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求道)의 예술혼은 간데없고 부적(符籍) 상술만 판친다
● 방송이 ‘신비한 부적 효과’ 나팔수
● 달마도 팔아 절 지은 청광 화백
● 3분에 1장 그려내는 달마도…‘달마도 공장’이 따로 없다
● ‘수맥파 차단’ 방송출연 달마도, 실험결과는 ‘아니올시다’
● 방송위, 비과학적 달마도 방송 프로그램에 ‘방송중지’ 철퇴
● 7시간에 11억원어치 팔린 TV 홈쇼핑 달마도, 알고 보니 판화
언제부터인지, 무슨 근거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달마도는 강한 ‘기(氣,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그림을 소장한 사람에게 행운을 주고 액운은 쫓는다고 알려져 왔다. 최근에는 달마도가 나쁜 기운이 나오는 수맥을 차단해 병을 막고 치료까지 한다고 해서 부적(符籍) 노릇까지 하고 있다.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에선 연일 ‘달마도를 걸어놓거나 달마도가 새겨진 물건을 소장하면 병이 낫고 행운이 오며 부자가 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선전한다. ‘귀신이 놀라 도망가고, 땅속에 흐르던 수맥이 저절로 끊어진다’고도 한다. 달마도를 그려서 먹고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로 자기가 그린 달마도의 ‘기(氣) 효험’이 더 크다고 다툰다.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을 타고 흐르면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들은 너도 나도 달마도를 사러 나선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가는 것도 예사다. 그들에게 희망을 보장하는 달마도를 그려준 이들은 그 대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수험생용 달마도, 수맥 차단용 달마도, 취직기원 달마도 등 그 종류만도 수십 가지. 도자기, 쟁반, 액세서리, 열쇠고리, 휴대전화 고리, 책갈피, 벼루에 이르기까지 달마가 그려진 공예품과 생활용품들이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물론 제품명 앞에는 ‘행운의’ ‘액운을 쫓는’ ‘수맥 차단용’ ‘질환 치료용’이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표구사, 화랑 등 업계에서 추정하는 달마도 관련 시장은 연 5000억원 규모. 2002년 통계청이 조사한 국내 역술시장(부적 포함)의 규모가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상업 달마도의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국내 최대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쇼핑코너에 들어가 ‘달마도’를 검색하면 160개의 달마도와 달마도 관련 상품이 나온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 옥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적도 달마도이며, 달마도 부적 경매 상품만 190여 종에 달한다. 17명의 스님, 선사, 거사, 화백의 그림이 경매에 올라 있다. 심지어 클릭할 때마다 광고비를 지급하는 인터넷 오버추어 광고를 통해 자신이 그린 달마도를 광고하는 스님, 화가도 있다.
직접 그리지 않고 판화로 찍어낸 달마도가 TV 홈쇼핑에서 시간당 1억5000만원어치씩 팔리고, 공중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달마도를 사기 위해 하루 수천 명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유명 화가를 찾아 나선다.
달마가 도사로 둔갑한 까닭
도대체 이런 미확인의 ‘믿음’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달마도는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로 알려진 ‘달마(達磨, 보디다르마, 菩提達磨) 대사’를 그린 그림이다. 달마는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대승불교의 승려가 된 인물. 520년경 중국에 들어가 9년간 면벽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선종을 창시했고, 소림사(小林寺)에서 참선을 해 소림권법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달마는 불교계에서 깨달음과 선(禪)의 세계, 선무도(禪武道)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달마가 신격화한 것은 그의 삶에 얽힌 설화와 관련 있다.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부덕과 오만을 질타하다 죽임을 당한 달마가 관 속에서 부활해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서쪽으로 떠나갔다(西天行)는 이야기, 그리고 서천행을 하는 달마를 군사들이 쫓아가자 갈대 잎을 꺾어 타고 강물을 건넜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불교의 스승이자 대선사인 달마가 우리나라에서 귀신을 쫓는 ‘퇴마사’나 ‘도사’의 이미지로 굳은 데에는 ‘소림사’의 역할이 컸다. 소림사가 주무대인 홍콩 무협영화, 만화, 무협지를 보고 자란 세대의 머릿속엔 달마대사가 무술의 달인이자 신적 존재로 주춧돌처럼 박혀 있다. 영화, 만화, 무협지에 표현된 달마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고, 강 위를 뛰어 다니며,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온갖 귀신을 혼자 쫓아내는 달마대사는 일반인에겐 신(神) 그 자체다.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절대공력’을 가진 스님이 대부분 달마의 형상을 지닌 것도 그 때문이다.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긴 수염에 펄럭이는 장삼….
그래서일까. 우리 국민에겐 부처님보다 달마가 더 친숙하다. 할아버지 이름은 몰라도 달마는 안다. 대구·경북지역의 소주 제조업체 (주)금복주는 자사가 만든 술을 먹으면 복이 온다는 의미에서 회사의 로고인 ‘복영감’의 얼굴을 달마도에서 차용했다. 달마대사에 대해선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은 영화의 제목이 ‘달마야 놀자’와 ‘달마야 서울 가자’가 된 것도 대중적으로 신격화한 달마의 이미지를 영화사가 상업적으로 이용한 까닭이다.
실종된 ‘원조 달마도’
지금은 달마가 대중적 회화의 소재가 됐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달마도는 선승이나 화가들의 전유물이었다. 현존 달마도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은 조선 중기 묵화와 선종화의 대가 연담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1630년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머릿수건을 덮어쓰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달마를 그려낸 이 작품은 예부터 달마도를 즐겨 그려온 한·중·일 3국의 달마도를 통틀어 ‘최고’라는 극찬을 받는다. 당시 조선에 온 일본 사신은 김명국이 달마도를 그려주지 않자 본국에다 군함 수천 척을 몰고 조선을 침공할 것을 진언하기도 했다. 거칠 것 없이 시원스레 내달리는 김명국 달마도의 묵선과 여백의 조화는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선승의 풍취와 빼어난 예술성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달마도의 가치는 그 필법이나 구성이 ‘무심(無心)’ ‘자유’ ‘절대 공(空)’과 같은 선(禪)의 세계를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김명국의 달마도가 ‘달마도의 지존’으로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윤두서, 김홍도, 장승업에 이르기까지 조선 묵화의 대가들이 그린 달마도에는 이런 선의 세계와 작가정신이 철저하게 녹아 있다. 참선하는 선승들은 달마도의 한 획을 그으면서 깨달음을 얻었고, 화가들은 달마도 한 점에 자신의 예술혼을 담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구도의 수단이자 예술혼의 상징이던 달마도는 이제 구복(求福)이나 액(厄)막이, 무속신앙의 일개 부적으로 전락했다. 예술작품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하기 힘든 달마도가 부적시장에 침투해 그 규모가 기존 부적시장을 능가할 정도다.
하지만 이를 검증하고 차단할 법적, 제도적 장치는 현재로선 전무한 상태다. 점을 보고 점의 결과가 맞지 않는다고 항의하러 가는 사람이 드물듯, 달마도를 산 사람들도 스님이나 화가가 약속한 달마도의 효험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나 주변 환경의 변화로 바라는 바를 얻게 된 사람은 이 모두가 영험한 달마도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달마도의 ‘기(氣) 효과’를 알리는 전도사 노릇을 자처한다.
달마도가 이처럼 액운을 차단하고 행운을 주는 ‘부적 그림’으로 전락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상업 달마도를 직접 그리는 스님, 화가들을 찾아 질문을 던졌다. 이에 더해 누가 이런 유행을 주도했으며 그 계기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답은 마치 사전에 짜고 이야기한 듯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한 화가와 특정 방송 프로그램을 지목했다.
상업 달마도의 탄생
달마도가 구복과 수맥차단용 그림으로 본격적으로 팔려 나가기 시작한 시점은 SBS ‘토요미스테리극장’이 1998년 1월과 2월 청광 김용대 화백의 인생 스토리와 그가 그린 달마도의 수맥차단 효과를 연속 방영한 이후부터라는 것. 기자는 청광 달마도의 유명세를 확인하기 위해 전국 그림의 집결지인 서울 인사동 거리를 찾았다. 미리 섭외하지 않고 무작정 아무 표구사에나 들어가 “청광 김용대 화백의 달마도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구동성으로 “이 바닥에서 청광 모르면 간첩이죠”였다.
경남 고성군의 벽촌에 있는 화가를 서울 인사동 표구사 주인들이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들은 “지난해까지 하루에도 몇 명씩 청광 달마도 액자를 맞추러 오는 손님이 있었고 요즘도 일주일에 몇 명씩은 온다”고 했다. 김 화백의 화실이 있는 부산의 표구사 주인 P씨는 “김 화백의 화실(경남 고성)과 가까운 부산에는 솔직히 청광의 달마도로만 먹고 사는 표구사도 있다”고 했다. 표구사 주인들은 한결같이 “전국의 이름난 표구사 중에 청광 작품을 표구하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음은 부산의 표구사 주인 K씨와 상업 달마도를 그리는 화가 P씨의 증언이다.
“1998년 이후 김 화백에게 달마도를 구입하기 위해 평일엔 40∼50명, 주말이면 많게는 수백 명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찾아간다. 성수기나 관광철이 되면 하루 2000∼3000명이 몰려가기도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난해까지는 그랬다. 아무리 그림을 빨리 그린다해도 어떻게 그 수요를 감당하는지 놀랍다. 얼마 전까지 주문을 하면 6∼7개월 후에야 그림을 받을 수 있었다.”
화가와 표구사 주인들의 증언은 김 화백이 언론에 밝힌 사실과도 일치하며, 경남 고성의 인근 주민들도 확인을 해줬다. 달마도를 고성군의 김 화백 화실(달마선원)에서 직접 구입한 사람들이 인터넷에 공개한 달마도 가격은 반신상이 10만∼50만원, 전신상은 100만∼200만원이다. 가장 낮은 가격으로 계산하더라도 1998년 이후 김 화백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김용대·달마도’를 쳐봤다. 그러자 관련 블로그와 질문 코너가 쏟아진다. 각 블로그에는 김 화백의 인생역정을 다룬 신문, 잡지의 글과 방송에 나온 일화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었다. 네티즌들의 가장 흔한 질문은 ‘달마도를 구입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와 ‘방송에 나왔다는데 사실인가요?’였다. 네티즌들은 서로 다른 블로그나 웹 페이지에서 퍼온 글로 답을 해준다. 김 화백의 화실 전화번호를 직접 가르쳐주거나 인터넷 카페 주소를 알려주는 이도 있다. 김 화백에 대해 소개한 각종 매체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민화(民畵)를 그리던 김용대 화백은 전국을 돌며 민화를 수집하고 달마도를 무료로 그려줬는데 그 숫자가 10만장에 달한다. 그의 달마도 무상 보시(布施)는 1982년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1975년 달마대사가 꿈에 나타나 달마도를 그릴 것을 명령한 후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달마를 단숨에 그려냈다. 김 화백의 달마도에서는 강렬한 기(氣)가 나오며, 그가 직접 그린 달마도를 소장한 개인이나 가정에는 행운이 오고, 수맥을 차단하는 신비한 효과가 있다. 이는 1998년 1월과 2월 SBS ‘토요미스테리극장’에 소개된 내용이다. 김 화백은 방송 이후 달마도를 그려달라는 10만통 이상의 편지를 받고 무서워 일본에 도피한 적도 있다.”
의문 커지는 청광 달마도
김 화백의 화실인 달마선원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봤다. 언론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올려놓았을 뿐, 김 화백의 그림을 붙이면 수맥이 차단된다거나 복이 온다는 내용은 직접 광고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카페에 올려진 동영상에서 그는 관광버스를 대절해 찾아온 방문자들에게 “꿈에 달마대사가 나타나 자신을 그림으로 옮기라고 한 이후 달마도를 그리고 있다. 무상으로 보시도 많이 했다. 꿈에 달마대사가 보이면 손님이 많다. 나의 달마도에선 기가 나온다. 이 달마도를 사 가면 생활에 변화가 올 것이다”고 말한다. 수맥차단 효과만 빼고는 언론에 나온 내용과 다를 게 없다.
이 카페의 메모장을 보면 달마도의 가격은 전화문의나 직접 방문을 통해서만 공개하고, 지난해까지 달마도는 직접 방문한 사람에게만 팔았으며, 대금을 지급하면 5∼6개월 후에나 달마도를 받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직접 방문하면 바로 달마도를 줄 수 있으며 우편배달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달마선원측은 “달마도에서 기가 나오냐”고 물으면 떳떳하게 “그렇다”고 답하지만 “수맥이 차단되느냐”고 물으면 “방송을 보라”고 권한다. 한 네티즌이 달마선원 카페 게시판에 “청광 달마 그림의 수맥차단 효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냐”고 묻자 달마선원측은 “인터넷 야후 검색창에 ‘청광 달마도’를 치시면 웹문서에 모 시인의 홈페이지가 나오는데 거기에 수맥파가 차단되는 동영상이 나온다. 직접 보라”고 했다.
모 시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실제로 동영상 플레이어가 달려 있다. 제목은 ‘SBS 토요미스테리극장 신비의 달마도’. 동영상을 작동시켜 그 내용을 보니 김 화백의 달마도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토요미스테리극장’은 귀신 이야기, 혹은 방송국에 제보된 생활 주변의 흥미거리를 단역배우를 동원해 극화한 프로그램으로 사건이나 현상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혀 나가는 시사다큐, 예를 들어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먼 순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SBS는 1998년 1월24일(30회)과 3월14일(36회), 1999년 1월30일(최종회) 등 1년 사이에 김 화백과 그의 달마도에 대한 프로그램을 3차례 내보냈다. 동영상에 나온 프로그램은 두 번째 방송된 것으로 그 진행방식은 예능 오락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시사 다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진행방식의 시사적 성격과는 달리 객관성 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우선 1998년 1월24일 방영된 ‘달마도에 얽힌 사연’은 “민화를 수집하고 그리며 전국을 떠돌던 김 화백의 꿈에 달마대사가 나타나 자신을 그려 돈을 벌라고 했다. 그때부터 한 번도 보지 못한 달마대사의 그림을 금방 그릴 수 있었다. 수만 명에게 무상으로 달마도를 그려줘 많은 사람의 집에 행운이 따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김 화백과 그가 소개한 사람들의 주장을 아무런 검증장치 없이 극화하거나 그대로 중계한 것이다. 김 화백의 달마도는 기존 달마도의 형태와 큰 차이가 없어 “꿈에 나타난 달마대사를 그대로 그렸다”는 부분도 증명하기 어렵다. 더욱이 김 화백이 무상으로 달마도를 그려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취재도 없었다. 달마도를 받은 후 행운이 찾아왔다는 사람들에게 그 행운이 달마도와 직접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특히 김 화백을 잘 안다는 사람들은 김 화백이 지난 30여 년간 달마도를 그렸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한다. 혹자는 “그가 달마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밖에 되지 않고 이전에는 독수리 그림 등 다른 민화를 주로 그렸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과 대전, 부산 소재 표구사 주인 대부분은 “워낙 똑같은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그런지 10년 전 그림에 비해 현재의 달마도는 작품의 질이 매우 떨어진다”고 했다. 어쨌든 김 화백은 이 방송이 나간 후 국내외로부터 ‘10만통이 넘는’ 편지를 받게 됐다.
달마도 방송의 이상한 실험
시청자에게 김 화백의 달마도에 ‘신비한 능력’이 있음을 각인시킨 것은 방영 8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에 동영상이 떠돌아다니는 ‘토요미스테리극장’ 36회분이다. 첫 번째 프로그램을 본 한 제보자가 ‘토요미스테리극장’ 제작진을 찾아오는 부분으로 시작된다. 자신을 수맥전문가라고 소개한 이 사람의 제보 내용은 “첫 번째 프로그램이 나오는 TV 화면을 보는 순간, 김 화백의 달마도에서 많은 기가 나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달마도는 수맥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음이 확실하다. 이를 내가 증명할 수 있다”는 것. 당시는 수맥(수맥파)의 해로움에 대한 학자들의 논문이 속속 등장하고, 이에 따라 전혀 검증되지 않은 수맥파 차단 관련 상품이 쏟아져 나오던 무렵이다.
이 수맥전문가는 수맥 탐사도구인 ‘L-로드’를 들고 수맥차단 효과를 실제로 보여줬다. L-로드는 ‘ㄱ’자로 구부러진 쇠막대기로, 양손에 쥐고 있으면 평소에는 평행 상태를 유지하다 수맥이 흐르는 지점과 같이 기(氣)와 에너지가 방출되는 곳에 가면 저절로 안으로 모여 ‘X’자를 이루는 기구.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수맥을 찾는 도구로 사용된 이래 현재까지 모양과 재질만 바뀌었을 뿐 지하수를 찾는 수맥전문가(맥다우저)들이 즐겨 사용하는 탐사장비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이고 그 원리가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아 과학계에서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제보자인 수맥전문가는 방송국 내부와 방송국에서 섭외한 가정에서 L-로드가 X자로 모이는 지점, 즉 수맥이 흐르는 지점을 찾아낸 뒤 김 화백의 달마도를 맞은편에다 붙이게 했다. 그랬더니 제보자가 들고 있던 L-로드는 X자에서 평행상태로 바로 되돌아갔다. 방송은 이를 “수맥이 차단된 증거”라고 했다.
제보자의 눈을 가리고 같은 실험을 한 결과도 마찬가지. 객관성을 더한다며 담당 PD도 L-로드를 들고 직접 실험에 참여했는데 같은 결과가 나왔다. 미대생을 데려와 김 화백의 달마도를 모사하게 한 뒤 같은 방식으로 L-로드 실험을 했으나 이것은 수맥차단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행자들의 입에서는 ‘놀랍다’는 탄성이 쏟아졌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제보자와 해당 제보가 사실임을 증명한 전문가가 동일인이라는 점에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TV를 통해 본 달마도에서 엄청난 기를 느꼈다는 대목도 황당하지만, 제보 내용을 제보자 자신이 증명하도록 한 행태는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L-로드가 사람의 의지에 따라 모았다, 폈다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실험의 공정성에는 의문이 더해진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수맥전문가를 찾기 위해 정부 공인 한국수맥협회와 민간학회인 한국수맥학회(회장 류욱현)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웬만한 수맥전문가라면 모를 리가 없는데 우리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시 프로그램을 제작한 담당 PD는 “이 제보자가 자신을 온천 개발업자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SBS측은 홈페이지에 있는 ‘지난 방송 다시 보기’ 코너에서 김 화백의 달마도 관련 3회 방송분을 삭제하고 다른 프로그램을 넣어놓았다. SBS의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SBS-i 관계자는 “방송위원회나 자체 심의에서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다시 보기를 할 수 없도록 한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시간이 많이 지나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림값이 ‘보시금(布施金)’인 까닭
9월5일, 김 화백의 달마도를 구입하기 위해 경남 고성의 달마선원을 찾았다. 예약을 해야 달마도를 받고 김 화백도 ‘친견’할 수 있다고 해 방문 전날 달마선원에 예약전화를 했다. 상담원은 “이전에는 5∼6개월씩 기다려야 했으나 최근에는 직접 오면 바로 달마도를 줄 수 있다”며 “김 화백이 마침 내일 아침에 이곳에 계시니 운이 좋다”고 했다. “방송에 나온 것처럼 진짜 기가 나오고 수맥 차단의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상담원은 “내일 아침에 와서 김 화백에게 직접 들으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른 새벽 서울을 출발해 달마선원이 있는 경남 고성군 개천면 청광마을까지 가는데 근 5시간이 소요됐다. 고성군에 들어서자 달마선원 안내간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돼 있었다. 경남관광협회와 고성군청이 펴낸 관광지도에도 달마선원이 표기되어 있을 정도. 인근 주민들에게 김 화백의 화실에 대해서 물었다.
“청광사 말인가요? 어이구 거기 스님 달마도 받으려고 전국에서 버스 대절해서 찾아와요. 돈을 갈고리로 긁어요. 저기 궁전같이 큰 건물이 바로 청광사예요.”
주민들은 김 화백을 ‘스님’, 달마선원을 ‘청광사’라고 불렀다. 달마선원에 도착한 후에야 주민들이 왜 이렇게 알고 있는지, 또 달마도 판매대금을 왜 굳이 ‘보시금(布施金)’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김 화백은 이곳에 대웅전과 종각, 재실 등 건물 4채로 구성된 ‘청광사’라는 절을 세웠다. 웬만한 사찰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규모. 김 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달마선원도 그 안에 있다. 김 화백은 달마도를 팔아 번 돈으로 자신의 생가 터 주변 땅을 매입하고 그 일부에 웅장한 절을 지어 주지 스님(조계종)을 모셨다(등기부상 토지·건물 소유주는 김 화백의 아들).
달마도를 파는 행위가 ‘보시’가 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가가 그림을 팔면 사업소득이 발생해 세금(소득세)을 내야 하지만, 절에 들어오는 보시금은 세법상 종교단체 기부금으로 인정돼 세금을 내지 않는다. 다만 기부금을 낸 사람이나 기업은 연말정산 때나 법인세를 낼 때 전액 비용처리를 받을 수 있으나 달마선원은 달마도를 산 사람들에게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았다.
확인 결과 청광사는 2005년 6월 ‘달마선원’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로 등록됐고, 김 화백은 ‘청광’이라는 법명의 스님으로 등록됐다. 법화종 총무원 관계자는 “김 화백이 스님은 맞지만 삭발을 하지 않아 주지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청광사 신도회장 최모씨는 “2005년 6월1일 이전에는 절로 등록되지 않았다. 절로 등록하고 나서 얼마 후 세무조사가 있었는데, 사찰로 등록되기 전에 얼마만큼의 달마도를 팔았는지 알 수 없어 세무조사는 무산되고 대신 인정과세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불교에서 보시란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 행위’를 뜻한다. 김 화백의 달마도 판매대금이 어떻게 해서 보시금으로 변해 면세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또 그가 신도나 네티즌에게 자신을 스님으로 소개하지 않고 화백이나 선사로 부르게 하면서도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氣치료’까지 하는 스님 화가
“보시금 대장에 이름과 주소 성명 연락처를 적고 무엇을 살 것인지를 기입하세요. 이것은 10만원, 저것은 12만원, 20만원, 50만원, 100만원, 200만원입니다. 큰 그림은 주문하고 좀 기다려야 해요.”
달마선원의 달마도 판매원(보살)은 “올 초에 주문한 사람들에게 지금 달마도를 발송하고 있는데 손님은 이렇게 바로 받아가니 운이 좋다. 이 그림은 새벽에 선사님(김 화백)이 다 그려놓으신 것이다”고 했다. 판매대장에 이름, 주소, 연락처를 기입하고 10만원, 12만원 하는 달마도를 각각 한 점씩 두 점을 구입했다. 달마도는 견본 그림의 모사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판매원의 말과 달리 김 화백은 선원에 없었다. 기와 수맥차단 효과에 대해 묻자 달마선원 관계자들은 언론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
김 화백을 기다리는 동안 고성군청 문화관광과에 들러 청광사에 대해 알아봤다. 군청 관계자는 “요즘 사찰은 시군에 등록하지 않고 종단에 등록하기 때문에 사찰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관광지가 된 것은 틀림없다. 관광버스가 자주 오는 것만은 사실이다”고 말한다. 그는 달마선원에서 나온 광고전단지를 복사해줬다. 전단지에는 김 화백의 주소와 연락처가 쓰인 명함이 붙어 있었다. 내용은 인터넷과 다를 바 없었다.
‘청광 김용대 화백은 1939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 원래 민화를 그리던 청광화백은 1975년 기이한 인연으로 달마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10만장의 달마도를 그려 보시해왔다. 1998년 2월 SBS 토요미스테리에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으며 특히 청광화백의 달마도는 수맥이 차단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달마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달마선원으로 돌아가니 청광 달마도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윤모(35)씨 가족이 김 화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윤씨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고 가족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 구미에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그들은 김 화백을 보기 위해 4시간째 절 주변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김 화백과 청광 달마도의 신비함을 알게 됐다”는 그는 김 화백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SBS ‘토요미스테리극장’이 방송된 후 김 화백이 달마도를 그린 사연과 달마도의 기적 효험에 대한 내용은 경인방송과 MBC 아침 프로그램에도 잠깐씩 방송됐고, 지방 방송도 계속 다뤘다. 지방지와 불교 관련 신문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얼마 후 도착한 김 화백은 윤씨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각종 언론에 나온 자신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한 뒤 자신과 자신이 그린 달마도에서 실제로 기가 나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직접 L-로드를 잡았다. L-로드는 김 화백과 악수하거나 악수한 사람과 손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어지럽게 돌아갔지만 접촉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김 화백은 이를 보고 자신에게서 엄청난 기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김 화백이 그린 달마도 앞에서도 L-로드는 빠르게 X자를 그렸다.
그러고는 윤씨 가족들이 모두 아파 보인다면서 그들의 머리를 잡고 기 치료를 시작했다. 김 화백은 “내가 이렇게 만져주면 무언가 변화가 올 것이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윤씨 가족들은 “감사하다”며 연신 절을 했다. 그때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김 화백은 당황하며 서둘러 달마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윤씨 가족 3명에게 판매할 달마도 3개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9분20초. 달마도 하나를 그리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김 화백은 한 작품씩 그리는 것이 아니라 3장의 화선지를 올려놓고 글씨, 달마의 얼굴 윤곽, 눈과 코, 수염을 각각 따로 그려넣었다. 완전 분업체계가 이뤄진 ‘달마도 공장’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고서화 감정가 진동만(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예림화랑 대표)씨는 기자가 가져간 청광 달마도를 보고 “예술 외적인 가치는 모르겠지만, 예술적 가치는 논할 수 없는 그림”이라고 잘라 말했다.
수맥파 차단효과 없다?
달마선원에서 구입한 청광 달마도가 수맥 또는 수맥파를 차단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정부 공인 한국수맥협회 소속 수맥전문가 2인과 민간학회인 한국수맥학회장에게 청광 달마도의 수맥차단 효과를 검증케 할 요량이었다. SBS ‘토요미스테리극장’과 같은 방식으로 검증하려던 기자는 이내 벽에 부딪혔다. 수맥전문가들은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달마도에서 기나 에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은 일부 인정할 수 있으나 그 달마도로 인해 흐르던 수맥이 끊기거나 수맥파가 차단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한사코 수맥차단 실험에 난색을 표한 것. 한국수맥협회 대전교육원 김동환 원장은 “결과가 뻔한 실험을 하라는 것은 수맥인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실험을 끝내 거절했다.
간신히 다른 두 사람을 설득해 방송에 나온 방식 그대로 실험을 했지만 L-로드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수맥파가 차단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국수맥학회 류육현 회장(철학박사, 한국풍수명당학회장)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우물(지하수)에서 직접 실험을 해 보였다. 류 회장은 “정말 수맥을 차단하는 달마도가 있다면 10억원이라도 사겠다”며 “L-로드가 수맥을 찾는 데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전혀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만일 청광 달마도가 수맥 자체를 차단한다면 흐르는 지하수 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야 하고, 수맥파를 차단한다면 L-로드가 평행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예전에도 한 스님이 자신이 그린 달마도의 수맥파 차단 효과를 검증해달라고 해 실험을 했는데, 결국 가져온 달마도 수백 장을 모두 불태우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1층 로비에서 한 한국수맥협회 울산교육원장 김명신씨의 L-로드 실험결과도 마찬가지. 그는 미국에서 수입한 가우스 메터(지구 자기장 측정기)로도 실험을 했다.
과학계에서 수맥을 찾는 방법에는 땅에 전류를 흘려 수맥(지하수)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전기·전자파 탐지법과 지하수 주변에 형성된 자기장을 측정하는 지자기파 탐지법이 있다. 물이 전기를 잘 통하게 하는 전도체이자 그 자체가 전기를 띤 물질이고, 이 때문에 흐르는 물 주변에 자기장이 형성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탐지법들이다. 그러나 청광 달마도를 걸어놓았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자기장 측정값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청광의 달마도에 수맥파 차단 효과가 있다면 달마도를 수맥이 흐르는 방향과 마주보게 붙여놓았을 때 측정된 자기장이 극히 낮은 값으로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실험에선 그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달마선원, “우리가 자랑한 적 없다”
대전시 대덕단지 안에 있는 정부산하기관 한국지질자원연구소를 찾아 청광 달마도에 수맥차단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부탁했다. 이곳은 앞에 말한 3가지 과학적 방법으로 지하수를 찾아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연구원들이 대부분 박사급인 만큼 지하수를 찾는 데 있어서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지반안전연구부 지반탐사연구실 박삼규 박사는 기자의 제의를 거절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달마도를 그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수맥파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현존하는 과학의 원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지하수 자체나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의미한다면 달마도에 어떤 특정 물질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한지에 먹물로만 그려졌다면) 지하수에 흐르는 자기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하수에 흐르는 전류의 값을 변화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실험할 가치도 없고, 국가 예산을 들여 그런 실험을 할 수도 없다.”
SBS ‘토요미스테리극장’ 담당 PD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무상으로 달마도를 그려주는 김 화백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해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방송이 이렇게까지 악용될 줄은 몰랐다. 김 화백이 달마도를 돈을 받고 팔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며 방송을 할 때와는 다르게 많은 부분이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깝다. 달마도가 이처럼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것을 제재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방송 제작과정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달마선원측은 이런 주장에 대해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반박한다.
“선사님(김 화백) 본인이 참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증을 한 후 선사님의 달마도 기(氣)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선사님의 달마도를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선사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달마사상으로 선 수행을 해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자는 것이다. 달마도에서 기가 나온다는 사실은 기 전문가들이 찾아와 밝힌 것이지 선사님께서 ‘내 그림에서 기가 나온다’고 자랑하고 다닌 적은 한 번도 없다. 기 전문가가 그림에서 기가 방사된다고 말할 때도 ‘나는 달마도를 그려 많은 분에게 보시하는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부디 그러한 말에 현혹되지 마시기를 부탁드리고, 이상한 점이 발견되거나 선사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 같은 것을 보시면 이 카페에 올려주시기 바란다.”
공중파 따라 하는 케이블 방송
달마도를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기업형으로 판매하는 스님도 있다.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서 흔하게 보는 달마도는 해운스님(일붕선교종)이 제작한 황금기(氣) 달마도. 인터넷에는 이 달마도를 판매하는 쇼핑몰만 20여 개에 달한다. 한 점당 가격은 14만8000원.
이 달마도가 유명해진 것도 ‘방송의 힘’ 때문이다. 6개 방송채널사용 사업자(PP)가 지난해 9월24일부터 근 한 달여 간 각 지역 케이블 방송을 통해 내보낸 ‘신비한 기의 세계 달마도’ 프로그램과 이어 방송된 해운스님의 달마도 상품광고가 바로 그것.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달마도에서는 특별한 기가 나오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이 병과 가정의 우환이 없어지는 체험을 했으며, 해운스님의 달마도는 다른 달마도보다 효험이 있다”는 것. 방송 내용의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진행자 : 부산 금정구의 달마원 원장이신 해운스님, 이분의 달마도는 그 어떤 달마도보다도 힘이 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데요.
체험자 2 : 이사하고부터 밤만 되면 무섭고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해운스님의 달마도를 걸고부터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내레이션 : 특히 해운스님의 달마도를 소장한 사람들 중에 이런 달마도의 효험을 느낀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것을 사람들은 해운스님의 수련이 달마도를 통해 발현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진행자 : 사람들은 그리는 사람이 정성을 다하고 온몸의 기를 붓을 통해 그림에 전달한다면 바로 그런 수련의 기가 달마도 안에 깊이 배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우환을 없애주는 그런 신비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체험자 3 : 저는 운전을 많이 하고 다니다보니 항상 불안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일을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차가 거의 폐차 직전까지 갔는데 저는 멍만 조금 들었을 뿐 전혀 다치질 않았습니다.
진행자 : 믿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경험한 사실이라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달마를 새겨 넣은 각종 액세서리를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달마도를 집 안에 또는 사업장에 걸어놓고 마음에 위안을 삼고 의지를 하고 염원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7시간에 11억원어치 팔린 ‘판화 달마도’
이런 내용의 프로그램에 이어 달마도 광고방송이 나간 후 해운스님의 달마도가 얼마나 팔렸는지에 대해선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추측은 가능하다. 방송이 나간 지 4개월 후인 올 1월9일부터 21일까지 우리홈쇼핑은 총 7회(1회당 방송시간 1시간)에 걸쳐 해운스님 황금기 달마도를 정식 상품으로 판매했다.
결과는 놀랍다. 1시간에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 해운스님 달마도 한 세트(달마도 그림 액자와 카드, 열쇠고리 등) 가격이 14만8000원이므로 시간당 약 1000점씩 총 7000점 이상이 팔려 나간 셈이다.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이 나간 후 각 인터넷 쇼핑몰에는 방송 내용에 나온 ‘행운과 병 치료’ 효과에 더해 ‘수맥파 차단효과도 있다’는 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해운스님은 어떻게 이처럼 많은 그림을 한 번에 그릴 수 있었을까.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해운스님의 달마도 상품설명에는 해운스님이 직접 그린 ‘진품’ 또는 ‘정품’이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씌어 있다. 하루에 70장을 그린다 해도 100일 이상이 소요된다. 취재 결과, 광고와 홈쇼핑에 나온 달마도 그림은 해운스님이 그린 그림을 판각한 후 금가루로 찍어낸 판화, 즉 영인본(影印本)이었다.
해운스님의 달마도를 제작 판매하고 있는 부산 달마원측은 “영인본이라고 화면 우측 하단에 표시했으며 달마도의 눈만은 해운스님이 직접 찍어넣고 각각 봉안식을 통해 기를 불어넣은 상품”이라고 밝혔다. 또 “‘진품’이라는 단어는 해운스님이 직접 그린 작품을 판각했다는 의미이며, ‘정품’은 홈쇼핑 방송에 나간 그 제품이 맞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홈쇼핑 방송을 확인한 결과, 화면 우측하단에 작은 글씨로 ‘영인본’이라고 씌어 있었지만 이마저도 빠르게 화면이 바뀌어 시청자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려웠고, 더구나 홈쇼핑 진행자인 쇼 호스트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케이블 방송의 ‘신비한 기의 세계 달마도’ 프로그램에는 그 어디에도 해운스님의 달마도가 영인본이라는 사실이 나와 있지 않았다.
더욱이 ‘신비한…’ 프로그램은 방송 한 달 후인 지난해 10월31일 방송위원회로부터 ‘해당 방송 프로그램 중지’ 및 ‘시청자에 대한 사과’ 등 중징계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방송위는 당시 이 프로그램이 “달마도에 특별한 기가 있어 병과 가정의 우환을 없애준다는 비과학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특히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특정인물의 ‘달마도’가 다른 ‘달마도’보다 효험이 있다는 등의 간접광고를 했다”고 밝혔다. 또한 “금번에 제재조치를 받지 아니한 다른 방송사업자가 방송중지 프로그램인 이 방송을 편성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으나 우리홈쇼핑은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부분을 피해가면서 달마도 판매방송을 진행했다.
방송위 관계자는 “혹세무민하는 방송 내용도 문제이지만 직접 그리지 않은 상품을 진짜 그린 그림인 것처럼 방송한 부분에도 문제가 있다. 재편집 방송을 막을 수 없는 것은 현행 방송법의 한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운스님은 원래 공예 기능장으로서 묵화를 배운 화가 출신이 아니며, 스님이 된 것도 달마도를 팔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달마도를 제작 판매하는 달마원은 사찰이 아니라 해운스님의 공예방이다.
당뇨 치료한다는 ‘달마도 물컵’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들어가 ‘달마도’를 검색하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봉암 백남운 화백 달마의 집’ 사이트가 뜬다. 백 화백은 네티즌이 클릭할 때마다 광고료를 내는 ‘오버추어 광고’란에 자신의 사이트를 등재했다.
그는 “내 달마도가 ‘수맥파 차단용’ 달마도의 효시이고, 달마도 크기에 따라 기의 발산 거리가 다르며, 이 때문에 수맥파가 차단되는 공간의 면적도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달마도 크기가 작으면 작은 평형의 공간에 걸어야 하고 큰 공간에는 큰 달마도를 붙여야 한다는 얘기다. 백 화백의 달마도는 크기에 비례해 가격도 올라간다. 3평 정도의 수맥을 차단하는 데 필요한 달마도의 가격은 13만∼22만원. 큰 평형용은 80만원을 호가한다.
그는 최근 “산소에 내 달마도를 가져가 사방에서 태우면 수맥이 끊겨 봉분에 풀도 새로 나고 자손에게도 좋다”며 ‘산소 수맥차단용’ 달마도를 팔기 시작했다. 추석 한 달 전부터 벌초가 시작되는 점을 노린 달마도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백 화백은 “산소에 잔디가 자라지 않거나 봉분이 황폐한 것은 수맥의 영향이며 이는 자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산소에 흐르는 수맥의 흐름에 따라 달마도를 태우면 수맥이 차단된다”고 밝혔다. 7월2일부터는 수험생용 달마도 주문도 받고 있다.
심지어 그는 “달마도가 그려진 ‘기(氣) 물컵’에 커피나 수돗물을 넣어 먹으면 맛이 순해지고, 당뇨환자들의 당뇨수치 조절에 아주 좋은 효과를 낸다”고 선전한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의해 치료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의료상품 광고로 제재 대상이 될 만한 문구.
백 화백은 사이트에서 “1998년 8월 KBS 2TV ‘수맥 달마도’, 2004년 3월 SBS ‘백만불 미스테리’, KBS 2TV ‘무한지대 큐’ 프로그램을 통해 수맥차단 효과가 입증됐다”고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 내용은 방송중지 조치를 받은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처럼 달마도를 붙인 후 수맥이 끊겨 돈을 벌었다거나 병세가 좋아졌다는 달마도 구입자의 체험담으로 꾸며졌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있던 사람이 일을 하러 나갔다’ ‘어머니의 머리에서 새 머리카락이 났다’….
방송에서 백 화백의 달마도에서 기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 행해진 실험은 오링 테스트(Bi-Digital O-Ring Test). 오링 테스트는 체질을 알아보는 방법의 하나로, 우리 몸에 긍정적인 자극이 오면 근력이 강해지고 부정적인 자극이 오면 근력이 약해진다는 원리를 응용한 자극 측정법이다.
근력측정용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흔히 손가락으로 하는 테스트는 실험자나 피실험자 사이에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 정확한 실험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모 방송에선 이를 기가 나오는 증거라며 백 화백의 달마도가 병을 치료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반면 SBS ‘백만불 미스테리극장’은 8년 전 방영된 ‘토요미스테리극장’과는 달리 각종 과학적 측정 장비와 의학적 검사 장비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달마도를 붙이면 잠을 편안히 잘 수 있다’ ‘달마도를 보면 기 때문에 몸에 열이 난다’ ‘달마도가 수맥파를 차단한다’ ‘달마도는 전자파를 상쇄시킨다’는 속설이 의학적,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그런데 백 화백의 달마도 판매 사이트에 있는 동영상에는 이런 실험결과가 일절 나오지 않는다. 백 화백은 전체 방송분 중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온 실험 장면은 모두 빼고 달마도를 구입한 체험자의 주관적인 느낌만을 편집해 동영상으로 올려놓았다. 백 화백은 “SBS의 실험 방법이 잘못됐다. 예를 들어 수맥파를 차단하는 실험에서 수맥파가 흐르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해야 하는데 땅에 엎어놓고 했기 때문에 잘못된 실험결과가 나온 것이다”고 반박했다.
이외에도 달마도가 수맥을 차단하고 병을 치료하며 행운을 가져온다며 달마도 판매에 열을 올리는 곳은 부지기수다. 강원대 통신연구소에 입주한 업체가 열어놓은 정람스님 신수부적 사이트는 달마도를 대놓고 부적으로 취급한다. 대한민국 서화대전 최우수상 등 각종 서화상을 휩쓴 정람스님의 달마도는 이곳에서 부적으로 변신했다.
신수부적 사이트는 “정람스님의 부적이 2004년 KBS ‘VJ 특공대’, KBS ‘세상의 아침’, MBC ‘생방송 화제집중’에 방송됐다”며 “달마도를 소장하면 집안의 수맥을 차단해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번에 걸쳐 방송에 알려진 바 있으며, 정람스님 달마도는 특히 부부화합 및 만사형통의 신력(神力)이 있다는 것이 소장자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고 광고한다.
사이트 관리업체에 전화를 해 “정람스님의 달마도가 부적으로서 신비한 효험이 있다는 부분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거나 방송에 나간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입증된 바는 없고, 다른 사람이 그린 달마도에 대한 방송에 그런 내용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대학 내에 입주한 업체가 이렇게 허황한 속설을 사이트에 올려놓아서야 되겠느냐”고 되묻자 “문제가 된 부분을 바로 수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업체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선화(禪畵)나 기화(氣畵)를 그리는 이들은 달마도를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또 “달마도에 대한 믿음이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암시효과나 플라시보(僞藥) 효과를 가져와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달마도에서 에너지나 기가 나온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면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상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도 많은 벤처업체와 과학도들은 수맥파 차단물질, 전자파 차단물질과 같은 인간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할 신물질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과학적 증명 없이 사람들의 주장이나 느낌을 검증된 사실인 양 상술에 이용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언론도 아무리 흥미 위주의 오락물이라 하더라도 상술에 이용될 개연성이 있다면 철저한 검증을 거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김지하 시인이 붓을 꺾은 까닭
달마도를 즐겨 그리던 김지하 시인은 이런 혼탁한 상업 달마도의 기세에 실망해 지난해 3월 마지막 전시회를 연 뒤 붓을 꺾었다. 그는 “다시는 달마도를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마지막 전시회를 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달마도는 본디 절집 수련의 한 방편이었다. 부적으로 전락한 ‘정형(定形) 달마’를 부수기 위해 마지막 전시회를 열었다. 내가 늘 경계해온 것은 달마도가 ‘만화(漫畵)’로 굴러 떨어지는 위험이다. 이제 달마를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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