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版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경영 요체는 均·和·安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 시장은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오늘날 이익의 추구에만 몰두하는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공론에 부칠 필요가 있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가 근 넉 달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출판계에서 정치철학에 관한 책이 이렇게 오래도록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없다. 지난 여름 방한한 저자 샌델조차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일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한 적이 있다.
이 책이 이 땅에서 오랜 관심의 초점이 된 까닭은 우리 국민이 최근 공공영역, 곧 정치 분야에서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데 대한 강렬한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부정의’한 현실에 대한 성찰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 근본 원인이라는 것. 오늘날 이 땅에서 자행되는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성찰을 헤아리면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효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면 장땡이라는 식의 결과지상주의에 대해 회의하는 눈길이다. 목표의 성취과정에 대한 적법성과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는 데 대한 인식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공감을 얻은 맥락 속에 들어 있다는 것.
둘째는 형식적인 기회의 균등만이 아닌 실질적인 기회의 균등, 이를테면 교육과 학습의 실질적인 기회 균등이 국민 전체에게 고루 제공돼야 한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부자는 자식에게 질 높은 사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좋은 학교에 진학시킬 수 기회를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반면 가난한 집 자식들은 사교육 자체를 제공받지 못해 성공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구조적 병폐에 대한 비판이다.
셋째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다. 한국 대기업의 성장과정에는 그동안 정치적· 법적 특혜와 국민의 경제적 손실과 희생이 컸다. 그럼에도 현재 대기업은 그 경제적 성과를 독과점하고, 또 그 성과를 자손에게 대물림하는 현실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넷째는 공공영역의 사유화에 대한 분노다. 최근 드러났듯, 외교부 장관이 자기 자식에게 직업을 대물림하려는 데 대한 국민의 절망과 분노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끝으로 공동체 유지를 위한 구성원의 의무, 대표적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들이 고위 공직을 차지하는 데 대한 비아냥거림도 이 속에는 들어 있다. 말하자면 획득과정의 불공정, 기회의 불공평, 소득의 불균등, 그리고 공공영역의 사유화와 탐욕 등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부정의’의 내용물인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정의에 대한 인식은 그 연원이 꽤 깊다. 그것은 정의를 의미하는 ‘의(義)’자 속에 양(羊)이 들어 있는 데서도 간취할 수 있다. 즉 이 땅에서 정의에 대한 인식은 농경시대를 지나 저 멀리 수렵과 목축의 시대에까지 닿는다는, 기원의 원시성을 글자에서 짐작할 수 있다.
義와 宜, 정의를 뜻하는 두 글자
보다시피 ‘義’자의 글꼴은 양(羊)자, 그리고 아(我)자 모양의 창칼로 이뤄졌다. 원시공동체에서 먹을거리를 정확하게 갈라 균등하게 나누는 데서 생겨난 자형인 것이다. 먹어야 살지만 고르게 나눠 먹기, 이것이 ‘의’라는 글자의 밑바탕인 셈이다. 즉 義자에는 분배의 균등성, 업무의 합리성이 고유하게 박혀 있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정의 인식의 밑바탕이 된다.
또 義자에는 부족한 것을 의식적으로 보충한다는 뜻도 있다. ‘의안’ ‘의족’과 같은 말이 그런 예. 가령 눈이 하나 없을 때 따로 끼운 눈을 의안(義眼)이라 하고, 다리가 하나 없을 때 끼우는 기구를 의족(義足)이라 한다. 또 남 다 있는 형제가 없어 친구를 형이나 아우로 삼을 때 의형제(義兄弟)라 이르고, 낯모르는 타인의 불행에 재물을 기부하는 의연금(義捐金)이라는 말에도 그런 뜻이 담겼다. 그러니까 부족하거나 불행한 것을 사람의 힘으로 메우려는 노력,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이 ‘정의’의 사회적·실천적 의미를 구성해나간다.
고문자를 연구하는 학자 가운데는 정의를 뜻하는 본래 글자는 또다른 ‘의(宜)’자였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宜자가 점차 ‘마땅히’라는 식의 다른 뜻으로 전변해서 쓰이다보니 義자가 그 본래 뜻을 대신하게 됐다는 것. 한문학자 김언종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宜(의)는 (면)과 且(조)로 구성된 글자다. 은 지붕과 두 기둥의 상형으로 ‘집’이 본뜻인 글자다. 한편 且는 제수(祭需)를 담아 탁자 위에 올려놓는 나무틀, 즉 찬합의 상형이다. 그 안에 든 제수는 고깃덩어리다. 이렇게 宜(의)자는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의 탁자 위에 희생 고기를 담은 제수를 찬합에 담아서 올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하고 떳떳하고 마땅하며 옳다는 의미를 담은 글자다.”(김언종, ‘한자의 뿌리’ 2권)
이로부터 동아시아에서 정의란 분배의 균등성, 업무의 합리성,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는 뜻에 덧붙여 행위의 정당성, 당위성, 평등성과 같은 의미가 파생된다.
더불어 살기 위한 분노와 증오
유교에서 정의감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 수치심과 증오심에서 비롯한다. 수치심은 ‘자기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양심이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어제 한 일을 헤아려볼 때 문득 목줄기가 발갛게 타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이것이 부끄러움이다. 이 마음이 있을 때 사람이요, 이것이 없으면 사람 탈을 쓴 짐승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맹자는 “부끄러움이야말로 사람다움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다”(恥之於人, 大矣! 맹자,7a:7)라고 지적한 바다. 사람과 짐승을 구별 짓는 경계선에 수치심, 즉 정의감이 자리하는 것이다.
한편 증오심은 부끄러움을 공동체에 미루어 적용할 때 생기는 ‘공적 수치심’이다. 즉 수치심이 개인적 덕성이라면, 증오심은 공적 덕목이다. 제 몫은 꼭 챙기면서 남의 사정은 거들떠보지 않는 동료에 대한 미움, 제가 저지른 불법을 합법화하는 권력자에 대한 분노,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또 죽이는 짓에 대한 증오심이 정의감을 구성한다. 그러니까 증오심의 밑바탕에는 수치심이 깔려야 하고, 수치심은 증오심으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안팎으로 정의가 선다.
주의할 것은 증오의 속살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아니, 증오는 오로지 사랑에서 빚어질 뿐이다. 전우익의 말을 빌리자면 “난장판 같은 세상에서 속 빈 강정같이 사랑, 사랑 하는데 참된 삶이란 사랑과 증오로 이뤄집니다. 증오도 사랑과 존경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사랑의 배경은 증오고 미움의 배경은 사랑이나 존경입니다. 배경 없는 사진이 어디 있어요?”(전우익, ‘사람이 뭔데’, 122쪽)
실은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일 테다. 증오는 사랑의 뒷면이다. 공자 사상의 핵심어가 ‘사랑’을 뜻하는 인(仁)임은 잘 알려져 있는데 또 막상 ‘인’을 주로 다루는 ‘논어’의 ‘이인’편에 증오(惡)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까닭이 이 때문이지 싶다. 좋은 말로 사랑하기를 격려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부정한 자를 철저하게 미워하는 것이 ‘인’을 실현하는 한 방법이라는 매서운 뜻이 그 속에 들어차 있다. 함께 더불어 잘살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분노심과 증오심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겠다.
‘논개’의 시인 변영로가 ‘거룩한 분노’란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마음’이 흐르는 것, 즉 상반된 색이 한데 어울리는 경지로 묘사한 까닭도 다르지 않다. 맹자가 사랑을 뜻하는 ‘인’과, 그에 상반되게 증오를 함축하는 ‘의’를 아울러 ‘인의’(仁義)를 사람다움의 핵심으로 삼은 까닭도 같다. 한마디로 유교에서 정의는 인간과 사회의 필수 조건이다!
정의가 정치적으로 인식되는 순간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소인배들이 공직에 취임해 공적 지위를 사익을 위한 도구로 삼는 데서부터다. 부끄러움을 잊은 소인배들의 이익 추구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의 대응방법은 증오심을 바탕으로 한 저항이다. 저항은 공자와 맹자가 권하는 합당하고 올바른 길이다. 맹자가, 타고난 군주일지라도 제 생각에만 빠져 공동체를 해치는 자는 독부(獨夫), 즉 ‘홑 사내’에 불과하므로 역성혁명을 당연한 일로 여긴 까닭이 이것이다.(맹자, 1b:8)
그렇다면 이 땅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부정의’한 행태들, 이를테면 혈연과 학연 그리고 지연을 기화로 패거리를 이뤄 공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권력층의 악폐를 심드렁하게 ‘유교문화’의 탓으로 돌려서는 될 일이 아니다.
실은 유교가 다루는 핵심 분야가 정의롭고 공정한 국가경영이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도덕적으로 수련한 사람이라야만, 정의로운 정치를 행할 수 있다’는 구도 속에 유교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논어’는 행정의 공정성과 의무의 공평성, 그리고 사회의 정의를 정면에서 다루는 공공철학의 고전이다.
유교 속 공공성의 가치
이를테면 “군자는 정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익(利)에 밝다”(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논어, 4:16)라는 대목을 들어보자. 여기에서 군자란 정치 지도자를 뜻하고, 소인이란 민간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일반 백성을 의미한다. 이 속에는 이익을 낮추고 정의를 높이 보는 가치판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공공영역과 사적인 시장영역은 그 범주가 다르다는 것이요, 공공영역의 지도자(곧 군자)에게는 ‘정의’가 핵심적 가치관으로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또 사적 영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자(곧 소인)에게 ‘이익의 추구’는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공자는 시장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백성의 경제생활을 도외시한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공공영역에서 정의가 설 자리를 잃고 도리어 시장의 이익에 침윤된다면 그 공동체는 희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할 따름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이러한 구분은 맹자에게서 더욱 첨예해진다. ‘맹자’를 펼치면 맨앞에,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크게 오해되는 구절인 ‘하필왈리(何必曰利)’ 대목이 나온다. 맹자를 맞이한 양나라 혜왕은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어떤 방책을 가져오셨나요?”라며 인사말을 던진다. 이에 대해 맹자가 “하필왈리, 인의이이의(何必曰利, 仁義而已矣)”라, 즉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시오! 오로지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인 것!”(맹자, 1a:1)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은 대개 오해하듯 맹자가 이익과 손실이라는 현실 정치세계를 도외시하고 인과 의라는 윤리적 가치만을 숭상한 관념론자 또는 이상주의자라는 뜻이 아니다. 이 대목은 국가경영자인 군주의 관심이 이익의 추구에 몰두한다면 결국 국가(공동체)는 위험에 빠지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나 다름 없다.
이런 추론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확실해진다. 즉 “군주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 그 아래 계급인 대부 역시 제 집안의 이익을 따지고, 또 그 아래 계급인 무사들은 제 몸의 이익을 챙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이익을 놓고 위아래가 다투다보면 끝내 그 국가는 위기에 빠지고 만다”(맹자, 1a:1)라는 대목이 이 점을 증명한다.
도리어 맹자는 시장경제 활동을 크게 장려한 사상가다. 상인을 우대해 관세와 물품세를 철폐하면 천하의 재화가 모두 그 나라로 몰려들 것이라며, 이것이 왕도정치를 이루는 한 방법이라고 주장한 터다. 요즘 식으로 하자면 무관세 ‘허브(hub)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하라는 권고다. 맹자 연구자 박기봉의 해설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맹자 경제사상의 특징은 모든 산업, 특히 상업을 중시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상업이 없으면 사회생활의 영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상인이나 여행자도 모두 민(民)에 포함되므로, 그들에게도 당연히 인정(仁政)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 상업은 ‘성과를 융통시켜주고(通功易事)’ ‘유무(有無)를 서로 소통시켜준다’는 점에서 다른 업종이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경제적 발전을 촉진시키는 데 유익하다는 점을 맹자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상업의 보호와 발전을 주장하였고, 상업세의 면제를 통해서 타국의 상인이니 여행자들이 자국으로 찾아오는 것을 촉진하고, 그들에게도 인정(仁政)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박기봉, ‘맹자’, 562~563쪽)
공자와 맹자의 주장은 사회 정의가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시장에서는 이익의 추구가 당연한 것으로 수긍하고 또 적극 권장한다. 다만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영역과 정의를 중시하는 공공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인식한 춘추전국시대의 큰 문제는 이 두 영역이 섞여서 공공 영역이 시장판으로, 즉 정의보다는 이익이 우선시되는 데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당대 위기의 핵심이었다. 이에 공자와 맹자는 공공영역으로부터 시장논리를 몰아내고 정의의 논리, 즉 공평성과 공정성이 관철되는 사회로 재건해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을 따름이다.
공자가 “이득을 보면 정의를 생각해야 한다”(見得思義, 논어, 16:10)라든지, “군자란 정의를 바탕으로 삼고, 예의에 맞게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논어, 15:18)라고 한 권고들은 모두 국가경영자, 즉 정치가에게 적용되는 규범이지 결코 일반 대중의 경제활동에 대한 지침은 아니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시장영역과 공공영역의 이러한 구분, 그리고 두 영역이 섞임으로써 발생하는 위기는 결코 2000년 전의 사태만은 아니다. 최근 경제학자들의 연구에도 두 영역이 구분되지 않으면 큰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똑같은 경고가 나오고 있다. 새로운 실천경제학을 모색하는 댄 애리얼리(Dan Ariely)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결과를 보고했다.
UC 샌디에이고대학 교수인 우리 그니지(Uri Gneezy)와 미네소타대학 교수인 알도 러스티치니(Aldo Rustichini)는 사회규범(공공영역)에서 시장규칙으로 바뀔 때 달라지는 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했다.
몇 년 전 그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한 탁아소에서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유용한 억제기능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했다. 우리와 알도 교수는 벌금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그랬을까?
벌금을 부과하기 전, 보육교사와 부모는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것이 사회규범, 즉 공공의 미덕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부모들은 어쩌다 늦으면 마음으로부터 죄송스러워했다. 그런 미안함이 부모로 하여금 다음부터는 제 시간에 아이를 찾으러 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자, 공공영역이 시장영역으로 바뀐 모양이 됐다. 부모는 자신들이 늦은 것을 돈으로 처리하면서부터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상황을 시장의 규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벌금을 내면 되니까 이제는 늦을지 말지를 상황에 맞춰 결정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것은 탁아소에서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다.
진짜 얘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은 그로부터 몇 주 뒤 탁아소가 벌금제도를 다시 없애면서 일어났다. 탁아소가 공공영역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들도 공공영역의 세계로 돌아왔을까? 다시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벌금은 없앴지만 부모의 처신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늦게 아이를 찾으러 왔다. 벌금을 없애자 오히려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횟수가 조금 늘기까지 했다. 결국 공공영역의 규범도 시장영역의 규칙도 모두 제거되어버린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한 가지 유감스러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공영역의 규범과 시장의 규칙이 충돌하면 공공의 규범이 밀린다. 다시 말해 사회적, 공공의 관계는 다시 세우기 어렵다. 다 피어버린 장미처럼 한번 공공영역이 시장영역에 밀리게 되면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댄 애리얼리, ‘상식 밖의 경제학’, 121~122쪽)
상당히 긴 인용문을 빌려온 까닭은 여기 이스라엘 탁아소 실험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는, 시장의 이기심이 침투한 공공영역의 붕괴사태와 한번 무너진 공공영역은 재건되기 어렵다는 결과가 춘추전국시대 공자와 맹자가 직면한 공공영역의 붕괴사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맹자가 공공영역의 책임자인 군주에게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느냐!”라며 ‘하필’이라는 급박한 단어를 사용한 까닭이나, 공자가 “정의롭지 않은 부유함과 존귀한 지위는 내게 뜬구름과 같노라!”(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논어, 7:16)며 부정한 재화에 대해 경고를 발한 까닭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공자는 정의와 공동선의 실현이라는, 즉 가치의 실현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상실하고 기껏 이익의 확대나 조정의 영역으로 추락하고만 것이 전국시대 정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맹자 역시 정치에는 인의(仁義)라는 도덕적 영역이 존재하며, 정치가 그 도덕성의 영역을 잃어버린 데 시대적 혼란의 원인이 있음을 통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서양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민한 것과 동일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는 어느 모로 보나 경제와 다르다. 정치의 목적은 단지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해 공정한 규칙을 제공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을 표현하고 좋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279~280쪽)
그렇다면 우리는 동서고금의 지성인들이 동일하게 또는 동질적으로, 공공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별하려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장을 경영하는 추동력인 ‘이익 추구’가 정치세계를 오염시키면 다시는 재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같이 인식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국가경영의 원리는 고작 시장을 보호하고 이익을 합리화하는 절차를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기제를 제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 즉 공동체의 좋은 삶을 제공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놈은 내 학교 출신이 아니다!”
그러나 춘추시대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추구하고 이익에 몰두하는 세태였던 터.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특히 염유(·#53529;有)는 경제와 이익에 밝은 ‘리얼리스트’였다. 역시 당시 권력자들은 염유의 이런 ‘재정-회계 전문가’로서의 기술을 탐냈으니, 매양 공자학교에서 스카우트 대상 1번이 염유와 군사전문가인 자로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노나라 권력자 계자연(季子然)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로와 염유는 대신(大臣)으로 삼을 만한지요?”
공자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대가 색다른 질문을 할까 하였더니, 고작 자로와 염유에 대한 질문이로구먼. 이른바 ‘대신’이란 올바른 길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가납되지 않으면 자리를 던지는 사람이지. 저 자로와 염유는 신하의 머릿수나 채우는 ‘구신’(具臣)은 되려나?”
계자연이 다시 물었다.
“허면 군주의 명령을 잘 따르는 수족은 되겠지요?”
공자가 말했다.
“제 아비를 죽이고, 선군을 살해한 임금을 따르지는 않을 걸세.”(논어, 11:22)
그리하여 염유는 탁월한 회계와 재정 능력을 바탕으로 당대의 통치자, 계씨 가문에 취업할 수 있었다(논어, 16:1). 한편 그의 재정 운용기술과 회계의 재능은 그를 전문적 기술주의에 몰두하게 만드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당시 권력자 계씨의 이익에 복무하는 반도덕적 처신을 보이다가 공자로부터 파문 선고를 당하기에 이른다.
당시 권력자, 계씨는 노나라 건국자 주공보다 더 부유하였다. 그런데도 염유가 그를 위해 세금을 수탈하여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저놈은 내 학교 출신이 아니다. 얘들아! 북을 울려서 성토하여도 좋으니라.”(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논어’ 11:16)
아무리 탁월한 기예와 지식을 갖고 있어도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기술 위주(만능)의 사고방식은 재난을 부르게 된다는 공자의 도덕주의적, 또는 성찰적 가치에 대한 강조를 여실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로 끌어와 해석하자면, 기술의 공정성, 수단· 방법의 도덕성에 주의해야 한다는 공자의 경고로 볼 수 있다. 공자 가르침의 핵심은 기술이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재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도덕적 감찰, 공공적 사유에 있음을 이 대목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다.
공자는 공공영역의 경영학을 단순히 ‘시장의 기술’로 인식하는 염유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치경제학적 언어로 제시한다.
“국가를 경영하는 자는 모자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均) 않음을 근심하고, 또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평안하지 않음을 근심한다. 대개 고르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모자라지 않고, 평안하면 기울지 않기 때문이다.”(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논어, 16:1)
우리는 이 지점에서 염유와 공자가 모두 재정 및 회계 전문가라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염유는 공자학교의 재정을 담당한 인물로서 공자는 그의 경제전문가로서의 기예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53529;求之藝. 14:13)
동시에 공자도 회계 전문가로서 이력을 갖춘 사람이다. 가령 사마천은 “공자는 젊어서 가난하고 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성장하여서도 위리(委吏)가 되었는데, 그 출납이 정확하였다”(‘사기’ 중 ‘공자세가’)라고 지적했다. ‘위리’란 ‘창고에 쌓인 곡식(=화폐) 관리를 맡은 벼슬아치’를 뜻한다. 곧 공자가 재정담당관으로서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했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또 맹자는 더 구체적으로 “공자가 일찍이 재정 담당관이 되었는데, 말씀하시길 ‘회계는 출납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전부다’라고 하였다.”(孔子嘗爲委吏矣. 曰 ‘會計當而已矣.’ ‘맹자’ 5b:5)는 증언을 전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공자를 ‘회계사 출신’으로 번역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강조하거니와 공자는 실물경제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갖춘 사람이지, 그것을 내치고 도덕적 세계를 건설하려 한 순진한 관념론자는 아니었다. 그는 당시 현실정치의 심층, 즉 국가의 재정과 경제 운용에 대해 넉넉한 식견을 갖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염유와 관련을 지워 공자를 생각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이력이다. 회계사로서 공자의 이력과 재정에 밝은 염유의 자질은 상통하는 바가 있고, 이런 공통점으로 말미암아 스승 공자는 제자 염유의 성격과 꿈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출신상의 공통점과 이해의 폭으로 말미암아 공자는 염유의 재정 운용능력을 이해하는 일방 또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한편 공자는 염유에게 수준이 한층 더 높은 정치경제학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자의 소질에 걸맞은 교육을 하는 공자 특유의 면모일 것이다. 다음을 보자.
공자가 위나라로 가는데 염유가 말고삐를 잡았다.
공자, 말씀하시다. “사람들이 참 많구나(庶).”
염유가 말했다. “이미 많아진 다음에는 또 무엇을 더해야겠습니까.”
“음 풍요롭게(富) 해주어야지.”
“이미 풍요로워진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해주어야 하리까.”
“음. 가르쳐야지(敎).” (‘논어’ 13:9)
여기서 공자는 염유에게 ‘인구증가(庶)→경제적 풍요(富)→도덕문화 창달(敎)’이라는 3단계 국가경영론을 제시한다. 그런데 ‘논어’ 전체를 살펴보면 염유는 세 가지 가운데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집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나머지 인구증가 문제와 도덕문화의 창달은 그의 관심 밖이다.
가령 ‘도덕문화 창달(敎)’ 부분에 대해 염유는 “경제 문제는 3년 내에 해결할 수 있지만, 예악(禮樂)은 다른 사람을 기다리겠노라”(논어, 11:25)며 스스로 선을 그어 포기하고 있다. 즉 염유는 오로지 경제적 풍요(富)라는 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고 있다. 또 그는 이 경제적 풍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은 배제한다. 그리고 그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자를 위해 그가 가진 재정-회계 기술을 발휘하는 데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권력자 계씨의 부유함을 늘이는 데 매진한 염유를 학교에서 파문한 까닭이다.
공자의 국가경영론
공자가 제시하는 국가경영의 원리는 “모자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않음을 근심하고, 또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평안하지 않음을 근심한다”(不患寡而患不均)는 데 있을 따름이다. 공자 국가경영론의 핵심이 이 속에 들어 있다. 공자의 국가경영은 빵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정의로운 사회’(均)를 건설하는 데 있다는 것.
여기서 공자에게 정치란 재화의 축적을 꾀하는 경제에 종속된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재화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사회 정의의 수립에 핵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균등한 분배(均), 인민 각자의 처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화합(和), 그리고 안정된 생활(安), 이 세 가지가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라는 것이다(즉 “대개 고르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모자라지 않고, 평안하면 기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화합과 안정,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국가경영자의 도덕적 정당성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경제적 풍요만을 위한다면 회계기술, 재정운용기술만이 필요하겠지만 정의로운 사회, 균등한 분배를 위해선 국가경영자에게 도덕적 훈련과 권력의 정당성이 기필코 요구되는 것이다. 만약 국가경영자에게 이런 도덕적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의와 균등한 분배의 욕망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정당성 있는 권력을 그렇게도 갈구한 까닭은 국가경영의 근거, 즉 분배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근거가 정치가의 도덕적 정당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반면 염유에게 국가경영이란, 국부(경제· 재정)를 확충하기 위한 기술 혹은 수단에 불과하다. 염유의 생각을 오늘날 식으로는 기술주의적 사유, 불균등 성장론, 또는 발전주의 경제론 등으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공자의 국가경영론은 도덕주의적 사유, 분배적 경제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공자의 국가경영론은 염유가 추구하는, 이를테면 ‘불균등 국가발전론’ 즉 국부(國富·pie)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면 설사 부도덕하고 수탈적 방법일지라도 허용돼야 한다는 견해와는 상반된다. 그뿐만 아니라 공자의 견해는 오늘날 탈도덕적 시장논리를 뒤쫓는 기업적 국가(enterprise state)에 대해서도 반성을 요구한다.
달리 살피면 공자와 염유는 ‘공공영역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공자가 공정한 분배를 꾀하는 사회 복지론을 택한다면, 염유는 공공영역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이익의 추구를 꾀하는 시장중심 논리다. 염유의 입장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쯤에서 우리는 공자의 국가경영론의 방향을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권력자 계씨의 수족이 되어 세금수탈에 앞장선 염유의 ‘탈도덕적 기술주의 국가경영론’이 공자로부터 공공영역을 시장의 이기심으로 오염시킨 죄목으로 파문선고를 받게 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공자는 염유 방식의 ‘기업국가론’이 “국가의 붕괴와 인민의 이탈 그리고 가정의 파괴로 귀결되어, 결국 공동체를 지켜낼 수 없는 내란 상태를 결과할 것”(邦分崩離析, 而不能守也, 而謀動干戈於邦內. 논어, 16:1)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앞서 인용했듯, 맹자가 양혜왕에게 ‘하필왈리’라, “군주라면서 어찌 이익을 논하시는가!”라며 준열히 꾸짖던 대목과 합치한다.
여기서 또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목소리도 가깝게 듣는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장은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오늘날 이익의 추구에만 몰두하는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공론에 부칠 필요가 있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공자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맹자라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결론으로 남긴 질문인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이렇게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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