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귀천

醉月 2008. 3. 23. 11:45

제자들에게 보낸다
밝고 희망찬 모습을 보여달라
재미있고 신명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달라
지쳐서 무력해지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
그것이 지금 내가 보고싶은 너희들의 모습이다
오늘 하루를 살다 죽을지언정 수련을 열심히 하고
춥고 배고플 지라도
참으로 밝게 웃을수 있는 능력을 가져라
하늘이 무너졌다 하다라도 무력해지지 않는
천하도인의 활력을 가져라는 말을 남기고
사부님은 가셨다
신명계에 무슨일이 있는지는 하수로서 감을 못잡겠지만
웃어야 할지 훌쩍거려야 할지~~

추도문(일사 민경환)
한당 선생님께서 오늘 새벽 본래 오셨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께서 그 동안 보여주셨던 말씀과 행동을 통해 오늘의 일을 예상하지 못햇던 것은 아니었지만,
더 오랜 시간 당신과 함께 지상에서 머물고 싶었던 제자의 마음인지라,
마음은 이렇게 슬픔으로 가득찹니다.

올해로 당신께서는 39세이십니다.
3수에 맞추어 가시겠다고 농담삼아 말씀하실 때에도,
가족들과 도화제의 미래에 대한 당부를 하실 때에도, 차마 당신의 말씀을 받들지 못했었습니다.
당신께서 직접하시라고, 더 오래 계시면서 직접 주재하시라고 항명아닌 항명을 했던 마음...
당신께서는 아시고 계실겁니다. 정말..정말로...선생님을 이대로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법을 펴치기 위해 전력투구하신 그 고난의 세월...
육신가진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자잔한 재미들은 맛보지도 못하시고, 이렇게 가시다니요.
이 이제 제자들을 통해 열매 맺으려 하고 있는데, 활짝 핀 꽃만 보시고 그대로 보내기엔 당신에대한 죄스러움이
너무도 컸습니다. 이렇게는 정말 보내드리기 싫엇습니다. 정말 이대로는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석문호흡이라는 유일무이의 걸출한 도법을 지상에 뿌리 내리신 분이 당신이십니다.
당신의 뒤를 이을 후천도통군자까지도 안배 해 놓으신 것도 당신이십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잡을 수 없지만 다시 청하고 싶었던 것이 제자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시다니요. 이러헤 먼저 가시면 안되는 것이엇습니다.
당신의 소식을 듣고, 올라오는 차안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도화제의 미래나, 아직 도통을 못한 못난 제자의 공부 따위는 신경 쓸 여지도 없었습니다.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베풀어 주신 도문, 이 도법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회한도 아무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제자들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가진 제자들은 아직 사람입니다.

당신께서 가르쳐 주신 인간의 정...그 맛갈나는 당신의 정 때문에 당신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사람이 사는 정... 사람이 사는 맛...그 흥겨움과 신명남을 이제는 다시 겪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매여지고 눈물만 흘러 옷깃만 적시며 흐느꼈습니다.

영안실에 도착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쩌면 영안실이 눈에 보이면서부터 제자의 마음은 평온해 졌던 듯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영정을 보니 울컥 무언가가 솟아 오릅니다. 그러나, 아까와는 다른 눈물입니다.
환히 웃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앳된 소년같이 느껴집니다. 다시 울컥 무언가가 올라옵니다.
청월사형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9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거하셨던 육신을 떠나신 후,
신명들의 보좌를 받으며 의관을 갈아 입으시기 전 당신의 마지막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미안하다. 너희들이 고생해야겠다^^ 먼저 간다!'

기지 바지에 손을 집어넣고 다리를 약간씩 꼬시면서 왠지 미안한듯 남기신 말씀에, 슬픔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습니다.
제자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지상의 일에 실망하셔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을 믿으시기에 이미 당신께서 하실 일을 다 하셨기에,
웃으며 올라 가실 수 있으셨습니다.
스스로 육신의 옷을 벗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신은 제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이셨습니다.

아무런 미련없이 당신께서 하실 일을 마치시고 지상의 옷을 벗으시는 모습...그하나의
모습만으로도 걸림없고 집착없는 대도인의 자유를 봅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당신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제 본분을 잊고 투정을 부려 보았습니다.

당신의 안배대로 이제는 후천도통군자를 비롯한 도계입문자들이 있으니,
언제든 선생님을 뵐 수 있겠지요.(물론 당신께서 만나주신다면 말입니다.)
좀 더 수련에 매진하지 못해, 지금 당장 당신을 뵐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너무나도 아쉬워 약이 바싹 바싹 오릅니다. 참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이 약오름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수련해서 뵈러 가겟습니다. 당신이 제자들을 믿어주신만큼 당신께서 내려주신 이 도법을 이 지상에 온전히 뿌리내리게 하고,
결제서류 들고 올라가겠습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겟습니다.

당신의 웃음과 믿음에 보답하는 길은, 당신의 도법을 통해 도계로 올라가는 일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위에서 다시 뵙겟습니다.

도문의 제자들의 마음을 담아서 불초제자 일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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