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환은 택리지에 “예천은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에 위치한 복된 지역”이라고 썼다. 무엇이 이곳을 복되게 했을까. 우선 경북 예천군은 낙동강과 내성천이 휘돌아나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갖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물이 흔하다. 물도 그냥 물이 아니다. 예천(醴泉)의 ‘醴’는 단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물이 감주처럼 달다는 뜻이다. 그렇게 다디단 물은 들판을 적시며 흘러 풍요를 선물했다. 풍요는 그만한 문화를 낳기 마련. 예천에는 숱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용문사, 보문사, 장안사 등의 사찰과 석조비로나자불상, 개심사지오층석탑, 와룡리석조여래입상 등의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 또 예천향교, 용궁향교, 도정서원, 옥천서원 등이 있으며 정자와 누각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예천 하면 회룡포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내성천이 휘돌아가며 만들어 놓은 절묘한 풍경 속에 시름 한 자락 내려놓고,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이었던 삼강주막에 들러 삶의 쉼표를 찍어본다.
# 회룡포 =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회룡대로 가야 한다. 회룡대는 비룡산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다. 장안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300m쯤 걸어 올라가면 된다. 나무계단으로 오르는 길 중간중간에는 시를 적어놓았다. 시를 읽으며 걷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모래밭과 느리게 흐르는 강물이 언뜻언뜻 다가선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간다. 그 뒤에 한 마리, 또 한 마리…. 먼 길을 떠나는 모양이다. 새들이 부럽다는 생각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날 수 있는 것이 부러운 게 아니라, 날기 위해서 뼛속까지 비워내는 결단이 부럽다. 대개의 고통은 버리기보다 싸안으려 하는 데서 시작된다. 버리지 않고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비우는 데 늘 인색하다. 새나 사람이나 많이 비울수록 높고 멀리 나는 법인데.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길을 줄인다. 조금 더 올라가니 회룡대가 나타난다. 들판과 강물이 너른 품을 활짝 열어젖힌다. 자연 앞에 서면 사람도 닮아가기 마련. 아! 가슴이 뻥 뚫린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내 안에 응어리졌던 것들이 쑥 빠져나가는 것 같다. 거기에는 미움도 원망도 한탄도 섞여 있을 것이다. 원래의 내가 지금 같았겠지. 이곳에서는 바람조차 순정(純正)한 몸짓으로 분다.
돌아 흐르는 강과 그 강이 시간의 손을 빌려 만들어놓은 섬, 그 안의 마을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강물은 무슨 까닭으로 저곳에서 한 바퀴를 휘돌았을까. 자연의 섭리에 따랐겠지만 그 섭리가 얼마나 오묘한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원에서 딱 10도가 부족한 350도를 돌았다니, 한 삽만 더 떠내면 완전한 섬이다. 섬이 되려다 만 곳은, 호리병? 표주박? 아니 잘 빚은 항아리 모양이다. 이 땅의 강들이 만들어놓은 ‘물돌이동’이 여럿 있지만 회룡포야말로 가장 빼어난 곳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다. 섬 안의 마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빨간 지붕, 파란 지붕들이 머리를 맞댄 모습이 정겹다. 나머지는 너른 논과 밭이다. 밭에는 눈과 보리가 희고 파랗게 어우러져 있다. 저 눈이 다 녹으면 봄이 올 것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마을엔 어떤 사람들이 사는 것일까. 산에서 내려와 ‘뽕뿅다리’를 찾아간다. 섬으로 들어가는 차도가 뚫린 지 오래지만 여행 삼아 온 사람들은 뿅뿅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간다. 뿅뿅다리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1997년에 외나무다리를 철거하고 공사장에서 쓰는 철 발판으로 새 다리를 놓았는데, 건널 때마다 발판의 동그란 구멍에서 물이 퐁퐁 솟는다고 해서 퐁퐁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에서 뿅뿅다리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그리 굳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리는 기분 좋게 출렁거린다. 몸도 출렁거리고 산과 강도 출렁거린다. 앞에서 건너던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온 세상이 까르르 웃으며 피어난다. 마을은 잠이라도 든 것처럼 고즈넉하다. 감나무 우듬지에 앉은 까치만 까악까악 손을 맞는다.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걷는다. 돌담길, 오래된 집들, 세월을 이고 진 소나무….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런 풍경 속에서는 그 누구도 고요가 된다. 노인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깊숙한 곳에서 한겨울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마을 끝의 자연체험학습공원을 지나 회룡포 올레길로 접어든다. 강변을 따라 섬을 도는 3.41㎞의 아름다운 길이다. 병풍 같은 산이 마을을 감싸고 산과 마을 사이에 강물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가는 길로 사람이 걷는다. 잠시 벤치에 앉아 강에 시선을 둔다. 강물은 서두르는 법 없이 느긋하게 흐른다. 그렇게 천천히 흘러도 돌고 돌아 결국은 바다에 닿는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조급증에 빠져 있는지. 그러면서도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서로를 재촉하지 않는다. 물도 바람도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삼강주막=이른 아침의 강변은 조용하다. 주막의 마당으로 들어서니 늙은 회화나무가 먼저 반긴다. 긴 세월 동안 이곳을 지나간 숱한 사람과 그들의 애환을 지켜본 나무다. 그 앞에 초가집들이 어깨를 겯고 엎드려 있다. 삼강주막은 이 땅의 ‘마지막 주막’으로 알려져 있다. 삼강이라는 이름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 등 세 개의 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붙여졌다. 1900년 전후에 세워진 이 주막은 삼강나루를 거쳐 가는 길손과 낙동강을 타고 오르내리는 소금 배, 보부상들이 먹고 자는 곳이었다. 삼강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새재를 넘기 위해선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만 했다. 삼강주막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세월을 따라 조금씩 뒷전으로 물러서다가 2004년 바로 곁에 다리가 놓이면서, 나룻배도 사라지고 삼강주막 역시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인이자 이 땅의 마지막 주모였던 유옥연 할머니는 반세기 넘게 주막을 지키다가, 다리가 놓인 다음 해인 2005년에 타계했다. 주막은 유 할머니가 떠난 뒤 방치돼 폐가처럼 퇴락했었는데, 예천군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주막의 규모는 처음 복원할 때보다 많이 커졌다. 초기에는 볼 수 없었던 보부상 숙소와 사공 숙소도 들어섰다. 갑술년(1934년) 대홍수 때 떠내려간 것들을 하나씩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전체 규모가 커지는 만큼 맨 오른쪽에 있는 원래 주막은 자꾸 작아져 간다. 주막이야 애당초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조금 큰 방 하나에 작은 방 하나, 부엌과 서넛 앉으면 꽉 차 보이는 뒷마루가 전부. 이 작은 곳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오고 갔을지. 집집마다 한 번씩 둘러본 뒤 늙은 회화나무 곁을 지나 강둑으로 올라선다. 강가에는 나룻배 한 척이 떠 있고, 하얗게 사위어가는 갈대들이 몸을 비비고 있다. 이 길을 지난 옛사람들의 이야기라도 들어볼까 바람에 귀를 기울여본다. 과거를 보러 가던 유생,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팔도를 누비던 장사꾼… 전쟁 끝에 집도 가족도 잃고 떠돌던 유민은 왜 없었으랴. 누구에겐 생존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걸어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돌부리에 차이는 짚신, 찬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옷으로도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두툼한 신발과 점퍼 속에서도 안온보다 불만을 더 자주 느끼는 자신을 돌아본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여유로워진 삶이 몸에 잉여의 살을 만들 듯, 마음에도 잉여의 근심을 생산해내는 것은 아닐까. 걸음걸음 돌아보고 자꾸 낮출 일이다.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니. 강변을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이다. 여행이 가르쳐주는 말이다.
#그밖에 가볼 만한 곳= 사라진 우리의 옛 정취와 만나고 싶으면 용문면 소재지에 있는 금당실 전통마을을 찾아가면 된다.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 중 하나로 조선시대 전통 가옥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반송재, 우천재, 유천초옥, 최종민 가옥 등을 둘러보며 돌담길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득한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듯 솟아있는 금당실 송림도 아름답다.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석송령(石松靈)은 가지를 우산처럼 펼치고 있는 반송이다. 수령이 600년쯤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30년경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사람이 토지 6600㎡를 상속해 주는 바람에 세금을 내는 부자 나무가 됐다고 한다. 한글 몰랐던 酒母, 외상하면 벽에 ‘누구, 얼마’ 금그어… 암호같은 장부 회룡포마을은 내성천 물이 휘돌아가면서 만들어놓은 ‘육지 속 섬마을’이다. 120년 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대로 농사를 지었지만, 최근 생태체험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각광 받고 있다. 특히 TV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촬영한 뒤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관광지로 변모한 뒤에도 마을 사람들의 삶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음식점을 겸하는 민박이 두 곳 들어섰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다. 9가구가 살고 있는데 주민은 통틀어 10명에 불과하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23가구가 살았다. 주민 중 네 분이 혼자 사는 할아버지다. 노인들이 많다 보니 겨울이면 사람 그림자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올해 환갑을 맞은 김찬수 씨는 자신이 마을의 막내라고 씁쓸하게 웃는다. 그가 어릴 적만 해도 이 마을은 섬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에 가려면 산과 강 사이에 뚫린 ‘토끼길’을 따라서 십오리를 걸어야 했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불면 등교는 아예 포기해야 했다. 외지 사람이 드나들 일도 없었다. 관광지가 되면서 번거로운 일도 생기고 여름에는 노래방기기까지 틀어놓아서 시끄럽지만, 주민들은 그게 사람 사는 일이려니 한다. 김 씨는 내성천도 옛날 같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하류인 낙동강을 파내면서 모래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바닥이 무척 낮아졌다. 삼강주막은 회룡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주막의 관리 주체는 예천군이지만 운영은 삼강마을 주민들이 맡고 있다. 녹색농촌체험마을 회원들이 힘을 합쳐 음식도 만들어 팔고 공연도 준비하고 축제도 연다. 삼강주막에 가면 꼭 들러볼 곳이 있다. 바로 유옥연 할머니가 쓰던 부엌. 무척 좁아 보이는 부엌은 여느 시골살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솥이 두 개 걸려 있고, 바닥에 묻어놓은 술독 하나와 나무로 만든 찬장 하나. 그런데 자세히 보면 벽에 그어져 있는 숱한 눈금(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유 할머니의 외상장부다. 한글을 몰랐던 주모는 누가 막걸리를 먹고 외상을 하면 벽에 ‘누구, 얼마’라고 금을 그었다. 일반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아래위로 그어놓은 금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과 액수를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자신만 아는 암호가 있었던 것이다. 생전의 유 할머니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마을 주민 권모(76) 씨는, “키도 크고 전형적인 미인이었다”고 기억한다. 유 할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주막을 운영하면서 아들 둘, 딸 둘을 키웠다. 주막이 강 옆에 있는데도 샘이 없어서 먹을 물은 안동네에 가서 길어다 먹었다고 회고한다. 말년에 몸이 안 좋아지면서 아들이 있는 점촌으로 가 1년쯤 살다가 그곳에서 타계했다. 주인을 잃고 퇴락해 가던 주막은 2005년 12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부터 예천군에서 복원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회룡포 가는 길=경부(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예천나들목에서 빠져 예천읍→회룡포 방면으로 가도 되지만 영주나들목에서 빠져 28번 국도를 타고 가다 석송령, 금당실마을, 초간정, 용문사 등을 들른 뒤 회룡포로 가는 방법이 더 실속 있다. 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나들목에서 빠져 함창·안동·문경 방면으로 가다 34번 국도를 타고 회룡포로 가는 방법도 있다. 회룡포와 삼강주막은 지척에 있다. #묵을 곳·먹을 것=예천읍과 지보면 등에 모텔이 여러 곳 있다. 회룡포 마을에는 회룡포 물돌이민박(054-655-8118)과 회룡포 황토민박(054-655-3973)이 있다. 겨울에는 문의하고 가는 것이 좋다.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뿅뿅다리 쉼터는 파전 등으로 허기를 달래기에 좋다. 예천읍 백수식당의 육회와 육회비빔밥은 외지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용궁면에는 용궁단골식당, 대를 잇는 용궁순대, 대박식당 등 순대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 여럿 있다. 삼강주막에서도 국밥과 떡국·국수 등의 식사와 배추전·두부 등을 내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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