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강원 원주 흥원창&거돈사지&용소막성당

醉月 2015. 2. 11. 19:40

강원 지역의 세곡을 보관하고 한강수로를 이용해 도성으로 운반하는 조창이었던 흥원창은 충주에서 서북으로 흐르는 한강의 본류와 원주를 지나 서남으로 흐르는 섬강이 합류되는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었다. 섬강과 남한강의 합류 지점에 조창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얼음에 얹힌 작은 쪽배가 이곳을 찾은 이들을 반기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봄은 아직 저만치 멀고, 꽃소식은 소문 속에서만 무성하다. 성급한 사람들은 혹시나 하며 남쪽으로 마중을 가지만, 굳이 그럴 것까지 있을까. 가슴속에 꽃 한 송이 피워 내면 거기서 봄이 시작되는 법. 급한 마음 잠시 접어두고 한적한 강변이나 옛 절터를 걸으며 사색을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이번 주는 강원도 원주로 떠난다.

원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치악산국립공원을 떠올린다. 아홉 마리 용이 살던 자리에 지었다는 구룡사, 꿩이 선비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전설을 지닌 상원사 등과 함께 주봉인 비로봉은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지. 하지만 원주에는 치악산이 아니더라도 가 볼 만한 곳이 많다. 특히 시간 여행자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그중 하나가 원주시가 정한 ‘역사문화순례길’. 세미(稅米)를 보관했다가 뱃길로 한양까지 수송하던 흥원창을 거쳐 거돈사지, 법천사지 등 폐사지를 찾아간다. 마지막으로 용소막성당에 들러 100년의 시간에 마음을 헹군다.



#흥원창 = 강원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두 개의 강이 이곳에서 몸을 섞는다. 태백에서 발원해 충주를 거쳐 내려온 남한강. 그리고 횡성에서 출발, 원주 땅을 적시며 내려온 섬강. 강이 만나는 곳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겨울 강에는 고요만 흐를 뿐이다. 하지만 이곳이 저잣거리 못지않게 흥성한 시절도 있었다. 큰 나루가 있었고, 세(稅)로 걷은 쌀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바로 흥원창(興原倉)이다.

흥원창은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 등에서 걷은 세곡을 보관했다가 경창(京倉)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돌에 새긴 이름만 바람을 맞고 서 있다. 제방을 쌓으면서 모든 게 변했을 테니 지형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산천은 무심해서 더욱 아름답다고 했던가. 오른쪽에서 내려오는 섬강은 깎아지른 ‘뚝바위’와 어울려 절경을 연출한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이곳 풍경을 일러, ‘평구역 말을 가라 흑슈로 도라드니, 셤강(蟾江)은 어듸메오, 티악(雉岳)이 여긔로다’라고 읊은 적이 있다.

옛날부터 이 지역은 풍요로운 곳이었다. 자연환경이 박하지 않으니 물산이 풍부했고, 육로와 수로가 발달돼 있어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그런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 신라는 물론 후백제와 고려까지 각축전이 이어졌다. 고려 창업의 시발점이었으며 임진왜란의 전화도 비껴가지 않았다.

오래 바라보아도 강물은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빛은 그림자를 만들기 마련. 이곳은 눈물의 상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곡이라는 말 뒤에 수탈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게 어찌 감상 탓이기만 할까. 먹을 것마저 빼앗긴 이들의 통곡이 왜 없었으랴. 쌀이 있는 곳이니 부패 또한 심했을 것이다. 잦은 전쟁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을까. 민초들의 고통은 금세 말라 버리는 눈물로만 기록되기 마련. 영화도 오욕도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바람을 안고 강변을 걷는다. 영남대로의 길목이었으며 소년 왕 단종이 울며 지났다는 길.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과 한양에서 좌절한 서얼들이 모여들던 곳. 그러고 보니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은 길이었다. 강물이 느리니 시간 역시 느리게 흐른다. 사람도 느리게 걷는다.

▲ 법천사지의 복원을 위한 발굴작업이 한창인 절터엔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알리는 고목이 천년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거돈사지·법천사지 = 흥원창에서 조금 가면 폐사지 두 곳이 있다. 거돈사지와 법천사지. 법천사지는 흥원창에서 걸어가기에 멀지 않은 거리다. 강을 따라 개치나루 쪽으로 걷다가 중간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닿는다. 거돈사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느티나무다. ‘돌을 먹고사는 나무’라고 부른다던가. 축대 틈에 뿌리를 박고 1000년 넘게 살아왔다. 나무가 지켜본 시간이 곧 절의 역사다.

거돈사는 신라 왕실이 창건한 절이다. 고려는 나라를 세운 뒤 왕권을 강화하고 신라 잔존 세력을 누르기 위해 이 절에 왕사를 보낸다. 그가 바로 거돈사를 꽃피운 원공 국사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로는 폐사지가 되었다. 왜병들이 거돈사와 법천사에 불을 지른 까닭은, 조선·명나라 연합군에 쫓겨 물러나면서 흥원창의 배후에 있는 절들이 군사기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거돈사지는 넓고 정갈하다. 그 너른 땅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3층 석탑 하나와 좌대만 남은 금당 터. 그들에게 내주고 난 빈터를 늦겨울의 햇살이 고스란히 차지하고 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하면 억지일까? 하지만 분명 그렇다. 잔디 위를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둘씩 툭툭 나타나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금당 터 위의 그을고 깨진 좌대가 그렇고 아직도 물이 흐르는 우물이 그렇다. 아기를 잃은 어미가 흐르는 젖을 주체하지 못하듯, 이 우물도 밤마다 물을 흘려보내며 울었던 것은 아닐까? 역사의 아픔이야 어떻든 또 한번의 봄이 오려나 보다. 벌써 짝을 찾는지, 멧비둘기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촉촉하다. 발 아래에서도 풀뿌리가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진다. 폭력이 만들어 놓은 폐허에서 너희들은 이렇게 어울리며 살아왔구나.

법천사 역시 신라 시대에 창건돼 고려 때 번성을 누렸다. 절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부지가 경주 황룡사지와 익산 미륵사지에 이어 국내 세 번째라고 한다. 우물터만 해도 아홉 개나 된다. 법천사를 법천사로 만든 것은 지광 국사였다. 그의 큰 공덕이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탑비는 11세기 석비(石碑)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폐사지 언덕에 서서 저만치 멀어진 사람 사는 곳을 바라본다. 시선 닿는 곳 모두 숱한 곡절과 전쟁의 참화를 겪었겠지만, 지금은 고요와 평화만 보일 뿐이다. 서로 빼앗기 위해 창칼을 들고 싸우던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돌 틈마다 스며 있는 시간이, 욕심을 버려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쳐 준다.

▲ 풍수원성당과 원동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용소막성당은 초가집에서 예배를 보던 공소에서 시작했다. 현 건물은 1915년 완공돼 올해로 100년이 된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용소막성당 = 풍수원성당과 원동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성당이다. 1898년 초가집에서 예배를 보는 공소로 시작해 1904년에 독립성당이 됐다. 성당 건물은 1915년에 준공했으니 올해가 100년이다. 진입로에서부터 풍경은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첨탑이 우뚝한 성당과 그를 둘러싼 느티나무들이 들판 속에 앉은 마을과 어울려 그림처럼 조화롭다. 높지 않은 언덕에 자리 잡은 고딕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은 명동성당을 닮았다. 성당을 천천히 돌면서 이것저것 눈에 담는다. 굴강하게 서 있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와도 인사를 나눈다. 나무 밑에 만들어 놓은 의자에 앉으니 바글거리던 생각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가벼워진 마음속으로 따뜻한 기운이 스며든다. 아! 나는 외롭거나 슬픈 존재만은 아니었구나. 이곳에서는 앉아 있다만 가도 상처가 치유될 것 같다.

성당 문을 슬그머니 밀어 보니 아무 경계도 없이 부드럽게 열린다. 성당 내부는 크지 않으면서도 오랜 시간이 준 장엄한 기운이 가득하다. 맨 앞에 조촐한 제단이 있고 천장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맨 뒷자리에 앉아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온 빛에 마음을 씻는다.

#그 밖에 가 볼 만한 곳 = 원주에는 일일이 소개하기 벅찰 정도로 문화재와 명승지가 산재해 있다. 용소막성당이 있는 신림에도 명소가 많다. 그중에서도 한국·중국·일본·몽골 등의 고판화를 수집해 전시하고 있는 고판화 박물관과 천연기념물 제93호인 성남리 성황림은 권할 만한 곳이다. 다만 성황림은 원주시청 문화재계에 사전에 방문 신청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복원된 거돈사지의 아래쪽에서 바라보면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높아지는 석축이 한 겹 한 겹 더해지는 시루처럼 세월의 더께를 보여주는 듯하다. 곽성호 기자



흥원창은 고려 13개 조창의 하나로 한강에 세운 대표적인 창고였다. 조선에서도 흥원창을 계승하여 운영했다.

전년에 거두어 저장한 세미(稅米)를 이듬해 2월부터 4월까지 경창으로 운송하였는데, 흥원창에는 2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평저선(平底船) 21척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운이 없어진 이후에도 두물머리보다 배가 많았는데 1940년 중앙선 철도가 생기면서 자취를 감춰 버리고 나루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흥원창의 옛 모습은 1796년 정수영이 그렸다는 ‘한·임강명승도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산과 강 사이에 여러 채의 초가들이 그려져 있다. 강가에는 흥원창 쉼터라는 간판의 정자가 하나 서 있는데 그 안에 그림이 걸려 있다. 원주시는 흥원창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나루와 배, 창고 등을 옛 모습대로 살린다는 계획으로, 2017년부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거북 모양의 받침돌에 새겨진 ‘왕’자, 연꽃 잎과 구름 속의 용이 조각된 왕관 모양의 머릿돌, 몸돌에 새겨진 화려한 연꽃, 구름, 용 등의 문양이 고려 시대 조각예술의 훌륭함을 보여준다.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는 두 곳을 비교하면서 관람하면 훨씬 흥미롭다. 특히 거돈사지의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와 법천사지의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를 유심히 살펴보면 고려 시대 탑이나 조각 예술의 발달과정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과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거돈사지의 원공국사승묘탑비는 형식적으로 신라 양식을 보이지만 세부적인 수법과 모습은 고려 시대 양식을 따랐다. 비석의 머리 부분인 이수에는 용들이 여의주를 다투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몸통인 비신에 비해 큰 편이어서 안정감은 좀 떨어진다. 받침돌인 귀부는 용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거북 등에는 육각형에 만(卍)자와 연꽃무늬가 교대로 새겨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북의 오른쪽 발톱 부분이 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정기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저지른 소행이라고 한다.

법천사지의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원공국사승묘탑비에 비해 훨씬 정교하고 진전된 탑 양식을 보여준다. 육안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비신 윗부분에는 하늘을 나는 천녀(天女)·해·달 등과 함께 수미산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머릿돌, 즉 이수는 건물 추녀가 하늘로 활짝 벌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수를 바라보면 연꽃이나 꽃상여 혹은 왕의 모자, 꽃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불가(佛家)에서 피안(彼岸)으로 중생들을 건네주는 배를 반야용선이라고 하는데, 거북이 입적한 지광국사를 싣고 극락세계로 향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귀부를 이루고 있는 거북 조각도 원공국사승묘탑비보다 훨씬 세련돼 있다.

용소막성당에 가면 ‘사제 선종완 라우렌시오 유물관’을 꼭 들러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천주교 성서사에서 아주 기념비적인 장소다. 용소막성당은 이 마을 출신인 성서학자 선종완 사제가 평생을 보낸 곳이다. 선 사제는 1960년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고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구약성서를 번역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번역 원고본이 유물관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또 고인이 사용하던 낡은 책상을 비롯한 유품 380여 점과 각종 서적 300여 권도 남아 있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바친 선종완 사제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흥원창·용소막성당 가는 길 = 중부(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여주나들목에서 나와 장호원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가다가 장안리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한 뒤 앙성·부론→원주·부론 쪽으로 달리다 보면 강가에 흥원창이라는 안내석이 있다. 용소막성당은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신림삼거리에서 제천·백운·배론성지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용암삼거리에서 백운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된다.

#묵을 곳·먹을 것 = 치악산자연휴양림(033-762-8288), 백운산자연휴양림(033-766-1063)과 인터불고호텔(033-769-8114), 치악산호텔(033-731-7931), 오크밸리(033-730-3500) 등이 있다. 치악산국립공원 권역에 펜션이 많다. 원주시내 박경리문학공원 인근의 한정식집 청정고을 명가에서는 돌솥밥정식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문막읍에는 담백한 국물이 일품인 장터추어탕과 보리밥집 대감집이 유명하다. 토속음식점 록야에서는 정갈한 한정식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