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漢詩에 나타난 유토피아 의식

醉月 2008. 7. 20. 09:42
 저자 :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Ⅰ. 머리말


역대 한시에는 유토피아에 대한 관념과 구체적 표현이 다수 발견된다. 《대동여지승람》에 실려 있는 수 많은 한시들은 勝景·勝地에 들어 仙界를 향한 꿈을 노래한 수많은 작품들이 실려 있어, 이들의 사유 속에 상상체계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는 유토피아의 이미지와 만날 수 있다. 〈靑鶴洞歌〉나 〈三神山歌〉, 〈桃源行〉 같은 유토피아 공간을 노래한 장편 고시들을 제가의 문집에서 접해 볼 수 있고, 그밖에 수많은 山水詩 가운데서 이런 이미지들은 매우 다양한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神仙 故事와 전설을 바탕으로 황홀한 仙界에서의 노님을 본격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遊仙詩도 그 수효가 적지 않다. 본절에서는 한시에 나타난 유토피아 의식을 勝境·仙境을 노래한 한시에 나타나는 무릉도원형 유토피아와 遊仙詩에 보이는 삼신산형 유토피아의 두 양상으로 크게 나누어 살펴 보겠다.

 

Ⅱ. 무릉도원을 향한 꿈과 대동사회의 이상


앞 절에서 보았듯 문학 작품 속에 투영된 무릉도원형 유토피아의 형상은 그 연원이 오래다. 먼저 趙汝籍의 《靑鶴集》에는 남북 두 곳의 理想境이 보인다. 남쪽은 지리산에 있는 李芳普의 精舍 貞心齋이고, 북쪽은 앞절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처사 林正秀의 甲山 太平洞이다. 李芳普는 지리산 정심재에 살며 약초를 캐어 三精丸·百福丸·瓊玉膏·混元丹 등을 조제하여 시렁 위에 얹어 놓고, 조석 음식으로는 푸른 기장밥과 검은 깨떡(黑荏餌), 사슴포(鹿脯, 생강김치(薑菹), 기국나물(杞菊菜), 도라지탕(桔梗湯), 송화주(松花酒), 꿀(石蜜漿) 등을 먹고 살았다. 李芳普가 梅窓·松棲·雲鴻 등과 여러 곳을 유력하다가 日洞巖에 이르니 바위 위에 靑鶴山人 魏漢祚가 지었다는 시가 적혀 있었다. 그 시에 이르기를,


구름 속에 뚫린 길을 겨우 찾아서  穿雲一路不分明

산사에 손이 오니 학이 홀로 반기네.  客到山門獨鶴迎

붉은 언덕 비 뿌리니 고운 풀 그림 같고  丹岸雨添瑤草畵

푸른 언덕 바람 부니 옥돌소리 절로 나네.  碧崖風落玉碁聲

한가로운 꽃 늙은 잣나무는 천년의 정취요 閑花老柏千年在

돌 사이 폭포수는 백갈래로 쏟아지네.  亂石飛泉百道爭

이 名區勝地를 세인은 모르는데   世有名區人不識

그 누가 이곳에서 정기 기를까.   孰能於此養心精1)  


라 하였다.  1구에서 ‘穿雲’이라 했으니 ‘山門’은 구름 깊은 산중임을 알겠고, 나그네를 맞이한 것이 鶴 뿐이라 하여 仙境임을 비쳤다. 비에 젖은 瑤草는 그림 같고, 바람결에 신선들의 ‘玉碁聲’이 들리는 것만 같다. 다툴 일 없는 꽃은 바람에 한들거리고, 잣나무는 천년 세월을 지켜 보며 서 있다. 바위는 시내에 폭포를 이루어 쏟아져 내린 물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이곳은 ‘心精’ 즉 마음의 정기를 기를만한 곳인데 이 名區를 아무도 아는 이 없다. 이렇듯 한시에서 勝景을 앞에 두고 이를 仙界와 동일시하여 유토피아를 향한 꿈을 달래는 예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또 《靑鶴集》에서 북쪽의 理想境으로 묘사한 太平洞은 앞절에서 보았듯 伊坂嶺을 지나 동굴을 한참 지나 연못을 건너, 사방 절벽으로 둘러 싸인 삼십 리 쯤 되는 들이다. 國稅도 없고 兵禍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태평동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이곳에는 맑은 샘과 흰 돌, 약초와 아름다운 나무가 있고, 땅은 비옥하여 벼 농사가 잘된다. 너덧 집이 살고 있었다.2) 梅窓은 이곳을 방문하였다가 그 정경을 다음과 같은 시로 묘사하고 있다.


처마 머리에선 천녀가 하례하고   簷頭天女賀

울타리 밑에서는 木仙이 노래한다.   籬下木仙吟


속세를 超絶한 仙境의 환상적인 경관을 꿈꾸어 본 내용이다. 또 이곳에서의 일과를 노래한 것에,


한가로이 中山의 霜兎筆로 붓질하고  閑弄中山霜兎筆

上黨의 碧松烟 먹을 가늘게 갈아 보네.  細硏上黨碧松烟


라 하였다. 中山의 霜兎筆이나 上黨의 碧松烟은 사람들이 누구나 꿈꾸는 최상등의 文房具이다. 그런가 하면


한가로이 벌통의 벌소리를 듣다가  閑聽蜜房金翼使

꿀 따오는 일벌들을 따라 가 보았네.  戱隨花賊玉腰奴


와 같은 구절에서는 꿀벌들이 꽃밭 위로 날며 꿀을 따는 여유로운 광경을 몽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작품은 이곳 太平洞에서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준다.


흰 강아지 밤새 마을서 짖고   白雪猧兒鳴夜巷

누렁 소는 봄 언덕서 풀을 뜯누나.  黃毛菩薩吃春堤

느릅 꼬투리에 비 내리자 벼 기장 웃자라고 楡莢雨來禾黍秀

잉어가 바람 일으키니 대추 배 향기롭다.  鯉魚風起棗梨香


눈같이 흰 강아지는 밤 골목에 나와 하늘을 보고 짖는다. 도적이 왔대서가 아니다. 흐는한 달빛에 겨워 하늘을 올려 보며 짖는 것이다. 봄갈이를 마친 누렁 소는 봄 깊은 언덕 위에서 맛있게 하루 종일 풀을 뜯는다. 느릅나무 꼬투마리에 비가 내리니 어느새 여름 철이 다가온 것이다. 그 비를 맞은 벼와 기장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냇가에 잉어는 제 흥을 못이겨 물 위로 솟구치고, 바람이 예서 일어 대추와 배엔 달콤한 향기가 물 배인다. 이 바로 武陵桃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3)

그러나 武陵桃源을 찾아 가는 길은 그리 쉽지가 않다. 앞절에서 언급한 靑鶴洞 관련 기사에 나오는, 李仁老가 지리산 靑鶴洞을 여러 날 찾아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바위 위에 적어 놓고 왔다는 시를 살펴 보기로 하자.


두류산 아득하다 저문 구름 낮게 깔려  頭流山逈暮雲低

골짜기와 바위들이 會稽山인양 곱구나.  萬壑千巖似會稽

지팡이 짚고서 청학동 찾자 하나   策杖欲尋靑鶴洞

숲 저편선 쓸쓸히 잔나비 울음만 들려오네. 隔林空聽白猿啼

樓臺는 아득해라 三山은 멀고 먼데  樓臺縹渺三山遠

이끼 아래 새겨진 네 글자 희미하다.  苔蘚微茫四字題

묻노라 신선의 땅 그 어디메뇨   試問仙源何處是

진 꽃잎 물에 떠서 근심만 겹게 하네.  落花流水使人迷4)


하루 종일 靑鶴洞을 찾아 헤매이다 어느새 뉘엿한 저물녘이 되었다. 낮게 깔리는 구름 속에 잠긴 봉우리와 골짜기들은 마치 꿈 속에 會稽山을 보는듯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이 구름 속 어디엔가 靑鶴洞 신선의 계곡이 있다. 그러나 청학동 드는 입구는 끝내 찾을 길이 없고, 덧 없는 인생이 슬프지 않느냐고 잔나비의 구슬픈 울음소리만 울려 퍼진다. 神仙의 樓臺는 내 인연이 아니요, 三神山은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雙溪寺 어귀 바위엔 ‘雙溪石門’이라 새긴 네 글자가 이끼에 덮혀 있다. 시내 위로 떠오는 진 꽃을 보며 이 물줄기 어디엔가 仙源, 즉 武陵桃源이 있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조선조에 柳方善도 李仁老의 뜻을 이어 〈靑鶴洞〉이란 작품을 남겼다.


지리산 솟은 모습 올려다 보니   瞻彼知異山穹窿

구름 안개 첩첩하여 언제나 아득하다.  雲烟萬疊常溟濛

백리에 서려 있어 형세 절로 빼어나  根盤百里勢自絶

뭇 멧부리 감히 자웅 겨루지 못한다오.  衆壑不敢爲雌雄

층층한 산 깎은 절벽 기운이 뒤섞이어  層巒峭壁氣參錯

성근 솔 푸른 잣나무 시원스레 우거졌네.  疎松翠栢寒蒨葱

시내 돌아 골을 넘어 별천지 있나니  溪回谷轉別有地

한 구역 좋은 경치 참으로 호리병 속 같네. 一區形勝眞壺中

사람 죽고 세상 변해 물만 홀로 흘러가고  人亡世變水空流

가시덤불 가려 있어 동서 분간 할 수 없다. 榛莽掩翳迷西東

지금도 靑鶴이 홀로 여기 사는데   至今靑鶴獨棲息

언덕 끼고 한 길만이 겨우 통할 수 있네.  緣崖一路纔相通

좋은 밭 비옥한 땅 평평하기 상과 같고  良田沃壤平如案

무너진 담 헐린 길은 쑥대 속에 묻혀 있다. 頹垣毁逕埋蒿蓬

숲 깊어 개 닭 다님 볼래야 볼 수 없고  林深不見鷄犬行

저물녘엔 들리느니 잔나비 울음일래.  日落但聞啼猿狨

지난 날 은자가 숨어살던 곳인가   疑是昔時隱者居

살던 사람 신선되어 산도 비인 것일까?  人或羽化山仍空

신선이 있고 없곤 따질 겨를 없어라  神仙有無未暇論

다만 옛 높은 선비 티끌 세상 피함 사랑할 뿐. 只愛高士逃塵籠

나도 집을 지어 이곳에 숨어들어   我欲卜築於焉藏

해마다 瑤草 캐며 달게 삶을 마치려 하나, 歲拾瑤草甘長終

天台의 옛 일이야 황당하고 괴이하고  天台往事儘荒怪

武陵桃源 남은 자취 오히려 아득하다.  武陵遺跡還朦朧

대장부 나고 듦이 구차할 수 있으랴  丈夫出處豈可苟

潔身 위한 亂倫이란 진실로 부질없다.  潔身亂倫誠悾悾

내 이제 노래 하니 마음은 끝이 없다  我今作歌意無極

그때에 시 남긴 늙은이를 가만히 웃노라.  笑殺當日留詩翁5)


7언 28구의 긴 작품이다. 그 내용을 보면 처음 16구까지는 《破閑集》에 실려 있는 李仁老의 靑鶴洞 묘사 내용을 거의 그대로 시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는 지난날 隱者가 숨어 살던 이곳이 오늘날 텅 빈 것은 그가 羽化登仙 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어 다시 儒者로서의 자의식을 발동하여, 내가 이 산을 사랑함은 다만 옛 高士가 티끌 세상을 피해 숨었던 그 정신을 아껴서일 뿐이라고 하였다. 天台山 옛 신선의 자취나 武陵桃源의 옛 기록도 이제 보면 황당하고 괴이하여 족히 믿을 바가 못된다. 대장부의 出處가 어찌 구차할 수 있으랴. 제 한 몸 깨끗하자고 潔身亂倫의 길을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 끝에서 오히려 예전 이곳에 시를 남긴 李仁老를 비웃는다고 하여 지금까지의 뜻을 뒤집었다. 이렇듯 靑鶴洞은 李仁老 이래로 조선조에 이르도록 지식인의 避世空間으로 관념화 되어 계속 노래되어졌다.

柳方善이 靑鶴洞에 깃들어 瑤草를 캐며 삶을 마치길 희망하다가도 潔身亂倫을 되새기며 현실에서 발을 빼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의식은 武陵桃源의 유토피아를 향한 꿈을 꿈으로 돌리지 않고, 현실 위에 세우려는 적극적 의지를 낳기도 한다. 고려 때 陳澕는 다음과 같이 장편의 〈桃源歌〉를 남겼다.


童男童女 가득하다 동해의 푸른 안개,  丱角森森東海之蒼烟

자주빛 芝草 반짝이는 남산의 푸른 뫼.  紫芝曄曄南山之翠巓

이 모두 당시에 秦나라 학정 피하던 곳  等是當時避秦處

그 중에도 桃源은 神仙鄕을 일컬었네.  桃源最號爲神仙

시냇물 다한 곳에 동구 있으니   溪流盡處山作口

기름진 땅 물도 좋아 좋은 밭이 많았네.  土膏水軟多良田

삽살개 구름을 짖고 한낮 해는 뉘엿한데  紅庬吠雲白日晩

땅 가득 진 꽃은 봄 바람에 흩날렸지.  落花滿地春風顚

복숭아 심군 뒤엔 고향 생각 아주 끊고  鄕心斗斷種桃後

세상 일은 焚書 있기 전의 일만 말했다오. 世事只說焚書前

앉아 풀과 나무 보고 계절을 짐작했고  坐看草樹知寒暑

아이들 재롱 웃다가 나이를 잊었다오.  笑領童孩忘後先

어부가 한번 보곤 바로 노를 돌리니  漁人一見卽回棹

내 낀 물결 만고토록 부질 없이 푸르도다. 煙波萬古空蒼然

그대 보지 못했나 저 강남의 마을을  君不見江南村

대나무로 문 만들고 꽃 심어 울 삼으니,  竹作戶花作藩

맑은 물결 넘실넘실 찬 달은 두둥실   淸流涓涓寒月漫

푸른 나무 고요한데 새들만 우짖는다.  碧樹寂寂幽禽喧

안타깝다 백성들 먹고 살 일 나날이 힘든데도 所恨居民産業日零落

고을 아전 쌀 내놓으라 대문을 두드리네.  縣吏索米將敲門

바깥 일로 찾아와서 괴롭힘만 없다면은  但無外事來相逼

산 마을 곳곳마도 모두 桃源일텐데.  山村處處皆桃源

이 시에는 뜻 있으니 그대는 버리질 말라  此詩有味君莫棄

고을 책에 베껴 적어 자손에게 전할진저.  寫入郡譜傳兒孫


모두 22구의 장시이다. 처음 14구는 陶淵明이 〈桃花源記〉에서 묘사하고 있는 武陵桃源의 故事를 그대로 끌어와 묘사하였다. 진시황 때 徐巿은 삼천명의 童男童女들을 이끌고 불로초를 찾아 三神山으로 떠나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南山의 紫芝를 캐며 숨은 隱者도 있었다. 이 중에서도 武陵桃源은 후대로 길이 그 이름이 전해진다. 땅이 기름지고 물이 좋아 절로 沃畓을 이루었고, 산이 깊고 찾는 이 없으니 심심한 삽삽개는 먼데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컹컹 짖는다. 봄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꽃잎을 떨군다. 이 좋은 곳에 한번 들고 나서 그들은 떠나온 고향도 까맣게 잊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관심 두지 않았다. 달력조차 없으니 풀과 나무의 번화함과 시듦을 보고 계절을 짐작할 뿐이었고, 커가는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나이를 잊었다.

시인은 전반부에서 옛 고사 속의 武陵桃源을 자못 장황하게 묘사하고는, 15구에서 문득 江南村을 여기에 대비시킨다. 이곳은 또 어떤 곳인가. 대나무로 문을 해 달았고, 울타리는 따로 없이 꽃을 심어 경계로 삼는다. 그 곁으론 달빛 흐는한 맑은 시내가 흘러가고, 푸른 나무 그늘에선 새들이 노래한다. 무릉도원을 따로 찾을 것 없이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그러나 19구에 가서 시인의 어조는 급변한다. 이 아름다운 江南村에 居民들의 産業은 날로 영락해 간다. 왜 그럴까? 稅米를 독촉하는 고을 아전들의 가렴주구가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外事’로 괴롭힘만 없다면 산 마을 곳곳이 모두 무릉도원이 아니겠느냐는 22구의 독백에 서늘한 諷刺의 뜻을 담았다.

무릉도원은 왜 꿈꾸는가? 현실의 폭력이 더 이상 미치지 않는 곳, 小國寡民의 향촌 공동체를 이루어 자급자족하며 세상의 시비영욕에 마음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릉도원은 어디에 있는가? 관리들이 백성들을 수탈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질서를 마음껏 누리며 살게 해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현실 속에서 발견하는 무릉도원, 이것은 곧 儒家가 꿈꾸었던 大同社會에 다름 아니다.

처음 武陵桃源을 향하던 동경은 차츰 현실로 내려와 촌락 단위 공동체의 大同社會 추구로 변모하기도 한다. 茶山 丁若鏞의 〈薇源隱士歌〉는 바로 그런 예이다.


벽계 북쪽 자리 잡은 작은 薇源은  檗溪之北小薇源

仇池 武陵과 어깨가 나란하네.    仇池武陵可弟昆

일흔 다섯 집 모두 씨 뿌리고 나무 심어  七十五家皆種樹

그중에도 꽃 많은 집 바로 沈氏 정원일세. 就中多花稱沈園

심씨 본시 서울 땅 벼슬아치 집 자제로서  沈本京城宦家子

일찍부터 학문 익혀 벼슬을 구했는데,  蚤年遊學求乘軒

하루 아침 집을 팔아 黻佩를 노래하며  一朝賣家歌黻佩

조각배 아마득히 林宗·樊川 사모하여,  扁舟渺然思林樊

이곳에 자리 잡아 집을 얽고선   徑投此地結衡宇

대통 이어 물 끌어와 황향한 들 일구었네. 連筒引水開荒原

벼와 조 추수하니 저축이 풍요롭고  稻粱會計饒積著

하인들 나눠 갈아 마을을 이루었지.  僮指分耕列成村

돌담에 기와집이 자리잡아 늘어서고  石墻瓦屋整位置

경서를 실어날라 학문이 번성했네.  寗經駝書學滋蕃

뽕·삼·닥·옻, 대추와 밤과 감   桑麻楮漆棗栗柿

망아지·송아지·거위·오리·닭·개·돼지,  駒犢鵝鴨鷄犬豚

소금과 우물 없어도 온갖 물건 갖춰지니  家無鹽井百物具

제사와 잔치 때에 문 나설 일 없었다오.  祭祀燕飮不出門

아들 낳아 농사 일, 딸 낳으면 길쌈 가르쳐 生男學圃女學織

羽畎山 朱陳村 마냥 혼인하며 살았었네.  羽畎山裏朱陳婚

아들 자라 집 일 맡고 翁은 이제 늙어서  子壯克家翁乃老

꽃 심고 접 붙이며 하루하루 보낸다네.  栽花接果度朝昏

국화 기르는 그 솜씨 더욱 세상에 빼어나니 菊花之業尤絶世

마흔 여덟 종류 국화 그 모습 우뚝하다.  四十八種標格尊

국화꽃 필 때 되면 취해 깨지 않고서  每到花開醉不醒

거나하게 흰 머리로 맑은 술잔 잡는다지.  陶然白髮臨淸樽

글 지음은 자못 소동파 체를 배웠으되  著書頗學眉公體

《酉陽雜俎》 〈諾臯篇〉 마냥 기이한 말 많았다네. 酉陽諾臯多奇言

아아 이 늙은이 肥遯卦를 이로이 여겨  吁嗟此老利肥遯

하늘이 복 내리니 참으로 남다른 은혜로다. 天公餉福眞殊恩

내 인생 이미 글러 미칠 수가 없구나  我生已誤無可及

애오라지 미친 노래 자손에게 보이노라.  聊述狂歌示子孫6)


모두 32구 224자에 달하는 장시이다. 이 작품은 茶山이 長鬐에 유배 가 있을 때 校理 尹永僖가 들려준 경기도 광주 인근 薇源村에 은거한 沈氏의 이야기를 시로 옮긴 것이다. 茶山은 京華世族의 한 사람으로 벼슬길에 포부를 지녔던 沈氏가 하루 아침에 집을 팔고 한 조각 배를 타고 궁벽한 薇源 땅으로 찾아 들어 은거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歸田園 의식의 일단을 피력하였다. 조선 후기 사회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이상향을 일궈낸 沈氏 일가의 실제 이야기는 유배지 長鬐에서 백성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생생히 목도하고 있던 다산에게 큰 감동과 긴 여운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내용은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그 밖에 전후 자세한 이야기는 현재 알 수가 없다. 작품에서 벼슬길을 꿈꾸던 沈氏가 하루 아침에 서울 집을 팔아 치우고 歸田園行을 결행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荒原’에 불과했던 이곳에 집을 얽어 세우고, 대통을 이어 水路를 열어 농토를 개간한 결과, 벼와 조 등의 곡식은 창고에 쌓아둘 만큼의 여축이 있었고, 함께 데리고 온 종들은 토지를 나눠 갈아 차례 차례 독립하여 한 마을을 이루어 갔다. 가호의 수가 무려 75家에 이르렀다고 했으니, 그 규모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돌각담과 기와집이 번듯하게 들어섰고, 점차 학교의 기능도 생겨 經書 공부도 번성하여 갔다. 뽕·삼·닥·옻나무 등 생활에 유용한 나무들을 심었고, 대추니 밤이니 감 따위의 과실나무도 부지런히 심었다. 망아지와 송아지를 기르고 거위와 오리나 닭, 개와 돼지 등의 가축들도 점차 불어났다. 비록 집에 우물이 없고, 또 소금이 없었지만 그밖에 모든 물건은 완전히 자급자족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들은 농사 일을 배우고, 딸은 길쌈을 가르쳐, 자라면 혼인을 시키며 그렇게 다복하게 공동체를 이룩해 갔다. 노경에 든 沈翁은 집안 일을 자식에게 맡겨 두고, 菊花를 재배하는 일에만 몰두 하였다. 무려 48종이나 되는 국화를 길렀고, 꽃이 피면 꽃을 구경하며 술을 마셨다. 흥이 나면 글을 지었고, 행복하게 여생을 지내었다. 

이상 살펴본대로 이 〈薇源隱士歌〉에는 다산이 꿈꾸었던 이상적 공동체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小國寡民의 武陵桃源型 유토피아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薇源村의 경우 체재 이탈적 성격은 드러나지 않아 세상과 절연되지 않은 大同社會의 모습도 함께 구현되어 있다.

실제 薇源村의 이상사회는 조선 후기 한강 유역에 산재해 있던 待機門閥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비슷한 한 예로 우리는 板尾洞 故事를 들게 되는데, 板尾洞은 경기도 가평군 朝宗川 상류 지역 협곡에 1674년 申奭이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모하고 당시 海賊侵寇의 소문에 避難 삼아 이주하여 건설한 이상사회이다.7) 신석은 朱子의 社倉法을 모방한 자치적인 향촌의 이상세계를 궁벽한 산골에서 몸소 실시하였는데, 자치를 위해 洞憲을 작정하고 敎化를 베풀어 30년이 채 못되어 異姓만 백여호에 이르는 대집단으로 발전하였다. 板尾洞의 聲譽는 갈수록 널리 알려져 타지방 사람들이 예의 바른 낯선 村民을 대하면 혹 板尾洞 사람이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8) 이로 보아 茶山이 노래한 薇源村 역시 당시 漢江 유역에 산재해 있던 신천지의 산간 부락의 하나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앞서 李仁老의 靑鶴洞 시에서 본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단순히 환상적 도피적 유토피아 추구로 끝나지 않고, 柳方善의 〈靑鶴洞〉에서처럼 潔身亂倫을 경계하거나, 陳澕의 〈桃源歌〉에서처럼 현실 개혁의 의지를 피력하는 단계를 거쳐 아예 현실의 토대 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전향적 태도로 나타난 전형을 다산의 〈薇源隱士歌〉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武陵桃源型 유토피아의 추구가 〈薇源隱士歌〉에서처럼 대동사회 건설의 진취적 추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武陵桃源을 향한 열망이 자칫 피세적 염세주의로 귀결되는 대신 현실을 개선하는 현실개혁적 유토피아의 추진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은 분명 주목해 볼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Ⅲ. 遊仙詩에 나타난 유토피아 형상과 그 의미 


오랜 문학적 연원을 지니고 있는 遊仙詩는 신선전설을 제재로 하여 선계에서의 노님을 노래하거나 鍊丹服藥을 통해 불로장생의 염원을 노래하는 것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한다.9) 유선시에서는 앞서 고전소설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선계 형상이 그대로 반복되거나 확대 부연되어 나타난다. 다만 고전소설에서의 선계가 주인공의 비범성을 상징하는 배경적 의미를 갖고 마는데 반해, 유선시에서는 현실의 불우를 보상받으려는 심리기제와 관련되고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유선시에서의 선계 형상은 유토피아 추구가 갖는 구체적 의미와 이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사유를 보여준다. 世我矛盾의 譏刺的 형상화로서의 謫仙意識과, 탈출공간으로서의 仙界相이 보여주는 발랄하고 분방한 상상체계, 服藥 모티프와 下界鳥瞰을 통해 드러나는 塵土認識, 仙界로 접근을 막는 차폐물이 뜻하는 의미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느끼는 좌절감의 표현 등을 통해 우리는 유토피아 추구가 지니는 의미 지향을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바다 위 삼한 땅은 예로운 나라   海上三韓古

만리 길 강남 땅은 아득하구나.   江南萬里遙

하늘에 이를 길은 방법 없는데   無由達天陛

오래도록 하늘 수레 보지 못했네.  久不見星軺

구름 가자 청산은 깨끗도 한데   雲去靑山淨

바람 불어 푸른 나무 흔들리누나.  風來綠樹搖

내 돌아갈 날은 그 언제러뇨   吾行何日是

뱃사공은 괴로이 찾아 헤매네.   舟子苦招招

바다 위 봉래산 멀지 않은데   海上蓬萊近

어느 때나 학 타고 노닐어 볼까.   何時駕鶴游

흰 구름 곳곳에서 일어나더니   白雲隨處起

푸른 바도 하늘 가에 떠서 있구나.  碧浪際天浮

반짝반짝 명멸하는 珠宮의 새벽   明滅珠宮曉

처량타 貝闕은 가을이로다.   凄凉貝闕秋

옛부터 찾았어도 찾지 못했고   古來尋不見

이제 나도 또다시 머리만 긁네.   今我又搔頭

바다 위서 외만한 대추 열매를   海上如瓜棗

安期生은 멀리서 주려하는데,   安期將遠貽

어렴풋이 서로 닿을 듯 하다   依俙若相接

슬프게도 내 능히 따르지 못했다오.  愀悵莫相隨

내 병도 거뜬히 치료할 뿐 아니라  不獨療吾病

나의 이 쇠약함도 고칠 수 있었는데,  庶幾扶我衰

道骨이 아닌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那知非道骨

장차 다시 올 때를 기다릴 밖에.   且復待來時10)


李穡의 〈海上〉이란 작품이다. 하늘로 훨훨 날아 오르고 싶어도 나를 인도해 줄 ‘星軺’가 없고 보니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구름이 걷히자 드러나는 靑山, 바람을 맞아 綠樹가 흔들리는 그곳으로 언제나 가 볼 수 있단 말인가. 뱃사공은 안타까워 이리 저리 봉래산을 찾아 헤매이지만, 학을 타고 날기 전에는 그곳에 도달할 길은 없는 것이다. 하릴 없어 뒷머리만 긁적이고 있는 나에게 꿈속같이 옛 신선 安期生은 외만한 대추를 나에게 건네준다. 안기생의 대추는 후대 遊仙詩에 단골로 등장하는 제재의 하나인데, 이것을 먹으면 불로장생 한다고 했다. 그러나 건네주는 대추조차도 받지 못하고 늙고 쇠한 병든 몸으로 다시 뒷날의 기약없는 仙緣을 바래보는 것이다. 선계를 향한 강한 동경과 열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높이 올라 봉래도를 보려고 하니   憑高欲望蓬萊島

아마득한 안개 물결 푸른 하늘 맞닿았네.  渺渺烟波接蒼昊

安期生은 쓸데 없이 외만한 대추 남겼어도 安期空有棗如瓜

해지는 武陵 땅엔 가을 풀만 시들었네.  斜日武陵生秋草

그때에 여덟 신선 방장·영주 찾느라  八仙當日訪壺瀛

구름 사이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였네.  雲間旌旄擁飆然

구슬프다 그들 좇아 노닐고 싶구나  令人悵然欲從遊

묻노니 弱水는 지금도 맑고 얕더냐.  且問弱水今淸淺11)


李崇仁의 〈沙門島懷古〉란 작품이다. 使行 길 도중에 沙門島에서 옛 신선들을 회고하며 지은 작품이다. 사문도에서 높은 곳에 올라 멀리 신선이 살고 있다는 蓬萊島를 바라 보았다. 섬은 보이지 않고 보이느니 하늘과 맞닿은 아득한 바다 물결 뿐이다. 安期生은 秦나라 때 사람으로 바닷가에서 약을 팔고 살았는데, 그때 나이가 천 살이 넘었다고 했다. 진시황이 그를 만나 사흘 밤을 같이 지냈는데, 홀연 천 년 뒤에 봉래산 아래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는 전설 속에 신선이다.12) 비록 안기생은 천년 뒤에 봉래산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사라졌지만, 천년을 살 수 없었던 인간의 유한함은 이미 가을 풀 덮힌 무덤 속에 한줌 흙이 되어 누워 있는 것이다. 八仙은 呂洞賓을 비롯한 漢나라 때 여덟 신선이다. 그들은 仙道를 닦아 三神山의 神仙이 되었지만, 여전히 티끌 세상을 방황하는 나는 그들과 從遊코자 해도 弱水가 가로 막혀 갈 수가 없다. 弱水란 崑崙山 아래를 에워 흐른다는 강물로, 새의 깃털조차도 가라 앉는다는 강물이다. 그러므로 새의 비상이 아니고서는 결코 약수를 건널 수가 없다.


아마득한 곤륜산 꼭대기에는   岧嶢崑山頂

맑고 얕은 弱水가 흘러간다네.   淸淺弱水流

弱水는 도무지 건널 수 없어   弱水不可涉

삼천 년 긴 세월을 그리워 했네.   相思三千秋

서리 날고 안개 낀 하늘 넓기도 한데  霜飛烟空濶

달빛 비친 바위엔 계수나무 그윽하다.  月照巖桂幽

그대여 黃金液을 내게 주소서   乞君黃金液

내 입은 紫綺裘와 맞바꿉시다.   換我紫綺裘

곤륜산 돌아가는 학이 있길래   崑山有歸鶴

구슬피 이별 근심 부쳐 보낸다.   惆悵寄離愁13)


崑崙山을 향한 동경을 노래한 許篈의 작품이다. 제목은 〈上元夫人〉이다. 上元夫人은 《漢武帝內傳》에 보이는 十萬玉女를 관장하는 천상 女仙이다. 시인은 자신이 전생에 上元夫人과 사랑을 나누나 인간 세상에 귀양 온 謫仙임을 밝히고, 헤어진 지 삼천년이 되도록 弱水가 가로막혀 사랑하는 님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黃金液을 얻어 마실 수만 있다면 곧바로 換骨脫胎 羽化登仙 할 수 있을텐데, 부질 없이 인간에서 紫綺裘의 영화를 누린다 한들 모두다 부질 없는 일이 아닐 것인가. 그리하여 허탈한 마음을 허공을 훨훨 날아가는 학의 날개짓에 부쳐 노래하고 있다.

예전 한시에서 이러한 선계 동경의 열망을 노래한 작품은 무수히 많다. 티끌 세상 속에서의 이러한 仙界를 향한 동경은 자연스레 夢遊의 模式을 빈 遊仙의 행위로 구체화 된다. 河西 金麟厚는 李仁老가 꿈꾸었던 이상향 靑鶴洞을 향한 열망을 〈夢遊靑鶴洞〉이란 작품에 다음과 같이 아로새겨 놓았다.


하루 해 뉘엿한데 띠집에 취해 뉘워   醉臥茅齋天日晩

우연히 갑작스레 한 꿈 꾸었지.   偶然遽遽成一夢

우뚝히 솟은 산이 눈 앞에 보이더니  嵬然一山當眼前

아지랑이 푸른 안개 한없이 이어졌네.  蒸嵐翠霧相澒洞

천지를 압도할듯 장쾌하기 짝이 없어  排天壓地壯無比

늘어선 뭇산들은 항아리를 엎어 놓은듯.  纍纍衆山如罌甕

그 가운데 한 골짝이 구름 사이 열리는데  中有一洞雲間開

華陽洞·小有洞은 비길 바가 아니었네.  華陽小有無與共

해맑고도 빼어나며 높고도 그윽해라  奇淸爽秀高而幽

어지러이 온갖 경치 앞을 다퉈 펼쳐지네.  紛紛萬景爭來供

외론 학 훨훨 날아 푸른 구름 위로 드니  翩然孤鶴上靑雲

그윽한 흥 어느새 구름 향해 움직이네.  逸興便向雲間動

천길 나는 폭포 깊은 못에 떨어지니  千丈飛流下深淵

부딪치며 돌을 쳐서 바위 움푹 패였구나.  硼崖擊石相磨礱

초연히 홀로 걸으니 두 다리 가벼웁고  超然獨步雙脚輕

정신 맑고 뼈도 서늘, 마음은 제멋대로.  神淸骨冷心自縱

한 사람이 날 따르며 丹砂를 건네주며  一人隨我贈丹砂

이것을 드시오면 하늘을 난다 하네.  謂言服此凌天羾

바람 타고 구만리 장공에 훨훨 떨쳐 올라  乘風振奮九萬里

인간 세상 굽어 보니 먼지만 자옥쿠나.  下視九土煙塵瞢

인간의 천만년을 고개 돌려 바라보다  回首人間千萬年

깨고 보니 세상 일은 어찌 이리 바쁘더뇨. 覺來世事何倥傯14)


앞 소절에서 본 柳方善의 〈靑鶴洞〉과는 달리, 여기서 靑鶴洞은 단순히 무릉도원형 유토피아의 모습이 아닌 삼신산형 유토피아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현실 속에서 靑鶴洞을 향한 열망은 李仁老처럼 좌절로 끝나거나, 柳方善처럼 反語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夢遊 속의 靑鶴洞에는 靑雲 위로 나는 靑鶴이 있고, 두 다리는 가벼워져 어느새 步虛凌空 하며 神遊를 즐긴다. 또 그곳에서 仙人은 나에게 丹砂를 건네 주며 어서 먹고 함께 구만리 長空을 노닐어 보자고 권유한다. 그래서 나는 그 丹砂를 먹고 환골탈태하여 九土의 인간 세상을 俯視하며 긴 세월을 長遊타가 어느덧 인간 삶의 迷妄을 깨쳤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유토피아 형상이 분화되는 한 모식을 발견하게 된다. 앞서 본대로 靑鶴洞은 단순한 무릉도원형 유토피아의 한 변형으로 존재해 온 공간이었다. 이러한 유토피아 형상이 앞절에서 본 것처럼 대동사회형 유토피아로 전이되기도 하는데, 또 한편으로 이 작품의 경우처럼 夢遊의 형식을 빌어 현실을 벗어난 몽환적 이상경, 즉 삼신산형 유토피아로 확대되기도 한다.

위에서 살펴 본 金麟厚의 〈夢遊靑鶴洞〉과 거의 비슷한 제목의 〈夢遊廣桑山詩〉란 작품이 있다. 許蘭雪軒의 작품인데, 이 작품에는 몽유록계 소설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序가 길게 서술되어 있다.


을유년에 내가 상을 입어 외삼촌 댁에 묵고 있을 때, 밤 꿈에 바다 위 산으로 둥실 날아 오르니, 산은 모두 구슬과 옥이었고, 뭇 봉우리는 온통 첩첩이 쌓여 있는데, 흰 옥과 푸른 구슬이 밝게 빛나 현란하여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무지개 구름이 그 위를 에워싸니 오색 빛깔은 곱고도 선명하였다. 옥 샘물 몇 줄기가 벼랑 사이에서 쏟아지는데, 콸콸 쏟아내리는 소리는 옥을 굴리는 것 같았다.

두 여인이 있어 나이는 스물 남짓한데, 얼굴빛은 모두 빼어나게 고왔다. 하나는 자주빛 노을 옷을 걸쳤고, 하나는 푸른 무지개 옷을 입었다. 손에는 모두 금색 호로병을 들고 사뿐사뿐 걸어와 내게 절을 하는 것이었다. 시내물을 따라 구비구비 올라가니 기화이초가 곳곳에 피었는데 이루 이름할 수가 없고, 난새와 학과 공작과 비취새가 옆으로 날며 춤을 추고, 숲 저편에선 온갖 향기가 진동하였다. 

마침내 산 꼭대기에 오르니 동남편은 큰 바다라 하늘과 맞닿아 온통 파아랗고, 붉은 해가 막 돋아오르니 물결은 햇살을 목욕시켰다. 봉우리 위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아주 맑았다. 연꽃은 빛깔이 푸르고 잎이 큰데 서리를 맞아 반나마 시들었다. 두 여인이 말하기를, “이곳은 광상산이랍니다. 十洲 중에서도 으뜸이지요. 그대가 신선의 인연이 있는 까닭에 감히 이곳에 이르렀으니 어찌 시를 지어 이를 기념치 않으리오.” 하므로, 나는 사양하였으나 한사코 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절구 한 수를 읊조리니, 두 여인은 박수를 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완연한 신선의 말씀이로군요.” 하였다. 조금 있으려니까 한떨기 붉은 구름이 하늘 가운데로부터 내려와 봉우리 꼭대기에 걸리더니, 둥둥 북소리에 정신이 들어 깨어났다. 잠자리엔 아직도 烟霞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15)    


이 꿈을 깨고 나서 그녀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3.4구에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 서리 달 찬 속에서 붉게 떠지네.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라고 하였다. 그것이 詩讖이 되어 스물 일곱의 나이로 그녀는 천상 白玉樓로 훌훌 올라가고 말았다. 여기에 묘사된 廣桑山은 十洲仙境의 하나로 靑鶴洞의 夢遊境에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색채를 더한 것이다.

遊仙詩에서 三神山이나 崑崙山 등 선계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 보자.


동해에 신선 사는 산이 있나니   東海有仙山

그 산은 이름하여 봉래산이다.   厥山名蓬萊

번쩍이는 황금으로 궁궐 만들고   黃金爲宮闕

빛나는 백옥으로 樓臺 세웠지.    白玉爲樓臺

큰 바다 하늘 밖에 둘러서 있어   大海環天外

작은 바다 마치도 한잔 술 같네.   裨海若一杯

바람 파도 제절로 열리고 닫혀   風濤自開闢

밤낮으로 그 소리 우레와 같다.   日夜聲如雷

神人은 六氣 위에 올라타고서   神人御六氣

드나들며 仙才를 찾는다 한다.   出入求仙才

저멀리 우뚝 솟은 承華殿에도    峨峨承華殿

靑鳥가 날아와 배회했건만,   靑鳥來徘徊

漢武帝 속으로 욕심 많으니   武帝內多欲

西王母 이곳에 올리가 있나.   王母胡來哉16)


鄭斗卿의 〈遊仙詞〉 11수 중 제 5수이다. 봉래산을 노래하였다. 황금궁궐과 백옥누대, 그 밖엔 한 바다가 에워싸 있고, 바람파도가 밤낮 없이 거세게 불어 사람들은 갈래야 갈 수가 없다. 다만 그곳에 사는 神人이 이따금 六氣를 타고 인간 세상에 나와 신선의 자질을 갖춘 仙才를 찾아 그곳에 인도할 뿐이다. 仙道를 惑信했던 漢武帝가 承華殿 우뚝한 전각을 세워 놓고 서왕모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仙才가 아니었기에 仙界와는 영영 인연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곤륜산은 서쪽 끝에 솟아 있으니   崑崙在西極

이 바로 西王母 계신 곳이라.   實維王母都

산은 높아서 이천리이니    山高二千里

해와 달도 감히 넘지 못한다.   日月不能踰

층층 성이 아홉 겹 높이 솟았고   層城起九重

푸른 물 성 둘레를 에워 흐른다.   翠水環城隅

그 머리 희었어도 건강한 모습   礭然白其首

머리 장식 하고서 동굴서 산다.   戴勝而穴居

뜰 앞엔 기이한 나무 있는데   庭前有奇樹

그 나무는 모두가 옥 구슬일세.   厥樹惟玉珠

그 위론 새 있어 왕래하거니   上有鳥往來

그 새는 무슨 샌가 三足烏로다.   厥鳥三足烏


역시 鄭斗卿의 작품이다. 崑崙山은 우주의 서편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은 높이만도 2천리나 되어 해와 달도 그 아래 잠기어 있다. 성은 아홉겹으로 층층히 둘러 쌓여 있고, 그 둘레를 弱水가 흘러 간다. 서왕모는 그 오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하고, 머리에 장식을 얹고서 동굴 속에서 산다. 궁궐 앞에는 기이한 나무들이 즐비한데, 나무는 모두 옥 구슬로 만들어졌고, 그 나무 위서 노니는 새는 다름 아닌 三足烏이다. 여기서 崑崙山에 대한 묘사는 대부분 《山海經》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오고 있다. 이렇듯 崑崙山은 인간의 어떤 접근도 거부하는, 그러면서도 앞서 蓬萊山과 마찬가지로 호화롭고 찬란한 환상 세계로 그려진다.

다시 李睟光은 〈記夢〉이란 작품에서, 


紫宮의 한 밤, 群仙들 모여                       紫宮半夜群仙會

낯빛도 기쁘게 날 맞아 절하며,                   群仙色喜迎我拜

궁 가운데 七寶床에 앉으라 하니                  坐我堂中七寶床

아득히 이 몸 靑蓮界로 들어왔네.                 怳然身入靑蓮界

般若湯 한 잔을 따라 주면서                      餉我一杯般若湯

玉帝의 瓊漿이라 일러 주누나.                    云是玉帝之瓊漿

마시자 정신이 맑고 상쾌해지며                   啜罷精神頓淸爽

塵土에 찌든 속을 깨끗히 씻어주네.               洗盡十年塵土腸

뜰 앞 화로에선 가는 연기 오르더니               庭前有爐烟細起

三生의 온갖 일들 환히 알게 되었도다.            令我了悟三生事

瑤臺 허공 笙 불던 학, 깨어보니 간 곳 없고       瑤空笙鶴覺來失

만리 가득 안개 또한 꿈속의 일일래라.            萬里烟霞造夢裏

바다 위 봉래산엔 오래동안 주인 없고             海上蓬萊久無主

백락천은 인간의 괴로움을 실컷 겼었다오.         樂天偶餉人間苦

돌아갈 지팡이를 급히 만들자.                    唯須作急理歸筇

봄 바람 삼화수 꽃잎 떨구기 전에.                東風吹老三花樹


라 하였다. 전형적인 夢遊 구조에 의한 유선시이다. 꿈에 문득 紫宮에 이끌려 간 그는 여러 신선들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 玉醴泉의 瓊液을 달여 빚었다는 般若湯을 마시고, 속세에서 찌든 ‘塵土腸’이 깨끗해지는 환골탈태를 경험하게 된다. 대궐 앞 화로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라, 전생과 현생과 내세의 일을 모두 환히 보여주었다. 아! 그러고 보면 봉래산은 주인도 없이 너무나 오래동안 방치해 두었던 것이 아닐까. 봉래산을 떠나와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겪었던 것은 신맛나는 ‘人間苦’ 뿐이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원래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자.

許蘭雪軒이 〈廣寒殿白玉樓上樑文〉에서 보여주고 있는 선계의 묘사는 더욱 황홀하고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이 가운데 瑤池의 잔치를 묘사한 한 대목만을 들여다 보면,


선인 雙成은 나전 피리를 불고 晏香은 銀箏을 쳐서 鈞天의 우아한 곡조를 합주하고, 婉華는 해맑게 노래하고 飛瓊은 공교롭게 춤추어 놀랍도록 신령스런 소리를 빚어낸다. 龍頭에다 봉황의 골수로 담근 술을 따라서, 鶴背에 기린의 육포로 만든 안주를 받드니, 구슬 돗자리에 옥방석은 아홉 갈래 등불에 빛이 흔들리고, 푸른 연밥과 얼음같은 복숭아에는 여덟 바다의 그림자가 쟁반에 가득하다.17) 


라 하였다. 용의 두개골로 만든 주전자에 봉황의 골수로 담근 술, 학의 등뼈로 만든 쟁반에 기린의 육포로 만든 안주, 어디 그뿐인가. 한 알만 먹으면 삼천년을 산다는 복숭아도 있다. 이렇듯 선계의 형상은 현실에서의 억압이 역으로 투사되어, 열린 세계로의 飛翔을 꿈꾼 결과이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인간의 의식이 한계에 도달할 때 무의식이 열린다. 무의식의 세계는 원초적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상징은 좌절되었던 본능적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욕구와 관련된다. 이러한 상징들은 꿈을 통해 신비한 세계를 열어 보임으로써 현실에서 상처받고 왜소해진 자아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소생시켜 준다.

위 몇 작품에서도 보았듯이 선계의 광경은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상상력이란 상상력은 모두 한데 모아 엮은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공간묘사를 통해 구체화되는 선계상은 이들의 동경과 갈망, 현실에 대한 불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시키고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나, 인간 소망을 대변하는 최선과 희망의 세계로서의 선계는 중세지식인이 발견한 유토피아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먼저 유선시문에 투영된 仙界相의 再構를 통해 중세 지식인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낙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로 한다.18)

작품을 통해 볼 때, 유선문학의 遊仙 공간은, 玉皇上帝가 거하는 白玉京과 廣寒殿 등 천상 선계와, 扶桑海 위 三神山과 崑崙山十洲 등의 지상선계로 대별된다. 그밖에 步虛凌空하는 도중에 펼쳐지는 太淸虛空의 광경과 옛 신선의 자취와 관련된 특정 공간이 그려지기도 한다. 공간의 다양한 설정은 다층적 위계로 짜여진 신들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각 공간은 나름의 질서와 구성원리에 의해 통제된다.19)

선계는 인간계의 질서를 옮겨 놓았으면서도 인간과는 구분되는 세계이다. 천상계 白玉京은 선계의 최상층에 존재한다. 백옥경에서 옥황상제는 群仙의 조회를 받고, 제반 통치를 관장한다. 그곳은 천상 은하수 저편, 雲霞 자옥한 한 가운데, 붉은 구름이 활짝 열린 곳, 大羅天에 위치하고 있다. 香煙에 둘러싸인 위용도 삼엄한 帝都는 金闕玉樓에다 璧階璇柱로 만들어져, 眞珠簾과 珊瑚鉤, 玳瑁筵과 七寶床으로 꾸며져 있다. 紫鸞笙이 霓裳羽衣曲을 연주하는 가운데, 彤庭에 해가 仙人掌을 비추고 琪樹와 瑤草는 눈 부시고, 오색 구름은 九天 위에 펼쳐져 있다. 둘레로 펼쳐진 水晶盤 같은 은하수에서는 龍이 밭을 갈며 曇花를 씨 뿌린다. 玉皇의 옷은 扶桑海 위 오색 무지개를 자아 안개와 섞어 짠 실로 만든 것이고, 仙女들이 쓰는 붓은 月宮의 토끼털로 만들었다.

絳闕에 마련된 玉淸壇(天壇) 玉座에는 옥황상제가 자리를 잡고 있고, 밤새 諸天에서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거나 下界에 내려와 잔치를 즐기던 群仙들은, 새벽이 되면 鳳凰, 鶴, 龍, 麒麟 등 仙禽瑞獸가 끄는 丹輦綠轝를 타고 와 조회를 받는다. 群仙들은 손에《蘂珠經》또는《黃庭經》을 받들고 서 있다. 그러면 기록을 맡은 上宮이 赤書玉字로 된 籍을 꺼내 옥황 앞에서 출석 점검을 한다. 점검이 끝나면 簫臺에 거하고 있는 太乙君에게 보고된다. 옥황상제의 모든 명은 雲篆(瑤篆․錦篆․天篆이라고도 함)이라고 하는 이상한 모양의 글자로 쓰여져 紫詔에 적혀 내려지는데, 彩鳳이 이를 입에 물어 전달한다. 그밖에 여러 궁궐에는 위계에 따라 諸神이 거처한다. 紫霞虛皇과 玉晨君의 거처인 蘂珠宮에는 언제나 桂月光이 비추이고, 그밖에 大林宮, 玉樹宮과 碧瓦殿靈소寶殿 등등 수많은 누대와 전각들이 늘어서 있다. 丹竈의 太乙爐에서는 丹藥이 익어가고, 그 곁에선 학이 한가롭게 졸고 있다. 술은 流霞酒, 음료는 沆瀣漿 또는 瓊漿으로 만든 船藥湯이다. 白玉樓가 완성되어 잔치를 할 제면, 龍頭로 만든 술잔에 鳳凰의 骨髓로 담근 술에다, 鶴의 등뼈로 된 쟁반에 麒麟의 脯로 만든 안주를 곁들여 마신다. 해가 지면 瓊戶는 닫히고 大羅天엔 碧煙만 자옥하다. 三壇에선 한 밤이면 長錦誥와 延壽靈方 등 眞經을 강하고, 群仙은 아래에 늘어서 이를 듣는다.

廣寒殿은 달 가운데 있다. 玉으로 대들보를 만들었고, 銀燭과 金屛에 둘러싸여 있다. 때로 廣寒殿은 그저 막연히 九天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 달에는 姮娥宮(水晶宮이라고도 함)이 있다. 이곳에선 桂花 그림자 흐는하고 맑은 향내 은은한 가운데, 玉杵 소리가 울려 퍼지고 金盤에선 불사약이 煉造된다. 銀河는 그 너머로 아스라히 펼쳐져 있고, 霓裳曲에 맞춰 靑鸞이 노닌다. 瓊樹에 이슬이 짙어가는 달밤이면 白兎가 靈藥을 찧는다.

지상선계의 중심은 三神山과 崑崙山이다. 三神山은 雲海 저편 아득한 안개 속에 있다. 白銀宮과 黃金闕이 있고, 瓊樹에선 瑤花가 피고 碧桃가 열린다. 龍이 새벽이면 九河의 파도를 삼켜 風濤가 이는데 그 소리는 마치 우뢰와 같다. 바다에 떠 있을 뿐 着根하지 못해 여섯 마리의 巨鰲(神鰲)가 머리에 이를 이고 뜨락 잠기락 한다. 이곳에서 九洲를 내려 보면 毫末과 같고, 동해를 굽어 보면 一勺만 하다. 三神山은 蓬萊․瀛洲․方丈의 세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瀛洲와 方丈은 작품에서 별반 나타나지 않는다. 蓬萊山의 주위는 검은 바다 冥海로 둘러 싸여 있다. 바람이 없는 데도 파도가 박장이나 일어나 접근할 수가 없다. 단지 500년에 한 번씩만 길이 열려 건널 수가 있다. 꼭대기 芝城 한 가운데에는 承華殿이 있고, 둘레를 靑鳥가 배회한다. 神人은 六氣를 타고 仙才를 찾아다닌다. 백척이나 되는 丹梯가 놓여 있어 塵綠을 차단하고 이는 다시 천상 珠宮과 연결되어 있다. 金鼎에는 丹井水가 넘치고, 볕이 좋으면 신선들은 赤霜袍를 꺼내 말린다. 芙蓉峯에선 밤이면 綠玉杖을 짚은 신선들과 西王母가 주재하는 잔치가 벌어진다. 琪花, 桂花 흐드러진 가운데 봉황이 피리를 불어 흥취를 돋우면, 海風이 불어와 碧桃花를 꺾고 玉盤엔 安期生의 대추가 가득 담겨 있다. 

崑崙山은 天帝의 下都로 아득히 높아 日月조차 그 아래 잠겨 있다. 산은 아홉 겹의 層城으로 이루어져 매 층의 거리는 만 리나 된다. 둘레인 鴻毛조차 가라앉는다는 弱水가 흐르고, 꼭대기에는 瑤池가 있어, 밤이면 이곳에서 신선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위에는 玉醴泉이 있어 마시면 불사하고, 珠樹와 文玉樹, 琪樹 및 若木 등의 나무들과 千年桃와 三秀芝가 자라고, 九苞靈禽과 金色獅子가 있다. 아래는 허무하여 八極을 옆에 하고, 위로 玉京과 銀河 등 천상계와 통하는 통로가 된다. 옥황상제가 천상계를 주재한다면 곤륜산을 비롯한 지상선계는 주로 西王母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간혹 둘은 부부사이로 그려지기도 한다. 西王母는 玉京에 머물다 仙桃가 익으면, 달밤 蘭旌과 藥被로 꾸며진 五色麟이나 白鳳凰 또는 赤龍이 끄는 五雲車를 타고 靑童과 靑鳥의 안내를 받아 玉環과 瓊佩 소리 요란하게 곤륜산 瑤池로 내려온다. 신선들도 석양이면 시냇가 白龍으로 내기하여, 그 龍을 타고 요지로 향한다. 瑤池 芙蓉閣에서의 잔치는 流霞酒 또는 瓊료를 마시고 仙桃를 먹으며 素娥의 瑤瑟이 연주되는 가운데 새벽까지 계속된다.

잔치가 파하는 새벽에는 신선들의 귀환 장면이 호들갑스럽게 전개된다. 하계에 내려온 신선들은 동이 트기 전까지 천상으로의 복귀를 마쳐야만 한다. 날이 새면 은하수에 놓여 있던 다리는 끊어지고, 白玉京의 珠扉는 닫혀 버려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가 없다. 弱水 동편에 瑞霞가 내리는 새벽, 瑤海月은 환하고 샛별은 지는데, 靑童은 白鶴을 타고 紫簫 불며 彩霞를 뚫고 앞장 서고, 白鳳凰을 탄 시녀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西王母는 赤龍이 끄는 五雲車를 타고 상계로 돌아온다. 그 수레는 錦襜에 黃金勒을 얹었다. 신선들은 무지개를 사다리 삼아 步虛登空하기도 하고, 혹 九霞裙에 六銖衣를 입고 鶴을 타고 紫府로 귀환하기도 한다. 그때 봉황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구슬 머금은 용은 몰에 잠겨 있다.

이상 살핀 仙界相은 여러 유선 시문에서의 묘사를 장소별로 묶어 종합해 본 것이다. 이들 제 공간은 간혹 서로 혼동되거나 錯綜되어 그려지기도 한다.20) 소설과는 달리 水府 龍宮의 묘사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仙界란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그려낸 가장 완벽한 理想境, 곧 樂園의 모습이다. 이 유토피아는 관념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여, 관념의 프리즘을 통해 역투사시킨 비현실적 가공의 세계이다.

어떤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모든 것이 조화롭고 충만한 이러한 세계에 동참하면서, 인간은 티끌 세상의 질곡과 갈등에서 통쾌하게 벗어나는 정신적 해방의 기쁨을 만끽한다. 선계 공간에서의 행위를 보면, 赤虯를 타고 봉래산 芝城에 올라서는, 丹梯를 타고 珠宮에 들어 난새가 춤추고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流霞酒를 마시며 仙女와 잠자리를 같이하는가 하면, 魏伯陽을 만나 飡玉法을 전수 받기도 하며, 太淸虛空 위에서 티끌 자옥한 下界를 俯視하기도 한다. 玉女의 안내를 받아 은하수에 뗏목을 띄워 玉京에 올라 紫霞觴을 훔쳐 마셔 煥骨成仙 하는가 하면, 郡仙의 환영 아래 氷盤에 담긴 碧桃를 먹거나 般若湯을 마시며 扶桑池에 내려와 쉬기도 한다. 鶴을 타고 아침엔 聚窟洲에서 노닐며 沆瀣나 石髓를 먹고, 저녁엔 玄洲에 내려 流霞나 安期生의 대추를 먹는다. 이러한 낭만적 傲遊의 광경은 현세에서의 불우와 좌절을 말끔히 씻어주는 일종의 정화작용을 일으킨다.

유한한 인생, 그나마 고통과 질곡으로 가득찬 현세에서의 삶은 꿈과 상상의 날개를 빌어서만 도달할 수 있는 피안의 세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생의 세계를 동경하게 한다. 天上 仙界는 과거 선인들이 늘 동경하여 왔던 공간이다. 그곳에는 옥황상제의 권능 아래 불로장생하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 죽음의 공포를 떨칠 수 없는 유한한 인생과 현실의 질곡 속에서 선계를 향한 끊임없는 동경은 자연스레 遊仙의 욕망을 배태시킨다. 여기에서 遊仙文學이 대두된다.

유선시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도교사상, 특히 신선사상이다. 유선시는 다른 시와 달리 구절마다 《列仙傳》등 신선전설에서 고사를 인용해오기 일쑤여서 신선전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이는 창작이 어렵다. 누가 지으니 나도 짓겠다고 해서 쉽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직품을 보아도 유선시의 작가들이 《山海經》‧《漢武帝故事》‧《列仙傳》‧《續仙傳》 등 역대 신선전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許筠이 〈夢解〉에서 或者에 가탁하여, 變故를 겪은 뒤 道家의 經典이며 要訣을 潛心硏究하매 꿈에 여러 眞人을 만나 그 妙諦를 깨치기도 하였고, 심지어 玉京에 鸞鶴을 타고 날아올라 五雲가운데서 紫簫소리를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적고 있는 것은 바로 단순한 문예취향으로만 유선시가 창작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21)

遊仙詩가 보여주는 선계로의 飛翔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는, 날개를 만들어 태양 가까이까지 날아 올랐다가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었다. 한계를 초월코자 하는 飛翔욕구는 결국 죽음의 징벌을 부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선 행위가 현실의 새로운 비전과 연결되지 못한다해서 선계를 향한 꿈 자체를 배격할 필요는 없다. 실현될 수 없다 해서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원망이 배격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절망이요 공포가 아닐 수 없다. 遊仙의 과정에서 만끽한 인간 한계를 초월하는 해방감은 세속적 가치의 무의미함과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새삼 인식케 함으로써, 현실의 불우와 모순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 준다.


   제 3장 : 한국인의 유토피아 의식 메모


본장에서는 고대에서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한국인의 유토피아 의식을 총괄 개관하되, 제 2장에서의 논의와 정합시킨다.

1. 고대의 유토피아 형상 : 神市와 고구려 고분 벽화 및 백제의 산경수전, 부여 능산리 고분의 봉래산향로 등의 분석. 특히 고구려 고분 벽화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으로 고구려인들의 상상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그려본다.

2. 중세의 유토피아 형상 : 미륵정토 신앙과 궁예의 미륵세계, 청학동, 최승로의 유교적 이상국가의 모습.

3. 근세의 유토피아 형상 : 오복동, 태평동, 산도원. 율도국과 도죽도 등  

4. 근대의 유토피아 형상 : 허생의 무인공도와 삼봉도, 판미동, 후천개벽신앙과 천년왕국. 정감록

5. 현대의 유토피아 형상 : 이어도 등


이상의 통시적 나열과 양상 검토 후, 이를 다시 종관하여 몇 가지 범주로 묶는다. 예를 들면 청학동과 오복동, 태평동, 산도원 등은 모두 무릉도원형 유토피아로 묶어 종론한다.

          

   예 1:  무릉도원형 유토피아의 존재 양태


문헌 설화를 통해 확인되는 유토피아 가운데는 청학동과 태평동, 이화동, 산도원 등 무릉도원의 변용으로 보이는 일군의 유토피아들이 존재한다. 그 개별 양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청학동 : 지리산에 있다. 첫 기록은 이인로의 《파한집》에 보인다. 지리산의 좁고 험한 길을 기어서 몇 리 들어가면 문득 농사 짓기에 알맞은 널직한 기름진 벌판이 나타나는데 그곳에 청학이 깃들고 있으므로 이름하였다. 거기에는 옛날 세상을 시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던 곳인듯 한데 아직도 무너진 담과 낡은 구덩이가 가시 덤불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이인로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청학동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여러 날을 헤매었어도 끝내 찾지는 못하였다. 이 밖에 청학동에 대해서는 이래 역대 문헌에 수다한 언급이 남아 있고, 적잖은 시문이 따로 전한다.

2. 이화동 : 홍초라는 선비가 금강산에 놀러 갔다가 외금강에서 중을 만났는데 홍생이 동행을 청하였다. 이에 중이 험한 봉우리를 넘어 모래산을 지나 깎아지른 절벽 가의 막힌 길에서 건너편 언덕으로 훌쩍 뛰어 건너가 중의 이끔을 �아 함께 건너 갔다. 그곳부터는 별세계가 펼쳐졌는데, 경치도 기이하고 땅은 기름졌다. 수십채의 집에 모두 중들이 살고 있었고, 골짜기에는 맑은 시내물이 감돌아 흐르고 골안에는 배나무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은 외지인인 홍생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한달 후 홍생이 돌아가려 하자 중은 멍석자리 두 개를 엮어 봉우리 넘어 비스듬한 너럭 바위 위에서 멍석자리를 깔고 미끌어져 내려오니 눈처럼 흰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위에 한 쌍의 뿔같은 것이 마주 서 있었는데, 중이 봉우리로 올라가 돌멩이로 그 뿔을 두드리자 신기하게도 움츠러드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30리쯤 걸어 고성 땅으로 나왔다. 중은 앞서 갔던 곳을 이화동이라 하며 꽃 시절에는 온 골안이 눈 온 날 아침처럼 환하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파수편》에 실려 전한다.

3. 산도원 : 서울 남산 밑에 사는 가난한 선비 이 아무개가 10년을 기약하며 《주역》을 읽었다. 7년 째 되는 어느 날 창밖에 웬 중이 누워 있는지라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자신의 아내였다. 연유를 물으니 먹지 못해 그리 되었다 하므로 이에 집을 나와 첫째 가는 부자 홍동지에게 찾아가 3만냥을 꾸어 아내에게 가져다 주고, 자신은 3년 더 독서하였다. 그간에 아내가 식재하여 수만냥의 거금을 모았다. 10년 기한을 채운 그는 즉시 홍씨에게 돈을 갚고, 아내와 함께 강원도 깊은 산골로 이사하였다. 집터를 크게 잡고 고대광실을 세운 다음 살림집들을 즐비하게 지어 놓았다. 백성들을 모아 살림을 차리게 하니 큰 마을이 되었다. 의식이 풍족하고 모두 일생동안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많은 사람들이 난리에 죽었으나 이 마을만은 병란을 겪지 않았다. 그곳의 이름은 산도원이다. 《파수편》에 나온다. 〈허생전〉의 근원설화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야기이다. 허생의 무인공도 또한 이 설화에서 착목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4. 태평동 : 매창이란 도사가 갑산 땅을 유랑하다 처사 임정수란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태평동의 주인이었다. 태평동은 갑산에서 동북으로 이틀 거리 되는 곳에 있다. 암석이 험준한 이판령을 지나 한 돌을 밀치자 동굴문이 보였는데, 굴 속이 좁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촛불 5개를 다 태운 뒤에야 굴은 넓어졌는데, 다시 2개의 초를 태우자 넓은 연못이 나왔다. 그 위 다리를 건너 다시 3개의 초를 태운 뒤 산 뒤로 난 굴을 나오니 사방 30리 되는 곳이 나타났는데 그곳이 태평동이었다. 맑은 샘과 하얀 돌, 약초와 아름다운 나무가 있었으며 토지는 비옥하여 곡식이 잘 자랐다. 4,5가구가 거주하고 있었고, 뜰에는 옥 같은 화초가 있었고 술동이에는 향기로운 술이 담겨져 있었다. 이에 며칠간 머물며 시짓고 노래하였다. 《청학집》에 보인다.

 5. 오복동 : 오복동 역시 태평동과 비슷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여러 구비 설화에 등장하고 있다.


대개 살펴본 청학동·이화동·산도원·태평동·오복동 등의 공간들은 우리 모두에게 이미 친숙한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태평동 고사의 경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감록의 십승지지설과 관련되어, 김유사란 사람에 의해 양화평·옥계촌 등의 이름으로 이곳 지도가 그려져 유포되자,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이곳을 찾아 몰려 와 비명에 죽은 자가 몇 천명이나 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들을 종합하여 그 지닌 바 공간 의미를 좀더 자세히 살펴 보고, 그 내포와 외연에 대해 검토코자 한다. 대개 이러한 종류의 유토피아는 매우 현실적인 모습의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그 기본 속성상 진보성을 띠거나 개척적 성격의 유토피아는 아니고, 퇴행적이며 폐쇄적인 속성을 지닌 난세의 유토피아이다. 안견의 무릉도원도의 예에서도 보듯 중국 무릉도원의 설화는 이후 윤색되고 각색되어 많은 비슷한 공간들을 창조해 내었다. 위의 제 공간들은 이러한 무릉도원적 유토피아 지향이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음을 밝혀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할 수 있다.

본 소절에서는 이들 공간의 공통점과 변별성을 살핀 뒤, 주로 청학동에 관련된 시문을 분석하여 공간 개념과 의미를 추출해 보고자 한다. 


1) 李鍾殷 譯註, 《海東傳道錄·靑鶴集》(보성문화사, 1986) p.136 참조.


2) 李鍾殷, 앞의 책, p.157 참조. 태평동에 대해서는 Ⅳ장 1절에서 소개한 바 있다.


3) 《靑鶴集》 소재 한시에 대한 검토는 李鍾殷, 〈道家의 漢詩 硏究〉, 《韓國學論集》 第 17輯(漢陽大 韓國學硏究所, 198 ), pp.115-136을 참조할 것.


4) 《破閑集》卷上에 관련 기사 다음에 실려 있다. 河謙鎭, 《東詩話》(아세아문화사 국역본, 1995) p.27에는 靑鶴洞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과 위 시가 수록되어 있다.


5) 柳方善, 《泰齋集》 권 1, 장 11(《韓國歷代文集叢刊》 8권 p.582.). 《東國輿地勝覽》권 30에도 수록되어 있다.


6) 丁若鏞, 《與猶堂全書》 第 1集 第 4卷. 자세한 전후 내용은 沈慶昊, 〈茶山의 薇源隱士歌에 담긴 歸田園 意識에 대하여〉, 《정신문화연구》 제 15권 제 3호(통권 48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pp.101-115를 참조할 것.  


7) 黃元九, 〈韓國에서의 유토피아의 한 試圖 - 板尾洞故事의 硏究〉, 《東方學志》 32輯(연세대 국학연구원, 1982) pp.59-78 참조.


8) 黃元九, 앞의 논문, p.67 참조.


9) 遊仙詩에 대해서는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韓國道敎思想의 理解》(亞細亞文化社, 1990), pp. 99-132와 鄭珉, <遊仙文學의 서사구조와 도교적 상상력>,《韓國道敎와 道家思想》(亞細亞文化社, 1991), pp. 193-218.를 참조할 것.


10) 李穡, 《牧隱集》 권 23(《韓國歷代文集叢刊》 4, p.319).


11) 李崇仁, 〈沙門島懷古〉, 《陶隱集》 권 3(《韓國歷代文集叢刊》 6, p.583.


12) 李鍾殷, 〈高麗後期 漢詩의 道敎的 樣相〉, 《韓國學論集》 第25輯(漢陽大 韓國學硏究所, 1994.8), p.41 참조.


13) 許篈, 《荷谷集》(《韓國歷代文集叢刊》 58, p.357.)


14) 金麟厚, 《河西集》 권 4, 장 2 (《韓國歷代文集叢刊》33권, p.63).


15) 許蘭雪軒, 《蘭雪軒詩集》 附錄 장34(《韓國歷代文集叢刊》67, p.21) : “乙酉春, 余丁憂, 寓居于外舅家. 夜夢登海上山, 山皆瑤琳珉玉, 衆峯俱疊, 白璧靑熒明滅, 睍不可定視. 霧雲籠其上, 五彩姸鮮, 瓊泉數沠, 瀉於崖石間, 激激作環玦聲. 有二女年俱可二十許, 顔皆絶代. 一披紫霞襦, 一服翠霓衣. 手俱持金色葫蘆, 步屣輕躡, 揖余, 從澗曲而上. 奇卉異花, 羅生不可名. 鸞鶴孔翠, 翶舞左右. 衆香馩馥於林端, 遂躋絶頂. 東南大海, 接天一碧. 紅日初昇, 波濤浴暈. 峰頭有大池湛泓, 蓮花色碧葉大被霜半褪. 二女曰 : ‘此廣桑山也. 在十洲中第一. 君有仙緣, 故敢到此境, 盍爲詩紀之.’ 余辭不獲已, 卽吟一絶, 二女拍掌軒渠曰 : ‘星星仙語也.’ 俄有一朶紅雲, 從天中下墜, 罩於峰頂, 擂鼓一響, 醒然而悟. 枕席猶有烟霞氣, 未知太白天姥之遊, 能逮此否. 聊記之云.”


16) 鄭斗卿, 《東溟集》 권 9, 장 2.


17) 許蘭雪軒, 〈白玉樓上樑文〉, 《蘭雪軒詩集》 附錄 장 32(《韓國歷代文集叢刊》67, p.20) : “雙成鈿管, 晏香銀箏, 合鈞天之雅曲, 婉華淸歌, 飛瓊巧舞, 雜駭空之靈音. 龍頭瀉鳳髓之醪, 鶴背捧麟脯之饌, 琳筵玉席, 光搖九枝之燈, 碧藕氷桃, 盤盛八海之影.”


18) 이하 선계 공간의 묘사는 鄭珉, 〈遊仙文學의 서사구조와 도교적 상상력〉, 《韓國道敎와 道家思想》(한국도교사상연구회, 1991) pp.201-205의 내용을 전재하였다.


19) 다음에 제시되는 仙界相은 여러 유선 시문에서의 공간 묘사를 장소별로 모아 정리한 것이다. 이하 각 한 구절을 시문의 한 행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20) 廣寒宮은 月中에 위치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나, 때로 白玉京과 구분이 모호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崑崙山 또한 西極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흔히 三神山과 착종되어 서술되기도 한다. 제 선계가 이들에게 변별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8) 〈解夢〉, 《성소부부고》卷 12 : “自經變故來, 斷制利名, 一志於修煉, 多讀道家經訣以潛心硏究, 則夢輒見紫陽海瓊諸眞, 聆其妙諦, 甚至神飛玉京, 駕爛鶴聽簫於五雲中者, 數水然. 是其役於想者至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