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그리고 걷기_유철주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르까지.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든 것이 보장된 왕자 신분을 버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기까지, 또 부처님이 된 이후에도 수천, 수만 리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때론 혼자 때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 위에 섰습니다. 80 평생을 걸으면서 부처님은 당신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반에 들면서 “나는 아무 것도 설한 것이 없다.”라며 육신을 벗었습니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다소 ‘허망한’ 말씀처럼 길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렇게 있습니다. 다만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이 스스로 알게 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부처님과 길은 서로 닮았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람들이 속도를 줄여가며 자신과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걷고 있는 ‘나’, 사유하고 성찰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옆 사람도 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길 위에 있습니다. 물론 걷는 이유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길(路) 위에서 길(道, 法)을 찾으려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위치에 서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어느 가수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예~”
이 길에서는 동심童心과 염소도 도반이 됩니다. 낭만과 추억의 오솔길. ♩ ♪♬~~~
이제 막 구도의 길에 나선 행자님은 앞서가는 선배 스님만 보며 따라 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행자님은 후학들에게 깨달음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것입니다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잉태된다"
길 위의 삶과 꿈
제주 올레길에서 비롯된 걷기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둘레길, 해안길, 숲길, 오솔길, 성곽길, 옛길 등 걷기 좋은 길들이 앞다퉈 조성되고 있다.
현재 새롭게 만들어졌거나 조성 중에 있는 도보여행길이 수백 개에 이른다. 어느 길을 가든 배낭 하나 짊어지고 타박타박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걷기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길 위에 서게 만드는 것일까? 도보답사의 산 증인이자 걷기의 달인, 문화사학자 신정일(59)‘(사)우리땅걷기’ 대표를 만나보았다.
‘강호의 낭인’, ‘길의 철학자’, ‘현대판 김정호’라고 불리는 신정일 대표. 그는 걸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밟으며 수십 만
km를 걸었다.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등 한국의 거의 모든 강을 따라 걸었고, 400여 산을 오르내렸다. 또한 영남대로(부산~서울), 삼남대로(해남~서울), 관동대로(서울~울진) 등 조선의 옛길과 동해 트레일(부산~통일전망대)을 도보답사해 책으로 펴냈다.
그의 걷기는 본격적으로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면서 시작되었다. 1주일에 최소 4일씩 역사문화 현장을 답사하며 전국 산천을 훑고 다녔다. 2005년에는 (사)우리땅걷기를 만들어 도보답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우리땅걷기 카페(cafe.daum.net/sankang) 회원은 9,000여 명에 이르며, 매주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으로 아름다운 강산을 함께 걷고 있다. 참여자는 적게는 50명, 많게는 300명에 이른다. 그에게 ‘걷기’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니체는‘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했어요.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차를 타고 가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유유히 걷다보면 전체를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저모퉁이를 돌면 어떤 새로운 풍경과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설렘과 기대감이 저를 걷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세상을 향해 걷다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부딪히게 되니, 마음수행하기에도 좋습니다.
그리고 걷기는 만병통치약이에요. 『동의보감』을 쓴 허준도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 『택리지』를 쓴 이중환도 보약 한 재 안 먹고 떠돌아다녔어도 건강하게 오래 살았어요. 저 또한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 걷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길의 역사, 길을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 문화유산 등을 느끼면서 걸으면, 인생의 비밀을 듣게 되고 삶도 풍요로워질 거예요.”
그는 스스로를 자연대학교를 나와 지금은 총장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길에서 자연, 역사, 문화, 사람을 만나며 세상의 모든 것을 배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맞닥뜨렸다. 그의 걷기는 스스로에 대해 반복해서 묻고 또 묻는, 스스로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견고한 카메라 끈이 일곱 번이나 떨어지도록 지독하게 걸어온 삶,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부터 연유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북 진안의 섬진강 기슭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어머니가 힘겹게 행상을 하며 마련한 돈으로 중학교에 진학할 두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아버지가 노름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내성적이며 숫기 없던 그는 늘 외톨이였으며,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진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열다섯 살 무렵,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섰다. 운수납자가 되어 세상을 떠돌며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화엄사로 출가하게 되었다. 산내암자에서 두 달가량 머물며 행자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주지스님이 불렀다. “너는 아무래도 절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차비를 쥐어주는 것이다. 절망과 상처를 안고 절을 나섰으나, 갈 곳이 없었다. 무작정 여수에서 부산으로, 또다시 울산에서 대구로 발길을 옮겨다니다보니 여비가 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남의 집 추녀 밑에서 자고 산 열매로 배고픔을 달래가며 고향 집까지 걸어갔다.
“그때의 여행이 제 인생에 있어 가장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지 않나 싶어요. 다만 내가 혼자라는 것, 이 우주 속에 내던져진 절체절명의 고아라는 것, 결국 인생은 내 식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했던 것 같아요. 그것을 다시 깨닫는 데 오랜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이 필요했고, 마침내 자유를 찾아 길에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회원들과 걷다 보면, 오전엔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함께 가지만 오후로 넘어가면 ‘나’를 생각하면서 저마다 혼자 걷게 되요. 쉴 때도 혼자 쉬죠. 그것을 보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고, 인간은 결국 혼자 가는 존재임을 느끼게 됩니다.”
‘맵고 바르게 한 길을 가라’는 뜻의 이름 ‘신정일辛正一’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16살 때 스스로를 개혁하고 운명을 개척하고자 본인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후 그는 활자중독에 걸린 것처럼 책만 파고 들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도통 앞이 보이지 않던 절망적인 청소년 시절, 오직 책만이 그의 희망이자 탈출구였다. 등잔불 밑에 머리카락을 태워가며 책에 몰입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니체의 책들을 비롯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문학, 역사, 철학서를 섭렵해 나갔다.
“항상 꿈을 꾸게나, 꿈은 공짜라네”
그의 운명은 이미 책을 통해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9살 때 ‘광풍’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김시습의 삶에 깊이 매료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진안군 글짓기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는데, “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작가의 꿈이 가슴에 굳게 자리잡혔다. 글을 쓰겠다는 욕망은 너무나 팽배했지만, 머릿속 지식과 생각만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걸었고, 마침내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자신의 경험으로 체화된 글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그는 쉼없이 걸으며 전사처럼 글을 썼다. 그리고 지난 17년간 61권의 책을 펴냈다.
“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조용헌 선생이 말하기를 ‘벼룩 간을 공부한 사람은 벼룩 간만 알 뿐’이라고 했어요. 경험한 것만큼만 쓸 수 있습니다. 『다시 쓰는 택리지』를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데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어요. 자기 전공 분야에만 집중하다보니, 지리를 공부한 사람은 역사에 대해 쓰지 않고 반대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지리에 대해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고 전공 분야도 없으니, 길을 걸으며 쌓아뒀던 자양분으로 역사지리학을 통합해 자유롭게 쓸수 있었지요.”
그의 걷는 모습은 참 가볍고 경쾌하며 편안하다. 나폴나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노루 새끼가 폴짝 뛰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걸음 속에서 잊혀진 길들이 복원되고, 나루터와 고개마루에 주막집이 들어선다. 또한 5대강 박물관이 건립되고, 보행자 전용 도로가 생겨나며, 길의 날(11월 11일)이 제정되어 길문화축제가 열린다. 그가 걸으면 꿈 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어 일어난다. 그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해파랑길(부산~통일전망대)을 이어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스웨덴 포르투갈을 지나 아프리카 케이프타운까지 걸을 수 있는 세계 최장거리 도보 코스를 문체부에 제안했다. 또한 제주도와 육지에 한 곳씩, 풍류를 즐기며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공동체마을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는 개개인이 하나의 우주예요. 태어날 때부터 갖춰진 역량을 제대로 써보지 못한다는 것은 마이너스 인생 아니겠습니까. 요즘 현대인들은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여유없이 살아갑니다. 너무 바쁘면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갈 뿐 남는 것이 없어요. 한가하게 해찰할 줄 알아야 해요. 멈춰서 바라보며 해찰하는 사이에 새로운 것이 발견됩니다. 그 새로움이 희망이 되고 꿈이 되는 거예요. 꿈은 공짜입니다. 꿈을 꾸어야 꿈이 이뤄집니다. 끊임없이 내가 왜 사는지 물어야 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만들어가야 해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몹시도 걷고 싶어진다. 여름에 걷기 좋은 길 추천을 부탁하니, 망설이지 않고 몇 개의 길이 불쑥 튀어나온다. 해파랑길(영덕~울진 코스), 낙동강(봉화 석포면~명호면), 안동 퇴계 오솔길이다. 자연을 벗 삼아 걸으며 오롯이 ‘나’와 대면하는 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걸어서 거제 한바퀴' 모임
좋은 벗과 함께 걷는 삶의 터전
보도를보니어린이날과 숲길 어버이날을 앞둔 시점이었던 5월 첫 주는 전국이 명절처럼 들썩였다고 한다. 날이 날이니만큼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멀리 남해안 거제도에는 여느 일요일처럼 섬 구석구석을 누비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걸어서 거제 한바퀴’ 모임의 회원들이다.
걸으면서 배우는 거제의 역사와 문화
|
마가 스님과 함께하는 걷기명상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
걸어라, 거기 삶이 있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의 성공을 보고 각 지자체가 너도나도 걷는 길을 개설하여 불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근사한 도보여행 길이 갖추어졌다. 걷는 것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일까?
한꺼번에 두 걸음을 내딛을 수 없다
바람결에 날아가지 않도록 눌러쓴 밀짚모자 아래로 기분 좋은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지리산을 생명 평화의 산으로 가꾸고자 지리산종교연대가 주관하는 1,000일 순례. 스님, 목사님, 원불교 교무님 등이 하루에 한 명씩 릴레이로 노란 몸자보를 입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봄이 깊어지면서 지리산 둘레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적잖은 이들이 울긋불긋한 배낭과 등산복 차림으로 둘레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걷기 여행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큰 흐름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자고 제안한 실상사 도법 스님을 대표로 하여 (사)숲길이 2007년 1월 설립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만드는 (사)제주올레가 설립되었다. 2007년 가을부터 제주 올레길이, 2008년부터는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길, 새로운 방식의 여행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폭발적이었다.
둘레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차도에 자동차가 질주하는 것이 보인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고속도로를 만든다. 먼 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이 속도경쟁의 심리 가운데 하나는 결과지상주의, 성과지상주의이리라. 미래의 성공, 목표의 성취를 위해 현재를 양보하고 헌납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삶을 곰곰이 통찰해보면,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과거와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삶이 충실해지고, 과거나 미래에 붙잡히면 공허한 삶이기 십상이다.
걷는 것은 늘 과정인 현재의 가치를 자각하는 것이며,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좋은 수행이다. 도착하는 곳이 중요하다고 하여 한꺼번에 두 걸음을 내딛을 수 없으며, 중간을 생략할 수도 없다. 생각에 빠져 걷다보면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생기고, 빨리 가려는 욕심이 앞서면 곱절로 힘들어진다. 이런 것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걸음이다. 반면 두 발로 땅을 딛는 몸의 규칙적인 리듬에 몸을 맡기면 난마처럼 얽힌 생각도 가벼워지고 정리된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새로운 관계로 다가오는 모든 존재들을 바라보고 느끼다 보면, 온 세상과 내가 끊을 수 없는 고마운 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의 실상을 통찰하는 깨어있는 행복한 걸음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길을 걷는 것이 그대로 인생이라고 한 것일까.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만 존재한다.”고 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돌아가신 분이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두 강대국 국왕의 절대
적 귀의를 받으셨다. 호화로움이나 편안함을 얻고자하면 충분히 누릴 수 있었으련만 당신은 코끼리나 마차를 마다하고 늘 두 발로 땅을 걸으셨다. 동물의 수고로움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얻고자 하지 않는 자비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당신께서는 걷는 행복을 늘 자각하셨으리라.
걸음걸음이 극락정토!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하면서 땅을 내딛는 단순한 동작, 그러나 이 걸음은 더없는 신비요 기적이다. 한걸음 내딛는 그 동작에 온 우주가 참여한다. 해와 달과 별이 참여하는 질서로 자연이 펼쳐지고, 흙은 발을 받치고, 물은 흙을 덩어리지게 하고, 공기는 숨으로, 밥은 움직일 에너지로 참여한다. 밥 한 알에도 온 우주가 참여하고 있으니, 밥을 자양분으로 하여 움직이는 이 순간도 또한 온 우주의 참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자각으로 걷는 걸음은 늘 충만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The pure land at every step.”이라고 실상사에 적어놓으셨는데, 이 또한 같은 말이 아니겠는가. 걸음걸음이 극락정토다.
천천히 걸으면서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찰하는 깨달음의 걸음, 느리게 걸으면서 주변을 발견하고 감상하는 여유로움의 걸음, 의미를 담아 나아가는 순례의 걸음, 몸에 활력을 주는 율동감 있는 걸음, 이렇게 어떤 걸음이라도 현재에 깨어있게 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에 건강과 풍요와 평화를 가져 다주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여유를 준다.
낯선 곳에 다녀올 때 우리가 곧잘 하는 말이 있다. “갈 때는 제법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올 때는 금방이네.” 이 말에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사실 한 조각이 담겨져 있다. 처음 찾아갈 때의 시간과 돌아 나올 때의 객관적 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갈 때의 우리 마음은 직면한 낯선 것을 받아들여 인식하고 기억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이미 새로운 정보가 아니므로 마음은 바쁘게 일하지 않는다. 객관적 시간이 같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느낀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인생의 시계에서는 객관적 시간보다 주관적 시간이 더 중요하다.
걷는 것, 그것은 주관적 시간에서 남들보다 더 장수를 누리게 할 뿐만 아니라 경이로움으로 충만한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다. 걷는 것이 좋은 것은 알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많다. 명상이 좋은 줄 알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운동도, 봉사활동도,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단다. 그러나 이들에게 정말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하고 값진 것인지를 헤아리는 지혜가 아닐까.
걷는다는 것, 그것은 온전히 살아있다는 말이다.
치유와 명상의 사찰 숲길
불교에서의 숲은 수행자들이 머무는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다. 사찰 숲은 사찰의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한 부분인 것이다. 그렇게 지켜져 온, 사찰 숲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요 명상이다.
오감을 활짝 열고 천천히 숲길을 걸으며 싱그러운 숲이 주는 생명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껴보자. 여름으로 가는 길목, 사찰생태연구소에서 추천하는 걷기 좋은 사찰 숲길 열 곳을 소개한다.
문경 김룡사 숲길
김룡사 숲은 들머리부터 그윽하다. 참나무류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서어나무, 층층나무, 생강나무, 단풍나무, 화살나무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전나무 숲이 곳곳에 그윽하게 자리하고 있다. 몸집도 다들 좋아서 거목들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울진 불영사 숲길
불영교를 건너면 햇살 좋은 숲길이다. 길섶과 숲속 다양한 초본류와 참나무를 비롯한 산벚나무, 왕버들, 오리나무, 산초나무 등이 잡목 숲을 이루고 있다. 천길 벼랑 위로는 금강송들이 저마다 화두를 들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 ‘ 불영산수화’가 바로 이것이다.
해남 대흥사 숲길
겨우 한두 사람 비켜 다닐 좁은 숲길이지만, 숲길은 넓을수록 멋이 적은 법이다. 풍치 좋은 이 골짜기 길은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 불린다. 편백과 삼나무
군락은 일본을 본토로 하는 외래종이지만, 우리 나무들과 천연덕스럽게 잘 어울려 있다.
고창 선운사 숲길
강화 전등사 숲길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李龍在의 맛있는 상식_07 (0) | 2012.07.14 |
---|---|
전남 신안 829개의 섬 (0) | 2012.07.13 |
스키장 리조트 여름 무한변신 (0) | 2012.07.06 |
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_12 (0) | 2012.07.05 |
富가 흐르는땅 경남의령 (0) | 2012.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