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Ⅰ 행공의 개념

醉月 2008. 4. 14. 23:39


수련에 있어 강조되는 것이 행공이다.
하지만 행공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그 중요성에 불구하고, 수련의 한 과목으로서 단편적이며 교과서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선도수련은 오랜 시일에 걸쳐 수행되기 때문에 단시일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반하여 행공은 체력증가, 건강 등 육체적인 면에서 성과측정이 가능하고 외형적인 멋이 있기 때문에, 선도수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련을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어 발도심 함양에도 큰 도움이 된다.

행공은 다닐 행(行)자와 공(功)자로 이루어진, 육체적인 명(命)수련이지만 행공 수련의 결과는 성(性)과 명(命)이 동시에 닦이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가진다.

행(行)자는 수행(修行)의 약자 의미가 있으며, 사전적 의미는 "수도자가 정하여진 업을 닦는 일, 특히 그 고행" "실천, 행위. 인간적인 행동"이란 뜻이며, 공(功)자는 "공로" 즉 잘한 일이라는 뜻이다.

 

간추린다면 "행공은 인간의 정명(定命)이므로 당연히 닦아야 할 일이며, 또한 닦아야 잘하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행공은 수도자뿐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필연적 수련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수도의 핵심이자 백미다.

 

대부분의 수련자는 수련하면 본 수련인 좌식 수련을 먼저 떠올리며, 행공은 스트레칭이나 체조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는 정신수련의 포괄적 내용을 모르고 단순히 용어로만 판단하여 육체적 수련은 정신적 수련 보다 못하다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명상, 참선 등의 기본적 수행법은 성(性)공부라 할 수 있는 좌법, 좌선이며, 선도수련 역시 전통적인 수행 방식은 좌법이다. 이 때문에 행공은 수련 주체가 아닌 좌법을 잘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수련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조적 역할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많은 수도자들이 좌선, 좌법으로 불철주야 수행해 왔으나, 대오각성(大悟覺醒)한 분들이 많지 않는 점을 볼 때, 수행으로서 좌선, 좌법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인도의 수행 중에는 육체를 욕망의 덩어리로 보고, 육체의 고행을 통해 이러한 욕망과 쌓인 업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하여 육체에 심한 고통을 주거나, 어려운 동작 위주로 수행하는 공부가 있다.

 

그러나 이 공부가 본질적으로 육체를 중시한 명(命)위주의 수련이라기보다는, 육체를 부정하고 학대하며, 심지어 해탈을 위해서라면 육체 자체를 포기하기까지 한다는 수행방법이다.

 

행공이 수련의 보조적 역할 및 건강적 차원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취급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점 또한 수련자로서 궁금해지는 문제다.

선도수련을 정신공부 또는 마음공부라고 하는 경우는 있지만 육체공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이처럼 수행의 방편들이 정신 즉 성(性)공부 위주로 흐르게 된 이면에는 육체가 유한한 반면 정신은 영원하고, 육체는 가시적이고 욕망이 가득 찬 형이하학의 세계지만, 정신은 신비와 경외로운 신(神)의 영역인 형이상학의 세계로 사람들에게 각인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개인적으로 분석해 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선도수련의 전승자가 도를 이루지 못해 도맥(道脈)이나 도법(道法)이 끊겨, 정확한 수련법이 제대로 후대에 전승되지 않은 결과로 추정한다.

 

육체는 물질적 가치이지만 유한적인 존재이므로 현실적인 경제적 가치(?)로 따져봐도 영원한 정신보다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가치가 꼭 물욕이라는 등식을 배제하고, 이제는 육체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육체의 명(命)수련을 제대로 닦아야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도를 이룰 수 있는 丹, 조화주인 여의주는 살아 있는 육체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수련자는 배워서 잘 알고 있다.

 

육체가 없는 정신이나 영혼은 여의주가 없기 때문에 도를 이루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해탈의 대상으로 여기는 영혼의 세계는--도계가 아닌-- 도를 이룰 때까지 육체를 가진 전생과 현생의 순환 과정에서 잠시 대기하는 불완전한 세계이자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궁금해하고 있는 신들림이나 빙의 현상의 인과율은 육체 없는 영혼의 육체 지향성 때문이라고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이처럼 육체의 유무에 의해 도의 유무가 결정된다면, 육체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으며, 육체를 닦는 명 공부로서 행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성공부인 정신공부보다 결코 낮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도화제의 수련자에게 도계 입문 전까지 개인적인 수련 시간배정을 육체수련법인 행공에 70% 정신공부인 좌식에 30%로 하는 수련을 권하고 싶다. 행공 3회에 본 수련1회 비율이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일률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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