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소주 비켜라!” 당찬 장인정신으로 빚은 ‘XO급’ 쌀 소주
2005서울국제주류박람회장에서 재미있는 술잔 하나를 보았다. 잔을 받치는 높은 굽 안에 방울이 들어 있어 잔을 흔들면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가야 고분에 잠들어 있던 토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방울잔이라는 게 부스 관계자의 설명. 얄팍하면서도 탄탄한 게, 쥐어보니 방아쇠처럼 손가락 마디에 착 감겼다. 방울잔 옆에는 인상적인 술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발 물레의 회전력에 몸을 맡겨 둥근 테 문양을 낸 반투명 유리병이었다.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았다. 술맛도 보기 전에 술잔과 술병에 취하기는 처음이었다.
술병을 들어 상표를 보니 ‘순미주(純米酒)’와 ‘소(燒)’자가 적혀 있었다. 알코올 함량 25%의 증류식 소주(소주는 크게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구분한다. 희석식 소주는 연속 증류하여 만든 주정(酒精, 95% 순도의 에틸알코올)에 물을 희석해 도수를 조절하고 감미한 것으로 ‘진로소주’ ‘산소주’ ‘참소주’ ‘잎새주’ 따위가 대표적이다. 증류식 소주는 한 차례 단식 증류해 원료향이 그대로 스며 있는 소주로 ‘안동소주’ ‘문배주’ ‘진도홍주’가 대표적이다)였다. 희석식 소주가 석권한 한국 땅에서 증류식 소주라니⑦ 맹랑했다. 그것도 여주와 이천 쌀을 원료로 한다고 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술 이름은 ‘소(燒)’가 아니라, 소(燒)자를 둘로 쪼갠 ‘화요(火堯)’다. 지난 설 무렵에 출시됐다니 신참내기 술인 셈이다. 좀 연륜을 더해 시장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겠다 싶을 때 맛을 평해보자는 생각에 지나치려는데, ‘광주요(廣州窯)’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광주요는 한국도자기, 행남자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도자기업체 중 하나다. 도자기 회사에서 술을 만들다니! 이 또한 맹랑한 일이다. 우리 주류업계엔 이런 이력을 지닌 곳이 아직 없다. 아마 도자기를 만들다가 그 안에 내용물을 채우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 일 아닌가.
어찌 됐든 우리 현실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술을, 그것도 하필 도수 높은 소주를 만든 것일까. 그 의문은 더욱 깊어갔고, 결국 ‘신참내기 술’을 찾아 나서게 했다.
화요 공장은 경기도 여주군에, 본사는 서울 삼성동 광주요 빌딩에 있다. 대표는 문상목씨다. 그는 진로소주의 일본 창구인 진로재팬 초대 사장을 했고, 카스맥주 사장을 지낸 전문경영인이다. 그에게 화요가 태어난 배경과 과정에 대해 직접 들었다.
-언제 시작한 겁니까.
“2003년 말에 회사를 설립해서 2004년에 공장을 짓고, 2005년 1월에 41도, 3월에 25도 쌀소주를 냈습니다.”
-웰빙 바람에 저도주가 강세인데 왜 처음부터 도수 높고 값도 비싼 증류식 소주를 만들었습니까
“비즈니스 차원보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시작한 사업입니다. 한국 술의 정통성은 소주에 있다고 봤습니다. 전통적으로 소주는 청주, 약주, 막걸리에서 업그레이드된 술이라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요. 그동안 몇몇 회사에서 증류식 소주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소비자 대부분이 희석식 소주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중 15% 정도는 ‘뭔가 부족하지 않냐’ ‘좀더 업그레이드된 게 없냐’는 불만을 나타내왔습니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시작했죠.”
-증류식 소주에도 향긋한 보리 소주, 수수로 만든 고량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고구마 소주 해서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왜 굳이 쌀 소주입니까.
“우리 식문화의 기본이 쌀이고, 전통적으로 고급이라고 여기는 곡식이 쌀입니다. 막걸리나 약주도 쌀로 만든 것을 고급으로 치잖아요. 그래서 역시 출발은 우리 국민이 익숙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쌀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인은 새로운 술에 대해 호기심보다 거부감이 강한 편인데요.
“과거 새롭게 출시된 술들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가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술이 나와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희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광주요는 보통 고집으로 키운 회사가 아닙니다. 40여 년 동안 사막에 물 붓듯이 브랜드를 키워왔습니다. 장인정신이 있습니다. 명품 술이 나오려면 장인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하루아침에 평가받으려 욕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좋은 품질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인정신으로 빚은 술
-우리 주류시장은 단일 품목의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에 익숙합니다. 증류식 소주는 없는 시장이니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는 없을 테고요.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있는지요 ?
“서울 강남과 서초 지역의 최고급 음식점 300곳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들면 성공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나온 증류식 소주를 보면 밑바닥에서 훑어서 위로 올라가는 마케팅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밑바닥에서 헤매다가 사라져버리더군요. 우리의 목표는 특급 호텔, 고급 한식 및 일식집입니다. 벌써 영업 두 달 만에 음식점 100곳, 호텔 14군데에 들어갔습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하루에 40병 정도가 팔리고 있답니다.”
-새 술은 새로운 문화로 접근해야 할 텐데요. 우리 음주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며, 화요는 그 안에서 어떤 구실을 할 것이라고 봅니까.
“우리 문화는 술에 관대합니다. 술을 즐기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맺힌 한을 풀고, 모임에서 어색함을 푸는 매개체로 사용되는, 질보다 양 위주의 문화였습니다. 이제는 질을 통한 술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특별한 문화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마케팅은 술 이전부터 이미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광주요는 1963년 조태권 회장이 가업을 이어받아 키워온 회사입니다. 도자기 문화를 일구기 위해 생활식기 브랜드 ‘아올다’를 만들고, 그 식기에 담을 음식을 만드는 음식점 ‘가온’을 열고, 그 음식점을 꾸밀 민화와 벽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술을 만들기 시작한 거지요. 그런 총체적인 음식문화 속에 화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식문화를 마케팅하고 있습니다.”
문상목 대표는 화요를 위해 특별 제작한 정병(淨甁)을 내놓았다. 고려시대 사찰에서 많이 사용하던 정병은 목이 길고 배가 넓으면서 둥글고 옆구리에 부리가 있는 형태다. 지난 설에 정병과 방울잔을 담은 14만원짜리 선물용 세트가 1억원 어치나 팔렸다고 한다. 술값은 15만원으로 술병과 술잔 값이 더 비싸게 책정됐는데도 반응이 좋았다는 것. 도자기 사업부터 시작해서 생활식기, 음식, 민화, 벽지 그리고 술까지. 일관된 장인정신보다 셈 빠른 자본논리에 익숙한 우리 현실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다.
여주 화요 공장으로 향했다. 영동고속도로 이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3번 국도를 타고 장호원으로 향하는 길가에 제조장 철골구조물이 야산에 들어서 있었다. 생산을 총괄하는 이는 문세희 전무. 그는 진로에서 23년간 근무하고, 생산이사까지 지낸 주류 전문가다.
공장은 희석식 소주 회사에 비할 게 못 되지만, 소규모 특산주 회사의 규모를 뛰어넘는 본격적인 주류 제조장의 면모를 갖췄다. 아담한 연구실도 있고 스테인리스 발효탱크도 여럿 보였다. 여기에 자동 증미기와 자동 누룩제조기, 대형 증류기까지 갖췄다. 도자기라는 형식 속에 술이라는 내용을 채우고 싶어서 소박하게 시작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소곳하고 살결 고운 소주
문 전무가 공장 문을 열고 앞장을 섰다. 화요는 쌀과 물만으로 만든다. 물은 150m 지하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로 약간의 미네랄 성분이 든 연수를 쓰고, 쌀은 수입 쌀을 쓴다. 박람회에서 봤을 때는 여주 이천 쌀을 사용한다고 하더니 달랐다. 문 전무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여주 이천 쌀로 술을 빚었습니다. 그런데 원료비 부담이 너무 크더라고요. 이천 쌀은 1kg에 2200원인데 중국 쌀은 600원으로 4배 가량 차이가 납니다.”
비싼 소주에 대한 가격 저항을 벌써부터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제조장 안에는 2층짜리 철제구조물이 있고, 그 2층에 고두밥을 찌는 증미기와 누룩을 만드는 제국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원통형으로 생긴 증미기는 쌀을 씻고 불리고 찌고, 제국기(製麴機)는 찐 쌀을 곧바로 식혀서 누룩을 만드는 기계다. 이 공장에서 쌀알 누룩을 만들 때 쓰는 균은 일본에서 수입한 백국균.
2층에서 만들어진 누룩과 고두밥은 발효탱크로 들어간다. 여기에 효모를 넣어 6일 정도 주모(酒母)를 만들고, 거기에 누룩과 고두밥을 넣어 덧술을 만든다. 덧술은 2주가 지나면 알코올 함량 20%의 발효주가 되는데, 이 발효주를 증류기에 넣고 증류해서 41도 술과 25도 술을 뽑아낸다.
이렇게 증류한 술은 지하 저장실 옹기 항아리에서 숙성시킨다. 옹기를 이용하는 것이 화요의 독특한 숙성 방법이다. 옹기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옹기들은 광주요 조태권 회장이 중국에서 직접 흙을 고르고 디자인해 문양까지 넣어서 주문 제작한 것이다. 쌀 소주는 이 옹기에서 3개월 동안 숙성된 뒤에 비로소 병에 담겨 시장에 나간다.
완성된 술의 향과 맛은 어떨까. 25도 화요에서는 사이다에서 나는 듯한 청량한 향이 올라온다.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하여 코끝에 대고 향을 즐길 만하다. 희석식 소주와는 사뭇 다르다. 한 모금 마셔보니 경쾌하면서도 살짝 달콤한데, 쓴맛이 남는다. 입안에 퍼지는 자극이 사납지 않다. 희석식 소주에서 느껴지는,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의 자극적인 메틸 알코올향이 없다. 살결 고운 소주다. 깔끔하고 다소곳한 여자 같은 느낌이다.
화요의 경쾌하고 고운 기운은 첫 번째는 쌀에서 온 것일 테고, 두 번째는 감압증류에서 온 것일 게다. 쌀은 보리나 고구마처럼 강렬한 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당연히 그러하고, 감압증류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전통 방식은 상압증류다. 상압에서 물은 100℃에서 끓고 알코올은 78℃에서 끓는다. 압력을 낮춘 감압상태에서는 40~50℃에서도 알코올이 증발한다. 감압증류를 하면 술에서 탄내가 거의 나지 않고 술맛이 경쾌하면서 뒷맛이 가벼워진다. 이 경쾌한 맛이 젊은층에게 호감을 주기 때문에 근자에 양조장에서 감압식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증류 소주가 ‘왕따’ 당하는 까닭
41도 화요의 향을 맡아보니 콧속에 전류가 흐르듯 찌릿하다. 아세톤에서 느껴지는 휘발성 알코올향이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순간 아득해지는 느낌. 소주의 향을 즐긴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낯선 경험이다. 한입에 털어넣고 “카아!”, 삶의 쓴맛이라도 대신하는 양 토해내는 탄성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본디 소주란 오크통에서 무르익은 위스키처럼, 포도향을 끌어올린 브랜디처럼 향긋한 몸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런 소주 향과 무관하게 살아왔다. 41도 화요는 소주 본래의 몸내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술이다.
우리는 값싼 소주에 익숙해 ‘원샷’이나 ‘병나발 불기’를 즐긴다. 하지만 이는 너무 독한 술버릇이다. 위스키를 병째 주문하고 원샷 하는 것은 위스키 종주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습이라지 않은가. 값싼 소주를 아낌없이 먹다보니 생긴 버릇이다. 진로소주를 많이 마시는 일본인들도 진로소주를 그대로 마시지 않고 물과 반반씩 섞어 마신다. 대체로 25도 소주가 12~13도 수준의 칵테일로 소비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소주가 독한 술로 인식돼 있지 않다.
문 전무도 41도 화요는 스트레이트로 딱 한 잔만 마실 것을 권한다. 그리고 얼음과 1대 1로 섞어 마시는 ‘온더로크’를 권한다. 따끈한 물과 화요를 6대 4의 비율로 섞어 마시면, 향과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한다. 화요는 이런 음용 방법을 마케팅 전략으로 삼고 있다.
증류식 소주는 원래 소주의 대명사였고, 전통소주의 본령이었다. 1965년에 곡물로 소주를 빚지 못하게 되면서, 희석식 소주가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의 대형소주 회사들도 예전에 증류식 소주를 만들었는데, 제도 때문에 희석식 소주 회사로 전환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증류식 소주를 아예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전북 하이트주조에는 보배 시절인 1990년대 초부터 만들어온 증류식 소주로 ‘옛향’ ‘천지’가 있고, 경북 금복주에는 ‘운해’ ‘안동소주 25’ ‘제비원’, 충남 선양주조에는 ‘휘모리’ ‘청담’, 진로에는 ‘레전드’가 있다. 이렇듯 증류식 소주가 제법 있는 편이지만, 소주 회사에서는 희석식 소주 시장을 잠식할까봐 증류식 소주를 띄우지 않는다. 마케팅 현상으로 카니발리즘(cannibalism·자사의 신제품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경쟁사 제품 시장을 빼앗는 게 아니라 자사의 기존제품 판매량을 감소시키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술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쉽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광주요가 화요라는 증류식 소주를 들고 나온 셈이다. 그런데 화요는 평지돌출한 술은 아니다. 보배에서 증류식 소주 ‘옛향’을 만들던 박찬영(78)씨가 고문으로 참여했고, 진로에서 증류식 소주 ‘레전드’를 만들던 김호영(77·지난 봄 작고)씨가 손질해 만들어졌다. 대형 소주 회사에서 경륜을 쌓은 전문가들의 솜씨가 화요에 고스란히 스며든 것이다. 이런 판을 짤 수 있는 것은 광주요가 가진 자본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술문화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화요 서울본사가 있는 광주요 빌딩에서 조태권 회장을 만났다.
-도자기를 만드는 분이 어떻게 해서 술을 만들게 됐습니까.
“세계에 나가면 비즈니스 차원에서 최고 레스토랑, 최고 음식, 차, 술을 맛보는데 그 속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 술 아닙니까. 술은 몇 년산, 몇 년산 해서 2000달러, 5000달러짜리가 많아요. 하지만 음식은 아무리 비싼 그릇에 내놔도 150달러 정도면 끝이에요. 그것을 보고 최고의 술이 나오지 않고서는 우리 문화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우리에게도 ‘경주 교동법주’나 ‘문배주’처럼 문화재가 된 술이 있고, 제법 수출되는 술들도 있습니다. 굳이 직접 술을 빚지 않아도 될 텐데요.
“내 길을 가는 거죠. 내 길은 세계를 향해서 최소한 50년 뒤의 후손에게 전해줄 술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스카치, 코냑, 진, 보드카, 럼 같은 게 다 증류주입니다. 소주도 그렇죠. 우리는 가장 싼 술을 소주라 여기는데, 잘못된 인식이지요. 세계화하려면 세계 수준에 맞는 고급 술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정한 어떤 음식이나 술이 세계를 제패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모두 공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식문화도 그 안에 들어갈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음식이 나가면 우리 술도 나가게 되고, 그러면 도자기 시장도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세계화에 앞서 우리 술이 무엇이냐는 정체성부터 점검해야 할 텐데요.
“이제 시작일 뿐”
“소주는 700년 전 몽골에서 왔고 쌀과 누룩으로 빚었어요. 그런데 옛것에 우리를 너무 옭아맬 필요가 없어요. 세계를 향해 마케팅하는데, ‘우리 것은 이거다’ 하고 좁게 옭아매거나 ‘그것은 우리의 전통술이 아니다’고 배척해버리면 갈 길이 없어져요. 쌀 소주 자체를 넓게 우리 전통술로 보고, 일본이나 중국과 싸울 수 있도록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주의 맥을 잇고, 증류주의 맥을 이어서 세계화하겠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여주, 이천 쌀을 원료로 쓴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입 쌀을 쓰시던데 한 발 물러선 건가요.
“지금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상태입니다. 이천 쌀을 쓰니 도저히 채산이 안 맞아요. 일본에서는 양조미를 따로 재배해 35% 도정해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시장이 있는 거죠. 우리는 이천 쌀을 쓰면 비싸다고 안 먹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만 이천 쌀을 고집하면 돈 키호테가 돼버려요. 모든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입니다. 경제가 커지고 부가 축적되면 특별한 것을 찾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50% 도정한 이천 쌀로 만든 술이 5만원이라고 해도 사먹는 사람이 나옵니다.”
-쌀 소주의 울타리 안에 있기는 합니다만, 엄밀하게 따지면 재료는 수입산이고, 기술은 일본식인데요. 그렇다면 화요의 정체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⑦
“그것도 우리 스스로 목을 조이는 겁니다. 일본인이 우리 기술을 가지고 가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데, 우리의 술을 세계화하려면 그 기술을 다시 되찾아와야 합니다. 지금은 백국이다, 누룩이다 논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못나서 우리 재료를 지키지 못하고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것만으로 하라면 할 재간이 없어요. 우리 균이 아니고 비록 일본의 기술로 술을 빚더라도, 물맛과 쌀맛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만의 독특한 술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게 바로 화요의 정체성이죠.”
모처럼 우리 술의 현실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우리 술의 세계화 전략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조 회장은 직원들에게 “나는 내가 경험하고 배우고 내가 본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내가 최고라는 것이 아니다. 화요는 시작이다. 엄청나게 큰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음식 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 술이다. 우리 자존심을 대신할 수 있는 술, 우리도 고귀하게 여기고 외국인들도 귀하게 여기는 술, 그러면서도 누구라도 감동하는 술, 그런 술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증류식 소주 화요가 그런 자존심을 세우는 술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漢詩에 나타난 유토피아 의식 (0) | 2008.07.20 |
---|---|
잃어버린 청주, 그 가슴 아픈 이야기 (0) | 2008.07.14 |
주당을 울리는 술, 보리소주 (0) | 2008.07.14 |
於處軀尼 (0) | 2008.07.05 |
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0) | 200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