의미를 Suzuki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일본에서 선은 초기부터 무사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선은 무사들에게 두 가지의 가치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도덕적인 지침 이였으며 또 다른 하나는 철학적 기반이었다. 무사들에게 도덕적인 것은 어떠한 길이라도 한 번 선택하고 나면 후회하거나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성과 같은 것들이었으며, 철학적인 요소는 생사(生死)를 동일시하는, 즉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생관(死生觀)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선종은 가마쿠라시대와 무로마치시대에 무사 계층을 포교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앞의 인용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선은 진정한 의미에서 무사층의 이데올로기는 아니었다. 선은 고대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불교가 극한적으로 전개된 형태이며, 불교의 비합리성이 확대된 것이기도 하였다. 이와 동시에 불교의 본래적 체계성이 상실되어 그 사상의 부분화가 진행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선이 무사층의 생활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그 독특한 부분성이 무사들의 직접적인 관심 상황과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투의 일상화에 따라서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무사들의 정신적인 요구에 알맞게 선종은 좌선에 의한 마음의 단련이라는 방법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인 요구가 명백히 무사들에게 있어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무사들의 삶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사들과 그 지배 하에 있던 농민의 관계, 다른 사회 계층과의 관계, 무사 계급 내부의 관계 등과 같은 문제의 처리뿐만 아니라, 이전 체제의 타파에 따른 새로운 사회 관계의 창출 방식 등의 문제야말로 무사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내적 깨달음의 문제는 삶의 일부분에 불과하였으며, 선이 무사층에 수용된 것은 이러한 부분적인 합치의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선이 무사의 총체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었음은 다음의 글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무사층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모색 과정에서 전투에 종사하는 무사의 깨달음이라는 이른바 심리적 측면에 있어서, 선은 무사와 가까워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선이 무사들의 생활 속으로 일정 부분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깨달음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상과 같은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무사들이 처음 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실용적 가치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무사들이 선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개인의 인격 수양이나 종교적 깨달음보다는 전투에 임해서 자신의 전투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관계는 특히 가마쿠라와 센고쿠(戰國)시대에서 더욱 그렇다. 가마쿠라시대의 무사들은 토쿠가와시대의 무사들에 비하여 정치와는 무관하게 단지 싸움을 하는 군사로서의 기능적 측면이 더 강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사무라이의 존재는 혈전(血戰)을 위한 의미만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성격은 거칠고 우직하고 야만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마쿠라시대의 통치자들이 유교 윤리의 질서와 선불교의 정신적 수양의 가치를 인식하여 무사들에게 이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불교의 수행 양식과 교리 가운데서 선불교가 무사들의 관심을 주로 끌었던 것은 종파간의 차이와 무사 생활의 문화적 특성 때문이었다. 당시의 귀족들은 대개 선종보다 천태종(天台宗)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무사층의 생활과 의식은 귀족들과는 구별되는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 대하여 Suzuki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천태종은 왕실에 적절하고, 진언종(眞言宗)은 귀족들에 부합되며, 선종(禪宗)은 무사들의 문화에 적절하며 정토종(淨土宗)은 상민의 체질에 제일 적합하다.…선에는 명시적인 내재적인 교리나 철학이 강조되지 않는다. 다만 직관적인 방법을 통하여 생사(生死)의 속박을 단절하는 것을 수련의 요체로 한다. 그래서 선은 오히려 사상적으로 유연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선은 다른 이질적인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수용할 수 있다. 즉 어떠한 상황이나 체제에서 일이 지나친 형식주의나 인습주의로 인하여 진행이나 발전이 한계에 부딪힌 때에 선에 내재하는 혁명적인 힘이 곧 잘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면 선은 파괴주의적인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이러한 측면에서 씩씩한 힘이라는 본질과 조화가 되어 선이 당시 무사들의 정서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우직하고 단순함을 숭상한 가마쿠라시대 무사들의 생활 방식에 이러한 선의 가식 없고 담백한 성격이 잘 맞았던 것이다. 한편으로 그 시대의 무사들이 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요인의 하나는 에이사이에 의해 확립된 선의 계율(戒律)이었다. 이에 대하여 모리모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의 선은 계율을 중시하였다. 참선하는 문도들은 계율을 우선해야 한다(禪苑淸規)라고 한 것을 비롯하여, 계율을 중시한 《승자율(僧祗律)》, 《대열반경(大涅槃經)》, 《불장경(佛藏經)》 등을 계속하여 인용하였다. 선종도 일반적으로 계율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道元(1200∼1253)처럼, 부처의 참뜻에 바로 잠입하기 위한 주체적인 연소를 실현하는 방법, 금욕적인 방법으로서의 계율은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종에서 예로부터 전승되어온 이러한 금욕적인 계율이 무사들의 생활 양식과 잘 통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선에서 주장하는 욕망과 애착으로부터의 해탈이 곧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무라이의 격렬한 훈련과 일치되는 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종의 후원자인 무가(武家) 호오죠오(北條家)가 13세기에 정권을 잡은 후로는 선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미로까지 그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이처럼 선종 불교를 정신적 지주로 한 무사 계급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의 지배적 집단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민두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미나모또 요리또모(源賴組; 1147-1199)가 12세기말에 東國의 鎌倉에 幕府를 세운 것은 일본 역사에 새 기원을 劃한 것이었다.…鎌倉幕府는 전국의 무사계급을 主從關係로 조직하여 그 이익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 형태를 취한 것이다. 이같은 武人政權은 그 내용에 많는 변화가 있었으나, 그 근본 구조는 19세기까지 전승되었다.

 

따라서 선불교는 무사 계급 즉, 일본 지배층의 의지와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것은 동시에 일본 무도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이 살펴보았을 때 무 사상의 성립에 영향을 준 불교의 사상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선의 사생관(死生觀)이며, 둘째는 깨달음과 그과 관련된 무심, 무념, 무도이다.

 

그럼 먼저 선의 사생관(死生觀)과 무술의 관계를 알아보자. 최초에 무사들이 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생사의 문제에 대한 선의 관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마쿠라시대부터 2차 대전에 이르기까지 무사나 군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주군이나 영주을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태세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무사들은 선의 극기(克己)주의와 초월적 생사관의 체득을 통해서 이러한 정신적 자세를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걸고 주군을 섬기는 충성심과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로 전장에 임할 수 있는 태도가 무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쟁터를 일상적 삶의 공간으로 생각해야 하는 이러한 무사들의 삶의 일단을 민두기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御家人의 奉公의 근간은 軍役이었으므로 평시에 있어서의 무도의 수련과 전시에 있어서의 용감성이 중요시된 것이다. 刀劍에 대한 物神崇排的인 애호는 刀劍藝術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교한 製劍技術을 이루었거니와 이 刀劍은 무사들의 武勇의 상징이었다.

전쟁은 주로 개인끼리의 전투가 중심이었으나, 적과 대전할 때는 자기의 이름뿐만 아니라 조상의 이름까지도 되뇌는 습관이 있었다. 일본의 무사담에 자주 나오는 切復(셋뿌구, 배 가르기)은 명예를 보존하는 방법으로서 12세기말에 관습화되었다.

 

일본의 주종 관계는 자식과 친부간의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시되는 관계였다. 유교에 의하여 형성되는 무사의 덕목은 충(忠)에 바탕한 것이다. 무사가 주군(主君)에게 영원히 봉사한다는 맹세를 한 번 하면 단지 죽음으로만 그 관계가 끝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만약에 주군이 먼저 죽었을 경우에 충의 부담으로 말미암아 무사는 주군에 따라 자기 목숨을 끊어 버리거나 주군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하여 죽음이 당연시되는 무모한 전투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무사들의 죽음에 대한 숙명론적이고 냉철한 태도를 관찰한 Francesco Carletti는 "전세계에서 일본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나라가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하여 Kammer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사들의 이러한 사생관의 형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는 선의 정신과 도검이라는 구체적 사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검(刀劍)의 독특한 상징적 의미에 대하여 Suzuki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刀劍은 무사들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칼 주인의 의지에 반하는 것을 잘라 버리는 것이며, 또 하나는 생존의 본능에서 생기는 충동을 자르는 것이다. 전자는 애국심 혹은 군주주의와 관련된 것이며, 후자는 자기 희생과 충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뒤에서 논하겠지만, 유교는 무사들의 생활 윤리의 바탕이 되었으며, 토쿠가와시대에 이르기 이전에 선은 그 유교 윤리적인 의무를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태세, 즉 숙명론적 사생관을 기르는 훈련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무사들에게 있어서 선은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쟁과 일상적 삶에서 충성심과 용맹성을 기르기 위한 수단적 사상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澤庵과 같은 승려들에 의해서 제시된 무사들을 위한 선불교적 사상의 특성을 King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승려들이 사무라이들에게 제공한 무사적 선(武士的 禪, warrior-zen)의 주요 핵심은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다. 선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전투 중에 죽음을 직면하여서도 아무 흔들림이 없으므로 써, 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살상할 수 있는 무사를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선과 무술의 결합에 대한 기술을 볼 때 사무라이들이 선을 통하여 교육적·철학적·종교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으나, 위에서 보았듯이 King은 사무라이들이 선에서 제일 첫 번째로 찾는 것은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King은 '생사의 해탈', 즉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하게 해주는 선의 가르침이 무사들에게는 오히려 실용주의적인 요소로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선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발달된 이러한 무사들의 사생관이 무도 수련에 있어서 갖는 함의를 Dann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인간이 죽음을 만나고 직면하는 것은 무도의 중심이 되는 교훈이 되어 왔으며 오늘날도 무언의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죽음에 대한 무도의 교훈은 그 역사적 전통에 근거하여, 인간의 욕망, 약함, 소아적 자아, 혹은 자만 등에 의해서 생겨나는 정신적 부조화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두 번째 개념인 무심(無心), 무념(無念)과 무도(武道)라는 불교의 개념을 통해서 무도 개념을 이해해 보자. 선의 수행에서 '무심' 또는 '무념'은 항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선 수행에서 유래한 무심, 무념의 개념은 무도의 수련에 수용되어 검도 등 다수의 종목에서 수련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무심은 단순히 무의식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의식을 무심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한 가지 관념이나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 계속적으로 흐르며 차별하지 않고 감정적인 선택이나 구별이 없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유연한 상태를 말한다. 토쿠카와시대 초기의 유명한 검술가인 柳生宗 를 위해 쓰여진 澤巖의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錄)》은 이러한 무심의 상태와 수련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물은 마음을 어느 것에 놓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든 몸 전체에 충만시키는 것이며 당신 존재의 전체에 그것을 완전히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행함에 있어 너의 손이 필요할 때 손을 사용하고 다리와 눈이 필요할 때 그것을 사용한다. 그래서 시간이나 여력이 낭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은 끈에 묶인 고양이처럼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마음은 그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두어야만 하고, 전적으로 자신의 천성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해야만 한다. 그 마음을 국한시키거나 일 부분화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정신 훈련의 마지막 단계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없을 때, 마음은 도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으면 의식(the mind)은 사람을 휩싸고 있는 모든 사물과 움직임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무사나 무술가에게 무심(無心)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첫째, 무심은 상대나 대결에서 생기는 다양한 두려움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둘째, 이러한 무심의 상태에서는 객체와 주체, 즉 상대와 자신의 대립적인 관계에 대한 지각이 사라짐으로써, 상대방의 움직임이나 전략의 의도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고 그 상황에 적절한 반응이 자발적으로 나오게 된다. 검도에서는 이러한 정신 상태를 부동심(不動心)이라고 부르고 있다. 부동심의 정신상태는 검객이 아무리 위험하거나 당황스러운 순간에 직면하더라도 마음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움직임이 주저 없이 나오게 되는 경지를 말한다.

 

일본의 검술류파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텐신 쇼오덴 카토리 신토류(天眞正傳取神道流)'의 경우에서 검도의 수련 방식에 미친 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 류파의 개창자인 죠오샤이는 '향취 신도(神道)'의 숭배자였으며 '진언밀교(眞言密敎)'의 신봉자였다. 텐신 쇼오덴류의 전통은 현재까지 전승되어 일본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텐신 쇼오덴류는 다른 검술의 류파들처럼 사회 변화에 따라 죽도(竹刀)와 보호구(保護具)를 사용하지 않고 현대적 의미의 경기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류파의 시합은 실제 전투에 사용했던 기술과 정신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수련 가치는 무심과 보리심(菩提心)의 철학을 통하여 분별심을 없애고 본심(本心)을 발견하는데에 있다.

 

키요타에 의하면 텐신 쇼오덴류의 수련 방식은 진언밀교의 삼밀(三密) 수련을 그 이론적 토대로 하고 있다. 삼밀 수련이란 명상의 방법인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요약하여 말하면, 육체적·음성적 그리고 정신적 영역의 통합을 지향하는 인상(印相)·진언(眞言) 혹은 주문(呪文)·유가(兪伽)가 연속하여 이루어지는 명상이다.

텐신 쇼오덴류는 현재 죽도를 사용하지도 않고 시합에 참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검도의 경기로서의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검술을 통하여 일종의 유사 종교적인 경험을 얻고자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生死의 개념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서 기술의 실제성(realistic character)을 중시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수련관은 '검도를 위한 선'이 아니라, 실제로 '선을 위한 검도'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소위 '전통 무도'나 '고전 무도'라고 주창되는 많은 무도 수련 유파들은 이처럼 무술로서의 본질보다는 정신의 수련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무술의 기술은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 많은 무도 관련자들, 특히 서구사회에서 무도의 무심이나 무념 등의 개념들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거나 이들 개념을 중심으로 한 정신 수련 그 자체를 무도 수련의 본질로 호도 하면서 무도의 본질인 격투적 성격이나 기술적 요소를 극단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Suzuki와 같이 동양의 사상과 문화를 서양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이러한 경향성을 더욱 강화하려는 이들이 많다. 그 결과로 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동양 무도를 선과 동일시하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2) 유교와 무도 사상

무도 수련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예(禮)와 의(義) 중시, 상하 질서의 강조, 충성심이나 애국심과 같은 가치의 강조 등에서 우리는 무도에 대한 유교적 사상의 영향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가장 유력한 동양 사상으로서 동양인의 삶과 가치관을 형성해 온 유교가 무도 수련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을 것이라는 가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유교의 교육관을 대표하는 육예(六藝) 즉,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에 나타나는 활쏘기(射)에서 강조되는 군자의 도는 유교적 무도관의 일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실제 일본에 있어서도 전쟁이 종식된 도쿠가와시대부터 무사들의 사상적 기반이 선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때부터 무사들의 의식과 삶은 유교적 가치관과 철학에 의해서 더 많은 부분이 형성되는 상황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주자학을 당시의 공식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 설정하였다. 따라서 무사들의 삶과 그들의 무술 수련에는 그 이전에 유행하였던 선불교의 사상과 새로이 대두된 유교 사상이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권의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영향이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처럼 그 영향력이 강화된 유교가 무사들의 삶에 직접적이고 유형적인 속박으로 등장한 것은 막부에 의해서 제정된 '무가법도(武家法道)'라는 규범을 통해서였다.

 

무사도(武士道)란 당시 무사들의 의식과 윤리, 그리고 행동을 규정했던 제반 규범적 가치관을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무사도란 무사라는 신분에 동반하는 윤리적인 규범을 체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만혁은 무사도의 중심가치를 요약하여, 1) 충성심과 용감성, 2) 약속과 의리 존중, 3) 체면과 명예의 존중, 4) 청렴 결백과 검소한 생활 태도, 5) 복수(復讐) 의식 등을 들었다. 이와 같은 가치관들 속에서 유교의 핵심 사상인 충(忠)과 인(仁), 그리고 의(義), 또는 명분 사상 등의 영향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유교 사상을 근간으로 한 무사도의 이데올로기가 끼친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와 국수주의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Benedict는 일본 사회에 있어서 인간 관계에 나타나는 유교적 성격을 인간간의 상호 작용에서 나타나는 은(恩), 충(忠), 그리고 의리(義理)의 변증법적인 관계로 파악하였다. 사람이 입게 되는 은혜를 주로 네 가지로 분류하여 군주에게 입는 은혜, 그리고 부모, 영주, 스승에게 입는 은혜 등으로 나누고 있다. 의리는 이러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한 의무감, 즉 그 은혜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증명하려는 의지이며 노력이다. 충(忠)이라는 것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한 의리를 지키는 데 충성(忠誠)을 다한다는 것으로 인식된다.

 

무사도의 규범에 의하여 형성된 가치관에서도 죽음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사도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무사도의 경전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18세기의 '하카라(葉隱)'에는 죽음과 의리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아침마다 자기 죽음에 대한 결심을 새로이 해라. 저녁마다 죽음의 생각으로 자기의 마음을 정리해라. 그러므로 네 정신이 항상 준비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네 마음이 늘 죽음에 정착해 있으면 인생의 갈 길이 복잡하지 않고 똑바로 향할 것이다. 자기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며, 자기의 명예가 깨끗할 것이다. 방해되는 잡념 없이 자기의 가야 할 길을 똑바로 볼 수 있으면 실수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의무를 완수하기에 비난을 받지 않고 명예를 지킨다.

 

무사 철학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유교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자(宋子) 철학의 형이상학적인 바탕은 이(理)와 기(氣)의 변증법적 사상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주희는…《역학계몽(易學啓蒙)》에서 "천지에는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이며, 이 기가 둘로 나누어져 음양(陰陽)이 되고 오행(五行)의 조화로 만물의 종시(終始)가 된다"고 말하였다. 하나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은 기가 사물로 나누어지는 과정 중의 중요한 운동 형태이다. 여기에서의 '하나'는 통일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가운데 대립되는 두 면인 음과 양이 있다는 것이다. 주희는 모순되는 쌍방이 대립과 통일이라는 운동과 변화를 추진한다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동(動)'과 '정(靜)'의 학설을 제기하였다. 그는 '기가 사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하나가 둘이 되고 오행의 조화로 만물의 종시가 된다'는 사상에 근거하여 '동정에는 마침과 시작이 없다'는 관점을 내세우면서…동정(動靜)을 마침과 시작이 없는 무한히 연속된 과정으로 파악한 견해는 '리(理)·기(氣)·물(物)·리(理)'라는 그의 철학적 논리와 모순된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운동이 순환적이라고 말하였다. 즉 마침과 시작이 없다는 것을 단순한 순환 운동으로 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자학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들로 태극(太極), 음양(陰陽), 이기(理氣) 등을 들 수 있다.
태극과 음양이란 기(氣, Ether)로 하여금 기(氣)이게 해주는 소이(所以)(=리(理, Principle))이며, 따라서 천지만물을 넘어서 있는(超越) 긍극적인 근원이다. 아직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도 반드시 리(理)가 있었다. 리(理)가 있으므로 해서 곧 천지가 있고, 만약 리(理)가 없으면 천지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리는 기(氣)와 함께 개개의 사물에 내재(內在)하여 만물의 성(性)이 된다.
…천지만물은 모두 '형이상'(形而上)의 리(metaphysical principle)와 '형이하'(形而下)의 기(physical ether)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 리는 사물의 본성을 결정하고 기는 사물의 형태를 결정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논리를 따르면 '기'는 사물 즉, 인간의 형태이다. 여기서 '형태'란 존재의 형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형태는 생활의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모리모토는 이기론(理氣論)의 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기(氣)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의 개별적인 인간과 사물­그것은 각기 다른 형태를 갖고 있다­을 성립케 하는 범주이다.

 

그러나 주자학에 있어서는 이렇게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개별적인 것을 무조건적으로 승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기'를 부여받아 개별적인 존재가 될 수 있기는 하지만, 개별적인 인간이 부여받은 '기'에는 어둡고 밝고, 맑고 탁한 차별이 있다.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만으로는 불완전하다. 따라서, 주자학에서는 기의 개별적 성격에 대립되고 보완적인 본질로서 '리(理)'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렇지만…인간은 완전한 것을 향한 통로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는 본래 완전한 것인 '본연의 성'(本然之性), 혹은 '리(理)'라고 불리는 범주가 내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자학에 있어서 완전한 것, 보편적인 것으로 되어 있는 '리'(理)의 내용은 무엇인가? 주자는 그것을 '성(誠)'이며, 오상(五常)=오륜(五倫)이라 한다. 즉 '리'(理)라는 것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오상이라 불리는 윤리적인 범주를 총괄하는 명사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군신·부자·형제·부부·붕우간의 상하 차별이 곧 질서인 오륜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다섯 가지의 상하 차별=질서 중에서, 군신간의 분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기=생활 태도'에 그러한 '이=윤리적 규범'을 작용시킴으로써, 군주=천황=국가를 위하여 모든 것 즉,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도쿠가와시대 무사도(武士道)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국수(國粹, National Purity Society)와 국본사(國本社, National Foundation Society)와 같은 비공식적인 정부의 기관(quasi-governmental organizations)들이 서민의 의식에 '일본 정신'을 강화하기 위하여 유도와 검도 훈련을 강권하였던 것이다.

 

유교에서의 예(禮)의 이념 역시 마찬가지로 군국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였다. 전전(戰前) 昭和 11년(1936)의 《體操科 要目》의 부분적 내용에서 그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내용 중에서 '검도기술의 수련을 통하여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고 건강한 국민성을 앙양하고 전통적 무사도 정신을 계승하며 건전하고 유익한 일본인을 양성시키는 것에 있다'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무도는 무술 수련을 통하여 '무사도 정신' 즉, 앞에서 언급한 '일본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일본의 무도학자인 阿部 忍에 따르면, 그 당시 무도의 '예'는 스승이나 상급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도에의 '예'의 중시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계급성이나 권위주의를 중심으로 한 이념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도쿠가와시대의 유교는 무사들의 정신적 교양임과 동시에 일상 생활에 복잡하게 의식화된 예의 범절을 강조하므로써 그들의 생활과 행위의 계율적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유교의 영향은 무도 수련에 중요한 몇 가지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야기시켰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무술의 수련을 형식화 또는 의식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형식화와 의식화는 먼저 복잡한 예의와 의식의 강화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형(型)이나 본(本)의 제정과 이러한 형과 본을 중심으로 한 수련 양식의 유행으로 나타났다. 검술의 류파(流派)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각자 자기 류파의 고유한 기술적 특징을 형으로 체계화시켰으며, 형의 수련을 통하여 그 류파의 전통을 전승하는 수련 문화가 나타난 것도 역시 이 시기의 현상이었다. 에도시대에 이러한 형지향주의는 검술에 제한되지 않았다. 이러한 본의 다도(茶道, tea ceremony)와 노(能樂, noh performance)의 습득이 형 연습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검도를 비롯하여 에도시대의 예술의 체득 과정에 있어서 형식 수련의 방식에 의존하는 경향 또한 그 당시 유교의 사회적 성향 때문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Friday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형(型)을 통한 습득 열기는 의식과 의식화된 행동에 홀딱 빠져 있는 유교의 교육론에서 발생된 것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에 대한 몰입은 운동과 연습(through action and practice)을 통하여 인간이 생활의 혼란을 정리하고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인 틀(conceptual framework)을 형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비록 분석과 합리적인 논의로 자기의 관념을 묘사, 해석 그리고 정당화를 하더라도 이러한 방법들로 그 관념을 체득할 수 없다. 의식이라는 것은 형식화된 행동(action)이며, 순서로 구조화된 경험(sequentially structured experience)인데, 이를 따라 하면 이해와 지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와 앎(truth and knowledge)을 추구하는 자들이 이러한 이해를 얻으려면, 올바른 경험(right kind of experience)을 통하여 이끌어 나아가야만 가능한 것이다.…무도에서 수련자가 선인들의 동작을 의식화된 형태로 모방하는 것은 바로 그 뜻이다.

 

유교적 교육학이 사무라이 교육에서 모든 분야를 좌우하였다. 유교의 경전을 읽을 때에도 모방에 의존하였다. 선생이 우선 몇 자만(많으면 반 장만 정도) 읽으면 그 다음에 학생들이 앵무새처럼 계속 혼잣말로 따라 한다. 그 말의 형식을 습득해야만 비로소 선생이 그 내용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며, 그 후에는 학생들이 또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선생은 한문(漢文)의 문법과 구문론에 대한 원리나 분석을 제시하지 않고 한자(漢字)의 뜻을 풀어 주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5년 내지는 7년 동안 공부시켰다. 이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 내용을 계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그 기반이 되는 원리들을 게슈탈트식으로(in gestalt-like fashion) 익히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형(型)을 위주로 하는 무술의 수련도 따라 하기만 하는 흉내가 그 주요 방법이었다. Imamura는 유교가 검도 시합에 미치는 궁극적인 영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에도시대 중반에 최초로 검술의 경기 방식(sport form)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 시대의 검술 사범들은 유교 윤리에 기반한 이상주의적 철학관을 그들의 규범으로 설정하였다. 이 윤리(ethics)와 이상(ideals)에 따라 일반 생활에서든지 시합을 할 때든지 사무라이의 정신적 자세의 중요성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특히, 시합에서 유교 윤리는 규칙을 지키는 것과 시합에 대한 공명정대한 태도(fair play and obedience to the rules)를 강조하였다. 특히 시합에 졌을 때 다음의 기회를 위하여 반성하고 약점을 교정하여 다시 노력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수련 철학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Friday가 일본의 17세기말의 이러한 교육 방식 즉, 외움과 모방을 근거로 한 수련 방법으로 인하여 무술 수련에서의 헛된 형식주의(empty formalism)와 부진을 초래하였다고 비판한 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3) 도교와 무도 사상
예로부터 동양의 사고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의식이 있었다. 하늘(天)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우주나 자연과 인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자연의 모방으로부터 건강이나 격투기술의 이상적인 형태를 추출해 낼 수 있다는 신념을 표방하는 도가 사상은 바로 노자의 '자연순응사상(自然順應思想)'의 대표적인 사고 유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신체와 건강에 대한 도교적 사고는 다양한 도인양생(道人養生)의 술법들을 발달시켰으며 이후 동양 무술의 발달에 중요한 사상적·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노자(老子)는 세계에 관한 소박한 변증법을 통하여 모든 사물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한다. 즉, 곧음과 부드러움, 강약(强弱), 경중(輕重), 공수(攻守), 진퇴(進退), 정동(靜動) 등과 같이 대립적 통일체라는 변증법적 인식은 후일 무술 이론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사물이 대립면을 향해 전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한 노자는 생활에 있어서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고, 조신하는 것을 주장하고, 강경하고 진취적인 것을 반대하는 철학을 주창하였다. 이러한 철학은 후일 무술 철학의 한 흐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노자의 뒤를 이은 장자(莊子)는 이러한 자연순응사상의 신체적 응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장자는《각의(刻意)》편에서 "내쉬고 들이쉬어 호흡하고, 낡은 것을 토하고 새것을 받아들이며, 곰이 휘어잡고 새가 펴듯이 하는 것은 인간이 장수하려는 도리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도인 양생의 사상은 명·청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무술의 수련과 접합되어 '내가권법(內家拳法)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일본에 전개된 도교는 완전히 체계를 갖춘 종교가 아니라 도교의 일파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도교가 일본에 전래된 후 계속적인 이론적 사상적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도교는 자생할 능력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유교·도교의 내용들은 혼합적으로 전통의 일본 민간 신앙 속으로 흡수되게 되었는데 이러한 혼합의 결과가 바로 신도(神道)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립된 신도(神道)는 이후 무술 수련에서 중요한 사상적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무도 수련의 공간인 도장의 개념은 한편으로는 선불교의 수련 공간인 도장(道場)의 문화적 성격을 이어 받은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도의 도장 개념도 그 속에 공존하고 있다. 합기도(合氣道)의 경우 이러한 신도적 성격은 매우 명시적이며 실제 신도적 의식(儀式)이 실시되기도 한다.

 

김용옥은 무도에 있어서 도의 개념을 인간의 몸에 내재하는 운동의 원리로 파악하고 이러한 원리의 개념화를 다음과 같이 도교적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몸의 움직임에 반드시 '길'이 있다. 그 길을 우리는 '道'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도가 반복되어 몸에 쌓인 것(畜)을 '德'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도는 생겨난 대로의 자연스로운 것이고(道生之), 德은 도를 몸에 축적하여 얻은 것이다. 덕은 곧 얻음이다.

道의 動은 反이다. 反은 호미오스티시스를 유지하기 위한 네가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의 체계이며, 그것은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에 스스로(自) 그러하여(然) 일어나는 자연운동체계이며 생명현상이다. 이러한 道의 자연운동체계는 반드시 虛와 實이라는 리듬체계를 기조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주먹으로 사람을 때린다고 하자. 반드시 시간을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주먹이 움직이는 동안의 시간의 추이는 나의 몸의 공간성, 즉 나의 몸이라는 기(氣) 덩어리와 주변의 空性을 이루고 있는 대기와의 관계 양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나의 팔뚝주먹의 시간적 변화는 나의 몸의 공간성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몸의 공간성의 변화를 무술에서는 '虛·實의 변화'라는 말로서 표현한다.…주먹이라는 실(實)이 다시 나의 몸의 中正(발란스)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일 때 그 실(實)로 인하여 생긴 虛는 완전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은 그 허(虛)를 다시 자기의 실(實)로써 쑤시고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주먹의 움직임은 나의 허(虛)를 빨리 콘트롤 가능한 허(虛)로서 회복시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운용하는 것이니 바로 老子가 말하는 '反者道之動'의 제1원리(The First Principle of Returning)가 되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무술이란 몸의 시간성과 공간성(=時空間同時性)의 처리 방식에 관한 기술(art)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그 시공성의 특징은 對決에서 발생하는 상황성(situationality)과 역동성(dynamism)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도교의 원리가 무술에서 어떻게 작용되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원리가 무술의 경기화 과정에서 갖는 의미는 뒤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었다.

 

3. 무도 개념의 변천과 사회·경제적 배경

앞에서 우리는 전통적 무도 사상의 개념에 영향을 끼쳤던 동양 사상, 즉 불교, 유교, 도교의 핵심 개념을 무도 사상과 함께 고찰하였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무도의 개념 변천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배경을 보았다. 일부 서양의 무술 연구자들은 서양의 전쟁사는 병기술의 개발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동양의 전쟁에 대한 접근 방법은 서양에 비하여 자기 수양적이며 도덕적이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Donohue는 이것이 역사 이해의 한 오류라고 주장하면서, 동·서양의 무술을 총제적으로 분류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발전의 연속체를 제시하였다.

 

어떤 사회의 무술의 조직적 수준과 기술적 수준은 그 사회 전체의 발전 수준(social complexity)과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 발전 수준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첫째는 가장 낮은 수준으로써 모든 사회적 의무를 평등하게 나누어 가진 공동 사회(egalitarian=communal society)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대부분 남자들이 습격, 전투 등의 타조직들과의 싸움 행위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두 번째 수준은 사회 계층 제도가 존재하거나 초기적 국가 체제의 단계로 발전해 가는 사회이다. 이러한 경우에 사회 계층 제도하에는 무술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특수한 사회 계층에 속하게 되며 특별한 보상도 받고 그 계층의 상대적인 위치에 의하여 인정도 받는다. 셋째 수준은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국가적 관계이다. 그 국가의 전사들은 잘 조직화되어 있고 그 범위가 크며,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 조직으로 존재하게 된다.

 

공동 사회에서는 병기의 과학 기술 수준은 낮고 전술은 단순하며, 무술적 훈련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없는 제약 등으로 인하여 그들의 무술적 효율성이 크게 높지 않다. 그리고 계층 사회(여기서 계층 사회는 봉건 사회에 해당함)의 전사들이 사회적 위치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정치 집단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무술 훈련에 몰두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병기들은 대개 손으로 사용하는 도구였기 때문에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는 전쟁을 위한 제도와 체제에 그 사회의 첨단 과학 기술의 역량이 투입된다. 병기술의 수준이 높을수록 개인의 무술 능력보다 집단의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육체적 훈련은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봉건 사회가 근대적 국가의 성격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전투와 관련된 자원(군인이나 무기, 등)은 공식 기관으로 재편성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전투 업무는 전문직(profession)이 되어 버린다. 국가의 안전과 개인의 안전이 이러한 전문 전투 집단에 의해서 보장된 사회에 있어서 일반 민간인들은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자신의 삶에 몰두할 뿐 전투 기술을 익히기 위한 물질적 시간적 투자는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무술의 변천 과정은 개인의 일상 생활 속에서의 병술이나 무술의 실용성과 도구성이 줄어듦에 따라 전투에서의 승리나 상대에 대한 물리적, 신체적 우위의 확보라는 무술의 외적 가치로부터 문화적 가치의 전승이나 개인의 인격적 완성과 교양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련의 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으로 변화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상고 시대로부터 전래되어온 전통 무술은 고려 시대부터 수박희와 같은 모습으로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목적의 신체 활동으로 행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숭문천무(崇文賤武)의 사회적 가치관에 따라 군사적 목적을 제외한 무예(양반 계급의 활쏘기(弓矢)를 제외하고)는 조선 말엽에 이르기까지 거의 사장(死藏)되게 되었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평화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통일을 바탕으로 도쿠가와시대부터 현대 일본 무도의 본격적인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한국 무예는 대략 도쿠가와시대의 중엽에 해당하는 시기인 정조 때에《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正祖 14年, 1790)》가 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여러 종교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원인에 의하여 한국의 전통 무예가 발전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여건이 형성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회에서든 그 사회의 문화 현상을 유지 발전시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조건이나 변화가 특정한 문화 활동의 가치를 지지하거나 필요로 하여야 한다. 박물관이란 지나간 문명의 유물의 보관소이다. 즉, 실용적인 기능이 뒤떨어지거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측면에서 존재 의미를 상실한 사물이 맡겨 진 곳이라 할 수 있다. 무술도 예외일 수 없다. 일본의 무술사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의 총포 화기가 유입된 후 세키가하라(1600), 오사카성(1614-15), 그리고 시마바라(1638) 등의 전투에서 칼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전투술이 화기의 우세에 밀림으로서 고전적 무사의 사회적 위력이 쇠퇴하게 되고 이로써 무사와 무술 문화 자체에 크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한국의 택견도 이와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의 사회적 가치와 여건에 맞지 않게 되자 일상 생활에서 사라져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서양 문명의 유입에 따른 동양 문화의 변화에 대하여 이명현(1991)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서양, 그 중에서도 몇몇 힘센 나라들의 깃발이 오대양 육대주를 주름잡게 되었을 때, 동양의 문명은 한 마디로 단절 그 자체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전통 학문과 예술 등 동양의 문화가 '올 스톱'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옛터에 서양의 것들이 뒤죽박죽 쳐 밀려 들어와 채우고 말았다. 동양의 전통문화는 여기서 일단 박물관 속으로 이전되고 말았다. 일상적 삶의 세계로부터 진열장 속의 감상 품목의 세계로 우리의 것들은 유폐되었다. 우리의 것들은 우리 일상의 삶과 호흡하기를 중단하고, 역사가들의 사실(史實)의 세계에서만 그 존재의 빛을 발휘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 무예도 조선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렇게 '일상적 삶의 세계로부터 진열장 속의 전시품의 세계로' 이전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강점시대를 맞아 일본에서 유입된 무도(주로 유도, 검도)가 한국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그리고 해방이후 도일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유입된 카라테를 출발로 하여 발전되기 시작한 태권도는 새로운 한국화의 과정과 특히 스포츠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대표적인 한국 무술로서 국제 사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 무술의 현대적 발전 과정에서 특기할 현상으로서 무술 수련 양태의 이분화를 들 수 있다. 무술 수련에서 추구되는 가치관의 차이의 이러한 양극화의 현상은 무도적 수련관(전통적 형태)과 경기적 수련관(스포츠적 형태)으로 개념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상이한 수련 문화의 분화를 성낙준(1995)은 태권도라는 종목을 해석하는 단서로 삼고, 태권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무도태권도는 자기발전과 정신적 수양을 목적으로 수련하는 반면 경기태권도의 목적은 주어진 규칙 내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 즉, 승리가 그 목적이다.

 

둘째, 무도태권도는 동양가치를 반영하고 있으며, 경기태권도는 서양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는 인격형성, 경쟁과 훈육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반면, 무도에서는 정신과 신체의 완성 또는 자아의 완성이나 의(義), 용(勇), 인(仁)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셋째, 무도태권도는 수련의 과정을 중시하는 반면에 경기태권도는 결과를 중시한다.

 

넷째, 무도태권도는 호신술로서의 방어가치가 큰 반면에 경기태권도는 공격 기술이 위주이다

 

다섯째, 무도태권도는 자기 발전과 정신적 수양을 목적으로 수련하는 반면 경기태권도의 목적은 주어진 규칙 내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 즉, 승리가 그 목적이다.

 

위에서 '무도태권도는 동양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으며, 경기태권도는 서양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태권도에는 동 서양 사상의 부조화 개념이 공존하고 있다. 한편 서양 문화의 동양으로의 유입과 함께 동양의 문화와 예술이 '올 스톱'되었다는 문화의 '일방적 흐름'에 반대되는 현상으로서, 동 서양의 문화 접촉이 일 방향적이기 보다는 양 방향적임을 시사하는 견해도 있다.

 

무술의 이러한 개념적, 가치적, 그리고 기술적 변천 과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일본의 무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역사에 있어서 분열 상태의 전국시대(이 분열 상태는 16세기말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약 1백년 가량 계속되었음)를 통해서 직업적 무술가라고 할 수 있는 무사(사무라이)들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서 자신들의 무술적 능력과 경험을 최고도로 높일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아스가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으로 세끼가하라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도요토미 세력을 몰아 내고 천하의 실권을 장악하여 통일 국가를 세움으로서 전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이것은 동시에 무사와 무술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도쿠가와시대(1600-1867)의 상대적인 사회적 안전 속에 무술은 병술의 실용주의에서 벗어나 무도의 예술적 가치와 무도의 교육적 가치를 위주로, 그 수련 방식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사회적 변화를 최복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일본의 경우 도쿠가와(德川)시대의 무사들은 이전의 무사와는 달리 전쟁을 모르는 무사였다. 실전경험이 없는 그들은 관료와 지식인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되었고, 전대(前代)의 무사가 경험하지 못 한 산업 경제의 현저한 발달과 그에 기초를 둔 町人文化에 둘러싸여 있었다. 산업 경제의 발달이 무사들이 생활을 곤궁하게 만든 것이다. 무사들의 생활 규범인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에서는 문무를 익히라고 하는데, 무사가 문(文)의 담당자로 자처하게 된 것도 이 시대 무사들의 특징이다. 즉, 무사가 문의 일을 담당하게 된 것과 함께 무도도 전대(무술로써 싸움기술의 성격이 강하였던 시대)와는 달리 무사적 성품을 기르기 위한 무도가 되었다.

 

도쿠가와시대의 상대적인 평화 속에 무술의 중점은 전투의 목적주의에서 수련의 과정주의로 바꾸게 되었다. 그 전까지 수련의 기술은 전투에서 주로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실제 싸움이 드문 도쿠가와시대의 풍속에서는 검술의 유파(流派)의 기관이라고 하는 도장들의 확산과 더불어 그 기술을 형식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무술의 수련 방식(특히 검술)의 중심이 형(型)으로 고정되었다. 이러한 도쿠가와시대의 무예(武藝)의 주요 수련 방식은 일본의 전통적 문화의 특성인 '형(kata)의 문화'에 영향받은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도쿠가와시대 이전인 전국시대의 추억들이 희미해져 가면서 무술의 형 위주로의 수련이 '의식화된 형식주의'로 고착되어 갔다. 17세기 말에 이러한 기계적, 모방적 수련 방법이 공허한 형식주의 정체의 상태로 성격이 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실제 전투의 기회 없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형식주의적 무도 수련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에 의해 17세기 에도에 있었던 몇 몇 검도 유파들은 보호구와 죽도의 개발을 통해서 상대에게 직접 타격을 가 할 수 있는 겨루기의 방식을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경쟁(겨루기)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형 중심주의자들은 겨루기가 기구의 변경과 함께 새로운 규칙의 도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형 수련 방법보다 실제 전투로부터 더욱 거리가 먼 기술적 제약을 가져 올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이것을 바로 '전통적 무도'와 '근대적 무도'가 양분되는 분기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복규는 일본 무술의 경우와 한국 중국과 같은 경우를 대비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일본 무술사의 경우 무술에서 무도로의 변천은 일본 내의 특수한 계층 구조라고 할 수 있는 무사(warrior)라는 특수 계층이 그 사회 문화적 역할에 따라 관료로서 혹은 지식인으로서의 기능에 의해서 특정 지워지는 의미 변용이므로 이를 우리나라와 중국과 같은 경우에 도입하여 단순히 무술, 무예, 무도이라는 발전 도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일은 한 중 양국의 무예사를 전반적으로 검토한 이후에 가능한 일이며 일본 무술사에 나타나는 도식을 그냥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하겠다.

 

한국 무도사는 일본 무도사와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도쿠가와시대의 일본은 당시의 사회적 안정 속에 무도의 수련 체계가 높은 수준으로 조직화되었다. 일본의 유파의 조직 체계에 의하여 만들어진 검술 도장만도 700개에 이른 것으로 보고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다양하고 체계적인 무도의 조직화나 발달의 경향은 보이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통치 체제에 따른 이분화된 무반과 문반의 체제에 의하여 조선시대의 무예의 상황은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이 문제를 나영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치주의 경향을 가진 한국의 과거제는 무사의 양성을 위한 전문기관을 갖지 못하였다. 따라서 무술과 관련된 전문기관을 육성할 수 없었던 조선왕조는 점차 집권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무학(武學)과 무과를 별도로 운용하였다. 그것은 문치주의를 지향하는 조선왕조로서는 엄청난 교육비로 무학을 육성하려고 하지 않아도 직접 무과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뽑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소수의 무경(武經) 정통자를 양성하여 무학의 침체를 막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러나 점차 유교적 관료 체제가 정착됨에 따라 무학에 무예와 병서의 습득뿐 아니라 유교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는 자는 훌륭한 장수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조의 무사 교육은 실기와 이론의 문제, 뿐만 아니라 무사 교육 기관 설치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의 이러한 전근대적 무도의 상태를 김용옥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비교한다.

일본은 상무(尙武)의 나라다. 조선은 상문(尙文)의 나라다.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다. 사실 이런 말을 우리는 쉽게 도식화하면서 과연 이것이 무슨 실제 정황을 의미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는 역사를 안다고 하고 있다. 우리 상문의 선비 문화에 젖어있는 감각으로는 상무의 사무라이 문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무라이'란 '사무라우'라는 '시종 든다'의 뜻을 가진 동사에서 나온 말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칼을 찬 사람' 즉 '칼을 찰 수 있는 자격이 신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士)'를 뜻한다. 한자 '士'를 우리는 '선비 사'라고 훈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것을 '사무라이 士'라고 훈하다. 즉 士는 일본역 사에서는 사무라이일 뿐이며, 우리나라 역사에서 선비라고 말하는 모든 계층의 역할조차도 이 '사무라이'들이 담당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칼찬 사람들이 우리 유생들의 역할, 학문까지도 다 담당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조선 사회에서는 지나친 문치주의와 같은 많은 제약에 의해서 무예의 실기적 측면이 지속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봉건 사회의 계층 체계 하에 무예의 일반화와 보급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므로 일본의 무술이 시대와 문화에 알맞은 방향으로 변형 발전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사회의 변화에 걸맞은 무예의 체계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제Ⅲ장 동양 무도의 근대화와 수련관의 변화

본 연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통 무도와 현대 무도라는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예컨대 도구주의적 관점에서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병술인 무술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자기 수양적 의미를 지닌 심미적 차원의 무예나 교육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무도로 변천하였는가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 해결을 위하여 본 장에서는 1) 고대적 의미의 전통 무술의 수련관(목적, 가치, 도구성)과, 2) 근대적 무술로의 변천 과정에서 나타난 무도 수련의 목적 및 가치관의 변화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리고 끝으로 3)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한국 무도의 발달 양상과 함께 무도 수련 방법의 근대화 내용을 살펴보았다.

1. 전통 무도의 수련관 : 실전 지향성
앞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무도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한 연구는 무도의 사회적 효용성이라는 도구주의나 목적론적 관점을 중심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사회에 있어서 무술은 병술 또는 싸움의 수단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용옥은 무술과 병술의 구별은 무술의 개인적 원리와 병술의 사회적 원리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병술이란 인간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의 기술이며 그것은 주로 요새 말로 전쟁(war)이라는 집단 싸움의 전략 전술에 관한 것이며 무술처럼 개인의 몸의 능력을 제일의 원리로 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사회적 원리와 개인적 원리라는 차이점에서 볼 때, 병술은 어떠한 집단이 내외적 위협이나 침략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서 그 집단의 보전(integrity)하기 위한 전략 전술인 반면에, 무술은 전술의 역할 외에 개인의 건강, 취미, 인격 그리고 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등의 평화의 원리로 김용옥은 규정하였다. 그러나 나영일은 병술과 무술을 그렇게 뚜렷이 구별할 수 있는 입장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면서 병술을 떠난 무술의 근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병(兵)에서 개인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영일은 "병술 즉 전쟁의 기술은 개인의 몸의 능력을 제일 원리로 삼는 것은 아닐지라도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지적한다

 

고대 무술은 집단적 즉, 병(兵)적 성격이 특별히 강하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왜냐하면 과학 병기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집단적 싸움에서 개인의 무술 능력이 싸움에서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를 동양의 대표적인 병서의 하나로 꼽힐 수 있는 오자(吳子》의 과적(科敵)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한 군대에는 반드시 호분(虎憤)의 무사가 있다. 힘이 큰 솥을 가벼이 들고 발은 戎馬보다도 가볍고 적의 旗를 빼앗으며 장수를 베는 것을 반드시 능히 할 사람이 있으니 이 같은 무리를 골라서 구별하여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 이를 일러 군대의 생명이라 한다.

 

일본 고대 무술의 경우에는 사무라이의 엄격한 위계 조직 내에서의 규율과 충성에 기반을 둔 이념이 매우 강조되었다. Donohue에 따르면 도쿠가와시대의 무사 사회에서 규율과 맹종의 강조는 그 때의 무기 발달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그 당시에 장거리 무기는 활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투는 집단보다 개인간의 결투가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싸움에서 무엇보다도 개인의 무술 능력이 중요하였다. 그러므로 무사들이 자기 영주에게 제대로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의 무술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장시간의 격렬한 수련을 필요로 했을 것이란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김용옥이 무술의 본래의 성격을 무술과 병술로 구별하고 무술을 병술의 일부 속성이 아닌 병술과는 독립된 전통을 가진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을 근거로 한 것이겠다. 그리고 병술은 사회적 원리며 무술은 개인적 원리라고 주장하는 김용옥은 병(兵)이란 개념이 집단 체제(social institution)를 전제로 하는 반면에 무술이라는 세계의 근본적인 원리는 개인적 원리며 인격적 원리일 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사이간의 대립으로 치닫는 병술과는 달리 개체와 개체간의 몸의 대결로서 그 인격의 승부를 결정짓는 기예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무술의 제1차 성격이 역시 호신술내지 공격술이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라고 말한 것은 바로 무술이 근본적으로 갖는 성격때문이라고 사료된다. 그렇다면, 우선 병술과 무술이라는 개념 정의가 어찌되었건 두 개념 모두다 싸움이라는 기술적 매개체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무술이나 병술 그리고 무도나 무도 등의 개념을 논하기에 앞서 나영일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앞에다 끌어다 놓았다.
14세기 이슬람사상을 대표하는 최대의 역사가인 이븐할둔은 <무캇디마>의 머리말에서 역사에 대한 접근 방법과 내용 전개에 대하여 '경제 활동은 현실적 필요에 의한 것이므로 사치라고 할 수 있는 교육보다 먼저 앞세웠다. 필요는 사치보다 앞서는 것이며 기술을 경제활동에 속하게 한 이유는 어떤 면에서 볼 때 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산적 활동인 기술은 사치라고 부를 수 있는 교육보다 역사 기술에 있어 더 중요하다고 주장되고 있다. 이븐할둔은 술과 예를 생산과 사치라는 경제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또는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구분하고 있다. 역사기술에 있어서 교육보다 우선적으로 기술되어야 할 것이 바로 기술이라고 한 이븐할둔의 지적은 무술, 무예, 무도를 구분하는 하나의 지침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Whitehead는 문명 발달의 선행 조건은 사회에 소속된 개인의 자유와 강제의 혼합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문명 발달은 개인의 전문적인 자질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질을 육성하고 촉진하는 제도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다양한 전문적 자질이 제각기 전문직으로 유도된다는 것이 문명 발달을 이루는 하나의 선행 조건이다. 여기서 '전문직(profession)'이라는 것은 그 전문적 활동이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그러한 분석으로부터 이끌어낸 이론적 귀결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론에 기초하는 예견과 사물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는 이론이 전문직의 필수 조건이다. 또한 전문직의 목적이라는 것은 목표들의 단순한 묶음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라도 그 목표의 선택은 그의 고유한 중요성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성취의 가능성에 부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문직의 실천은 이론적 이해와 분리될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전문직과 대비되는 직업은 습관적인 활동에 기초를 두고 있고 개인적인 실습에서 오는 시행착오에 의하여 수정되는 행위이다. 그러한 행위는 특히 손재주가 필요한 '기능직(craft)'이다. 전문직은 대를 잇는 전승의 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는 반면에 기능직은 구성적인 이해로 가득 차 있다.

이상과 같은 Whitehead의 해석은 무술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근거를 제공한다. 우선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임동규의 무술에 대한 다음의 정의를 살펴보자.

 

무예는 인간이 개체나 집단으로서, 특히 하나의 정치단위(전형적으로 국가)로서 내외의 위협과 침략에 대항하여 자신의 안전과 독자적인 생활관, 문화관을 방어 유지하며, 주체적인 역사전개를 보장하는 직접적인 수단으로서의 전투행위의 총괄이라 할 수 있다.
임동규는 여기서 무술을 하나의 정치단위의 생존과 역사전개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 전술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수단은 실질적으로 이분할둔이 말하는 생산적인 기술과 Whitehead가 말하는 전문직에 속하는 것이다. 전문직인 전사(戰士)의 생산적인 기술은 고대 사회의 무술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대 무술의 1차적인 성격은 전근대적 전투를 맡은 전문가의 싸움 전술과 전략(기술과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무술의 원래 모습이 고대의 주요 전술 전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이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현대적 의미의 '자기 수양적 무예'나 '교육적 차원의 무도'로 변하였는가를 알아보았다.

 

2. 무도 수련의 근대화 : 기술의 탁월성

근대 무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모든 동양 무도의 기원이 개인적 또는 집단적 투쟁의 수단들과 기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든지 근대 무도란 그 뿌리를 고대적 의미의 무도 성격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임동규는 이러한 이유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기술하였다.

 

무예는 인간의 개체나 집단으로서, 또한 하나의 정치 단위(전형적으로는 국가)로서 내외의 위협과 침략에 대응하여 자신의 안전과 독자적인 생활관, 문화관을 방어·유지하며, 주체적인 역사 전개를 보장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 행위의 총체이다. 그러나 어떻든 인류 역사의 전개가 원시 사회나 문명 사회를 막론하고 모순의 대립과 극복의 과정이며, 이러한 대립된 모순의 극복을 위해서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되는 것이 역시 전투이고, 전투 행위의 가장 유효한 수단이 '무예'였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농경 시대 이전의 전쟁의 수단은 역시 사냥과 같은 일종의 일상 생활의 방편이었다. 인간이 수렵이나 채집 생활부터 농경이 기본 생활 방식이 되는 사회로 진보함에 따라 무기의 발달, 특히 투쟁을 위한 무기의 발달에 대한 관심이 점차로 증가되었다. 이 당시의 무기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것으로써, 검과 창과 같은 손으로 쥐는 무기가 널리 사용되었고, 장거리에서 사용되는 것으로는 활과 화살이 있다. 이러한 무기 수준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무술 기량 수준과 전략 그리고 개인의 용기가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에서 특별한 집단들이 전쟁을 위해 특별히 수련되어 특정 사회 계급으로 분류되고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단계의 무기들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던 만큼 개인적 기술과 전략이 극도로 중요하게 되었고 따라서 오랜 기간의 수련이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예는 일본의 사무라이나 로마의 용병들과 같은 특수 전문 집단의 출현에서 찿아 볼 수 있다.

 

역사상 우리가 무술이라 불렀던 것들은 실제로 다른 사회적 요인들과는 거의 관련 없이 전적으로 실제의 싸움이나 전쟁과 관련된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의 동아시아 국가 모두가 치열한 전쟁의 역사를 겪었으며 전쟁의 양상과 체제가 점차 집단적, 조직적, 기술적으로 발전을 하게 됨에 따라 무술은 실제 싸움의 형태에서 스포츠와 체육교육의 근대적 형태로 점차 변해 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일본의 무술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일본 무술에서는 선불교와 같은 신비주의 철학과 무도 수행의 결합은 한국이나 중국에서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의 정치적, 종교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일본의 도쿠가와 시대에 발생했던 군사기술의 예술적, 미술적 또는 스포츠 형태로서의 문화적 승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김용옥은 이 현상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일본은 무사의 나라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다. 따라서 일본은 무사 즉 사무라이가 주체가 되어 선비의 역할까지 흡수해버렸다. 그런데 비하면 조선에선 선비(士)에 대하여 軍人이 분립하여 文·武의 뚜렷한 兩班文化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兩班속의 武班의 사람들, 조선조에서 武人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軍人이였지 武士가 아니었다. 軍人과 武士는 어떻게 다른가? 軍人은 '군발이'고 武士는 '칼잡이'다. 그럼 군발이와 칼잡이는 어떻게 다른가? 무사는 자율무장집단(autonomously armed people)이며, 군인은 타율무장집단(heteronomously armed people)이다. 무사의 칼은 자기 몸의 실력에 의하여 자기가 찬 것이며, 군인의 칼은 자기의 실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자기 보다 상위의 국가조직에 의하여 위탁된 것이다. 무사의 칼은 자기 칼이며, 그것에 의하여 모든 존재의 승·부가 결판나지만 군인의 칼은 오히려 그 칼이 군인이라는 개인존재를 고용한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구가와 이에야스, 이들은 모두 무사다. 군인이 아니다. 무술은 무사에게서 나온다. 군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군인에게서 나오는 것은 병술이다.

 

봉건시대와 근대 일본에서의 무도의 예외적인 발달은 자신의 개인적 기술로서 정체성을 결정짓는 자치적으로 무장한 무사 계급에게서 널리 보여지는데, 이 독특한 집단이 도쿠가와시대(1603∼1868)에 일본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였던 도쿠가와시대에 무도가 전쟁 기술로부터 새롭고도 다양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형태들로 변형되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변형 과정에 대하여 Hurst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도쿠가와시대를 지나서 일본 사무라이는 포악한 전쟁에서 단련된 무사 신분에서 장군(將軍)이나, 봉건 영주의 한 사람으로 변모하였다. 활, 검, 창을 사용하는 무도유파는 거의 사라져갔다.
전국시대 동안에 지속되었던 군사 훈련은 평화 시대에는 더 이상 생사를 걸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단지 사무라이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삶의 방식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비록 무도 정신과 무술들이 준(準)군사적인 훈련으로서 지속되어졌지만 평화시기에 그 필요성과 가치는 변해만 갔다. 무도는 다른 목적으로 수행되어졌으며 주로 자기 수련의 수단으로서나 스포츠로서 변형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원래의 훈련 목적, 가치 그리고 제도 사이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변화는 무술이 사회와 문화에 자신의 모습을 맞추어 변화되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사 훈련이 단지 전투를 위한 준비로서 존재하였을 때의 무술의 가치와 목적 관계는 단순하였고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훈련의 목적은 실제 전투를 위한 신체적, 정신적, 기술적 단련이었다. 훈련의 가치는 이 목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그것은 용감하게 싸우고 상관에 대해 충성하는 것이었다. 훈련 제도와 방법 자체는 훈련 목적과 가치들을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짜여져 있었다. 그런데 평화시대를 구가하던 도쿠가와시대의 사회 변화에 따른 전투 상황의 부재는 무술 훈련 목적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 변화가 바로 무도의 근대화의 시작이었다.

 

동양과 서양 문헌에는 이 변모의 과정을 실전을 위한 훈련에서 심미적, 철학적, 여가 선용적 목적을 위한 훈련으로의 변화라고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무술 수련에 나타나는 심미적, 철학적 측면의 강조는 부분적으로 선(禪)의 무도수련에 끼친 영향으로 보인다.

 

일단의 연구자들은(Draeger, 1973; Turnbull, 1990; Kim, 1990; Donahue, 1994; Choi, 1995) 이 변화 과정을 동양 사상에 나타나는 '술(術)'과 '도(道)'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술'은 어의상 일반적으로 '기술'이나 '테크닉' 때로는 '예'로 해석된다. 그리고 '도'의 문자 자체의 의미는 '길' 또는 '방법'을 뜻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도'라는 개념은 인간을 자연의 총체적인 부분으로 간주함에 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법칙과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동양적 사상의 핵심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위의 연구자들은 대개 무술의 변모를 실용적인 '술'의 추구로서의 훈련의 가치가 철학적인 '도'의 추구로 변화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각종 무술의 명칭이 '○○술'에서 '○○도'로 변화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검술은 검도로, 유술은 유도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므로 무술이 '술'에서 '도'로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과정을 '실용성의 강조에서 정신 수양의 강조로의 변화'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Draeger의 다음의 설명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이 변화는 엄격한 신체적 수련을 위주로 하는 '고전 무도'의 새로운 탄생은, '술'에서 '도'로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생존 본능의 추구로부터 '깨달음'의 상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가치 추구의 변화를 나타낸다. 이것이 바로 고전 무술의 '술의 추구'가 '도의 추구'로 나아가게 된 과정이다."
이러한 수련 가치의 변화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목적·가치·수련 방법이라는 세 가지 개념의 상관 관계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무술의 발전 과정에서 수련의 목적이 전투(combat)의 효용성으로부터 정신적, 심미적 경험으로 변화하였다면, 무술 수련의 가치는 마찬가지로 전투에서의 추앙되는 과감한 행동과 실천력, 용기, 충성 등에서부터 '깨달음'이나 '자기 완성'과 같은 보다 심원한 것으로 변화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무술의 목적과 철학이 일본의 도쿠가와시대에 발생한 사회의 전반적 변화들과 함께 변화하였던 것에 비하여 수련의 구체적인 방법들은 시기적으로 사회의 변화보다 뒤에 나타났다.

 

도쿠가와시대의 검술 수련은 초기에는 실제 진검으로 행해졌으나 실제 전투가 없을 때의 주된 수련 방법은 형(型) 혹은 본(本) 연습(pattern practice) 등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도쿠가와시대를 통해서 많은 새로운 검술 유파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검술 유파나 도장들은 이전에 검술을 배울 수 없었던 계층의 사람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기관이 되었으며, 또한 그 당시의 많은 직업을 잃은 무사들의 새로운 직업이 되기도 하였다.

Friday는 고전적인 '전통' 무도(武道)에서는 형(型) 연습이 수련의 주된 방법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무도에서 패턴 연습에 대해 이해되어야만 할 요점중의 하나는 그것이 수련과 전수의 핵심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검도나 유도와 같은 근대 일본의 무술에서 가타(型)는 때때로 단지 몇 몇의 수련 방법과 동일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더 오래된 류파에서 패턴 연습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무도 교육의 중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류파에서 단지 패턴 연습을 통하여 무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볼 때 무술의 정수와 류파의 가름침의 합­어떤 류파의 비전들을 구성하는 자세, 기술, 전략, 그리고 철학­은 그 형(型)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따금 있는 서로 다른 류파간의 결투에 가까운 시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 수련은 배타적으로 자신들의 류파 내에서만 수행되어 왔다. 이러한 형 중심의 수련은 서로 다른 류파와의 접촉이 적어지면서 Draeger가 '방향 도구(a steering device)'라고 한 것처럼 형(型) 수련은 그 무술을 행하는 사람이 상처를 입거나 혹은 죽는 일없이 무술의 특징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Friday는 무술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수련생과 선생들에게 형(型)은 자신의 무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었다. 어떤 류파에서는 형의 기술이 수련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도 하였다. Dreager는 이러한 극단적인 형 중심의 수련 풍조의 유행을 무술 수련의 내적 모순의 형성으로 개념화하였다. 실제 칼이 수련에서 사용되었고 실제 전투와 비슷한 상황이 없는데도 여전히 실제 전투 기술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전투를 위한 유일한 수련 방법은 미리 짜 맞추어진 형태의 싸움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과도한 정형화는 당시의 지배적인 유교의 교육적 이념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유교적 관념에 바탕을 둔 의식(儀式)과 의식화된 행동의 강조는 무술의 '화석화(化石化)'라는 일부 무술가로부터의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Friday는 이러한 논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1700년대 초, 에도 시기의 몇몇 검의 유파는 그들의 문하생들에게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최대의 속도와 힘으로 상해를 입히지 않고 대련하는 것을 허용하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러한 보호 용구의 가치와 목적에 관련된 논쟁을 오늘날까지 유발 지속시켰다. 겨루기와 시합의 지지자들은 형 연습만으로는 실제 전투를 마스터하는데 필수적인 목적, 용기, 공격성, 그리고 자제력과 같은 진지함을 개발할 수 없다는 논쟁을 전개시켰다. 그러한 기술은 형을 통하여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과 비슷한 상대와 겨루는 것에 의해서만 촉진될 수 있다.

반면에 형 중심주의자들은 시합과 같은 겨루기는 실제 전투와 똑같은 마음 상태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형 연습보다 더 실질적인 수련 방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겨루기는 불가피하게 수련자들을 결투라거나 전장(battle field)과 같은 상태로부터 더욱 멀리 벗어나게 하는 규칙이나 변형을 필요로 한다.

 

이 논쟁은 실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이 논쟁은 태권도계 뿐만 아니라 태권도를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무술에까지 확산되었다. 검도는 소위 고전 일본 무술에서 체계화된 경기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하였다. 이는 죽도와 보호구의 개발로 가능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1700년대 초에 일어났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시합에서 행동과 점수에 대한 규칙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 결과 검도는 근대 스포츠의 특징을 갖춘 내용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Imamura는 이러한 검도의 변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에도시기 중반 경에 검술에 대한 오리지널한 스포츠의 형태가 개발되었다. 사무라이들이 그들의 기술을 실제로 시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게 되면서 그들은 보호구와 죽도를 사용하여 시합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 죽음은 패배를 현실화시키는데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마츠우라 세이잔(Matsuura Seizan, 1760-?)은 그의 글 '조에시 켄단'에서 사람의 기술은 그의 일상 생활을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고 경고했다.…세이잔은 또한 도장은 뒤 무대(backstage)이며 일상 생활이 본 무대(stage)라고 말했다. 사람은 무대에서 실수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는 도장에서는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연습할 수 있다.

 

세이잔의 관찰은 에도 중반부터 시작된 검술 철학에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시합에서의 패배는 에도 초기에 살았던 마스터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패배는 또한 배움을 위한 기회로 여겨졌다.…실제 죽음은 패배를 성립시키는데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술 철학의 발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러한 발전이 검술에서 처음 일어났어야만 했다는 것은 당연하다. 비무장 무술(맨손 무술)과 비교하여 볼 때 검술의 살상성(lethality)은 매우 크다. 검술의 이러한 치명적 살상성의 명백함과 그 시대 착오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근대화되어 가는 일본 사회에서 검술은 전쟁 기술에서 스포츠로 바뀌게된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변화가 유술과 카라테와 같은 비무장 전투 기술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검도에서만큼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비무장 무술의 실제 본질에 관한 논쟁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반면 검술에 관한 논쟁(치명성, 자기 방어기술, 혹은 스포츠)은 비무장 무술과는 다르다. 아마도 검도가 그 당시 무술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치명적 살상성'과 '실용성'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면서도 동시에 교훈적이다. 이 점에서 근대 카라테와 태권도 등 맨손 무술계의 논쟁이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과 같은 검술에서 검도로의 변형의 과정에서 드러난 무술 수련의 목적, 가치, 방법이라는 세 요인들간의 동적인 변화 관계를 다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무술에 있어서 유사한 변형은 유술(柔術)에서 일어났다. 가노 지고로는 전통적인 일본의 맨손 무술이었던 유술의 명칭을 유도(柔道)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유술에서 빈발했던 상해의 위험을 해소하고 안전하게 유도 기술을 겨룰 수 있는 겨루기의 방법으로서 자유 연습법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명칭과 새로운 기술 체계를 중심으로 1882년 가노는 유도의 본산인 코도오칸(講道館)을 건립하였다. 가노가 채택한 급/단 제도 그리고 띠의 색깔로 구분되는 수련복 등은 일본과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거의 모든 무술에서 표준으로 되었다.
유도와 검도와 같은 새로운 무도는 19세기 말 일본의 문교성이 이들을 학교 체육 교과의 교육 과정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모든 일본의 중등학교 학생들에게 필수 과목이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던 근대화 과정에 따라 발생하게 되었던 도쿠가와시대와 메이지시대 초기의 무술의 변화를 요약하면 죽도와 호구의 개발과 더불어 실제 검을 사용하는 수련과 전투 기술 중심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우리는 술(術)로부터 도(道)로의 변화인데 이것은 무술 수련에서 정신적인 혹은 철학적인 요소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소위 류파(流派)의 이름 하에 많은 무술의 도장이나 교육기관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에도 시대 후반 이러한 유파들은 오늘날의 근대적 의미의 도장의 선구자가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교 체육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당시에 다음과 같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무술을 이전에는 수련이 제한되었던 다양한 계층에 보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둘째, 수련 방법을 체계화시켰다.
셋째, 유파 또는 도장간의 경쟁에 의해 촉발된 빈번한 시합은 시합 자체에 대한 새로운 기술과 방식을 개발시켰다.

 

3. 한국 무도의 발달 양상과 수련 방법의 근대화

전술하였듯이 20세기초 전통 무술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된 일본과는 달리 한국 전통 무도의 발달은 상당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었다. 조선시대의 사회는 엄격한 신유학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는 양반 관료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던 만큼 주자학도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와 다르게 해석되었다. 일본에서 유교는 무술 수련에 적용되었고 심지어는 '공정한 플레이와 규칙에 대한 복종'과 같은 가치를 강화하기까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교는 패배의 상황에서 더욱 잘하고 열심히 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논리까지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교가 정학(正學)과 이단(異端)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 옮아감에 따라 그리고 문을 높이고 무를 낮춘다는 숭문천무(崇文賤武)의 사고에 의해 무술적인 활동은 사회적으로 경시되었다. 1644년 청에 의한 명의 몰락은한국 유학자들로 하여금 더욱 주자학의 정통을 고수하도록 하였다.

 

주자학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Deuchler가 말했듯이 정통의 상태와 지적 정통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양자를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일로 간주하도록 하였다. 주자학이 '바른 학문(正學)'이라고 하는 강박 관념은 궁극적으로 조선에서 무술의 발전에 악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에는 세 개의 중요한 교육 분야가 있었다. 유교 교육, 무학(武學) 교육, 기술 교육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치주의 하에서 이루어진 유교 학문에 대한 강조로 인하여 군사학(武學)은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하였다. 조선의 선비 계급이 정부 관료로 나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데 하나는 과거 시험(文科)을 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과(武科)를 통하는 것이다. 나영일은 이러한 무과 제도의 비체계성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무사체육은 조선전기에 있어서 체계적이라기 보다는 즉흥적 내지는 시험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비체계적인 것이었다. 이는 처음부터 관학으로서의 훈련관(訓練館)이 성균관(成均館)과 같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데에 기인한다. 과거 제도와 관련하여 문과는 성균관과 향교라는 학교 제도와 연계되어 있었으나 무과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무과 시험 제도의 바탕에는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점도 간과될 수 없는 제약이었다.

 

고려시대는 한국 역사상 무도나 무인이 가장 우세한 사회적 위치를 가진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의 무사들은 많은 특권과 권력을 가졌다. 고려 왕조는 지배계층을 양반이라고 불리는 문반과 무반의 둘로 나누었다. 이 말은 문과 무가 어느 정도 균형을 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지배자들은 고려시대의 무신 집권의 역사로 인해 무인에 대한 불신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유학자들은 학문적인 노력을 더욱 선호하여 무반을 문반에 종속시켰다. 그 결과로 조선 말엽의 군대는 1866년에 소규모의 프랑스 함대를 쫓아내기 위해 보부상과 호랑이 사냥꾼 등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군대가 약화되었다.

 

이토록 무술적인 활동을 무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지게 되자 군사 조직이 약화되어 갔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무술 활동의 발전도 역시 제약을 받았다. 일본 무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전투 기술로부터 좀더 사회적인 가치나 교육적 목적을 위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한국 무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두 가지의 예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양반 계층의 사람들이 궁술을 겨뤘던 것(射禮 혹은 便射; 거기에는 음악과 시가 포함되어 있었다)과 또 다른 하나는 택견이라는 민속 놀이였다. 이것은 두 사람이 주로 발기술을 통하여 서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소박한 투기적 놀이였다. 우리는 이 특별한 놀이를 나중에 다시 살필 것이다.

 

한국 교육의 근대화는 세기말에 서원이 해체되고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가 증가하면서 시작했다. 이때 한국 정부도 또한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으나 실질적인 의미에서 볼 때 근대 교육은 서구 교육 체계를 본 뜬 일본 교육의 이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학교 제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통제는 절대적이었다. 1911년에 일본 체육의 교과 과정에 소개되고, 1914년에는 유도와 검도가 공립학교에 도입되었는 데, 이것은 한국 고유의 신체 문화를 말살시키는 전초적 도구로서 활용되었다. 양진방에 따르면 그 당시 한국에 체계화된 무도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수입된 일본의 유도와 검도를 통해서 처음으로 무술의 구체적인 규범과 개념 및 정신주의 등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진방은 당시 한국인들이 일본판 무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유의 발전된 무술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프게 쓰고 있다.

 

카라테(唐手 혹은 空手)는 1922년에 오키나와에서 일본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이 비록 고전 일본 무술의 형태 중의 하나는 아니지만 오키나와에서 카라테를 가르치기 위해 일본에 온 가라테 지도자들은 상류 계층이나 엘리트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전파 전략을 세워 대학 교육에 초점을 두었다. 바로 여기 일본의 대학에서 한국 유학생들은 가라테를 체계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일본의 모든 무술들은 20세기 전반 50년간 일본의 군국주의의 영향 아래서 발달되었다. 사실 유도와 카라테를 배우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절망적인 막바지에 무기 없이 맨몸으로 고국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옹호되었다. 무사 사회의 정신 윤리였던 무사도(武士道)는 일본의 전쟁 기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용되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의 무술이 주로 전투에서의 실제 사용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1945년 일본의 패배로 한국이 광복되자 일본의 무도를 배웠던 많은 일본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귀국하여 도장을 열었다. 1950년대 초반까지 유학생들에 의해 유입된 당수가 체계적인 경기 형태로 발전된 것은 아니었으나 처음에는 스포츠의 특성을 갖지 못하고 호신술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호신술로서 무술을 이해하는 관점은 후에 한국의 전통무도가 근대화되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보았을 때 한국의 전통 사회와 같은 숭불 사상의 지배 속에서 무술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한일합병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과 황국식민화 정책으로 말미암아 한국적 신체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신체 활동들을 사장시킨 채 강제 수입된 유도와 검도 등을 일본의 무사 정신과 함께 받게 되었고, 해방 이후에조차도 한국 스스로의 것을 찾지 못한 채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일본의 무도·무술을 답습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까지 채택되기에 이른 한국의 태권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지만 태권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라는 풍토 속에서 탄생하여 오늘날 스포츠 형태로 경기화 되었고 그 경기화를 통하여 많은 기술과 새로운 무도의 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절된 한국의 역사 속에도 면면히 한국적 성격을 간직하면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무술이기 때문이다.

 

많은 태권도 지도자들은 태권도가 한국의 전통 무술이며 고유한 무술이라고 말하면서 태권도는 택견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55년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근대 태권의 아버지인 최홍희는 택견과 태권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태권도의 고대 명칭인 택견은 화랑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약 1300여 년 전에 신라 왕조에는 택견이라고 알려진 원시적인 활동이 있었다. 조선 시대 말기에 택견의 고수 중의 한사람인 송덕기에 의하여 이 기술은 발전되고 모양을 갖춰왔으나 불행히도 조선 시대에 문을 숭상하고 용맹한 기술(武)을 천시하는 풍조로 원래의 발기술에서 더 이상 발전할 기회를 잃었다. 일본의 강점 하에서 유입된 중국과 일본의 손 기술들이 택견의 발기술과 결합하게 되어 당수, 가라테, 권법, 태수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었다.

 

최홍희는 어렸을 때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기 전 그의 서도 선생으로부터 택견을 배웠다고 주장한다. 그 이후 그는 일본에서 가라테 2단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에서 그는 택견의 발기술과 가라테의 손기술을 결합하여 태권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설명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하여 다루어진 바 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점은 태권도가 택견 기술을 포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로 일본의 기술적 구조와 일본 무술의 사상적 기초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본적인 무도의 틀과 이데올로기는 1914년 이후 학교에서 유도와 검도 수련을 통하여 이미 접해왔었던 한국인들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966년에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시하고 그 전해에 대한태권도협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던 최홍희는 태권도의 특징을 상대를 신속하게 물리치기 위해서 손, 팔, 발을 가지고 날아 차기, 막기, 피하기 등의 응용 기술을 포함한 자기 방어를 위한 맨손 전투 기술로 묘사한다. 최홍희는 태권도가 평화, 정의, 약자를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또 반복하여 "태권도는 TNT와 같은 가공할 만한 폭발물일 수 있다."라는 말로써 태권도가 치명적인 격투 기술임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1965년이 되기까지 태권도의 정체성과 특성이 여전히 실제 싸움 기술로서 위치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전쟁이후 일본과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가라테와 태권도를 자기 방어수단으로 생각하고 이를 배우는 것으로 정당화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사회가 안정됨에 따라 카라테 혹은 태권도에 대한 효용성에 대한 필요성은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판단될 정도였다. 그리고 무술은 현재의 사회적 환경에 알맞은 형태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욕구가 표현되었다. 이는 사회가 지속적으로 근대화되는 양상에 힘입어 태권도 또한 변화의 과정에 놓이게 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안정된 사회에서 개인의 자기 방어 기술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함에 따라 무술 수련에 대한 다른 동기가 발전하게 되거나 무술 체계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술이 실용적 가치 즉 격투 기술로서의 무술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철학적, 교육적, 혹은 스포츠적인 개념으로의 발전되는 것은 일본의 검도나 유도의 발전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태권도와 카라테가 스포츠 체계나 정체성 면에서 완전히 발전하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기 방어 즉 실용성이라고 하는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요인이 태권도의 근대화 과정에 커다란 제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광복이후 한국의 태권도는 20년이 지난 후에도 기술적인 면이나 철학적인 면에서 모두 일본의 카라테와 동일했다. 오늘날의 태권도가 자기 방어라는 형태에서도 카라테와 다소 다를 뿐 아니라 스포츠라는 형태에서는 완전히 구별된다는 것으로 볼 때 태권도는 60년대 이후 겪었던 한국화 과정의 결과로 완전한 변신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한국화의 첫 번째 단계는 그 당시 공수, 당수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진 명칭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태권도라는 명칭이 제정된 이후의 과제는 카라테의 기술로부터 태권도의 기술을 구별짓는 것이었다.

 

이는 태권도를 위한 독특하면서도 독창적인 개발 과정을 통하여 완수되었다. 카라테와 근대 태권도의 겨루기 체계에 나타난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사용되었던 카라테의 철학과 겨루기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카라테는 일본에서 몸 전체가 무기라고 여겨진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무술이다. 따라서 카라테는 겨루기에서 스포츠에로 느리게 발전한 반면 여전히 실제 전투 혹은 자기 방어를 위한 수단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예상되는 카라테 기술의 살상력으로 겨루기에서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가격은 불가능하였다. 이와 관련된 카라테의 기술 철학은 일격필살(一擊必殺)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전일본공수도연맹의 지도자 나카야마 마사토시와 대한태권도연맹의 회장 최홍희는 동일하게 겨루기에서 직접 가격(contact)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실 6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겨루기에 적용된 규칙들은 일본에서 사용되던 것과 정확하게 똑같았다.

 

일본 카라테의 겨루기 체계에서는 직접 가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내용은 카라테가 실제 싸움을 위한 수련에 중점을 둔다는 점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는 나중에 이 내용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카라테와 태권도의 수련 방법론은 기본 기술과 형(型), 그리고 겨루기의 반복 사이의 균형에 의존한다. 카라테와 태권도 철학의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을 형 수련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공수(空手)에는 선수(先手)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카라테와 태권도 양자 사이에서 여전히 기본 철학중의 하나로 전제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양자 모두 실제 싸움 기술 체계라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공수(空手)에는 선수(先手)가 없다'는 것은 이러한 기술의 평화적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며, 모든 형이 방어 동작으로 시작한다는 형의 구조에서 구체화된다. 구체화된 형의 연습은 카라테나 태권도 철학의 또 다른 측면이며, 그리고 그것은 인간 행동에 있어서 예(禮)라는 개념이다. 예에 대한 강조는 명백하게 신유학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으로부터 온 것으로서 이것은 모든 형(型)이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끝난다는 사실에 의해 대표되었다.

 

이 시기에(1960년대 중반) 카라테와 태권도는 동일한 수련 형식뿐만 아니라 동일한 수련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수련 목적
실전 능력(살상력)
↗↙ ↖↘
수련 가치 수련 방법
'예'의 준수와 先手가 없음 ⇔ 형(型)과 비접촉 겨루기
(Non-contact sparring)

 

그러나 이러한 관계 속에서 수련 방법과 수련 목적 사이에 모순이 있었다. 즉 문제는 예를 준수하고 선수를 먼저 써서는 안된다는 것과 끊임없이 제어해야만 하는 형의 수련과 비접촉 겨루기로써 진정으로 살상력이 있는 싸움 기술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가라는 점에 있다.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졌던 검도는 수련 방법과 수련 목적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예전의 것을 배제하지 않는 상태에서 새로운 수련 가치를 낳았다.

 

태권도와 카라테의 수련 목적이 실제 격투 기능에 고정되어있었다는 사실은 양자에 대해서 몇 가지 문제를 야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첫째, 사회가 점점 더 근대화되고 안정되면서 자기 방어 기술에 대한 개인의 요구에 따라서 시간과 노력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어렵다.

 

둘째, 전통적인 수련 방법론은 실제 싸움 능력을 발전시키는데 비효율적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태권도 기술 체계에 대한 반성을 하게되었다. 새로운 겨루기 체계의 개발을 태권도의 한국화는 바로 그런 문제의 해결점이자 오늘날과 같이 세계태권도로의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 체계의 특징은 카라테와도 다르고 그 시기의 다른 어떤 무술과도 철저하게 달랐다. 그리고 그 체계는 1963년 전국체전에 새로운 시합 방식의 태권도를 채택함으로써 확산되기 시작되었다. 예전의 겨루기 체계에서는 기술의 위험성 때문에 상대에 대한 직접 타격을 금지한 반면에 새로운 체계는 점수를 인정받기 위해 힘있는 가격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로 겨루기의 개념은 실제 싸움을 위한 개념에서 기술의 우위를 겨루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살상을 대표하는 실제 검을 죽도 점수를 따는 도구와 가격 부위를 보호하는 호구로 대체한 검도의 경우와 같이 태권도는 위험한 기술을 금지했고 몸통, 다리와 팔을 보호 장비로서 안전하게 보호하였다.

 

아래와 같은 이전에 겨루기에서 허용되는 기술과 타격 부위와 비교해 보면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비 접촉 겨루기에서 인정되는 공격 부위
1. 복부 5. 가슴 9. 무릎 13. 늑골
2. 목 6. 눈 10. 목 14. 머리
3. 겨드랑이 7. 사타구니 11. 인중 15. 태양신경총
4. 코 8. 발등 12. 턱 16. 관자놀이

 

새로운 체계로 겨루기의 규칙과 목적이 변함에 따라 태권도는 실제 싸움 수준에서 벗어나 수련 목적을 재조정했던 검도나 유도의 형태를 따랐다. 태권도 겨루기의 새로운 목적은 검도와 유도에서처럼 기술적 우위에 두게 되었고 더구나 미적 혹은 예술적인 감각에서 기술 우위에 대한 추구는 완벽한 기술에 대한 추구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검도, 유도, 태권도의 이상화된 기술 목적이다. 그러나 큐쿠신파는 예외로 하더라도 카라테는 실제 싸움 수단으로서의 겨루기라는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카라테와 새로운 겨루기 체계를 갖춘 경기 태권에서의 수련 목적과 수련 방법론의 차이는 이제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차기, 주먹지르기 등에서 수련의 기술적인 목적은 저항하는 상대에 대해서 그러한 기술을 성공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되는 기술의 살상력으로 인해 수련에서 실제 가격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실제 싸움뿐이었다. 그러나 카라테와 태권도의 철학은 불가피한 자기 방어중의 하나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러한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경기 태권도에서는 오히려 몇 가지 문제 상황을 바꾸고 나서 적극적인 타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근대 사회에서는 자기 방어에 대한 필요성이 그리 긴요한 것이 아니다. 그 밖의 다른 중요한 사회적인 필요성 예를 들면 고용, 교우 관계, 그리고 레크리에이션과 같은 것들이 우선된다. 이러한 시대상황과의 불일치는 본래 형(型) 수련이나 물체를 격파하는 것에서 상상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해소되었으나 이러한 것들로서는 본질적으로 대상을 치고, 차기 위하여 주먹지르기와 차기를 배우기 위한 무술의 목적을 완수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문제들은 검도, 유도, 태권도가 근대 사회의 현실에 적응함으로써 그리고 자기 방어나 실제 싸움의 형태로써의 역할을 덜 강조함으로써 해소되었다. 검도 그리고 유도의 경우에서 이러한 기술들이 실제 싸움의 형태에서 경기 겨루기(스포츠)의 형태로 옮겨감으로써 그들은 새로운 철학(수련 가치)을 개발하였던 것이다.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는 유도의 수련 철학을 '정력선용(精力善用)', '자타공영(自他共榮)'이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정력선용'이란 기술 철학으로서, 기술완성을 통한 자기 완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자타공영'은 개인적인 자기완성을 통하여 구현하는 사회적 가치이다.

검도 이론에서도 유도와 유사한 철학이 제기됐다. 소위 '인격 형성 검도'라고 묘사한 Tanaka는 이를 아래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검도에로'의 사회화와 '검도를 통한' 사회화라고 표현하였다.

 

검도로의 사회화는 좀더 바람직한 형태로 검도에 참여하거나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검도에 의해서 더 나은 플레이, 신체적성, 기술 등을 향상시키는 것, 그리고 수련 모임이나 시합에서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게되는 것을 포함한다. 또 다른 설명은 수련 모임이나 시합에서 신체 적성과 기술을 최고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검도를 통한 사회화'는 검도 연습과 시합을 매개로 하여 개성의 사회화를 점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올림픽 공식 종목 스포츠로써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태권도는 그 자체의 근대적인 경기 형태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유도나 검도와는 달리 태권도는 오늘날 소위 스포츠로 불리는 '경기 태권도'와 '무도 태권도'로 양분되었다. 무도 태권도의 옹호자들은 경기 태권도는 단지 서구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으로 자기들은 이루어 놓았던 동양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스포츠적인 경기 문화가 동양 문화로부터 발산하는 내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 태권도가 한국에서 시행되는 방식은 경기 태권도가 태권도를 국제적으로 전파시키는데는 유용했으나 유도나 검도가 이루어 놓았던 만큼의 체육적 가치나 동양의 미적 가치를 고양시키지는 못했다. 이것은 근대 태권도가 상대적으로 새로운 경기 수련 문화에 대해 명확한 철학적 기반을 구체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반면에 자기 방어 중심의 무도 태권도는 전근대적인 일본 무도의 이데올로기중심으로 하며 경기 태권도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근대 사회의 현실적인 단계로부터 벗어난 수련 형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무도 태권도의 문제점을 극복하려 하였던 근대 태권도의 수련 체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수련 목적
겨루기 기술의 우위
↗↙ ↖↘
수련 가치 수련 형식
비 체계적 ⇔ 겨루기 중심
위의 도식에서 볼 수 있듯이 경기 태권도는 마땅히 가졌어야 할 수련 목적과 수련 형식의 바탕을 이루어야 할 명확한 수련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태권도의 독특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수련 형식은 무도 태권도의 시대착오적인 상황을 벗어나긴 하였으나 체육의 형태로까지 충분히 도달하지 못하고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태권도의 한국화는 처음에는 공수, 당수라는 일본식 명칭에서 태권도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진행되었다. 그 이후 역사적인 기원 문제와 역사적인 연속성 문제가 최홍희와 황기에 의해서 논의되었는데, 이들은 일본과 중국의 무술에 한국의 수박 혹은 택견 기술이 결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세밀히 살펴보면 그들의 태권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의심스러운 양립할 수 없는 역사적 불일치를 보인다. 이는 아마 수련 가치의 비체계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역사성을 갖추고 있는 무술이 체계성이 없이는 발전할 수 있는 비판 논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태권도의 한국화 측면은 그 밖의 다른 무술이나 스포츠와는 다른 독특한 기술 체계의 개발이었다. 이는 이전에 한국에서 행해졌던 일본의 카라테를 모체로 한 당수나 공수와는 전혀 다른 겨루기 체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앞서도 말했듯이 새로운 규칙 하에 1963년 전국체전에 태권도를 포함시킴으로써 시작되었다.

 

자기 방어로부터 경기로의 변화과정에서 개발된 새로운 기술의 독창성과 독특성은 규칙과 형식에서 나타나듯이 새로운 겨루기 체계의 특성으로 인한 결과이다. 이 체계의 독특한 특징은 한국의 신체 문화의 좀더 전통적인 형태에서 발견되는 가치의 강한 반영이기 때문에 특히 흥미롭다. 태권도의 새로운 겨루기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손 기술 강조에서 발기술 강조로 변화됨(주먹으로 얼굴을 공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단지 몸통에 대한 스트레이트 펀치만 허용된다)
둘째, 신체 접촉의 금지에서 신체 접촉의 전면 허용으로의 변화(이는 몸통에 호구를 착용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셋째, 승패 판정의 점수
이와 같은 다양한 변화로 인하여 새로운 태권도는 초·중·고·대학 팀, 그리고 정규 토너먼트를 거치면서 더 많은 조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단지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그 자체의 독특한 기술과 특징들을 가진 새로운 무도/스포츠로 발전하였다. 근대적인 경기 태권도가 다른 무술, 특히 일본의 무술과 명백히 구별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가치 있고 주목할 만한 한국 무술의 개가이다.

 

김용옥은 이러한 태권도의 근대적인 발전은 일본의 카라테를 택견에 흡수하여 한국의 무술형태로 변환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택견의 움직임은 다리의 사용을 강조하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움직임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계속적인 리듬과 스텝을 강조하는 택견의 특징들은 한국의 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경기 태권도가 카라테의 택견화를 대표한다는 김용옥의 주장은 다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첫째, 손기술 중심에서 발기술 중심으로의 전환
둘째, 자기 방어 혹은 다른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선 경쟁에 중점을 둠
발기술을 강조하는 변화는 다리와 발을 사용하는 활동에 대한 한국인의 자연적운동의 애호­그러한 관계는 택견에서 명백하다­에서 볼 수 있다. 의식화된 전투 형태로부터 게임 형태로의 변화는 태권도의 한국화를 이해하는 데 특히 흥미롭다.

 

일본의 근대 무술들은 모두 그들의 유형과 유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무사도(武士道)라고 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무도 사상으로부터 끌어내었다. 이러한 봉건 사상은 일본에서 과거에도 그랬고 현대에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움직임 형태들은 일본 무술에서와 같은 그러한 비전성(秘傳性)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특성들은 의식화된 싸움 체계보다는 기술 자체의 탁월성을 중시하는 경쟁 스포츠와 더욱 비슷하다.

 

김용옥은 전통적 생사관에 입각한 봉건적 권위주의와 일본식 도의 '엄격한' 개념에서 벗어나, 근대적 의미에서 기술의 근원적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태권도 변형에 의미를 부여한다. 즉, 일본 무술이 실전적 기술에서 벗어나 도의 구현으로 그 중심 축이 전환된 이후, 무술 수련은 형식화된 움직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러나, 태권도의 경기화는 무도 태권도가 잃어버렸던 기술 그 자체의 중요성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무도 태권도는 '도'에 대한 관념적 집착으로 인하여 형식화되어 버렸다. 또한, 직접적인 접촉을 최소화하고 품새가 중심이 된 수련 방식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경기 태권도는 생생한 대결 구도에서 발휘되는 기술의 참된 의미와 그 움직임(기술)의 길(도)을 재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즉,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기술의 실전성'과 '도의 실질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Ⅳ장 동양 무도의 이해와 한계

전술한 바와 같이 동양 무술은 동양의 전통 사상인 선불교, 유교 그리고 도교의 영향하에 발전하여 왔다. 무도와 선, 유교, 또는 도교의 결합이 무도의 발전에 있어서 실용주의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언급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주창되는 대개의 무도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사상들을 무도 철학의 주요 기반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태권도는 선(禪)이다'라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이다. 즉, 태권도를 통하여 선을 한다는 말인지, 선을 통하여 태권도를 한다는 말인지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없다. Draeger는 "무도와 선은 나눌 수 없을 만큼 서로 깊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무도는 일종의 조형적인 선이다(plastic zen)"라고 하였는데, 이는 '태권도(무도)를 통하여 선을 한다'는 표현과 별 차이가 없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현대인들이 태권도나 다른 무도를 수련하는 것은 선을 수련하고 있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무도가 전세계적인 스포츠로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무도 수련에 참가하고 있지만, Draeger가 말한 것처럼 "스포츠는 무도가 될 수 없으며, 진정한 무도는 스포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은 무도 수련가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현대적 의미에서의 무도 해석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앞장에서 무도에서 이루어진 동양 사상의 수용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으므로, 본 장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무도 이해의 일반적인 경향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을 규명하였다.

 

1. 무도의 민족주의적 접근

오늘날 한국 전통 무예의 계승 발전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민족주의적 태도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대표적 인물인 임동규는 전통 무예를 '민족 무예'라고 칭하는데, 이는 무예를 한민족 고유의 사상과 연관시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동규는 민족 무예를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독자적인 문화관·생활관을 지켜주는 실용적인 수단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민족 무예란 한편으로는 민족 사상의 근원이자 최초의 진보적 사상 그 자체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을 침략자로부터 지켜온 직접적 전투 수단이었다.…우리는 유사이래 천 번 이상의 침략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빈번한 외래 침략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는 우리의 독자적인 생활관과 문화관을 지켜올 수 있었다. 외래 침략을 당할 때 외적과 맞서 지속적으로 몸으로 나타내는 것이 무예이며, 이처럼 외적에 대해 적극적으로 싸우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가 민족 자존과 민족 자주의 의식이며 사상이다.


임동규는 이처럼 무예의 보편성보다 그 특수성을 강조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투의 과학화와 전문화의 현실 속에서, 그는 무도의 사회적 교육적인 성격의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것 역시 민족의 특수성으로 색채를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예는 전투 수단의 총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데 말기(末技)로서의 전투수단일 때 그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것이고, 여기에 미적 추구,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규범으로써 전인적 인격의 도야 등 각기 수련자의 인격적 수준에 따라 그 얻는 바가 다르다고 하겠다….
무예 수련의 최고 수준은 사물의 변화 원리, 즉 변증법적 인식 능력의 심화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 수단으로서의 상대적 비중이 저하된 현재에 있어도 그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특히 편리한 현대 문명 생활, 도시 생활로 현대인은 야생력을 상실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현대인은 멧돼지에서 집돼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예의 수련은 야생력을 회복하기 위한 자연으로의 회귀 운동이기도 하다. 야생적인 체력에 현대적인 두뇌, 그것만이 인류의 문명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는 비결인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무예나 무도 수련의 가치를 실제적 전투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동규는 Draeger처럼 스포츠에 대한 무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무도와 스포츠의 상반성과 대립성까지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Draeger와 같이 무술의 생사관을 강조하지만, 이 생사관을 스포츠의 놀이성과 인위적 한계성을 대비시킨다.

 

스포츠 게임은 규칙이 있으므로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술에는 규칙이 없다.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런 각박한 것이다. 태권도가 원래부터 스포츠 게임이었는지 여부는 물을 필요가 없고, 현재는 단지 경기화된 스포츠 게임인 것이다. 이에 비해 정도술은 오로지 상대를 죽이거나 제압하는 그런 자세 동작으로 일관되고 있다. 전형적인 예로 스포츠 게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낭심의 공방, 눈의 공방이 바로 그것이다.

무술은 이처럼 살벌한 자세 동작으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의 연마를 통하여 뚜렷한 생사관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임동규는 소위 한국의 민족 무예인 '24반 무예'나 '정도술(正道術)'이 스포츠 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인할 때에도, 그것은 스포츠의 보편성을 인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한국 문화 유산의 전파에 궁극적 목적을 두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 스포츠가 주로 백인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그들의 주도하에 운용되고 있는데 대해 우리는 하루 빨리 동양 무예가 갖는 심원한 신비성을 현대화·과학화하여 보급함으로써 세계 스포츠의 발전에도 일역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서구로부터 배운 것을 어설프게 소화하여 보여주는 것보다는 우리의 문화 유산을 갈고 닦고 다듬어서 정성껏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고 소망이다.
이와 같이 임동규는 소위 한국 전통 무예의 목적과 가치를 실제성이나 실용성과 함께 국위의 중진에 두고 있는 것이다.
김경지는 《태권도학 개론》에서 태권도의 목적, 가치, 그리고 교육과 철학적인 측면들을 분석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권도의 '의의'에 대하여 훈련을 통한 심신의 수련과 인간 완성이라고 규정하고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이런 측면에서 태권도는 옛날부터 군자의 무술로 불려 왔다. 즉, 적의 공격을 받고서야 비로소 단련된 수족(手足)으로 이에 대항하는 것이 태권도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군자들이 "태권에는 선수(先手)가 없다"고 한 것도 태권의 정신과 기술이 겸비되어야만 비로소 완전한 무술이 될 수 있다.

 

위와 같이 그는 태권도를 싸우는 법으로서 정신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의 의의가 있음을 강조한다. 즉, 태권도는 수련을 통하여 인격 도야에 이르면서 자신의 몸을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는 태권도의 '정의(定義)'라는 항목에서 태권도의 장점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태권도가 인간의 삶에 궁극적인 영향을 많이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소극적인 동작에서 적극적인 동작인 형태의 동작으로 발전하여 궁극적으로는 절대적인 행동단계에 이르는 동시에, 자아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하는 철학적 요소를 지닌 체육으로서 도덕성과 관련이 있다.
2) …신체를 다져주는 정동뇌(靜動腦)를 자극과 발달시켜 모든 일을 힘차게 실행하는 의욕을 개발해 준다.
3) …태권도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에 자신감과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하며, 그것은 곧 올바른 사회생활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4) …투기 중의 투기인 태권도는 수련을 통해 강인하고 용기 있는 성품으로 변모시켜 매사에 주저 없이 앞장설 수 있는 통솔력을 길러 준다.
5) 이러한 통솔력과 강한 담력은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게 하며,…의연함을 낳는다. 이로 인하여 겸양을 낳게 되고 이 겸양은 희생적 정신으로 자아를 극복하게 되고 협동과 질서를 유지하게 되어 정돈된 사회를 이룩하다.

 

셋째, 그는 태권도의 '철학'에서 한국의 전통 사상을 비롯하여 기술적, 선(禪)적, 그리고 예술적인 측면에서 태권도 철학을 분석한다. 그는 태권도 철학과 한국 전통 사상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에서 태권도의 기원을 삼국시대부터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태권도 정신의 근원이 한국의 전통 철학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태권도 정신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상들로 삼국시대의 선사상, 고려시대의 충의 정신, 그리고 조선시대 유교의 오륜이나 충효 사상 등을 들고 있다. 그는 태권도 정신이 한국 고대의 민족 정신을 발전시켰으며, 신라시대의 화랑도 정신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전통 사상과 태권도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화랑도 정신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사상인 선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불교의 윤회 사상, 유교의 충효 사상, 도교의 무언(無言) 사상이 수용되어 이루어진 정신이며, 진취적 기상으로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룩하고 하나의 민족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또한 태권도 정신의 근간을 이룬 충효 사상과 임전무퇴의 용맹성, 지행합일의 실천적 이론 사상이 오늘날 평화 정신, 정의를 수호하는 결백 정신 및 투철한 책임감 등으로 한국인의 정신 속에 이어져 오는 것이다.

 

이렇듯 김경지는 현대 태권도의 기본 사상인 이른바 태권도 정신의 근원을 삼국시대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태권도의 본질은 태권도의 수련 목적과 방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목적을 한 가지 뚜렷한 것으로 정하지 않고 오히려 태권도의 광범위한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태권도의 목적을 자기 방어술, 좋은 품성과 반폭력적 태도를 길러 주는 것, 예술적 표현하는 것, 도덕적 의무감을 갖는 것 등으로 규정하고, 이 목적은 품새, 겨루기, 그리고 격파 등이 균형 잡힌 수련을 통하여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태권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련 방식은 선의 수련 방법과 같다고 주장한다.

 

선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아(無我)의 경지이다. 이 사태에 이르면 개인과 상황, 인식과 행위 등의 이분법이 사리지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권도에서도 무아의 경지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겨루기를 할 때 상대방의 어떤 특정한 동작에만 집착한다면 전체 상황에 대한 집중력을 잃게 될 것이다. 반면에 수련을 통한 일종의 자각(自覺)을 열심히 추구하게 되면 상대방의 동작을 빨리 간파할 수 있고 처리할 수 있으며, 행동반경 내에 있는 어떤 움직임에도 의식적인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감지하여 상대방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선과 태권도의 관계에 있어서 선의 수련 방법은 태권도의 기술적 수행 능력의 향상에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의 수련 방법이 어떻게 태권도 수련에 궁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김경지는 태권도의 정신이라든가 철학의 기반이 되는 것은 한국의 전통 사상이라 하며, 수련의 방법은 선의 수련과 유사하고, 태권도의 목적은 다양하다고 하면서 태권도의 본질을 매우 애매하고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태권도를 다른 스포츠와 구별하기 위한 의도에서, 태권도의 성격을 단지 스포츠임과 동시에 싸움 수단으로서의 효율성 추구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현대 사회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태권도로 자기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는 것이다. 즉, 아무리 맨손 격투술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대식 무기인 총에 견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맨손 격투술이 중요한 것은, 사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습격과 같은 형태의 공격에 대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의 신체는 기계에 비해 실수가 없기 때문에 맨손 격투술은 여전히 이 사회의 기본적인 싸움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태권도의 본질에 대한 논의들의 핵심적 내용은 태권도에 관한 조병화의 시적 표현에서 함축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병화는 태권도가 싸움 수단으로의 효율성, 국위 선양, 신비성, 한국의 고유성 등의 가치가 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고로 호신술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었지만 우리 나라의 태권도처럼 신속하고 용감하고 대담하고 강인하며 민첩한 행동의 호신술은 그리 없으리. 정신과 영혼, 육체가 혼연일치 하여 내 쏟는 기운이야말로 강철인들 부서지지 않으리. 이러한 신비스러운 힘을 기르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인간의 평화를 폭력으로부터 막아내는 태권도야말로 신이 내린 묘기가 아닌가. 이러한 정신과 힘은 지금 한국인이 가는 곳, 세계 어디서나 환영을 받아 한국의 심벌같이 되었으니 한국인의 명예와 궁지 그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한국은 온 세계로 그 국운을 펼쳐나가야 하는 마당 태권도를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 힘과 얼을 숭고하게 연마하여 온 세계 구석구석에 한국의 슬기로운 힘과 그 얼을 심어서 온 세계가 오래 오래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더욱 더 그 기술을 높여가길, 그 순수, 고귀한 정신과 더불어.

 

조병화와 김경지는 태권도의 기술적 정신적 사회적·교육적인 가치가 한국의 전통적 풍토와 사상에 의하여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태권도의 품새 개념과 선(禪)적 수련 방식, 그리고 '선수(先手)가 없다'는 수련 철학은 모두 그 기원을 일본의 무도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어떠한 무도의 민족주의적 기원설이나, 전통성이나, 고유성을 무엇보다 더 중요시하고 고수하는 것이 어떠한 논리적 근거와 실용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전통 무도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그 무도의 발전의 잠재력을 축소시킬 수 있으며, 그 무도에 내재하는 본질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2. 무도의 전근대적인 인식

서양인에 의한 동양 무도의 학문적인 접근에 있어서,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인인 Donn Draeger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의 무술의 발전 과정에 대한 사적 연구를 통하여, 일본 무술의 '술에서 도로'의 변화 패러다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패러다임은 상당히 논리적이며 권위를 갖는 것으로, 서양인의 무도에 대한 '이해의 틀(interpretive framework)'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 패러다임에 따르면 무술은 고 무술(classical bujutsu), 고 무도(classical budo), 현대 무술(modern bujutsu), 그리고 현대 무도(modern budo)로 구분된다. Draeger는 무술의 성격 즉, 수련 목적과 수련 방식에 따라 고전 무술과 현대 무술을 구별한다. 그리고 그는 고 무술 혹은 고 무도는 현대 무술이나 현대 무도보다는 한 순위가 높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로 무도는 스포츠로 변화되면서 무도의 근본적인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Draeger의 입장은 다음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스포츠가 고 무도(classical budo)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고 무도는 스포츠의 형태가 될 수 없다.
이러한 Draeger의 관점은 일반 서양인들에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으며, 전통(고전)과 현대(traditional vs. modern)의 이념적 대립 관계를 낳게 되었다. 즉, 무술의 수련 목적이나 방식은 그 무술의 원형과 가까울 수록 그 만큼 전통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 전통성을 가질수록 그 무술의 수련은 진정한 것이라는 이해 방식이 그것이다.
Draeger는 특히, 일본의 에도시대에 무술계에서의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원인을 분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무술에서 무도로의 변화는 일본의 통일에 기반을 둔 에도시대의 사회적 평화로움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이 시대에는 무술의 실전성(實戰性)이 퇴색되고 대신에 도(道)를 지향하여 심미적인 기술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무도의 제일의 목적이 되었다. 그는 무술과 무도의 수련 목적에 따른 하위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또한, Draeger에 의하면 신 무술과 신 무도라고 할 수 있는 현대 무술과 현대 무도는 일본의 명치유신이 이루어진 다음에 형성된 것이다. 그는 신 무술을 고 무술에 비교하여, 정신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신 무술이 싸움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 무술도가 전투에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과 달리, 신 무술은 완전히 방어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무술의 기술적 차원에서 볼 때 고 무술과 마찬가지로 실제 기술의 효율성을 제일 원리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신 무술이든 고 무술이든 이러한 실제적 기술의 위험성 때문에 기술을 자유롭게 겨루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주요 수련 방법은 형(型)을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다.

 

Draeger의 이해 방식으로 볼 때 무술의 실전성(實戰性)은 무술의 진정성 여부의 기준이 된다. 그는 무술의 기술을 안전하게 겨룰 수 있도록 변경하여 직접 겨루게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전통 무도라고 불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본의 전국시대에 해당하는 전투 무술에 집착하여 현대 무도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의 현대 무도에 대한 경시 태도를 다음과 같은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 무도는 맨손 격투기로서 천박한 절충주의(shallow eclecticism)의 양상이 보인다. 현대 무도의 창설자들이 고 무술의 기술 체계의 형성 과정의 정열을 잊어버렸다거나 아예 모른다는 점은 그들의 수련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실제성의 부재(impracticality)에서 잘 드러낸다.

 

Draeger의 사적 연구를 통해 서양에서 처음으로 무도의 유형들을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정리한 것은 서양인들의 무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Draeger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무도에 대한 가치 평가(concept of value assesment)는 오늘날 서양인, 특히 미국인의 무도에 대한 인식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리잡아 버렸다. 무도의 가치를 평가할 때, 현재의 것보다 옛 것을, 현대적인 것보다 전통적인 것을, 합리적인 것보다 신비스러운 것을 고수하는 Draeger는 사회의 근대화라는 변화에 따라 무도가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Draeger의 현대 무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다음과 같은 말에서 명확하게 확인될 수 있다.
현대 무도의 주창자들은 제멋대로의 규칙과 천박한 이론들을 만들어내 전통적인 도(道) 개념을 상실케 한다. 도(道)라는 정통적인 개념은 도덕적 교리와 윤리적 실천의 불가분성을 전제로 하는데, 현대 무도의 주창자들은 이 관계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현대 무도를 오직 참여자와 관람자들을 위한 오락적 즐거움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통과 비정통 혹은 이단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너무나 비슷하다. 결국, Draeger는 무도, 그것도 일본 무도의 전통과 정통성을 지키고 전수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무도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것은 무도의 '서양화'나 무도의 '본성'이 서양의 관념들로 퇴색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Draeger의 관점은 서양인의 무도 인식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Davey에 의하면;

 

Draeger는 여태까지는 다른 누구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양 무도를 서양에서 진정한 문화적 예술(genuine cultural arts)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던 선구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볼만한 무술과 관련된 발행물, 특히 전통 무도/무술에 대한 문헌들에서는 반드시 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위의 글을 보면 Draeger가 서양인의 무도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Draeger가 언급하고 있는 무도에 대한 의식, 개념, 태도를 살펴 볼 때 그의 무도에 대한 가치관은 서양인의 무도 인식 구조의 기반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서양인, 특히 미국인의 무도 인식은 미국의 전반 사회의 상대적인 진보주의의 경향에 비하여 상당히 보수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수적인 태도는 서양의 문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 사회에서(어느 나라에서든지)의 카라테 수련은 카라테의 본래의 이데올로기에서 너무나 벗어난 채 실행되고 있다. 따라서 카라테의 수련에 내재된 가치를 맛볼 수 없다. 특히 경기 카라테나 비전통적인 카라테의 수련에서 그렇다.

 

여기서도 Draeger가 강조하는 '전통성'이나 '정통성'이란 이념이 반영되고 있다. Monday는 Draeger의 무술(武術)-무도(武道)의 개념적 구분 체계를 이용하면서 무도의 '전통성'과 '정통성'이 갖는 경기 무도와의 대립적인 관계와 함께 그 전통적 무도의 우위를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오늘날) 무도 수련은 무술의 전통적인 수련 방식 그대로 따라 가지 않는다. 무도에서 기술의 형식이 실전성의 결과(result of the combat utility)에 보다 중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무도의 목적은 실전의 준비가 아니라 계율을 통한 자기 완성(self-perfection through discipline)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무도는 스포츠로 볼 수는 없다. '스포츠'라는 말의 의미는 기록을 세우는 거나 승리를 위한 노력에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무도에서는 외적인 상대방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는 다른 나라는 차지하고라도 일본에서 마저 유행하고 있는 경기 지향적 카라테와 유도는 매우 타락된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무술 행위(martial forms)가 진정한 무도(genuine budo)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렇게 볼 때 서양인들의 마음 속에도 무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무도의 수련 목적, 가치, 그리고 방식이 현대 사회의 조건들에 적응하여 변화해야 된다는 인식은 있으나, 대부분의 무도와 관련된 문헌들에는 무도의 본래 전통적인 수련 이데올로기와 수련 방식의 우월성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무도의 이해는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무도에 대한 의식, 철학, 실천에서 이분화의 상태를 초래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모든 무술의 전형으로 여기는 검도의 경우, 이 이분화 상태는 수련에 있어서 형(型) 위주로 하느냐 겨루기 위주로 하느냐의 논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Jackson에 의하면, 일본의 검도의 발전 과정을 네 단계로 구별할 수 있다. 이것을 연대 순으로 하면 1) 기술과 형식을 위주로 하는 무술의 수련(martial practice with emphasis on style and technique), 2) 형이상학적 무도의 수련(metaphysical martial practice), 3) 형식화된 기예적 무도 수련(aesthetic martial practice), 4) 기술의 참된 의미를 강조하는 미적 스포츠(aesthetic sport)로 구분하였다.

 

Jackson에 의하면,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서양의 문물이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들어옴으로써 일본의 사회 구조는 크게 변화하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전통적 무도는 서양 스포츠의 세력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스포츠라는 현상은 근대화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검도 지도자들에게 검도를 재건(re-establish)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외래적 개념인 스포츠와 놀이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웠다. 더구나 무도의 전통주의자들에게는 놀이의 비 엄숙함(non-seriousness)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고래로부터 생사의 문제와 관련된 검도는 놀이의 성격인 '무의미함'과 '자멸적 약함'(self-destructive weakness)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이러한 시각 차이는 검도의 전통주의자(traditionalists)들과 현대주의자(modernists)들 간의 검도에 대한 인식 차이를 낳게 하였고, 결국 검도에서의 이분화의 상태까지 초래하였던 것이다.

 

서양에서든 동양에서든 무도에 대한 이분화된 인식과 접근이 무도의 수련 목적과 철학 및 수련 방식에 대한 분쟁을 낳아왔다. 그 논쟁의 핵심은 바로 무도 수련이 지향하는 목적과 실시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 의견 차이의 대표적인 사례를 실제성(practicality)과 정신성(spirituality)의 대립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형태이다. 하나는 수련의 차원에서 나타난 기술의 형식과 실천의 대립이며, 이것은 품세 위주 수련에서 강조되는 기술의 형식적 의미(spiritual)를 강조하는 것과 겨루기 위주 수련에서 기술의 실제적 의미(practical)를 강조하는 수련의 정당성 논쟁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싸움에서의 전투 기술(호신술)의 실제성(realistic=practical)과 경기 기술의 미학적 완벽성(aesthetic=spiritual)의 상반적인 대립 관계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무도 수련에서 기술의 우월성을 직접적으로 겨루면, 진정한 무도보다 하위적인 스포츠의 개념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정신성(spirituality)을 상실하게 되다는 입장이다. 그 논리는 무도의 정신성(spirituality)을 자제(自制)에서 찾는 것으로써, 이러한 관념은 다음의 글에서 잘 드러나 있다.

 

무도는 근본적인 원리로 자제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제는 테니스에서의 서브이나 골프의 공을 잘 치기 위한 신체 제어가 아니라, 오히려 폭력의 의도(will to violence) 자체를 억누르는 것이다…유도의 글자에서 볼 수 있듯이 '柔'라는 말은 '부드럽다'는 뜻이며 '道'라는 말은 '길'이라는 뜻이니, 유도의 근본적 원리는 공격적인(aggressive) 것은 아니고 길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카라테의 수련에서 상대방을 직접 때리지 못 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동서간에 투기 스포츠에 대한 철학관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를 잘 볼 수 있다.…카라테에서의 이러한 직접 타격의 금지는 서양에서의 젊음, 힘, 난폭한 공력(brute force)의 위주로 하는 반면에 동양에서의 부드러움, 최소한의 힘의 사용, 그리고 그 기술의 원리로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무도의 모든 수련 과정에서 겨루기는 단지 일부에만 속하는 것일 뿐, 수련에 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의식과 품새라는 관념의 논리는 '결과보다 동작의 형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Becker의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품새의 철학적이고 정신적(spiritual) 의미를 Becker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수련자는 품새와 그에 수반하는 엄숙한 의식들을 배우면서 우주의 구조, 그 구조와 인간의 관계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품새가 우주의 어떤 양상을 반영하거나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신 기술의 실제성 대 경기 기술의 완벽성의 경우는 경기(=sport)의 규칙, 보호구, 시공 제한 등의 제한성으로 인하여 무도 기술의 효과나 실제성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에 무도의 진지함(seriousness)마저 상실하게 된다는 관념이다. 여기서는 진지함이라는 말은 생사와 관련돼야 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의 무도 철학관에서 일본 무사도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것을 증명해 준다. Deshimur에 의하면;
무도 수련은 몸의 단련만 향하면 안된다. 현재의 스포츠적인 시합에서는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득점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기술과 힘만 중요시한다. 옛날에는 그렇지는 않았다. 그 때는 생명을 잃을 수 있었으니 결국은 그 결과가 직감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래야 만이 되듯이 목도로 싸운다 하더라도 모든 결투를 목숨 걸고 하듯이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무도의 근본적인 목적인 도를 향하는 길을 다시 걷게 될 것이다(Then the martial arts would find their rightful place again, and become the practice of the way). 그렇지 못하면 수련은 단지 게임의 수준이 지나지 않는다.

 

Deshimura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일본인은 놀이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인이 취하는 생활 태도에서는 이러한 비엄숙함(non-seriousness=play)에 대한 의심이 전통 사상에 있어서 그 뿌리가 너무 깊다. 일본의 전통적 가치관은 서양의 기독교의 가치관과는 달리 쾌락적인 행위 그 자체를 위하여 즐기되 가장 상위의 사회적 덕(virtue)은 즐기는 것을 삼가는 것이다. 이것을 일본에서 자제력(self-discipline)이라고 불린다. 자제력이라는 것은 무도의 수련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사회 전면의 모든 분야에서 작용되는 가치로 보아야 한다. 단지 무도의 엄격한 성격에 따라 자제력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제력은 무도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Benedict에 의하면,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자는 자기의 개인적인 만족을 다른 사회적인 목적이나 주변을 위한 목적에 종속시켜 그 만족을 연장할 수 있는 사람 이라고 지적하였다. 더구나 Benedict는 일본 사회에서 선이 갖는 의미는 어디까지나 공리주의(practical)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도덕성에 대한 의식 구조에 따라 도덕적인 사람(virtuous man)은 가족이라든가, 주군이라든가, 회사라든가, 나라를 위하여 현실적으로 일하는 사람(useful man)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선은 이러한 사람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쓸모 있고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자제력을 키우는 것이 첫 단계인데 그것은 기술적인 단계이며, 그 다음의 단계는 '능숙함'(expertness)을 키우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그 기술을 완성시키는 것인데, 이것이 정신적인 차원으로 여기에 선의 방법이 도입된다. 여기서 선 수련을 통하여 무아(無我)의 상태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아란 인간으로서 무슨 개인적인 발전을 위한 것은 이니라 행동 도중에 자아 자각의 본능, 즉 마음에 꺼림 찍한 것을 없애버리기(eliminate the conscience) 위한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의무를 단호하게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상은 현대 일본 스포츠에서 아직까지 거의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다음과 같은 阿部 忍의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일본 전통 사상에서 볼 때 선수는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경쟁과 스포츠에 쾌락 아니라 비극적인 감각을 연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Ushijima에 의하면 스포츠의 최상의 목적은 즐거움이나 몸과 마음의 수련은 아니라 오히려 천황를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일본 정신'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阿部 忍의 주장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스포츠의 봉건적인 성격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스포츠에 참여하는데 있어서 개인적인 만족감을 경험하는 것보다는 충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에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그 참여의 원칙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스포츠의 근본적인 본질인 즐거움이나 경험주의의 왜곡된 사태에 대하여 Yamashita는 그 아쉬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가 있다.
일본인들에게 전통 사상이 되어 있는 구식의 유교적 경향과 무사의 이미지를 아직까지 볼 수 있다.…일본인들은 스포츠에 참여할 때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참여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 다른 선수들, 그리고 코치까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일본인들은 순수한 경험적 참여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스포츠의 본질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위의 말을 정리해보면 일본에서는 무도 수련과 마찬가지로 스포츠의 목적을 어떠한 정신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을 살펴보면 소위 '일본 정신'과 너무나 흡사하다. 따라서 이러한 풍토에서 무도의 엄숙함이나 죽음과의 관계가 약해져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무도와 관련된 이러한 독단적인 태도로 인하여 무도를 스포츠와 결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해야 할 문제는 이러한 무도의 개념 정립이 무도에 내재된 본질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문화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생긴 것인가의 문제이다. 스포츠의 가치를 거부하는 선(禪)적 무도의 배타적인 성격을 아래와 같이 Deshimura의 문답에서도 볼 수 있다.
질문 : 많은 사람들이 무도 수련을 하고 있다. 유럽,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도 그러한 데, 대부분은 진정한 무도와 선의 길을 따라 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스포츠로서의 무도는 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대답 : 무사도의 기반이 되는 선의 가르침을 꼭 따라 갈 필요 없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무도를 장난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그런데 더 높은 차원의 인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선을 모르면 안된다. 전자는 장난감 자동차와 노는 아이들의 수준이며, 후자는 진짜 차를 운전하는 수준이다. 나는 스포츠가 싫은 게 아니다. 스포츠를 통하여 몸을 훈련을 시켜서 지구력 등을 키울 수 있는데, 스포츠를 좌우하는 경쟁심과 힘의 원칙이 부정적인 것이다. 무도의 본질을 스포츠에서 찾을 수가 없다.

 

오랜 서양의 스포츠 전통에도 불구하고 서양, 특히 미국인은 대부분 무도의 본질을 위와 같이 이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스포츠에서 중요시하는 경험론적이고 사회적인 요소의 궁극적인 가치보다 스포츠의 왜곡에 의하여 생기는 부작용을 비판하고, 일본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정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진방은 이 역설적인 현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동양 무술에 대한 미국 연구자들의 비실용적, 비경쟁적 운동 문화라는 해석은 자신들의 스포츠 문화의 과도한 경쟁성과 성취 위주의 가치관에 대한 실망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동양 무술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통합적 접근이 현대 서양의 체육과 스포츠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한 대안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서구인들이 본 비경쟁적, 과정 중심적, 심신 일원적 가치관과 개념들이 진정한 동양 무도의 본질인지는 적잖이 의심스럽다. 사실 서구의 무도 저술가들은 대부분의 이들 개념들을 무도의 이론에서가 아니라 선(禪) 관련 문헌으로부터 가져온 것들이다. 실제로 이들이 전통적 선 수련의 극단적인 엘리티시즘과 그것에 내포된 경쟁성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지, 그리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인간 중심주의 교육 사상과 같은 것으로 선 수련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못 의심스럽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무도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의 가장 큰 철학적인 문제는 '죽음'의 문제, 즉 생사의 기본적인 의미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무라이의 기술적 훈련은 싸움에서의 기술적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며, 정신적 훈련은 생사의 개념적 구별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직면할 일이 없는 평화스러운 사회에서 무사도의 중심이 되는 '생사의 초월'이라는 정신적 목적이 필연적으로 의미의 변화를 거칠 수밖에 없다. Dann은 이 '의미 변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자기의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 무도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과제로 여겨 왔으며,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무도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에 대한 접근은 자아의 의해서 생기는 의욕과 약함 그리고 다른 잘못된 것을 '죽인다'는 정신적 비유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본 무도에서 죽음의 이데올로기적 권위는 무도의 근대화와 경기화 과정에서 여러 모순을 야기하였으며, 일본 무도인들이 무도 경기와 스포츠에 대하여 이중적 태도가 형성되게 되었다. 그리고 무도의 수련에 있어서 실제적 직면(直面) 없이는 수련자의 정신적 상태를 평가하기 어려우므로 기술을 겨루는 것이 필수적으로 생겼다는 의미에서 검도, 유도, 그리고 카라테에서 겨루기나 시합을 용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무도가 경기화됨으로써 시합의 규칙화, 안정화 또는 레크리에이션의 성격을 가질 수록, 예컨대 겨루기나 시합에서 생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직면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the possibility to resolve the question of life and death)이 없어질 수록 겨루기나 시합의 비심각성(non-seriousness)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무도의 개념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특히 최근에 대두된 스포츠 지향적 무도 개념에 대한 반사적 경향의 하나로, 전통적 무도 개념의 강조는 전근대적인 정신주의적 무도의 재강조나 재해석을 불러일으켰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전통적 정신주의 무도 개념의 근본적 오류는 정신 수련적 가치와 실전 지향적 기술에 대한 혼동과 오류를 초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민족주의적 경향에서 나타나는 전통과 민족성을 강조하는 무도 개념은 특히 현대 한국의 무도 문헌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목적론적 또는 편향적 무도 개념은 무도가 세계화된 현대 국제 사회에서 무도의 올바른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제V장 동양 무도 수련의 현대적 의미
동양의 무도는 이미 동양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도 광범위하게 수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도의 전세계적인 유행은 무도 수련을 둘러싼 가치관과 철학, 더 구체적으로는 무도 수련의 목적에 대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본 장에서는 오늘날 동양 무도 수련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철학적 해답을 모색하기 위하여 현대적 무도 수련의 가치와 무도의 기술적·정신적 의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특히 서양에서는 무도 기술의 전근대적인 성격으로 파악된 기술의 실전성이나 추상성이라는 일본적 무도 개념을 봉건주의적인 무사도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이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이를 스포츠적 맥락의 보편적 가치관과 결합시키지 못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무도를 문화적으로 폐쇄된 무도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무도가 지닐 수 있는 교육적인 가치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전통적 무사도의 중심 개념인 '충', '의리', '생사' 등이 오늘날과 같은 동·서양 사회에서 유일한 무도 수련의 정신적 가치로 제공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현대 무도 수련의 유형을 단순화하여 말하면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스포츠적인 측면을 내포하는 무도이며, 둘째는 스포츠의 성격을 띠지 않는 무도이다. 경기를 지향하는 유형의 무도는 전통적인 무도 수련의 목적­방식­가치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수련의 목적­방식­가치를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무도에 대한 개념을 혼란시키고 있는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양진방은 이렇게 상호 대치되고 있는 무도수련관을 전통주의(traditionalism)와 현대주의(modernism), 또 한편으로는 실제주의(practicalism)와 정신주의(spiritualism)로 개념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의 무도 수련의 유형에 따른 가치관과 무도 그 자체의 개념에 대한 불일치, 또는 혼란은 무도의 올바른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하겠다.
구체적으로 전통적 개념의 무도는 정신이나 인격의 수련을 목적으로 하지만 실제 수련 과정에서 품새나 형과 같은 형식 수련에 치중함으로써, 그 수련의 목적이 실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이나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목적-수단의 관계에서 이론적인 모순이 엿보인다. 이와 반대로 현대에 새로이 대두된 경기화된 무도, 소위 스포츠 무도는 기술 그 자체와 결과로서의 승패에만 집중함으로써, 수단은 존재하지만 그 수단을 정당화하는 무도 수련으로서의 가치, 즉 목적이 부재한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목적­수단 관계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유형의 무도 수련에 놓인 무도 수련의 방식(기술 체계, 수련과정)­목적과 가치간의 논리적·철학적 모순을 극복하고 상호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무도 수련의 가치관과 철학을 정초하기 위하여 수련과 가치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변증법적 해석을 통하여 재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이 가치는 무도 수련에서도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적인 전제이다. 무엇을 위해서 무도를 수련하고자 하는 목적 가치가 정해 져야만 다음은 이러한 가치에 부응하는 좀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가치인 수련 목적들이 정해질 것이며, 그 다음에 이러한 가치와 목적들이 실현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수련의 수단이나 방식들이 선택되고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수행으로서의 무도 수련
무도에서 주장되는 가치들은 그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 신체적 수행(practice)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무도 수련의 신체적 관여라는 특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신체적 활동이 지닌 존재론적 그리고 인식론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먼저 요구된다 할 것이다. 湯淺泰雄는 "서양 사상의 전통적 맥락에서는 신체적 수행에 대한 진지한 인식론적 고찰은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방법론적으로 본다면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의 인식론적 성격의 차이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서양 사상의 전통에서 보면 적어도 근대 이후 철학과 경험 과학간에는 이론적 차원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어 왔다. 일반적인 근대 인식론에서 철학은 실증적 경험 과학과는 달리 과학적 인식에 의해 성립되는 전제조건 또 방법, 논리의 기초를 명백하게 하는 거라고 규정되었다. 또한 현대의 현상학적 존재론에서는 철학을 과학이라는 작업의 기저에서 일하는 인간적 존재 방식과 그 의미를 명백히 하는 학문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 존재론의 용어를 빌리면 과학이란 자기자신의 존립의 근거에 관한 무반성적 영역이며 철학은 그 근거에 관해 반성을 요구하는 존재론적인 영역인 것이다.

 

서양 사상의 근거가 되는 과학적 인식의 절대적 영향은 20세기 초의 소위 논리적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로 나타났다. 이것은 Russel과 Whitehead에 의해 제기된 이론이다. Russel과 Whitehead는 그들의 공저인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 모든 분야에 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과학적 언어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 언어는 모든 논리적 가설들을 수학적 언어로 다루려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경험이나 보통 언어의 불확정성이나 주관성을 피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이러한 경험이나 보통 언어의 연장에서 현대 서양 철학의 주요 방법론은 논리실증주의로 확정되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현상학자인 Merleau-Ponty와 Bergson 등의 영향이 커짐으로써 실증주의의 절대적 힘이 많이 쇠퇴되었으나 아직도 서양세계의 인식 일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Barret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실증주의에 의해 발생되는 이론(scheme)은 다소 매우 단순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모든 문제들은 사실의 문제(questions of fact)가 아니며 논리의 문제(questions of logic)였다. 전자는 과학의 영역이 되었으며 철학은 논리적 분석학으로 완전히 변환되어 버렸다. 그래서 본래 모든 현상을 의문하는 철학은 자기의 정체를 의문하였을 때 그 본래적 성격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의 신체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몸과 마음,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 등의 상호관계들을 분리하여 물리적 요소나 수학적 논리로 환원하려는 이러한 서양적 인식관으로는 신체적 수행을 통하여 심신(心身)의 일체성(一體性)이라든가 지행합일(知行合一)과 같은 동양적 수행관에 놓인 가치들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서양적 인식론과는 달리 동양적 인식론의 전통에서는 철학적 사색과 경험적 실증과는 본래 하나라는 것이 일찍부터 역설되어 왔다. 깨달음의 지혜는 수행의 과정에 있어서 자기 심신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실증되는 것임과 동시에 그 경험에 근거하여 언어적·이론적 형태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무도 수련의 가치를 규명하는 것은 동양 사상의 존재론적·인식론적 개념들과 방법론, 특히 수행의 인식론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양 사상에서 파악하는 신체적 활동에 대한 독특한 인식론적 관점에 대하여 湯淺泰雄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동양 사상의 하나의 특질이 수행의 체험을 방법론적 통로로써 인정하는데 있다고 한다면, 우선 수행에 있어서 심신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 지워지고 있는지가 그 문제점으로 등장한다.…동양적 신체론에 있어서 신체와 정신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순히 신체와 정신이 하나라는 주장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와 동시에 신체와 정신은 이상적 경지에 도달하면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심신일여'라는 표현은 신체와 정신이 이원적 긴장 관계가 소멸되고 그 양의성이 극복되었을 때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새로운 전망­열려진 지평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이 보이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새로운 전망'이라는 말은 '인간의 체험인 이상 경험적으로 또는 실증적으로 그 존재 방식을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우리는 심신상관의 메커니즘에 관한 구체적 사실 인식에 근거하여 동양적 심신론이 가지는 의미를 제기할 수 있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서양의 지적 전통에 의거한 과학주의나 실증주의 등과는 달리, 동양 사상에서의 실증이라는 개념은 경험 즉, 체험에 기반을 둔 것을 말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서양 사상에서의 실증이란 자연과학적 인식에 의한 논리와 방법의 기초를 말하는 것이다.

 

서양 철학의 최고의 생산물은 과학 기술로 볼 수 있다. 이것은 Platon의 논리학을 비롯하여 Descartes의 방법론을 위주로 한 실증주의에 의하여 모든 현상을 객관화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객체를 명백히 격리한 다음에 그 객관적 문제를 논리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 한정된 단계 절차로 분해하려고 하는 것이 서양 철학의 방법이자 '기술'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정응근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플라톤에서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서양의 주지주의적 전통은 지식과 행동을 분리시켰고, 학문과 인격이 별로 밀접한 관계를 갖지 않게 만들었다. 지식-행동, 학문과 인격의 이러한 괴리는 달리 표현하면 앎과 삶의 분리를 의미한다. 과학문명의 사회에 사는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지식이나 학문은 생활의 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인은 지식을 기술로서 이용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술로서의 이용가치가 없는 지식은 소용이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현대인에게 있어서 학문과 생활, 곧 앎과 삶이 그 본질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분리되게 되었다.
동양적 사유의 전통에서 이러한 앎과 삶은 철저하게 하나로 통합 또는 체화되어 있다. 이러한 삶에 체화된 앎, 또는 앎에 통합된 삶이야말로 동양적 세계관의 특성일 것이다. 湯淺泰雄에 의하면;

 

철학적으로 보는 경우 동양 사상의 독특한 성격은 어떠한 점에 있는가? 나는 그러한 제반 특질을 구성하고 있는 철학적 이론 체계의 기초에 수행이란 문제가 전제되어 있는 사실을 들고 싶다. 간단히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지혜라는 것은 단순한 논리적 사고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심신의 전체를 통해 체득하고 몸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체득이란 넓게 말한다면 머리로서가 아닌 '신체로서 습득한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체로서 습득한다'라는 인식의 형태 중에는 불교의 '수행'이나 무도의 수련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또한 유교의 '공부(工夫)' 특히 양명학의 지행합일적 공부나 주자학의 정심, 격물치지의 공부 역시 이러한 심신 통합적 인식의 철학에서 나타나는 산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수행, 수련, 수도, 공부, 단련, 고행 등으로 불려지는 이러한 동양 전통의 인식 방법은 용어나 또는 이를 사용하는 학파나 종파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를 가지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신체적 훈련을 통하여 신체적 기능의 숙달은 물론, 동시에 정신을 연마하고 인격을 향상시키며 종국에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고 이 양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이러한 동양적 수행관과 유사한 것으로서 서양의 종교 전통에 존재해 온 금욕이나 고행은 기도, 묵상, 노동, 신체적 단련 등의 수단적 측면에서 동양의 수행과 유사하지만, 그 존재론적·인식론적 전제에 있어서 죄의 원인인 육체를 괴롭힘으로써 영혼이 죄로부터 구제될 수 있다고 믿는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이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불교적 수행관에서 궁극적으로 추구되는 가치와 경지를 삼매(三昧)라고 하는데, 삼매란 원래 사마디(samadhi)란 범어로서 명상이 깊어져 온갖 잡념이 사라져 마음이 아주 맑아진 상태를 일컫는다. 이것은 곧 선(禪) 수행에서 추구되는 자기 의식이 완전히 소멸된 무심(無心)이나 무아(無我)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흔히 표현되는 낚시 삼매, 독서 삼매, 명상 삼매 등은 평소의 잡다한 사념(思念)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한 가지 활동에 자신의 전(全) 의식과 존재가 몰입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의 이론을 따르면 이러한 삼매에는 '상행삼매(常行三昧)'와 '상좌삼매(常座三昧)'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상좌삼매란 좌선과 같이 항상 부동으로 명상에 집중함으로써 성취되는 삼매 즉 무심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며, 상행삼매는 행 즉 어떤 활동을 통해서 무심에 이르고자 하는 방편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 행(行) 즉 활동은 신체적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서 먼 길을 걷거나 노동 행위, 또는 무술과 같은 기능적 행위의 반복일 수도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의 수련 방편에 대하여 湯淺泰雄는 상좌삼매의 방법은 부동(不動) 자세를 취하고 앉아서 명상을 하는 것으로서 신체도 마음도 부동의 '정(靜)'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이를 정지적 명상으로 부르고, 이에 반하여 상행삼매는 끊임없이 신체를 움직이면서 그 신체운동의 지속을 수단으로 하여 마음을 점차로 맑아진 무심의 상태로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이를 운동적 명상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동양적 전통에서는 이와 같은 경지의 인식을 심신일여(心身一如), 깨달음, 또는 견성(見性)이라는 개념 등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지의 수련은 대개 의식과 신체적 자아의 망각이나, 신체적 자아의 탈각, 마음과 신체가 하나로 뭉쳐진 느낌, 신체와 마음의 구별이 사라진 상태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무심이나 삼매, 또는 심신일여의 상태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상행들이 무도수련이라는 구체적인 목적 지향적인 활동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고 가능한지는 또 다른 하나의 의문으로 남는다.

 

무도 수련의 초보적 단계에서는 여타의 스포츠나 신체적 기능을 학습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먼저 머리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려 한다. 즉 교사나 사범이 가르치는 설명이나 시범을 이해하고 기억하여 이를 재현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초보의 수준에서는 신체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된다. 바로 이 때 동작의 수행 주체는 몸과 마음의 이원적 존재를 느끼게 된다. 생각하는 의식으로서의 마음과 의식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려는 신체가 나누어져 파악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습이나 훈련을 계속해 가면 점차 신체는 마음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어서야 사범이나 교사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최초의 이해가 단순히 언어적 이해에 그친 것이라면, 숙달을 통해서 나타난 이해는 몸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움직임이나 기술을 신체가 직접적으로 깨달음으로써 가능해진 진정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숙달의 과정을 통해 신체적 깨달음을 축적해 가면, 마침내 무의식적으로 신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특정한 신체적 활동 분야에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우리는 명인(名人)이나 달인(達人)이라고 부르며, 그 기술을 신기(神技)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경지에서는 신체의 움직임이 마음으로 생각한 그대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저절로 척척 맞아 들어가는, 즉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심신일여의 상태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술적 숙련의 완성은 생사를 대상으로 하는 심각한 무도 수련의 상황에서 극단적인 신체의 동(動)적 상태의 한 가운데서 무심의 부동적 중심을 가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

 

수련이 부족한 무술가는 겨루기나 실제 대결에 있어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경험하게 된다. 澤庵은《不動智神妙錄》에서 이를 표현하여, "칼에 마음을 두면 칼에 마음을 빼앗긴다. 손뼉에 마음을 두면 손뼉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내가 휘두르는 칼에 마음을 두면 내 칼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움직이는 도리이다" 라고 하였다. 다꾸앙은 이처럼 자신의 칼이나 상대의 칼이나 또는 주변의 움직임에 끊임없이 끌리거나 흔들리는 상태의 마음을 번뇌(煩惱), 무명(無明), 또는 미혹이라고 하고, 이와 반대로 명인이나 달인의 어디에도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유롭게 유동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마음을 무심이라고 하였다. 중심이 부동이면서 외물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그러므로써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경지의 마음이 바로 무도의 수련을 통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수행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수행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 전통적 무도 수련관은 한편으로 그 구체적인 수련의 방법론에 있어서 겨루기를 회피하고 극단적인 형식 중심의 수련을 지향함으로써, 실제로 이러한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수련 과정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경기 지향적 무도 수련관은 실제로 많은 겨루기의 상황을 경험할 수 있음으로써, 위와 같은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련 과정을 가지고 있지만, 수련의 현실적 가치가 승패와 승리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심신일여의 수행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무도 수련의 잠재적 가치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길은 경기 지향적인 스포츠적 무도에서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분명히 제시하고 철학적으로 이론화하는 것이다. 또한, 승패의 추구에 그치는 말기적 기술(末技的 技術)을 추구하는 수준에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실천적 수행으로서의 무도 경기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2. 무도 수련에서 도(道)와 기술(術)의 의미

도(道) 개념은 유불도의 동양 전통 사상에 공통하는 핵심 개념의 하나이다. 도 개념은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시대의 사고를 관통해 온 최고의 철학적 범주였지만, 그것의 구체적 의미는 다의적, 다층적, 복합적인 것으로 동양적 사유 구조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道)의 개념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은 동양 철학 사상의 전체를 분석하는 일이 되는 만치 본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본 장에서는 단지 무도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해석될 수 있는 도(道) 개념의 부분들만 살펴보고자 한다.《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도는 다니는 길이다(道, 所行道也)'라고 하였으며,《시경(爾雅. 釋宮)》에는 '하나로 통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一達謂之道)고 표현하였다. 노자는 반복하고 순환하는 것이 도의 운동(道者反之動)의 원리라고 하였으며《주역(周易)》「계사(繫辭)」에서는 한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이 도의 법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천지 자연의 변화와 운동,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 쇄락하는 만물의 생명 현상에 대한 관찰에서 발전한 동양적 철학 사유의 총체적 개념인 도는 이러한 자연 현상의 궁극적 존재 원리와 인간의 삶을 하나로 인식하게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인합덕(天人合德), 천인감응(天人感應), 또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사상으로 귀결되어, 동양적 사유의 핵심적 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강조하는 인식인 천인 합일의 사상은 자연의 길(天道)과 인간의 작위의 길(人道)을 동일 선상에 놓고자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인식론적 틀은 동양 전통의 예술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춤, 노래, 악기, 서화나 심지어는 공예나 일상생활 속에서 행해지는 일상적 신체 기능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이상적 상태를 인간의 의식적 노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인식하는 천인 합일 즉, 도의 개념이 널리 원용되고 있다. 김용옥은 이러한 자연(自然)과 작위(作爲)의 합일의 구체적 과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몸은 기의 유기적 단위이다. 몸은 생명이다. 따라서 몸은 움직인다. 움직임이 없으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 그 길을 우리는 '道'라고 말한다(道가 길 도자임을 연상할 것). 그리고 이 도가 반복되어 몸에 쌓인 것(畜)을 德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도는 생겨난 대로의 자연스러운 것이고(道生之), 덕은 도를 몸에 축적하여 얻은 것이다. 덕은 곧 得(얻음)이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수련을 반복하여 쌓여진 인간의 움직임은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의 경지에 도달한 움직임이 되며, 이러한 경지의 움직임은 자연의 원칙(법칙)에 합치하게 되며, 주변에 의하여 주어진 환경적 조건과 조화하여 즉, 그런 요구와 조건의 '길'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그 움직임의 도(=길)를 몸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도를 몸으로 발견하는 것은 말을 바꾸어서 표현하면 도를 체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 철학에 따르면 도를 체득하는 것을 득도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아울러, 유학자인 장자에 의하면 이러한 득도는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고 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반드시 성공을 거둔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문명과 문명이 초래한 온갖 교묘한 책략이 도에 대한 인간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심지어 도를 쫓아냈기도 했으며, 그 결과 도는 넘쳐흐르는 욕망과 정욕으로 더렵혀진 인간의 몸으로부터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럼으로 도가 다시금 되돌아와서 인간의 몸 속에 깃들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그 마음(心)을 비워야만 한다. 요컨대 도의 신성함은 점진적인 금욕적 수련을 통해서 정화된 마음속에만 깃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학(道學)에서 강조되고 있는 윤리적·도덕적인 뜻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으나, 중요한 것은 수련을 통하여 작위적인 마음을 버리고 인간의 본성을 찾게 된다는 의미이다. 맹자에 의하면 이것은 우리의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깨달음이라든지 본성(本性)을 찾게 된다든지 덕(德)을 체득한다(得道)든지 간에 이것들은 모두 심신의 통일(心身一如)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동양 철학의 여러 맥락에서 도의 개념은 마음이 비워진 무심의, 혹은 심신일여의 경지에서 수행되는 신체적 기예를 통해서 추구되거나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예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장자의 「포정해우(包丁解牛)」의 고사는 가장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다.

 

포정이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았다. 손으로 잡고, 어깨로 기울이고, 발로 누르고, 무릅을 대고, 스윽스윽 소리를 내며, 칼이 나감에 따라 갈라지는 소리가 났는데, 음절이 맞지 않음이 없었으며, 상림의 춤곡에 합치되었고, 경수의 운율에도 조화를 이루었다. 문혜군이 "음 대단하군! 재주가 어떻게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포정은 칼을 놓고 대답하길 "신이 좋아하는 것은 도인데, 이미 기술을 넘어섰습니다(進乎技矣).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소뿐이었는데, 삼 년이 지나자 소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금은 마음으로 깨달을 뿐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기관의 작용을 멈출 줄 알면 마음이 운용될 뿐입니다. 천리(天理)에 따라 커다란 근육의 틈을 가르고 뼈마디의 틈을 따라가며 그 본래의 그러함을 따릅니다.…뼈마디에는 사이가 있고 칼에는 두께가 없으니, 두께가 없는 것을 사이에 넣으므로, 칼을 쓰는데 휑하여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신체적 기예의 궁극적 경지는 숙련을 통해서 자연스러움의 극치에 도달하는 것이며, 이것을 이택후는 동양적 예술전통에 있는 '인간의 자연화의 사상'이라고 하였다. 소위 인간의 자연화란, 결코 동물성으로 퇴보하여 피동적으로 자연에 적응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와 반대로 자신의 생물적 한계를 초월하여 주동적으로 모든 자연의 기능, 구조, 규율과 호응하고 한 테두리가 됨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신체적 기예는 '마음을 먹으면 손이 이에 응하고 생각이 미치면 곧 이루어지는(得心應手 意到便成)' 경지이며, 이와 같은 경지는 '이치에 맞고 신의 경지에 들어서며 무의식으로 돌아가는(造理入神 廻到無意)'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합일이 이루어져 드디어는 기예가 도의 경계를 들어서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포정이 소를 잡는 행위와 같은 신체적 기능이 기술을 넘어선 정신적 차원의 수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공자가 말한 '자기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所慾不有 )' 경지를 말함이며, 이때의 기교는 이미 단순한 기술적인 활동이며 실용을 목적으로 한다면, 도는 심미의 경지로서 실용적인 목적을 초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도는 결코 기교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교가 승화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즉 기교가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기교의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교의 질적 변화로서의 도의 경지는 자유에 도달한 것이며, 실용적 단계를 초월하고 심미적 단계에 진입한 '기예의 완성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도가 추구하는 부동심, 무심, 심신일여, 권선(拳禪)일치, 검선(劍禪)일치, 심기체(心技體)일치 등의 개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오랜 단련과 수련을 통해 달성되는 기술의 질적 전환, 즉 기진호도(技進乎道)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수련의 체험적 인식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무도, 특히 형식 중심의 수련관에서는 단지 그럴듯한 구호로서 이와 같은 개념들이 애호될 뿐, 실제적인 기술 수련의 구체적 맥락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경기화된 무도의 수련에서는 기술 수련에 있어서 승패나 특정한 기술에 대한 전술적 맥락에서의 이해에 그칠 뿐, 기술의 숙련을 통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의 정신적 비약과 같은 사상은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데에는 무도 스포츠가 현대 서구 스포츠의 개념과 문화의 수용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어 왔으며, 무도의 경기화를 주창하고 이끌었던 동양의 지도자들이 무도의 수련에 내재한 동양 전통의 기술에 관한 사상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점 등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 스포츠의 부정적 가치와 타락성에 대한 경고와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동양 전통의 신체적 수련을 통한 도의 체현(體現)이라는 인식론은 중요한 대안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 현대적 의미의 무도 수련

Duncanson은 「스포츠에서의 행동과 가치: 바른 수련의 기술적(記述的) 묘사」에서 바른 수련(right practice)의 개념을 중심으로 스포츠 수련의 내적 가치를 설명하였다. 그는 바른 수련(right practice)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바른 수련이란 능숙함(excellence)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하여 필연적인 주관적 의미와 전인적 몰입을 훈련(training)과 실행(performance)에 부여하는 역동적 수련(dynamic condition)이다. 이러한 수련의 도덕적, 생리적, 목적론적, 가치론적, 그리고 미적인 초점은 실행의 내적 기준으로서 신체적, 생리적 한계에의 도전, 공리적 지향의 초월과 함께 방법적이고 명제적인 앎의 중시, 그리고 스포츠 행위의 예술적 지향에 있다.

 

Duncanson에 의하면, 스포츠 행위의 목적은 결과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노력을 통하여 수련의 내재적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스포츠의 가치는 외적인 가치 즉, 승패나 이에 연관된 명예, 또는 물질적인 이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수련이나 스포츠 행위 자체의 내재적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MacIntyre는 이러한 관점에 대하여 수련의 의미는 그냥 참가하는 것에 있는 것도, 상대를 이기거나, 다른 사람에 비해서 우월한 결과를 과시하는 것도 아닌, 수련자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그러한 능력에 대한 의미를 인식해가는 과정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수련자는 능숙함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과 그와 관련된 결과 및 선에 대한 인식이 체계적으로 확장되게 된다. '능숙함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라는 것은 실행(performance)에 대한 외부로부터 확립된 기준을 초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수련의 목적과 가치가 외적인 기준에 고정된다면, 즉 자신의 실행을 타인의 실행에 비교하여 판단한다면, 개인의 수련의 가치는 타인의 실행의 결과에 의해서만 가치화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행에 있어서는 그 실행의 실제적 가치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이 기준은 외부로부터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자 자신에 의하여 스스로 내린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른 수련'은 자신이 스스로 내린 실행의 기준을 계속적으로 초월하려는 노력과 그 노력의 성공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수련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련 태도로 수련하는 것은, 말하자면 오늘의 자신은 어제의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연속적인 자아 실현(self-realization)과 자기 완성(self-perfection)의 과정이다. MacIntyre에 의하면 이러한 자아 실현을 지향하는 수련은 수련 과정에서의 덕(德)을 체득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스포츠 수련과 수행에 있어서 제시되는 바른 수련, 즉 스포츠 참여의 이상적 태도에 관한 주장들은 무도 수련의 가치와 목적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무도의 수련과 실행에 있어서 추구되는 이상적인 태도를 흔히 '무도 정신'이라는 개념으로 집약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도 정신이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심, 부동심, 깨달음, 지행합일 등과 같은 사상이 있지만, 실제적인 수련의 맥락에서 무도 정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경우도 많다. 일본의 메이지시대의 유명한 검도인 山岡鐵舟(1836∼88)는 무도 정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나는 스물 네 살 때 종합 훈련에 참가하였다. 그 때는 칠일간에 천사백번의 시합(match)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침이나 고통의 기억은 없다. 그 비밀이 무엇일까? 검도에서는 승부도, 승패도 있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그 비밀이 무엇일까? 정신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무도 정신은 전술에서 언급한 '오늘의 자신'은 어제의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연속적인 자아 실현과 자아 완벽이라는 수련 목적과 같은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다. 山岡鐵舟는 검도의 수련 과정에서 무도 정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수련 도중에 한 쪽 수련자의 절대적 약세가 뚜렷하고 명백히 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했을 때라도 정신적으로 굴복해서는 안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이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하는 것이 검도의 도인 것이다. 모든 육체적, 정신적인 힘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육체적, 정신적, 의지적인 모든 힘을 다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검도의 정신이다.

 

전통적인 무도 수련에서는 이와 같이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극기의 정신적 자세를 수련의 태도로서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한계 도전의 정신 자세는 대인 격투라는 구체적인 상황적 요구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투나 격투를 떠나서 평상시에 무도의 수련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목적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하여 무도의 수련에는 전통적으로 실제적인 기술적 숙련이라는 목적과 정신의 단련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앞에서 논의 한 바와 같이 이 두 가지 목적은 기술의 효과적 단련과 실전에서의 기술 수행을 위한 최적의 심리적 상태를 위한 정신의 단련이라는 실용적 정신관과, 기술의 실용적 목적과는 큰 관계가 없는 정신이나 인격의 함양이라는 비실용적 정신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유형의 무도 수련의 목적관이 아직까지 이론적으로 분명히 나누어져 개념화된 적도 없으며, 많은 경우 그 경계와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채 혼합되어 나타남으로서 오늘날의 무도 연구자들에게 많은 논쟁의 근원을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Duncanson이나 MacIntyre의 바른 수련의 개념, 또는 Arnold 등과 같은 많은 서양 스포츠 철학자들이 주창하는 스포츠 참여의 내적 가치나 초월적 가치 등의 개념들이 스포츠 참여에 있어서 경기 결과나 이에 수반하는 현실적·물질적 가치를 위주로 한 가치관에서 참여자의 정신과 내적 세계에 관련된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무도 수련의 목적관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Arnold는 스포츠 수련에서 추구되는 내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첫째, 형태와 감각의 결합과 체현
둘째, 숙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완벽성의 추구
셋째, 극치적 흐름 감각(Flow)의 구체화
넷째, 창의성의 발현

 

Arnold의 극치적 흐름(flow)의 개념은 선이나 무도가 추구하는 심신일여 또는 삼매의 경지와 유사하며, 창의성(creativieness)은 이러한 심신일여, 삼매, 또는 선적 해탈의 경지에서 솟아날 수 있는 탈일상적 창의성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란 점에서 무도가 추구하는 목적이나 경지와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rnold의 내적 가치의 개념화의 특징은 구체적인 기술 수련의 과정에 기초하여 점차 상위의 탈기술적, 정신적 경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진수는 일본 유도의 고전서의 하나인 《유도우중문답(柔道雨中問答)》의 연구를 통하여 무도의 본의를 성(誠)이라 파악하고 이때의 성은 '유도는 몸의 운동이지만 운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작용이 중요하다. 같은 생각으로 몸이 움직이고 몸 움직임에 따라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경지'를 성(誠)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부연하여, "성(誠)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나 이때의 정신은 데카르트식의 사유가 아니다. 신체의 바름에서 오는 정신심기(正神心氣)를 말한다. 이것을 신명(神明)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술과 도의 선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술이라 하지 않고 유도라 한 것은 기술과 도를 명백히 하기 위함이었다. 기술은 사리체용(事理體用)의 용(用)이니 몸으로 하는 승부지만, 도는 대학(大學)의 핵심 사상인 명덕(明德)과 지선(至善)의 도이다. 그런데 이것이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도와 술이 일체라는 것이다. 일체라 해도 체와 용의 구별이 있듯이 수련에는 선후의 절차가 있다. 술이 먼저인가? 도가 먼저 인가? 이 문제에서 水野는 술이 먼저임을 확실히 한다. 기도류에 입문해서는 기술을 배우고, 익숙해지면 이형급기(離形扱氣)의 도를 연마한다. 형체를 벗어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다. 유도를 통해서 몸을 바르게 하는 근본에만 힘을 쓰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허영불매(虛靈不昧), 전지인성(天地人性), 신인일체(神人一體), 천지가 하나라는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술이 도에 우선한다는 것은 실제적 수련의 구체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정신적 경지를 추구하는 것의 불가능성과 허구성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진수와 水野에 따르면, 기술이야 말로 도에 이르는 구체적이고도 유일한 길, 즉 과정이라는 것이다. 무도에 있어서 도란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파악되는 세계와 자신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에서 기술과 기술에 담긴 원리 그리고 이러한 원리를 체득하고 축적하는 몸의 과정이 핵심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양진방이 지적한 嘉納가 자신이 창안한 무술이 유술(術)이 아니라 유도(道)라고 주장하게 되는 논거가 유능제강(柔能制剛)­정력선용(精力善用)­자타공영(自他共榮) 등의 추상적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嘉納 이전에 수련의 중심이였던 형(形)이나 본(本) 위주의 양식화된 수련 형식에서 상대와 실제 기술을 겨루어 볼 수 있는 자유 연습, 즉 난도리(亂取)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수련 방식의 개발과 이에 바탕을 둔 시합화(경기화, competitionalization),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실제적 겨룸을 통하여 체현될 수 있는 몸의 도(道)적인 구체화가 嘉納의 도(道) 개념의 본의라는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태권도의 경기화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태권도의 경기화는 무도로서의 본질, 즉 그 정신성을 상실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신성을 실제로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경기화 이전의 기술 체계와 수련 방식이 갖는 직접적 겨룸의 기회의 부재는 무술 수련을 통해서 추구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의 하나인 상대와의 대결, 상대를 다룸, 상대를 통한 자신의 기술의 이해, 상대에 대한 자기 자아의 체험 등을 제약함으로써 허구적 자신감, 허구적 심신일여, 허구적 무심 등을 가질 수 있었다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무도 수련의 진정한 가치는 무도 수련을 통해 단순한 기술적 숙련이나 기술의 실용적 효용성의 극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과 체험을 통해서 자아의 실현, 또는 깨달음이라는 기술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술 이상의 가치에 대한 실현은 신체 운동과 기능에 대한 동양적 접근법의 핵심인 수행적 체험을 통해서 나타난다. 무도수련을 하나의 수행으로 인식하게 되면 기술과 깨달음은 기술과 도의 관계로 나타나게 되고 여기에서 무도에 고유한 인식론적 전제, 즉 기술을 통한 도의 실현이나 체득이라는 개념이 드러난다. 이러한 접근법은 신체와 인식을 이분하는 서양적 접근법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동양의 심신일원론적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제Ⅵ장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범 세계적 스포츠로 발전해 가고 있는 동양 무도의 현대적 가치와 수련 철학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로서 현대 사회에서의 무도 수련이 안고 있는 사상적, 가치관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과 가치관의 현대적 의미의 규명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양 무도의 발전 과정과 특히 무도 철학의 성립 과정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무도 철학의 시대적 변천 속에 나타나는 가치관과 실천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분석하였다. 이 분석을 토대로 오늘날 무도 수련에서 제기되는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 그리고 동양적 개념과 서양적 개념 등으로 대표되는 무도 수련에 놓인 가치관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철학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인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동양 무도 사상의 성립 과정과 그 내용은 무엇인가?
(2) 역사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무도의 개념적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3) 동양무도의 수련관은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4) 이러한 가치관과 수련 방법론에 대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현대 사회에서 무도 수련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제시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안적 철학은 무엇인가?
이상의 연구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본 연구 내용은 첫째, 동양 무도 사상의 성립 둘째, 동양 무도 개념의 변화 셋째, 수련관과 수련 가치의 변화 그리고 넷째, 현대적 의미의 무도 수련관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동양 무도 사상의 성립

동양 무도는 그 발전 과정 속에서 유교, 도교, 불교의 동양의 주요 사상을 철학적 기반으로 하여 무도의 독특한 철학 사상을 형성 발전시켜 왔다. 동양 무도의 정신적 특성은 천인합일의 사상을 기초로 수련을 통한 내면적 체험을 통하여 개인의 이기심과 아집을 버리고 무념의 상태, 즉, 공의 상태가 되기 위해 일생동안 자기의 행로를 따라 가는 수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심신일여, 평상심, 무 또는 공 등의 선적 개념이나 경지가 무도 수련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부동심(不動心)을 무도 수련의 궁극적 지향점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인 무도 사상의 파악은 자칫 구체적인 수련 맥락이나 실천방안이 없는 공허한 구호성 발언으로 비판될 소지가 있기도 하다. 따라서 무도 사상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물론 무도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무술의 수련에 동양 사상의 접목과 수용의 과정과 수용된 사상의 무도적 변용 등의 구체적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인식된다 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만이 종래의 무도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보여주었던 피상적이고도 평면적이었던 노장(老莊) 철학의 적용이나 선불교적 언어의 적용이 아니라 동양 철학 일반에 흐르고 있는 세계관과 인성관의 파악과 이를 바탕으로 한 무도의 체육적 해석이 가능해 질 것이다.

 

불교 사상은 선종의 이론과 수련 문화를 통해서 무도철학의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초에 선불교는 그것이 갖고 있는 금욕적인 계율이 무사들의 생활 문화와 잘 통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함께 그것이 주장하는 욕망과 애착으로부터의 해탈이 곧 싸움에서 살아 남기 위한 무사들의 격렬한 훈련과 일치되는 점이 많았기 때문에 무도에 쉽게 수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초기에 무사들이 선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개인의 인격 수양이나 종교적 깨달음보다는 선적인 심리적 수련과 종교적 태도의 함양을 통해서 전투에 임했을 때 자신의 전투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용적 가치에서의 활용이라는 측면이 더욱 돋보인다.

 

특히 이러한 관점에서 선이 가지고 있는 사생관(死生觀)과 무술 수련의 관계는 주목할 만하다. 많은 경우 자신의 생명을 담보한 전쟁터를 일상적 삶의 공간으로 하는 이러한 무사들의 삶에서 선의 극기(克己)주의와 초월적 생사관의 체득은 목숨을 걸고 주군을 섬기는 충성심과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로 전장에 임할 수 있는 정신을 갖추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선의 '生死의 해탈'이라는 것, 즉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하게 해주는 선의 가르침은 무사들에게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이라는 실용주의적인 요소로 수용되었다.

 

무도 사상의 핵심 개념으로서 자주 나타나는 무심(無心), 무념(無念), 부동심(不動心)등은 바로 선의 핵심적 수행 목표이기도 하다. 무심, 무념, 부동심 등은 첫째, 상대나 대결에서 오는 다양한 두려움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자유로와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둘째, 이러한 무심의 상태에서는 객체와 주체, 즉 상대와 자신의 대립적인 관계에 대한 지각이 사라짐으로서 상대방의 움직임이나 전략의 의도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고 그 상황에 적절한 반응이 자발적으로 나오게 된다. 검도에서는 이러한 정신 상태를 부동심(不動心)이라고 부르고 있다. 부동심의 정신상태는 검객이 아무리 위험하거나 당황스러운 순간에 직면하더라도 마음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움직임이 주저 없이 나오게 되는 경지를 말한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유교 사상 역시 무도의 철학적 기초로서 많은 영향을 발휘하였다. 예로부터 유교의 교육적 가치관을 대표하는 육예(六藝)에 나타나는 활쏘기(射에)서 강조되는 군자(君子)의 도(道)는 유교적 무도관의 일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무도 수련에서 강조되는 예(禮)의 중시, 상하 질서의 강조, 의협심과 충성이나 애국심과 같은 가치의 강조 등에서 유교적 사상의 영향을 쉽게 엿볼 수 있다. 특히 유교는 무사들의 정신적 교양과 더불어 일상 생활에 복잡하게 의식화된 예의범절이 그들의 생활과 행위의 계율적 기반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예'의 역할에 대하여 阿部 忍는 무도의 '예'는 스승이나 상급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무도에서의 '예'의 중시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계급성(階級性)이나 권위주의를 중심으로 한 이념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유교의 영향은 무도 수련의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 예를 들면, 무술의 수련을 형식화 또는 의식화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형식화와 의식화는 먼저 복잡한 예의와 의식의 강화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형(型)이나 본(本)의 제정과 이러한 형과 본을 중심으로 한 수련 양식의 강조로 나타났다. Friday는 이러한 의식 절차의 중시와 형식 중심의 수련 사상에 대하여 선인들의 동작을 의식화된 형태로 모방하는 것은, 형식화된 행동(action)이며, 순서로 구조화된 경험(sequentially structured experience)인 의식과 형(形)에 대한 몰입은 운동과 연습(through action and practice)을 통하여 인간이 생활의 혼란을 정리하고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인 틀(conceptual framework)을 형성할 수 있다는 유교적 교육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일정한 관계의 존재를 믿고, 하늘(天)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우주나 자연과 인간의 물리적, 운동적 유사성의 인식에 기초하여 자연의 모방으로부터 건강이나 격투기술의 이상적인 형태를 추출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도교적 사고는 다양한 도인, 양생의 술법들을 발달시켰으며 이후 무술의 발달에 중요한 사상적,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노자는 세계에 관한 소박한 변증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 바, 사물은 모두 상호 의존하는 것이지 독립적이지 않음을 강조한다. 즉, 곧음과 부드러움, 강약, 경중, 공수, 진퇴, 정동 등 무술의 주요한 이론적 기초가 되는 이들 개념을 최초로 대립적 통일체라는 변증법적 인식을 함으로써 후일 무술이론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사물이 대립면을 향해 전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한 노자는 생활에 있어서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고, 조신하는 것을 주장하고, 강경하고 진취적인 것을 반대하는 철학을 주창하였다. 이러한 철학은 후일 무술의 철학의 한 흐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노자를 이은 도가의 또 한사람의 주창자인 장자는 이러한 자연순응사상의 신체적 응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장자는 그의 《殼意編》에서, 내쉬고 들이쉬어 호흡하고, 낡은 것을 토하고 새것을 받아들이며, 곰이 휘어잡고 새가 펴듯이 하는 것은 인간이 장수하려는 도리이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도인 양생의 사상은 명·청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무술의 수련과 접합되어 내가권법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불교, 유교 그리고 도교 이외에도 많은 동양의 종교와 사상들이 무도 사상의 형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진다. 예를 들면, 무도 수련의 공간인 도장의 개념은 한편으로는 선 불교의 수련공간인 도장(道場)의 문화적 성격을 이어 받은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도(神道)의 도장의 개념도 그 속에 공존하고 있다. 합기도의 경우 이러한 신도적 성격은 매우 명시적이며 실제 신도적 의식이 실시되기도 한다.

2) 무도 개념의 변화
인류 문명사의 초기에서 무술은 사냥과 대인 격투, 그리고 집단 간의 격투나 보다 조직적 차원의 전투 등 싸움의 수단이라는 실용적 가치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류의 집단 생활이 보다 조직화되고 특히 무기라는 도구의 발달이 이루어진 이후 전투는 보다 큰 집단적 사회적 행위로 변화하게 되자, 개인의 신체적 기능인 무술은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을 잃게 된다. 또한 군사력의 집중과 조직화의 발달과 함께 정치제도의 발달 등 사회적 변화는 무사에게 전쟁이나 격투에 참여할 기회마저 제한하게 함으로서 무술은 나름대로의 사회적 존재 가치와 방식을 바꾸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여 나타난 새로운 무도의 개념이 교양으로서의 무도, 정신 수양이나 교육으로서의 무도, 기술의 극치를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무도, 그리고 상실된 전투나 격투를 대신할 수 있는 경기를 추구하는 스포츠적 무도의 개념들이다. 이러한 무도의 개념에 대한 변화는 실용적인 '술'의 추구로서의 훈련의 가치가 철학적인 '도'의 추구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무도의 '술'에서 '도'로의 발전은 때로는 실용성의 강조로부터 정신 수양의 강조로의 이행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3) 수련관과 수련 가치의 변천
술에서 도로의 이행이나 실전적 수련 가치에서 정신적, 교육적 수련 가치로의 변화에 수반하여 나타난 중요한 내용 면에서의 변화는 형식 중심의 무도 수련관이다. 형이 수련의 수단이 아니라 수련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었다. 무도 수련에서의 과도한 정형화나 형 중심 수련은 당시의 지배적인 유교 교육에 의해 강화된 측면이 있으며, 이러한 지나친 형식 중심의 수련은 결국 무술을 '화석화'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실제 전투의 기회 없이 이러한 형식주의적 무도 수련의 정체성의 의심으로 시작된 지나친 형 중심 수련에 대한 비판과 반발은 일부 무술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겨루기 수련 방법의 연구와 겨루기를 중심으로 한 무도 수련관의 제시로 나타났다. 일본의 검술과 유도가 그 예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겨루기 위주의 새로운 수련관에 대하여 전통적인 형 중심주이자들은 시합과 같은 겨루기는 실제 전투와 똑같은 마음 상태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형 중심의 연습보다 더 실질적인 수련방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겨루기는 불가피하게 수련자들을 결투라거나 전장(battle field)과 같은 상태로부터 더욱 멀리 벗어나게 하는 규칙이나 변형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이 있다는 예측을 하기 힘들 정도로 계속되고 있다. 검도의 경우 초기에는 시합에서의 패배는 검도인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패배는 이제 배움을 위한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죽음은 패배를 개념화하는데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술 철학의 발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무도에서의 승부를 생사의 담보로 보지 않는 사고의 출현을 기점으로 형 수련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무도관과 겨루기와 경기를 위주로 하는 근대 무도관이 출현하면서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전통주의 무도관은 수련의 방법으로서 형식중심의 수련을, 주장하는 가치로서 실전성을 주장함으로서 그 수단과 목적 사이에 괴리가 나타나게 되었고, 겨루기 중심의 근대 무도관은 수련 가치로서 실전성을 그리고 수련 방법으로서의 겨루기나 시합을 강조하였지만 이 역시 기술의 제한이라는 점에서 수단과 목적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겨루기나 경기가 갖는 대결을 가볍게 여기게 되는 현실적 문제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수련관 사이의 갈등에 대하여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은 무도의 수련은 실전적 격투 능력의 획득이 그 최고의 목적이 아니라 정신의 단련이나 인격 수양 등 비 실전적 가치를 주된 목적가치로 주장하는 정신주의 무도관이었다. 이들은 대개 무도에서 기술의 형식성을 실전성의 결과(result of the combat utility)보다 더 중점에 둔다. 왜냐하면, 무도의 목적은 실전의 대비가 아니라 자기 수련을 통하여 자기 완성(self-perfection through discipline)이기 때문인 것이다. 진정한 무도에서는 외적 상대방과의 경쟁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대개 이들은 형 중심주의자들이 실전성 논쟁에 한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구성한 가치관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수련 수단과 수련 가치의 불일치를 나타내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겨루기 위주의 근대 무도관 역시 자신들의 수련 가치를 정신이나 교육적 개념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유도의 창시자 嘉納는 유도의 수련 철학을 '정력선용(精力善用)', '자타공영(自他共榮)'이라고 표현하며, '정력선용'이란 기술 철학이며, 기술 완성을 통한 자기 완성으로 그리고 '자타 공영'은 개인적인 자기완성을 통하여 구현하는 사회적 가치로 개념화하였다. 검도에서는 인격 형성, 태권도에서는 자아 완성 등의 개념으로 '무도에로'의 사회화와 '무도를 통한' 사회화를 수련 가치로 표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먼저 스포츠적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나친 승패위주의 가치관, 승리에 관련된 물질적 보상에 수반하기 쉬운 타락과 반도덕적 행위 등으로 인하여 모순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는 서구적 가치관과 사상에 몰입되어 무도수련에 내재한 동양적 인식론, 즉 수행적 인식론에 대한 이해의 부재로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무도 수련은 몸의 단련만 향하면 안 된다. 현재에의 시합에서는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득점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기술과 힘만 중요시한다. 옛날에는 그렇지는 않았다. 그 때는 생명을 잃을 수 있었으니 결국은 그 결과가 직감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래야 만이 되듯이 목도로 싸운다 하더라도 모든 결투를 목숨 걸 듯이 싸워야 한다. 이처럼 무도의 수련에 있어서 실제적 '대결' 없이는 수련자의 정신적 상태를 단련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기술을 겨루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태권도, 검도, 유도 등의 경기적 무도에서 겨루기나 시합을 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시합의 규칙화, 안전성의 추구 등 스포츠적 성격을 많이 띌수록, 겨루기나 시합에서 생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직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the possibility to resolve the question of life and death)이 감수되고, 결국 겨루기나 경기의 '가벼움'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한편, 전통적 무사도의 중심 개념인 '충', '의리', '생사', 등이 오늘날 동·서양 사회에서 무도 수련의 정신적 가치로 제공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특히 서양에서는 무도 기술의 전근대적인 성격(기술의 실전성이나 추상성)은 일본적 무도개념을 봉건주의적인 무사도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이해의 틀을 벗어나지 못 함으로서 스포츠적 맥락의 보편적 가치관과 결합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일본 무사도에 놓인 문화적으로 한정된 개념(culturally bound concept)에 벗어나지 못한 무도 정신의 이해는 현대 사회에서 무도가 지닐 수 있는 교육적인 가치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경기를 지향하는 유형의 무도는 전통적인 무도 수련의 목적­방식­가치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수련의 목적­방식­가치를 보여줌으로서 오늘날 무도에 대한 개념 사용이 혼란스러운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전통주의(traditionalism)와 현대주의(modernism), 또 한편으로는 실제주의(practicalism)와 정신주의(spiritualism)로 개념화 되고있는 상호 대치되는 무도 수련관들은 현대 사회에서의 무도 수련의 가치관과 무도 그 자체의 개념에 대한 불일치, 또는 혼란은 야기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통적 개념의 무도는 정신이나 인격의 수련을 목적으로 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수련 과정에서 품새나 형 등의 형식 수련에 치중함으로서 그 수련의 목적이 실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이나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목적­수단의 관계에서 이론적인 모순이 엿보인다. 이와 반대로 현대에 새로이 대두된 경기화 된 무도, 소위 말하는 스포츠 무도는 기술 그 자체와 결과로서의 승패에만 집중함으로서 수단은 존재하지만 그 수단을 정당화하는 무도 수련으로서의 가치 즉 목적이 부재한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목적­수단 관계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유형의 무도 수련에 놓인 무도 수련의 방식(기술 체계, 수련 과정)­목적과 가치(철학)간의 논리적, 철학적 모순을 극복하고 상호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무도 수련의 가치관과 철학을 정초하기 위하여 수련과 가치 사이의 관계가 새로운 변증법적 해석을 통하여 재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도의 수련에는 전통적으로 실제적인 기술적 숙련이라는 목적과 정신의 단련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앞에서 논의 한 바와 같이 이 두 가지 목적은 기술의 효과적 단련과 실전에서의 기술 수행을 위한 최적의 심리적 상태를 위한 정신의 단련이라는 실용적 정신관과 기술의 실용적 목적과는 큰 관계가 없는 정신이나 인격의 함양이라는 비실용적 정신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수행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 전통적 무도 수련관은 한편으로 그 구체적인 수련의 방법론에 있어서 겨루기를 회피하고 극단적인 형식 중심의 수련을 지향함으로서 실제로 이러한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수련 과정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논쟁에서 우리는 기술과 정신, 즉 술과 도의 관계나 우선 순위에 관한 논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있다. 이진수는 유도의 명인인 水野의 사상에 근거하여 술이 도에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기술이야말로 도에 이르는 구체적이고도 유일한 길, 즉 과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실제적 수련의 구체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정신적 경지를 추구하는 것의 불가능성과 허구성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무도에 있어서 도란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파악되는 세계와 자신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에서 기술과 기술에 담긴 원리 그리고 이러한 원리를 체득하고 축적하는 몸의 과정이 핵심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嘉納가 자신이 창안한 무술이 유술(術)이 아니라 유도(道)라고 주장하게 되는 논거가 유능제강(柔能制剛)­정력선용(精力善用)­자타공영(自他共榮) 등의 추상적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嘉納 이전에 수련의 중심이었던 형(形)이나 본(本)위주의 양식화된 수련 형식에서 상대와 실제 기술을 겨루어 볼 수 있는 자유 연습 즉 난도리(亂取)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수련 방식의 개발과 이에 바탕을 둔 시합화(경기화, competitionalization),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실제적 겨룸을 통하여 체현될 수 있는 몸의 도의 구체화가 嘉納의 도 개념의 본의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태권도의 경기화는 무도로서의 본질, 즉 그 정신성을 상실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신성을 실제로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경기화 이전의 기술 체계와 수련 방식이 갖는 직접적 겨룸의 기회의 부재는 무술 수련을 통해서 추구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의 하나인 상대와의 대결, 상대를 다룸, 상대를 통한 자신의 기술의 이해, 상대에 대한 자기 자아의 체험 등 상대를 통한 체험을 하지 못함으로서 허구적 자신감, 허구적 심신일여, 허구적 무심 등을 가질 수 있었다는 한계를 지적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오늘날 경기지향적 무도 수련관은 실제로 많은 겨루기의 상황을 경험할 수 있음으로서 위와 같은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련 과정을 가지고 있지만, 수련의 현실적 가치가 승패와 승리에 집착되어 있음으로서 더욱 중요한 신심일여의 수행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무도 수련의 잠재적 가치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길은 경기 지향적인 스포적 무도에서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분명히 제시하고 철학적으로 이론화함으로서 승패의 추구에 그치는 말기적 기술(末技的 技術)을 추구하는 수준에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실천적 수행으로서의 무도 경기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4) 현대적 의미의 무도 수련관
무도는 그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 그것이 신체적 수행(practice)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무도수련의 신체적 관여라는 특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하여 이러한 신체와 신체적 활동이 지닌 존재론적 그리고 인식론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먼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신체로서 습득한다'라는 인식의 형태는 불교의 '수행'이나 무도의 수련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유교의 '공부' 특히 양명학의 지행합일적 공부나 주자학의 정심, 격물치지의 공부 역시 이러한 심신통합적 인식의 철학에서 나타나는 산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수행, 수련, 수도, 공부, 단련, 고행 등으로 불려지는 이러한 동양 전통의 인식 방법은 신체적 훈련을 통하여 신체적 기능의 숙달은 물론 동시에 정신을 연마하고, 인격을 향상시키며, 종국에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고 이 양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이러한 동양적 수행관에 유사한 것으로서 서양의 종교 전통에 존재해 온 금욕이나 고행은 기도, 묵상, 노동, 신체적 단련 등의 수단적 측면에서 동양의 수행과 유사하지만, 그 존재론적, 인식론적 전제에 있어서 죄의 원인인 육체를 괴롭힘으로서 영혼이 죄로부터 구제될 수 있다고 믿는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이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동양적 전통에서는 이와 같은 경지의 인식을 심신일여(심신일여), 깨달음, 또는 견성(見性)이라는 개념 등으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지의 수련은 대개 의식과 신체적 자아의 망각이나, 신체적 자아의 탈각, 마음과 신체가 하나로 뭉쳐진 느낌, 신체와 마음의 구별이 사라진 상태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 동양적 철학 사유의 총체적 개념인 도로 연결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도 사상은 자연 현상의 궁극적 존재 원리와 인간의 삶을 하나로 인식하게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인합덕(天人合德), 천인감응(天人感應) 또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중심으로 하여,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강조하게 되고 자연의 길(天道)과 인간의 작위의 길(人道)을 동일선상에 놓고자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인식론적 틀은 동양 전통의 예술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춤, 노래, 악기, 서화나 심지어는 공예나 무도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이상적 상태를 인간의 의식적 노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인식하는 천인합일 즉, 도의 개념이 널리 원용되고 있다.

 

이처럼 예술이나 무도 등의 영역에서 추구되는 신체적 기예의 궁극적 경지는 숙련을 통해서 자연스러움의 극치에 도달하는 것이며 이것을 동양적 예술 전통에서는 '인간의 자연화의 사상'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자연화란, 결코 동물성으로 퇴보하여 피동적으로 자연에 적응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와 반대로 자신의 생물적 한계를 초월하여 주동적으로 모든 자연의 기능, 구조, 규율과 호응하고 한 테두리가 됨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신체적 기예는 '마음을 먹으면 손이 이에 응하고 생각이 미치면 곧 이루어지는 (得心應手 意到便成)' 경지이며, 이와 같은 경지는 '이치에 맞고 신의 경지에 들어서며 무의식으로 돌아가는(造理入神 廻到無意)'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합일이 이루어져 드디어는 기예가 도의 경계를 들어서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바로 공자가 말한 '자기의 마음이 하고자하는 대로 따라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所慾不有 )' 경지를 말함이며, 이때의 기교는 이미 단순한 기술적인 활동이며 실용을 목적으로 한다면, 도는 심미의 경지로서 실용적인 목적을 초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도는 결코 기교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교가 승화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즉 기교가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기교의 질적인 변화가 초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교의 질적 변화로서의 도의 경지는 자유에 도달한 것이며, 실용적 단계를 초월하고 심미적 단계에 진입한 '기예의 완성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도가 추구하는 부동심, 무심, 신심일여, 권선(拳禪)일치, 검선(劍禪)일치, 심기체(心技體) 일치 등의 개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오랜 단련과 숙련을 통해 달성되는 기술의 질적 전화, 즉 기진호도(技進乎道)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수련의 체험적 인식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무도 특히 형식 중심의 수련관은 그럴듯한 구호로서 이와 같은 개념들을 애호할 뿐, 실제적 수련 특히 기술 수련의 구체적 맥락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경기화된 무도의 수련에서는 기술 수련에 있어서 승패나 특정한 기술에 대한 전술적 맥락에서의 이해에 그칠 뿐 기술의 숙련을 통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의 정신적 비약과 같은 사상은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서구 스포츠의 개념과 문화의 수용을 기반으로 하여 무도 스포츠들이 발전되어 왔으며, 무도의 경기화를 주창하고 이끌었던 동양의 지도자들이 무도의 수련에 내재한 동양 전통의 기술에 관한 사상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원인의 하나라 할 것이다. 현대 스포츠의 부정적 가치와 타락성에 대한 경고와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동양 전통의 신체적 수련을 통한 도의 체현이라는 인식론은 중요한 대안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전통 무도의 스포츠화 혹은 경기화가 가속화 될 것이리라 예측이 된다. 문명 사회가 발달하고 안전해질수록 인간은 시간적·재정적 여유를 자기의 생활을 즐기는 데에 사용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무도를 승부를 가리기 위한 외재의 결과 지향적 현상(external results oriented phenomenon)으로 보게 되면 동양 무도의 독특한 철학적 가치를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태권도를 예로 볼 때 과정보다 결과에 편향하는 성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치열한 대학 입학 문제, 공부와 운동의 상반 관계, 상업화 등의 문제로 인하여 수련 과정에 내재된 교육적·철학적 가치는 발휘되지도 못하는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이것은 가치의 부재나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자의 인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결국은 이 문제는 인식과 교육의 문제로 귀착된다. 무도 스포츠의 수련 과정에서의 필연적인 상대성에 의하여 갖게 되는 방법론적·목적론적 논리와의 일관성을 우선 인식해야 하고, 이를 통하여 그러한 수련의 독특한 가치의 인식이 가능해도 하겠다. 그러나 무도 스포츠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더라도 그 가치의 실천 성공의 여부는 수련자와 지도자의 참여의 목적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앞으로 현대적 의미의 무도를 창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 내용의 탐구가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첫째, 무도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를 밝히고 인식하게 하는 인식론적 연구,

둘째, 그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무도 스포츠의 교육적·철학적인 수련 문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야기하던지 결국 현대적 의미의 무도 수련의 가치는 추상적인 개념 수준에 머물러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상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 걸맞은 현대적 의미의 무술을 수련하는 과정 속에서 무도의 이상적 모습을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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