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우리에게 친숙한 달타령 속에도 등장할 만큼 이태백의 시에는 술과 달을 읊은 노래가 많다.
◇ 이태백의 낚시 |
시 제목에서도 <독작(獨酌)><월하독작(月下獨酌)> 등 술에 관한 많은 시가 있을 뿐 아니라, “잔을 들어 명월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擧盃邀明月(거배요명월),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라는 구절은 술과 달로서 그의 장기를 마음껏 드러낸 명구절이다. 오죽했으면 이태백이 술에 취해 물속에 있는 달을 잡으려다가 물속에 빠져 죽었다는 설이 있었을까?
이백(李白)은 중국에서 두보(杜甫, 시성(詩聖))와 더불어 시선(詩仙)으로 불리며,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는다. 여광중(余光中)은 “술이 호걸의 내장 속으로 들어가면 7할은 달빛으로 숙성되고, 남은 3할은 휙 소리내는 검기(劍氣)로 되며, 빼어난 말이 한번 튀어나오면 곧 성당(盛唐)의 반을 차지하는구나.”라고 하여, 술.달.기개.호방.재능.문단에서의 비중 등 이백과 관련된 것들을 몇 마디 말로 적절하게 설명하였다.
이백은 포부가 컸다. 그는 ‘하늘이 나의 재주를 낳았으니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이다.’란 생각을 가졌고, “관중(管仲)과 안영(晏&23344)의 담론을 펴고, 제왕의 술책을 꾀하여 왕을 보필하여, 세상을 크게 안정시키고 해현(海縣)을 통일시키고 싶었다.(申管晏之談, 謀帝王之術, 願爲輔弼, 使&23536區大定, 海縣淸一.)”(<代壽山答孟少府移文書>)는 포부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두루 제후를 찾아다니고 경상(卿相)들을 만나(遍干諸侯, 歷抵卿相.)’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펼쳐 보이고 포부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이백을 ‘해상조오백(海上釣鰲客)’이라 하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고사가 하나 전한다.
송(宋).조덕린(趙德麟)의 ≪후청록(侯鯖錄)≫卷6에, “이백이 개원(開元) 중에 재상을 방문하여 편지 하나를 건넸는데, 그 위에 ‘해상조오객이백(海上釣鰲客李白)’이라고 썼다. 재상이 ‘선생은 창해(滄海)에 임해서 거대한 자라를 낚았다는데 무엇으로 낚시줄을 만들었습니까?’라고 물으니, 이백이 대답하기를 ‘풍랑(風浪)으로 그 욕심을 없애고, 하늘과 땅에 그 뜻을 두고, 무지개로 낚싯줄을 삼고, 초승달로 낚시바늘을 삼았습니다.’고 했다.
또 묻기를 ‘무엇으로 먹잇감으로 삼았습니까?’라고 하니, ‘천하의 의기(義氣)가 없는 사내를 먹잇감으로 삼았습니다.’고 하였다. 그때 재상이 놀랐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통쾌하고 호쾌한 영웅적인 기개인가? 이백은 그만큼 포부가 컸고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백과 낚시는 어울리는 걸까? 이백과 낚시는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특히 젊은 시절 영웅적인 기개와 포부를 가진 이백에게 있어, 낚시는 이백의 이미지와 연결이 잘 안된다. 낚시는 정적인 활동이며(물론 지금은 바다낚시나 루어낚시가 있어서 그러한 개념이 많이 퇴색되었음), 세월을 낚는 기다림의 수양이다. 이런 욕심없고 자연그대로인 낚시터가 솟아오르는 혈기와 기개를 모두 감내할 수 있을까? 이백같은 사내가 낚시터에 앉아있으면, 낚시터의 물을 모두 끌어다 술을 담그고, 그곳의 물고기를 모두 잡아서 술안주로 삼아, 횃불을 잡고 밤새워 놀며(병촉야유(秉燭夜遊)) 밤낮으로 음주하고 시문을 짓거나, 조정의 실정을 성토하는 비판의 장소로 아예 바뀌어 버릴 듯 하다. 아니면 낚시터에서 술판을 벌이며 하늘 속에, 술잔 속에, 강물에, 떠있는 달이나 세지 않았을까? 그래서 애당초 ‘연파조도(煙波釣徒)’나 ‘소원선생(蘇原先生)’과 같이 자연과 하나되고, 산수화의 그림속 풍경이 되는 그런 조용하고 한가로운 낚시는 기대하기 어렵다.
어쨌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그 지나친 자신감은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광기(狂氣)로 표현되어, 그의 앞길을 막고 있음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그는 미친 듯 상규에 구속됨이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였는데, ‘만승(萬乘)의 왕을 놀리며 동료처럼 여겼고, 짝하여 늘어선 사람을 쓸모없는 물건처럼 여겼고(戱萬乘若僚友, 視&20756列如草芥.)’, 그는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스스로 말하길 저는 술 속의 신선이라고 하였고(天子呼來不上船, 自云臣是酒中仙.)’ ‘나는 본래 초나라 미친 사람으로, 미친 사람의 노래로써 공자를 비웃는다!(我本楚狂人, 狂歌笑孔丘!)’고 하였으니,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곱게 보일리 있겠는가? 상규에 구속되지 않는 행동과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는데, 이러한 광적인 행동이 오히려 이백의 기질을 상징하는 말로 되었으니, 통치자들의 눈에는 가시같은 존재였을 터이다.
이백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나이 40에 그의 친구 오균(吳筠)의 천거로 현종(玄宗)을 만나게 되었다. 현종은 그를 아주 우대하여 한림(翰林)을 시켰고, 더 높은 벼슬을 주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환관들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임금의 수건으로 입가를 닦고(龍巾拭吐)’, ‘황제의 손가락으로 국을 맛보고(御手調羹)’, ‘고력사(高力士)의 신발을 벗기고(力士脫靴)’, ‘양귀비(楊貴妃)에게 벼루를 들게 하였다(貴妃捧硯)’는 등 숱한 일화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들이 문학방면에서는 장점이 되면서도, 정치적인 면에서는 단점으로 작용되었을 터이다. 결국 화려했던 3년간의 장안생활을 끝으로, 방랑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인생 지금세상에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조그만 배를 띄우리(人生在世不稱意, 散髮弄扁舟)’라고 말한 것 말처럼, 그는 강호를 떠돌며 신선을 찾고 도사(道士)를 방문하지만, 이때까지는 자신의 포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열정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의 <행로난(行路難)>을 보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열정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行路難>첫째 수
李白
金樽淸酒斗十千, 玉盤珍羞直萬錢.(금중청주두십천, 옥반진수치만전)
停杯投箸不能食, 撥劍四顧心茫然.(정배투저불능식, 발검사고심망연.)
欲渡黃河&20912塞川, 將登太行雪滿山.(욕도황하빙식천, 방등태행설만산.)
閑來垂釣碧溪上, 忽復乘舟夢日邊.(한래수조벽계상, 홀복승주몽일변.)
行路難! 行路難! 多&27495路, 今安在?(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금 항아리 맑은 술 수만 되,
옥쟁반에 귀중한 음식은 만전의 값어치.
잔 멈추고 젓가락 던져 차마 먹지 못하고
칼 빼어 동서남북 둘러봐도 마음은 막막하다.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강을 막고
태행산을 오르려니 온산이 눈으로 덮혔네.
한가로이 푸른 시내에 낚시를 드리울까,
갑자기 다시 伊尹처럼 발탁되는 꿈이나 꿔 볼까,
가는 길이 어려워라! 가는 길이 어려워라,
여러 갈래의 길, 지금 어디가 편안할까?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런 때가 오리니,
구름끝에 돛을 올려 푸른 바다 건너가리!
중국의 낚시글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閑來垂釣碧溪上, 忽復乘舟夢日邊.’의 구절을 인용하여 이백이 낚시를 즐겼다고 하지만, 사실 이 구절의 숨은 뜻은, “한가로와 시간이 넉넉하다면 강태공처럼 푸른 시내에서 낚시하여 주 문왕을 만나볼까? 아니면 다시 이윤(伊尹)처럼 배를 타고 해와 달 주위를 맴돈 꿈을 꾼 뒤 은(殷)나라 탕왕(蕩王)을 만나볼까?”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낚시와는 전혀 상관없고 낚시&8228배와 관련하여 재상이 된 옛 현인들의 고사로써 자신의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바로 아직까지 이백의 기백이나 희망이 없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천보(天寶)14년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고, 그는 여산(廬山)에 은거하였다. 그해 이백이 심양(尋陽 혹은 &28527陽)의 이현(&40671縣)에 놀러왔었고, 공교롭게도 영왕(永王) 이린(李璘)이 반란을 일으켜 이곳을 지났는데, 평소 이백의 才名을 그리워하였기에 자신의 막료로 불렀다. 결과적으로 이린의 난이 실패하여, 곽자의(郭子儀)의 도움으로 겨우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때 지은 <조대(釣臺)>라는 시에,
磨盡石嶺墨(마진석령묵), 검은 바위등성 다 닳아 검고,
&28527陽釣赤魚(심양조적어). &28527陽에서 붉은 고기를 낚네.
靄峰尖似筆(애봉첨사필), 안개 자욱하게 낀 뾰족한 봉우리는 붓 같은데,
堪畵不堪書(감화불감서). 감히 그림으로 그릴 수 있지만 글로는 표현하지 못하겠네.
라고 하였다. 실제로 이현(&40671縣)에 백상(白象)&8228청사(靑獅) 두 봉우리가 서로 대치하고 있기에 <釣臺>詩를 썼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숙종(李亨)과 동생 李璘이 대치하는 형국으로, 동생이 반란을 일으킨 일을 읊은 듯 하다. 결국 심양(&28527陽)에서 그는 붉은 고기, 이린(李璘)을 낚았고,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서로 대치한 뒷날의 형세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뒤에 사면을 받고 당도(當塗)의 이양빈(李陽&20912)에 의지하던 시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남쪽의 산수를 감상하면서 산수시를 쓰기도 했고, 좋은 낚시터를 만나 마음이 동하면 낚시를 하였던 것이다.
옛말에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학문하는 서생(書生)이 뜻을 잃고 곤궁할 때요, 가장 불쌍한 경우는 호탕하게 놀던 한량의 머리칼이 어느덧 하얗게 새버리는 것이라!” 이제 이백도 어느덧 60언저리에 앉아, 객지에서 남에게 의탁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낚시터는 왜 한창 젊은 혈기가 넘칠 때는 찾지를 않다가, 인생의 종착지에 도달할 즈음에야, 낚시찌를 바라보며 인생을 회상하게 되는가 말이다. 혈기왕성하여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오히려 낚시터를 찾아 심신을 안정시키고 생활의 활력을 충전하고, 한가로운 자연 속에서 옆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인생에 있어 마침 적절한 안배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게 아닌 모양이다. 시련을 겪어봐야 안다고 그 시절에는 누구의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 법이니...
어쨌든 이 시기에 쓴 이백의 釣魚詩에는 제법 낚시꾼의 모습이 배어난다.
<최사경에게 화답하여(酬崔士卿)>
嚴陵不從萬乘游(엄릉불종만승유), 엄자릉은 황제를 따라 더불어 놀지 않고,
歸臥空山釣碧流(귀와공산조벽류). 텅빈 산으로 돌아와 눕고 푸른 시내에서 낚시하네.
自是客星辭帝坐(자시객성사제좌), 이로부터 客星은 황제와 멀어졌는데,
無非太白醉揚州(무비태백취양주). 太白이 아니면 揚州에서 취할 사람 없으리.
<능양을 내려가며 삼문탄과 육자탄을 노래하며(下陵陽訟三門六刺灘)>
三門橫峻灘(삼문횡준탄), 三門은 가로 지른 험한 여울,
六刺朱波瀾(육자주파란). 六刺는 붉은 파도가 밀려오는 물결.
石驚虎伏起(석경호복기), 바위의 형상은 놀란 호랑이가 엎드리거나 일어선 듯 하고,
水狀龍盤旋(수상룡반선). 물결의 형상은 용이 또아리를 튼 듯 휘감아 돌고.
何愁七里瀨(하수칠리뢰), 무슨 근심이 七里瀨에 있어,
使我欲投竿(사아욕투간). 나에게 낚싯대를 던지고 싶게 만드나?
<고소계(姑蘇溪)>
愛此溪水閑(애차계수한), 이 시냇물이 한가로운 것이 좋아,
乘流興無極(승류흥무극). 물길을 타고 흥도 끝이 없어라.
擊楫&24597鷗驚(계즙파구경), 노로 물을 치면 갈매기가 놀랄까 두렵고,
垂竿待魚食(수간대어식). 낚싯대를 드리우고 입질오기를 기다리네.
波&32763曉霞影(파번효하영), 물결이 밀려들며 새벽 놀이 비치고,
岸疊春山色(안첩춘산색). 산기슭은 첩첩이 산에는 봄색깔.
何處浣紗人(하처완사인), 어느 곳에 浣紗人이 있나,
紅顔未相識(홍안주상식). 붉은 홍안에 안면도 없는데.
<청계강 바위위에서 홀로 술마시다 권소이에게 보냄(獨酌淸溪江石上寄權昭夷)>
我携一樽酒(아휴일준주), 나는 술 한통을 가지고,
獨上江祖石(독상강조석). 홀로 江祖石에 올랐네.
自從天地開(자종천지개), 천지가 열려서부터,
更長幾千石(경장기천석), 몇 천개의 바위가 다시 생겨났네.
擧杯向天笑(거배향천소), 술잔을 들어 하늘을 향해 웃으니,
天回日西照(천회일서조). 하늘은 햇살을 서쪽으로 비쳐주는구나.
永望坐此臺(영망좌차대), (나는) 이 釣魚臺에 올라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長垂嚴陵釣(장수엄릉조). 嚴陵은 낚시를 오랫동안 드리웠네.
寄語山中人(기어산중인), 산중인에게 말을 건네면,
可與爾同調(가여이동조). 당신도 함께 어울릴 수 있을텐데.
이백의 조어시를 읽으면 마음이 아프다. 천지간에 무서울 것이 없었던 이백의 기개가 너무나 여리게 느껴져서일까? 초리대끝이나 찌를 바라보는 이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만년에 쓴 그의 조어시는 낚시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한없는 인생의 감회만이 가슴으로 밀려든다.
아마 가까이 엄자릉조대가 있었기에 그는 한 대(漢代) 광무제(光武帝)를 떠나 부춘강(富春江)에 은거하여 낚시한 엄자릉(嚴子陵)을 무척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릉조대(嚴陵釣臺)&8228칠리탄(七里灘)&8228청계강(淸溪江) 등을 시어를 인용하여, 엄자릉고사를 읊고 있지만 정작 낚시의 즐거움에 물아일체(物我一體)되는 모습이 없다. 그나마 <고소대(姑蘇溪)>가 낚시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지만, 정조는 외롭고 슬프기 그지 없다.
애당초 낚시와 이백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있잖은가? 친구들과 낚시를 가면 낚시보다도 주변의 경치에, 분위기에 이끌려 낚시보다는 술에, 은은하게 비춰주는 달빛을 조명삼아 도란도란 얘기에 빠지는... 그런 부류들 있잖은가? 아니면 너무 활동적인 사람이고 말을 마구 뱉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어서 애시당초 입을 봉하고 묵수법(&40665修法)을 연마하는 듯한 낚시는 오히려 고통일 수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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