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韓國 漢詩와 道敎

醉月 2008. 7. 20. 09:47

저자 :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Ⅰ. 머리말


본고는 한국 한시에 나타난 도교적 제반양상을 검토하여, 한국문학사에서 도교가 지니는 의미의 질량을 헤아려 보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성과를 간략히 추려본 후, 도교 주제의 한시를 몇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 정신사 및 문화사에서 도교가 지니는 의미는 흔히 간과되어 왔다. 일찍이 최치원이 〈鸞郞碑序〉에서 ‘國有玄竗之道’를 ‘三敎合一之道’로 말한 것이나,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황홀한 선계 형상 및 얼마 전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능산리 봉래산 용봉향로에 아로새겨진 도교적 상징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도교는 우리 문화의 앞선 시기부터 낯설지 않게 우리 삶의 일부로 체화되어 있었다.

문학에 있어서도 도교의 형상은 다채롭게 나타난다. 시대를 떠나 사대부의 한시 속에서 도교적 흥취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고전소설은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도교의 공간 관념이나 그밖에 여러 도교 모티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1) 배경사상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던 〈九雲夢〉의 ‘九雲’만 하더라도 초기 도교 경전인 《雲笈七籤》에는 ‘九色之雲, 神仙所居之所’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렇듯 선인들의 삶에 있어 도교는 삶의 현장과 결코 유리됨 없이 중요한 삶의 일부로 존재해 왔다. 흔히 조선조가 성리학 일변의 유교 국가였음을 들어, 문학에 있어 제반 도교요소의 침투를 단지 문학적 관습으로 축소하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문학 속의 도교 제재는 확고한 종교적 신념과는 구분된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히 문학적 관습으로 치부하여 버릴 수는 없다고 본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삶이 과학과 물질문명만으로 단순하게 납득될 수 없듯이, 선인들의 삶의 지향 또한 유교의 잣대로만 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조선시대 지식인이 그 가치지향을 유교에 바탕하고 있다함은 마치도 오늘의 우리가 민주주의의 교양을 상식으로 삼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Ⅱ. 한국 한시의 도교적 제 양상


한국 한시에서 도교와 관련된 영역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본 발표에서는 遊仙詩․玄言詩․仙趣詩․煉丹詩․儀俗詩로 나누어 검토하기로 한다. 遊仙詩는 신선전설을 제재로 仙界遨遊나 鍊丹服藥을 통해 불로장생의 염원을 노래하거나, 혹은 離塵去俗하는 선계의 노님을 통해 현실의 갈등과 질곡을 서정 극복하려 한 시를 말한다. 이들 시에는 황홀한 신선세계의 묘사를 통해 강렬한 求仙의 興趣를 노래하거나, 현실 삶의 굴레를 벗어나 인생의 번뇌를 훌훌 털어버리는 자유와 초월을 노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玄言詩는 노장의 철리를 천술하거나 天問類의 천도를 탐색하는 내용, 莊子 逍遙遊의 정취를 추구하고 있는 시를 포괄한다. 仙趣詩는 隱士를 歌頌하며 은일사상을 고취하거나, 醉樂을 즐기며 산수간을 노니는 선적 흥취를 노래한 시를 말한다. 煉丹詩는 내단 수련과 관련된 도사의 鍊功歌訣類의 시를 뜻하며 넓게는 양생 주제의 시를 포괄한다. 조선중기 이래 수련도교의 성행은 이러한 煉丹詩를 탄생시켰다. 儀俗詩는 도교 齋醮儀禮의 묘사나 守庚申과 같은 信仰習俗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시이다.

세분화한 틀로는 더 많은 갈래로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이 가운데 遊仙詩와 仙趣詩에 대해서는 연구가 비교적 상당히 진척되었고, 玄言詩나 煉丹詩 및 儀俗詩는 별반 성과가 보고된 바 없다. 더욱이 지금까지 도교와 관련한 한시 방면의 연구는 주로 작가론의 측면에서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개별 작가의 도교 취향에 관한 연구는 성과가 일정수준 집적되었으나, 통시적 전망을 수립하기에는 아직 미진한 실정에 놓여 있다. 본 발표는 기존 연구성과를 나열하는 대신, 세분화된 갈래 속에 드러나는 도교의 수용양태를 검증코자 한다.


1. 遊仙詩

 

遊仙詩에 관해서는 그간 발표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작업을 계속해 왔다.2) 遊仙詩는 고려 때부터 제가의 문집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나 대부분 仙趣詩에 더 가까웠고, 조선초기 이래 중기에 이르러 매우 활발히 창작되었다. 金時習의 〈凌虛詞〉 5수를 비롯하여, 李達의 〈步虛詞〉 8수, 李睟光의 〈遊仙詞〉 20여수, 許筠의 〈上淸辭〉 18수, 鄭斗卿의 〈遊仙詞〉 11수, 金正喜의 〈小遊仙詞〉 13수 등은 유선시의 창작이 어느 특정 개인의 한때의 好奇 취미에 기인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주며, 특히 許蘭雪軒의 〈遊仙詞〉 87수 및 이를 차운한 張經世의 〈遊仙詞〉 87수, 李春英의 〈讀神仙傳〉 53수, 任錪의 〈讀漢武帝故事〉 4수나, 申欽의 〈讀山海經〉 13수 등의 연작들은 이들 유선시의 창작이 단순한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도교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신선전설에 대한 폭넓은 독서와 선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준다.


옥구슬 꽃 바람 타고 청조가 날자  瓊花風軟飛靑鳥

서왕모 기린수레 봉래도 향해 가네.  王母麟車向蓬島

목란 깃발 꽃술 배자 흰 봉황 수레타고   蘭旌蘂帔白鳳駕

난간에 웃고 기대 요초를 줍는구나.  笑倚紅欄拾瑤草

푸른 무지개 치마 바람이 헤집으니  天風吹擘翠霓裳

옥고리 경패 소리 댕그렁 댕그렁.   玉環瓊佩聲丁當

선녀들 짝을 지어 거문고 연주하자  素娥兩兩鼓瑤瑟

삼화주 나무에는 봄 구름 향기롭다.   三花珠樹春雲香

동 트자 부용각서 잔치를 파하고서  平明宴罷芙蓉閣

청동은 푸른 바다 백학타고 건너가네.  碧海靑童乘白鶴

피리소리 사무쳐서 오색 노을 날려가고    紫簫吹徹彩霞飛

이슬 젖은 은하수엔 새벽별이 지는구나.  露濕銀河曉星落


허난설헌(1563-1589)의 〈望仙謠〉이다.3) 굳이 瓊花·蘭旌·蘂帔·紅欄·翠霓裳·玉環·瓊佩·瑤瑟·珠樹·紫簫 등을 거론치 않더라도 선계는 불변과 영원을 상징하는 玉 모티프와 신성과 고결을 나타내는 색채 이미지로 가득 차 있고, 그밖의 소품들도 화려와 사치가 인간의 상상력을 다하고 있다. 靑鳥를 길잡이 삼아 西王母는 화려한 치장으로 백봉황이 끄는 수레를 올라 탔다. 바람은 건듯불어 그녀의 푸른 무지개 치마를 헤집는다. 그 서슬에 팔찌며 패옥이며 서로 부딪쳐 쟁그랑 쟁그랑 해맑은 음향을 낸다. 선녀들이 짝을 지어 거문고를 연주하면, 삼화주 나무는 향기도 그윽하게 구름에 잠겨 있다. 밤새 즐겁던 잔치는 먼동이 트면서 끝이 난다. 날이 새기 전에 그녀는 천상의 선계로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엔 백학을 탄 청동들이 푸른 바다 위로 앞장 서 날아가고, 그네들이 부는 피리 소리는 허공에 사무쳐 오색 노을도 덩달아 나부낀다. 이때쯤 이슬에 젖은 은하수엔 새벽별이 져서 인간의 세상은 광명한 아침을 맞이한다.  


만리라 푸른 바다 깊기도 한데   滄海深萬里

바람 파도 눈 물결 가이 없구나.   風濤雪浪無涯涘

赤城은 겹겹으로 둘러싸 있고   赤城繞幾重

노을 빛 안개 그림자 허공에 가물대네.  霞光霧影空瞳矓

금모래 휘황하게 玉地를 덮어 있고  金沙照爛被玉地

瑤花 떨기 琪樹 위서 밤에도 밝다.  琪樹夜明瑤花叢

굽어보면 허무하여 八極을 곁에 두고   下俯虛無旁八極

위로는 玉京과 은하수로 통해있네.  上與玉京銀河通

천년된 蟠桃에다 三秀의 靈芝는    千歲之桃三秀芝

무성히 잘 익어 뜨락에 늘어섰네.   羅榮騈熟排軒墀

아홉겹의 靈禽과 금색 獅子가   九苞靈禽金色獅

닭인 듯 개인양 울며 짖는다.    爲鷄爲犬鳴吠之

구슬 궁전 푸른 허공 기대어 있고  珠宮倚虛碧

은 궁궐은 노을 아래 번쩍이누나.   銀闕耀霞脚

검은 우물 붉은 샘엔 이무기와 용이 서려있고 玄井紫泉蛟螭蜿蟠

공작 비취 깃을 털며 처마 끝서 울며 난다. 孔翠刷翮飛鳴簷角

밝은 별빛 玉女들은 아래에 늘어섰고  明星玉女充下陳

뜬 해와 솟는 달이 그 가운데 지나가네.  日浮月湧經柍桭

구름 창 수놓은 문 어두움을 젖히니  雲窗繡闥啓窅冥

신선들 낯빛이 복사꽃인양 환하구나.  列眞顔色桃花明

眞訣 秘笈 읊조리니 옥소리 같더니만  哦眞吐秘爭戛玉

껄껄껄껄 웃으니 우레 번개 울리는 듯.  笑啞啞兮雷電激

무지개 옷을 입고 무지개 빛 허리차고  霓之衣兮帶虹光

羽盖가 몰려들어 서로 모여 기뻐하네.  集羽盖兮欣相악

바람은 펄럭이며 수레 굴대 붙들고    風樅樅兮扶轄

안개도 자옥하다 수레 덮개 이어있네.  霧霏霏兮承幭

얼룩무늬 기린이 고삐당겨 높이 날자  班麟控高驤

五彩의 학도 따라 서서히 비상한다.  彩鶴仍徐翔

龍虎를 꾸짖어 날뜀을 경계하고   呵龍叱虎戒飛躍

白鵬을 길들여 타고 푸른 바다 소요하네.  馴騎白鵬擾靑鯨

해뜨는 暘谷에서 赤烏를 맞이하고  邀赤烏於暘谷

해지는 若英에선 寒兎를 전송하네.  送寒兎於若英

정신을 모아 보고 넋으로 교감하나  余精矚而魂交

선선들 손짓하며 기뻐하지 않는구나.  衆仙目以不謔

玉童을 돌아보며 좋게 말을 돌리어서  顧玉童而委辭

신신당부 가르치며 밝게 신칙하네.  詔申申其明飭

빠른 길을 지름길로 삼지 말라 하며  母捷逕以徑造兮

내가 신선이요 속인이 아니라네.   我乃仙而非俗

玉童은 말 마치자 급한 일이 있다는데  童辭訖而稱遽

홀연히 정신이 들며 잠에서 깨어났지.  惕神寤而形覺

그 소리 그 그림자 모두다 아득해라  尋聲索影却無端

이 내몸 여태도 티끌 세상 있는 것을.  此身猶在塵埃間

오고 감에 정신만을 기다리지 않으리라  不須來往只精神

훗날 큰 약으로 金丹을 이루게 되면  他時大藥成金丹

가벼히 날아 올라 仙府로 들어가리.  輕擧入仙府

신선과 나 사이엔 내남이 없거니   仙乎我乎無賓主

신선술을 배워서 신선의 벗이 되리.  學仙之術爲仙朋

신선들과 무리지어 나란히 날아 오르면  與仙作隊同飛昇

신선의 즐거움을 가눌 길이 있으랴.  爲仙之樂不可勝


趙緯韓(1558-1649)의 〈夢仙謠〉이다.4) 전 49구의 장편 7언고시이다. 푸른 바다 아득한 저편 거센 파도 출렁이는 그 끝에 赤城이 솟아 있고, 玉地엔 金沙가, 琪樹엔 瑤花가 찬연하다. 아래는 허무하여 아무 것도 없고, 위로는 백옥경과 은하수에 통해 있다. 珠宮銀闕에는 千年蟠桃와 三秀靈芝, 九苞靈禽과 金色獅子가 늘어서 있고, 玄井紫泉엔 蛟龍이 잠겨 있고, 簷角에선 孔雀翡翠가 고운 깃을 푸득인다. 그 가운데 玉女와 列眞이 늘어서서 眞訣과 秘笈을 읊조린다. 동해 무지개 실을 자아 만든 霓衣에는 虹光의 띠를 둘렀고, 班麟彩鶴은 제멋에 겨워 날고, 白鵬을 올라타고 暘谷과 若英을 지나며 마음껏 노닌다. 그런데 왠일인지 신선들은 반기잖코 玉童을 시켜 가르침을 내리므로 그 말을 듣다가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아아 仙界는 꿈을 빌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일까? 金丹을 이루어 羽化登仙하여 步虛凌空 훨훨 날아 仙府를 찾아가서 꿈에 본 신선들과 만나 함께 노닐 수만 있다면 그 즐거움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대개 이 작품은 《史記》에서 적고 있는 三神山의 형상에 바탕을 두어 仙界의 壯麗한 모습을 휘황하게 묘사한 뒤, 仙緣을 확인한 후 각몽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유선시의 기본 결구를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이러한 낭만적 상상력은 단순히 수사적 재능의 과시를 넘어서는 감염력을 발휘한다. 


2. 玄言詩


현언시는 노장의 철리를 천술하거나, 不公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 소요유의 경계를 추구하며 천도를 탐색하고 있는 시들을 포괄한다. 玄言詩는 棄塵絶俗하고 不慕榮利하며, 淸心寡慾을 마음에 새겨 返樸歸眞함으로써 정신의 자유와 초월을 추구한다. 때로 현언시는 安貧樂道 存性體道를 종지로 하는 유가의 도학시나, 일체사물에 체현된 禪趣를 감수하는 불가의 禪機詩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도 한다.  


원컨대 이욕의 문 굳게 닫아서   願言扃利門

물려받은 그 몸을 손상치 말라.   不使損遺體

어이해 진주 캐는 저사람들은   爭奈探珠者

목숨을 가벼히 해 바다밑에 드는가.  輕生入海底

몸이 영화로우면 티끌에 쉬 물들고  身榮塵易染

마음이 교만하면 허물 씻기 어렵도다.    心○垢難洗(1字缺)

담박함을 그 누구와 의논해보나   澹泊與誰論

세상 사람 단술만을 좋아하는데.   世路嗜甘醴


崔致遠(857-?)의 〈寓興〉이다.5) 利慾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은 제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까짓 진주 하나 얻자고 깊은 바다 밑을 헤매인다. 설사 제 한몸의 영화를 얻는다 해도 그것은 몸을 망치는 빌미가 될 뿐이다. 5.6구의 ‘塵’과 ‘垢’의 대구는 《莊子》〈大宗師〉에서 至人의 삶을 설명하면서 “아득히 티끌(塵垢)의 밖을 떠돌며 無爲의 일에 소요한다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無爲之業”이라 한 대목에서 취해 왔다. 7구의 ‘澹泊’은 恬淡寡慾의 상태를 이름이니 《漢書》〈敍傳上〉에 “絶聖棄智, 修生保眞, 淸虛澹泊, 歸之自然”의 용례가 있고, 陶淵明은 〈閒情賦幷序〉에서 “放逸의 말 거두고 澹泊을 종지 삼아, 처음엔 생각을 격동시켰으나 나중에는 閑正으로 돌아왔다네. 檢逸辭而宗澹泊, 始則蕩以思慮, 而終歸閑正”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컨대 澹泊이란 욕망을 버려 부귀에 뜻두지 아니하는데서 얻어지는 맑고 깨끗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니, 道家에서 至人의 경계를 말할 때 항용 쓰는 술어이다. 澹泊의 경계를 더불어 논하려 해도 이욕의 단술 맛에 빠진 사람들은 거기서 제 몸을 다 망치도록 헤어나질 못하고 있어 홀로 안타깝다는 탄식이다.  


뜻있는 이 사업을 중히 여기고   志士惜事業

잗단 이 금구슬을 사랑한다네.   宵人戀珠金

두가지 다 경영할 겨를 없거늘     經營兩不暇

세월은 쏜살같이 달려가누나.   羲和走駸駸

거친 둔덕 온갖 풀은 시들어지고   荒壟癈百草

어리석고 어진 이들 한데 묻혔네.   賢愚同一沉

어떤가 날마다 술마시면서   何如且日飮

마음을 비워두고 배를 채움이.   實腹而虛心


崔惟淸(1095-1174)의 〈雜興〉의 제 6수이다.6) 돌아보면 덧없는 세월이었다. 사업을 성취코자 매진하는 志士의 삶을 일군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구슬과 금붙이에 연연하는 宵人의 길을 걷지도 않았다. 황량한 둔덕 위에 우거졌던 온갖 풀이 시들어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듯이, 경륜의 사업을 꿈꾸던 지사의 어짐도, 珠金에 얽매이던 宵人의 어리석음도 종당에는 한줌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명예를 꿈꾸는가? 이욕을 탐하는가?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다. 차라리 허망한 욕망과 집착을 훌훌 던져놓고 날마다 술로 배채우고, 그 대신 마음은 비워둠이 어떨까?

8구의 ‘實腹虛心’은 老子 《道德經》 제 3장에서 취하였다. 그 글에 일렀으되, “어짐을 숭상치 않아야 그 백성이 다투지 않게 되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않아야 백성이 도둑질 하지 않는다. 하고자 함을 드러내지 않아야 백성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하여,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하여, 아는 자가 감히 작위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를 행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7)고 하였다. 이른바 絶聖棄智의 無爲之化를 말한 대목이다.

志士가 자신의 사업으로 마음을 채우고 그 뜻을 다잡는 것이나, 小人이 욕망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나, 따지고 보면 다를 것이 하나 없다. 上善若水, 흐르는 물이 자신을 낮추고 버려 만물을 이롭게 하듯, 虛心實腹 즉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는 含哺鼓腹의 삶이야말로 至人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


내 장차 내 발을 씻으려 하나   吾將濯吾足

滄浪이 어찌 내 욕됨을 즐겨 받으랴.  滄浪豈肯受吾辱

내 장차 내 귀를 씻고자 해도   吾將洗吾耳

潁川이 어찌 내 잘못을 즐겨 감싸랴.  潁川豈肯帶吾累

내 발은 본래 절름발이라   吾足本跛躄

편히 앉아 나가잖으니 뉘라 비난하리오.  安坐不出誰削迹

내 귀는 본시 귀머거리라   吾耳本聾聵

나쁜 말 들리잖는데 뉘라 괴이타 하리.  惡言不至誰爲怪

無用의 쓰임이 큰 쓰임이거니   無用之用爲大用

이말 깊이 음미하며 하루 세 번 외운다.   深味斯言日三誦   


李達衷(?-1385)의 〈醉歌〉이다.8) 滄浪의 물에 발을 씻으라던 屈原 〈漁父詞〉의 漁父가 있고, 천하를 맡아달라는 堯임금의 말을 듣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하여 潁水에 달려가 귀를 씻었다는 許由가 있다. 또 그 말을 듣고 그 귀 씻은 물로 내 송아지에게 마시게 할 수 없다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던 巢父의 고집은 어떤가.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 塵網을 벗어나지 못하니 陸沈의 심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 발은 절름발이라 날랜 걸음을 뽐내기에 부족하고, 내 귀는 귀머거리니 귀씻을 무슨 말이 아예 들려올 까닭이 없다. 다만 저 莊子의 ‘無用之用’의 活訓을 좌우명 삼아 날마다 외워 그 경계를 그리워할 뿐이다.


아침에 책 잡으면 하루 해 저물도록  朝把陳篇至日斜

고금을 미뤄보니 많은 느낌 일어나네.  細推今古感偏多

明妃는 미색으로 靑塚에 묻혀 있고  明妃以色埋靑塚

屈原은 忠을 품어 멱라 물에 죽었구나.  屈子懷忠死汩羅

金谷엔 사람 없어 푸른 풀만 우거졌고  金谷無人空綠草

蒼梧의 무덤 가엔 갈까마귀 울음운다.  蒼梧有墓只啼鴉

賢愚貴賤 할 것 없이 모두 한데 돌아가니  賢愚貴賤同歸盡

그 어찌 평생토록 취치 아니 하리요.  其柰平生不醉何


狂眞子 洪裕孫(1431-1529)의 〈將進酒〉란 작품이다.9) 책을 펼쳐 古今의 治亂興衰의 자취 더듬으니 공연히 마음 속에선 생각만 자욱하다. 王昭君은 빼어난 미모 때문에 오랑캐의 첩이 되었고, 屈原은 忠을 지키느라 멱라수에 몸을 던져 고기밥이 되었다. 거부 石崇의 金谷의 장원도 덧없이 잡초 속에 파묻혀 있고, 舜임금 묻히신 蒼梧을 들판에는 저물녘 갈까마귀 울음소리 처량하다. 모든 것 덧없다. 인간 세상 조금 잘나고 못난 것이 무슨 상관이던가? 다만 두 손이 성하니 잔을 잡을 뿐이다.


3. 仙趣詩


仙境勝地를 찾은 나그네는 그윽한 神仙의 흥취에 젖게 마련이다. 그밖에 仙界에의 憧憬과 隱逸의 추구, 仙人을 그리워하거나 陶然한 醉樂의 정신을 노래한 시들을 모두 仙趣詩로 분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 題詠詩 중에는 이러한 仙趣를 노래한 것이 많다.10)


아득한 누각 기둥 구름이 피어나고  樓逈雲生棟

높은 산은 푸르러 옷자락에 방울 듣네.  山高翠滴裳

연꽃 바람 산들산들 맑은 향기 보내오니  荷風細細送淸香

이 바로 仙鄕에 든게로구나.   便是入仙鄕

잎 지매 가을 기운 짙음을 알고   木落知秋氣

달 밝아 밤 한기가 오싹하구나.   月明生夜凉

난간 기대 이따금 술잔 따르니   倚欄時復引壺觴

나와 세상 둘다 서로 까맣게 잊었네.  身世兩相忘


安魯生(고려말, 생몰미상)의 寧海 12詠 가운데 〈揖仙樓〉이다.11) 아득한 누각은 구름에 잠겨 있다. 그 뒤로 높은 산은 蒼翠한 이내(嵐)에 젖어 있어 거니는 나그네의 옷에 푸른 물이 들 것만 같다. 바람은 또 어쩌자고 연꽃의 향기를 실어 오는 것이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내음으로 맡아보는 흥취가 흡사 遺世獨立의 신선인양 도저하여 가눌 길 없다. 잎이 지니 가을임을 알겠고, 밝은 달빛에 밤 공기는 더더욱 싸늘하다. 揖仙樓, 신선이 반갑다고 절하는 누각에 기댄 나그네는 한기를 몰아내려 자꾸만 술잔을 기울인다. 거나한 풍류에 나도 세상도 서로 잊고 말았다. 그저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섯 자라 사선봉을 머리 위에 이었는데  六鼇頭戴四仙峯

바다 빛깔 해맑아 道의 기운 자욱하다.  海色澄明道氣濃

먼 하늘 쏘아보니 만경 파도 넘실대고  眼穿長空波萬頃

흥겨워 앞산 드니 구름은 몇 겹인고.  興入前山雲幾重

노을 타고 올라가 太淸에서 노니는 듯  已似登霞遊太淸

바람을 올라타고 赤松子를 따르는 듯.  更欲御風追赤松

검은 학 쌍쌍이 같이 날며 울음 울고  玄鶴雙雙互飛鳴

흰 갈매기 짝을 지어 나를 맞이 하는구나.  白鷗兩兩相迎逢

외론 뗏목 띄워놓고 어디러로 간단말고  孤槎橫泛眇何向

孔夫子 가고 없어 따를 곳이 없노매라.  夫子旣沒嗟莫從

푸른 바다 가없는 물 기울여 쏟아내어  倒瀉滄溟無盡水

십년 묵은 티끌 자취 단번에 씻어내리.  一洗十載風塵蹤


趙昱(1498-1557)의 〈遊四仙峯次通川東軒板上韻〉12)이란 작품이다. 익숙한 신선 고사로 시상을 열었다. 파도에 출렁이는 사선봉은 마치 전설 속의 여섯 자라가 그 아래서 머리로 봉우리를 떠받쳐 파도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만 같다. 동해의 쪽빛 물결은 안개에 잠겨 있어, 이를 자욱한 ‘道氣’에 견주었다. 만경창파를 눈 앞에 두고 자욱한 山雲 속을 노니노라니 이몸이 마치 하늘로 둥실 올라 太淸을 노니는 듯, 옛 신선 赤松子를 따라 바람 타고 오르는 듯 하다고 했다. 나라에 도가 없으매 뗏목을 타고 떠나겠다던 孔子도 가고 없는 지금, 나는 이 바닷가에서 갈 곳을 몰라 이렇게 서성이고 있다. 그러나 玄鶴과 白鷗가 반겨주는 이 동해 바닷가에서 저 푸른 동해 물결에 지난 십년간 風塵 세상의 자취를 말끔히 씻어 내어, 물씬한 仙趣 속에 거듭남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긴 끈을 잡고서 나는 해를 묶으려고  長繩欲縶白日飛

큰 돌을 들어다가 푸른 하늘 기우고자.  大石擬補靑天空

미친 꾀 그른 생각 허망함에 빠져서  狂圖謬算坐濩落

반평생이 덧없구나 늙은이가 되었네.  半世倏忽成老翁

어찌 나의 혼돈주를 거나히 마시면서  豈如飮我混沌酒

唐虞와 마주 앉아 담소함만 같으리오.  坐對唐虞談笑中

混沌에도 道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混沌有道人未識

이 법은 저 멀리 浮邱公에게서 나왔다네.  此法遠自浮邱公

伯夷·柳下惠 아니면서 그 天眞을 보전하니  不夷不惠全其天

聖人賢人 아니어라 같은 구석 없도다.  非聖非賢將無同

누룩을 불러다가 동이 밑에 넣어두니  招呼麴君囚甕底

밤낮으로 숨소리가 꾸룩꾸룩 들리더니,  日夜噫氣聲蓬蓬

이윽고 봄 강물이 비를 띠고 흐르듯이  俄傾春流帶雨渾

빚은 술의 예로운 빛 맑고도 진하구나.  醞釀古色淸而濃

큰 바가지에 따라서 浮邱公께 절을 하니  酌以巨匏揖浮邱

만고에 막힌 가슴 적시어 내리누나.  澆下萬古崔嵬胸

한 번 마시면 신령이 통하여서   一飮通神靈

어슴프레 마치도 우주가 개벽하듯.  宇宙欲闢如蒙矓

두 번 마시면 자연과 하나되어   再飮合自然

鴻濛의 땅 뛰어넘어 혼돈을 빚는다네.  陶鑄混沌超鴻濛

손으로는 혼돈 세상 어루만지며   手撫混沌世

귀로는 혼돈 바람 소릴 듣노라.   耳聽混沌風

드넓은 술나라는 내가 바로 주인인데  醉鄕廣大我乃主

하늘 내린 벼슬이니 사람 봉함 아니로다.  此爵天爵非人封

구구하다 머리 위 건을 어찌 쓰겠는가  何用區區頭上巾

陶淵明 그 또한 못난 사람이었구나.  淵明亦是支離人


조선 전기의 道流 鄭希良(1469-?)의 〈混沌酒歌〉이다.13) 詩序를 보면 混沌酒란 거르지도 짜지도 않고 찌꺼기 째 그대로 마시는 술을 이름한 것이다. 노끈으로 白日을 묶고, 큰 돌로 하늘에 난 구멍을 메우려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이 ‘狂圖謬算’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깨닫고 보니 남은 것은 머리 허연 늙은이 뿐이다. 그렇게 해서 얻어질 唐虞時節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唐虞의 그때가 다시 올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混沌酒에 흠뻑 취해 混沌鴻濛의 未判의 세상으로 달려가면 어떨까? 저 浮邱公의 白日飛昇을 본받아 답답한 가슴을 混沌酒로 적신다면 우주가 개벽하듯 신령이 소통하고, 鴻濛을 뛰어넘어 자연과 하나 된다. 醉鄕은 가이 없고 주인이 따로 없으니, 混沌한 세상에서 混沌의 바람을 들으며 混沌酒를 마실 일이다. 이왕에 취하자고 마시는 술, 머리의 두건을 벗어 술을 거르던 陶淵明은 졸장부가 아니었더냐. 醉樂의 흥취 위에 얹혀진 仙趣가 물씬하다.


4. 煉丹詩


《道藏》에 수록된 도교 경전 가운데는 내단 수련의 과정이나 단계를 歌訣의 형식을 빌어 정리한 것이 많다. 《龍虎還丹訣頌》에는 7언시 64수가 실려 있고, 《金液大丹詩》에는 5언율시 80여 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주된 내용은 내단수련의 원리와 功法에 대한 설명이다. 이밖에 《還丹金液歌》나 《還丹歌訣》등은 모두 시의 형식을 빌어 내단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예에 속한다. 이런 시들을 본 발표에서는 煉丹詩로 규정한다.14) 煉丹詩는 넓게는 養生 주제의 養生詩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먼저 李仁老(1152-1220)의 〈早起梳頭效東坡〉란 작품을 살펴보자.15)


가물대는 등불은 등잔받침 닿아 있고  燈殘綴玉葩

드넓은 바다는 금까마귀 머금었다.  海闊涵金鴉

묵묵히 앉아서 오래 숨을 참고서   黙坐久閉息

단전을 손으로 슬슬 문지르네.   丹田手自摩

쇠한 터럭 쑥대인 양 어지러운데   衰鬢千絲亂

해묵은 빗 초생달이 빗긴 듯 하다.  舊梳新月斜

손길 따라 소록소록 떨어지나니   逐手落霏霏

가벼운 바람이 눈을 쓸어가는 듯.   輕風掃雪華

황금은 단련하면 더욱 정해지듯이  如金鍊益精

백번을 거듭해도 많다할 수 없다네.  百鍊未爲多

어찌 다만 이내 몸 상쾌할 뿐이랴  豈唯身得快

목숨 또한 가없이 늘여 준단다.    亦使壽無涯

늙은 닭은 거름 흙서 목욕을 하고  老鷄浴糞土

지친 말은 바람 모래 발을 구른다.  倦馬전風沙

이또한 능히 스스로를 기름임을   此亦能自養

나는 소동파에게서 이 말을 들었노라.  聞之自東坡


1.2구는 먼동이 트기 직전, 純陽之氣가 충일한 상태를 이름이다. 해뜨는 곳을 향해 고요히 사려 앉은 시인은 閉息의 行功에 들어간다. 閉息이란 글자 그대로 숨을 참는 것이니, ‘內不出, 外不入’의 상태로 호흡을 조절하여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胎息 수련이다. 4구에서 이른바 단전을 문지른다 함은 道家 수련체조의 일종인 十二段錦 가운데 제 8 ‘擦丹田’에 해당하는 것으로, 왼손으로 腎을 밀면서 오른손으로는 단전을 36번 마찰하고, 다시 손을 바꾸어 교대로 시행하는 법이다.16) 그다음으로는 櫛髮梳頭이다. 하도 빗어 낡고 닳아 초생달 같이 잘룩해진 빗으로 빗질을 한다. 道家에서는 머리털을 血의 나머지로 보아, 빗질을 많이 하면 막힌 혈맥을 통하게하여 눈을 맑게 하고 風을 없앤다고 보았다. 한 번에 적어도 120회의 빗질을 한다.17) 이하 6구는 櫛髮의 공능에 대한 설명이다.  13구에서 16구까지는 蘇東坡의 〈次韻子由浴罷〉시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다.18) 東坡의 시는 늙은 닭과 지친 말이 자신의 양생을 위해 제각금의 방법을 쓰듯 자신은 理髮과 閉息으로 양생의 묘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제목만으로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빗다가 두서 없이 일어난 느낌을 노래한 듯 하지만, 따져보면 이렇듯 양생의 차서와 단계가 엄연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본격적인 煉丹詩의 창작은 수련도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조선 전기 이후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작가에 龍門 趙昱(1498-1557)과 靑霞子 權克中(1585-1659)이 있다. 趙昱은 그의 〈用前韻贈溢之十五首〉에서 鍊丹의 과정을 정심하고 해박한 이론에 바탕을 두고 노래하였고, 이밖에 〈次尹溢之韻八首以見鄙懷聊發一笑〉 8수나, 〈養叔聞余遊楓嶽寄五絶次韻〉 5수 외 여러 작품에서 仙趣 짙은 도가적 사유세계를 펼쳐 보인 바 있다.19)

權克中은 해동 丹家文字의 집대성이라 할 《參同契註解》를 저술한 內丹家이다. 그의 문집 《靑霞集》에는 〈無題〉2수의 유선시와 〈三神山歌〉〈頭流山歌〉와 같은 仙趣詩, 그밖에 네 가지 약초의 효험을 노래한 〈四聖草吟〉 4수 등 도교적 체취가 짙은 작품이 다수 실려 있다. 이밖에 특이하게 내단 수련의 과정을 노래한 연작시 〈金丹吟〉 20수와, 《參同契》의 爐火 개념을 부연하여 鼎器·藥物·火候에 관해 설명한 〈金丹三事〉 3수, 內丹의 세 단계를 설명한 〈丹法三關〉 3수를 남겨, 煉丹詩에 있어 단연 독보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金丹吟〉에는 《道德經》과 《玄元訣》, 《參同契》등의 道書를 內丹學의 관점에서 이해하여 설명한 내용 뿐 아니라 內丹 수련의 과정과 단계를 친절한 비유로 풀이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아이 적엔 마치 純乾과 같아   童時如純乾

神氣가 완전하여 결함이 없다.   神氣完無缺

자라서 乾에서 离로 변하면   及長乾成离

陽氣를 얼마간 빼앗긴다네.   一分陽氣奪

점점 艮이나 坤이 되면은   漸漸艮而坤

純陰은 마침내 사라진다네.   純陰則死滅

易卦를 사람 몸에 맞춰 풀이한   易卦配人身

《參同契》는 진실로 妙訣이로다.   參同誠妙訣


위는 〈金丹吟〉제 5수이다. 어린아이는 純乾인지라 神氣가 온전하나, 점차 성장함에 따라 純乾하던 神氣는 离陰으로 변하여 純陽의 一氣를 흩게 된다. 마침내 艮과 坤으로 내려와 純陰의 기운이 사라지면 노쇠하여 죽는다. 後漢 魏伯陽은 《周易參同契》에서 《周易》의 卦象을 인체에 비유하여 內丹수련의 여러 단계를 밝힌 바 있다.

〈丹法三關〉은 모두 세 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수에는 ‘初關煉精人仙’·‘中關煉氣地仙’·‘上關煉神天仙’의 부제가 붙어 있다. 丹法을 이루는데는 통과해야 할 세 관문이 있는데, 그것은 煉精과 煉氣, 그리고 煉神의 단계이다. 煉精의 경지를 얻으면 이를 일러 人仙이라 하고, 煉氣의 단계는 地仙이라 하며, 마침내 精氣神 3寶를 하나로 투득하여 관통하는 煉神의 경계에 이르면 이를 天仙이라 하는 것이다. 이는 송나라 때 李道純이  《中和集》에서 말한 ‘三關說’을 채용하여 부연한 것이다.20) 다음 시는 이 가운데 中關의 경지를 나타낸 시이다.


첫단계 공부가 익숙해지면   初地工夫熟

中關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리라.    中關道路平

烏兎의 진액를 같게 나누어   等分烏兎液

文武의 火候로 함께 익힌다.   文武丙丁烹

黍米珠가 희미하게 드러나면은    黍米從微著

金丹은 대성을 고하게 되리.   金丹告大成

나는 이제 전날의 내가 아니니   我非前日我

萬化가 내 손안서 생겨나리라.    萬化手中生


3구의 烏兎는 金烏玉兎의 줄인 말이다. 日月을 가리키나 사람의 몸으로 치면 心腎이 된다. 內丹家는 烏兎를 鉛汞의 별칭으로 말하니, 烏兎液은 바로 心液腎水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3.4구는 心水와 腎水를 순환하되, 文武의 火候로 조절하여 聖胎를 結養함을 뜻한다. 5구의 黍米는 金丹을 가리키는 도교 술어로, 음양의 기운인 鉛汞을 닦아 結胎가 이루어진 상태를 지칭한다. 《三極致命筌蹄》에 “一点成丹黍米珠”라 하였는데, 그 주에 이르기를, “한점이라는 것은 붉은 물의 검은 구슬인데, 크기가 기장쌀만하므로 한점이라 한 것이다. 丹을 이룸은 희미한데서 드러난다. 一点者赤水玄珠也, 大如黍米, 故曰一点; 成丹者, 從微而著也”라 하였다. 小周天의 경지를 넘어 丹田에 胎가 맺히는 中關 大周天의 경지를 얻고 나면 나는 이미 전날의 내가 아니며, 온갖 조화가 내 손 안에서 비롯됨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이다. 權克中의 煉丹詩를 꼼꼼히 분석해 보면, 그의 內丹書 섭렵의 범위가 대단히 광범위하고 정심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 儀俗詩


도교 교단이 공식적으로 성립되지 않았던 우리의 경우, 도교의 의례를 묘사하거나 齋醮의 절차 및 儀軌를 서술한 내용의 시는 그리 많지 않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차원에서 三敎鼎立에 바탕한 科儀道敎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福源宮 건립은 齋醮科儀를 중심으로 하는 科儀道敎의 성립을 가져왔고, 이밖에 도교 행사를 관장하던 기관으로 九曜堂·淨事色·星宿殿·太淸觀·昭格殿·燒錢色·淸溪拜星所 등등이 있었음을 문헌은 적고 있다.21) 《東文選》에 수록된 도교 齋醮時의 축문인 醮禮靑詞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22)


구름 개인 긴 하늘에 별빛이 차가운데  雲散長空星斗寒

瓊章을 읽고 나선 天壇에 예배하네.  瓊章讀罷禮天壇

옥황의 축복인듯 香霧도 자옥터니  玉皇降慶固香霧

金母가 내려올젠 채색 난새 타고 오네.  金母來時駕彩鸞

경쇠소리 울리건만 사람은 고요하고  寶磬有聲人寂寂

瑤臺도 깨끗해라 달님은 둥그렇다.  瑤臺無累月團團

삼청궁 제사 마쳐 겹문 모두 닫았어도   三淸醮畢門重鎖

푸른 등 殿 비추며 밤새도록 밝혀있네.  照殿靑燈徹夜闌


金時習(1435-1493)의 〈訪友於三淸宮適醮立冬〉이다.23) 三淸宮은 지금 三淸洞에 있던 도교의 祭醮를 관장하던 昭格署를 가리킨다. 제목으로 보아 三淸宮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때 마침 행해진 立冬醮를 보고는 느낌이 있어 지은 시이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밤하늘에 별빛이 차갑다 하여, 이날의 제사가 별자리를 향해 올리는 星宿醮였음을 암시했다. 흰옷에 검은 두건을 쓴 제관은 제물을 진설하고 향을 피우고는 축문을 낭낭히 읽은 뒤 하늘을 향해 百拜의 예를 올린다. 그러자 이에 감응하듯 香霧 농연하더니, 金母가 彩鸞을 타고 곧 강림할 것만 같았다는 것이다. 이어 머리엔 逍遙巾을 쓰고 文彩가 화려한 도복을 입은 道流들이 나와 寶磬을 24번 울리고, 道經을 소리 높혀 낭창한다. 그리고는 푸른 종이에 쓴 이른바 醮禮靑詞를 불에 태움으로써 齋醮의 모든 절차는 끝이 난다.24) 올려다보면 하늘엔 아무 일 없다는 듯 둥근달만 떠 있다. 이윽고 齋醮가 끝나고 모든 문은 굳게 잠기었다. 그러나 靑燈만이 밤을 새워 전각을 환히 비추고 있다. 아래 각주 13)의 인용과 견주어 보면, 金時習의 위 시가 실제로 昭格署에서 齋醮의 광경을 직접 목도하고 그 차례에 따라 서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齋醮儀禮는 昭格署가 공식적으로 혁파된 宣祖朝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했던 듯, 李達을 비롯한 三唐詩人의 문집에는 이에 관련된 시문이 다수 있다.


夜殿은 텅비었고 경쇠소리 적막해라   仙磬廖廖夜殿空

흰구름 속 뭇별들 멀리서 절을 하네.  衆星遙拜白雲中

잠시후 道士가 문을 닫아 건 뒤에  須臾道士關門後

上界의 바람 불어 한점 향기 나부끼네.  一點香飄上界風

                                

李達(1539-1618)의 〈遊三淸洞〉이다.25) 夜殿이 텅비었고 경쇠소리 들리지 않으니 齋醮의 절차가 모두 끝난 것이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뭇별들이 北斗를 향해 일제히 절을 한다. 이윽고 도사가 걸어나와 仙宮의 문을 굳게 닫아 걸자, 앞선 齋醮에 뒤미쳐 화답하듯 上界에서 일진의 바람이 불어와 殿 위에 태우던 향을 흩날리게 하더라는 것이다.26) 

그런가 하면 도교가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그 일부가 습속화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三尸信仰과 이를 바탕으로 한 守庚申의 습속이다. 三尸는 三彭 또는 三虫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의 몸 속에 있으면서 그 사람의 죄상을 낱낱히 기록하였다가 庚申日만 되면 사람이 잠든 틈을 타서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그 지은 죄를 낱낱히 고해 바쳐 수명을 감하게 한다는 영적 존재이다. 葛洪의 《抱朴子》에 이미 三尸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漢代의 讖緯思想이 神仙思想과 결합하여 司命과 司過의 개념이 道敎에 전입되면서 이런 관념이 생겨났다.27) 三尸의 기능과 성격에 대한 논의는 후대로 내려올수록 활발해져 道士의 수행에 있어 三尸의 박멸은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까지 되었다.28)

그런데 이 三尸란 벌레는 반드시 庚申日 밤에 사람이 잠든 뒤에야 사람의 몸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守庚申 즉 庚申日 밤을 아예 잠자지 않고 꼬박 세움으로써 三尸가 자신의 과실을 司過神에게 보고하는 것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고 믿는 守庚申 신앙이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守庚申 신앙은 민간에서뿐 아니라 왕실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高麗史》 권 26, 元宗 7년(1266) 4월 庚申日條를 보면, “태자가 安慶公을 맞아다가 연회를 열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새벽까지 밤을 새웠는데 그때 나라의 풍속에 道家의 말에 의하여 매년 이 날이 되면 반드시 모여서 밤새껏 술을 마시며 잠을 자지 않았다. 이것은 이른바 守庚申이란 것이다. 태자도 역시 당시의 풍속을 따라 그렇게 한 것인데 당시 여론이 이를 비난하였다”29)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후로도 《高麗史》 庚申日의 기사를 보면 왕이 三界醮齋를 지내거나 죄수를 석방하거나, 재상들과 더불어 주연을 베푸는 등의 관련 내용이 어김없이 실려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조에 들어서도 守庚申의 습속은 계속되었다. 《東閣雜記》에는 태조가 庚申日 밤에 鄭道傳을 비롯한 모든 공신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기사가 실려 있고30), 《王朝實錄》의 수다한 경신일 기사만 하더라도 守庚申 신앙이 당대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한시에도 이 守庚申과 관련된 시가 매우 많다.31) 한 예로 遁村 李集(1314-1387)의 〈念惜一首呈諸君子〉의 서두는 “지난해 山寺에서 庚申日 밤에, 정답게 마주 앉아 흐르는 세월 안타까워 했네. 去年山寺庚申夜, 團欒共惜歲月流”라 하였는데, 儒者들이 山寺에서 佛僧과 함께 앉아 道敎의 守庚申을 행하는 말 그대로 三敎合一의 현장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둘러앉아 庚申日을 지키니  兒曹環列守庚申

떡 과일 앞에 두고 웃고 떠들며 장난치네.  餠果前頭戱咲頻

곁에서 박수치며 즐거운 일 함께 하니  拍手傍觀同樂事

늙은이도 참으로 그 가운데 사람일세.  老翁眞是箇中人


陽谷 蘇世讓(1486-1562)의 〈庚申夜〉 4수 연작의 첫수이다.32) 위 시에서 보듯 守庚申은 나중에는 老少間에 어우러져 즐기는 同樂의 자리로 변하게 된다. 庚申日은 두 달에 한 번은 어김없이 찾아오니, 守庚申은 말하자면 벗들이 한자리에 모여 會飮하는 잔치의 구실로 되었던 것이다. 李睟光(1563-1628)은 또 〈庚申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33)


세모에 멀리 나그네 되니   歲暮遠爲客

하늘가 근심겨운 병든 몸일레.   天涯愁病身

흐르는 세월은 丙午年을 맞이하고  流年將丙午

庚申日 맞이하여 긴밤을 지새운다.  守夜又庚申

곧은 도리 평소에 사모했건만   直道居常慕

홀로 누워 외론 등불 벗을 삼는다.  孤燈臥獨親

三彭이야 까짓것 두려울 것 없도다  三彭何足怕

내 마음 일 저 하늘이 훤히 아시니.  心事在蒼旻

  

당시 그는 함경도 안변부사로 임지에 머물고 있었다. 타향에서 병든 몸으로 맞이하는 세모에 두서 없는 시름은 그만 잠을 앗아가고 말았다. 때 마침 庚申夜니 徹夜의 핑계로도 그만이 아닌가. 直道를 잃지 않으려 늘 마음 쏟았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軒冕의 명예 아닌 가물거리는 孤燈 뿐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굳이 자신의 不眠을 三彭이 두려워서는 아니라고 변명한다.



 Ⅲ. 한국 한시와 도교의 의미


한국 한시에 있어서 도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冒頭에서 한시의 작가가 시종 儒者였다는 사실이 도교적 문학 관습이 지닌 의미를 축소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실제 이들에게 儒敎와 道敎는 특별한 종교적 신심은 배제된 채 사유체계와 상상체계의 이면에서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상보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회적 존재로서 出處窮達에 연연치 않는 君子의 의연함을 사모한다지만, 막상 世事는 언제나 공정치 아니하고, 是非는 늘 顚倒되며, 正義는 不義 앞에 항상 좌절을 경험하게 마련이다. 현실의 부조리한 폭력 앞에서 인간은 믿어 의심치 않던 天道의 소재에 회의하며 초월을 꿈꾼다. 그 초월의 모식은 다양하다. 太淸上界 위에 황금의 궁궐을 세워 놓고 정신의 漫遊를 통해 步虛登空을 꿈꾸거나, 仙境勝地를 찾아가 仙界를 향한 채워지지 않는 열망을 노래하면서 어딘가 있을 桃源의 樂土를 꿈꾸고, 안개 속에 떠돈다는 옛 신선을 찾아 헤매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玄言의 哲理를 되새겨 상처 받은 왜소한 자아를 위로하고, 자기 모순의 해결 통로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러한 열망은 더 나아가 스스로 신선이 되고자 하는 內丹修鍊의 길로 자아를 부추겨 換骨奪胎의 金丹을 이루고자 하는 成仙에의 열망으로 승화되기도 하였다.

遊仙詩가 보여주는 것은 원초적 상징으로 가득찬 상상력의 세계이다. 푸른 하늘 저편 은하수 건너에 열 세 개의 하늘이 차례로 열리고, 그 끝 大羅天의 하늘 위에 우뚝 솟은 白玉의 樓臺와 황금 궁궐, 다층적 위계로 이루어진 신들의 세계, 영원과 불변, 지고와 순결을 상징하는 수많은 遊仙 제재들은 고대인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설사 그것이 실현불가능한 것일지라도 결코 허황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해서 꿈을 꾸는 행위가 배격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공포요 절망이 아닐까? 인간의 세상은 언제나 시비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사람은 병들고 늙고 죽으며, 부귀는 덧없고 빈천은 고통을 안겨다 줄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초월은 가능한가? 유선시는 중세인이 꿈꾸었던 자유와 초월에의 의지를 대변한다. 인간의 의식이 한계에 달할 때 무의식의 세계가 열린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잃어버린 꿈과 원초적 상징들이 건강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인간은 여기에서 소생의 원기를 얻는다.

玄言詩가 보여주는 哲理의 세계는 遊仙의 꿈과 어떻게 만나는가? 흔히 종교로서의 道敎를 철학으로서의 道家와 구분하곤 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 속에서 道敎와 道家는 변별없이 넘나든다. 저 老子의 道法自然과 莊子의 無用之用, 그리고 逍遙齊物하는 나비의 꿈은 生死憂樂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遊仙의 욕망과 본질의미에서 다를 것이 없다. 遊仙辭賦에서 西王母가 건네주는 千年蟠桃나 安期生의 대추를 먹고 換骨成仙하는 것이나, 광막한 仙界를 소요하는 도중에 眞人을 만나 生死의 妙訣 또는 至樂의 소재를 듣고 황연히 깨달아 迷妄을 깨치는 모식은 道敎와 道家의 그것이 하나로 통합되어 넘나드는 의미임을 일러준다. 西王母의 蟠桃나 安期生의 대추가 약물을 통해 成仙하겠다는 外丹的 발상이라면, 眞人의 妙訣은 마음의 迷妄을 깨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內丹的 사유의 흔적인 셈이다.

仙趣詩는 꿈의 흔적을 보여준다. 아무리 천상 선계로의 飛翔을 꿈꾼다 해도 인간은 언제나 지상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사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현실은 언제나 불만스럽고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陸沈의 심회를 간직한 채 내밀한 꿈꾸기는 계속된다. 仙趣詩에는 眞人의 소망을 품은 지상적 존재들이 지닌 仙界로 향한 뿌리깊은 동경과 선망, 실존을 구속하는 제도의 억압과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의 꿈이 아로새겨져 있다.

煉丹詩는 깨달음의 세계, 成仙에의 구체적 의지를 표현한다. 육신이 곧 鼎爐이고 마음이 바로 丹藥임을 깨달아 精氣神 三寶를 보전하여 聖胎를 交結하고, 욕망을 억제하여 雜想을 물리쳐 外物에 흔들림 없는 완전한 인격을 갖추려는 것이다. 이때 神仙은 먼 하늘 저편에 있지 않고,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에 있지도 않으며, 바로 내 자신이 神仙이 되어 앉은 자리에서 현세의 구속을 벗어던져 초월의 경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儀俗詩는 漢詩에서 道敎가 단순히 관념적 관습적 제재의 차용에 머물지 않고, 신앙의 차원에서 儀禮化되고 민간의 의식에까지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시사를 준다. 수많은 守庚申詩는 문인지식인층 뿐 아니라 당시 왕실에서 민간에까지 널리 퍼져 있던 민간신앙화된 도교의 잠재적 영향력을 가늠하는 한 척도가 된다.  

이렇듯 한시 속의 도교 제재는 매우 다양한 층위를 보여준다. 중세적 자아의 꿈꾸기로서 낭만적 상상력의 공급원이 되는가 하면,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현실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어기제로서의 역할도 담당한다. 이는 한마디로 초월과 자유를 향한 의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도교는 한국 한시, 나아가 한국 문학 전반에 걸쳐 상상력의 한 模式을 제공했고, 宇宙·死生·自然觀을 구성하는 사유체계와 상상체계 속의 중요 원리로 기능해왔다. 韓國 文化 속에서 道敎가 지닌 바 의미를 살펴 따지는 일은 이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 수 없다.          



1) 그간 이루어진 문학과 도교 관련 연구성과로는, 專著에 李鍾殷의 《韓國詩歌上의 道敎思想 硏究》(보성문화사, 1978)와 李演載의 《高麗詩와 神仙思想의 理解》(아세아문화사, 1989), 崔三龍의 《韓國文學과 道敎思想》(새문사, 1990), 孫燦植의 《朝鮮朝 道家의 詩文學 硏究》(국학자료원, 1995), 朴三緖의 《韓國의 道敎思想과 文學敎育 硏究》(국학자료원, 1995) 등외에 몇 권을 더 들 수 있다. 이밖에 그간 집적된 도교관련 연구성과는 韓國道敎思想硏究會가 1987년 이래 매년 발간하여 총 10권으로 간행한 한국도교사상연구총서(아세아문화사 간)에 수록된 140여편의 논문을 통해 대체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詹石窗의 《道敎文學史》(上海文藝出判社, 1992)를 비롯하여, 李炳海의 《道家與道家文學》(東北師範大學出版社, 1992) 등의 전작 저서들이 발간되고, 수종의 《中國道敎史》및 道敎辭典類가 간행되어 우리와는 사정이 자못 다르다. 도교 전반에 걸친 연구 개황의 소개는 기왕에 鄭在書가 〈韓國 道敎學의 現況과 展望〉(《宗敎硏究》제6집(한국종교학회, 1990))에서 정리한 바 있으므로 이에 미룬다.


2)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韓國道敎思想의 理解》(아세아문화사, 1990), pp. 99-132와, 〈遊仙文學의 서사구조와 도교적 상상력〉,《韓國道敎와 道家思想》(亞細亞文 화사, 1991), pp. 193-218, 그리고 〈朝鮮前期 遊仙辭賦 硏究〉, 《한양어문연구》제13집(한양어문연구회, 1995. 12), pp.907-931 등이 있다.


3) 許蘭雪軒, 《蘭雪軒詩集》 장 4a(《叢刊》67-p.6).

 


4) 趙緯韓, 《玄洲集》 권 2, 장 31a.


5) 崔致遠, 《孤雲集》 권1, 장2a(《총간》 1-p.150).


6) 《국역 동문선》(민족문화추진회, 1982), Ⅰ-p.120 참조. 


7) 老子, 《道德經》 제 3장 :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難.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 不敢爲也. 爲無爲卽無不治.”


8) 李達衷, 《霽亭集》 권 1, 장 15b(《총간》 3-p.180).


9) 洪裕孫, 《篠叢遺稿》 下, 장 11a(《총간》 12-p.536).


10) 李演載, 《高麗詩와 神仙思想의 理解》(아세아문화사, 1989)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제영시를 분석하여 여기에 투영된 신선사상의 구체적 내용을 논의한 저술이다.


11)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Ⅲ(민족문화추진회, 1984), p. 457.


12) 趙南權 역, 《趙龍門先生集》(태학사, 1997), 권 1, p.194 참조.


13) 鄭希良, 《虛庵遺集》 권 3, 장 13b(《총간》 18-p.43).


14) 安東濬은 그의 〈朝鮮前期 仙家와 仙家詩〉(≪釜山漢文學硏究≫ 第9輯(釜山漢文學會, 1995.6), pp.163-196)에서 도교적 성향을 지닌 仙家들이 지은 내단 수련의 과정을 우의한 시를 仙家詩로 규정한 바 있다. 다만 仙家의 시라 해서 모두 내단 수련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데다, 단순히 仙家詩란 명칭이 갖는 함의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적절치 않다고 본다.


15) 《국역 동문선》(민족문화추진회, 1982) Ⅰ-p.124 참조.


16) 十二段錦의 체조에 대해서는 李鎭洙, 〈朝鮮 養生思想 成立에 관한 考察 其4〉, 《韓國 道敎思想의 理解》(아세아문화사, 1990), p.248을 참조할 것.  


17) 李鎭洙, 앞 논문, p.234 참조.


18) 蘇東坡, 〈次韻子由浴罷〉에 “理髮千梳淨, 風晞勝湯沐. 閉息萬竅通, 霧散名乾浴. 頹然語黙喪, 靜見天地復.…老鷄臥糞土, 振羽雙瞑目. 倦馬전風沙, 奮鬣一噴玉…”이라 한 것이 있고, 〈謫居三適〉시 중에도 〈旦起理髮〉 등의 작품이 있다.


19) 趙昱의 《龍門集》은 趙南權 譯, 《趙龍門先生集》(태학사, 1997)을 참조할 것. 그의 도교적 시세계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주목한 바 없어, 향후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20) 李道純은 《中和集》 권 3에서 三關에 대해 “三元之機關也. 煉精化氣爲初關, 煉氣化神爲中關, 煉神還虛爲上關”이라 하고, 初關은 백일간 수련하면 成功할 수 있으므로 百日關이라 하고, 中關은 열 달만에 成功하므로 十月關, 上關은 일반적으로 9년만에 成功하므로 九年關이라 한다고 하였다.


21) 徐慶田·梁銀容, 〈高麗道敎思想의 硏究〉, 《圓光大論文集》 제 19집(원광대, 1985) 참조.


22) 醮禮靑詞에 관한 연구는 金勝惠의 〈東文選 醮禮靑詞에 대한 종교학적 고찰〉(《道敎와 韓國思想》(아세아문화사, 1987))과, 李鍾殷 외 2인의 〈高麗中期 道敎의 綜合的 硏究〉(《道敎思想의 韓國的 展開》(아세아문화사, 1989))를 참고할 것.  


23) 金時習, 《梅月堂集》 권 3, 장 1a(《총간》 13-p.126).


24) 成俔은 《慵齋叢話》에서 昭格署의 獻官과 官員이 제사하는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다. “昭格署의 헌관과 서원은 모두 흰옷을 입고 검은 두건을 쓰고 致祭하는데 冠과 笏, 예복을 갖추고 제사지낸다. 제물은 과일과 떡, 茶湯과 술을 진설하고 향을 피우고 百拜한다. 도류들은 머리에 逍遙巾을 쓴다. 몸에는 문채가 찬란한 옷을 입고 磬을 스물 네 번 울린 다음에 도경을 읽고 또 축문을 푸른 종이에 써서 태운다. 그 하는 일은 꼭 아이들 장난 같은데, 조정의 직분을 가지고 쓸데 없는 푸닥거리 제사를 한 번 지내는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아니하다.”(고전국역총서 49책,《대동야승》Ⅰ, p.57 참조. 昭格署에 관해서는 李鍾殷, 〈昭格署관계 역사 자료 檢討〉, 《道敎와 韓國文化》(아세아문화사, 1988)을 참조할 것.


25) 李達, 《蓀谷詩集》 권 3, 장 15b(《총간》 61-p.16).


26) 이밖에 李達의 《蓀谷集》에 실린 〈贈道人〉과 〈遊三淸洞〉, 崔慶昌 《孤竹集》의 〈天壇〉 2수, 〈朝天宮〉, 〈題三淸齋室〉등은 모두 道敎 齋醮와 관련된 시들이다. 


27) 구보 노리따다 지음/ 최준식 옮김, 《道敎史》(분도출판사, 1990), p.160 참조. 飯田道夫의 《庚申信仰》(日本 人文書院, 1989)는 일본 民間에 널리 퍼져 있는 守庚申신앙의 실상을 상세하게 정리한 책이다.


28) 후대로 내려오면서 三尸를 영구히 제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졌다. 세 번 연속 守庚申을 행하면 三尸가 영구 제거된다고도 하였고, 또 三尸가 인체 내의 穀氣의 의지해 살아가므로 五穀을 먹지 않아 穀氣를 끊는다면 三尸는 자연히 소멸된다고 보아 辟穀의 수련을 적극 권장하기도 하였다. 


29) 《고려사》3 (여강출판사, 1991), p.48 참조.


30) 《국역 대동야승》13(민족문화추진회, 1984), p.342 참조.


31) 陳甲坤 編, 《韓國文集總索引》(도서출판 精進, 1994)의 庚申 관련 항목의 검색만으로도 諸家가 지은 25수 가량의 守庚申詩와 만날 수 있다. 


32) 蘇世讓, 《陽谷集》 권 5, 장 29b.


33) 李睟光, 《芝峯集》 권 12, 장 1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