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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암 환자가 된다는 것

醉月 2008. 7. 25. 09:55
● 몸에 10개의 관을 달고 죽는 사람들
● 효자·명의 많은 나라에서 더 불행한 암환자
● 의사의 고백 “항암치료요? 전 안 받을 겁니다”
● 통증 조절 외면하는 병원·건강보험공단
● “왜 환자를 속이지요? 죽는 건 나잖아요”
● 심신파괴·가정파탄, 고통의 악순환
● “재발하면 안락사 시켜달라” 유언장 쓴 사람들

‘…양 발톱을 다 깎고 손도 달라고 했습니다. 됐다는 사람의 손을 반 강제로 끌어다 놓았습니다. 날렵한 손 모양과 손가락, 예전 그대로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뒤집어보니 손바닥엔 미세한 잔주름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끔찍했던 수술, 살갗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방사선, 까만 머리가 한 웅큼씩 빠지던 항암제, 그리고 무자비한 통증을 견뎌내고 있다는 징표였습니다. 주름을 펴보려고 손바닥을 쓸어내려도 없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지난 3월26일 또 한 명의 말기암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 32세 주부 김현경씨. 생전 그녀는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말기암 환자의 살아가는 이야기’(column. daum.net/solanobagles/)라는 칼럼을 연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동아’ 2000년 11월호에 그 전문이 소개되기도 했다. “통증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며 연재를 중단한 지 5개월. 결국 그녀는 한 줌 재가 되어 암도 없고 통증도 없는 나라로 먼길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인 4월1일. 뜻밖에도 같은 사이트에 새 글이 올라왔다. 김현경씨의 남편이 쓴 것이었다. 그는 병든 아내의 발톱을 깎아주었던 어느 날을 아프게 추억하고 있었다.

98년 12월19일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던 김현경씨는 ‘한국의 말기암 환자’가 겪을 법한 그 모든 고통의 과정을 빠짐없이 밟았다. 주름진 손, 무력하게 부스러지는 발톱에서 남편은 또 한 번, 사랑하는 아내가 하루를 평생처럼 싸우고 있는 통증의 절망적 실체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적고 있다. ‘부서지는 것은 현경이 발톱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4000여 명의 네티즌이 이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올려놓는 이만도 하루 수십 명을 헤아린다. 김씨의 죽음이 알려진 날에는 무려 500여 편의 추모 글이 올라왔다. 김현경씨 남편이 쓴 새 글이라도 올라오는 날이면 사이트는 그야말로 초만원을 이룬다.

그 중 많은 이들이 김현경씨와 그 남편에게서 구하는 것은 동병상련의 위로다. 부모를, 배우자를, 친구를 암으로 잃은 사람들 혹은 지금 투병 중이거나 그 가족인 사람들 사이의 절절한 동지애. 이렇게 암과 그로 인한 죽음은 우리 삶 도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 암환자가 제일 불쌍하다”

암은 인종이나 성별,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지구상의 어떤 인간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투병자들은 곧잘 “한국 암환자가 제일 불쌍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열악한 의료 환경, 가족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구조, 의료진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비싼 치료비, 삶의 질보다 타인의 시선에 더 민감한 가족…. ‘환자’는 없고 ‘병’만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유언장 쓰기 운동’을 벌여야 할만큼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차분한 준비’조차 어렵게 한다.

“한국 암환자들에겐 일종의 코스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겠지만 우리만큼 정형화돼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암 발견-통보-수술-항암제 투여-재발-다시 항암제 투여-사망. 그 사이사이에 방사선 치료가 곁들여지지요. 열이면 아홉은 이른바 대체요법을 찾아 산천을 헤매고 멀리 중국이나 일본까지 날아가기도 합니다. 상당수의 환자들은 제대로 된 임종 관리나 준비 없이 북적이는 병실 한 켠에서 몸에 호스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저 세상으로 가죠. 외롭고 두렵고, 인간의 존엄이란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죽음입니다.”

‘한국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암환자 모임)’의 이정갑 회장(60)의 말이다.

 

“왜 환자를 속이지요?”

암은 무서운 병이다. 종류만도 270여 가지. 암세포는 혈류와 임파선을 통해 다른 장기로 빠르게 전이된다. 수술로 해당 장기를 완전히 도려낸다 해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한 번 암이 발생한 환자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 해도 ‘완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언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낼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토록 무서운 병이요, 88년 이후 대한민국 국민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병이지만 암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국민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된 상식 수준의 정보에 의존할 뿐이다. 암은 ‘죽을 병’이며 수술이나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의 주 내용이다.

암 선고는 환자 자신, 그리고 가족들에게 혼돈이고 절망이며 심지어는 ‘하늘이 내린 벌’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법정에서나 쓰일 ‘선고’라는 말이 통용될까.

암은 불쑥 찾아온다. 취재 중 만난 환자들 가운데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진단을 받은 다음에도 “그럴 리 없다”며 병원 서너 곳을 전전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암은 특성상 조기 진단이 쉽지 않은데다 정기 건강검진이 일상화되지 않은 현실로 인해 3기 혹은 말기에 이르러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암으로 인한 통증이나 신체 불균형이 나타나도 환자 스스로 ‘알아서’ 약을 사 먹거나 동네 병원에서 간단한 진료만 받고 만다. 암환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변비려니 했다”거나 “체한 것 같아 소화제만 사먹었다”, “치질 치료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직장암이더라”는 류의 이야기를 한다. ‘매년 8만명의 암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나라’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암환자 중 많은 수는 암 진단 통보 때부터 ‘소외’를 경험한다. 위암 3기 환자인 정화자씨(56)는 위 절제수술을 받은 다음에야 자신의 병명을 알았다. 그것도 “3기라 수술이 쉽지 않았다”는 레지던트의 무심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냥 위궤양 수술인 줄 알다 그 말을 들으니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구요. 그 심정 뭐라 말 할 수 없고…, 나중에는 화가 나데요. 죽을 병 걸린 사람은 난데 왜 다들 속이나 싶어서요. 그때부터 의사나 남편 말을 잘 믿지 않게 됐어요.”

가족으로서는 혹 병명을 안 환자가 좌절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내린 결정이겠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실제로 서울대 가정의학과가 항암치료 중인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답변자의 87.5%가 ‘진단 결과를 환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머지 12.5%는 ‘상황에 따라서’라고 답했다. 알리지 말아야 한다는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자력병원 혈액종양내과 류백렬 과장은 “환자에게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는 보호자들이 있다. 의사로서는 몹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인이 무슨 권리로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당사자 모르게 처리할 수 있는가”고 반문했다.

   

“암에 대해 공부하라”

병명을 알고 나서 환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략 3가지다.

“70%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큰 절망에 빠집니다. 희망을 잃는 거지요. 20%는 암이 죽음의 질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요. 그러면서도 억울한 심정은 어쩔 수 없이 들죠. 10% 정도만이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는 꼭 싸워 이기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아무래도 암을 극복할 가능성이 커요.”

암환자 모임 이정갑 회장의 설명이다.

95년, 서른세 살 때 위암 판정을 받았던 김승겸씨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생존율이 10% 이하라는 얘기에 충격받지 않으려고, 태연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한다. 10% 생존율은 낮은 게 아니다, 나는 당연히 그 10%에 든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이후 김씨가 힘든 수술을 견뎌내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병을 이겨내는 데 큰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다수의 환자는 그렇지 못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누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의사는 늘 바쁘고, 그렇다고 사태를 이해시켜 줄 다른 사람을 찾기도 난망하다.

이미 이 단계를 경험한 환자나 병 치료에 얼마간 성공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 자기에게 맞는 치료법을 선택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의사들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사만 맹신해서는 안돼요. 왜 그런 치료를 받는지,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어야지요. 책을 읽고, 인터넷 사이트도 뒤져보고,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과 대화도 많이 나눠야 해요. 암에 대해 의사만큼 안다는 확신이 서면, 그때 확신을 갖고 치료법을 선택해도 늦지 않습니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3년째 투병 중인 백중호씨(41)의 조언이다.

암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은 ‘수술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주치의로부터 “수술 한 번 해보자”는 말을 들으면 그나마 생기가 돈다. 뭔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수술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가능하다”는 말을 해줄 병원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됨은 물론이다.

어떤 이들은 안된다는 의사를 붙들고 늘어지며 “그냥 열었다 닫아도 좋으니 꼭 해 달라”고 호소한다. 특히 보호자의 경우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만족 혹은 주변의 시선(수술 한 번 못 받고 죽게 했다는 비난)을 고려해 수술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술은 초기암을 제외하고는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또 보호자들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배를) 열어보니 너무 퍼져 있다, 그냥 닫아야겠다”는 것이다. 수술 후 찾아올 고통이나 후유증을 생각하면 피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 강남의 모병원은 환자들 사이에서 ‘잘 째기로’ 유명하다. 같은 유방암이라도 그 병원에만 가면 꼭 절제수술을 권하고 그것도 아주 ‘세게’ 잘라버린다는 소문이다. 여기서도 결국 필요한 것은 현 상태에 대한 환자 자신, 그리고 보호자의 정확한 이해와 판단이다.

 

급행료의 효과

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은 주치의에게 있다. 몇몇 대형병원이 채택하고 있는 환자권리장전의 내용도 그것이다. 인간으로서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 의료진의 성실한 대우를 받을 권리, 전문 분야에 대해 알 권리, 현 상태 및 치료계획·예후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 치료·검사·수술 여부를 선택할 권리, 진료상 비밀과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 신체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 진료비 내역에 대해 알 권리.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환자는 많지 않다.

모병원 암병동에 입원 중인 남경락씨(55). 지난해 2월 말 식도암 말기 진단을 받고 3월 초 수술을 받았다. 어느 정도 회복된 듯해 직장에 복직도 했다. 그런데 올 4월 왼편 다리에 통증이 시작됐다. 병원을 찾으니 재발했다고 했다. 4월23일 재입원해 다시 검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남씨와 보호자인 아내는 놀랍게도 재발 부위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다. 의사가 그냥 ‘배’라고 했다는 것이다. 왜 더 자세히 묻지 않았느냐고 하자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맞는 거지, 뭐 하러 꼬치꼬치 캐물어 귀찮게 해드리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의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의사 얼굴 보기가 왜 이리 힘든지…”

이런 넋두리는 암 투병 중인 환자나 보호자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저 “잘 됐어요”하는 정도. 아버지가 직장암 투병 중인 한 보호자는 “의사랑 딱 5분만 눈 맞추고 이야기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역시 아버지가 폐암 말기 환자인 임보영씨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다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2주 동안 주치의 얼굴은 단 두 번밖에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레지던트가 암이라면서 너무나 쉽게, 6개월에서 1년 사십니다, 그러고 마니 듣는 우리로선 할 말이 없더군요. 나중에 주치의 말이 제 어머니 우시는 게 보기 싫어 젊은 의사를 시켰대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지만 그때는 그 의사를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심정, 아시는 분은 알 겁니다.”

의사와 ‘눈을 맞추기 위한’ 환자와 보호자의 노력은 때로 눈물겹기까지 하다. 의사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두었다가 따라붙어 동냥하듯 몇 마디를 주워 듣는다. 주치의 회진 때를 대비해 미리 질문 내용을 적어 몇 번씩 예행연습을 하기도 한다. 길고 중요하지 않은 듯한 질문은 할 수 없다. ‘선생님’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함이 극에 달하면 ‘급행료’를 준비하게 된다. 봉투에 적게는 30만~50만원, 많게는 200만원 정도의 돈을 넣어 주치의나 레지던트에게 전달한다. 거절하는 의사도 많지만 일단 받고 나면 대우가 확실히 달라진다. 방으로 불러 차트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의사의 설명에 목마른 환자

환자들이 얼마나 의사의 ‘설명’에 목말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서울 공덕동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암환자모임에는 하루에도 십수 명의 보호자가 전화를 걸거나 찾아와 “의사 선생님이 하신 그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한다. 뭔가를 듣기는 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교적 친근한 동네 병원에 차트를 들고 가 해석을 부탁하는 이도 있다. 경기도 광명시의 한 개업의는 “지난 1년간 내가 차트를 봐주거나 상담해준 암환자만 족히 100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도 종합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해 암병동 의사들이 얼마나 바쁜지 잘 압니다.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나 싶어요. 혹시 친절하게 대해줬다 계속 귀찮게 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암환자의 경우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긴 하지요. (의사로서는) 방어적이 되기 쉬워요.”

진료기록을 달라거나 진료비 내역을 알려달라는 요구는 거의 하지 못한다. “지금 맞는 항암제 이름이 뭐고 특장점은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말해주면 아느냐”는 핀잔을 들었다는 대학 강사도 있다.

직장에 암이 생겨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은 정미영씨(37). 수술 전 종양 크기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한 달간 고통스런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방사선을 쬔 부위가 헐고 뭉그러져 그것을 치료하는 데만 다시 한 달이 걸렸다. 정씨는 “방사선이 무서운 건 여자의 경우 아이를 낳을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사전에 말해주는 의료진은 없다. 모든 것은 피를 토하는 경험을 통해서만 알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것은 수술 부위를 좁혀 항문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씨는 결국 영구 장루(인공항문) 보유자가 됐다.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고액의 방사선 치료는 결국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었다.

원자력병원 류백렬 과장도 “의사에게 따지는 환자가 되라”고 당부한다.

“무관심한 보호자보다 ‘피곤한’ 보호자가 훨씬 낫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야지요. 의사에게 되도록 많은 정보를 들어 환자나 가족 스스로가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반대로 의사에게는 여러 가능성과 예상되는 결과를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암은 특히 설명이 많이 필요한 병입니다.”

그러나 류과장도 “우리 의료 현실이 환자 개개인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갔다. 류과장 자신도 30명 가까운 암환자의 주치의를 맡고 있는 데다 외래 진료, 과제연구 등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결국 근본원인은 기형적인 의료체계라는 지적이다.

 

암환자 등치는 사기꾼들

막상 수술을 하고 난 다음, 혹은 수술조차 못할 상태임을 알게 되면 환자와 가족들은 ‘제3의 길’을 찾아 헤매게 된다. 병원 치료로 암 퇴치 혹은 생명 연장에 성공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지만 확률은 아직 높지 않은 편. 특히 3개월, 6개월, 1년 등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암 환자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병원 치료로는 안 된다는 걸 분명히 아니까요. 그렇다고 멀쩡히 살아있는데 손놓고 죽을 날만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위암 말기인 누나(36) 때문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김재형씨. 야채스프부터 느릅나무 달인 물, 키토산, 상황버섯, 숯, 녹즙, 알로에까지. 그가 ‘미음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누나에게 정성껏 구해 대령하는 ‘항암식품’ 목록은 오늘도 늘어만 간다.

‘한국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의 인터넷홈페이지(www.A-M.or.kr) 게시판에는 기적의 치료법을 찾아 헤매는 환자와 가족의 사연이 수없이 올라와 있다. 각종 대체요법이나 약재, 식품, 병원, 의사에 대한 정보 교환이 주목적. 막막한 심경을 털어놓은 글에는 환우(患友)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이어진다.

휘문고 3학년생이라고 밝힌 장재호군의 ‘착한 우리 엄마’라는 글에는 홀어머니에 대한 염려와 사랑, 암 앞에서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소년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얼마 전에 엄마가 위절제 수술을 하셨어요. 무엇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요? 어떤 말씀이라도 좋으니 해주세요. 병원에서 육류를 많이 먹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인터넷에선 절대 금하라고 해서 고기는 드시지 못하게 하는데. 잘 하는 걸까요? 혹시라도 제가 잘 알지도 못하구 오히려 엄마한테 잘못하는 게 아닌지 걱정돼요. …형이랑 저랑 엄마랑 세 식구가 사는데 엄마가 갑자기 아프시니까 너무 두렵네요. 누구는 쑥뜸이 좋다고 하는데, 혹시 잘 아시는 분 있으세요? 또 어디선 면역을 높여준다고 AHCC라는 일본 제품이 좋다구 해서 오늘 택배로 왔는데. …가정형편은 안돼도 엄마만 살면 되니까 사기 당하는 건 상관없지만…. 엄마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어느 분이든 평생에 걸쳐서 갚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더 기막힌 건 이렇듯 혼란과 불안에 떠는 말기암 환자나 가족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말기암 환자 집에 전화를 걸어 “이 약 한 첩이면” 혹은 “이 치료 한 달이면” 어떤 암이라도 씻은 듯이 낫는다며 환자의 생명과 가족의 사랑을 담보로 금품을 갈취한다. 3기 말이라는 한 위암 환자는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어떤 사람은 정말 죽이고 싶더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치료법을 찾아 일본, 중국 등 외국의 용하다는 의사나 의료기관을 찾아 나서는 환자도 있다.

두 아들을 둔 주부 김미선씨(37)는 97년 5월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엉덩이 전체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통증 속에서 수술을 받았고 다시 세 차례의 항암 치료를 견뎌냈다. 98년 1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중의원(中醫院)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씨는 시아버지의 적극적인 독려를 받으며 현지로 날아갔다. 잠깐 진찰을 받은 후 산 두 달치 약 값은 750여 만원. 어마어마한 돈이었지만 ‘혹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김씨도 가족들도 아까운 줄 몰랐다. 99년 7월, 김씨의 암은 결국 재발했다.

“그때 이미 암세포가 골반뼈까지 전이돼 있었대요. 당사자인 저만 몰랐던 거죠. 남편은 그래도 그 약 때문에 재발이 좀 늦게 나타난 것 같다며 자위를 하더군요.”

   

“항암치료 안 받겠다”는 의사

환자들은 병원이 말기암 환자를 내몰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서양의학으로는 어차피 어려운 것 아닌가요. 그럼 대체요법이란 것도 한번 시도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나 한의사 치료 외에는 효과 여부를 떠나 거의 불법으로 돼 있어요. 가능성 있는 대체치료나 식이요법은 병원 안으로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실제 치료에도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요.”

김재형씨의 말이다.

미국의 경우 실제로 117개 의과대학 중 75개 대학이 대체의학을 정규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중국이나 독일 등 유럽 각국, 동남아시아도 개방적이기는 마찬가지. 이렇게 되면 환자들은 적정한 가격에 안전한 병원에서 대체의학적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돈·시간·정력의 낭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생체자기요법 전문가 구한서씨는 “양의라고 해서 모두 대체요법을 불신하는 건 아니다. 나와 개인적으로 만나 의견 교환을 하거나 세미나를 함께 꾸려가는 의사들이 있다. 간혹 내게 자신의 환자를 보내오기도 한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의사들도 대체의학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나 가족이 암에 걸렸을 때는 대체요법에 오히려 누구보다 더 열심히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수술 후에는 대개 항암제 투여나 방사선 치료가 시작된다. 둘 다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요즘은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항암제를 ‘치료에는 큰 도움이 안되면서 삶의 질을 급전직하시키는 독약’이나 ‘최선이라는 명분으로 암환자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행위’로 묘사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재발한 암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말기 위암을 극복한 김승겸씨는 수술 후 세 차례 항암제 투여를 받은 뒤 자의로 치료를 중단했다.

“요행수를 바라기에는 항암제라는 놈이 너무 험악했어요. 몸의 털이란 털은 다 빠져나가고 손, 발톱이 성장을 멈출 정도로 지독한 고통이었으니까요. 하루를 살더라도 항암제 고통 없이 사는 ‘삶의 질’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또 자연요법에 대한 제 나름의 확신도 있었고요.”

직장암 말기 환자 김미선씨는 수술 후 세 차례, 재발 뒤 열 차례 항암제를 투여받았다. 너무 아파 숨이 멎을 만큼 극심한 고통이었다. 특히 재발 뒤 1년 넘게 이어진 항암제 투여는 김씨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열 번째 항암제를 맞은 다음이었어요. 의사가 부르더니 약에 내성이 생겨 다른 걸로 바꿔야 하는데 이젠 더 쓸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약 투여 방법을 달리 해보겠다는 거예요. 저와 가족들은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걸, 치료에 대한 희망도 없이 열 번 맞고 나면 그만일 것을 그렇게도 권했단 말인가. 의사로서는 달리 취할 방법이 없어서였겠지만 저는 너무 억울하고 속이 상했습니다. 병원이 하자는 대로 그냥 끌려간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통증 조절과 치료를 위해 자석요법을 활용하고 있는 요즘, 김씨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미친 말이 끄는 수레에 매달려 가다 놓여난 느낌이라고도 했다.

이제 의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서울 행당동의 한 개업의가 털어놓은 말.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하며 항암 치료 환자를 많이 봤어요. 약을 놓아주고 돌아 나올 때면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죠. ‘넌 암에 걸리면 항암 치료 받을 거야?’ ‘내가 미쳤냐?’”

심지어 한 의사는 “우리나라에 항암제 사용이 유독 많은 건 보건당국과 제약회사, 의사 사이의 검은 커넥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솔직히 임상실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환자의 고통이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그 독한 약을 계속 주입할 수 있는가. 항암제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마저 닥치는 대로 파괴해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더구나 미국식약청 승인도 받지 못한 약이 국내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아 의보 대상 약제가 돼 버젓이 팔려나가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기가 막히다 못해 의사로서 자괴감마저 든다”는 것이다.

 

보호자를 ‘부려먹는’ 병원

또 다른 의사는 “솔직히 항암제 투여 후 재발한 종양에는 항암제가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재발 종양의 경우 이미 내성이 생긴 때문이다. 다시 항암제를 투여하려면 처음보다 더 강한 것을 써야 한다. 그 강도를 견뎌낼 말기암 환자는 많지 않다. 심한 경우 항암제 투여가 오히려 생존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환자가 재발에 이를 즈음이면 가족의 고통도 한계에 다다른다. 경제적·정신적·육체적으로 환자 못지않게 피폐해지는 것. 특히 환자와 짝이 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주 간병인(주로 어머니, 아내, 며느리)은 심한 경우 내과적·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몸과 마음을 상하게 된다.

치료 중 극도로 쇠약해진 환자는 자주 짜증을 부려 가족을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그 스트레스를 환자에게 되돌릴 수도 없는 일. 더구나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아내나 며느리, 자녀가 환자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대부분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된다. 심지어는 가족 대신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자식 잘못 키웠다’는 식의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다.

경제적 부담도 크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암 수술 비용은 400만~600만원 정도. 항암치료도 보험이 되지 않는 약품일 경우 한 사이클에 100만원 이상이다. 여기에 약값, 입원비, 검사비, 각종 건강식품 구입비, 대체요법 치료비 등을 합치면 1년에 1500만원 정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우리나라보다 의료체계나 복지 수준이 월등한 미국도 가족 중 암환자가 생기면 가족 구성원의 20%가 휴직 또는 퇴직을 하고, 31%가 저금을 털어야 하며, 40%가 궁핍에 시달리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이득재 교수는 저서 ‘가족주의는 야만이다’에서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병원에서 장기 치료를 받는 환자를 둔 가족은 온 정신이 환자 돌보는 일에 집중된다. 특히 환자 보호자로서 여자에게 병원은 아예 집이 된다. 간병하는 동안 그 사람에게는 어떠한 개인생활, 사회생활도 허락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족 구성원 가운데 누구 한 명이 이런 환자일 때, 가족의 생활은 결코 정상일 수 없다.’

아울러 이교수는 병원이 환자 보호자를 무보수 간호사처럼 ‘부려먹는’ 것에 분개한다. ‘심한 환자를 돌보는 어머니(보호자)들의 경우 콧줄을 통해 주사기로 약을 주거나, 가래를 뽑거나, 링거액이 다 떨어졌는지 밤새 지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병원비를 내고도 환자에 대한 기초적인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독특한 가족 문화는 환자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된다.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도 가족의 강권에 밀려 할 수 없이 몸을 던지는 수가 적지 않다. 심지어 의사한테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한 70대 노인은 “우리 아들이 실망할 텐데 그냥 해주면 안되겠느냐”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확신을 가지고 치료에 의욕적으로 나서려 해도 집안의 ‘어른’이 나서서 “잘못되면 책임질 거냐”고 호통을 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환자 자신보다 보호자 내지는 가족의 입장만 고려하는 잘못된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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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조절 외면하는 보건당국

모든 치료가 실패로 돌아간 말기암 환자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통증 완화다. 의료계에서도 ‘말기암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는 무조건적인 생명 연장보다 통증 조절을 통한 인간답고 편안한 임종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논의가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그 바탕에는 죽음도 삶의 한 요소인만큼 ‘언제 죽느냐’뿐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 즉 삶의 질을 어떻게 담보할 것이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는 대부분의 말기암 환자, 그리고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장 상황은 아직도 열악하기만 하다.

입원 암환자의 경우 평균 13.5개의 증상, 즉 통증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한다. 환자 입에서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지만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원칙을 충분히 따르면 80~90%의 통증 완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40~50%의 환자가 불충분한 통증 관리로 고통받는 건 환자의 무지와 의료인의 지식 부족, 마약류 진통제에 대한 보건당국의 경직된 자세가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의사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 다 정통한 건 아닙니다. 또 암 전문의의 경우 암 그 자체와의 싸움에 골몰한 나머지 환자의 통증에는 소홀한 면이 없지 않지요. 거기다 의사나 환자 모두 마약성 진통제라 하면 혹시 중독되지는 않을까, 내성이 생기면 어쩌나, 그런 걱정들을 많이 해요. 하지만 말기암 환자에게 그보다 더 좋은 진통제는 없거든요. 부작용도 비교적 적은 편이고요.”

모 종합병원 종양내과 과장의 말이다.

진통제를 처방하면 먹지 않고 몰래 버리는 환자, 통증을 호소하지 않고 잘 버티면 의사에게 칭찬받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참는 환자도 생겨난다. 때로는 가족들이 “마약은 나쁘다”며 환자의 진통제 복용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에선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한번에 100㎖, 200㎖의 모르핀도 처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환자 당 사용량이 정해져 있어요. 보통 10㎖, 아주 많이 준다고 해야 30㎖ 정도죠. 이 정도로는 통증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사가 보다 못해 더 많은 양을 처방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과잉진료’를 했다며 경고장을 보냅니다. 게다가 관리요건도 매우 까다로워 병원으로서는 가장 취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약품입니다.”

그나마 병원 입원 환자는 최소한의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집에서 요양하는 환자는 통증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 꼭 필요한 것이 호스피스, 혹은 적절한 통증 치료가 가능한 왕진 의사다.

 

“앉지도 못하던 우리 형을…”

호스피스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호스피스 프로그램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더할나위 없이 중요한 시스템이다.

‘형은 지난 2월부터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1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일주일에 한번 오시는 호스피스 선생님이 정말 고맙다. 먹지도, 자지도, 누워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하고 엉덩이의 통증으로 고생하는 우리 형을 앉아서 밥 먹게 하고 편하게 잘 수 있게 해준 건 오직 한 분 호스피스 의사 선생님 뿐이다. 은혜는 두고두고 갚아야겠다.’

암환자모임 사이트에 정광덕씨가 올린 글이다.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덜여주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호스피스의 역할이며 효능이다. 많은 경우 통증을 완화하고 마음에 평화를 찾아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생명 연장의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호스피스 프로그램 현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일단 호스피스에 대한 의료보험수가가 구체화돼 있지 않다. 호스피스 병동을 설치한 병원도 전국에 11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다.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환자 한 명에 3명의 간병인이 있어야 한다.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정부와 의료계, 사회단체가 합심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의연하고 깨끗한 죽음은 모든 인간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기암 환자들의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통증에 시달리는 동안 몸에는 하나 둘 ‘구멍’이 뚫리고 수많은 부속품들이 주렁주렁 달린다. 소변 줄, 영양공급을 위한 관, 링거 주사…. 스스로 호흡을 못할 지경에 이르면 산소호흡기가 끼워지거나 심한 경우 기도를 절개하기도 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제대로 된 유언 한마디 없이 가족이 아닌 낯선 의료인들에 둘러싸여 생을 마감해야 한다.

긴 투병기간에 지칠대로 지친 가족은 정작 임종을 맞고도 고인의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거나 유지를 받들 여유를 잃어버리곤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역시 필요한 건 호스피스, 그리고 환자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에 대한 전향적이고 건설적인 마음가짐이다.

암환자 모임 이정갑 회장은 5년 전 방광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특유의 낙천적 기질과 투지를 살려 외국의 유명 의사를 찾아다니는 등 암 공부에 최선을 다했다. 결론은 ‘절대 항암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것. 지리산 산골에 들어가 1년6개월 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 종양 크기는 더 커지지 않았지만 신장에 무리가 가 할 수 없이 방광적출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항암치료는 한사코 거부했다. 수술 집도의에게도 “내 병은 내가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하니 임파선으로 전이됐더라도 방광만 들어내고 다른 곳은 일체 손대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수술 후 3년이 지난 지금 이회장의 건강은 매우 좋은 상태다.

“지리산에 들어가기 전 묘자리를 마련하고 내처 비석까지 만들었습니다. 죽은 날짜 적을 자리만 비워놓고 다 채워 넣었죠. 그렇게 준비를 하고 나니 공포와 두려움이 잦아들더군요. 치료에 힘쓰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매일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물론 유서도 써 두었죠. 유서는 환자 자신은 물론 남은 가족들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수술 후 이회장은 가족을 다 불러모아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혹시 암이 재발하게 되면 내 생명을 연장하려는 어떤 기계적인 시도도 하지 말라, 혹시 내가 혼수상태에 빠지면 편히 갈 수 있도록 안락사를 추진해 달라,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애비를 진정 위하는 길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펄쩍 뛰던 아이들도 이제는 수긍을 해요. 준비해야지요. 인간답게 사는 것 만큼 그렇게 죽는 것도 중요한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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