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반도 독수리들의 고달픈 겨우살이
독수리.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장단반도 일대는 겨울 철새 독수리의 별천지다. 면적 35㎢의 개활지인 이 곳에선 200여 마리의 독수리가 겨울나기에 한창이다. 임진강 강바람에 춤추는 무성한 갈대밭에 새까맣게 몰려앉아 먹이를 뜯는 놈들, 나지막한 나뭇가지에서 조는 듯 꼼짝 않고 볕을 즐기는 놈, 창공을 유유히 활공하며 사위(四圍)를 경계하는 놈….
동물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야생 그대로의 독수리. 녀석들은 우리에 갇혀 더 이상 날지 못하는 가련한 동족(同族)의 존재를 알고나 있을까. 미국 국장(國章)의 독수리는 ‘자유의 새’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빵’대신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녀석들의 처지도 요즘 말로 ‘해피(happy)’한 것만은 아니다.
‘신동아’가 천연기념물 제243호(1973년 지정) 독수리를 찾아나선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독수리들은 ‘수난사’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2002년 11월20∼21일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 자유마을 앞 농경지에서 독수리 6마리가 숨지고 6마리가 위독한 상태로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를 시작으로, 독수리의 참변 소식은 줄을 잇고 있다. 이같은 참변은 지난 수년간 이어지며 ‘연례행사’로 굳어졌다.
어느 짐승에게나 겨울은 혹독한 계절. 그렇다 해도 먹이사슬 정점에 자리한 ‘하늘의 제왕’조차 맥없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아무런 의구심 없이 선뜻 받아들여야 할까. 독수리들이 죽음까지 감수하며 이 땅으로 찾아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체 녀석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그들의 수난은 온전히 그들의 것에만 그칠까.
근원적인 질문 하나 더. 과연 우린 독수리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언뜻 떠오르는 독수리 이미지라고 해봐야 1980년대 초 방영돼 어린이들을 열광시킨 일본산(産) TV 애니메이션 ‘독수리 5형제’, 여름 별자리 중 하나인 ‘독수리자리’, 과거 바이마르공화국 국장(國章)에 그려진, 황금색 땅에 날개를 펼친 검은 독수리 따위가 고작 아닌가. 일련의 의문들로 해서 발길은 국내 최대 독수리 월동지, 장단반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DMZ의 珍客
‘가는 날이 장날’이란 옛 속담은 대체로 맞다. 하필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일까. 독수리를 찾아나선 2002년 12월10일. 문산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파주 일대(문산 기준)의 최저 기온은 영하 13.9℃.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얼굴이 얼얼할 만큼 싸늘하다. 매운 날씨. 취재엔 지장이 없을까. 그나마 파주시 적성면 일대를 지나면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독수리들을 한가닥 위안 삼았다.
낮 12시. 취재팀 승용차가 통일대교 남문 검문소로 들어서자 안내를 맡은 최주영 중위(24)가 뛰어나온다. DMZ(비무장지대) 접경지인 민통선 지역에 들어가려면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을 허가받는 이른바 ‘예통(豫通)’ 절차는 필수. 장단반도 출입은 관할 부대인 보병 제1사단이 관리한다.
중위가 동승한 뒤 검문소를 통과해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7∼8km쯤 지났을까. 임진강 강안(江岸)을 따라 죽 늘어선 철책과 마주한 6·25 당시 피탄지에 패목(牌木)이 박혀 있다. 패목 바로 뒤는 갈대와 잡풀로 둘러싸인 널찍하면서도 황량한 공터.
‘독수리 보호구역. 이 지역은 천연기념물 제243호인 독수리가 집단 서식하는 곳으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접근을 제한합니다.’
패목의 글귀를 읽어내려가는데 갑자기 역겨운 냄새가 강바람을 타고 진동한다. 필설로는 도저히 형언키 어려운, 묘한, 왠지 기분 나쁜 냄새. “동물 사체 썩는 냄새와 독수리 배설물 냄새가 뒤섞인 것”이라고 중위가 귀띔한다. 아무튼 난생 처음 맡는 지독한 냄새다.
바로 이 곳이 독수리들의 집단 월동지다. 화창한 겨울 햇살 아래 얼추 150여 마리는 족히 될 성싶은 독수리들이 몇 그룹으로 나뉘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공터 한가운데엔 젖소와 돼지가 각각 한 마리씩 죽은 채 널부러져 있다. 배고픈 독수리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썩어가는 그 살점을 먹성 좋게 뜯어먹는 중이다. 차량 엔진음과 인기척을 충분히 알아챘을 법한데, 미동도 없다. 다행이다. 아직 식사시간이 끝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가갈 순 없는 일. 위장망(僞裝網)도 없이 직선거리 30m 이내까지 접근하면 독수리들은 ‘불청객’의 접근을 허용치 않고 비상(飛翔)할 게 뻔하다. 그러면 관찰이고 뭐고 말짱 도루묵이다. 어쩐다?
마침 독수리 관찰에 맞춤한 배수문이 하나 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가 썩 좋다. 그런데…무척 춥다. 독수리 눈에 띄지 않으려 배수문 위 물탱크들 사이에 살그머니 웅크려 앉아보지만, 온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냉기에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다.
도리 없다. 5∼6m 높이쯤 되는 빈 경계초소로 올라가 관찰하기로 했다. 독수리 보호구역(이하 보호구역)에서 50m쯤 떨어진 초소(몇 번 초소인지는 보안사항이므로 밝히지 않겠다)는 임진강에 면한 한 쪽 벽면이 완전히 개방돼 있어 안으로 여전히 강바람이 몰아친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바람막이는 된다. 시계(視界)도 양호한 편이다.
그럼에도 독수리들의 동작을 세밀히 엿보긴 어렵다. 독수리들은 생김새가 온통 그놈이 그놈 같아 아예 분간이 안 된다. 독수리를 좀 안다는 사람들조차 암수 구별을 못할 정도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난망한 심정으로 눈알 빠질 듯 독수리들만 노려보는데, 이번엔 까치란 놈이 초소 지붕을 무작정 쪼아대기 시작한다. 안에 ‘만물의 영장’이 있는데도 그러는 걸 보면 까치는 시쳇말로 ‘겁을 상실한’ 모양이다. 괘씸한 놈!
타 지역보다 장단반도에 독수리들이 유독 많은 까닭은 2001년 11월 보호구역을 설치해 정기적으로 먹이를 공급해주기 때문. 2001년 초까지만 해도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가 최적의 월동지로 꼽혔지만, 먹이 찾기가 쉽잖아 폐사 개체수가 늘어나자 부득이 독수리들의 ‘집결’을 인위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독수리 먹이 공급을 위해 2002년 처음으로 파주 지역에 750만원을 지원했다. 이날 독수리들이 먹던 젖소와 돼지도 2002년 12월1일 먹이주기 행사 때 준 것이다. 당시 함께 제공했던 닭 1000마리는 깃털만 흩날릴 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당초 취재팀은 독수리들의 ‘일거수(편의상 날개 대신 손이라 하자) 일투족’을 관찰할 심산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과 독수리의 공통 분모를 찾아보려 했다. 결과는 기대 이하.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월동하는 독수리의 대다수는 생후 1년이 채 안 된 유조(幼鳥). 드물게 2년생 아성조(亞成鳥)도 있지만 대개 그해 3월경 태어난 놈들이다. 사람으로 치면 태어나 10개월도 안 된 젖먹이다. 자연히 유조들의 행동거지가 성조(成鳥)에 비해 단조로울 수밖에. 통상 4∼5년 된 독수리를 성조로 치니, 독수리라고 다 같은 독수리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월동지는 ‘휴양지’일 뿐 번식지가 아니다. 번식지라면 암수의 사랑놀음이나 권력 암투 등 스토리가 넘칠 법하건만, 월동지에서 접하는 독수리의 요모조모는 지극히 단순하다. 오랜 비행에 지쳐 몸 누이기에 정신없는 녀석들이 취재팀을 위해 특별히 ‘버라이어티쇼’를 벌여줄 것 같지도 않다.
결식(缺食) 독수리들
머리가 벗겨진 놈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이런 게 아니잖은가. 이 역시 유조이기 때문. 검은 털 송송한 유조는 성조가 되면서 뒷목과 정수리의 털이 벗겨진다. 성조는 유조의 검은 빛깔과 달리 몸깃의 빛깔이 암갈색이다. 대머리는 짐승 창자를 특히 좋아하는 독수리의 식성을 고려한 조물주의 배려. 사체에 머리를 깊숙이 박고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독수리는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 녀석들은 매나 다른 수리류처럼 사냥을 할 줄 모른다. 또 불에 탄 동물의 고기도 먹지 않는다. 때문에 번식지든 월동지에서든 놈들의 먹이는 언제나 부족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체를 독수리가 쪼아먹게 하는 티베트의 전통 장례의식 ‘천장(天葬)’ 풍습도 이런 독수리의 식습관과 관련 있을 것이다.
어쨌든 독수리에 관한 이런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언론의 오보도 잦다. 흔히 각종 기사에서 독수리를 ‘대머리독수리’ ‘검독수리’ 등으로 오기(誤記)하는 경우가 적잖은데, 이는 명백히 오류다. 독수리의 ‘독’은 ‘대머리 독’(禿)자. ‘독수리’에 이미 ‘대머리’란 뜻이 포함돼 있는데 ‘대머리독수리’라니. ‘역전(前)앞’ ‘처가(家)집’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독독(禿禿)수리’가 되는 셈이다.
검독수리로 혼동해서도 안 된다. 검독수리(Golden Eagle)란 종(種)은 따로 있다. 물론 이놈도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수리과(科)에 속한다. 참수리, 흰꼬리수리, 물수리, 초원수리 등이 모두 수리과에 속한 종들이다. 그러나 검독수리는 독수리와 딴판으로 사냥의 천재. 여우나 늑대까지 채간다고 한다. 어릴 적 곧잘 듣곤 했던, “독수리가 아기를 채간다”는 말의 장본인이 바로 이놈이다. 반면 독수리의 영문 표기는 ‘Black Vulture’다.
오후 4시. 별다른 여운도 남기지 않은 채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날아가버렸다. 아마 지금쯤 장단반도 인근 적성면 일대의 하늘엔 독수리들이 적잖이 날고 있으리라. 배를 채운 독수리들은 해질 무렵이면 하나둘씩 인근 산으로 날아간다. 그리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소나무 가지 위나 아래서 몇 마리씩 잠을 청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독수리들의 잠자리 위치는 여간해서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다. 행여 독수리들의 수난이 가속화할 게 우려돼서다.
아무튼 텅 빈 벌판에 철 지난 허수아비처럼 서 있긴 뭐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싶더니…. 별 수 없다, 일단 철수. 멀리서 지뢰 터뜨리는 굉음만 “꽝꽝” 울려퍼진다. 곧 해가 질 것이다. 그리고 겨울밤도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작전상 후퇴’는 했지만, 그렇다고 취재를 통째 망칠 순 없는 일. 장단반도에서 승용차로 30분쯤 떨어진 파주시 적성면 마지1리 감악산 기슭에 자리한 (사)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 천연기념물보호센터를 찾아나섰다.
치료실을 겸한 13평 사무실과 8평짜리 조류방사장 2동을 갖추고 2002년 1월 문을 연 이 곳은 탈진한 독수리들이 회복될 때까지 돌보는 ‘다친 새들의 쉼터.’ 12월10일 현재 조류방사장에 24마리, 치료실에 6마리의 독수리가 보호받고 있다. 보호시설은 이미 포화상태다.
방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예의 그 ‘독수리 냄새’가 콧속으로 훅 끼쳐온다. 실내 온기와 뒤섞여 사무실 내에 퍼진 그 냄새는 한층 더 ‘강렬’했다.
“독수리는 좋아해도 냄새만은 정말 역겨워요. 그래서 이렇게 항상 향을 피워두잖아. 독수리 없는 여름엔 담배 끊었다가 그놈들이 오는 겨울철엔 다시 담배를 핍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 한갑수씨(49)의 별명은 ‘독수리 아빠.’ 그는 1997년 12월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에서 거름용 계분(鷄糞: 닭똥)에 섞인 폐사한 닭을 먹고 있던 독수리 40여 마리를 발견했다. 환경감시원으로 활동했지만 한국조류보호협회와는 일면식도 없을 때였다.
어쨌든 이를 인연으로 ‘독수리 아빠’는 그대로 그의 ‘업’이 됐다. 언젠가 한번은 구조한 독수리를 집 앞에 잠시 놓아뒀는데, 한 주민이 그를 ‘밀렵꾼’으로 오인해 신고한 해프닝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의 신고정신이 되레 고마웠다”고 한회장은 얘기한다.
취재팀과 만나기 하루 전인 12월9일만 해도 한회장은 끼니도 거른 채 긴급구조에 나서 양주군 남면 한산리에서 1마리, DMZ 내 파주시 대성동에서 3마리의 탈진한 독수리들을 구해냈다. 이날 폐사한 독수리도 3마리를 수거했다. 구조 및 밀렵감시활동에 나서느라 그는 생업인 오토바이 위탁판매업도 아내 김숙향씨(39)에게 떠맡기다시피한다.
조류방사장의 독수리뿐 아니라 보호구역의 독수리들도 먹이를 주는 한회장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그가 걸친 허연 독수리 배설물이 군데군데 묻고 때 전 겨울 외투가, 마치 성룡 주연의 액션영화 ‘턱시도’에 나오는 그 턱시도 같다. 일단 입기만 하면 독수리에 관해 자유자재로 능력을 발휘케 해주는 ‘마법의 옷’인지도 모를 일이다.
탈진 독수리의 ‘밥’은 돼지 간
그런 그에게도 아쉬움은 많다. “독수리가 떨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막상 현장에 출동해보면 그곳이 지뢰 매설지역인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땐 말 그대로 속수무책. 탈진한 독수리를 돌보는 일도 쉽잖다. 치료실이라고 해봐야 몇 개의 개 운반용 상자를 가져다놓고 그것을 우리 삼아 탈진한 독수리를 보살피는 작은 공간이다.
식칼로 묵묵히 돼지 간을 썰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 박승환 사육실장(54)은 “탈진한 놈들에겐 통상 고단백인 돼지 간부터 먹인 뒤 돼지고기나 닭고기, 냉동 돼지고기의 순으로 먹인다”며 “독수리들이 다시 야생생활에 적응케 하려는 배려”라고 말한다.
보호구역에 독수리 먹이를 조달하는 것도 힘겨운 일. 파주지역에 양계·양돈 농가가 많아 이웃들의 도움으로 먹이를 대기도 하지만, 싸게 줘도 마리당 30만원쯤 하는 돼지를 한번에 10마리씩은 구입해야 한다. 여기에 인건비 등을 추가하면 한번 먹이를 주는 데 보통 400만∼500만원 가량 든다. 일주일에 한번은 먹이를 줘야 하니 한달이면 얼추 2000만원 정도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먹이 운반도 쉽지 않고, 본의 아니게 살생도 해야 한다. 양계장에서 산 닭을 마대(麻袋)에 넣어 질식사시킨 뒤 먹이로 줘야 한다.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 또한 고역이다.
이야기가 무르익는데, 한회장이 슬며시 기자를 이끈다. 그리고는 치료실 상자에 든 탈진한 독수리 1마리를 가리키며 씩 웃는다. 경기도 양주에서 착지 도중 다리를 접질려 쓰러졌다 구조된 놈이다. 한회장은 “독수리들에겐 멋있게 착지하려는 겉멋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젠 안정을 되찾았는지 녀석은 “쌔액색∼” 코까지 골며 곤하게 잔다. 문득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란 생각이 새삼 스친다. 조금 더 있으니 거의 기력을 회복한 또 다른 독수리 1마리가 상자를 머리와 발톱으로 마구 치받고 긁어대며 한바탕 소란을 떤다. 답답할 것이다. 그래도 일단 한번 탈진했다 회복한 놈들은 다른 야생 독수리와는 달리 아무렇게나 날뛰진 않는다는 게 한회장의 귀띔이다.
이야기가 길어져 오후 8시쯤 한회장 가족과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메뉴는 순대국밥. 순대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회장의 외동딸 보람(10·초등학교 3년)이 털어놓는 포부가 당차다. “경찰대에 가서 밀렵꾼 잡는 경찰관이 될래요.” 딸을 바라보는 한회장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 미소가 번진다. 그 순간만큼은 그도 ‘독수리 아빠’가 아닌 ‘보람이 아빠’다.
12월11일 오전 10시 보호구역. 어제의 허망함을 만회하기 위해 이번엔 쌍안경으로 독수리들의 행동거지와 비행동작을 면밀히 관찰하기로 했다.
어제보다 다소 많은 200여 마리쯤 몰려나와 있다. 독수리들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젖소와 돼지의 살점을 공략한다. 젖소의 배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은 먹이행사 당시 먹이가 얼어붙더라도 놈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일부러 뚫어놓은 것이다. 이 구멍에 독수리 1마리가 머리를 들이밀고 게걸스럽게 주린 배를 채운다.
독수리와의 이틀 낮 신경전
식사시간엔 반드시 ‘보초’들이 있다. 먹이를 둘러싼 일단의 독수리들과 멀찍이 떨어진 외곽에 4∼5m 간격으로 붙박이처럼 빙 둘러서서 주위를 경계하는 놈들이다. 공중을 선회하는 놈들도 ‘보초’다. 먹이 위에 올라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1∼2마리도 마찬가지. ‘보초’들은 까치나 까마귀가 귀찮게 집적대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킨다. 대체 ‘대장’이 어떤 녀석이길래, 그 어떤 카리스마를 지녔길래 이토록 조직의 위계질서가 강고할까.
‘독수리 아빠’ 한갑수 회장에 따르면 맨 먼저 먹이를 먹는 놈이 바로 리더다. 리더가 식사를 마쳐야만 비로소 다음 서열의 독수리들이 ‘식탁’에 앉는다. 놈들이 식사를 마치면 또 그 다음 서열…. 아무리 먹이가 지천으로 깔려도 서열 낮은 놈들은 대기한다. 나흘 이상 기다리기도 한다. 이를 어기면 곧 죽음이다. 철저한 조직사회. 어차피 야생의 질서는 힘이 좌우하지 않던가.
오전 11시10분. 한 놈이 쏜살같이 날아와 젖소 엉덩이 부위에 내려앉는다. 놈은 젖소의 엉덩이와 배 부위를 한창 뜯고 있는 다른 독수리들을 날개를 펴 위협해 자리를 뺏는다. 어디에건 독불장군은 있는 법. 엉겁결에 자리를 뺏긴 놈들이 누런 흙먼지를 날리며 너울너울, 겅중겅중 뛰어들어 대항해본다. 하지만 싸움은 매번 2∼3초 만에 싱겁게 끝난다. 유조들은 서로 겁만 줄 뿐, 좀처럼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조들의 싸움은 투계(鬪鷄)를 방불케 할 만큼 전투적이라고 한다.
독수리의 착지 장면은 무척 흥미롭다. 기류를 타고 활공하다 “퍽퍽퍽” 날갯짓 소리를 내며 착지한 뒤 잠시 몸을 기우뚱하면서 한쪽 날개부터 먼저 접는다. 그리곤 기우뚱하며 다른쪽 날개를 마저 접는다. 초원에서 벌이는 몽골씨름에서 승리자가 보이는 자축의 ‘세리머니’도 독수리 날갯짓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놈들은 착지가 서툴러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마치 만취한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는 듯하다.
이런 소동과 무관하게 추수 끝난 논은 기러기들의 차지. “끼룩끼룩” 하는 놈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반면 독수리는 까치, 까마귀, 닭 울음소리보다도 작은, “과과과”하는 소리만 낸다. 보기보단 꽤 과묵한 놈들이다.
그래도 독수리가 나는 모습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날개를 수평으로 펼치는데, 그 끝부분은 살짝 들려 있다. 날개 끝의 갈라진 부분은 기류를 조절하기 위한 것. 기류를 타고 활공하다 힘이 떨어지면 몇 번 절도 있게 날갯짓한 뒤 다시 활공한다. 놈들은 최고 5000m 높이까지 난다. 독수리가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오를 수 있는 건 35만개의 조그만 갈고리들이 서로 얽혀 있는 날개와 속이 텅 빈 뼈 구조 덕분이다.
독수리의 시력은 인간의 시력보다 5배는 더 좋다. 사람과 달리 2개의 황반(黃斑)이 망원렌즈 역할을 해 줌(zoom)기능이 가능하므로 창공에서 지상의 먹이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후각도 예민하다. 먹이가 눈에 덮여도 곧잘 찾아낸다. 반경 5∼8km 내의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새 기자의 후각은 마비됐는지 ‘독수리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새 면역이 된 걸까.
독수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몽골, 시베리아, 카자흐스탄 등에서 고루 온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몽골에서 온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한국자연정보연구원 노영대 원장(51)은 1998년부터 2년간 독수리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바 있다. 그는 한국에서 탈진했다 발견된 독수리 2마리에 무게 80g의 성냥갑만한 인공위성 추적장치를 부착, 그들이 월동을 끝낸 후 각각 몽골 서북부와 동부 끝으로 돌아가 생활하다 다시 겨울을 앞두고 한국으로 날아오며, 대부분이 유조들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최초로 독수리의 이동 경로가 드러난 것이다.
당시 몽골까지 독수리를 찾아간 그가 꼼꼼히 관찰한 독수리의 서식 행태는 독특한 점이 많다. 그에 따르면, 독수리는 보통 외부의 침입이 힘든 높은 암벽이나 나무 위에 직경 2m가 넘는 둥지를 튼다. 2∼4월 산란기가 다가오면 하루 5∼6차례 짝짓기를 한다. 한배에 단 1개의 알만 낳는다. 알의 긴쪽 지름은 12cm 가량. 포란(抱卵: 부화를 위해 어미새가 알을 품어 따뜻하게 하는 일)은 암수 교대로 54일 정도 한다. 보통 조류보다 훨씬 긴 기간이다.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는 턱 바로 아래 먹이주머니에 먹이를 저장했다 새끼들에게 먹인다. 독수리의 날개길이는 2.5∼3m, 몸무게는 8∼10kg으로 유조의 덩치도 성조와 별 차이가 없다. 수명이 25∼30년쯤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동물원의 사례일 뿐 정확한 수명은 아무도 모른다. 지능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인간이 독수리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일 수 있다.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인 몽골의 겨울날씨는 혹독하다. 10월이면 벌써 겨울. 한겨울엔 최저기온이 영하 40∼50℃까지 떨어지는 게 보통이다. 기자는 2002년 2월 취재차 몽골에 갔다 귀국하면서 비행기 창 너머로 몽골의 산하를 유심히 굽어본 적이 있다. 한반도의 7배나 되는 큰 땅. 그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구릉과 벌판이 온통 하얀 눈에 덮인 광경을 한번 상상해보라. 한번 쌓인 눈은 겨울이 다 가도록 결코 녹는 법이 없다. 눈은 야생동물에게 최대의 시련. 더욱이 유목민들이 가축을 모두 거둬들이는 겨울에 폐사한 가축이 있을 리 없다. 눈밭에서 먹이를 찾는 일은 덤불에 떨어뜨린 바늘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독수리는 혹한과 굶주림을 피해 동토(凍土)를 떠나 직선거리로 1500km를 훨씬 넘는 한국까지 날아오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왜 유조들만 남하(南下)할까. “성조들은 현지에서 적응할 힘과 경륜이 있다. 하지만 먹이다툼 등 생존경쟁에서 경쟁력을 잃은 유조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들이 먹이를 구하고 겨울도 나려면 남하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노원장 나름의 분석이다. 그러나 그 분석은 몽골 현지답사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월동 과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자연 적응력도 배가되니 유조들에게 월동지는 ‘리조트’겸 ‘유학 장소’인 셈이다. 사람으로 치면 ‘해외 연수’를 오는 것이랄까. 비록 혹독한 연수이긴 하지만.
까치·까마귀에 쫓기고…
아동문학가 이오덕씨(77)는 근저(近著) ‘나무처럼 산처럼’에서 ‘독수리와 까마귀’란 제목의 글을 통해 까마귀에 쫓겨 달아나는 독수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설명하면서 ‘참 세상에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싶다’라고 썼다.
어쩌다 독수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일본작가 요시다 다키오의 애니메이션 ‘독수리 5형제’에서 5형제는 가공할 힘을 지닌 악의 세력에 맞서 ‘불새’로까지 변신하지 않던가. 현실의 독수리들은 상상과는 너무도 다르게 ‘허약’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는 새삼스런 현상이 아니다. 육식성 조류로 맹금(猛禽)류에 속한다고는 해도 사실 독수리는 성질이 사납지 않다. 그래서 종종 까치·까마귀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 심지어 눈알을 쪼여 부상당하는 놈들도 적잖다. 어쨌든 독수리 체면은 말이 아니다.
공격 이유는 분명하다. 독수리들은 월동지를 찾을 때 2∼4마리 ‘정찰대’가 먼저 목적지 상공을 돌며 주위를 살핀다. 이때 터줏대감인 까치·까마귀들이 자신의 구역을 빼앗기지 않으려 독수리들의 착륙을 막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독수리와 까치·까마귀를 공생관계로 볼 여지도 있다. 역설적으로 ‘틈입자’에 민감한 텃새들이 자리잡은 곳은 독수리에게도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오후 2시를 넘어서자 어제처럼 독수리들의 무리 이탈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다시 휴식을 취할 것이다. 월동지에서 독수리의 하루는 대략 12월 10∼11일 양일간 지켜본 그대로다.
독수리는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晝行性) 조류다. 잠을 깬 독수리들은 오전 9시쯤 보호구역으로 날아와 먹이를 먹다 오후 2시가 넘으면 먹이 공급지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하나둘씩 볕을 쬐며 쉰다. 그러다 일몰이 가까워지면 그들만의 ‘숙소’로 사라진다. 이런 단순한 생활을 반복하며 봄을 기다린다. 그리곤 이듬해 3월 말 혹은 4월 중순, 그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힘을 잃은 사자, 자유를 잃은 독수리, 짝을 잃은 비둘기는 모두 슬픔에 못 이겨 죽는다고 한다.’ 어릴 적 읽은 ‘시튼 동물기’의 한 구절, 이제 이 글귀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자유를 잃지 않은 독수리들도 심심찮게 죽는다’라고.
실제 월동지에선 독수리 주검이 곧잘 발견된다. 한국조류보호협회에 따르면 2002년의 경우 11월13일부터 12월12일까지 한 달간 파주·철원을 비롯한 전국에서 76마리의 탈진 독수리가 발생했다. 이 중 45마리는 중태이고, 28마리는 폐사했다. 3마리는 건강을 회복해 자연방사했다.
조류보호협회가 최근 수년간의 사고 독수리 통계를 집계중이지만, 2002년의 76마리만 보더라도 3000여 마리에 불과하다는 전세계 독수리의 2.53%, 한국을 찾는 독수리 850여 마리의 8.9%에 이른다. 이 수치만 봐도 독수리 보호의 필요성은 자명하게 드러난다.
독수리들이 해마다 떼죽음을 당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독수리를 밀렵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천연기념물을 함부로 잡거나 해칠 때는 문화재보호법 제81조에 의해 3년 이상 징역형을 받게 되는데, 굳이 이 조항이 아니더라도 독수리는 밀렵대상과 거리가 멀다. 독수리는 낙곡(落穀)을 먹지 않는다. 때문에 일부러 독극물을 묻힌 동물 고기를 미끼로 놓지 않는 한 독수리의 독극물 중독은 원칙적으론 있을 수 없다.
2001년 11월27일부터 12월10일 사이 파주시 군내·장단·진동면 일대에서 쇠기러기 4마리와 독수리 9마리가 폐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부검 결과 독수리가 농약(모노크로토포스)에 중독된 조류 사체를 먹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2002년 11월 19∼21일에도 파주시 군내·장단면 일대에서 독극물에 희생된 독수리 7마리가 폐사하고 다른 7마리가 중태에 빠졌다. 사인(死因)은 같은 성분의 농약중독. 두 사건 모두 범인을 300만원에 현상수배했지만, 아직껏 현상금을 타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폐사 이유는 먹이 부족이다. 이 문제는 근원적인 해결이 힘들다. 보호구역을 지정해 독수리 먹이를 줘도 폐사율을 낮출 수는 있지만, 아사(餓死)를 근본적으로 막기는 불가능하다. 보호구역을 선호하지 않는 독수리들도 있기 때문. 보호구역 설치 이전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에 한때 400여 마리나 밀집했던 점을 감안하면, 계산상 같은 규모의 독수리들이 보호구역으로 모여들어야 옳다.
그러나 실제론 ‘누수(漏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월동지를 어디로 택할지는 오로지 ‘독수리 마음’이다. 더욱이 2002년의 경우 독수리들이 예년(11월)에 비해 다소 빠른 10월 중순에 도래하는 바람에 도래 초기 준비 부족으로 미처 먹이를 주지 못해 탈진 독수리들이 늘어났다. 결국 독수리의 멸종을 막기 위해선 신선한 먹이를 주기적으로 공급하고 개체수가 일정 수준으로 늘 때까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떠나지 않는 의문 하나. 왜 독수리는 유독 DMZ 인근에 밀집하는 걸까. 그보다 조금 더 남하하면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철새 도래지, 천수만이 있잖은가. 최근 수년간 관찰된 철새만 220여 종 40여 만마리에 달할 만큼 사시사철 철새들의 경유지다. 또 을숙도, 주남저수지, 순천만, 금강하구, 해남지역 등 다른 철새 도래지도 많다. 그러니 독수리 먹이인 동물 사체도 그만큼 풍부할 것 아니냐, 그 말이다.
이에 대해 노영대 원장은 “민통선 지역은 영농인들도 일정 시간 출입을 통제받는 만큼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되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어서 안전과 먹이가 보장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것이 독수리들의 ‘DMZ 집중’ 현상을 모두 설명해주진 못한다”며 “독수리 생태에 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 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독수리 연구가 지지부진한 원인은 독수리 전문가가 없어서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독수리 생태에 정통한 학자가 거의 없다. 따라서 독수리 월동지와 번식지를 각각 지닌 한국과 몽골은 주도적으로, 또한 공동으로 독수리 생태 연구에 나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누가 독수리를 호도하는가
혹자는 “천연기념물이라곤 하지만, 독수리가 인간을 위해 하는 일이 뭐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수리는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분해자 역할을 함으로써 사체로 인한 토양·하천·대기오염을 막아낸다.
무엇이 진정 독수리를 독수리이게 하는 것들인가. ‘하늘의 제왕’이란 생태적 지위는 독수리에 걸맞지 않게 인간이 부여한 오해다. 독수리는 ‘자연의 청소부’다. 그리고 이젠 농약 등에 의한 먹이오염, 각종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로 ‘청소 대상’마저 잃은 ‘실업자’ 신세일 뿐이다. 실업을 구제하려면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독수리에게 있어 고용은 곧 먹이공급이다.
아마도 독수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을 찾는 손님이었을 터. 그러다 급속한 환경 변화에 밀려 멸종 위기에 처하면서 최근 수년간 몸까지 내던지며 ‘경고음’을 울린 것이리라.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도 맡고 있는 노영대 원장은 천연기념물을 ‘생명문화재’란 독특한 조어(造語)로 부른다. 그는 “독수리 보호 활동과 함께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으면 월동지가 ‘킬링필드’로 변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우려한다. 몇몇 뜻있는 개인, 일부 학자, 동호인들, 환경단체 차원에서만 독수리 문제가 논의되는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지난 역사에서 독수리는 흔히 지배자의 상징으로 이용되곤 했다. 그러나 독수리들은 지배자의 ‘지위’를 요구한 적이 없다. 따라서 지배자의 자리에서 영락(零落)한 존재쯤으로 치부할 필요도 없다. 그저 독수리를 ‘군식구’ 정도로 생각해온 우리가 그들의 진면모를 까맣게 모른 채 그렇게 오판했을 따름이다.
독수리를 관찰하고 돌아오는 마음은 편치 않다. 결과적으로 취재팀의 당초 기획 의도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나 독수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훌훌 털었다는 사실만큼은 ‘해피’하다.
인간과 더불어 환경공동체를 이루는 독수리에겐 그들의 보금자리를 지킬 권리가 있다. 이젠 독수리의 관점에서 그들의 수난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자연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며, 독수리들은 앞으로도 이 땅을 찾을 것이기에.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자 폐기는 大과오… 국한 혼용으로 ‘東 아시아성’ 살려내자 (0) | 2008.07.30 |
---|---|
베이징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48시간, ‘칭짱철도’ 탑승기 (0) | 2008.07.30 |
스물 일곱 번의 칼질… 그러나 死者는 말이 없었다 (0) | 2008.07.27 |
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0) | 2008.07.25 |
‘新무협’ 선구자 용대운 (0) | 2008.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