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에서 발원된 인류 원형종교 '삼신교'
태초의 종교는 삼신교·태백진교·덕교
삼신교에 천문학·신학·철학적인 해석을 가한 것이 ‘태백진교’이다
종교는 인간이 신적인 존재임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나왔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불과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종교보다 앞선 종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부도지>와 <한단고기>에서는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우리 조상들에게 삼신교三神敎·태백진교太白眞敎·덕교德敎 등 3가지 종교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덕교에서 신교神敎로 불리는 무교巫敎가 나왔다. 덕교와 무교를 합쳐서 신교神敎라 했다. 또한 이 모두를 합쳐서 선교仙敎라 하기도 했다. 선교에서 이들 종교가 파생한 것이다. 삼신교에서 신교까지 이어온 역사가 무려 1만4000년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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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늘(天)에서는 해· 달· 북두칠성이 삼신이 되었고, 사람(人)에서는 마고· 궁희· 소희가 삼신이 되었다. 땅(地)의 삼신은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가 된다.
봉래는 래이족萊夷族이 삼신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다. 래이족은 산동반도에서 모국牟國에 살던 인종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에 제齊에게 멸망하여 산동반도을 떠나 소래蘇萊에 상륙하여 소래산과 성주산 일대에 우체모탁국優體牟涿國을 세우고 살다가 같은 래이족 출신의 소서노召西弩에게 멸망하였다. 백제는 래이족의 후손이다. 봉래라는 문자에는 이러한 삼한시대의 역사가 숨어 있다.
방장은 천부삼인을 신체神體로 모시는 신당神堂이다. 삼신의 신체는 해 달 북두칠성을 새긴 돌이나 청동거울이었다. 이 청동거울이 처음에 한국의 천제, 배달나라의 천왕, 조선의 왕검에게 전수되어 오다가 조선이 진에게 멸망하면서 방장의 당주였던 여자 무당에게 전수됐다. 지금도 무당은 신내림굿을 할 때 새내기 무당에게 명두明斗라는 이름으로 천부삼인을 물려준다.
영주는 삼신교의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가서 정착하는 곳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영瀛자가 후세에 여러 의미의 영자로 변음이 되었다. 영등바람은 2월에 삼신교의 총본산인 마고지나가 있는 삼신산에서 마고 할머니가 불어 보내는 바람이다. 영등瀛登바람으로 볼 수 있다. 영덕, 영등포와 같은 지명은 한자로 어떻게 쓰든 영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울의 영등포永登浦는 서해에서 영등바람이 불어오는 포구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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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는 자신이 신의 속성인 팔려의 음에서 스스로 태어났다고 했다. 팔려의 음에 우주의 삼라만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진동이 다 포함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뇌파의 진동, 심장의 진동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는 각 인종의 조상이 되는 황궁· 청궁· 백소· 흑소를 진동에서 잉태하여 낳았고, 이들에게 해· 달 북두칠성을 삼신의 신체로 모시게 하였다. 그들이 모시는 신체를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 했다.
그는 마고시대를 마감하기 위하여 마고삼성을 폐쇄할 때 각인종의 조상들로 하여금 무리를 이끌고 동서남북에 흩어져 살게 하였다. 그들에게 ‘해혹복본解惑復本’하라는 종교적 메시지와 그 징표인 천부삼인을 주었다.
천부삼인을 신체로 모시는 장소를 방장方丈이라 하였다. 방장은 신체를 모시는 사방 1장 규모(3.3m)의 소형의 방이므로 가마처럼 들고 다니거나, 여輿처럼 끌고 다니거나, 배에 싣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동이 용이했다. 해· 달· 북두칠성이 지나가는 길목에 피라미드를 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것이 일· 월· 칠성을 모시는 신전이 되었다. 이 신전을 부도라 하였다.
처음으로 천부삼인을 모시는 부도를 후손에게 전한 사람을 황궁黃穹이었다. 황궁은 천부삼인을 모시는 부도를 유인에게 전했고, 유인은 한인에게 전했고, 한인은 한웅에게 전했고, 한웅은 단군왕검에게 전했다.
그 기간은 황궁에게서 유인에게 전해지는데 1000년, 유인에게서 한인에게 전해지는데 1000년, 한인에게서 한웅에게 전해지는데 3300년, 한웅에게서 단군왕검에게 전해지는데 1900년이 걸렸다. 단군왕검에게서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에게 전해지는데 200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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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가단군은 진시황 8년에 단군조선이 진에게 멸망하면서 천부삼인을 구월산으로 가지고 들어와 삼성당을 짓고 거기에 모셨다. 그리고 봄· 가을에 한인· 한웅· 단군왕검 삼성三聖에게 제사지냈다. 천부삼인은 더 이상 후대에 인수되지 않았다. 물려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삼성당은 당주가 여무였다. 그러므로 천부삼인은 당주인 여무가 조선왕조말까지 2000년 동안 물려주고 물려받아왔다. 그동안 무당은 천부삼인을 천부삼인이라 하지 않고 명두明斗라 했다.
명두는 무당이 평소에 신당에 걸어두고, 신내림굿을 할 때, 일월마지를 할 때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삼신교는 민간신앙에서 삼신신앙으로 불린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후에 삼신에게 부처님을 덮어씌워 삼신제석三神帝釋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인시대로 와서 <천부경>이 구전되기 시작했고, 점성학의 수준을 넘어선 <삼신교>가 <천부경>에 기초하여 일석삼극一析三極의 논리체계를 만들고 신학과 철학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3의 논리에서 일인제사가 삼헌제사三獻祭祀로 바뀌었다. 삼신에게 절하고 현주玄酒(옥수玉水) 올리는 일을 3헌관을 만들어 3헌관이 올리도록 한 것이다.
삼신교에 천문학·신학·철학적인 해석을 가한 것이 ‘태백진교’이다.
한웅천왕시대에 삼신은 천부天符라는 말로 대체되었고, 천문의 해석이 종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마고 시대를 삼신의 시대라고 한다면, 한웅의 시대는 천부의 시대가 된다. 이 시대의 가르침을 진교라고 했다.
천부의 시대가 지난 후 일석삼극이라는 교리가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으로 발전하여 덕교의 시대로 진입했다. 이 시대가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의
하늘에서 덕이란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사덕四德을 말한다.
곧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절이 순조롭게 운행하는 것을 사덕이라 하였다. 봄에는 봄의 덕을 기리고, 여름에는 여름의 덕을 기리고, 가을에는 가을의 덕을 기리고, 겨울에는 겨울의 덕을 기린다.
삼신교 태백진교 덕교는 모두 다 천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문에서 나온 종교가 인류의 원형종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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