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쌓인 겨울산·땔감 진 나무꾼’ 그들 넋두리가 곧 민심의 소리
김홍도 ‘부신초동도’ - 나무꾼이 행복한 세상
▲ 김홍도 <부신초동도>, 종이에 옅은 채색, 29.5×37.9㎝, 개인소장.
▲ 유운홍 <부신독서도>, 비단에 옅은 채색, 16.1×22.1㎝, 서울대박물관 소장.
나무꾼의 일, 그 의미
몸을 힘들게 하는 일 중의 하나로 ‘부신(負薪)’을 꼽는다. ‘땔나무를 메다’는 뜻이다. 산에 들어 지게 가득 나무를 싣고 필요한 곳까지 나르거나 혹은 저잣거리에 내다 파는 일까지, 나무꾼 혹은 꼴꾼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하던 일이다. 일의 귀천으로 따지자면 천한 일에 속한다.
고관대작을 두루 지내고 몸이 늙은 관료들이 사직서를 올릴 때, 자신을 ‘부신’이라 칭했다. 부신으로 더 이상 이 공직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왜 하필 ‘부신’일까? ‘부신’으로 병든 몸을 표현하는 것은, 중국 한나라 때 정리된 경전 ‘예기(禮記)’에서 비롯한다. 유래가 오랜지라 그 이유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땔나무를 지고 온 피곤함으로 몸에 병이 들었다는 뜻인지, 몸이 병들어 땔나무를 질 수 없다는 뜻인지 추측의 해석만이 구구하다.
분명한 것은 관직에서 떠나려는 뜻을 전할 때 ‘부신’이라 칭하며 구실의 표현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주어진 해석을 존중하며 극단으로 유보해 그 뜻을 밝히자면, ‘부신’이란 ‘힘든 일’이며 ‘필요한 일’이다. 한편 ‘맹자(孟子)’에는 ‘부신’과 같은 뜻으로 ‘채신(採薪·땔나무를 함)’의 근심이란 말이 나온다. 조선의 관료들이 물러날 때 ‘부신’ 외에 ‘채신’이란 표현도 자주 썼다.
굳이 나무꾼이 땔나무를 하여 짊어지는 일에 자신을 비긴 것은, 아마도 그 비유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리라. 맑은 산에 깊이 들어 나무하는 일이라 쾌쾌한 구석이 전혀 없다. 또한 땔나무가 무엇인가. 밥을 짓고 방 데우는 필수연료 아닌가. 산 속 노동의 청정한 분위기와 그 노동의 가치가 이러하니, 나무꾼의 비유에는 그 자체로 속깊은 매력이 담겨있다.
나무꾼의 말, 그 권한
옛 어른이 말씀하시길,
‘나무꾼에게 묻고 들으시오.’
(先民有言, 詢于芻?.)
중국 고대의 노래모음집 ‘시경(詩經)’ 대아(大雅) 편의 한 구절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명분을 내세우는 관료들의 논리나 달콤한 아첨에 미혹되지 말고, 차라리 나무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란 요구이다. 두서없는 나무꾼의 넋두리, 그 삶의 포부, 나무꾼의 상상, 나아가 그들의 사랑이야기까지. 그들이 하는 말, 즉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고위관직의 신료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릴 때, 종종 이런 토를 덧붙인다. “제가 나무꾼의 말로 아룁니다.” 나무꾼의 발언권이 신료의 그것보다 낫다니. 이는 나무꾼 비유의 의미 있는 매력을 작동시킨 수사법이다. 거짓을 모르는 나무꾼의 성실함으로, 명리에 상관치 않는 나무꾼의 순진함과 소박함으로 이 글을 아뢰고 있다는 말이며, 자신의 요청만은 특별히 꼭 들어달라는 간절한 당부이다.
겨울산 나무꾼의 영상
나무꾼을 그린 그림이 있다. ‘부신초동(負薪樵童·땔나무 진 나무꾼 소년)’이란 제목이며, 김홍도(1745∼?) 말년의 작품으로 전한다. 땔나무 지고 돌아가는 소년들. 등에 쌓아 올린 나뭇가지들이 그들의 몸보다 크고도 높다. 소년들은 알 리 없다. 학자들이 운운하며 나무꾼에게 부여했던 오랜 매력과 권한의 의미를.
겨울산 나무꾼의 모습. 이 이미지는 오랜 의미와 현실적 영상을 응축시킨 옛 그림의 화제(畵題)였다. 중국 청나라의 ‘점석재화보’ 중 한 화면이 그 예다. “흰 눈 깊은 곳에 땔나무 지고 돌아가네(白雪深處負薪歸)”란 구절이 있고, 땔나무를 진 나무꾼 두 명이 그려져 있다. 하얀 설경 속을 꿈틀대는 검은 고슴도치처럼 땔감지게가 움직이는 화면이다.
김홍도의 ‘부신초동’ 그림에 있는 시구가 이러하다.
눈 내린 산허리 길로 나무꾼이 돌아오는데,
나무 덮인 마을에서 희미한 등불 아래 사람 소리.
樵歸雪嶽山腰路 人語燈深樹裡村
겨울 산에서 나무하고 돌아가는데 저 멀리 등불이 반짝이고 사람 소리 들린다. 늦도록 등을 밝혀 백성들이 편안하게 일하도록 도와주었다던 어느 지방관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 등불은 어린 나무꾼의 발길을 안내하는 등불이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다정다감 서로서로 보살피는 목소리며, 보리밥에 다독이는 아련한 소리다. 등불이 멀어도 돌아갈 곳이 있기에 소년들은 발길을 재촉한다. 그림 속 등을 돌리고 가는 소년은 앞질러 서두르는 모양이다. 눈 쌓인 산허리 길로 세 소년의 커다란 지게가 내려가고 있다.
춥고 배고파도, 젊은 그들!
도성문 닫히려 할 때 냇가로 나무꾼 돌아오는데,
도성의 파루소리 황혼에 울리네.
까마귀 깃들고 초승달이 산 성곽에 걸려 있고
숲속 마을 너머에서 희미한 등불 아래 사람 소리.
근년의 기근 중에 올해가 더욱 심하지만,
젊은 시절 놀아야지 늙어지면 어이할까.
밤이라 봄기운 생겨남을 조금 느끼겠으니
술 익는 봄바람이 상원으로 다가오네.
溪上樵歸欲閉門, 禁城鍾鼓動黃昏.
烏棲月細依山郭, 人語燈深隔樹村.
比歲阻飢今更甚, 少年行樂老誰存.
夜來稍覺生春意, 酒熟東風近上元.
조선후기 홍세태(1653∼1725)의 시다. 나무꾼이 돌아가는 저녁에 저 멀리서 등불 빛나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상이 김홍도 그림과 그 위에 얹혀 있는 시와 흡사해, 연관성이 포착된다. 홍세태의 이 시에 따르면,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배고프다. 흉작이 심해 경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하는 소년들이 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시 속의 현재(今), 즉 나무하고 돌아가는 초동들의 저녁, 그들의 배는 얼마나 주렸을까. 그런데 그 와중에 시인은 소년들 마음에 소년다운 즐거움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소년시절 행락’이란 늙어지면 누릴 수 없다고. 시인은 소년의 행락을 바라며 행복을 기원한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읊은 ‘소년행(少年行)’이 조선후기 문사들에게 거듭 읽히면서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지던 터였다. 소년들이 호기를 부리며 백마를 달리면서 술집을 찾아들어 젊음을 자랑한다는 ‘소년행’의 내용에 맞춰, 그림에는 비단옷을 차려입은 젊은이가 백마를 몰며 봄길을 달려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한때의 치기를 다시 누리고픈 늙은 시인의 마음이리라. 그런데 그림 속 가난한 나무꾼 소년들이 정작 그리 할 수 있을까. 시인은 기대한다. 천진한 소년들이 탈없이 청춘을 누려 보라고. 홍세태의 이 시에서 소년행의 가치가 새삼 간절하다.
이 시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는 ‘상원(上元)’이란 역(易)의 시초다. 계절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만사를 계획해 영원의 앞날을 건설하는 때다. 새 봄이 다가오듯 소년들에게 봄날이 다가오기를 바라는 바람이 이 구절에 담겨있다. 우주의 순리 속에서 한겨울 정월이면 이미 동쪽에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고.
시인 홍세태는 중인(中人)이었다. 신분의 한계 속에 살았고, 그의 아이들 열 명은 모두 그의 생전에 죽었다. 생애의 불우함 속에서도 홍세태의 문학적 재질은 남달랐다. 당시 최고의 사대부 시인 김창흡(1653∼1722)에게 크게 인정받았고, 중인신분으로 제술관에 올랐다. 그가 펼친 ‘천기론(天機論)’은 문학사회학적 의미가 깊다. ‘천기’란 ‘장자(莊子)’에 출전을 둔 말로 ‘하늘의 기밀’을 뜻하는 보편개념이다. 사대부들은 이 말을 그들의 문화예술에 운용했다. 홍세태는 이 개념을 달리 사용했다. 천기를 발휘해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신분에 관계없는 것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중인도 천기를 발하면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 ‘가난한 소년도 대갓집 아들처럼 소년의 행락을 누릴 수 있다.’ 이는 하늘이 내린 권리이며 인간의 제도를 넘어서는 비밀스러운 기운이다. 소년들이여. 그대들은 청춘이라, 시절이 힘들어도 그대들만 즐길 것이 따로 있다. 그것은 겨울 지나 봄이 오듯 하늘이 베푼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라. 그림 속 소년들의 활기가 새롭게 다가든다.
땔나무 지고 책 읽는 소년
나무꾼 소년의 그림으로 다른 내용의 그림이 있으니 펼쳐보자. ‘땔나무를 지고 책을 읽다’란 뜻의 ‘부신독서(負薪讀書)’다. 이 그림은 19세기 화원화가 유운홍(1797∼1859)의 작품이다.
지게를 진 채 책을 들고 가는 소년의 모습. 소년의 미래가 절로 예감된다. 이 소년은 역사의 실존인물 주매신(?∼기원전 109년)이다. 주매신은 중국 한나라 사람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공부하길 좋아해 마침내 50세의 나이로 벼슬에 들었다. 그가 고향 회계의 태수에 임명되어 돌아가자 고향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특히 주매신을 경멸하고 달아났던 옛 아내가 가장 놀랐다. 주매신은 그녀와 그녀의 새 남편을 먹이고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끝내 부끄러워 목매어 자살했다. ‘한서’ ‘주매신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이후로 사람들은 주매신을 기려 그렸다. 성공한 뒤의 모습이 아니라 땔나무 지고 책 읽던 소년상으로 그렸다. 금의환향보다 가치로운 것이 부신독서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까닭이다. 조선에서도 주매신의 행적이 유명해 부신독서가 그려졌다. 어떤 이가 불우한 환경을 딛고 학문을 이루면, 조선의 문사들이 그를 기록할 때 ‘부신독서’ 혹은 ‘부신독송(負薪讀誦)’했노란 표현으로 칭송했다.
나무꾼 이미지 속 여유와 희망
이 땅의 추운 겨울, 해마다 겨울철 농한기에 삭은 나뭇가지를 구하려 산을 누빈 소년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우리 삶이 힘겨울 때 상상해볼 일이다. 땔나무 높이 지고 비탈진 눈길을 내려오던 소년들. 먹을 것 하나 없는 겨울 산을 무명솜 홑바지저고리 달랑 걸치고 온종일 헤매다 커다란 지게 아래 묻혀 콧물을 훔치던 거친 숨소리. 조선중기 학자 유집(1585∼1651)이 그들을 생각했다. “날 춥고 구름 끼어 어둡더니, 눈발이 급히 나려 이리저리 흩날리네. 내 몸에 근심이 깊어가는 때, 땔감 지고 돌아오는 소년의 모습을 나 홀로 가여워 하노라.”
이 시인의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이 그림들을 다시 볼 일이다. 그림으로 그려진 초동들은 현실을 이기고 섰다. 그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대견하다. 그림 속 소년들은 춥고 배고프지만, 그 속에 젊음의 혈기가 느껴진다. 풍류를 지닌 꿈이 활기차고 미래에의 포부가 굳세다. 우리가 이 그림들 앞에서 여유와 희망을 전달받는 이유이다. 안타까운 일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터와 배움터의 많은 청년들이 이 그림 속 초동들만 같지 않은 사실이다. 이들 어깨 위의 짐이 땔나무 지게보다 무거워진 탓인지 모르겠다. 옛 그림을 접어두며 이 땅의 청년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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