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同倫理의 思想的 淵源과 新世紀的 意義
Ⅰ. 序 言
Ⅱ. 三同倫理의 思想的 淵源
Ⅲ. 三同倫理의 新世紀的 意義
Ⅳ. 結 語
Ⅱ. 三同倫理의 思想的 淵源
Ⅲ. 三同倫理의 新世紀的 意義
Ⅳ. 結 語
정 재 서
목 차
Ⅰ. 序 言
Ⅱ. 三同倫理의 思想的 淵源
Ⅲ. 三同倫理의 新世紀的 意義
Ⅳ. 結 語
Ⅰ. 序 言
鼎山 宋奎(1900-1962)의 학술사상에 대한 근래의 연구는 그가 儒·佛·道 3敎 및 근대 학문에 博通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탁월한 현실인식을 兼備하여 신·구 諸 학문을 會通, 이념성이 높고 時宜性이 풍부한 사상체계를 수립하였음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학술 역량은 안으로는 敎祖 少太山의 開創 이념을 체계화, 조직화하고 밖으로는 전환기의 새로운 국면에 대응하는 비젼을 제시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宋鼎山의 三同倫理는 그의 晩年의 원숙한 사상 경지에서 이룩된 것으로 이는 원불교 교리의 확대 내지 세계화의 차원에서는 물론 임박한 21세기의 사유의 範型(paradigm)과 관련하여 심각히 검토될 필요가 있는 담론이라 할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여러 학자들이 삼동윤리의 이러한 선구적 의미에 주목하여 본격적인 논의를 펼친 바 있고 송정산의 사상 일반을 다룬 연구에서도 삼동윤리는 거개가 한번쯤은 涉及하는 중요한 항목으로 되어있다. 우선 그간 이루어진 삼동윤리에 대한 專論의 정황을 살펴보면 柳炳德, [三同倫理의 解釋學的 照明], {鼎山宗師의 思想}(裡里; 圓佛敎出版社, 1992)에서는 삼동윤리 이념을 원불교 사상 전개를 위한 해석학으로 정착시키고자 원불교 교리 및 현대의 종교적 맥락 속에서의 삼동윤리의 위상·의미·실천적 과제 등을 검토, 제시하였으며 金順任, [三同倫理의 哲學的 照明] {위의 책}에서는 삼동윤리의 세계주의를 고대 유교의 大同 사상과 王陽明의 親民說의 입장에서 조명하였고 徐慶田, [敎化戰略으로서 三同倫理] {鼎山思想의 현대적 조명}(益山; 원불교 출판사, 1999)에서는 21세기 지구촌의 종교·인종·기술·정치·경제 상의 갈등을 초월한 보편문명 수립과 관련하여 삼동윤리의 교화전략적 의의를 탐구하였다.
이 밖에도 白俊欽이 종교다원주의, 金洪喆이 기독교 교리와의 회통, 안관수가 대안교육 등의 측면에서 삼동윤리의 의미와 가치를 고찰하는 등 삼동윤리에 대한 해석의 지평은 앞으로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이 글에서는 상술한 선행연구의 성과에 바탕하여 삼동윤리의 사상적 연원에 대해 고찰한 다음 삼동윤리가 신세기의 이념적 대안으로서 지니는 적극적 의의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Ⅱ. 三同倫理의 思想的 淵源
송정산은 1961년 4월 삼동윤리를 발표할 때에 구체적 내용 제시에 앞서 다음과 같은 기본 취지를 천명하였다.
삼동윤리는 곧 앞으로 세계 인류가 크게 화합할 세 가지 大同의 관계를 밝힌 원리니, 장차 우리 인류가 모든 편견과 편착의 울안에서 벗어나 한 큰 집안과 한 큰 권속과 한 큰 살림을 이루고, 평화 안락한 하나의 세계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길 기본 강령이니라. 지금 시대의 대운을 살펴보면 인지가 더욱 열리고 국권이 점차 넓어져서 바야흐로 대동 통일의 기운이 천하를 지배할 때에 당하였나니, 이것은 곧 천하의 만국 만민이 하나의 세계 건설에 함께 일어설 큰 기회라, 오래지 아니하여 세계 사람들이 다 같이 이 삼동윤리의 정신을 즐겨 받들며, 힘써 체득하며, 이 정신을 함께 실현할 기구를 이룩하여 다 같이 이 정신을 세상에 널리 베풀어서 이 세상에 일대 낙원을 이룩하고야 말 것이니라. 그러므로 이러한 좋은 시운에 이러한 회상을 먼저 만난 우리 대중들은 날로 달로 그 마음을 새로이 하고, 이 공부 이 사업에 더
욱 정진하여 다 같이 이 좋은 세상 건설에 선도자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부탁하노라.
담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3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삼동윤리의 의의에 관한 것으로 삼동윤리가 미래의 이상세계의 큰 이념적 틀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두 번째 부분은 당대 및 미래 세계의 정황을 말한 것으로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어 낙원을 이룩하는 대운을 맞고 있다고 인식하였으며 세 번째 부분은 신도들이 사명감을 갖고 정진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글 전반을 통하여 뚜렷이 흐르고 있는 취지는 大同·한 큰 집안·하나의 세계·낙원·좋은 세상 등의 표현에서 보이듯이 이상사회에 대한 강렬한 소망 및 실현 의지이다. 이러한 취지는 결국 '대동'이라는 한 단어로 귀착되는데 주지하듯이 대동은 {禮記} [禮運]편에 실려있는 유교의 이상사회에 대한 표현이다. 원불교는 일찍이 경전 형성 과정에서 유교를 적지아니 수용하였고 이는 특히 {禮典} 및 {世典}의 내용 구성에서 표명된다. {예전}의 경우 {朱子家禮}에서, {세전}의 경우 {小學} 및 四書에서 많은 내용을 취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송정산이 대동을 언급하는 것도 기존의 유교 수용의 취지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순임은 여기에서 송정산의 대동 개념이 朱子學 보다 陽明學 계통의 유교와 상관이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예운]편에서 제기되었던 공자의 대동설이 張橫渠의 [西銘]에서의 만물일체 사상을 거쳐王陽明의 良知 사상에 이르러 宇宙一家의 대동윤리로 크게 발전하는데, 송정산의 대동 즉 삼동윤리는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유토피아 사상에는 老子의 小國寡民說과 공자의 대동설의 두 가지 경향이 존재하였다.
송정산의 삼동윤리는 확실히 유교의 유토피아 사상을 계승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佛學과 친연성이 있는 양명학의 입장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송정산의 삼동윤리는 이념적인 면에서 양명학의 취지와 상관되지만 실천적인 면에서는 淸末의 巨儒 康有爲가 그의 {大同書}에서 제시한 미래의 세계사회와 여러모로 구상을 같이 한다. 세계 인류의 화합과 평화 안락한 하나의 세계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는 바야흐로 대동 통일의 기운이 천하를 지배할 때에 당하였다는 인식에서 온 것인데 이러한 시대 인식은 강유위의 이른바 大同世에 대한 인식과 상응하며 삼동윤리의 정신을 실현할 기구는 강유위의 公政府와 개념적으로 상응한다. 따라서 위의 담화를 비롯 삼동윤리에 담겨진 대동 사상의 연원을 고찰함에 있어서는 고대 유교뿐만 아니라 근대 초기에 출현한 강유위의 {대동서}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기본 취지를 천명한 담화에 이어 송정산은 同源道理에 대해 다음과 같이 敎示한다.
이어 말씀하시기를 "삼동윤리의 첫째 강령은 동원도리니, 곧 모든 종교와 교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니라. 이 세상에는 이른 바 세계의 삼대 종교라 하는 불교와 기독교와 회교가 있고, 유교와 도교 등 수 많은 기성 종교가 있으며, 근세 이래 이 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처에 신흥 종교의 수도 또한 적지 아니하여, 이 모든 종교들이 서로 문호를 따로 세우고, 각자의 주장과 방편을 따라 교화를 펴고 있으며, 그 종지에 있어서도 이름과 형식은 각각 달리 표현되고 있으나,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근원되는 도리는 다 같이 일원의 진리에 벗어남이 없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대체에 있어서는 본래 하나인 것이며, 천하의 종교인들이 다 같이 이 관계를 깨달아 크게 화합하는 때에는 세계의 모든 교회가 다 한 집안을 이루어 서로 넘나 들고 융통하게 될 것이니, 먼저 우리는 모든 종교의 근본이 되는 일원 대도의 정신을 투철히 체득하여,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확립하며, 나아가 이 정신으로써 세계의 모든 종교를 일원으로 통일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니라."
송정산의 이러한 견해는 직접적으로는 소태산의 삼교합일론적 입장의 계승이지만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멀리 소급하면 중국의 魏晉·南北朝 시기의 삼교합일 사조에 까지 이르고 고대 한국의 경우, 신라말 崔致遠의 [鸞郞碑序]에 담긴 취지에까지 이른다. 최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에 오묘한 도가 있으니 그것을 풍류도라고 한다. 그 가르침을 마련한 근원은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실로 그것은 세가지 가르침[유·불·도]을 다 포함하고 있어 뭇사람을 교화시킨다. 예컨대 들어와 집안에서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공자]의 취지이고, 작위함 없는 일에 처하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사[노자]의 주장이며, 모든 악을 저지르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실행하는 것은 축건태자[석가]의 교화이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신라 고유의 풍류도가 유·불·도 삼교의 정신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최치원의 인식으로부터 우리는 고대 한국에 이미 삼교를 대립적인 견지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합일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정신적인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풍류도를 계승한 한국 仙道의 맥을 따라 강하게 유전된다. 그리하여 조선조 丹學派의 泰斗인 鄭 은 이렇게 단언한다.
맑고 밝은 기운이 위로 니환궁에서 맺히면 선가에서 말하는 현주이기도 하고 불가에서 말하는 사리이기도 하다.
(淸明之 , 上結於泥丸宮, 仙家所謂玄珠, 佛家所謂舍利.)
(淸明之 , 上結於泥丸宮, 仙家所謂玄珠, 佛家所謂舍利.)
수련하여 證得한 경지를 궁극적으로 도·불이 함께 한다는 이러한 인식 즉 전통적인 삼교합일론이 송정산의 동원도리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송정산은 同氣連契에 대해 교시한다.
삼동윤리의 둘째 강령은 동기연계니, 곧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니라. 이 세상에는 이른 바 사색 인종이라고 하는 인종이 여러 지역에 살고 있으며, 같은 인종 중에도 여러 민족이 있고, 같은 민족 중에도 여러 씨족이 여러 지역에 각각 살고 있으나,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근본되는 기운은 다 한 기운으로 연하여 있는 것이므로, 천지를 부모 삼고 우주를 한 집 삼는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동포 형제인 것이며, 인류 뿐 아니라 금수 곤충까지라도 본래 한 큰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나니라. 그러므로, 천하의 사람들이 다 같이 이 관계를 깨달아 크게 화합하는 때에는 세계의 모든 인종과 민족들이 다 한 권속을 이루어 서로 친선하고 화목하게 될 것이며, 모든 생령들에게도 그 덕화가 두루 미칠 것이니, 우리는 먼저 모든 인류와 생령이 그 근본은 다 한 기운으로 연결된 원리를 체득하여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체의 인류와 생령을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확립하며, 나아가서는 이 정신으로써 세계의 인류를 평등으로 통일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니라.
아무래도 불교적 생명관의 반영으로 보여지는 송정산의 이러한 사해동포주의는 역시 가까이로는 소태산의 四恩 사상에서 유래하지만 우리는 보다 근원적으로 동아시아 특유의 氣化宇宙論, 天人合一論的 사고가 송정산의 동기연계론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莊子는 일찍이 기가 만물에 내재한 생명력임을 이같이 말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은 기가 모임에 의해서이다. 기가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따라서 천하를 통하는 것은 오로지 한가지 기운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人之生, 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 故曰通天下一氣耳.)
(人之生, 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 故曰通天下一氣耳.)
만물에 내재한 생명력, 그것은 존재 상호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카시러(E. Cassirer)의 이른바 '생명의 연대성(Solidarity of Life)'을 느끼게 하는 힘인데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는 레비 브률(Levi Br hl)의 이른바 '참여의 법칙(Law of Participation)으로서 존재와 존재는 스며들듯이 공감에 의해 서로를 확인한다. 기가 이와 같이 작동하면서 우주를 움직여 나갈 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만물은 사실상 기 앞에서 모두 평등한 관계, 소통 합일되어야 할 관계에 놓인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도모하는 천인합일론은 그리하여 기화우주론과는 표리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로 도교와 상관된 이러한 생명관은 수행론 등을 통해 본 송정산의 기왕의 도교 수용태도를 고려할 때 동기연계론의 형성 배경으로 충분히 기능하였을 것이다.
끝으로 송정산은 同拓事業에 대해 교시한다.
삼동윤리의 셋째 강령은 동척사업이니 곧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 같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에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니라. 지금 세계에는 이른바 두 가지 큰 세력이 그 주의와 체제를 따로 세우고 여러 가지 사업을 각각 벌이고 있으며, 또한 중간에 선 세력과 그 밖에 여러 사업가들이 각각 자기의 전문분야와 사업 범위에 따라 여러 가지 사업들을 이 세상에 벌이고 있어서, 혹은 그 주장과 방편이 서로 반대되는 처지에 있기도 하고 혹은 서로 어울리는 처지에 있기도 하나, 그 근본을 추구하여 본다면 근원되는 목적은 다 같이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개척하자는 데 벗어남이 없는 것이며, 악한 것 까지라도 선을 각성하게 하는 힘이 되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업이 그 대체에 있어서는 본래 동업인 것이며, 천하의 사업가들이 다 같이 이 관계를 깨달아 서로 이해하고 크게 화합하는 때에는 세계의 모든 사업이 다 한 살림을 이루어 서로 편달하고 병진하다가 마침내 中正의 길로 귀일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먼저 이 중정의 정신을 투철히 체득하여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사업을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확립하며, 나아가서는 이 정신으로써 세계의 모든 사업을 중정으로 통일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니라.
동척사업론의 궁극적 지향은 세계의 모든 사업을 중정의 길로 귀일시킴에 있다. 송정산은 이를 위해 우리 모두 중정의 정신을 투철히 체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누차 언급되고 있는 중정이란 무엇인가? 중정이라는 말은 일찍이 {禮記} [樂記]에 보인다. "중정하여 굽어짐이 없다(中正無邪)"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주석은 "속 마음이 중정하여 굽어지고 편벽됨이 조금도 없음을 말한다(謂內心中正, 無有邪僻)"로 되어 있으니 중정의 대체적인 古意는 공평하고 조화로운 마음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 뜻은 곧 中庸의 도와도 상통한다 할 것인데 조선조에 성립된 道書인 {海東傳道錄}에 附載된 [丹書口訣]을 보면 "음양의 조화와 만물의 생성이 중정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다(陰陽之造化, 萬物之生成, 莫不自中正出來)."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이러한 취지는 원시 도교 방면으로 소급하여 볼 때 後漢 무렵에 성립된 {太平經}에서 말하고 있는 음·양 두 기운의 조화로운 섞임인 中和之氣의 개념과도 멀리 맥락이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三同倫理의 新世紀的 意義
송정산은 동원도리론에 대해 "모든 종교와 교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니라"고 정의한 다음 3대 종교인 불교·기독교·회교를 비롯 수 많은 종교가 각자의 교리에 따라 선교를 하고 있으나 근본 도리는 한 가지 진리에서 벗어남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세계의 종교인들이 모든 종교가 본래 하나인 것을 깨달아 일가로 화합해야 할 것을 촉구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송정산이 전통적인 삼교합일론을 환골탈태시켜 21세기의 바람직한 종교관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
주지하는 바 헌팅턴(S. Huntington)은 그의 '문명충돌론'에서 향후의 세계가 8개의 문명권으로 나뉘어 각축할 것으로 예견하였는데 이 8개의 문명권은 기독교·회교·유교·힌두교 등으로 종교문화를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미래의 세계에 종교간의 분쟁이 오히려 더 극심해질 것으로 내다 본 것이다. 헌팅턴의 이러한 가설은 서구 기독교 문명의 패권적 지위를 기정화하고 다른 종교 문명의 등장을 적대적인 도전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암암리에 전제할 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일찌감치 '충돌'을 선언했던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송정산의 동원도리론이 21세기에 요청되는 진정한 화해의 종교관과 관련하여 시대를 뛰어넘는 先見으로 평가 될 여지를 지니게 된다. 아울러 천주교가 제2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타 종교에 대한 포용론적 입장을 결정, 교황의 敎書로 공표하게 되는 것이 1962년 이후의 일임을 생각할 때 송정산의 동원도리론의 제창은 종교사상 주목할 만한 사안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송정산은 동기연계론에 대해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원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니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어서 그는 세상의 인종과 민족·씨족이 다 근본되는 한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동포형제나 다름없으니 천하의 모든 사람이 이 관계를 깨달아 한 권속처럼 친선하고 화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금수 곤충까지도 본래 큰 한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니 일체의 인류와 생명을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확립할 것을 요구하였다. 종족주의는 先哲 조차 좀체로 극복하지 못했던 인류의 고질적 병폐로 성별(gender)·계급(class)과 더불어 다음 세기로 이월될 우리의 대표적 난제이다. 최근 이데올로기가 퇴조하면서 종족간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이 때 동기연계론은 상당한 시의성을 지닌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동기연계론의 의의를 종족주의의 극복보다 더 큰 생태학적 세계관의 정립에서 찾게 될 가능성이 있다. 과학주의의 오만과 횡포가 빚은 환경위기에 대한 自省은 이제 우리의 시선을 인간중심으로부터 주변의 식물과 동물, 즉 자연계로 향하게 하고 있다. 바야흐로 존재성에 있어서 인간과 일반 생물과의 간극이 철폐되고 공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재신화화(remythlogization)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 이즈음 동기연계론이 당대의 현안에 대해 얼마만큼의 지도적 의미를 지니는가는 不問可知일 것이다.
송정산은 동척사업론에 대해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 같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니라"고 정의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롯 수많은 이념과 노선의 대립, 수많은 분야의 竝立이 결국은 이 세상을 저마다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근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니 만큼 모든 일이 동업관계에 있다는 이치를 자각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중정의 정신을 체득하여 모든 사업을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확립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동척사업론은 사상간의 대립, 종교와 과학등 각 분야간의 대립을 지양하고 상보적 관계속에서 협력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동척사업론은 동원도리론과 동기연계론의 이념적 지향에 비해 실천적 성격이 강한 언설로 앞서의 이념들을 보다 世間的인 차원에서 窮行하고자 하는 취지가 엿보인다. 동척사업론이 다가올 세기의 현안에 대해 지니는 시의성은 앞서의 이념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풍부하다 할 것인데,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한 이후 거대 담론이 붕괴하면서 작은 주체들이 群立하고 있는 다원적인 목전의 상황은 동척사업론이 실현되기에 알맞은 토양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동척사업론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오늘의 첨예한 상황은 이데올로기의 붕괴와 다국적 기업의 확대로 인한 전지구화(globalization) 현상이다. 이제 근대 무렵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로 성립되었던 독점적, 배타적 성격의 국민국가(nation state)는 점차 그 지배력을 상실하고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지역 연합, 나아가서는 세계공동체로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전자매체에 의해 창안된 사이버 공간은 국경·인종·성별·계급 등을 초월하여 인류 모두의 표현의 장이 되어 전지구화를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 아울러 신과학의 흥기는 앞서와는 다른 차원에서 과학과 종교, 학문과 학문간의 경계를 넘어 인류의 인식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욕망과 개성이 저 마다의 당위성을 갖고 분출되는 이러한 대전환의 시점에서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 같이 세상을 개척하는데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동척사업론의 이념은 전지구화 시대 인류의 새로운 삶의 원리로서 의미 깊게 검토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Ⅳ. 結 語
송정산은 소태산의 법통을 계승, 一圓 世界의 구현을 위해 救世의 방안으로서 삼동윤리를 제창하였는데 이들은 각기 심후한 사상적 연원에서 유래하고 있다. 즉 동원도리론은 고대 중국의 삼교합일 사조 및 한국 선도의 包含三敎의 정신을, 동기연계론은 기화우주론·천인합일론 및 불교적 생명관을, 동척사업론은 중용의 취지 및 원시도교의 중화지기의 개념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 내용이 어디까지나 소태산의 일원 진리 체계 내에서 융합, 수용된 후 다시금 송정산에 의해 실천윤리로 가다듬어져 반포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송정산의 삼동윤리는 단순히 과거의 사상유산을 종합, 정리함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삼동윤리가 갖는 세기적 範型으로서의 의미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동원도리론에서 송정산은 모든 종교가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화합, 공존해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였는데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원주의적 종교관을 예시한 先見이 돋보인다. 동기연계론에서 그는 사해동포주의 내지 만물평등의 입장을 開陳하였다. 그의 立論은 평등의 대상이 인간 뿐만 아니라 생물계 전반에 미치고 있어 오늘날 현안이 되고 있는 환경·생태주의와 遭遇하고 있다. 동척사업론에서 그는 이념 대 이념, 종교 대 과학 간의 대립을 止揚하고 인류의 共同善을 향하여 모든 분야가 협동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최근의 거대 담론의 붕괴, 전지구화, 신과학의 흥기 등의 현상은 이러한 제창과 상응하는 징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송정산의 삼동윤리는 종교·인종·이념·과학·생태 등 다가올 21세기의 인류적 현안의 해결과 긴밀히 상관된 사유의 범형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항대립적 사고가 彌滿해 있던 냉전시대에 이러한 相生, 圓融의 도리를 설파하였던 그의 선구적 睿智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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