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김선자의 소수민족 신화기행_01

醉月 2009. 10. 31. 09:40

‘구이저우(貴州) 이야기’

단풍나무의 후손을 찾아

구이저우(貴州)성. 중국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지금도 구이저우성이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 같은 것이 엄청나게 묻혀있어 주목 받는 곳도 아니고 번쩍이는 대도시가 즐비한 화려한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중국 최대의 폭포인 황궈수(黃果樹)폭포가 있고 산둥성 취푸(曲阜)의 공자 사당만큼이나 멋진 건물을 가진 문묘(文廟)가 있다. 명나라 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몇백년 동안 똑같은 풍습을 지닌 채로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는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도 단결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먀오족(苗族)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 그뿐인가, 구이저우성에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갈피갈피에 통족, 이족, 토가족(土家族) 등 여러 민족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소수민족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곳이다.
구이저우성 공자사당 문묘의 용조각 기둥.

구이저우성의 성회인 구이양(貴陽)에서 동쪽으로 카이리(凱里)까지 가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고요하게 흐르는 두류강(都流江)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먀오족과 동족들이 사는 첸동남 지역으로 접어든다. 구이저우성은 간략하게 ‘첸(黔)’이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첸동남이란 구이저우성 동남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두류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들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높은 산꼭대기에 먀오족의 마을이 생긴 것은 청나라 때 먀오족이 기의를 일으켰을 때 그들을 토벌하려는 중앙정부의 군사들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아픈 역사는 지금도 그들의 피 속에 여전히 남아있어 10여 년쯤 전에는 자신들이 조상이라고 여기는 ‘치우(蚩尤)’를 모욕한 자들과 일전불사의 의지를 불태웠던 적도 있다. 소수인 그들을 그렇게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먀오족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자신들이 머나먼 중원 땅에서 세 개의 큰 강을 건너 지금의 구이저우성으로 이주해왔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오랜 전설은 이렇다.
두류강 건너편으로 먀오족의 마을이 보인다.

“치우가 황제(黃帝)와 싸워서 졌어. 그래서 치우가 아들들에게 묘족을 이끌고 떠나라고 했지. 아들들은 혼수와 청수, 흑수를 건너 이곳으로 왔어. 우리 바사 사람들은 바로 치우 셋째 아들의 후손이야.”

구이저우성 동남부 충장현(從江縣) 근처 바사(沙) 먀오족 마을 노인의 말이다. 황제와 치우의 전쟁은 중국신화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쟁이다. 중원의 신 황제와 동이의 신 치우가 탁록에서 맞붙었고, 그 치열한 전투에서 치우가 패하여 목이 잘린다. 그리고 치우의 손과 발을 묶었던 수갑과 차꼬에 묻은 피에서 이루지 못한 치우의 한처럼 붉디붉은 단풍나무가 자라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풍나무’를 잘 기억해두시라.
구이저우성에는 명나라때 중원에서 내려온 군인들의 후손이 그 시절의 풍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마의 머리카락을 뽑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바사 먀오족 마을은 충장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321번 국도가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그런데도 바사 사람들은 중국어를 하지 않는다. 마을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군위안량(滾元亮)만이 중국어를 할 뿐, 다른 사람들은 그저 환한 미소로 자신들의 마음을 대신할 뿐이다.(이 마을은 중국 구이저우성의 인물 사진작가인 루셴이(盧現藝)의 강렬한 사진들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2003년 7월에 프랑스 아를에서 열린 세계 사진전에 ‘바사 먀오족사람들’이라는 사진을 출품하여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베이징의 다산쯔 예술인 지역(大山子藝術區) 어디쯤에서는 아마 그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마을은 숲속에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바사’라는 마을 이름이 ‘풀과 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임을 밝혀주는 돌 하나가 서있다. 바사 사람들에게 나무는 바로 생명이며 조상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고 사람이 죽어도 나무를 심는 곳, 나무가 없는 그들의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신성이 깃들어 있다. 나무가 말라죽어도 그들은 그 나무가 저절로 쓰러질 때까지 절대로 베지 않는다.

바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엄청나게 굵은 향장목(香樟木) 뿌리가 모셔져 있다. 앞에는 ‘나무의 신(樹神)’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1976년 어떤 사람이 마오쩌둥기념관을 만드는 데 바치겠다며 다른 마을 청년들을 동원해 그 나무를 베었다. 나무가 쓰러질 때 비바람이 몰아쳤고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놀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 사건에 대해서 듣고 난 뒤 당 중앙에서 그 나무의 뿌리를 원래 자리에 그대로 모셔두라고 허락하여 지금의 ‘신수정(神樹亭)’이 생긴 것이다. 나무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그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모든 통과 의례는 숲속에서 행해지고 죽으면 숲에 묻히며, 그 숲에는 성스러운 단풍나무가 있다.

바사의 대표자 역할을 맡고 있는 군위안량의 뒷모습.
단풍나무는 그들의 생활에서도 주로 제의와 관련되어 있다. 먀오족 사람들의 큰 제사인 고장절에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의 뿔을 묶는 나무도 단풍나무이며 조상들의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여겨지는 북 역시 단풍나무로 만든다. 집을 지을 때에도 가운데 큰 기둥은 단풍나무로 세운다.

단풍나무에서 메이방이 태어났네
단풍나무에서 메이류가 태어났지
찬미하고
노래하네

지금도
아빠 엄마가 너와 나를 낳으시지
탄생에 대한 이야기,
들려줄 만한 것이라네
아득한 옛날을 생각해보세
단풍나무가 메이방메이류를 낳았어
어머니가 계셔야
너와 내가 있는 것,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러야 하지.

메이방의 탄생을 노래해
메이류의 탄생을 노래해

먀오족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여기는 ‘먀오족의 오래된 노래(苗族古歌)’에 들어있는 ‘단풍나무의 노래(楓木歌)’의 한 대목이다. ‘메이방메이류(妹榜妹留)’는 ‘호접마마’ 즉 ‘나비엄마’라는 뜻을 가진 여신이다. 그녀는 이렇게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메이방이 다 자랐네
메이류가 다 자랐어

이제 짝을 찾아 나서네
무슨 옷을 입었나?
무슨 치마를 걸쳤나?

방류가 짝을 찾아가네
꽃무늬 옷을 입고
꽃무늬 주름치마를 두르고
꽃무늬 옷 몸에 잘도 맞네
주름치마도 몸에 꼭 맞아

호접마마 방류
오얏나무 아래에서 짝을 찾아가네
누구와 함께 갈거나?
짝을 찾을까? 못 찾을까?

강물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강물은 너무 거칠어
짝이 되지 못했네
태양과 짝 이뤄볼까 했으나
짝이 되기 직전
검은 구름이 나타나 막았네
그들은 짝이 되지 못했네

호접마마 방류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누가 그와 함께 짝을 이룰까?

호접마마 방류
작은 물거품을 사랑했네
말도 할 줄 알고 노래도 할 줄 알아
생긴 것도 아름다우니
그와 함께 떠나
마침내 짝이 되었네

이렇게 그녀는 ‘작은 물거품’과 혼인하여 열두개의 알을 낳는다. 최초의 인간 장양(姜央)이 그 알 속에서 나왔다. 나머지 알에서는 우레신과 용, 뱀, 호랑이, 코끼리, 지네 그리고 착한 신과 나쁜 신들이 나왔다. 인간이라고 해서 자연계의 다른 것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인 장양은 동물, 귀신과 마찬가지로 알에서 태어난다. 그 모든 것들을 품어주고 지켜주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 여신, 호접마마이며 그 호접마마는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 앞에서 치우의 영혼이 단풍나무로 변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자. 먀오족 사람들, 그들은 단풍나무의 후손이며 또한 치우의 후손이다
나비는 영혼이다.

온갖 빛깔의 꽃이 피는 귀한 단풍나무에서 나온 호접마마의 후손들은 나비를 영혼으로 여긴다. 그래서 먀오족(苗族) 사람들은 집으로 고운 나비 한 마리가 날아 들어오면 조상님이 배가 고파 찾아 오셨다고 여기고 상을 차려드린다. 다른 사람과 다툴 때 나비가 나타나면 조상님이 그 다툼을 못마땅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싸움을 그만둔다. 푸른 숲 한가운데에서 홀연히 꿈처럼 날아오르는 찬란한 나비, 꿈틀거리는 몸을 벗어버리고 가볍게 훌쩍 날아오르는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혼’을 의미한다.
먀오족의 성인식. 마을의 지도자 군위안량에 낫으로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있다.

그 호접마마가 알록달록한 빛깔의 알 열두 개를 낳는다. 창세의 신 푸팡(府方)이 커다란 할미새를 불러다가 알을 품으라고 했다. 먀오족의 신화에는 거인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푸팡은 다리 관절이 아홉 개나 있고 팔이 여덟 쌍 있는 거인이다. 물고기 아홉 광주리, 찹쌀 떡 아홉 통을 먹는 힘센 그가 한데 붙어있던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고, 거인신 양유(養優)는 산을 만들었으며 머리에 뿔이 있는 거인 슈뉴는 강을 만들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없어서 하늘과 땅이 흔들거릴 때 바오궁(寶公)과 슝궁(雄公), 쥐궁(且公)과 당궁(當公)이 머나먼 곳에서 온갖 고생 끝에 금과 은을 가져다가 녹여 금 기둥, 은 기둥을 만들어 하늘을 받쳤다.

은 장신구로 치장한 먀오족 여성들.
기둥은 만들었지만 해와 달이 없어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신들은 고민했다. 어떤 모양으로 해와 달을 만들까? 돌을 강물에 던질 때 퍼져나가는 둥근 물결무늬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들은 그 무늬를 모델 삼아 해와 달을 만들었다. 거인 신들은 금으로 열두 개의 태양을, 은으로 열두 개의 달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로 별을 만들었다. 거인 신들이 왼쪽 어깨에 태양을, 오른쪽 어깨에 달을 지고, 소매에는 별을 넣고 허리에는 은하수를 차고 푸른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을 제자리에 놓았다. 다른 버전에 의하면 하늘에 걸린 해와 달이 자꾸 흔들리니까 남은 부스러기로 별을 만들어 못처럼 하늘에 박아놓았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열두 개의 태양과 달이 질서를 무시하고 한꺼번에 떠오르니 활 잘 쏘는 신 쌍자(桑札)가 한 개의 태양과 달만 남기고 다 쏘아서 떨어뜨렸다.

한 개씩 남은 태양과 달은 겁이 나서 숨어버렸고 세상은 암흑천지가 되었다. 숨어있는 해와 달을 불러내기 위해 신들은 온갖 동물들을 보내지만 결국 수탉의 청랑한 목소리에 해와 달이 다시 나온다. 신들은 세상에 다시 빛을 가져다준 수탉의 공로를 기려 예쁜 빗을 하나 주었고, 수탉은 그것을 자랑스레 머리 위에 꽂고 다녔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수탉의 붉은 볏이다.

먀오족의 창세신화에는 이렇게 많은 거인 신들이 등장한다. 서구의 신화에도 세상의 시작에는 거인 신들이 있다. 그 거인 신들의 신화가 피로 물들어 있다면 먀오족 신화의 거인 신들은 선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지금의 먀오족 사람들처럼 부지런하다. 금과 은을 운반해오기 위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해와 달을 하늘로 운반하다가 실수로 해와 달을 물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는 일이 없다. 언제나 유쾌하게 함께 힘을 합해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침내 창조의 거대한 작업을 마무리한다.
먀오족 여성들이 치마에 수놓는 3개의 선은 그들이 이주할 때 건너온 3개의 강을 의미한다. 역사를 옷에 기록하는 것이다.

한편 노란 알에서 나온 최초의 인간 장양(姜央)은 하얀 알에서 나온 우레신 뇌공(雷公·꺼우하오라고도 한다)과 끊임없이 다툰다. 먀오족의 오래된 노래는 열두 개의 알 이야기에서 홍수이야기로 이어진다.

열두 개의 알에 관한 노래 다 끝났네/ 이제 무얼 부를까/
다른 구연자가 와서 노래 이어 가네/ 홍수가 하늘까지 차오른 노래를 불러야지/

알에서 태어난 장양과 뇌공, 호랑이와 용 등은 누가 땅의 주인인가를 놓고 내기를 한다. 땅은 결국 꾀를 써서 승리한 장양의 차지가 되며 뇌공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뇌공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개 한 마리만 남기고 소와 말을 모조리 갖고 가버렸다. 세상에 남겨진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농사를 지으려니 농사가 잘될 리 없다. 화가 난 장양은 마침내 뇌공을 찾아간다.

“누렁이가 힘이 없어 논을 갈지 못해. 내게 너의 소를 빌려주면 논을 갈고 나서 돌려주지.”

하지만 장양은 논을 다 갈고 난 뒤에 소를 죽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고기를 다 먹어버렸다. 소의 꼬리와 뿔만 남겨 논에 묻어두고 장양은 뇌공에게 달려가 슬픈 척 하며 말했다.

“뇌공아. 이를 어떡하지? 논이 질척이고 소는 무거워서 논을 다 갈고 나니 소가 그만 논에 빠져 묻혀버렸단다.”
구이저우성 동남부의 계단식 논.

뇌공은 그 와중에 녹색 비단옷을 챙겨 입고 상투를 잘 매만지고서 논으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정말 소의 꼬리와 뿔만 보이는 것이었다. 놀란 뇌공이 소의 꼬리를 잡아 당겨보고 나서 피가 묻어있지 않은 것을 보고 장양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네 이놈, 남의 소를 빌려다가 다 먹어버려? 내가 하늘로 돌아가 쇠망치와 도끼를 들고 돌아와 네 놈을 죽일 것이다.”

비단옷을 챙겨 입고 상투까지 틀고 왔는데 장양에게 속아 공연히 힘을 쓰느라 비단옷은 더럽혀지고 상투는 흐트러진 것이 생각할수록 분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진다. 뇌공이 마침내 장양에게 잡혔지만 장양이 외출 한 사이에 장양의 두 아이는 뇌공이 보여주는 현란한 마술에 정신을 빼앗겨 그가 원하는 물과 도끼를 가져다준다. 오누이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뇌공은 오누이에게 조롱박 씨앗을 준다.

“나를 살려줘서 고맙구나. 이 씨앗을 심어라. 이틀 후에 창고보다 큰 조롱박이 열릴 거야.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들어가렴. 큰 배가 되어 너희를 보호해 줄 거야.”

하늘로 돌아간 뇌공은 ‘하늘의 배꼽’을 열어 비를 퍼부어 홍수를 일으켰고 착한 오누이는 거대한 조롱박 속에 숨어 대홍수에서 살아남는다. 뇌공과 싸우러 하늘로 올라간 장양은 그곳에 남고, 오누이만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혼인을 하게 된다. 마침내 먀오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바사 먀오족 마을의 군위안량(滾元亮)이 바로 그 장양의 화신이다. 그의 키는 정말 작다. 군위안량이 어려서 키가 자라지 않자 어머니가 마을의 장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장로는 귓속말로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장양의 화신이야.”

먀오족 여성의 치마에 나비 무늬의 자수가 새겨져 있다.
중국 국무원에서 유일하게 총을 지니고 다녀도 된다고 허락해주었다는 바사 먀오족 마을의 지도자 군위안량, 그가 지니고 다니는 총의 크기만큼 키가 자랐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강렬한 지도력으로 마을을 이끈다. 숲 속의 통과 의례에서 오랜 전통에 따라 낫으로 머리를 밀어주는 그의 얼굴에서 단풍나무의 후손, 강인한 장양의 모습을 본다.

오랜 옛날, 동쪽에서 살던 먀오족의 인구가 늘어나고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하게 되자 그들은 좋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들을 이끌었던 신화 속의 영웅이 바로 슝궁(雄公)이다. 그는 지혜로움과 용기로 부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온다.

좋은 곳은/ 하늘 저편에 있어요/
좋은 생활 하려면/ 산 저쪽으로 가야 해요/

살던 땅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 이들을 이렇게 달래며 그는 목말라 하는 할머니에겐 찬물 한 모금,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에겐 담배 잎 하나를 드리며 그들을 이끈다. 마침내 그들은 세 개의 강을 지난다. 강의 근원에 금이 있는 누런 강, 강의 근원에 은이 있는 하얀 강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말한다.

“은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은이 가장 귀해. 희고 예쁘잖아. 옷에 장식할 수 있는 은이 많은 곳으로 가자.”

“아니야. 금이 은보다 귀해. 누런 강물을 따라 금이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러나 슝궁이 말한다.

“금과 은은 다 파내면 끝이지요. 벼꽃 향기 가득한 강으로 갑시다.”

그들은 금과 은을 버리고 벼꽃 향기를 택했고,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욕심을 버린 조상들 덕분에 그 후손들은 지금도 구이저우성 동남쪽 벼꽃향기 아름다운 곳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니.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
역사도 삶도 모든 기억은노래가 되고

노래는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달이 뜬 밤에 들려오는 영혼을 흔드는 노랫소리, 그것은 본디 하늘에만 있는 것이었다. 그 하늘의 노래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퉁족(동族)이다.
젊은 여성들이 고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퉁족의 공식적 발음은 똥족이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은 자신들을 똥Dong족이라 하지 않고 퉁Tong족이라 한다. 왜 그럴까. 그들은 깊은 산 물가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산 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퉁족(동族)이라 불렸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들의 공식 명칭은 똥족(동族)이 되었다. ‘똥(동)’에는 키가 크다거나 참되다는 의미도 들어있지만 ‘무지하고 미련하다’ ‘바보’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이왕 이름을 지어줄 것이라면 오래된 이름인 ‘퉁(동)’을 사용할 것이지 왜 굳이 ‘똥(동)’을 쓴 것일까. 하지만 공식 명칭이 어떻든 그들은 스스로를 퉁Tong이라 한다. 산 위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물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우물에 가 물을 긷는 사람은 잠든 물의 신을 깨우는 것이 미안해서 작은 풀매듭 하나를 던져 물의 신을 깨운 뒤에 물을 긷는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고루에는 친근한 동·식물, 사랑 노래를 부르는 연인들, 옷감을 짜는 연인 등 생활 속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구이저우성 동남부 충장현에서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산길을 작은 차를 타고 넘어간다. 비가 조금만 와도 미끄러워서 차가 올라가지 못하는 산길을 달려 다랑이논을 바라보며 가다보면 ‘노래의 고향’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그 지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우교(風雨橋)도 나타난다. 알록달록 고운 색으로 만들어진 친근한 삼나무다리,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다니며 비 맞지 말라고 지붕까지 씌워놓은 그 다리는 이 지역 사람들의 친절함을 보여준다. 다리에 씌워진 지붕의 처마에는 고운 꽃, 나비 등이 어린아이 그림처럼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화려한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 속엔 없다. 그저 동화처럼 따뜻한 세상이 화사한 빛깔로 밝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충장현 부근에 만들어진 어떤 풍우교에는 머나먼 광시(廣西)에서 이주해왔던 아득한 시절의 힘든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최근에 그려진 그림일 뿐, 그들은 그것조차 그냥 기억 속에 담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기억은 노래가 되어 대대손손 이어진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신화나 역사 등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를 노래 속에 담는다. 누가 그랬던가. 문자는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마음을 다 담지 못한다고. 말조차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남은 말은 무엇으로 표현할까. 그들은 노래에 그것을 담아낸다.

샤오황(小黃) 마을은 그렇게 좁은 산길 너머에 숨어있다. 그리고 “밥은 몸을 살찌게 하지만 노래는 마음을 살찌게 한다(飯養身, 歌養心)”고 믿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샤오황 마을 입구의 풍우교.

아득한 옛날, 하늘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노래나무가 살고 있었다. 노래나무는 싸양(薩樣)이라는 신이 관리했고 비늘 달린 용의 정령이 그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그 시절, 퉁족 사람들이 사는 세상엔 노래가 없어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처럼’ 심심했고 사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매가 알려줬다.

하늘에 노래나무가 있단다
그곳에선 언제나 노래 소리가 들리지

그리하여 퉁족 청년 쓰예(四也)와 먀오족 청년 판구마(班固瑪)가 노래나무 씨앗을 가지러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매와 화미조(畵眉鳥), 까치, 그리고 매미아가씨가 그들과 함께 갔다. 황홀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정말로 노래나무가 서 있었고 곁에서 나무를 지키는 용의 정령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틈을 타서 그들은 노래나무에 올라가 노래나무 씨앗을 훔쳐냈다. 그런데 매미아가씨가 그만 나무가 부르는 노래에 반해버렸다. 그 노래를 배워 자기 흥에 겨워서 계속 노래를 불러대는 바람에 그만 용의 정령이 깨어났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쓰예가 용의 정령에게 잡혔다. 매를 타고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고개를 넘던 판구마는 서두르다가 그만 매의 등에서 떨어져 죽었고 노래를 배운 화미조와 매미아가씨는 인간세상으로 돌아왔다.

노래나무를 관리하는 신 싸양이 화가 났다.

“네 이놈, 노래나무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노래나무 씨앗을 빼앗기다니, 네놈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되어라.”

결국 노래나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용의 정령은 인간세상으로 쫓겨 와 강물 속의 물고기 뤄뤄(若洛)가 되었다. 그때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쓰예는 하늘에서 훔쳐온 노래나무 씨앗을 죽은 판구마의 무덤 앞에 심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높고 큰 나무가 자라났고 노래나무 잎들이 돋아났다. 잎에는 퉁족들이 지금 부르는 노래의 글자가 무늬처럼 새겨져 있었는데 퉁족 사람들 그 누구도 그것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주귀작(주歸雀) 한 마리가 나타나 노래나무 위에 올라가더니 잎 위에 찍힌 글자들을 보면서 온갖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통족 사람들은 새가 노래하는 대로 따라 불렀고 마침내 세상엔 노래가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매미아가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노래만 불렀다.

그 노랫소리가 하늘의 신 싸양을 감동시켰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어디에서 이렇게 고운 노래가 들려오는 걸까?”
고루 앞의 풍경.

하지만 노랫소리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온 싸양은 깜짝 놀랐다. 감히 인간들이 노래를 하다니. 노래는 신들의 영역에만 있는 것인데. 화가 난 싸양은 노래나무를 잘라버리고 노래나무 잎과 사람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던 주귀작을 강물 속에 던져 넣었다. 이제 세상에선 노래가 사라졌다.

그러나 노랫소리는 물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속에 빠진 노래나무 잎과 주귀작은 노래를 그치지 않았고 물속의 모든 물고기들이 몰려와 그 매혹적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신에게 벌을 받아 물고기가 되어버린 용의 정령, 뤄뤄가 나타났다.

“저놈들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모양이 되었지.”

결국 뤄뤄는 노래나무 잎과 주귀작을 삼켜버렸고 마침내 물속에서도 노래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래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긴 마를 엮어 낚싯줄을 만들고 그 끝에 송아지를 미끼로 매달아 강물 속에 던져 넣었다. 미끼를 덥석 문 뤄뤄는 물 위로 끌어올려졌고, 쓰예가 물고기 배를 갈랐다. 그 순간 물고기 뱃속에서 황홀한 노랫소리가 울려나왔다. 주귀작이었다. 주귀작이 말했다.

당신들이 날 살려줬는데 나는 보답할 것이 없네요
당신들이 노래를 좋아하니 노래를 가르쳐드릴게요
강 위에 떠오른 노래나무 잎을 모두 건져 올리세요
내가 그 위에 쓰인 노래를 불러 당신들에게 모두 가르쳐드릴게요

그리하여 주귀작은 퉁족 사람들에게 노래나무 잎에 쓰인 노래를 가르쳐주었고 퉁족은 그때부터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갖게 되었다.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퉁족 할머니.
퉁족 사람들은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을 가진 반짝이는 옷을 입는다. 우리는 그냥 남보라색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 빛깔을 그렇게 표현한다. 얼핏 보면 검은 빛이 도는 보라색 같지만 푸른 빛이 감돌기도 하는 오묘한 그 빛깔, 그것은 퉁족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과 밤하늘을 닮았다. 옷감을 짜서 남정초(藍 靑定 草)에 열 번 이상 염색하고 바람에 말려 달걀 흰자를 입혀 돌 위에 놓고 두드린 다음 쪄내면 그렇게 신비로운 빛깔을 지닌 옷감이 된다. 옷 하나에 들어가는 퉁족 여인들의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생을 바느질로 보낸 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칠지만 그들의 표정은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하고 아름답다.

“밤하늘의 달처럼 세상의 등불이 되어라.”

노인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달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환한 달이 떠오른 밤이면 마을 한가운데 서있는 고루(鼓樓)로 모여든다. 북을 모셔둔 북 집이 바로 고루다. 북은 조상들의 영혼이 깃드는 곳이다. 조상들의 영혼이 깃든 북을 모시는 고루는 마을의 모든 일이 결정되는 곳이기도 하고 젊은 남녀가 모여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곳이기도 하며,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고루가 있는 마당은 마을 사람 모두에게 열린 광장이다.

샤오황 사람들은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섯 살 때부터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민족의 신화와 역사, 마을의 규약 등을 노래를 통해 배운다. 아름다운 사랑 노래 또한 빠질 수 없다. 하늘에서 노래를 가져온 조상들 덕분에 그들은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을 노래에 담아 오늘도 찬란한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