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의 구별이 없고 던지고 낚는 구별이 없다
불자(佛者)와 낚시는 원래 맞지 않는다.
살생을 금하라 가르친 불가에서 낚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은 물을 보고 깨닫거나(觀水法), 연못의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보며 마음을 수양할지언정 살아있는 생물을 잡지 않는다.
하수도에서 사는 미물이 해를 당할까봐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땅의 미물을 밟아 죽일까봐 골이 넓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그들이, 풍경 끝에 매달아 깨달음을 일깨우게 할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물고기를 잡겠는가?
한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듯이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선종 또한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선정에 든다는 말은 무엇이며, 번뇌를 깨뜨려라! 부처로 인해 속박된다면 부처까지도 깨뜨려라!고 하니, 그 오묘한 진리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아니 그들이 마음의 깨달음을 말로써 표현하기가 더 힘들었을 터이다. 그래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서로 마음으로 통하기에 문자가 필요없다(不立文字)고 하는 것이다.
우리 낚시꾼은 낚시터에서 한번쯤은 수많은 번뇌와 생각들을 해봤을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이야 고민을 하다보면 더 많은 고민을 낳고,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의 바다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불자들은 그러한 고민과 생각조차도 깨뜨리는 상념을 하란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불자가 말하는 낚시를 보자.
一葉虛舟一副竿(일엽허주일부간). 텅빈 낙엽같은 배 하나, 낚시대 하나,
了然無事坐煙灘(요연무사좌연탄). 분명하게 깨닫기에 특별한 일이 없어 안개 낀 여울가에 앉았네.
忘得喪,任悲歡(망득상,임비환), 얻음과 잃음을 잊고 슬픔과 기쁨도 본성에 내맡기고,
却敎人喚人多端(각교인환인다단). 오히려 사람들에게 일깨우네, 사람은 사단을 많이 일으킨다고.
배와 낚시대. 분명 어부의 모습이다. 안개낀 여울에 앉았지만 그는 낚시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인간의 얻음과 잃음․슬픔과 기쁨에 대한 집착을 놓으라고 한다. 그는 이것 때문에 인간의 모든 번뇌와 사단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미 훤하게 안다. 이 불자에 따르면 낚시가 이러한 집착에 깨뜨리고 참다운 본성에 내맡길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시는 張志和의 <漁子歌>보다 조금 늦게 나온 것으로 唐代 작품이다.
작자는 선자화상(船子和尙)으로, 촉동(蜀東)의 능신(陵信)사람인데, 약산(藥山)에 들어가 선사(禪師)를 공손히 모시며 불법(佛法)을 계승하여 법명(法名)이 덕성(德誠)이다. 본성대로 행하며 행실이 거칠며, 오로지 산수를 좋아하여, 뒤에 상해(上海) 금산현(金山縣) 건흥사(建興寺)(송대(宋代)에 법인사(法忍寺)로 고침)에 은거하였다.
화정(華亭)의 오강(吳江) 주경간(朱涇澗)에 배를 띄워, ‘노를 두드리며 소리높여 노래하고 스스로 마음을 자적하게 갖고, 소리가 드물고 화답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명예를 구하지 않고(鼓棹高歌自適情, 音稀和寡不求名), 사람을 찾아다니며 객을 사귀고 인연에 따라 세월을 보냈다. 예를들어 그의 詞에서 “한번 외로운 배에 맡기면 바로 그것에 빠져, 하늘과 땅에 어느 길이든 生涯가 되네. 歲月을 버리고, 안개와 놀 속에 눕고, 거처하는 강산이 곧 집이라네.(一任孤舟正又斜. 乾坤何路指生涯. 抛歲月․臥煙霞. 在處江山便是家.)”라고 하였듯이, 낚시를 좋아하고 배위에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하였다.
당시 사람은 그의 道가 높은지 몰랐기에 ‘船子和尙’이라고만 불렀으며, 뒤에는 배가 뒤집고서 입적하신 분이다.
불가의 경전 ≪대장경(大藏經)≫ 속에 ≪선자화상기연집(船子和尙機緣集)≫이 있는데, 그의 <어부발도자(漁父撥棹子)>39首를 수록하고 있다.(남송의 보제(普濟)가 편집한 선종의 전적인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조어게(釣魚偈)’ 6首(7언절구 3수와 <어가자(漁歌子)>사3수)를 실고 있음) 이것들은 전체적으로 어부의 생애를 읊음으로써 불교와 도가의 오묘한 이치를 집어넣은 시사로, 그 수량이 많음에 있어 정종(正宗)의 선문(禪門)승려나 문인거사가 따라올 수 없어, 이 방면에 하나의 기치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선종을 선전하고 문학을 감상하고 언어의 운치를 맛보는 면에서 모두 귀중한 가치가 있다.
이들 사는 이미 어부생활의 그림이고, 또한 선기(禪機)의 오묘한 도가 점철되어, 어떤 것은 평담한 듯 하지만 오히려 기이함을 지녀 그 의미를 이해하가 어렵다. 어떤 것은 보면 손가락끝처럼 쉽게 알지만 오히려 모호하고 오묘한 뜻은 그 종지를 깨닫기 어렵다.
그는 낚시꾼으로, 즐거운 마음을 가진 소탈한 어부의 풍모를 가졌다. 그런데 그의 글자 이면에 그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낚았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듯 하다. 그의 낚시하는 모습을 보자.
不妨綸線不妨鉤(불방윤선불방구). 낚싯줄도 괜찮고, 낚시바늘도 괜찮다.
只要釣輪得自由(지요구륜득자유). 다만 낚싯줄만 있으면 자유를 얻고,
擲卽擲․收卽收(척즉척․수즉수). 던지면 던지는 것이고, 걷으면 걷는 것이다.
天踪無迹樂悠悠(천종무적락유유). 창공속의 발자국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즐기면 그뿐.
낚싯줄과 낚시바늘은 신경쓰이지 않는다. 다만 자유를 얻고 유유자적하게 즐길 수 있는 낚시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스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3구에서 말하는 ‘던지면 던지는 것이고, 걷으면 걷는 것이다’에서 우리는 스님의 깨달음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유무의 구별이 없어 던지고 낚는 구별이 없다.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든 사람에게 있어 모든 것이 空이며 無인데, 그러한 구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러한 스님이 낚시에 아주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 낚시에 대한 집착이 또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다.
千尺絲輪直下垂(천척사륜직하수), 천 尺의 낚시줄 직선으로 드리우고,
一波才動萬波隨(일파재동만파수). 물결 하나에 수많은 물결이 따라 움직이고,
夜靜水寒魚不食(야정수한어불식), 저녁은 조용하고 물이 차서 물고기는 입질하지 않고,
滿船空戴月明歸(만선공대월명귀). 배에 가득 달빛만을 싣고 돌아오네.
스님은 저녁 늦게까지 낚시를 한다. 그러나 낚시배는 아무 것도 낚지 못해 텅 비었다. 정말 아무 것도 낚지 못했을까? 스님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배에 가득 싣고 오시는 것이다. 낚시를 드리우니 그 낚시줄에 따라 수면 위에 파동이 하나 만들어지는데, 그 파동에 의해 점점 파동이 많아지며 넓어지는 이치를 깨친 것이다.
번뇌나 집착의 씨앗이 하나 마음속에 자리잡으면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모든 생활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그 씨앗 하나가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비워야 하는 법을 스님은 깨치신 것이다.
그리고 셋째구의 ‘靜’과 ‘寒’의 상태로 인해 결국 스님은 넷째구의 ‘空’의 경지를 깨치신 것이다. 정말로 오묘하게 쓴 선시(禪詩)로, 스님이 그토록 낚시를 좋아한 이유를 조금은 알 듯 하다.
또 다시 그의 시를 보자. 이번엔 낚시를 하는 이유가 조금 다른 것에 있는 듯 하다. 그가 낚으려고 준비한 것은 무엇일까?
三十年來江上游(삼십년래강상유), 삼십년동안 강에서 노닐었네,
水淸魚見不呑鉤(수청어견불탄구). 물이 맑아 물고기가 보이면 낚시바늘을 삼키지 않고,
鉤竿砍盡重裁竹(구간감진중재죽), 낚시대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모두 베고 다시 심었네,
不計工夫便得休(불계공부편득휴). 다른데 신경쓰지 않는다면 좋은 놈으로 분명히 낚으리.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단한 낚시꾼이다. 물이 맑아 사물이 비치는 곳에선 분명 물고기는 입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아는 스님이다. 물론 흐르는 물의 성질 급한 놈은 제외하고 말이다. 나아가 그는 곧게 뻗고 튼튼한 낚시대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밭을 모두 베어 버리고 새로운 종자를 심어 30년을 기다릴 정도다.
전설에 고대의 임공자(任公子)도 매일 회계산(會稽山)에서 동해어(東海魚)를 낚았지만 일년에 한 마리도 낚지 못하다가, 뒤에 마침내 절강(浙江) 동쪽에서 창오(蒼悟) 북쪽에 이르는 몇 개 縣의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거대한 물고기를 낚았다고 한다.
선자화상의 인내심도 임공자 못지 않다. 그런데 그가 낚으려는 것이 임공자처럼 거대한 물고기인가? 아니면 진정한 깨달음일까? 아니면 자신을 이을 훌륭한 후계자일까?
그의 낚시에 대한 집착과 준비는 당연히 결실을 보게 되니, 그가 낚고자 하는 대상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시에서,
三十年來坐釣臺(삼십년래좌조대), 삼십년동안 낚시터에 앉았더니,
竿頭往往得黃能(간두왕왕득황능). 낚시 끝에 종종 黃能을 걸었다.
錦鱗不遇空勞力(금린불우공로력), 아름다운 고기는 만나지 못하면 헛된 노력이니,
收去絲輪歸去來(수거사륜귀거래). 낚시줄을 걷어 돌아올 뿐.
이라고 하였다. 결국 그가 잡고자 하던 것이 ‘황능(黃能)’이었다. 황능은 전하기를 발이 세 개인 자라 ‘오묘하고 신비한 신적인 의미’라고 한다. 자신이 가르침을 받으러 입산한 藥山을 떠날 때, 그는 일찍이 함께 도를 공부한 많은 친구들에게 “만약 영리한 시험관을 만난다면 앞을 향해 가시오, 나는 장차 내가 얻은 것을 전수하여 先師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시속에서 ‘황능’은 아마 그가 禪에 대한 깨달음을 낚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또 이런 고사가 있다. 낚시하고 있는데, 하루는 어떤 관리가 와서 묻기를, “스님은 온종일 무얼 하시오?”라고 하니, 그는 노를 세우고 반문한다. “당신이 오셨군요?” 지극히 선문답을 하고 있다. 관리가 탄식하여 “노는 맑은 물결에 물을 튀기지만, 금빛비늘은 만나기가 드무네.(棹潑淸波, 錦鱗罕遇)”라고 하니, 그는 다만 “홀로 蘭에 의지한 채 저 먼 여울로 들어갈 뿐입니다(獨倚蘭撓入遠灘)”고만 한다.
푸른 물결 속에서 훌륭한 물고기를 만나기가 어렵지만 스님은 향기를 내품는 錦鱗(금린)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는 어떤 물고기를 기다린 것일까?
그의 시를 보면, “어떤 한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가는데, 옛 것과 뒤섞여 융합하여 포장하여 바치면 그 기이함을 믿을 수 있다. 능히 변화할 수 있고 바람과 천둥을 토해낼 수 있다. 실을 드리우면 얼마나 일찍 물고기를 낚을 수 있을까?(有一魚兮溯洄. 混融包納信奇哉. 能變化,吐風雷. 下線何曾釣得來.)”라고 하였는데, 이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고, 기이함을 드러내어 변화할 수 있고, 바람과 천둥을 토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금린이 근본을 가지고 선종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후계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강태공은 위수(渭水)에서 낚시하여 70여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周 文王을 만나, 승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선자화상도 후계자를 낚으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선자화상은 도를 공부한 친구․스님들이 마음에 두고 있던 협산(夾山)이 화정(華亭)에 왔기에, 두 사람은 몇 번 선오(禪悟)를 겨룬 뒤에, 선자화상이 배의 상앗대를 사용하는 바람에 夾山은 세 번이나 강속으로 꼬꾸라졌다.
선자화산이 협산을 보니 이미 선기(禪機)와 깨우침이 있어, 바야흐로 “온 강을 다 낚시했는데, 錦鱗을 겨우 만났네.(釣盡江波, 錦鱗才遇.)”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전해준 것은 다만 도롱이 한 벌 뿐이었는데, 어떤 사(詞)에서 “(나의 생애를 묻는다면 다만 배 뿐, 자손마다 각자 기회와 인연을 막길, 땅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늘로 말미암지 않으니, 도롱이 한 벌을 제외하면 전할 만한 것은 없네.(問我生涯只是船. 子孫各自堵機緣(參悟禪機). 不由地,不由天. 除去簑衣無可傳.)”라고 하였다.
마지막에는 협산에게 권고하여, 지금 이후로는 몸을 없애고 흔적을 숨겨, “하나 중 반개라도 찾아서 잇는다면 단절되지 않을 걸세(覓取一個半個接續, 無令斷絶.)”라고 하고, 선자화상은 곧 배를 뒤집어 물에 들어가 입적하였다.
선자화상이 남긴 <어부발도자(漁父撥棹子)>는 선(禪)문화고, 또한 어(漁)문화다. 아쉬운 것은 전당시(全唐詩)나 전당사(全宋詞)에서 모두 수록하지 않았지만, 다행이도 송인(宋人) 여익유(呂益柔)가 상해(上海) 풍경해회시석비(楓涇海會詩石碑)에 이것을 새겨, 비로소 종교경문(宗敎經文)에 전해지게 되었다.
뒤에 대대로 고승(高僧), 문사(文士)가 예찬하고 노래하여 제발(題跋)한 것이 200여편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청인(淸人) 진이(陳怡)가 선자화상을 노래한 시를 보자.
指點迷途據要津(지점미도거요진). 손으로 가리키는 곳은 길을 잃을지언정 중요한 나루터를 점하고,
長竿短棹一閑身(장간단도일한신). 긴 낚시대 짧은 노 한가로운 몸,
扁舟路覆人歸去(편주로복인귀거), 작은 배에 길이 망가져도 돌아오니,
水色天光千古新(수색천광천고신). 물색과 하늘빛이 천고에 새롭네.
살생을 금하라 가르친 불가에서 낚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은 물을 보고 깨닫거나(觀水法), 연못의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보며 마음을 수양할지언정 살아있는 생물을 잡지 않는다.
하수도에서 사는 미물이 해를 당할까봐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땅의 미물을 밟아 죽일까봐 골이 넓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그들이, 풍경 끝에 매달아 깨달음을 일깨우게 할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물고기를 잡겠는가?
한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듯이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선종 또한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선정에 든다는 말은 무엇이며, 번뇌를 깨뜨려라! 부처로 인해 속박된다면 부처까지도 깨뜨려라!고 하니, 그 오묘한 진리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아니 그들이 마음의 깨달음을 말로써 표현하기가 더 힘들었을 터이다. 그래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서로 마음으로 통하기에 문자가 필요없다(不立文字)고 하는 것이다.
우리 낚시꾼은 낚시터에서 한번쯤은 수많은 번뇌와 생각들을 해봤을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이야 고민을 하다보면 더 많은 고민을 낳고,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의 바다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불자들은 그러한 고민과 생각조차도 깨뜨리는 상념을 하란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불자가 말하는 낚시를 보자.
一葉虛舟一副竿(일엽허주일부간). 텅빈 낙엽같은 배 하나, 낚시대 하나,
了然無事坐煙灘(요연무사좌연탄). 분명하게 깨닫기에 특별한 일이 없어 안개 낀 여울가에 앉았네.
忘得喪,任悲歡(망득상,임비환), 얻음과 잃음을 잊고 슬픔과 기쁨도 본성에 내맡기고,
却敎人喚人多端(각교인환인다단). 오히려 사람들에게 일깨우네, 사람은 사단을 많이 일으킨다고.
배와 낚시대. 분명 어부의 모습이다. 안개낀 여울에 앉았지만 그는 낚시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인간의 얻음과 잃음․슬픔과 기쁨에 대한 집착을 놓으라고 한다. 그는 이것 때문에 인간의 모든 번뇌와 사단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미 훤하게 안다. 이 불자에 따르면 낚시가 이러한 집착에 깨뜨리고 참다운 본성에 내맡길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시는 張志和의 <漁子歌>보다 조금 늦게 나온 것으로 唐代 작품이다.
작자는 선자화상(船子和尙)으로, 촉동(蜀東)의 능신(陵信)사람인데, 약산(藥山)에 들어가 선사(禪師)를 공손히 모시며 불법(佛法)을 계승하여 법명(法名)이 덕성(德誠)이다. 본성대로 행하며 행실이 거칠며, 오로지 산수를 좋아하여, 뒤에 상해(上海) 금산현(金山縣) 건흥사(建興寺)(송대(宋代)에 법인사(法忍寺)로 고침)에 은거하였다.
화정(華亭)의 오강(吳江) 주경간(朱涇澗)에 배를 띄워, ‘노를 두드리며 소리높여 노래하고 스스로 마음을 자적하게 갖고, 소리가 드물고 화답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명예를 구하지 않고(鼓棹高歌自適情, 音稀和寡不求名), 사람을 찾아다니며 객을 사귀고 인연에 따라 세월을 보냈다. 예를들어 그의 詞에서 “한번 외로운 배에 맡기면 바로 그것에 빠져, 하늘과 땅에 어느 길이든 生涯가 되네. 歲月을 버리고, 안개와 놀 속에 눕고, 거처하는 강산이 곧 집이라네.(一任孤舟正又斜. 乾坤何路指生涯. 抛歲月․臥煙霞. 在處江山便是家.)”라고 하였듯이, 낚시를 좋아하고 배위에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하였다.
당시 사람은 그의 道가 높은지 몰랐기에 ‘船子和尙’이라고만 불렀으며, 뒤에는 배가 뒤집고서 입적하신 분이다.
불가의 경전 ≪대장경(大藏經)≫ 속에 ≪선자화상기연집(船子和尙機緣集)≫이 있는데, 그의 <어부발도자(漁父撥棹子)>39首를 수록하고 있다.(남송의 보제(普濟)가 편집한 선종의 전적인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조어게(釣魚偈)’ 6首(7언절구 3수와 <어가자(漁歌子)>사3수)를 실고 있음) 이것들은 전체적으로 어부의 생애를 읊음으로써 불교와 도가의 오묘한 이치를 집어넣은 시사로, 그 수량이 많음에 있어 정종(正宗)의 선문(禪門)승려나 문인거사가 따라올 수 없어, 이 방면에 하나의 기치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선종을 선전하고 문학을 감상하고 언어의 운치를 맛보는 면에서 모두 귀중한 가치가 있다.
이들 사는 이미 어부생활의 그림이고, 또한 선기(禪機)의 오묘한 도가 점철되어, 어떤 것은 평담한 듯 하지만 오히려 기이함을 지녀 그 의미를 이해하가 어렵다. 어떤 것은 보면 손가락끝처럼 쉽게 알지만 오히려 모호하고 오묘한 뜻은 그 종지를 깨닫기 어렵다.
그는 낚시꾼으로, 즐거운 마음을 가진 소탈한 어부의 풍모를 가졌다. 그런데 그의 글자 이면에 그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낚았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듯 하다. 그의 낚시하는 모습을 보자.
不妨綸線不妨鉤(불방윤선불방구). 낚싯줄도 괜찮고, 낚시바늘도 괜찮다.
只要釣輪得自由(지요구륜득자유). 다만 낚싯줄만 있으면 자유를 얻고,
擲卽擲․收卽收(척즉척․수즉수). 던지면 던지는 것이고, 걷으면 걷는 것이다.
天踪無迹樂悠悠(천종무적락유유). 창공속의 발자국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즐기면 그뿐.
낚싯줄과 낚시바늘은 신경쓰이지 않는다. 다만 자유를 얻고 유유자적하게 즐길 수 있는 낚시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스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3구에서 말하는 ‘던지면 던지는 것이고, 걷으면 걷는 것이다’에서 우리는 스님의 깨달음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유무의 구별이 없어 던지고 낚는 구별이 없다.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든 사람에게 있어 모든 것이 空이며 無인데, 그러한 구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러한 스님이 낚시에 아주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 낚시에 대한 집착이 또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다.
千尺絲輪直下垂(천척사륜직하수), 천 尺의 낚시줄 직선으로 드리우고,
一波才動萬波隨(일파재동만파수). 물결 하나에 수많은 물결이 따라 움직이고,
夜靜水寒魚不食(야정수한어불식), 저녁은 조용하고 물이 차서 물고기는 입질하지 않고,
滿船空戴月明歸(만선공대월명귀). 배에 가득 달빛만을 싣고 돌아오네.
스님은 저녁 늦게까지 낚시를 한다. 그러나 낚시배는 아무 것도 낚지 못해 텅 비었다. 정말 아무 것도 낚지 못했을까? 스님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배에 가득 싣고 오시는 것이다. 낚시를 드리우니 그 낚시줄에 따라 수면 위에 파동이 하나 만들어지는데, 그 파동에 의해 점점 파동이 많아지며 넓어지는 이치를 깨친 것이다.
번뇌나 집착의 씨앗이 하나 마음속에 자리잡으면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모든 생활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그 씨앗 하나가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비워야 하는 법을 스님은 깨치신 것이다.
그리고 셋째구의 ‘靜’과 ‘寒’의 상태로 인해 결국 스님은 넷째구의 ‘空’의 경지를 깨치신 것이다. 정말로 오묘하게 쓴 선시(禪詩)로, 스님이 그토록 낚시를 좋아한 이유를 조금은 알 듯 하다.
또 다시 그의 시를 보자. 이번엔 낚시를 하는 이유가 조금 다른 것에 있는 듯 하다. 그가 낚으려고 준비한 것은 무엇일까?
三十年來江上游(삼십년래강상유), 삼십년동안 강에서 노닐었네,
水淸魚見不呑鉤(수청어견불탄구). 물이 맑아 물고기가 보이면 낚시바늘을 삼키지 않고,
鉤竿砍盡重裁竹(구간감진중재죽), 낚시대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모두 베고 다시 심었네,
不計工夫便得休(불계공부편득휴). 다른데 신경쓰지 않는다면 좋은 놈으로 분명히 낚으리.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단한 낚시꾼이다. 물이 맑아 사물이 비치는 곳에선 분명 물고기는 입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아는 스님이다. 물론 흐르는 물의 성질 급한 놈은 제외하고 말이다. 나아가 그는 곧게 뻗고 튼튼한 낚시대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밭을 모두 베어 버리고 새로운 종자를 심어 30년을 기다릴 정도다.
전설에 고대의 임공자(任公子)도 매일 회계산(會稽山)에서 동해어(東海魚)를 낚았지만 일년에 한 마리도 낚지 못하다가, 뒤에 마침내 절강(浙江) 동쪽에서 창오(蒼悟) 북쪽에 이르는 몇 개 縣의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거대한 물고기를 낚았다고 한다.
선자화상의 인내심도 임공자 못지 않다. 그런데 그가 낚으려는 것이 임공자처럼 거대한 물고기인가? 아니면 진정한 깨달음일까? 아니면 자신을 이을 훌륭한 후계자일까?
그의 낚시에 대한 집착과 준비는 당연히 결실을 보게 되니, 그가 낚고자 하는 대상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시에서,
三十年來坐釣臺(삼십년래좌조대), 삼십년동안 낚시터에 앉았더니,
竿頭往往得黃能(간두왕왕득황능). 낚시 끝에 종종 黃能을 걸었다.
錦鱗不遇空勞力(금린불우공로력), 아름다운 고기는 만나지 못하면 헛된 노력이니,
收去絲輪歸去來(수거사륜귀거래). 낚시줄을 걷어 돌아올 뿐.
이라고 하였다. 결국 그가 잡고자 하던 것이 ‘황능(黃能)’이었다. 황능은 전하기를 발이 세 개인 자라 ‘오묘하고 신비한 신적인 의미’라고 한다. 자신이 가르침을 받으러 입산한 藥山을 떠날 때, 그는 일찍이 함께 도를 공부한 많은 친구들에게 “만약 영리한 시험관을 만난다면 앞을 향해 가시오, 나는 장차 내가 얻은 것을 전수하여 先師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시속에서 ‘황능’은 아마 그가 禪에 대한 깨달음을 낚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또 이런 고사가 있다. 낚시하고 있는데, 하루는 어떤 관리가 와서 묻기를, “스님은 온종일 무얼 하시오?”라고 하니, 그는 노를 세우고 반문한다. “당신이 오셨군요?” 지극히 선문답을 하고 있다. 관리가 탄식하여 “노는 맑은 물결에 물을 튀기지만, 금빛비늘은 만나기가 드무네.(棹潑淸波, 錦鱗罕遇)”라고 하니, 그는 다만 “홀로 蘭에 의지한 채 저 먼 여울로 들어갈 뿐입니다(獨倚蘭撓入遠灘)”고만 한다.
푸른 물결 속에서 훌륭한 물고기를 만나기가 어렵지만 스님은 향기를 내품는 錦鱗(금린)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는 어떤 물고기를 기다린 것일까?
그의 시를 보면, “어떤 한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가는데, 옛 것과 뒤섞여 융합하여 포장하여 바치면 그 기이함을 믿을 수 있다. 능히 변화할 수 있고 바람과 천둥을 토해낼 수 있다. 실을 드리우면 얼마나 일찍 물고기를 낚을 수 있을까?(有一魚兮溯洄. 混融包納信奇哉. 能變化,吐風雷. 下線何曾釣得來.)”라고 하였는데, 이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고, 기이함을 드러내어 변화할 수 있고, 바람과 천둥을 토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금린이 근본을 가지고 선종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후계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강태공은 위수(渭水)에서 낚시하여 70여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周 文王을 만나, 승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선자화상도 후계자를 낚으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선자화상은 도를 공부한 친구․스님들이 마음에 두고 있던 협산(夾山)이 화정(華亭)에 왔기에, 두 사람은 몇 번 선오(禪悟)를 겨룬 뒤에, 선자화상이 배의 상앗대를 사용하는 바람에 夾山은 세 번이나 강속으로 꼬꾸라졌다.
선자화산이 협산을 보니 이미 선기(禪機)와 깨우침이 있어, 바야흐로 “온 강을 다 낚시했는데, 錦鱗을 겨우 만났네.(釣盡江波, 錦鱗才遇.)”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전해준 것은 다만 도롱이 한 벌 뿐이었는데, 어떤 사(詞)에서 “(나의 생애를 묻는다면 다만 배 뿐, 자손마다 각자 기회와 인연을 막길, 땅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늘로 말미암지 않으니, 도롱이 한 벌을 제외하면 전할 만한 것은 없네.(問我生涯只是船. 子孫各自堵機緣(參悟禪機). 不由地,不由天. 除去簑衣無可傳.)”라고 하였다.
마지막에는 협산에게 권고하여, 지금 이후로는 몸을 없애고 흔적을 숨겨, “하나 중 반개라도 찾아서 잇는다면 단절되지 않을 걸세(覓取一個半個接續, 無令斷絶.)”라고 하고, 선자화상은 곧 배를 뒤집어 물에 들어가 입적하였다.
선자화상이 남긴 <어부발도자(漁父撥棹子)>는 선(禪)문화고, 또한 어(漁)문화다. 아쉬운 것은 전당시(全唐詩)나 전당사(全宋詞)에서 모두 수록하지 않았지만, 다행이도 송인(宋人) 여익유(呂益柔)가 상해(上海) 풍경해회시석비(楓涇海會詩石碑)에 이것을 새겨, 비로소 종교경문(宗敎經文)에 전해지게 되었다.
뒤에 대대로 고승(高僧), 문사(文士)가 예찬하고 노래하여 제발(題跋)한 것이 200여편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청인(淸人) 진이(陳怡)가 선자화상을 노래한 시를 보자.
指點迷途據要津(지점미도거요진). 손으로 가리키는 곳은 길을 잃을지언정 중요한 나루터를 점하고,
長竿短棹一閑身(장간단도일한신). 긴 낚시대 짧은 노 한가로운 몸,
扁舟路覆人歸去(편주로복인귀거), 작은 배에 길이 망가져도 돌아오니,
水色天光千古新(수색천광천고신). 물색과 하늘빛이 천고에 새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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