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들은 마침내
비껴오는 햇빛에 취해
공중에서 가장 좋은 색채를
빛나게 입고 있는가.
낮은데로 떨어질 운명을 잊어버리기를
마치 우리가 마침내
가장 낮은 어둔 땅으로
떨어질 일을 잊어버리며 있듯이
자기의 색채에 취해 물방울들은
연애와 무모에 취해
알코홀에, 피의 속도에
어리석음과 시간에 취해 물방울들은
떠 있는 것인가
악마의 정열 또는
천사의 정열 사이의
걸려있는 다채로운 물방울들은.
출처 : 정민 해설[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정현종은 삶의 덧없음에 대해서,
그리고 아름다움의 덧없음에 대해서,
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덧없음에 대해서 고뇌 한다.
그러나 정현종은 그 허무를 비관적으로 노래하는것이 아니라,
그 허무속에서의 순간적인 환희를 추구하는 낙천적 노래를 부른다.
그에게 있어 삶의 허무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순간적인 환의에 대한 예찬과 도취이다.
순간 순간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도취되어 사는 길이
그가 선택한 허무의 극복 방식이요,
삶의 방식이다.
무지개는아름답다.
무지개는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서 만든 것이다.
무지개의 아름다움은 순간 적이고 덧없다.
무지개의 물방울들은 곧 땅에 떨어져버릴 운명이지만,
하늘에 떠 있는 잠깐동안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만든다.
그 아름다움 역시 순간적인 것일지라도 물방울들은 햇빛에 취해서
그런 아름다움의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곧 "낮은 데로 떨어질 운명"도 생각지 못하고
"비껴오는 햇빛에 취해"있기 때문에 물방울은 무지개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무지개와 물방울에 대한 생각은 인간의 삶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무지개나라의 물방울>은 무지개에 대한 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시이기도 하다.
시의 후반부는 시인의 인생론을 보다 직접적으로 들려준다
인간의 삶도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된다.
인간 역시 "가장낮은 어둔땅으로 떨어질" 운명 즉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잠시 허공에 떠있는 물방울의 운명이나 잠시 이승에 머물러 있는
인간의 운명은 별로 다를바 없다.
이런 삶의 덧없음을 벗어나 아름다움을 구하는 길은 도취뿐이다.
무지개는 햇빛에 취하고,
자기 색채에 취해 순간의 덧없음 속에서 무지개의 아름다움으로 만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도취 속에서만 덧없음을 벗어나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은 무엇에 도취될 수 있는가?
시인은 이 시에서 연애와 무모,
알코홀과 피,
어리석음과 시간에 도취된 삶을 말한다.
취한다는 말속에 이미 내포된 바이지만,
도취는 이성과 현실을 무시하는 무모와 어리석음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연애와 알코홀과 피의 열정에 취하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악마의 정열이다.
그러나 그 도취는 가장 순수한 쾌락이기 때문에 천사의 열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취만이 어차피 덧없는 삶 속에서 순간적인 아름다움이나마 남길수 있는것이 아닐까!
악마의 정열 또는 천사의 정열이 없다면 도취는 불가능하고 순간적인 환희도 불가능하다.
스스로 도취되어 덧없이 잊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드는 물방울처럼
인간의 삶도 도취를 통해서 허무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의 전언이다.
예부터 삶의 허무한 본질을 깊이 통찰했던 시인,
예술가들은 연애와 술에 취한 모습과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힌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그러한 도취와 열정은 반사회적이며 현실로 부터의 도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취 속에서 아름다운 시와 예술을 남겼다.
그리고 널리 회자되는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도 남겼다.
도취와 정열이 없다면, 인생의 무지개는 어떻게 만들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은 어차피 잠시 지상에 머물다가 어둔 땅 속으로 사라진다.
현명한 이성적 삶은 아무런 아름다움도 남기지 못하지만,
무모한 도취의 삶은 그순간 속에서 무지개의 환의를 잠시라도 만들 수 있다.
될 수만 있다면,
검은 구름나라의 물방울이 되기보다는 무지개나라의 물방울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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