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男’이 고교 모임에 열광하는 이유
‘고만고만’ 친구들은 30년 지나도 여전히 만만해!
여기 석 장의 아름다운 사진이 있다. 강원도 설악산 근처 어느 식당의 널찍한 잔디마당, 중년 남녀 120여 명이 활짝 웃으며 카메라 파인더가 가득 차도록 모여 섰다. 하조대 정자 아래 짙푸른 동해바다를 뒤로하고 찍은 50여 명의 여인들과 남성들의 사진. 이름하여 ‘전라고-전라여고 추억의 수학여행단’이다. 늙은 남고생들은 전북과 전남을 통틀어 ‘자칭’ 전라도에서 최고 명문인 ‘전라고’를 나왔다(6회 1976년 졸업)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을까.
그들은 농담이라며 호남의 최고 명문이 ‘호남고’이고 전주에서 최고 명문이 ‘전주고’라고 했다. 그럼, 올드 여고생들은 누구인가? 전라여고는 어디에 있는가? 단체 미팅을 나왔는가? 아니다. 전라여고는 전라고 출신과 결혼한 여인네들이 자동으로 편입하게 되는 가상의 여자고등학교다. 나이야 들쭉날쭉하겠지만, 실제 여고동창생들처럼 만나면 언니, 동생 하며 스스럼이 없다. 소풍 내내 팔짱을 끼고 다니는 축도 있다. 이러다가 머지않아 ‘전라여고 동문회’가 결성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고생들도 수학여행길이 신나기는 마찬가지인지라 하나같이 하루 종일 얼굴에 웃음을 달고 다닌다.
연이은 모임 기록 경신
남고생들은 동창의 아내를 무조건 ‘형수’로 부르는 미덕을 발휘했다. 부부동반 51쌍, 자녀 4명, 싱글 13명, 모두 119명이었다. 이벤트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추억의 수학여행’ 콘셉트는 적중했다. 회장단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자발적인 찬조금이 보름 사이에 1000만원을 웃돌았다. 참가하지 못하면서 100만원을 쾌척한 친구도 있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부부는 금일봉을 기꺼이 내밀었다. 20만원, 30만원, 50만원 등 기부행진이 이어졌다.
마른 오징어 25축(500마리), 수건 100장, 머리염색약 100개, 세금절약가이드 100권, 시 전문지 100권 등 찬조물품도 넘쳐났다. 아름다운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올해는 관광버스 4대를 빌렸다. 지난해에는 단양 8경과 충주호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관광버스 3대에 100명이 나눠 탔더랬다. 2006년에는 대관령목장과 오대산 월정사 소풍에 관광버스 2대 60명 참가.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인가. 해마다 기록이 경신되는 이유는 “엄청 재밌다더라”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결국 올해는 재미동포, 재캐나다 동포까지 비즈니스를 겸해 방한, 30년 만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감격을 누렸다.
이제 재경동문회나 1년 2차례(신년하례식, 쌍륙절) 부부 동반행사는 굳어진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정례행사말고도 번개모임(벙개)이 서울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열린다. 참가인원 평균 15∼20명. 쉰(지천명) 넘어 살다 보니 축하할 일도 많고 위로할 일도 많다는 게 그들의 변(辯)이다. ‘6산會’라고 월례 산행모임은 또 어떤가? 2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시산제를 필두로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인왕산, 유명산, 명지산 등을 두루 다녔다.
말하자면 이들의 만남은 일상 마시는 술과 같은 것. 기뻐서 한잔, 슬퍼서 한잔이다. 한 친구는 “볼 수만 있다면 날마다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누구나 고교 3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班)이 아니었던 동창을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나면 어색하지 않던가. 그것도 한 세대를 걸러 만난다? 처음에는 서로 명함을 건네고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말문을 열게 마련이다.
그런데 두세 번만 만나면 대뜸 반말이요 아주 오래된 친구들처럼 스스럼없이 구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직 같은 연도에 같은 교문을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설명이 되는 걸까. 지연과 학연은 이렇게 끈끈하고 영원한 것인가. 한국에서 가장 단결이 잘되는 3개 조직으로 호남향우회, 해병대전우회, 고려대교우회를 든다고 했던가. 쉰 고개를 넘나드는 마당에 고교동창 모임에 몰입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5초남’과 ‘4후남’
이들을 ‘5초남(50대 초반 남성. 대부분 1956년 원숭이띠부터 57년 닭띠, 58년 개띠다)’이라고 부르자. 마지막 아날로그세대인 셈이다. 당연히 컴퓨터, 게임, 자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디카, PDP 등에 능숙하지 못하다. 유신(긴급조치)세대와 386세대 중간의 ‘낀 세대’다. 온갖 기능이 갖춰진 휴대전화도 오로지 전화를 걸고 받는 데만 쓰는 이 5초남들의 모임은 애초에는 지역별로 삼삼오오 오프라인 미팅이 주류였다.
이들은 2000년 초, 네이버에 카페(myhome.naver.com/junlago6:지난 5월 네이버 폐쇄)를 장만하고부터 온라인의 맛을 알기 시작했다. 현재는 인터넷에 새집을 장만했다(jeollago6.net). 30∼40대 때 살아남기 위해 경쟁사회에 함몰하면서 친한 친구들조차 만나지 못하고 심드렁하게 살아오던 샐러리맨들이 40대 후반 들어 조금씩 생활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독수리타법으로 띄엄띄엄 자판을 두드려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어느 친구는 글 솜씨를 유감없이 자랑하기도 했다.
오프라인 미팅이 온라인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넘어서다. 이들은 졸업 30주년 행사를 성대히 준비했다. 기념문집을 내자는 것도 그중의 하나. 작품 모집에 나섰다. ‘쉰둥이들의 쉰 이야기’라는 타이틀에 부제는 ‘전라고 6회생들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었다. 당신네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잘살고 싶은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라는 것이 편찬위원회의 주문이었다. 아마추어들이지만 글들은 진솔하고 다양했다. ‘전라가족의 글 마당’도 곁방살이로 붙였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모인 글이 맞춘 듯이 50편. 그들은 2007년 1월6일 한강 유람선에서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치렀다.
언론사 출신의 한 친구는 쌍륙절 행사와 인터넷시대의 개화(開花)를 축하하는 글을 ‘전라고 6회 홈페이지로 비춰본 40후남(40대 후반 남성)의 울고 웃는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1만자쯤 써 월간지(신동아 2005년 9월호)에 싣기도 했다. 그 글을 읽은 중장년 독자들은 ‘당신네 고등학교 친구들은 사는 것같이 산다’ ‘부럽다’ 는 반응을 보였다. 자유게시판에 실린 친구들의 ‘짱짱한’ 글이 1000건을 넘어서자 생활정보 자료로서 활용 가치도 생겼다. 그 속에는 이 사회에서 동년배가 겪을 법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실직이나 이혼, 상처(喪妻)의 아픔, 백수가장의 고독, 친구들의 어이없는 돌연사 소식, 잇따른 부모상, 성장하는 자녀들과의 갈등, 부부 불화, 골프 팁이나 정기적인 등산을 부추기는 등 건강과 취미, 사위를 맞은 친구소식, 투자정보에 목말라 하는 친구들에게 팁을 못 줘 안달하는 친구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박식을 자랑하는 친구,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된 고급룸펜 이야기, 암과 싸우는 친구 이야기, 종교생활 이야기 등 화제는 넘치고 넘쳤다.
연어가 회귀하듯
처음에야 몇몇이 주도적으로 홈페이지 도배질을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멀리 해외 친구들도 소식을 전해왔다. 그랬다. 그들은 특히 친구들의 경조사에 친형제처럼 뜨거운 우정을 과시했다. 친구가 몹쓸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지자 전국에서 이틀 동안 60여 명이 모여 영안실에서 진을 쳤다. 그뿐인가. 아내를 잃은 친구의 상가에는 그전부터 알고 지낸 ‘여고생’들까지 조문, 영안실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당해 회장단은 수시로 조문사절단도 되고 축하사절단도 됐다. 다른 고등학교 출신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슬픈 일에 같이 슬퍼하고,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하자는 게 그들의 ‘교훈(校訓)’이었다. 마치 ‘다정다감(多情多感)이 병’인 양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고교 동창회 있으면 나와보라는 듯이, 그들은 친구를 위한 행사라면 ‘열성 그 자체’였다.
이렇게 잘 뭉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인터넷의 덕이 컸다. 올해 한국 정치·사회·문화사에 특이한 문화로 자리 잡은 촛불시위도 따지고 보면 10대 네티즌의 힘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네티즌이 무엇인가. 그들은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전화가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정서불안증’에 걸리는 세대가 아닌가.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인터넷으로 하루를 마치는 세대의 힘이 이처럼 무서울 줄 ‘2메가 바이트’밖에 안 되는 정치인들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오호, 통재.
그렇다. 첫째는 인터넷 홈페이지가 동인(動因)이었다. 둘째는 홈페이지 개설 이전부터 객지생활 30여 년간 지역별로 삼삼오오 모이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재경동문회’로 합쳐지는 과정이 원활했다. 1990년대 말 불어 닥친 IMF 위기도 극복하고 직장에서 나름대로 ‘위치’를 잡은 친구들이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소통의 수단을 찾아야 했다. 이익관계로 뭉친 직장의 상사나 동료들과는 편하게 마음을 터놓기가 어려웠다. 지방대 출신이든, 서울지역 출신이든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팍팍했을 것인가.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해타산을 할 게 없어 좋았다. 무엇보다 입맛과 말맛(사투리나 방언)과 문화적인 정서가 비슷하니 죽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말로는 코드가 일맥상통하다고 할까. 한국 남자들은 50만 넘으면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족보를 찾는다고 한다. 연어가 어머니의 강(母川)을 찾아 회귀하는 것처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조금씩 느낄 나이가 된 것이다. 이제껏 대처생활을 하면서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이들이 만난 자리에는 수십년 만에 들어보는, 잊고 있던 사투리와 방언(탯말)이 춤을 췄다.
선을 넘지 않는 아름다움
방언을 누가 더 많이 기억하는가에 따라 칭찬이 갈리기도 했다. 입맛도 상대방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도시 출신들과의 술자리에선 홍탁삼합을 안주로 시키려면 눈치를 봐야 했으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어릴 적 많이 먹던 콩나물해장국을 좋아하고 추어탕을 좋아했다. 술값도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언제나 값싼 막걸리나 삼겹살에 소주만 찾으니까 누가 촌놈 아니라 할까 봐 대부분 소탈한 성격으로 옴팡집 비슷한 허름한 집에서 잔을 기울였다. 술값이 소소한 데도 더치페이는 불문율이었다. 그러니 여고생들도 남고생들 모임이라면 언제나 환영한다는 게 ‘들리는 소문’이었다.
5초남은 대개 하나나 둘인 자녀들이 어려운 경쟁을 거쳐 이미 대학에 입학했을 나이라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적다. 아이들은 아직 경제적 독립은 못했으나 정신적으론 이미 독립 상태였다. 어차피 세대차가 현격해 소통(疏通)이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대가족의 맛을 본 마지막 세대이자 핵가족의 선두가 된 세대다. 가장(家長)으로서 자기 정체성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심각한 외로움에 직면하는 때이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탈출구의 하나로 바람(외도)을 피기도 하고, 골프나 등산 등 운동에 몰입하기도 하고, 과다한 음주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창 모임만큼은 같은 고민을 가진 동시대 친구들로서 우정을 가꾸어가는 등 여러모로 매우 건전했다.
또 하나, 고교동창들은 누구 하나 튀거나 잘나지 않고 ‘고만고만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친구들을 일러 흔히 ‘꾀복쟁이’라고 하지만 그들하고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초딩 친구들은 지적, 경제적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 한두 번 만나면 반갑지만 고딩 친구들처럼 편하지는 않았다. 몇 가지 소싯적 추억이 전부라 할 만큼 화제도 궁하니, 만나면 그저 술잔만 주고받다 자칫하면 말싸움이 나고 감정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고딩 친구들은 아주 출세하고 아주 잘사는 친구가 거의 없어, 고만고만한 친구들끼리 고만고만한 곳에서 모여 고만고만한 삶의 화제를 끊임없이 나누는 것이다.
‘촌놈정서’는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촌놈정서는 무엇인가. 예의범절을 알고 사람노릇 잘하자는 것도 촌놈정서의 큰 덕목일 터, ‘겡우(표준말로는 경우나 경위라 할 것이다)’를 잘 안다는 것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지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정(友情)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의 실수나 잘못을 잘 감싸준다. 그들이 사회생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역시 ‘고등학교 친구들 간의 우정’이다.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되고 생소하리만큼 신기하지만 일단 모이고 나면 철칙이 된다.
‘시골쥐(직장관계로 지방에서 살다 상경한 친구들의 애칭)’들은 ‘서울쥐(수도권 지역에 사는 친구들을 부르는 애칭)’들의 우정을 접하곤 “믿기 어렵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름이 멀다하고 15명, 20명이 모여 웃고 떠드는가. 그런 ‘벙개’에 한두 번 빠지면 왕따 되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하여, 다음 벙개 때에는 ‘술값 분배’의 원칙을 깨고 자기가 “쏘겠다”고 ‘웨장’을 지르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서민적이어도 너무 서민적이다. 어디 룸살롱 같은 데서 양주에 폭탄주 한번 말아먹지 않는다. 막걸리와 소주를 넘을 때에는 고작 ‘맥소(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심)’가 전부일 따름이다.
덩달아 신이 난 여고생들
그들은 이제 눈을 해외로까지 돌렸다. 지난해 20여 명이 4박5일의 백두산관광 거사를 치르곤, 올해는 내처 일본 오사카-고베관광을 다녀왔다. 이번 쌍륙절 나들이를 하며 공감대가 확산되자 24명이 신청했다. 이들은 ‘독도는 우리땅 넘보지마 짜샤’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미리 만들어 가지고 갔다. 귀무덤 앞에서, 동대사 앞에서, 헤이안 신궁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난해 인천에서 배 타고 다롄까지 가는 한밤의 선상여행이 재미가 쏠쏠했다고 소문이 난 데다 백두산 천지를 보지는 못했으나 버스에서 나눈 왁자지껄한 추억을 못 잊는 여고생들이 더 들이대며 여행을 하자고 보챘다. 그야말로 못 말리는 남고-여고생들의 행진이다. 하조대에서 찍은 여고생들의 단체사진을 보라.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앨범 속 몇 장 안 되는 ‘희귀한’ 사진일 수도 있겠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여름, 천렵 사진까지 담아 CD로 60장을 구워 신년 하례식 때 나눠주었을까.
어쩌면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에 할 일은 아름다운 ‘추억 쌓기’일지도 모른다. 거의 결혼생활 4반세기를 지나며 남편과 알콩달콩 한 가정을 꾸려온 이 땅의 보통 아내들이 남편친구들과의 이런 거대하고 즐거운 모임에서 추억을 쌓는 호사를 누린들 누가 무어라고 할 것인가. 관광버스에서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다해, 유행가 한 자락이라도 불러볼 일이다. 흉이 될 일이 무에 있으랴. 그래서 유쾌하다. 누가 손가락질하는 사람 없고 남편이 1975년 다녀갔다는 추억의 수학여행, 설악산에서 낙산사를 거쳐 하조대까지 손잡고 가보자. 중간중간 맛집에서 식사를 하노라면, 남편친구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남편같이 친숙해 보이질 않던가. 잘 마시지 못하는 술도 이 참에 한잔 해보자. 다음 모임 때에도 절대로 빠지지 말자.
어느 여고생은 아침마다 홈페이지를 뒤져보며 남편에게 먼저 벙개 정보를 알려준다고도 했다. 자체 홈페이지(http://jeollago6.net)는 백수일기, 진료일기, 교단일기, 에세이 시 등 문예마당, 직딩 일기, 건강정보, 여행정보, 친구 찾기 등 다양한 글이 이어지는가 하면 인터넷 쇼핑몰 구실까지 하고 있다(충청도 광천 김을 팔아 장모를 기쁘게 해주는 사위가 있는가 하면 매실매실한 임실산(産) 매실과 대봉시를 해마다 팔아 효자 노릇하는 친구도 있다). 좋은 글은 프린트해 아이들에게 보여준다고도 했다. 이 남고생들 중에는 글 잘 쓰는 친구가 어찌 이리 많을까. 글이 하나같이 맛깔스럽고 몸에 찰싹찰싹 닿는 듯하다.
진화하는 5초 부부의 동창회
이제는 동료 여고생들의 이름도 거의 외웠으니, 내년부터는 ‘개목걸이(목에 건 명찰)’가 필요 없겠다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러니 어찌, ‘전라고 만세’ ‘전라여고 만세’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남고생들이 어느 자리에서나 헤어질 때 부르는 고정 레퍼토리 ‘교가’도 대충 따라 부를 수 있지 않은가. 노령의 푸른 줄기/고덕산 솟아/전주천 맑은 물도 굽이 도는데….
그들은 우정의 금자탑을 앞으로도 30∼40년 차곡차곡 쌓아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올해 회장단 선출 때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하며 살자’였다고 한다. 2008년도 총무가 된 친구의 인사말도 “우리도 태안반도 기름 제거나 고향 농사철 일 돕기 등 착한 일 한 번 하자”였다. 그 친구가 처음으로 ‘사회 공헌’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공감대 형성에 나선 것이다. 물꼬가 ‘추억 쌓기’를 넘어 그 방향으로 흐른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의견이 많으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은가. 고등학교 동문회가 이렇게 ‘진화’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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