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鐵原)!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면 뭔지 모를 무지근함이 느껴진다. 태봉(泰封)의 도읍지로 궁예가 꿈을 심었던 곳, 세상을 훔치려 했던 임꺽정의 전설이 살아있는 땅…. 그런 배경만으로는 그 무게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결국 ‘민통선’ ‘철의 삼각지대’ ‘백마고지 전투’ 같은 말들이 떠오르고서야 무게의 근원을 가늠할 수 있다. 철원은 전쟁과 분단을 상징하는 땅이다. 1만7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수없이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 전투 이야기가 여전히 진행형처럼 떠돈다. 북에서 파내려온 땅굴이 있고 환청처럼 포성이나 총소리가 들리는 땅. 그래서 더욱 통일의 염원이 간절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원이 마냥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와 이어진 탯줄 같은 한탄강이 흐르고, 겨울이면 먼 곳에서 찾아온 두루미, 독수리, 청둥오리를 품어주는 땅이기도 하다. 전설을 간직한 고석정이 있고, 손을 잡고 피안으로 끌어줄 것 같은 도피안사가 있다.
#고석정=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강은 아득히 멀다. 한탄강 특유의 협곡 지형 때문이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고석정에 닿는다. 이 정자는 신라의 진평왕과 고려의 충숙왕이 놀고 갔다는 곳이다. 그만큼 풍경이 뛰어나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도 비극이 있었다. 6·25전쟁 때 불타는 바람에 지금의 시멘트 정자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가뭄으로 수량이 무척 줄었는데도 강은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휴전선을 가로질러 오느라 한탄이 깊어진 것일까. 하지만 이 강은 한숨과 탄식의 恨歎江이 아니라 큰 여울이라는 뜻의 漢灘江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자꾸 탄식 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강가에 우뚝 솟은 10여m 높이의 바위가 장엄하다. 이곳의 주인공인 고석이다. 외로운 돌(孤石)이라니, 무엇이 그리 외로웠을까. 바위는 발을 물에 담그고 머리에는 겨울을 견딘 소나무들을 이고 있다.
강가를 걷는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현무암 지대라 돌마다 구멍이 숭숭 뚫렸다. 현무암은 자신이 태어난 내력을 온몸에 그려놓기 마련이다. 강가에는 아직도 갈대들이 지난 계절을 그러쥐고 있는데,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린 갯버들은 허공마다 꽃봉오리를 밀어 올렸다. 협곡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상류를 향해 치닫고 그 사이를 강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이런 풍경 앞에는 입을 다물고 그저 자연이 전하는 말이나 가슴에 담는 게 상책이다.
이곳에서 듣고 보고 싶었던 것은 강에 뿌리를 두고 누대를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은 남지 않는 법. 다만 고석정을 근거지로 삼아 도적질을 했다는 한 사내의 이야기만 전해진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의적이란 말을 들었다. 바로 조선 명종 때의 도적 임꺽정 이야기다. 그는 고석 한가운데의 석굴에 은거하며 활동했다고 한다. 대낮에 도둑이 활보하고, 등을 치고 죽이는 걸 예사로 아는 세상에, 의적이란 말은 은근한 희망을 내포한다. 철원에서 활약했다는 임꺽정은 역사에 등장하는 그 임꺽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난하고 핍박받는 민중이 희망 삼아 만들어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허구의 도적까지 만들어 위안을 받으려고 했던 옛사람들의 척박한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 온다.
강가에 앉아 얼룩진 마음을 빨아 넌다. 물이 천천히 흐르니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강 속에는 갓 부화한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처음 맞이하는 봄이 신기한 모양이다.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경계할 줄 모른다. 임꺽정은 관군이 쳐들어와 잡힐 것 같으면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해 몸을 숨겼다지? 그렇다면 혹시 이들이 임꺽정의 후손? 자꾸 들여다보지만 물고기가 답을 해줄 리는 없다. 건너편 강가에는 돌을 쌓아 만든 수백 개의 작은 탑들이 있다. 누구는 정성스럽게, 누구는 장난스럽게 쌓았겠지만 어느 손길인들 소망 한 자락 안 담았으랴. 통일이든 평화든, 개인의 안락이나 부를 빌었든 모두 이뤄지기를. 고석을 돌아 백사장을 걷는다. 잘 벼린 햇살이 쏟아져 내려 촘촘히 박힌다. 모래알 같은 생각들을 털어내 함께 묻는다.
#도피안사 = 이름만으로도 손을 잡아끄는 곳이 있다. 도피안사가 그렇다. 이름을 듣자마자, 그곳에 가면 번뇌의 고리를 단칼에 잘라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피안(到彼岸)… 불가에서 완성을 뜻하는 말이다. 해석이야 많겠지만 결국은 강 이쪽 언덕인 차안(此岸)에서 저쪽 언덕인 피안(彼岸)으로, 즉 고통의 이 세상에서 고통 없는 저쪽 세상으로 건너간다는 뜻일 게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아니라 깨달음이 필요하다. 도피안사에 가면 그 길을 가르쳐줄 것 같았다.
비무장지대(DMZ)가 지척인 도피안사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말 그대로 ‘절집처럼’ 고요하다. 일주문 대신 사천왕문이 맨 먼저 나타난다. 일주문에는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고, 사천왕문은 일심(一心)의 일주문을 거쳐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일주문이든 사천왕문이든 다를 건 또 무엇이랴. 속세에서 지고 온 먼지만 털어내면 되지. 마지막 계단을 오르며 차안과 피안을 다시 생각한다.
깨달음의 문제라면 피안의 땅 역시 먼 곳이 아닌 내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지옥을 짓지 말 일이다. 절 마당에 오르면 방문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 느티나무다. 600년을 살았다는 이 나무는 지금 시간을 벗듯 껍질을 벗고 있다. 저 껍질들이야말로 피안으로 가기 위해 벗어던지는 번뇌인지도 모른다. 아니, 느티나무 자체가 피안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새로 지은 대적광전, 극락보전, 요사채, 삼성각…. 절은 규모가 작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간다. 대적광전 앞에 3층 석탑이 있다. 보물 제223호인 이 석탑은 조금 특이한 양식을 지녔다. 4각이 아닌 8각의 기단을 이중으로 쌓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하듯 탑신을 올렸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이다. 이 석탑이 관심을 끄는 것은 특이한 외양 때문만은 아니다. 탑 속에는 ‘금와보살(金蛙菩薩)’이 살고 있다고 한다. 금와보살이란 금빛 나는 개구리를 말한다. 날이 따뜻해지면 개구리들이 탑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염주까지 굴린다고 해서 TV에 방영된 적이 있다. 개구리를 보는 데도 불심이 필요한 것일까?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타날 기미가 없다. 지나가는 보살 한 분에게 금와보살을 봤느냐고 물으니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정말 염주를 굴리더냐는 물음에는 흐리게 웃기만 한다.
대적광전에는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다. 오른손으로 왼손의 검지를 감아쥔 지권인(智券印)은 이(理)와 지(智), 중생(衆生)과 부처(佛), 어리석음(迷)과 깨달음(悟)이 본래 하나라는 뜻이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 예를 올린다. 철불의 얼굴에서는 근엄함이나 위세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몸집도 그리 크지 않다.
부처의 얼굴 전반에 어린 은은한 미소는 이웃집 아저씨가 앉아 있는 듯 친근함을 준다. 걱정 같은 건 모두 털어놓고 가라며 편안하게 웃는다. 철퍼덕 주저앉아 사람 사는 이치를 묻고 싶지만, 그 또한 욕심인 것 같아 금세 돌아서 나온다. 요사채 마루에 앉아서 듣는 독경 소리가 귀에 순하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도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도 괜찮다, 괜찮다, 등을 두드려준다.
#노동당사 = 도피안사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야트막한 야산에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이 있다. 이 지역이 북한 땅이었던 1946년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지은 것이다. 3층짜리 건물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외벽에는 전쟁 때 생긴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을 때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제 모금을 하고 노동력도 동원했다고 한다. 또 비밀유지를 위해 내부 공사를 할 때는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고,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외양인데도 건물은 비교적 단단하게 시간의 침식을 견디고 있다. 앙상한 시멘트에 뿌리를 내리고 싹트는 풀들에서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읽는다.
#그 밖에 가볼 만한 곳 = 철원은 최대의 안보관광지이기도 하다. 사전에 신청하면 고석정→제2땅굴→철원평화전망대→철원두루미관→월정역→노동당사를 견학할 수 있다. 인솔견학의 경우 모두 돌아보는 데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신청은 출발 15분 전까지 고석정 관광안내소에서 하면 된다. 033-450-5558
고석정에는 곳곳에 임꺽정의 전설이 묻혀 있다. 철원 사람들은 지금도 고석을 ‘꺽정바위’로 부른다. 바위의 형상이 임꺽정이 신고 다니던 신발을 닮았다고도 한다. 또 임꺽정이 바위 한가운데 있는 굴에 은거했다든지, 고석정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활동했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온다.
양주 백정 출신인 임꺽정은 조선 중기 명종 때의 큰 도적이었다. 성호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조선의 3대 도둑으로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을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임꺽정은 백성들로부터 의적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정치 혼란과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황해도 구월산과 서흥·신계 등의 관청이나 토호·양반집을 습격해 재물을 빼앗았다. 또 함경도와 황해도 방면에서 올라가는 진상품을 약탈, 백성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임꺽정은 관군에 저항하면서 적어도 3년 이상을 버텨낸 인물이다. 1559년(명종 14)에는 포도관 이억근이 소탕하러 갔다가 되레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1561년에는 경기도·강원도·평안도·함경도·황해도의 군졸들을 동원해 소탕작전을 펼쳤다. 1562년 정월에 토포사 남치근이 부상당한 임꺽정을 추격하여 구월산에서 체포했고, 서울로 압송해 사형했다.
후세는 입장에 따라 임꺽정을 정반대로 평가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연려실기술’ 등에는 포악한 도적으로 묘사했지만, 민중들 사이에는 의협심 많은 인물로 회자됐다. 임꺽정과 관련된 기록에 철원의 고석정을 기반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은 없다.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에도 고석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원 사람들은 임꺽정이 이 고장에서 활동했으며 죽은 것이 아니라 꺽지로 변해 한탄강물 속으로 숨어버렸다고 믿고 있다.
화개산(花開山) 도피안사는 신라 경문왕 5년(865)에 창건한 고찰이다. 당대의 고승 도선국사가 1500여 명의 대중과 함께 철불을 조성하고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뒤로 명맥을 이어오다 6·25전쟁 때 불타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1959년 육군 제15사단에서 재건했다. 도피안사에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철불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 깊다. 도선국사가 철불을 안양사에 모시기 위해 승려들과 함께 옮기던 중이었다고 한다. 암소에 철불을 싣고 가다 지금의 철원읍 화지리 암소고개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불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리저리 찾아 헤맸으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낙담하여 돌아온 뒤 한 승려가 지금의 도피안사 터에 이르렀는데, 불상이 그곳에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도선국사는 그 뜻을 짐작하고 불상이 앉았던 자리에 절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철불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쟁으로 도피안사가 불타버리고 몇 해 지나지 않은 1959년이었다. 하루는 이명재 15사단장이 꿈을 꾸는데 땅속에 묻힌 불상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더라는 것이다. 그 꿈을 계기로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을 발견해서 도피안사를 다시 세우게 됐다. 그 뒤 군에서 맡아 관리해 오던 도피안사는 1985년에 민간 관리로 넘어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석정 가는 길 = 43번 국도를 타고 의정부, 포천을 지나 문혜에서 463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한탄강을 건너 고석정랜드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들어간다. 고석정에서 도피안사로 가기 위해서는 463번 도로를 타고 가다 87번 국도로 접어들어 조금 더 올라가면 된다.
묵을 곳·먹을 것 = 동송읍에 한탄리버스파호텔(033-455-1234)과 서면에 대명관광호텔(033-458-8167)이 있다. 철원에는 민박과 펜션이 많다. 갈말읍에 승일펜션(033-452-1949), 자연황토방펜션(033-452-9449) 등이 있고 동송·철원읍에 고석정펜션(033-455-1137), 늘푸른펜션(033-455-9009) 등이 있다. 고석정 주변에는 임꺽정가든, 현무암가든 등 민물매운탕집이 여럿 있다. 고석정회관의 참마자·어름치·돌고기·갈겨니·꺽지 등을 넣고 끓인 잡어 매운탕은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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