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까비르의 詩

醉月 2012. 12. 11. 07:58
까비르는 15세기 인도의 영적인 시인이다.
인도 베나레스에서 베틀 짜던 직공이었으며 평생동안 그는 단 한 줄의 詩도 손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영혼의 말들은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서 아름다운 詩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까비르는 神을 손님이라 부른다.
까비르는 수피즘과 박티운동이 낳은 위대한 영감의 원천이며, 인도 민중문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또 타고르에게 영감을 주어 그의 시집 '기탄잘리'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벗이여......
벗이여, 살아 있는 동안 그(神)를 찾으라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알라
삶의 이 자유가 계속되는 동안,
살아 있는 동안 삶의 속박를 풀지 못하면 죽어서 자유를 원해 또 무얼 하리오
오직 영혼만이 그와 합한다고 여김은 참으로 크나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육체라는 이 에너지 통로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를 발견하라 <지금> 그를 찾지 못하면
그대 갈 곳은 죽음의 도시뿐이라네
지금 그와 하나가 되라, 내일이 아닌 바로 지금부터
진리에 젖어라, 진정한 스승을 알라
그리고 진정한 <신(神)의 이름>을 굳게 지켜가라

 까비르는 말한다 [목마르게 찾는 영혼만이 그를 만나리라 그런 영혼에게 내 모든 걸 바치리라. 찾는자여 문은 열린다.]

 

버 림
형제여
어떻게 이 마야(MaYa-幻影)을 떠날 수 있겠는가.
리본은 버렸으나 아직 옷이 남아있다.
옷을 버렸으나 아직 그 옷주름이 내 몸을 덮고 있다.
욕망을 버렸으나 거기 분노가 남아있다.
탐욕을 버리자 거기 자존심과 허영심이 남아있다.
마음이 마야를 멀리 떠났을 때 거기 아직도 언어가 남아 있었다.
나, 까비르는 말한다.
친구여 듣게나.
진리의 길이란 결코 쉽지 않다네.
그대 옆에 있다
친구여 어디 가서 나를 찾느냐?
보라.
나는 그대 옆에 있다.
나는 사원에도 없고
우주에도 없다.
나는 히말리아 산정에도 없고
카바 신전에도 없다.
저 거룩한 의식 속에도
요가의 수련 속에도
그리고 출가 수도의 길에도 나는 없다.
그대 진정한 구도자라면 지금 여기에서 나를 보리라.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나 까르비는 말한다.
찾는 자여.
神은 모든 존재의 호흡 속에 있다.
그 호흡속의 호흡이다.

 

움직임
의식과 무의식의 양극 사이에서 마음은 시계추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이 세계 전체가 이 움직임에 매달리고 있다.
이 움직임은 영원히 멎지 않는다.
뭇 존재들이 여기 있다.
해와 달이 그리고 그들의 궤도가 여기 있다.
수수억년이 지나간다.
이 움직임이 가고 있다.
하늘과, 땅이, 공기가, 물이 움직이고 있다.
그(神) 자신이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 움직임 속에서.
머언 내 눈이 내 몸에 달빛이 우리고 있다.
그러나 머언 내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
달이, 해가 내 몸속에 있다.
영원의 북이 내 몸에서 울리고 있다.
그러나 머언 내 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와 '나의 것'이라고 외치는 동안 그대의 노력은 무가치하다.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애착이 사라질 때
神의 일이 시작된다.
일의 목적은 '지혜의 획득'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었을 때 일은 끝난다.
꽃은 열매를 위해 피는 것
열매가 열리면 꽃은 떨어진다.
사향 주머니는 노루의 배꼽주변에 있다.
그러나 이를 모르고 노루는 그 냄새의 행방을 찾아 온 숲속을 헤매고 있다.

 

이 질그릇 속에
이 질그릇(육체) 속에 나무그늘과 숲이 있다.
창조주가 있다.
이 질그릇 속에 일곱 바다와 무수한 별이 있다.
이 질그릇 속에 영원한 것이 메아리치고 맑은 샘물이 솟는다.
나, 까비르는 말한다.
듣거라 친구여 그(神)는 이 질그릇 속에 있다.

 

오직 하나

내 몸이여, 내 가슴이여 당신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잠은 멀리 가버리고 내 가슴은 쉴 줄을 모릅니다.
누가 이 가슴을 당신에게 전해줄까요.
누가 피리를 불어 누가 피리를 불어 나를 이리 떨게 하는가.
심지도 없이 불이 타고 뿌리도 없이 연꽃이 된다.
여기,
그 분의 우산밑에서 그 분의 우산밑에서 수만개의 해와 달이 별들이 흐른다.
그 분은 내 마음속의 마음이요 내 눈속의 눈이다.
강물이 바다에 가듯 당신에게 이어진 내 가슴의 줄을 어떻게 끊어 버릴 수 있겠는가
연잎이 물위에 살 듯 당신은 나의 주인이요 나는 당신의 종이다.
시간의 처음에서 그 끝까지 거기 당신과 내가 있다.
우리 가슴의 불을 끌 자는 누구도 없다.
나, 까비르는 말한다.
강물이 바다에 가듯 내 가슴이 그대에게 닿는다.

 

편 지
친구여,
그 분을 만나고 내 가슴은 뛴다.
내 젊음은 넘치고
이별의 고통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는 아직
지식의 좁은 길에서 방황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곳에서
그 분의 소식을 들었다.
그 분의 편지를 보는 순간
죽음은 멀리 가버렸다.
물속에서 물고기가
물속에서 물고기가
목말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그대는 못보는가.
진실은 그대 가슴속에 있는데도
그대는 숲 속을 미친 듯 헤매고 있다.
여기 진리가 있다.
베나레스로 마투라로
아무리 가보아도
너 자신의 가슴을 발견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환영(幻影)일 뿐이다.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그(神)가 그 자신을 내보일 때
이 현상계가 창조된다.
물 속에 있는 씨앗처럼
나무 속에 있는 나무 그늘처럼
하늘 속에 있는 빈 공간처럼
빈 공간 속에 있는 영원한 형상처럼
저 무한의 너머에서 '무한'은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무한'에서 '유한'이 전개되었다.
창조력은 브라만 속에 있고
브라만은 창조력 속에 있다.
이들은 영원히 구분되면서
동시에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
그(神)는, 그 자신은
나무와 씨와 새싹이다.
그는, 그 자신은
꽃이요 과일이요 그늘이다.
그는, 그 자신은
태양의 빛이요 빛을 받는 것이다.
브라만이요 창조력이요 마야다.
그는, 그 자신은
수많은 형상이요 무한한 공간이다.
그는 호흡이요 세계요 의미다.
그는, 그 자신은
유한이요 무한이다.
그리고 동시에 유한과 무한을 넘어서 있다.
그는
존재의 순수 그 자체이다.
그는 브라만 속에 내재하는 마음이요
그 창조력이다.
그는 그대의 영혼 속에 비치고 있다.
본질은 그대 속에 비치고 있다.
그리고 이 본질 안에는
그것들(그와 그대)이 다시 비친다.
나, 까비르는 축복받았다.
왜냐면 나는 이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음(音)
해가 뜨고 달이 비치고
별이 빛난다.
사랑의 음율이 울린다.
사랑의 음율이 시간을 친다.
밤낮으로
음악이 하늘을 채운다.
나, 까비르는 말한다.
그(神)는 섬광이다.
하늘을 가르는 섬광이다.
보라.
숭배의 긴 등불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우주는 밤낮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의 영광을
저기 보이지 않는 깃발 무수히 펄럭인다.
보이지 않는 악기의 음이 울리고 있다.
나, 까비르는 말한다.
여기 숭배는 영원히 이어진다.
그(神)는 그의 자리에 앉아 있다.
보라.
물이 없는 곳에서 연꽃이 피고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연꽃이 피고 있다.
그대 가슴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음이 울리고 있다.
삶과 죽음은
그대의 왼손과 오른손이다.
나, 까비르는 말한다.
현명한 이는 말하지 않는다.
이 진리는
이 세상 어느 책에도 쓰여 있지 않다.
이를 깨달으라.
무지한 자는 현명해질 것이요.
현명한 이는 침묵을 지키게 될 것이다.
하늘은 음(音)으로 가득한다.
음악을 켜는 손도 없이 줄도 없이
음악이 연주된다.
거기 기쁨과 고통의 게임은 계속된다.
나, 까비르는 말한다.
삶의 바다 속에 그대 삶을 던져 넣어라.
그(神)의 축복으로 그대의 삶은 가득하리라.
<강>과 <물결>은
<강>과 <물결>은 하나라네
강과 물결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물결이 일 때도 그것은 강물이요
물결이 잠잘 때도 또한 강물이니
벗이여 말해보라, 여기에 무엇이 다른가를
물결이기 때문에 더이상 강물일 수 없다는 말인가
유일자 속에서 이 우주는
로자리오의 구슬들처럼 흩어져 있다네
보라, 지혜의 눈으로 저 로자리오를
로자리오(*염주)의 흩어져 있는 구슬들을.

 

비밀의 언어
저 <비밀의 언어>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는 이렇다니, 그는 저렇다니......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내안에 있다고 해도 맞질 않고
그가 내 안에 없다고 해도 맞질 않네
그는 내면 세계와 바깥 세계를 하나로 만드네
의식과 무의식이란 오직 그의 발받침대에 지나지 않을 뿐
그는 드러내지 않는다네
그는 감추지도 않는다네
그를 형용할 언어란 없다네
진리는...
갠지즈에 가 보라, 거기 물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네
성수(聖水)에 목욕한다는 것이
정말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난 알았네
모든 석상들은 생명이 없다네
무릎이 닳도록 불러 보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네
경전이나 코란 역시 언어에 지나지 않으니
비밀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나는 분명히 보았다네
그리고 까비르의 언어는 체험에서 나오니
진리는 체험을 통해서만 입증이 된다네
까비르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네
그대가 가는길은...
요기의 마음은
사랑의 빛깔로 채색되어 죽는 게 아니라
차디찬 법복(法服) 속에서 죽는다네
그는 신(神)의 집에 앉아서
신(神)을 멀리하고 석상을 숭배하고 있다네
기다란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다네
그는 마침 염소와 같다네
숲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모든 욕망을 죽이고
자신을 마른나무처럼 만드네
그리고그는 <기따>경전을 읽고 굉장한 이야기꾼이 된다네
까비르는 말한다
[요기여, 그대는 손발을 꽁꽁 묶은채로 지금 죽음의 문으로 가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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