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귀천1

醉月 2008. 3. 23. 11:51

나의 연인 한당 선생님.
오늘 님을 내 가슴에 묻고 돌아왔습니다.
님의 자리에 마지막으로 삽을 들때까지도 조용히 님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까지도 그러했습니다.
나흘 동안 님의 영정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많은 눈물을 가슴으로 흘려보냈기에...
어제는 마지막으로 님을 멀리 보내야 했기에,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내방에서 조용히 님을 불러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님을 꿈속에서도, 수련중에도 보았다는데...
나는 님을 나흘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님을 보내는 마지막날 님을 다시 한번 불러보았습니다.
풍수법으로 님이 계실 곳을 느껴보았습니다.
감정으로 느껴야하는데... 자꾸 어떤 경계가 보이더군요.
아무리 중단전 옥당으로 느끼려해도 보이는 것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 선인법으로 님의 마음을 읽어보았습니다.
님의 마음을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터무니없는 짓인줄 잘 알면서도...
이번에도 느낌보다는 갑자기 지구 밖에 우주가 나타났습니다.
별이 스쳐지나갑니다.
잠시 후 은하수가 보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보았던 그런 밤하늘이...
갑자기 물소리가 끊어지네요.
의식도 깨어납니다.
하지만 님의 그림자도 어떤 체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님은 야속합니다.
님은 무정합니다.

수련을 마치고, 동그라미와 함께 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갑니다.
분당에서 새벽 첫차를 탄것은 9년 동안 이것이 처음인데...
새벽 공기는 참으로 맑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코 끝을 스칩니다.
정말 오랫만에 느끼는...
갑자기 옛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님께서 이스타나를 타고 소운과 함께 새벽녘이면 저희 집앞에 오셨죠.
       전화벨이 울립니다.
       소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5분 후면 집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끊고,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오며 시계를 봅니다.
       '5시가 채 안된 시간인데...'
       짜증을 내며 서둘러 준비를 합니다.
       툴툴거리는 소리를 동그라미가 들었는지,
       거실로 나오면서 "선생님 덕분에 우리 남편이 건강해지네~"하며 밝게 웃습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시간이 족히 10분은 더 지났을 것입니다.
       이스타나문을 여니 님은 나의 모습을 보며, "안녕하세요" 밝은 미소를 짓습니다.
       우리는 부평까지 이스타나를 침대처럼 만들어놓고, 자면서 갑니다.
       소운이 우리를 깨웁니다.
       3-40분을 달려 왔는데도, 밖은 아직도 어둠이 남아있습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낯익은 얼굴이 보입니다.
       운산과 운산의 친구입니다.
       덕산이었던가?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조금 있으니 거산 문사님과 현운의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앞으로 달리기, 뒤로 달리기, 옆으로 달리기,
       드리블 슈팅 등을 했습니다.
       운산은 나에게 개인 지도를 합니다.
       운산이 늦게 오는 날에는 님이 직접 드리블과 페인팅과 슈팅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거쳐,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개발입니다.
       나는 님을 만나기 전에는 한번도 축구화를 신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 때는 왜 그렇게도 싫었는지...
       이리 저리 핑계를 대는 저를 바라보는 님의 모습은 항상 잔잔한 미소였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새벽 안개에도 큰 별이 하나 보입니다.
  "아~ 저 별 정말 크다"
옆에서 동그라미가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
  "너무 가깝고 크게 보이는데, 인공위성 아닐까?"
한참동안 바라보는 내가 안스러웠나 봅니다.
올라가보니 님의 영전에 마지막 식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차를 올리는데, 옆에서 운초님이 제게 마지막으로 차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차를 내는 순간, 갑자기 님을 처음 만나 차를 내시던 그 날이 생각납니다.

       6년전 겨울..
       1월 2일이었죠.
       그 당시는 본원이 3층만 있어서 수련실 옆 작은 방이 님의 방이었죠.
       군용 담요가 깔려 있던 상 위엔 컴퓨터 한 대와 문방사우, 다기 한 세트가 있었죠.
       님께서는 나에게 차를 주실 때에는 항상 직접 차를 내셨습니다.
       그 후 님께서 내시는 차맛에 매료되어 이제는 동그라미와 나는 차매니아가 되었습니다.
       하루종일 차를 마시다보면 4-50잔은 족히 마신 것 같습니다.
       그 날이 그립습니다.
       5층에 님의 방이 생겼을 때,
       그 방에서 수없이 많은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으며 차를 마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발인을 마치고, 이제 님이 머무를 곳으로 달려갑니다.
님이 머무를 곳은 제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더군요.
버스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려 몇 번을 시도하다 포기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몇 년 전 유럽 여행을 할 때 스위스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알프스 산에 올라가려면 매연이 나지 않는 전기차를 타야합니다.
산을 보호하겠다는 이야기지요.
님이 계신 그곳도 매연이 나지않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 걸음으로는 10분이면 올라갔을텐데 두 배도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동그라미가 몸이 아프기 때문에 천천히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님이 계실 곳은 많은 분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님이 머무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의진 단사가 말을 걸었습니다.

 "현강님! 참 좋죠? 경관을 보세요."하면서 풍수지리에 의거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거산 문사님께서 이곳을 보시고 놀라셨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정말 좋더군요.
하지만 이곳이 명당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님이 계신 곳이 곧 명당인데...
문사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헌데 그 순간, 전 깜짝 놀랐습니다.

어젯밤 수련할 때, 풍수법으로 님이 계신 곳을 느껴볼 때 보이던 상이
바로 이 모습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3기 제자들이 님을 안장하고 있습니다.
님의 가족이.. 친지, 선배... 차례 차례 흙을 뿌리고 있습니다.
원로님들도.. 님의 제자들도.. 흙을 뿌리고 있습니다.
자꾸만 눈앞이 흐려집니다.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흐르는 그 무엇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가만히 잡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만토 신회장님이었습니다.
  "백사범이 마지막 삽질을 하시게!"
정신이 없습니다.
님에게 마지막으로.. 흙을 어떻게 뿌렸는지...
조금 있으니 본원의 김수자가 상 차릴 준비를 합니다.
부산 해인 지원장님과 만토 신회장님이 거들어주고 있습니다.
해송 단사가 제주를 들고 있습니다.
술병이 특이했습니다.
살펴보니 보드카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술이 많은데.. 님은 술도 안 좋아하는데.. 왜 하필이면 보드카일까?'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혹시...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빈 케이스가 눈에 보였습니다.
내가 2년 전 모스크바에 다녀올 때 선물로 드린, 바로 그 술이었습니다.
나는 님에게 5년 전 중국에 다녀왔을 때에도 술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그 날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임당의 아버님과 기억이 나지 않는 두 분과 한 잔씩 마셨습니다.

그 때는 식당도.. 숙소도.. 모두 3층이었죠.

남은 술은 며칠 후 님의 선배인 현운과 나를 집으로 초대하셔서
월남 쌀국수를 먹을 때 비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님은 이번에는 그냥 그대로 두고 있었습니다.
5층 사무실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술을 볼 때마다 좋아하지 않는 술을 공연히 선물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님은 그 때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봅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오래 전에 님이 말씀하셨답니다.

3수에 떠나신다고...
님이 마지막 가는 길이 그 술로 적셔집니다.
이것이 나에게 주는 님의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순간 어젯밤 수련할 때 선인법으로 님의 마음을 보려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음은 읽어지지 않고 우주가 나타나더니..별이 보이고..은하수가 지나가는...
님의 마음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님은 처음 나를 만날 때부터 헤어지는 이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배려였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님에게 나는 도망다니고 투정하고 원망했습니다.
처음 만남은 님이 다가왔지만 이제는 제가 가겠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만남을 위하여 이제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그 때는 님이 저에게 보여주신 신선바둑을 두기로 하죠.
지상에서의 승부 바둑이 아닌, 상대를 기로 제압하는 신선 대국을 하죠.
인생은 짧고 도계는 영원하다는 님의 말씀을 믿고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님이 보고 싶으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외로운 밤이면 자꾸 별을 보았지.
          더 외로운 밤이면 찬란한 유성이 되고 싶었지.
          그처럼 그리움에 불타오르다가
          그처럼 그리움에 불타오르다가
          그대 심장 깊은 곳에 포옥 묻히고 싶었지.
                                                                  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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