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경남의 재발견_02 통영

醉月 2012. 7. 18. 07:04

한산도 달 밝은 밤, 그 수루에 앉아보니

통영항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면 한산도에 닿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유적은 통영 곳곳에 있습니다만, 한산도는 또 특별합니다. 한산도는 한산대첩을 이룬 충무공이 삼도수군 본영을 둔 곳입니다. 이후 1597년 일본에 패한 조선수군이 적에게 물자를 넘기지 않고자 불을 질러 없애면서 원래 흔적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후 몇 차례 보수를 거쳐 1976년 지금 모습을 갖춥니다.

한산도는 오롯이 충무공을 기리는 현장으로만 꾸민 느낌이 들 정도로 섬 전체가 정갈하게 정돈돼 있습니다. 배 대는 곳에 서는 마을버스를 보지 못했다면 한산도에 거주민이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이곳은 충무공 흔적이 무겁게 지배합니다. 섬 둘레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정숙, 엄숙을 강조하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한산도 항구에서 제승당으로 향하는 길을 매우 깔끔하게 정돈돼 있습니다. /이승환 기자  

배에서 내려 오른쪽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제승당에 도착하게 됩니다. 제승당은 107대 통제사 조경이 세운 건물로 지금으로 치자면 해군작전사령관실 같은 곳입니다.

제승당 안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이 썼던 화포를 전시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 육군은 왜적이 쓰는 조총에 밀리며 연전연패 했습니다만, 바다에서는 충무공을 중심으로 승승장구 하는데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왜적보다 우세한 위력을 보였던 화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겠습니다.

   
 
  1976년 복원한 제승당입니다. /이승환 기자  

   
 
  제승당 안에 전시된 화포입니다. /이승환 기자  

제승당을 등지고 왼쪽 편에는 수루(戍樓)가 있습니다. 1976년 고증을 바탕으로 신축한 건물인데 통영 앞바다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이 수루에서 보이는 미륵산, 고동산, 망산에서 적 동태를 살피고 봉화, 고동, 연등 등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에 나오는 수루가 바로 이곳입니다.

   
 
  수루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입니다. /이승환 기자  

한산도에 도착해 제승당까지 둘러보는 시간은 얼추 통영항을 오가는 배 시간과 맞아떨어집니다. 말끔하게 정돈된 길과 유적을 거닐며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에서 고민했을 충무공을 떠올리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듯합니다.

 

미륵산 케이블카에서 본 통영 앞바다

케이블카는 부모님 손잡고 다닐 때나 몇 번 타봤습니다. 이번 취재 덕에 정말 오랜만에 케이블카를 타게 됐습니다.

케이블카가 움직이는 모습은 제법 먼 곳에서도 보였습니다. 줄지어 가는 둥근 물체를 보고 남석형 기자는 "외계인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감수성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비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싶은 지방자치단체는 상당히 많습니다. 통영시 관광과 관계자는 "수많은 지자체에서 견학을 와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케이블카를 두고 시설 자체가 자연환경 파괴다, 오히려 등산객 발길에 치일 일이 없기에 환경을 보호하는 면도 있다 같은 논란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미뤄두고 일단 통영시 처지에서 보면 케이블카는 상당한 성공 사례인 듯했습니다.

   
 
  어른 9000원. 좀 비싼가요? 그렇다고 돈이 아까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박민국 기자  

우선 찾는 관광객이 상당히 많습니다. 취재팀이 갔을 때는 시간당 800명이 탑승하고 있다는 안내가 매표소 전광판에 나왔습니다. 대충 셈해도 '1년에 순수익이 150억 원 정도 된다'는 시청 관광과 관계자 말이 그렇게 과장은 아닌 듯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탄 사람들 반응도 대부분 괜찮았습니다. 우선 가파른 봉우리인 미륵산 정상 근처까지 유유히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이는 통영 전경은 너무나 다채로운데, 이를 남녀노소가 힘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으니 싫다 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케이블카 안에서 점점 넓어지는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박민국 기자  

케이블카에서 내려 미륵산 정상까지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좀 가파르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갈 만합니다. 올라가는 중간에 전망이 좋은 곳에는 적당히 쉴 곳이 있습니다. 미륵산 정상에서는 바다, 섬, 항구 등 동서남북 방향을 바꿀 때마다 다른 매력을 뿜는 통영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만 타서 재밌는 게 아니라, 정상에서 통영 경치를 감상하는 눈맛도 쏠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에 또 통영에 오더라도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와 섬이 어우러지며 만든 풍경. 통영이 자랑할 만합니다. /박민국 기자  

미륵산 케이블카는 상당히 가파르고 긴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데요. 고소공포증을 다소 느끼는 관광객도 있었습니다.

저는 등산과 케이블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케이블카 쪽에 쏠리겠지만, 미륵산은 등산로도 상당히 괜찮다고 합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통영항도 예쁩니다. 제가 나폴리를 가본 적이 없어서 '동양의 나폴리'라는 표현에 걸맞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박민국 기자

 

통영을 여유롭게 즐기는 '토영이야~길'
산으로 바다로…문화유산 곳곳에, 통영항 강구안~동피랑 등 4구간

통영시는 지역에 널리 퍼진 문화적 자산과 풍경을 모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탐방로를 정했다. 그리고 '토영 이야~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토영'은 통영 토박이들이 제 고장을 발음하는 대로 옮겼다. '이야~길'에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았다.

'토영 이야~길'은 4개 구간으로 이뤄진다.

통영항 강구안에서 시작해 동피랑과 예술인 흔적을 더듬는 길이 1구간이다. 2구간은 충렬사에서 시작해 고장 유적과 특산품을 볼 수 있다. 1·2구간을 돌면 통영시내를 한 바퀴 돌게 된다. 해저터널에서 시작해 미륵산을 거쳐 박경리 묘소를 지나는 길이 3구간이고, 해변 자전거 길을 4구간으로 삼았다.

'토영 이야~길'은 산과 바다로 이어지는 풍광과 지역 곳곳에 넘치는 문화유산에 대한 이곳 사람들 자랑이다.

   
 

통영에서 놓치지 않고 둘러봐야 할 곳

◎통영대교 야경 = 196개 조명이 연출하는 무수한 색상의 잔치가 밤바다에 펼쳐진다. 가는 길: 북통영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KT-통영대교(통영해양관광공원)

◎해저터널 = 바다 양쪽을 막고 바다 밑을 파서 1932년 완공한 동양 최초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 가는 길: 북통영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KT 앞에서 좌회전-해저터널

◎미륵산 케이블카 = 미륵산 8분 능선에서 8인승 캐빈 47대가 순환하며 한려수도 풍광을 안내한다. 어른 1인 왕복요금 9000원. 가는 길: 북통영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충무교 또는 통영대교-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남망산조각공원 = 높이 72m 작은 동산에 세계 유명 조각가 15명 작품이 전시돼 있으며, 이충무공 동상·청마 유치환 시비가 있다. 가는 길: 통영IC-미늘삼거리-통영시청-삼성타워-남망산조각공원(통영시민문화회관)

◎동피랑 벽화마을 =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 불리는 곳으로 서민 애환이 녹아있는 달동네.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는 야외미술관과 다름없다. 가는 길: 통영IC-미늘삼거리-통영시청-삼성타워-나폴리모텔 옆길-동피랑 벽화마을

◎세병관 = 통제영의 상징적 건물로 국보 제305호. 현존하는 조선시대 단일 면적 목조건물 가운데 경복궁 경회루·여수 진남관과 함께 가장 크다. 가는 길: 북통영IC-원문검문소를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충렬사 전 통제영주유소 지나면서 좌회전-세병관

◎충렬사 = 1606년 이충무공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 1895년 지역 유지들이 충렬사보존회를 결성해 관리하고 있다. 가는 길: 북통영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충렬사

◎한산도 제승당 = 이순신 장군이 전란 때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던 곳. 통영항에서 뱃길로 25분 소요. 가는 길: 배편 통영항여객선터미널 오전 7시~오후 5시(10~2월)·6시(3~9월) 1시간 간격

◎착량묘 = 지역민·부하들이 이순신 장군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최초 사당. 북통영 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KT 앞에서 직진-착량묘

◎욕지도 = 등산·낚시를 함께 즐기기에 좋다. 통영항에서 뱃길 32㎞ 거리로 1시간 10분 소요. 가는 길: 배편 통영항여객선터미널 오전 6시 50분·오전 9시 30분·오전 11시·오후 1시·오후 3시, 삼덕항여객선터미널 오전 6시 45분·오전 9시·오전 10시·낮 12시 30분·오후 1시·오후 3시 30분

◎장사도 = 10만여 그루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구실잣밤나무·야생화가 뒤덮인 곳으로 해상공원이 2012년 1월 개장했다. 통영항에서 25㎞ 거리로 40분 소요. 가는 길: 통영항·거제항(가배·저구·대포)에서 가는 배가 있는데 매달 출항 시간이 다르다. 통영유람선(055-645-2307)·거제 가배항 장사도유람선(055-637-8282)·장사도해운(055-637-0070)·저구항 남부유람선(055-632-4500)

◎윤이상 기념관(도천테마공원) = 도천동 '도천테마공원' 내 2층 건물 전시관에는 독일에서 받은 괴테 메달, 항상 품고 다녔던 소형태극기 등이 있다. 가는 길: 북통영 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KT 앞에서 좌회전-도천테마공원

◎박경리 기념관 = 〈토지〉 친필원고·여권·편지 등 유품, 작품 관련 논문 등 자료실, 선생 묘소가 있다. 가는 길: 북통영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통영대교-산양읍 입구서 좌회전-산양읍사무소-박경리 기념관

◎전혁림 미술관 =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독특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가는 길: 북통영IC-원문검문소 지나면서 우회전-산복도로-충무교-봉평오거리서 우회전-전혁림 미술관

   
 

볼거리에 담긴 통영의 역사와 문화
민초를 닮은 충무공이 여기 있다

239.17㎢로 면적이 경남에서 가장 작은 지자체 통영. 이 작은 곳에 이야기는 넘쳐흐른다.

이 지역 사람들은 통영 얘기를 하는 데서 "식상하더라도 이순신을 빼면 설명이 안 되죠"라고 한다.

제승당·세병관·충렬사·착량묘…. 이 가운데 착량묘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해저터널을 사이에 두고 잘 드러나지 않은 얘기를 품고 있다.

1598년 이순신 순국 후 나라에서는 그의 사당을 따로 짓지 않았다. 3년이 지나서야 여수에 사당을 만들었다. 이순신만이 아닌 공동 사당이었다. 조선이 이순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6·25전쟁 중에 건립된 남망산 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 /박민국 기자  

지역민들은 참 비교가 된다. 이순신 순국 이듬해 민초들이 직접 나섰다. 이순신 위업을 기리고 기신제를 모시는 작은 초가집 한 채를 지었다. 착량묘 시초다. 300년 후 고종 임금 때 이순신 직계 후손인 이규석이 통제사로 오게 되는데, 초가집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1877년 기와집으로 고쳐 만들었다.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들이 도망가다 미륵도-통영반도 사이 협곡에 돌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달아난 데서 붙여졌다.

이러한 착량묘 바로 밑에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해저터널이 있다. 통영∼미륵도를 연결하는 동양 최초 바다 밑 터널로 1931년 착공해 1년 4개월 만에 완성됐다. 길이 483m·너비 5m·높이 3.5m. 바다 양쪽을 막고 그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로 만들었다. 해저터널 이용 계획서에는 예상 연간교통량을 사람 9만 명·우마차 1000대·자전거 100대·자동차 1000대·가마 1000거로 기록해 놓았다.

해저터널은 통영∼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지만 이전에도 썰물 때에는 도보로 오갈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어민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또 다른 배경이 숨어있다.

한산해전에서 이순신 장군 손에 숨을 거둔 일본 송장이 이곳에 얼마나 쌓였는지 송장목이라고까지 불렸다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자기 조상 뼈가 묻힌 곳을 조선인들이 밟고 지나가면 안 된다 해서 해저터널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1931년 착공해 1년 4개월 만에 완성한 해저터널. /박민국 기자  

이순신 최초 사당 착량묘, 바로 그 아래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해저터널…. 한일 역사의 묘한 교차점이라 할 만하다.

착량묘와 같이 민의 마음이 담긴 또 다른 것이 있다. '통영의 남쪽을 망보던 산'인 남망산공원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통영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건립했다.

이를 두고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이순신의 여러 동상이 있지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담긴 동상입니다. 민초 마음이 새겨 있으니까요."

그곳의 이순신은 지금까지 한산도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이순신에만 마음을 준 것이 아니다. 김춘수 시비·청마 흉상 같은 것도 주민 손에서 만들어졌다.

통영이 예향이라는 것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300년간 이어진 궁중 고급문화, 십이공방 발달에 따른 장인정신, 경제적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풍광…. 이런 역사적 뿌리와 사회적 풍토 속에서 배출된 수많은 예술인. 윤이상 기념관·윤이상 거리, 박경리 기념관, 청마문학관·청마거리, 전혁림 미술관, 김춘수 유품전시관, 초정 김상옥 거리에서 그 기운을 느끼게 된다.

윤이상 기념관은 도천테마파크에 있다. 처음 찾는 이들은 가기까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윤이상 기념관'이라는 표지가 없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한 느낌이다.

통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최정규(61) 시인은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껄끄러운 부분도 있고 하니…"라는 답을 주었다.

도심지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유인도 44개·무인도 482개가 점점이 펼쳐져 있다.

   
 
  윤이상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그가 생전에 타던 자동차. /박민국 기자  

박태도(57) 통영시 관광과장의 표현은 이렇다.

"위에서 보면 수제비 반죽 뚝뚝 던져놓은 것 같아요."

최근 500만 명을 돌파한 미륵산케이블카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정욱(56) 통영시티길라잡이는 또 이렇게 말한다.

"직선적인 미는 조금만 지나면 싫증 납니다. 동해에 처음 가면 좋다고 하지만, 조금 지나면 눈 안가잖아요. 통영은 수평선에 섬…섬…섬…. 이렇게 직선과 곡선이 혼재해 있는 곳이에요. 같은 섬도 보는 각도에 따라 또 바뀌죠. 높이만 좀 달라도 또 다르게 보이죠." 

   
 
 

민초들이 직접 만든 이순신 장군 사당을 기와집으로 고쳐 지은 착량묘. /박민국 기자

 

먹을거리에 담긴 통영의 역사와 문화
충무김밥·우짜·시락국 등 '뱃사람' 위한 다양한 음식

통영만의 다양한 음식문화 역시 300년간 이어진 통제영에서 출발해도 무리는 없다 하겠다.

한양에서 이곳으로 온 종이품 관직 통제사들은 몸만이 아니라 위쪽 양반 고급음식도 함께 들인다. 이는 곧 통영의 풍부한 수산자원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지 그것만도 아니다. 208대에 걸친 통제사들은 종종 진상을 올리기도 했으니, 임금 입·눈을 사로잡기 위한 맛의 향연이 어느 정도였을지 미뤄 짐작된다.

통제영이 폐지된 1895년 이후부터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면서는 통영이 근대 수산업 대표 지역으로 떠오른다. 일본 사람들은 남해안, 특히 신선하면서 종류도 다양한 이곳 수산물을 제일로 쳤다 한다. 1900년대 초반 부산 포함한 경남 수산업 절반은 통영 몫이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넉넉하다 하기에 손색없는 곳이 된 것이다. 뱃사람 덕이었다. 여기서 기인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통영 음식 가운데 이들을 중심에 둔 것이 적지 않다.

마산 통술·진주 실비류인 통영 다찌. 다찌가 정확히 어디서 나온 말인지 이곳 사람들도 확실치 않다. 어떤 이들은 '다 있다' 줄임말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은 '일본의 다찌바(立場·서서 먹는 곳)'에서 유래했다는 쪽을 내민다. 뱃사람들이 일 마치고 술 한잔 얼른 마시던 선술집인 셈인데, 안주는 주인장 주는 대로다. 이는 뱃사람들이 맨날 대하는 게 생선·해산물이다 보니, 안주보다는 차라리 술에 값을 매기는 것이 더 속 편했을 법도 하다.

박태도(57) 통영시 관광과장은 조금 더 구체화한 다찌집에 대한 기억을 전한다.

   
 
  통영 '우짜'를 젓는 모습.  

"왕거미집이라는 술집에서 양동이에 담은 맥주를 내줬어요. 그게 조금 더 발전해 안주도 체계화되고, 그러면서 장사가 잘되니 주위에 자연 발생적으로 한 집 두 집 생겨났죠. 지금 왕거미집은 없어졌죠. 한 30년 전쯤에…."

전통 다찌집은 술이 불어나는 데 따라 1·2·3차 안주가 차례로 나오는 식이지만, 이제는 기본 한 상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 4인 기준은 10만 원으로 술이 10병 딸려 나온다. 추가 술은 맥주 1병 6000원, 소주 1병 1만 원 정도다. 처음과 달리 만만찮은 돈을 털어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 '됐나? 됐다!'식 화통한 기질 덕에 셈을 서로에게 미루는 모습은 잘 찾아보기 어렵다 한다.

충무김밥 역시 뱃사람 가까이에서 나온 음식이다. 해방 직후 머리에 이고 팔던 김밥이 빨리 상하자 밥만 따로 말고, 주꾸미 꼬지를 별도 대야에 담아 판 것이 시초라는 것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데, 이를 내 팔던 주 무대가 뱃머리였다.

   
 
  충무김밥./박민국 기자  

오늘날 강구안·서호시장 일대 충무김밥집은 저마다 간판에 '원조'를 내걸고 있다.

59년을 통영에서 보낸 김재수 씨 말이다.

"서로 원조라고 하는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 처음에 뱃사람한테 김밥 팔던 사람이 14~15명은 되는데, 그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을 차렸으니 다 원조인 셈이지."

새벽 뱃일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메뉴도 여럿 있다.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도 먹고 싶으니 우짜노'라는 우스꽝스러움이 담긴 통영우짜는 간단히 아침 한 끼 해치우는 수단으로 나쁘지 않다.

시락국집도 오전 장사다. 시락국은 무청 말린 시래기를 끓인 시래깃국 사투리다. 다른 지역에서는 멸치로 육수를 내는데, 이곳은 장어 뼈를 우려낸다. '점심 지나서도 장사하는 시락국집은 제대로 된 곳 아니다'라는 말은 곧 새벽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한다.

풍부한 수산자원 때문에 조금만 부지런하면 먹고산다는 통영이라지만, 넉넉하지 못한 이들이 없을 수 없다.

빼떼기죽은 여기서 기인한다. 주로 주산지인 욕지도 생고구마를 채로 썰어 말린 후 여기에 팥·강낭콩·조 같은 것을 넣어 끓인 것이 빼떼기죽이다. 지금이야 건강식으로도 찾는다 하지만, 양식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메뉴다.

우동은 먹고살기 어려울 때 주식으로 많이 먹어 '끌베이 우동'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짜장과 우동을 섞어 놓은 '통영우짜'./박민국 기자  

통영의 또 다른 별미인 꿀빵은 1960년대로 접어들던 시절, 달짝지근한 간식이 귀해 만들어진 일종의 도넛이다.

   
 
  통영꿀빵./박민국 기자  

그래도 풍부한 수산자원 덕에 화려한 별미가 계절별로 이곳 미각을 깨운다.

도다리쑥국과 함께 봄이 찾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6~9월 여름에는 하모(갯장어)회, 가을에는 전어회, 겨울에는 물메기탕이다.

이곳에서는 먹는 사람 한 명 한 명 입맛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집에서 소고깃국을 끓여도 양념장은 따로 해 식구들 각자 기호대로 먹는다고도 한다.

다시 '원조' 이야기로 되돌리면, 대표 음식이 많다 보니 이 단어를 쉽게 접하게 된다. 이들 식당 앞에 줄 선 장면은 흔하다. 하지만 여기 사람은 "우리는 원조집 안 찾는다. 맛있던 집도 돈 벌고 건물 짓고 나니 옛 맛이 안 난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아니나 다를까, 충무김밥집을 추천해 달라 하니 '원조' 글이 없는 한 집을 소개해 준다.

한 가지 덧붙이면 멍게비빔밥은 이곳 사람들보다는 외지인들이 좀 더 유난을 떠는 쪽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멍게./박민국 기자

 

통영 가면 맛 봐야할 음식과 대표 식당

◎통영우짜

〈할매우짜〉 메뉴 : 우짜·우동·짜장·빼떼기죽·깨죽·팥장국 4000원, 녹두죽·호박죽 4000원, 식혜 1000원/주소 : 통영시 서호동 177-423/전화 : 055-644-9867

〈항남우짜〉 메뉴 : 우짜·짜장·우동 4000원, 국수·쫄면 4500원/주소 : 통영시 항남동 239-20/전화: 055-646-6547

◎충무김밥

〈뚱보할매김밥〉 메뉴 : 충무김밥 1인분 4500원(2인분부터 포장)/주소 : 통영시 중앙동 129-3/전화 : 055-645-2619

〈한일김밥〉 메뉴 : 충무김밥 1인분 4500원/주소 : 통영시 항남동 79-15/전화 : 055-645-2647

◎시락국

〈원조시락국〉 메뉴 : 시락국밥 5000원/주소 : 통영시 서호동 177-408/전화 : 055-646-5973

   
 
  시락국  

◎꿀빵

〈통영원조꿀빵 강구안 1호점〉 메뉴 : 1호(6개) 6000원, 2호(10개)·오리지널(15개) 1만 원/주소 : 통영시 항남동 303/전화 : 055-646-1959

〈오미사꿀빵〉 메뉴 : 1팩(10개) 8000원/주소 : 통영시 봉평동 124-7/전화 : 055-646-3230

◎다찌

〈대추나무〉 메뉴 : 2인 기본 5만 원(소주·맥주 5병), 추가 소주 1병 1만 원·맥주 1병 6000원/주소 : 통영시 항남동 101-2/전화 : 055-641-3877

   
 
  다찌  

◎빼떼기죽

〈통영빼떼기죽〉 메뉴 : 빼떼기죽·호박죽·팥칼국수·파전 5000원/주소 : 통영시 항남동 1-67/전화 : 055-646-3443

◎멍게비빔밥

〈장방식당〉 메뉴 : 멍게비빔밥 1만 1000원, 성게비빔밥 1만 5000원, 매운탕 1만 원, 계절별 도다리쑥국 1만 1000원·메기탕 1만 원/주소 : 통영시 봉평동 4-6/전화 : 055-641-4753

   
 
  멍게비빔밥  

◎봄 도다리쑥국·겨울 물메기탕

〈분소식당〉 메뉴 : (봄) 도다리쑥국·(겨울) 메기탕 1만 2000원, 복국 1만 원, 복매운탕·생선매운탕 1만 2000원/주소 : 통영시 서호동 177-337/전화 : 055-644-0495

〈한산섬식당〉 메뉴 : (봄) 도다리쑥국·(겨울) 메기탕 1만 원, 뽈락매운탕·쏨뱅이매운탕·쥐고기매운탕 1만 원, 대구탕 1만 5000원/주소 : 통영시 정량동 1374-10/전화 : 055-642-8021

◎여름 하모회

〈영성횟집〉 메뉴: 하모회 대 7만 원·중 6만 원·소 5만 원, 물회·회덮밥·매운탕 1만 원/주소 : 통영시 동호동 156/전화 : 055-643-7956

   
 
  하모회  

◎굴요리

〈영빈관〉 메뉴 : 굴밥·굴전 1만 원, 굴국 7000원, 해물뚝배기 9000원, 해물전골(3~4인) 4만 원/주소 : 통영시 도남동 198-17/전화 : 055-646-8028

 

진짜 통영 꿀빵으로 가짜 꿀빵을 응징하다

통영은 풍부한 해산물로 먹거리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러면서도 재밌는 음식도 많은데요, 우동과 짜장을 섞은 '우짜'와 더불어 '꿀빵'이 유명합니다.

꿀빵은 도넛에 꿀을 입혀놓은 듯한 모양새인데요, 생김새와는 달리 그렇게 달지는 않습니다. 다만, 매우 끈적끈적해서 맨손으로 먹다가는 자칫 낭패를 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곳에서 꿀빵은 천안 호두과자만큼 유명하고 흔합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꿀빵을 파는 매장을 많이 만날 수도 있는데요. 저마다 '원조'를 내세우기는 합니다.

   
 
  '원조 꿀빵' 가게임을 열심히 주장하는 아주머니입니다. 그래도 이 집은 원조라고 내세울 수 있는 근거가 있는 집입니다. /박민국 기자  

'경남의 재발견' 취재를 하면서 취재팀과 함께 약속한 게 있는데요. 웬만하면 '원조'에 현혹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원조'가 너무 많을 뿐더러, 거기에 얽매이다 보면 그 음식이 지닌 맛이나 가게 분위기 같은 사실상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도 꿀빵을 산 곳은 역시 '원조'를 내세우는 가게였습니다.

   
 
  진짜 '통영 꿀빵'입니다. 가짜 꿀빵 사진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박민국 기자  

통영 꿀빵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요. 제가 취재를 마치고 집에 가니 마침 아내가 손님이 사왔다는 '통영 꿀빵'을 남았다며 내놓더라고요. 불과 몇 시간 전에 '원조'를 취재하고 온 저에게 말입니다.

짐짓 모른 체 하고 한 번 보자고 했습니다. 아뿔사! 척 보기에 빛깔부터 아니었습니다. 진짜 꿀빵은 가짜(?) 꿀빵과 견주면 밝다 못해 화사한 연 갈색에 꿀 빛깔이 번쩍번쩍 거리는데, 아내가 내놓은 꿀빵은 아주 짙은 갈색이었습니다. 흔히 보는 도넛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비장하게 진짜 꿀빵을 선보였습니다. 아내도 척 보더니 '원조는 다르네'라고 하더군요. 맛도 괜찮았나 봅니다. 훨씬 달지 않고 먹을 만 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진짜 꿀빵이 가짜 꿀빵을 제대로 한 방 먹인 셈이지요.

   
 
  손이 끈적거리지 않도록 꿀빵을 비닐로 감싸서 먹습니다. 손가락에 끼울 만한 크기인 비닐은 꿀빵 가게에서 포장할 때 함께 줍니다. /박민국 기자

 

해산물의 성찬 통영 다찌를 아시나요?

경남의 재발견 통영 취재는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먹을거리, 특히 다찌집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술을 멀리하지 않으며 마산 통술집도 종종 드나든 저로서는 다찌문화가 궁금했습니다.

통영시청 관광과 분들에게 어느 집이 괜찮은지 물어봤지만 "특정 집만 말하기는 그렇고, 다 괜찮습니다"라는 답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공무원, 특히 관광과 소속이라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만, 오래된 다찌집 한 곳에 대해서는 언급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있었다는 항남동 '대추나무'라는 곳이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발걸음을 강구안 부근 골목으로 옮기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홀에 테이블이 세 개 있었고, 방에도 서너 팀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강구안 부근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대추나무 다찌집. 30년 가까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박민국 기자  

선술집 형태에서 비롯된 다찌는 과거 술 양에 따라 1차·2차·3차 안주가 나왔는데, 이제는 대부분 기본 한 상 개념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4명이 함께 갔는데 기본 1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술은 소주·맥주 종류 상관없이 10병이었고, 추가하면 소주 1만 원·맥주 6000원이었습니다. 술 10병은 얼음 양동이에 담겨 나왔습니다.

안주도 하나둘 나오길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본 주인아주머니는 그리 반기지 않았습니다. 안주는 그날그날 달라진다는 게 큰 이유였습니다.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그걸 보고 온 사람들이 "사진과 왜 다르냐"는 항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은 통영다찌의 중심입니다. /박민국 기자  


   
 
  조개 크기만으로 풍만감을 느끼게 하는 칼칼한 조개탕. /박민국 기자  


   
 
  바다에서 나는 안주 20여 가지가 줄줄이 나오는 통영 다찌. /박민국 기자  

이날은 삶은 오징어·게다리찜·꼬막·새우·소라·멍게·해삼·미더덕·피조개·가재·게다리찜·숭어회·우럭회·볼락구이·성게알·조개탕 같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안주 하나하나 싱싱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산통술과 달리 육고기는 상에 오르지 않고, 바다에서 나는 것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마산통술·진주실비를 경험해 봤다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영 물가가 비교적 비싼 편이라는 말도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포만감은 당연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말벗 역할까지 해주어 유쾌한 기억으로 자리하게 됐습니다.

   
 
  술은 얼음 양동이에 나옵니다. /박민국 기자  

   
 
  통영 다찌는 2인 기본이 5만 원입니다. 가격 면에서는 어느 정도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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