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毒의세계

醉月 2008. 6. 21. 19:55
 
잘못 쓰면 죽이지만, 잘 쓰면 살리는…
지난 4월 27일 고속도로 갓길에서 의문의 변사체 2구가 발견되면서 ‘독(毒)’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신이 처음 발견됐을 땐 수면제 같은 약물 과다복용에 의한 죽음이란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시 결과 한 구의 시체에서 ‘복어 독’의 주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이 검출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약물과 식품독성물질은 식품의약품안전청, 다이옥신 같은 환경독성물질은 환경부,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독성물질은 노동부에서 관장하고 있다. 식품독성물질을 다루는 식약청 산하의 국립독성과학원(NITR) 정수연 연구관은 “지난 2007년부터 독성과학원에서 독성물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며 “1차로 연내 50~60개 동물 독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되며 순차적으로 구축할 계획” 이라고 했다.

독은 크게 천연독과 인공독으로 나뉘며, 천연독은 다시 동물독, 식물독, 광물독 등으로 나뉜다. 인공독은 대량 생산이 가능한 데다, 자연에서 나오는 독보다 다루기 쉬워 자살·범죄에 많이 이용됐다. 하지만 이번 고속도로 의문사가 일반 사건과 다른 특이점은 인공독이 아닌 동물에서 나온 천연독이 검출됐다는 점이다. 극미량으로도 죽음을 부를 수 있는 ‘독(毒)’에 대해 알아봤다.


동물

복어 독
청산가리의 1000배 독성… 해독제도 없어
알 한 개면 13명 치사량… 1~2시간 내 사망


‘죽음과 맞바꾸는 맛’을 가졌다는 복은 그 맛만큼이나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복어 독의 주성분을 이루는 것은 테트로도톡신이다. 테트로도톡신은 청산가리의 약 1000배에 달하는 독성을 갖고 있다. 청산가리는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서 김일성과 극비 회담을 할 때 지니고 갔던 맹독성 물질이다. 테트로도톡신은 진통제로 사용되는 모르핀의 3000배에 달하는 진통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약 42㎎의 복어를 섭취한 후 중독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주로 복어의 피부, 간, 알, 난소 등에 분포하는데 알은 특히 독성이 강해, 알 한 개만으로도 어른 13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한다. 독성과학원에 따르면 복어 독은 체내에 흡수된 뒤 중독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약 20~30분이 걸린다. 사망에 이르기까지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중독 증상이 발생하면 얼굴을 비롯하여 팔과 다리의 감각이 마비되고 음식물을 토해내다가 깊은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제는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내열성으로 보통의 조리 조건으로는 무독화되지 않고 해독제도 아직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복어 독으로 인한 사망률은 최대 60%나 된다. 따라서 복어를 먹을 때는 복 요리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조리한 것만 먹어야 하며 만약 복어 독 중독이 의심되면 중환자실에 입원해, 24시간 이상 치료 받아야 한다.


고둥 독
모르핀보다 진통 효과 1000배 높아
늦봄~초여름 알 밴 조개류 주의해야


조개류에서 나오는 패독(貝毒)도 날이 더워지면 단골로 등장한다. 남해안에서 조개를 양식하는 이모(57)씨는 “조개류는 알을 배면 다 독성을 띠게 된다”며 “수온이 올라가는 늦봄~초여름 사이엔 조개가 알을 배기 때문에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패류에 있는 독은 복어 독과 마찬가지로 식중독의 원인이 되고 운동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성과학원 정해관 연구관은 “대합이나 홍합에 들어있는 색시톡신이 체내에 들어오면 입·혀·얼굴은 물론 손·발까지 마비돼 심하면 운동·언어장애가 나타난다”고 했다. 정 연구관은 “호흡곤란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조개류 중 하나인 바다 고둥은 스스로 독을 만든다. 고둥은 육식동물이다. 자고 있는 물고기를 긴 작살처럼 생긴 치설(齒舌)로 찔러 독을 주입한 후 마비시켜 그대로 삼킨다. 고둥의 독은 코노톡신이라 하는 신경 독의 일종이다. 이 독은 신경세포 통로를 차단하기 때문에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경련을 일으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고둥의 독은 인류에게 도움을 준다. 진통제로 쓰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제약사 엘란(Elan)은 바다 고둥이 만드는 천연 코노펩타이드를 합성해 진통제를 개발했다. 이 약의 진통 효과는 마약성 진통제로 사용되는 모르핀의 약 1000배에 달한다. 때문에 모르핀이 듣지 않는 에이즈나 말기 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뱀 독
살모사 독은 암 전이 억제력 탁월
미국·일본 등서 신약 개발에 나서


우리나라에서 뱀에 물리는 사람은 1년에 409.6명 꼴이다. 이는 대부분 ‘어미를 물어 죽인다’는 살모사(殺母蛇)에 의해 발생한다. 살모사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서식하는 뱀으로 ‘살무신’이라는 맹독을 갖고 있다. 뱀 독인 살무신에 중독되면 출혈과 함께 구토,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맹독성 ‘살무신’이 암 전이를 억제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살무신을 이용한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성과학원 이규식 연구관은 “우리나라의 경우엔 살모사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지만, 각 나라마다 뱀의 특성이 달라 외국과의 국제적 연구 공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관은 “우리나라엔 뱀 독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도 아직 구축되지 못했다”며 “독성과학원이 국내 교수진에 뱀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의뢰, 올 연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도 뱀 독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있다. 앞장선 곳은 전라남도다. 전남도는 2006년부터 특별교부세 20억원을 받아 ‘뱀 독 연구소(KSI)’를 추진하고 있다. 전남도청 보건한방과는 “독사에 물린 사람이 전남에 가장 많다”며 “나비와 곤충 관련 산업이 특화된 함평군에 연구소를 지어 학교 교육과 관광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정광회 교수는 “뱀 독 연구소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약 8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해파리 독
쏘이면 극심한 통증, 심하면 전신마비
중국선 해충 퇴치 농약으로 상업화 성공


2007년 7월, 전남 신안군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이모(44)씨가 독성 해파리에 쏘여 전신마비를 호소했다. 같은 해 7월 거제도에서 수영을 하다 해파리에 허벅지를 쏘였다는 대학생 이모(25)씨는 “한마디로 죽는 줄 알았다”며 “쏘이는 순간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다음부터 바다에 가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해파리는 어떤 독성을 갖고 있기에 쏘이면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해파리의 촉수엔 ‘자포(刺胞)’라는 독 캡슐이 있다. 촉수에 물체가 닿으면 반사적으로 자포에서 침이 나와 독을 쏜다. 해파리는 이 같은 방법으로 먹잇감인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들을 마비시킨다. 해파리는 사람에게도 이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일본의 과학칼럼니스트 다나카 마치는 “해파리 독의 주성분은 단백질로, 피부를 파괴하거나 중추신경을 마비시킨다”며 “쏘인 부위가 붓는 것은 물론 두통과 구역질이 나며 쇼크로 인해 호흡곤란에 빠지기도 한다”고 했다. 해파리 중 특히 강한 독성을 가진 것은 ‘전기해파리’라고도 불리는 ‘고깔해파리’다. 이 해파리에 쏘이면 전기에 감전된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전기해파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2년엔 호주의 퀸즐랜드주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관광객 2명이 해파리에 쏘여 사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파리의 독 역시 약으로 쓰인다. 2005년 중국과학원은 해파리의 촉수에 있는 독을 이용해 복숭아 진딧물 같은 해충을 퇴치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해파리를 농약으로 사용했을 때 해충의 치사율은 무려 98%. 해파리 독 농약은 ‘자연산’으로 사람 몸에 독성이 축적될 우려가 없다고 한다. 해파리 독을 상업적으로 활용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벌 독
눈 쏘이면 시력 잃을 수도 있는 맹독
한방선 “디스크·관절염에 탁월” 애용


벌 독에 의한 피해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동물 독에 의한 중독 사례 가운데 두 번째로 많다. 주로 추석 성묘를 앞두고 풀 베기 작업을 하다 벌침에 쏘이거나 산 속 열매채취 작업 도중 벌에 쏘여 사망하는 사고가 매년 보고된다. 경상병원 최상천 응급의학과장은 “벌 독은 아민류와 펩타이드의 복합 성분으로 구성된 독소”라며 “눈을 쏘이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벌 중 특히 강한 독성을 가진 것은 말벌이다. 말벌에 쏘이면 즉시 심한 통증을 느끼고, 쏘인 부위가 빨갛게 부어 오르게 되며, 전신에 두드러기가 생기기도 하고, 구토와 부종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벌을 자극하지 않는 한 벌에 쏘일 염려는 없다.

하지만 일부 말벌의 경우엔 이유 없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2005년 중국 산시(陝西)성 안캉(安康)시에선 ‘대황봉(大黃蜂)’이란 맹독성 말벌의 공격으로 715명이 다치고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살인벌’에 의한 피해가 크다. 살인벌은 꿀의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브라질의 곤충학자가 만든 일종의 돌연변이 종이다. 성질은 온순하지만 꿀 수확량이 적은 브라질 꿀벌과, 거칠지만 꿀 수집량이 높은 미국 꿀벌을 교배해 만든 신종 벌이다. 이 벌이 사육되던 미국 농업시험장에서 달아나 야생화되면서, 무리를 이뤄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국립독성과학원의 이규식 연구관은 “다행히 우리나라엔 아직 살인벌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야외 활동 시 철저히 벌독 노출을 피하기 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벌의 독은 오래전부터 ‘봉독(蜂毒)’이란 이름으로 한의학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한의과 전문의 김상훈씨는 “봉독은 디스크·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 치료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봉독을 환자의 체질에 맞게 수백분의 일~수백만분의 일로 희석해 주사한다”고 했다. 벌의 독 성분을 최소화하고 혈액을 순환시키는 순기능을 극대화한 치료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