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가 꽃자리고 눈길 닿는 곳이 꽃동산이다. 4월은 그렇다.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꽃이 활짝 피어 있다. 부드럽게 부는 바람과 향기를 듬뿍 머금은 대기, 연록으로 옷을 갈아입는 산과 들…. 세상은 어깨춤이라도 출 것처럼 들썩거린다. 하지만 빛은 늘 등 뒤에 그림자를 감추고 오는 법. 4월이라고 기쁨만 넘칠 리는 없다. 꽃잎에 가슴이라도 베인 듯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도 있다. 국민을 좌절과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1년 전의 세월호 참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럴 땐 한적한 곳을 찾아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다. 특히 우리 고유의 풍물과 정신이 살아 있는 전통마을은 마음을 치유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고즈넉한 고샅길을 걸으며 한숨 하나 내려놓고, 돌담에 내리는 햇살에 젖은 마음 널어 말리고,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려 마음의 상처를 꿰매고…. 과거와 현재가 한 몸인 듯 만나는 곳, 경북 봉화 닭실마을과 산수유가 환호성처럼 피어나는 띠띠미마을을 찾아간다.
#닭실마을 = 낮은 구름 속에 잠긴 마을은 풍경화처럼 고요하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게으른 수탉 한 마리가 우렁찬 소리로 객을 맞는다. 누군가 느닷없이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닭 울음 때문만은 아니다. 마을을 안고 있는 안온한 산세가, 도시에서 품고 온 경계를 내려놓아도 된다고 토닥거린다. 전형적인 금계포란(金鷄抱卵)형 지형이라더니, 그래서 마을 이름도 닭실이던가…. 미리 듣고 온 이야기를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 덕에, 이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은 온화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풍수지리의 문외한이 봐도 쉽사리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마을 앞을 흐르는 맑은 내와 넓게 펼쳐진 들판은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닭실마을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마을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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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정은 인공 구조물이지만 주변 풍광을
거스르지 않도록 지어졌다. |
마을 앞길을 천천히 걷는다. 다른 곳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봄바람이 고샅길을 앞질러 달린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망울들이 우르르 꽃잎을 연다. 냇가에는 버드나무가 힘껏 연초록 잎을 밀어올리고 있다. 시간의 무게를 머리에 인 기와집 담장 너머로도 희고 붉은 꽃들이 봄을 노래한다. 대체 눈을 어느 한 곳에 고정시킬 수 없다. 이곳이 바로 동요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 대궐’이 아닐까. 날렵한 돌담에서 옛사람들의 지혜를 읽고, 키 큰 나무에게서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올곧은 기상을 경청한다. 신기한 일이다. 걸을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결 고운 바람을 따라 훨훨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 같다.
이 마을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충재(충齋) 권벌(1478∼1548) 선생이
약 500여 년 전에 마을에 든 뒤,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안동 권씨의 집성촌이다. 충재 선생은 선비로서의 강직함과 격조를 몸으로 보여준
충절의 사표(師表)였다.
마을 가운데의 청암정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곳이야말로 닭실마을의 중심이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이다. 청암정은 거북 모양의 바위 위에 지은 정자다. 충재 선생이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된 뒤 닭실마을로 내려와 큰아들 권동보와 함께 세웠다. 쪽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담한 공간이 나타난다. 건물은 청암정과 충재 선생이 숙소이자 서재로 쓰던 별채 충재(충齋)가 전부다. 나무들이 아직 잎을 활짝 펴지 못하고 꽃이 만발하기 전인데도 청암정의 풍경은 무척 아름답다.
▲ 운해에 뒤덮인 청량사의 신비스러운 자태.
자연 위에 인공구조물을
세우면 원 상태가 훼손되거나 빛을 잃는 게 보통이지만 청암정은 그런 상식을 깼다. 바위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주춧돌과 기둥의 높낮이를 조정해
지었기 때문이다. 바위주변에는 거북이 좋아하는 물을 담기 위해 인공연못을 조성했다. 마당에서 정자까지는 돌다리를 걸쳐놓았다. 많이 밟고 다닌
돌은 닳고 달아 시간이 뚜렷하게 각인됐다. 바위 역시 푸른 이끼 옷을 입었다. 수백 년 살았음직한 왕버들은 세월의 무게에 못 이겨 반쯤 누웠다.
청암정은 유원지가 아니다.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풍경을 즐기기 위해 찾아갈 곳은 아니다. 마음으로 먼저 의미를
캐는 사람에게만 진짜 가치가 보이는 곳이다. 돌이 닳도록 먼저 걸어간 선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정신을 헤아리고 어제에
오늘을 비춰 내일을 살아갈 지혜를 얻어야 한다.
청암정은 일부담장을 쌓고 일부는 나무를 심어 담을 삼았지만 온전한 배타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솟을대문 대신 세 곳에 작은 문들을 내었다. 세 개의 문은 은자의 상징이다. 문을 낮게 만든 것은 몸을 낮추고 조심하라는 뜻이다. 충재
선생은 파직된 뒤 이곳으로 내려와 신선세계를 꿈꾸며 살았다. 앉은 자리를 섬처럼 만들어 스스로를 세상에서 격리했다. 그가 청암정에 앉아 주로
읽은 책은 두고두고 생각한다는 의미의 근사록(近思錄)이었다. 충재 선생이 책을 읽었을 법한 자리에 슬그머니 앉아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살이의
근본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도 컸을 것이다. 500년의 시간을 성큼성큼 건너가, 충직하다는 이유로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한
선비를 만난다.
닭실마을을 찾은 사람이라면 충재박물관에 꼭 들러봐야 한다.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보물 482점을 포함해서 총 1만여 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특히 충재일기(보물 제261호), 근사록(보물 제262호) 등을 통해 그 시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박물관을 돌아본 뒤 마을 중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석천계곡으로 간다. 석천정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길은 내를 앞세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길 옆에는 소나무들이 허리 굽혀 객을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냇물도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는다. 나무들은 초록을 뱉어 봄이 이만치 왔음을 알리고 버들강아지는 까불까불 바람과 어울린다.
석천정사 앞에서 나무다리를 건넌다. 닭실마을의 진짜 아름다운 풍경은 이 골짜기에 숨어 있다. 길 끝까지 따라가고 싶지만 가끔은 남겨둬야 할 것도 있다. 대신 너럭바위에 앉아 맑은 물속을 들여다본다. 아! 그곳에 내가 있다. 오래 전에 잃어버리는 바람에 조금은 낯선…. 도시에 살고 있는 게 난 줄 알았는데, 진짜 나는 골짜기에 숨어살고 있었다.
▲ 봄이 오는 모습이 정겨운 닭실마을 돌담. |
#띠띠미마을 =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두동마을. 띠띠미마을의 공식 주소와 이름이다. 하지만 띠띠미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어원에 대해 여러 말이 있지만 뒷마을이라는 뜻의 ‘뒷듬’이 ‘뒤뜨미’로, 세월 따라 ‘띠띠미’로 굳어졌다는 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띠띠미마을을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다. 산수유가 알아서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이곳은 산수유가 가로수다. 그러니 별 고민 없이 노란 꽃만 따라가면 된다. 마을은 세상의 모든 길이 끝나는 곳에 있다. 봉화의 진산이라는 문수산 자락 중에서도 마지막 골짜기다.
띠띠미에는 5000그루 이상의 산수유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중 상당수는 100년 이상된 것들이다. 그러니 꽃무리도 탐스러울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꽃이 아니라 구름 같다. 여기저기서 노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누군가 마을을 노란 물감에 넣었다 꺼내놓은 게 틀림없다. 노란색이라도 같은 노란색이 아니다. 개나리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우쭐대는 원색이라면 산수유는 흐린 듯 세상을 적신다. 밭둑도 개울도 고택의 담장도 무너져가는 폐가도 꽃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산수유 마을을 여러 곳 가봤지만 사람의 집과 산수유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동네는 처음이다.
밭두렁을 따라 걷다가 과수원으로 접어든다. 곳곳에 달래, 냉이 등 봄나물이 아우성처럼 솟아오른다. 저기 어디쯤에는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가 있을 법도 하련만 동네는 비어있는 듯 조용하다. 이곳 역시 노인들만 남은 게 틀림없다. 마을을 이리 저리 헤집고 다녀도 눈 마주칠 사람 하나 없다. 마음을 통째로 빼앗아간 이 마을을 쉽사리 떠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눌러 살 수도 없으니 가지고 있는 시간을 모두 쓰는 수밖에. 마을 안쪽 개울가에 앉아 스스로 노랗게 노랗게 물들어 간다.
#그밖에 가볼 만한 곳 = 닭실마을과 띠띠미마을 외에도 봉화에는 전통마을이 많다. 바래미마을, 오록마을, 황전마을 등 모두 찾아가볼 만한 곳들이다.
청량산의 청량사 역시 그냥 지나치기는 아까운 곳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이 있다. 올라가는 데 조금 힘들지만, 막상 올라가면 경치가 아름다워 마음이 넉넉해진다.
▲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풍광은 거제 8경 중 하나다. |
문수산 자락 마지막 골짜기에 자리한
띠띠미마을. 마을 곳곳에 무리지어 핀 노란 산수유가 여행객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준다. 김선규 기자
ufokim@ |
닭실의 본래 이름은 달실이다. 달실은 경상도 방언으로 ‘닭 모양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경상도 북부 지방에서는 ‘닭’을 ‘달’이라고 부른다. 닭실 역시 수백 년 동안 달실로 불렸고 마을에서는 여전히 그렇게 부르고 있다. 닭실로 표기하게 된 것은 국어표준어법을 적용하면서부터였다. 지금도 닭실마을 자체에서 만드는 안내서나 홈페이지는 달실로 표기하고 있다.
닭실마을을 방문하기 전에 입향조(入鄕祖)인 충재 권벌 선생에 대해 알고 가면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충재 선생의 본관은 안동이다. 연산 2년(1496) 진사시에 입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 삼사(三司), 승정원과 각 조(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강직한데다 대의를 위해서는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성품으로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때 연이어 화를 입었다.
기묘사화로 파직된 뒤에는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닭실마을에서 15년간 은거했다. 1533년 밀양부사로 복직되어 한성부판윤 등을 지냈으나 1545년 명종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로 다시 파직됐다. 특히 문정왕후에게 윤원형 등 소윤일파의 전횡을 탄하고 무고하게 화를 입은 윤임 등을 구하는 논지의 주장을 폄에 따라 평안도 삭주로 유배돼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명종 21년 관작이 복원되고 선조 때 영의정에 추증돼 삼계서원에 배향됐다.
충재 선생이 은거하던 청암정을 관람하려면 사전에 전화로 예약하고 입장료를 내야 한다. 사진 촬영은 금하고 있다. 유료입장으로 전환한 것은 올해부터다. 관리 담당자에 따르면 관람 제한은 유적의 보존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한다. 많으면 한 해 10만 명 가까이 찾아오면서 걷잡을 수 없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일부 몰지각한 관람객들은 정자에서 술과 음식을 먹고, 사진 촬영을 한다는 명분으로 나무와 꽃을 꺾는 사례가 속출했다고 한다. 마루가 내려앉거나 담장의 기와가 훼손되기도 했다. 입장료는 5000원∼1만 원(해설, 차·책자 제공)이고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닭실마을에는 청암정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석천계곡은, 빼어난 건축물인 석천정사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또 선영의 묘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추원재와 충재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경모하기 위해 유림에서 건립한 삼계서원이 있다. 충재 선생의 제사와 혼례 등에 사용하기 위하여 전해 내려온 닭실한과도 유명하다.
띠띠미마을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노인이 젊은 소를 길들이는 장면을 이 마을에서 촬영했다. 이 마을 역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다. 마을이 처음 생긴 것은 400여 년 전이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던 삼전도의 치욕을 참지 못한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선생이 은둔을 위해 들어온 게 마을이 생긴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다래 덤불로 뒤덮인 골짜기였다고 한다. 두곡 선생이 정착하면서 심은 게 바로 산수유였다. 그는 자손들에게 “산수유만 잘 가꾸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니 공연한 세상일에 욕심을 두지 말고 휘둘리지 마라”고 일렀다고 한다. 그 뒤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두곡 선생이 심은 산수유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마을을 흐르는 개울 옆에 살아 있다고 한다.
#닭실마을 가는 길 = 중부(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에서 안동·영주 방면으로 달리다 구성오거리를 지나 울진·봉화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915번 지방도 분기점에서 우회전한 뒤 봉화 방면으로 좌회전, 로터리에서 2시 방향으로 가면 된다. 띠띠미마을은 닭실마을 입구에서 좌회전한 뒤 옛 36번 국도를 타고 가다 봉성면 동양리 입구에서 좌회전, 산수유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묵을 곳·먹을 것 = 닭실마을 추원재 건물 일부에서 고택체험(054-674-0963)을 할 수 있다.
한옥으로 지은 전통문화체험장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그밖에도 토향고택(054-673-1112), 소강고택(010-9189-5578),
만산고택(054-672-3206) 등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봉화에서는 초가을에 나는 송이를 급랭한 뒤 1년 내내 요리
재료로 쓴다. 용두식당, 솔봉이식당, 인하원 등은 송이돌솥밥으로 잘 알려져 있다. 36번 국도변의 다덕약수탕 인근은 닭백숙 요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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