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善根을 중심으로-
Ⅰ. 들어가는 말*
전통적 법상의 분류에서 선근은 無貪, 無瞋, 無痴의 3선근을 가리키고 있지만, 아비달마 시기에 선근의 의미는 확대되어 順功德分, 順解脫分, 順決擇分,無漏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순결택분의 4선근(nirvedhabh g y ni ku alam l ni)은 유부와 유가행파의 문헌 속에서 加行道(prayogam rga)의 단계에 해당하며, 견도 직전에 위치하고 있다. 4선근은 煖( magata), 頂(m rdhan), 忍(k nti), 世第一法(laukik gradharma)의 네 가지 선한 능력 또는 선한 법의 근거로서 세간적 인식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러한 선근이 생겨난다면 직후에 無漏의 見道位를 이끌어 내게 된다. 順決擇分(nirvedha-bh g ya)에 대해 구사론은 이를 다음과 같이 어원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순결택분이란 어떤 의미인가? 결택(nirvedha)이란 성스런 도이다. 그것에 의해 의심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며, '이것이 고통이며 내지 이것이 도이다'라고 [4]제를 구별해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것의 부분은 견도와 일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引度하기에 [그것에] 도움이 되기에 순결택분들이다.
유식파의 수행도의 차제에서 볼 때, 이 단계에서 유식관이 설해지고 있기 때문에 4선근설이 중요시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유식관이란 인식대상의 비존재성의 인식과 이에 의거한 인식주관의 비존재성을 깨닫는 실천수행으로, 최초기의 유식파의 논서인 『유가사지론』[보살지]에서는 4선근설이 언급되고 있지 않고 다만 [聲聞地]에서 유부의 설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그리고 『유가사지론』 이후의 유식파의 문헌에서 양자의 관계는 다르게 설명되고 있다.
기존의 연구는 [성문지]에서 취급되고 있는 4선근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유부의 이론을 전제하고 있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립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부파불교 내에 있어 유가행자의 위치에 대한 선구적 업적을 남긴 西義雄은 『대비바사론』의 敎相의 정립에 있어 瑜伽師(yog c ra)의 커다란 역할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의 연구는 전통적 아비달마논서를 중심으로 수행되고 있어 유가사들의 독립적 선정체험 속에서 4선근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고, 『修行道地經』 등의 내용도 『비바사론』에서 설하는 내용에 의거하고 있다고 간략히 지적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설명은 교상의 전거로서의 유가사의 역할이라는 그의 명쾌한 해명과도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성문지]의 所緣에 대한 慧敏의 최근의 연구도 4선근의 유래에 대해서는 기존의 설명을 답습할 뿐이다. 그는 [성문지]에 있어서 선정대상의 수습에 관련된 타 학파의 자료를 세 개로 나누고 있는데, 그 중에서 4선근은 북인도의 유부계통의 논서와 연결되어 있다.
본고의 문제의식은 西義雄 등의 연구에서 거의 등한시된 소위 <禪經>이라 불리는 일군의 문헌이 유가행파 수행도에서 가행도라고 하는 4善根位의 도입의 직접적 원천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이런 의문은 경의 제목에서 강하게 제기된다. 여기서 <선경>이란 선정체험을 공통된 테마로 한 일군의 텍스트를 가리키는 용어로 이들 경전의 명칭에서 부분적으로 유래한 일종의 장르를 말한다.
이 <선경> 중에는 Yog c rabh mi라고 명명된 두 문헌이 존재한다. 하나는 Sa gharak a(衆護)의 Yog c rabh mi로 Dharmarak a(竺法護) 역의 『修行道地經』이다. Sa gharak a의 Yog c rabh mi는 Dharmarak a에 의한 한역 (284년) 이전에 安世高에 의해 『大道地經』 2권 (T 607)과 『大安般守意經』 (T 602)라는 두개의 독립된 경전으로 번역되었다. 다른 하나는 Buddhasens(佛大先)의 Yog c rabh mi로 Buddhabhadra(佛陀跋陀羅) 역의 『達摩多羅禪經』이다. 보통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Yog c rabh mi는 무착 또는 미륵에게 귀속되는 유식파의 논서이지만, 같은 제명의 경전이 여러 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성문지]의 수행도의 성립과 관련해 당연 우선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인다.
또한 동기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문지]와 <선경>의 관계는 보다 긴밀한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의 유가행 유식파가 그들의 선정체험의 이론적 체계화보다는 실천적 측면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그들의 관심은 아비달마의 아함 전통에 의거한 논증과 이론적 체계화에 의해 자극받았기 보다는 그들의 직계스승인 先軌範師(p rv c rya)들의 선정체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는 이러한 p rv c rya들의 선정체험이 한역으로 남아있는 많은 초기의 <선경> 속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본다. 본고의 목적은 그 중에서도 유식의 수행도 체계에서 결정적 의미를 가진 4선근설의 도입과 이와 관련된 유래를 밝히려는 것이다. 만일 본인의 문제제기가 옳다면 [성문지]에서 발견되는 순결택분의 4선근설은 <선경>의 기술과 그 기술의 맥락에 보다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먼저 유부계 문헌에서의 4선근설을 개관하고 다음에 <선경>에 나타난 4선근에 대한 기술을 검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가행파에서 이를 최초로 체계화한 [성문지]의 기술과 비교하면서 양자의 관련성과 차이점을 논의할 것이다.
본고는 양자의 관련성을 매우 초보적 형태로 스케치하는데 그치고 그 상세한 세목에 대한 연구는 추후의 과제로 미루지만, 이런 방향의 연구가 유가행파의 수행론과 그 전제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Ⅱ. 유부논서에 보이는 4선근설
유부 아비달마의 수행도가 체계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견도의 직전에 위치한 단계의 기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보인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견도라고 하는 결정적 해탈적 인식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유부의 여러 논서에서 이에 관한 기술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난다. 4선근과 관련시켜 볼 때 순결택분의 4선근의 명칭과 이에 대한 종합적 설명은 비로소 『비바사론』에서 나타나지만, 그 이전의 논서에서도 각각의 법에 대한 개별적 설명은 보인다. 먼저 이들 논서에서의 4선근에 상당하는 부분의 기술을 살펴보자.
순결택분 이전의 가행도는 선업을 쌓는 것으로서 독송, 청문, 교수,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簡擇文義), 개별적 종합적 방식으로 不淨觀과 止息念 등을 수습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고, 반면 순결택분 이후의 수행도는 正決定에 들어가 예류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는 것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193a15-19). 다른 설명(157c22-24)에 따르면 가행도는 2종으로 분류되는데, 순결택분의 4선근은 그 중에서 近加行에 해당한다. 반면 遠加行은 초불퇴보리심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원가행은 순해탈분의 선근과 연결되며 이것은 문혜, 사혜, 수혜로 이루어진다.
煖이라 불리는 이유는 모든 번뇌의 연료를 태우기 때문이며 (28a16-18), 信과 관련지어 설명되고 있다 (30c22-31a21).
忍은 견도와 유사한 것(似見道)으로 명시되고 있다 (24b25). 順忍과 順諦忍의 차이에 관해 설명하면서 왜 인이 順諦이고 난과 정은 아닌지를 설명하고 있다. 순제란 진리의 현관에 수순한다는 의미로 인이 성제의 현관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반면 난, 정은 그렇지 않다. 인은 견도에 가깝기 때문에, 유사하기에, 무루라고 설명된다 (24a3ff).
『集異門足論』 (T 26: 435b-c)에서 7종의 푸드갈라 중에서 수신행자, 수법행자를 언급하면서 견도를 획득하는 것은 4제가 진실임을 확신하고 제행무상과 유루행의 고, 일체법이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함에 의해 世第一法을 증득하고 직후 苦法智忍이 생겨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견도 직전의 단계에서 세제일법이 놓여지고 있고 이 단계는 4제에 대한 信과 고제의 4행상에 대한 관찰과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4선근의 개념이나 이에 대한 설명은 발견되지 않는다.
『發智論』(T 26)은 세제일법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하고 정, 난의 2법이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맥락에서 忍은 언급되고 있지 않아 아직 4선근이 하나의 범주로서 묶여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정은 3보에 대한 小量의 信으로, 난은 정법과 율에 대한 작은 信愛라고 설명되고 있다 (918c-919a). 『발지론』의 설명에서 흥미로운 것은 頂墮에 대한 설명 중에서 나온다. 여기서 정은 親近善士, 聽聞正法, 如理作意, 佛菩提와 法은 좋은 가르침이고 승려는 妙行을 수습한다는 것, 5온의 무상함과 4제의 시설 등에 대한 信으로 기술되고 있다. 兵藤 (1991: 887)이 언급했듯이 앞의 세 요소가 4예류지의 세 요소이고 불보리에 대한 信 등이 法隨法行이라고 본다면 이 설명은 4예류지를 전제하고 있고 그것을 원형으로 하는 수행체계라고 보인다. 4예류지와 관련하여 『발지론』에서 諦順忍이 법수법행과 등치되고 있는 것은 주목되는 설명으로. 이것은 4예류지가 4선근설의 발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비바사론』(T 27: 5b26ff)에서 4선근은 忍을 포함해 순결택분으로서 개념적으로 확정되고 있다. 그 외의 개소에서도 『비바사론』은 순결택분이란 명칭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고 여러 동의어를 제시하고 있어 이 단계에서 개념적 정립이 확고히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순결택분 이전의 가행도는 선업을 쌓는 것으로서 독송, 청문, 교수,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簡擇文義), 개별적 종합적 방식으로 不淨觀과 止息念 등을 수습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고, 반면 순결택분 이후의 수행도는 正決定에 들어가 예류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는 것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193a15-19). 다른 설명(157c22-24)에 따르면 가행도는 2종으로 분류되는데, 순결택분의 4선근은 그 중에서 近加行에 해당한다. 반면 遠加行은 초불퇴보리심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원가행은 순해탈분의 선근과 연결되며 이것은 문혜, 사혜, 수혜로 이루어진다.
순결택분과 견도의 관계는 세간, 출세간의 구분에 따라 구분되고 있거나 (6b3-7; 679a24-26), 또는 견도를 '無漏善根'이라고 지칭함에 의해 명확해 진다 (25a3-4). 이에 따르면 순결택분은 '유루선근'으로 다만 견도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은 오직 수혜로 이루어져 있고, 법념처와 연결된다.
『비바사론』에서 4선근의 설명은 매우 상세하며 또 비유를 갖고 설명하고 있다. 『비바사론』의 순서와는 반대로 난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煖이라 불리는 이유는 모든 번뇌의 연료를 태우기 때문이며 (28a16-18), 信과 관련지어 설명되고 있다 (30c22-31a21).
頂은 4성제의 유효성에 대한 信으로, 5취온에 대해 성제자는 무상, 고, 무아로서 관찰과 작의를 한다. 그는 忍, 見, 欲樂, 行解, 見審慮忍을 갖게 되는데 이를 정이라 부른다 (26c4-5). 정은 小量의 信으로서 산의 정상과 같기 때문에, 즉 사람이 산봉우리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려움이 없다면 그는 산봉우리를 넘어 다른 산에 오를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긴다면 다시 봉우리에서 퇴환하여 산을 내려오는 것과 같다 (25c5-9).
忍은 견도와 유사한 것(似見道)으로 명시되고 있다 (24b25). 順忍과 順諦忍의 차이에 관해 설명하면서 왜 인이 順諦이고 난과 정은 아닌지를 설명하고 있다. 순제란 진리의 현관에 수순한다는 의미로 인이 성제의 현관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반면 난, 정은 그렇지 않다. 인은 견도에 가깝기 때문에, 유사하기에, 무루라고 설명된다 (24a3ff).
세제일법은 심심소법이 등무간으로 正性離生(즉 견도위)에 들어가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7b26-c2). 또 분별론자의 설로 信 등의 5근이 곧장 정성리생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설명을 소개한다. 이들 법이 세제일법이라 불리는 이유는 다른 세간법에 비해 勝, 長, 尊, 上, 妙하기 때문이다 (11b8-10).
『감로미론』에서는 4선근과 관련해 『발지론』 등에서 보이는 4예류지를 원형으로 하는 수행론이 보이지 않는다. 田中敎照에 따르면 『비바사론』에서의 난의 준비적 성격에 대한 기술은『감로미론』에서 『구사론』에 이르는 계통의 설명과 상위하다. 여기서 4선근은 견도 직전의 단계로 위치되어지고 법념처 중에서 4제 16행상을 관찰한다고 설명되고 있다 (T 28: 972c26-973a21).
이때 난법이 법념처 중에서 생겨나는데, 佛法에 대한 信淨善根이 생겨나는 것은 마치 鑽火가 나무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난선근이 증장하는 것이 頂선근으로 3보에 대한 信과 5온의 무상, 고, 공, 무아에 대한 信이다. 정이 증장하면 頂隨諦忍(?)인데 이를 인선근이라고 한다. 이것은 3종으로 나누어지는데, 4제를 대상으로 한다. 세제일법은 4제에 수순함을 통해 강화된 선근(順諦增上善根)으로 이것은 범부법 중의 최고의 대상으로서 고제의 4행상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아비담심론』(T 28: 818b3-c15)에서도 4선근이 설명되어 있는데, 『감로미론』과 비교해 비유가 생략되어 있고 또 信에 관한 언급이 없다.
Ⅲ. <禪經>에 나타난 4선근설.
아비달마불교는 주로 아함에 나타난 가르침에 대한 法相의 분류와 체계화에 치중하면서 교설의 합리적 설명에 중점을 두었다고 보인다. 『구사론』에서 자신들을 법상의 분석자(l k a ika)로 자처하는 정통유부의 자부심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아비달마논자들의 시도는 아마 정신적 수행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다양하고 상이한 이들 체험들을 조직화시켜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데 있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흔히 아비달마불교를 일종의 '스콜라시즘' 과 동일시하고 있지만, 그들의 철학적 불교와 평행하게 아비달마의 실천수행이 이 시기에 널리 퍼져있었음을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西義雄이 지적했듯이『비바사론』에 있어 그들의 이론적 해석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로서 종종 인용되고 있는 瑜伽師(yog c ra)의 존재는 법의 분석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에도 실천수행의 전통이 살아 있었음을 보여준다.『비바사론』에서 이들 유가사들은 그들의 <실재성>의 인식에 의거해 아비달마논사들과는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실천적 전통이 소위 <선경>이라는 장르 속에서 보존되고 전승되었음을 보게 된다. <선경>류의 텍스트들은 주로 한역으로 보존되어 있지만 2종의 산스크리트 사본이 발견되어 편집되어 있다. 이들 사본의 학파소속성은 유부계열로 판단되고 있지만, 내용상이나 교리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유부와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이런 경향은 다른 <선경>류의 문헌들에게도 타당하다고 보인다. 예를 들어 『達摩多羅禪經』 앞부분의 게송부분에서 설하는 내용은 대부분 유부적 틀의 범위 내에 있지만 <本無所從來 去亦無所至 去來不可得 亦不須庾住> 등의 표현은 대승적 관념을 연상시킨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선경>들이 학파로서는 유부에 속하지만 반드시 유부의 '학파적'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기할 점은 이들 <선경>들이 수행자를 성문도, 연각, 佛道 (또는 보살도)에 따라 3종으로 분류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분류는 대승에서 보듯이 수행도의 위계성을 함축하고 있고 따라서 이에 따른 분류는 성문도의 평가절하를 함축하기에 아비달마의 주류적 전통에 의해 널리 인정되었다고 생각될 수 없다. 그리고 여러 관법의 기술 중에서 대승불교의 핵심적 용어와 관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본고의 주제인 4선근설의 도입의 유래와 관련해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1.『修行道地經』의 4선근설.
<선경>류의 문헌 중 4종의 선근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기술은 『수행도지경』에서 발견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Sa gharak a의 Yog c rabh mi는 두 번 한역되었다. 안세고의 역에 비해 법호의 역은 다루어진 주제가 보다 발전되고 확장되었음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설명적 산문과 이를 다시 요약하는 운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등 스타일도 세련되어 있다. 주제에 관해 본다면 많은 새로운 주제들이 고층의 자료에 증광되어 각각 독립된 장에서 취급되고 있다. 안세고 역에서 발견되는 원래의 수행에 대한 기술이 법호의 번역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나아가 법호의 번역은 주목할만한 발전을 보여주는데, 우리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4성제의 현관을 위한 5근의 수행의 부분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며, 바로 이 부분에서 4선근의 새로운 수행도체계가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행도지경』을 제외하고는 4선근에 대한 기술은 Buddhasena의 Yog c rabh mi (T 618, 達摩多羅禪經)와 쿠마라지바의 역인 『坐禪三昧經』(407년 역)에서만 발견되며, 다른 <선경>, 예를 들어 『禪秘要法經』, 『五門禪經要用法』 등에서는 처음 두 선근인 煖法과 頂法에 대해서만 설명되고 있다. 먼저 『수행도지경』(T 606: 215c21-218c29; 특히 217a1-218c29)을 중심으로 4선근을 전후한 기술에 따라 중요한 점을 요약하면서 그 의미를 새겨보자.
1) 『수행도지경』에서 4선근은 수식관의 설명 중에 제시되어 있다. 이 설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또 후기의 발전과 관련해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요가행자의 수행도를 범부의 길(세간도)과 불제자의 길(출세간도)로 명확히 2분한 것이라고 보인다. 동일한 수식관을 대상으로 할 때에도 세간도를 통한 수식관은 샤마타에 의해 5蓋(n vara a)를 제거하고 4선정의 단계를 통해 나아가며 5신통의 획득으로 연결된다. 반면 출세간도의 수식관은 4선근의 단계를 거쳐 4성제의 현관을 성취하고 37보리분법을 이루고 마침내 제8의 상태(處, 地 ?)의 과를 획득하는 것으로 끝난다. (217a1-a27).
2) 이어 출세간도의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4선근의 설명이 출세간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수행도를 통해 축적되는 4선근은 각 3단계를 가진 상중하로 총 9단계로 분류되고 있다 (217a28-b16). 출세간도의 방식으로 수식관을 통해 적정에 이르는 방식으로 煖位에 관해 상설하고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안반수의에 대해 잘 습득한 요가행자는 샤마타를 얻고 오직 불법승과 4성제에 대해서만 몰두하기(唯念) 시작한다. 이런 선정의 대상에 대한 집중을 통해 요가행자는 기쁨을 얻는데, 이를 溫和라 한다. 마치 불을 불 때 열기가 얼굴에 향하지만 불이 닿지는 않기에 열기만을 느끼는 것과 같은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頂位는 몇 가지 비유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이 단계에서 요가행자는 모든 방향으로 살핀다. 이 단계에서 수행자는 상승하든가 퇴환하든가의 기로에 서 있다. 그는 마치 산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이 더 높은 산을 향해 오르거나 또는 하산하는 사람을 보듯이. 성도를 올라가는 다른 수행자들을 보거나 다시 범부의 단계로 추락하는 수행자를 본다. 범부의 단계로 추락하는 수행자들은 정법은 얻었지만 그 道果를 얻지 못해 마음이 우울해지고 3보와 4성제에 대한 篤信(*avetya-pras da)이 소멸되게 된다. 반면 퇴환하지 않는 수행자의 경우 信이 증대되어 계속 정진하여 전에 사념했던 법을 버리지 않는다. (217b16-c16).
順法忍의 단계는 4선근의 설명에서 매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다. 그의 몰두함에 의해 심과 의식[대상]은 하나로 된다 (因其專精 而心想一). 각각의 구경의 법에 대해 집중할 때, 처음으로 [심과 의식대상 사이에] 散動됨이 없게 된다. 새로운 것에 의식이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各各思惟 究竟之法 初非曾動 不念新故 (217c18-19). 이때 요가행자는 中中之上의 法忍을 얻는다. 그후 심은 어떤 의식대상도 없지만 그럼에도 관찰을 행할 때 (心無所想 而作觀察), 전후 찰나의 심 사이에는 어떤 착란도 없다 (前意後意 未曾錯亂). 이를 上中之下의 柔順法忍이라고 한다. 설사 그의 마음이 오로지 한 생각에 몰두하는데 빠져있지만 의지가 산란하지 않는 것을 上中[之中]의 柔順法이라 부른다. 그의 忍은 4성제를 관찰(審諦, nidhy na)하여 이에 주하는 것이다. 여기서 5근이 언급되고 있음은 주목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信 등에 향하고 있을 뿐 아직 信根 등은 성취하지 못했다고 한다. (217c17-218a5).
세제일법은 마지막 上中之上의 단계로 4성제의 현관 직전에 위치한다. (218a5-a7).
3) 『수행도지경』은 4선근의 다음 단계를 견도로 간주하고 있다. 4성제를 현관하기 위해 수행자는 5온의 생멸을 관찰하고 苦法忍을 파악하고 이때 10종 結을 제거하여 무루의 정견에 들어간다. 그 때 그는 무원삼매를 이룬다. (218a7-a17).
경은 수행도를 보리분법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수행자는 이미 수행했던 4념처를 제외한 남은 보리분법을 성취한다. 여기서 8정도가 지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점이 주목된다. 正見과 正念 (=正思), 正方便 (=正精進)은 관에 속하는 것으로, 그리고 正意(=정념), 正定은 지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지관이 수레를 끄는 두필의 말로 비유한다.
만일 무루심이 37보리분법의 하나의 법에만 몰두하지 않고 모두를 두루 이해한다면, 그때 37법을 갖추게 되고 고제에 대해 인식하게 되어 제2 무루심을 얻게 된다. 다시 욕계에 대한 고의 인식을 색무색계에 유비적으로 확장시킴에 의해 수행자는 고제에 대해 類智忍을 얻고 이것이 제3 무루심이다. 이런 인식을 통해 색계무색계의 18결을 제거했을 때 제4 무루심을 얻는다. (218a17-b19).
이어 나머지 집제, 멸제, 도제의 각 4종 무루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18b19-c18). 이를 통해 수행자는 모든 견소단의 88결을 제거했지만 수소단의 10결은 잔존해 있다. 사문과를 얻기 위해 그는 예류로서 최대한 7번 천상이나 인간으로 재생하게 된다. (218c18-c29).
이러한 『수행도지경』의 설명을 요약하면 세간도와 출세간도에로의 2종 수행도의 분류, 4선근의 비유적 설명, 인을 諦柔順法忍으로 명명하는 것과 견도 직전에 위치시킴, 그리고 견도의 16심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2종 수행도의 분류에서 4선정이 열등한 수행도로서 언급되고 있는 점이다. 요가행자의 전통에 서 있는 문헌 속에서 4선정이 평가절하된 이유는 잘 알 수는 없지만, 4선정이 5신통으로 발전되고 4성제의 인식과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4선근은 출세간도로서 언급되고 있다. 이 단계에서 마음이 3보와 4성제에 대해 향하고 있지만 아직 道果는 얻지 못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또 4선근을 9단계로 분류하고 煖에 2단계, 頂에 3단계, 柔順法忍에 3단계 그리고 세제일법에 최상의 단계를 설정한 것은 『비바사론』에서 <有說>로 제시된 견해와 일치하는 분류이다. 이 경은 난과 정의 단계에서 퇴환을 인정하지만, 후 2법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퇴환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또한 수행자를 성문, 연각, 보살로 분류한 것은 이후의 <선경>과 『유가사지론』, 『비바사론』등에서 기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여기서 한역된 <선경>들 중에서도 초기에 번역된 이 경에서 순결택분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 않은 것은 이 경의 성립이 『비바사론』보다 초기임을 보여준다.
2. 그 외의 <선경>에 보이는 기술상의 특징.
『수행도지경』을 제외하고 4선근에 대해 언급하는 <선경>으로 『達摩多羅禪經』 (T 618)과 『좌선삼매경』(T 613)이 있다. 이 외에도 『禪秘要法經』 (T 613)과 『五門禪經要用法』 (T 619)에서는 다만 난법과 정법에 관해서만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선비요법경』에서 이 두 개념의 의미는 4선근설의 맥락에서 보이듯 은유적 뉘앙스라기보다는 "따뜻함"과 "머리"라는 직설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59b22ff). 또 정법을 비구, 비구니에, 난법을 재가신자에게 배당시키고 있다 (268b6-20). 난법과 정법이 직설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5문선경요용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27c 29-328a6). 이 경에서 대소승의 차이를 관법을 수행할 때에 체험되는 내용의 深淺에 따라 구분하고 이를 근기에 따른 차이로 간주하는 것은 (327c 18-25) 매우 주목할만한 기술이라고 보인다.
『坐禪三昧經』은 대승적 경향을 보여주는 <선경>으로서 성문, 연각, 보살의 분류가 행해지고 있다. 이 중에서 4선근은 성문들의 수행도로 분류되고 있는데, 먼저 4념처에 대한 수행이 이루어지고 이에 의지해서 4제 16행상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게 된다. 이렇게 관하는 사람은 無漏相似法을 얻는데 이를 난법이라고 한다. 번뇌의 薪이 무루의 불에 의해 타버리는 것으로 마치 불을 지피려고 할 때 먼저 연기가 나는 것과 같다. 이것을 열반도의 初相이라고 말한다.
이런 설명을 한 후에 경은 2종의 불제자를 구별한다. 첫 번째는 일심으로 선정을 구하는 것을 즐겨하는 자로서 有漏道에 속하는 행자와, 두 번째로 애착을 제거하고 지혜를 구하는 자로서 직접 열반으로 나아가 (直趣涅槃) 煖法을 획득하는 불제자가 그것이다. 경은 이러한 상태가 무루의 상태가 아니라 그와 유사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그렇지만 이 단계의 수행자는 언젠가 열반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인식을 얻는다고 말하면서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이 난법이 발전된 것이 정법으로서 이 단계는 3보에 대한 信과 연결되어 설명되고 있고 퇴환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5온을 4제 16행상에 따라 관할 때 마음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忍으로, 이때 信이 굳건해져 의심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계에서 더 나아가 4제의 각 행상을 이해하고 증득하고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세제일법이다. 경은 이 단계에 직접 견도의 16심을 연결시킨다.
『좌선삼매경』의 기술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무루도를 획득하는 直趣涅槃道로서 4선근을 설명하는 것이다. 선정에 의지하는 길은 앞의 『수행도지경』에서 보았듯이 유루도로 간주되고 있어, 선정에 대한 낮은 평가가 이들 <선경>들의 특색임을 보여준다. 더욱 直趣涅槃道는 4선정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진술은 이 경이 직취열반도로서의 8정도와 세간도로서의 4선정을 준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래 8정도가 正定, 즉 4선정에 의해 정점에 달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선경>의 기술에서 보이는 출세간도에서 4선정의 배제는 선정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형식적으로 볼 때 『좌선삼매경』의 특색은 앞의 두 선근을 열반분 선근(*nirv abh g y ni ku alam l ni)이라 명명하는 점이다. 반면 인과 세제일법에 대해서는 이런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 경이 4선근 전체를 하나의 범주로 묶어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바사론』에서 사용된 순결택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구태여 새로운 개념인 열반분 선근이란 용어로 난, 정을 규정한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많다. 4선근과 관련되어 난법의 직전에 4념주의 수습이 제시되고 있지만 다른 보리분법은 거론되어 있지 않다. 보살의 수행도의 기술에서 4념주, 4정단, 4신족, 5근, 5력, 7각지, 8정도의 기술이 있지만 이 37보리분법은 수행도의 각 계위에 따라 차례로 배열되어 있지는 않다.
또 제3 선근을 順諦忍으로 명명하지 않고 다만 忍으로 이름붙인 것도 『수행도지경』과 [성문지]와 비교해 볼 때 특이한 점이다. 이와 관련해 285a9ff에 보이는 生忍, 柔順法忍, 無生(法)忍의 3종 忍法의 설명이 주목된다. 그것들은 보살의 견도를 획득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柔順法忍은 有無의 언설적 분별을 떠난 (= 涅槃性) 제법의 실상에 대한 信心의 청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무생법인이란 이런 실상에 대해 지혜, 信, 정진이 증대되어 그 능력(근)이 예리하게 되는 것이다. 경은 이것이 성문법 중의 난법, 정법, 지혜, 신, 정진이 증대되어 인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忍이란 열반을 받아들이는 것, 무루법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새롭게 얻고 새롭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종 法門 (不淨법문, 慈心법문, 思惟觀因緣법문, 念息법문, 念佛법문)을 수행하는 행자를 初習行者 ( dikarmika), 已習行者 (k taparicaya), 久習行者 (*atikr ntamanask ra)의 3종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은 『비바사론』, [성문지]에 통용되는 분류방법이다.
Ⅳ. [성문지]의 4선근설.
『유가사지론』에서 4선근에 대한 기술은 주로 [본지분]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성문지]의 두 곳에서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반면 [성문지]와 함께 最古層으로 평가되는 [보살지]에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먼저 [성문지]의 두 개소를 (가), (나)로 나누어 그 내용을 요약해 보자.
(가) rBh 324,8-325,17 ([성문지] 제2 유가처: 444b8-c28).
37보리분법의 배열 중에서 5근, 5력에 대응하는 개소에서 순결택분의 4선근을 설명한다. 5근은 출세간법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되고 있다. 5근, 5력의 점차적 수습을 통해 상중하품의 순결택분의 4종 선근, 즉 煖, 頂, 順諦忍 (또는 諦順忍) 世第一法을 획득하게 된다. [성문지]는 4선근의 과정을 불을 지피는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먼저 불을 지피려 할 때 아래에 마른 나무를 놓고 위에서 불을 지피려고 (鑽燧) 열심히 노력하면 그때 나무에 따뜻함이 생겨나고 (난), 따뜻함이 위로 올라오고 (정), 연기가 생겨나고 (순제인), 불은 없어도 열기가 생겨나고 (세제일법), 화염이 나온다 (무루의 성법).
(나) rBh 495,15-500,10 ([성문지] 제4 유가처: 475a6-c26, 특히 c3-26).
이 개소는 출세간도의 방식에 의한 7종 作意 중에서 勝解作意( dhimok-
iko manask ra )의 설명에 해당된다. 이 작의는 4성제를 대상으로 하며, 한결같이 집중된 상태에 있다. 이 작의를 통해 고제와 집제에 관해 끝이 없다는 인식을 얻는다. 이 인식에 의해 '무상하다'라는 무상의 끝없음이 勝解 된다. 이런 승해는 고, 공, 무아의 끝없음에 관해서 확대된다. 그렇지만 오랜 윤회 속에서 적집된 영향 때문에 그의 마음은 이 상태에서 퇴환하게 된다. 그는 열반을 원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현관을 장애하는 거친 형태의 자아의식(我慢; asmim na)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만을 제거하기 위해 유가행자는 심상속을 4제 16행상의 방식으로 관찰한다. 그럼으로써 그 전에 잘 관찰하지 못했던 것을 잘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때 비로소 혜를 통해 4성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그 혜를 갖고 자주 연습함에 의해 수행자에게 <能緣所緣平等平等>한 인식이 생겨난다. 이런 인식에 의해 열반에 대해 기뻐하는데 장애가 되는 거친 형태의 我慢의 현행이 제거된다. [성문지]는 下忍에 속하는 <능연소연평등평등>한 인식을 煖으로, 中忍에 속하는 <능연소연평등평등>한 인식을 頂으로, 上忍에 속하는 <능연소연평등평등>한 인식을 順諦忍(saty nuloma k nti )이라 부른다. 이를 통해 거친 형태의 아만을 제거하고, 또 열반에 대한 절실한 의향에서 나오는 기쁨을 포섭한 후, 또 계속되는 마음의 관찰에 대한 인위적 加行을 버린 후에 그는 무가행성 속에 무분별한 심을 확립시킨다. 그때 그의 마음은 마치 소멸한 듯 보이지만 실은 소멸한 것이 아니고 어떤 대상도 없는 듯 보이지만 실은 대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단계에 도달한 수행자는 곧 이어 세제일법을 획득한다. [성문지]는 이러한 유사해탈체험이 4성제에 대한 現觀(abhisamaya) 자체는 아니라고 경고하지만 이에 도달한 수행자는 곧 正性離生(samyaktv niy ma), 즉 견도위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성문지]의 두 서술은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다른 경론의 서술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이 그 유사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제4 선근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체험되는 "소멸한 듯 보이지만 실은 소멸되지 않은" 등의 표현은 일종의 유사견도체험으로서 견도의 무분별지와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제3 선근인 인을 '似見道'라고 하는 『비바사론』24b25의 연장선상에 있는 설명이다.
(가)에서 4선근이 순결택분으로 명시되고 있는 것은 『비바사론』의 영향으로 보인다. <선경>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순결택분의 4선근은 37보리분법 중에서 5근과 5력에 배대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이후 증득될 출세간법에 대해 勝解를 일으키고 淨信을 일으킨다. 그리고 4선근은 3종으로 나누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4선근을 다시 9종으로 분류하는『수행도지경』 내지 아비달마 논서의 일반적 경향과 비교할 때 매우 소박한 분류로 여겨진다. 반면 4선근을 불을 피우는 과정에 비유한 것은 매우 일관성이 있고 특히 난의 이미지와 관련해 적절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비유는 『좌선삼매경』,『감로미론』에서 난법의 설명을 위해 사용했던 비유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 수행자를 초습행자 등의 3종으로 나눈 것도 『비바사론』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좌선삼매경』의 영향으로 보인다.
(나)의 설명은 출세간도를 따르는 수행자가 체험하는 4선근의 내용으로서 매우 사실적인 서술이라는 인상을 준다. 여기서 주된 수행의 대상은 4성제에 대한 인식으로서 심상속을 4제 16행상에 따라 관찰하는 것이고 여기서 혜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無我相經』의 기술에서 볼 때 당연할 것이다. 여기에 5근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과 5근과 관련해 信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은 주목되는 점이다. 또 앞의 3종 선근이 각각 下中上의 忍에 배당되고 있는데, '인'이 하나의 상위범주로 기능하고 있는 점이나, 세제일법이 '인'의 범주로 포괄되지 않는 것도 주목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앞의 3종 선근이 모두 samasam lamby lambaka j nam (能緣所緣平等平等 正智)로 설명되고 있는 점이다. 이 술어가 심상속의 흐름의 맥락에서 사용된 것을 고려하면, 여기서 능연이란 현재 찰나의 心이고 소연이란 직전에 흘러간 과거 찰나의 심일 것이다. 이런 두 찰나가 등질적이라는 것은 현찰나의 심이 전찰나의 심을 대상으로 할 때, 양자는 함께 무상, 고, 공, 무아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개념이 『수행도지경』의 직접적 영향 아래 성립했다고 여긴다. 여하튼 후에 『아비달마집론』에서 견도를 정의할 때 사용된 이 술어가 원래 4선근의 정의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후 유가행파의 문헌에서 4선근위를 유식성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근거가 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전거라고 보인다.
또 제4 선근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체험되는 "소멸한 듯 보이지만 실은 소멸되지 않은" 등의 표현은 일종의 유사견도체험으로서 견도의 무분별지와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제3 선근인 인을 '似見道'라고 하는 『비바사론』24b25의 연장선상에 있는 설명이다.
1. [성문지]의 4선근설의 유래에 관한 몇 가지 고찰.
[성문지]의 설명이 주로 어디에 의거해 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Sa gharak a의 『수행도지경』과 그 밖의 <선경>의 기술에서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1) [성문지] (가)는 논의 구성상 瑜伽修 (yogabh van ) 중에서 菩提分修에 해당된다. 유가수는 想修와 보리분수로 나누어지는데, [성문지]는 이들 각각이 세간도와 출세간도에 따라 수습될 수 있다고 간주한다. 우리의 관심은 세간도와 출세간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에 있지만, 이 서술에서 양자의 연결방식에 대해서는 확정될 수 없다고 보인다. 오히려 [성문지]는 유가수에 대한 설명 중에서 주로 출세간도에 따른 기술을 택하고 있다고 보이며, 이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성문지] (가)에서 4선근이 출세간도에 따른 수습 이후에 획득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이곳의 설명은 세간, 출세간도를 구별한다는 점에서는 <선경>의 일반적 경향을 따르고 있지만, 양자를 직선적 과정으로 설정했던 『달마다라선경』의 설명과는 구별되고 오히려 『수행도지경』의 구별 중에서 다만 출세간도의 기술만을 함축적으로 취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성문지] (나)에서는 세간도와 출세간도는 뚜렷이 구별된 두 길로 설정되고 있다. 여기서 세간도는 4선정, 4무색정, 5신통으로 구성되고, 출세간도는 4선근을 통해 나아간 후 4제 16행상의 관찰과 이후의 사문과의 획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문지]는 출세간도가 선정의 획득 (즉 세간도) 이후에 수행되거나, 또는 선정에 들지 않고도 부정관 등의 예비적 수행에 의해 생겨난 집중된 상태에 의거해 수행될 수 있다고 설한다. 이러한 [성문지]의 설명은 Sa gharak a의 Yog c rabh mi (즉 『수행도지경』)에서 시도된 범부의 길과 불제자의 길의 구별을 대체적으로 따르고 있지만, 이 경과 『좌선삼매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은 선정에 들지 않고도 출세간도를 수행할 수 있다는 그러한 극단적 설명은 하나의 대안으로서 남겨두고 있을 뿐 선정에 대한 일반적 평가절하는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4선근설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제3선근인 順諦忍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것이 이미 널리 경전에서 설해진 다른 선근들과 결합함에 의해 4선근설이 성립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형식적으로도 순제인의 단계와 그전의 두 선근의 단계와의 질적 차별성이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된다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면 전 2선근에게 퇴환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비해 순제인에게는 그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선근의 명칭을 둘러싸고 흥미로운 발전이 보인다. 『비바사론』, 『감로미론』등에서는 제3선근을 인이라고 명명하면서 이것을 순제인과 등치시키고 있다. 이것은 『비바사론』 등이 『수행도지경』 등에서 이를 순제인이라고 명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성문지] (나)가 순제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이를 포함한 앞의 세 선근을 모두 '인'이라는 상위범주로 묶어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순제인을 하나의 특수한 형태의 인으로 정의한 것은 아마 순제인이란 개념이 대승적 관념과 연결되기 때문이라 보인다. 이것은 『좌선삼매경』의 기술에서 암시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忍法은 보살의 견도획득을 위해 시설된 것으로, 특히 두 번째 忍으로서 柔順法忍(dharm nuloma-k nti)이 제시되어 있다. 이 설명은 『유가사지론』[섭사분]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보살의 正行道가 성문보다 뛰어난 세 번째 이유로 諦察法忍(dharma-nidhy na-k nti)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것은 세간도의 인식으로서 『유가사지론』의 수행도에서 4선근의 단계에 배당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문지]는 특별히 대승적 뉘앙스를 풍기는 순제인이라는 개념을 넓은 의미의 중립적 용어인 인을 사용하여 희석시키려 했다고 보인다.
3) 順諦忍이 원래 대승에서 유래한 관념이라는 이런 추정이 옳다면, 우리는 여러 문헌에서 제3선근의 명칭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명명이 행해졌는지를 설명할 근거를 갖게 된다. 또 이것은 4선근의 맥락에서 왜 3승에 따른 설명이나 대승적 요소가 등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비바사론』은 분명 수행도지경의 순제법인이란 용어를 알았다고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이 개념이 주는 대승적 뉘앙스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반면 『좌선삼매경』 등에서 제3선근을 인으로서 명명한 것은 이미 4선근의 범주 자체가 확고히 성문도로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3승의 분류와 관련해 4선근을 성문승의 출세간적 해탈도로서 설하는 『좌선삼매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비바사론』에서 4선근의 설명과 관련해 "보리심"이란 대승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버스웰은 순결택분의 선근으로의 정의는 다른 학파의 시원적 대승(proto-Mah y na)의 요소와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는 출세간부의 문헌인 Mah vastu에서 발보리심이 선근의 성숙에 의해 시작되고, 따라서 발심에 앞서는 願行이라 불리는 단계는 아직 가행도이며 선근의 획득에 의해 특징지어 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비바사론』에서 가행도가 선근의 유형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선근과 연결시키고 있는 출세간부 내지 대승의 관념의 영향 때문이며, 이는『비바사론』 속에서 발견되는 대승적 요소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해석이『비바사론』에서 4선근의 설명이 3승(성문, 연각, 보살)의 종성과 결합되어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지지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버스웰의 해석은 "보리심"이란 용어가 대승의 독점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보리심"이란 개념을 유부가 사용한 것은 대승의 영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정통유부의 논서가 대승적 이상을 선양하고 그들의 핵심적 가르침을 폄하하는 내용을 어떤 거리낌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는 소박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보살이나 이와 관련된 '발보리심'의 관념은 당시 유가사라는 수행자 그룹에서 널리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대승의 독점물은 아니었다고 보인다. '보살' 이란 용어는 근본유부의 문헌 속에서도 빈번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3승의 분류와 관련해 4선근이 사용되는 경우, <선경>이 항시 이를 성문들의 해탈도로서, 특히 출세간의 방식에 따른 해탈도로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출세간의 방식이란 선정대상에 대해 4성제의 방식으로 관찰하는 것이고, 이것은 견도의 단계에서 완성되지만, 일종의 예비적 단계가 4선근으로 설정되었다고 보인다. 그것은 슈미트하우젠이 보여주었듯이 아마 성문들의 해탈적 체험 속에 대승의 무분별적 인식을 포섭하려는 시도와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할 때 우리는 왜 대승적 경향의 <觀經> 속에서 4선근설이 언급되지 않는 반면, <선경> 속에서는 빈번히 설명되고 있는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Ⅴ. 맺는 말
4선근위는 유부와 유가행파의 수행도에 있어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 견도의 직전에 위치한 단계로, 여기서도 4성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성문지에서는 두 군데에서 구체적으로 4선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본고의 목적은 이 기술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는 4선근설과 유부 아비달마 논서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따라서 그 유래에 관해서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본고는 소위 <선경>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선정수행을 위한 매뉴얼에서 4선근이 하나의 범주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혹시 이들이 4선근의 성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며 또 이로부터 [성문지]의 4선근설이 채택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행도지경』으로 알려져 있는 Sa gharak a의 Yog c rabh mi를 중심으로 그 관련성을 스케치한 것이다.
양자의 관련성 내지 대응관계는 먼저 수행도를 세간도와 출세간도로 구분하고, 세간도를 4근본정, 4무색정, 신통으로, 그리고 출세간도를 4선근과 견도, 沙門果로 연결시키는 논의 구조에서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하여 [성문지]는 (나)에서 두개의 길을 명확히 나누어지고 있는데, 이는 분명 『수행도지경』등의 영향으로 보이며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그것에 보다 친밀하고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직접 전승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세간도로서의 선정의 유용성에 대한 <선경>의 일반적인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성문지]는 선정의 예비적 성격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가)에서는 두 수행도는 전제되어 있을 뿐 구체적 논의는 오로지 출세간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인다.
4선근설의 도입과 관련해 졸고는 제3선근이 순제인 내지 인으로 혼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4선근설의 성립이 이 개념의 도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면 이 개념의 혼용은 저간의 사정을 암시해 주고 있을 것이다. 졸고에서는 이와 관련해 유순법인을 보살의 수행도로 분류하는 『좌선삼매경』의 기술에 주목해서 이 경이 체찰법인이라는 전통적 개념에 유순법인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혔다고 추정했다. 이를 통해 이 개념은 아마 대승적 성향의 서클에서 즐겨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여러 대승적 관법을 전통적 성문들의 관법에 연결시켰던 <선경>의 관점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이 관념이 4선근으로 체계화됨에 따라 전통적 해탈도와의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며, [성문지]는 순제인을 인이라는 상위범주의 하나로 간주함에 의해 이를 성문의 수행도로서 재구성해 나갔다고 보인다. 이러한 과정은 하커(P. Hacker)의 포괄주의(Inklusivismus)의 맥락에서 진행되었을 것이다.
본고는 주로 개념유사적 방식에 의거해 성문지의 4선근설이 <선경>의 기술에 한층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양자의 구체적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4선근과 관련된 핵심적 개념들, 예를 들어 37보리분법에 있어 4념처와의 관계, 5근의 기능과 이와 관련된 信의 역할, 그리고 止觀의 작용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기며, 이는 추후의 과제로 남겨 놓겠다.
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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